02해외여행산행

베이징 풍광 6. 자금성 산책과 귀국

이름없는풀뿌리 2015. 7. 28. 15:36
베이징 풍광 6. 자금성 산책과 귀국 (1) 귀국(歸國)에 앞서 공원과 거리를 둘러보고 샤워 후 휴식을 취하노라니 2008/6/15 09:00 김사장이 나타났다. 인근 왕징가 한식당에서 해장국을 먹고 나서 오후 15:00비행기 타기 前 무얼 할까 숙의하다 북경의 核이요, 랜드마크라는 자금성을 산책하기로 했다. (2) 자금성(紫禁城) [Imperial Palaces of the Ming and Qing Dynasties in Beijing and Shenyang] 자금성(쯔진청, 중국어:紫禁城, 병음:zǐ jìn chéng)은 베이징의 중심에 있는 명과 청 왕조의 궁궐이다. 자금성의 규모는 궁궐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이다. 지금은 고궁 박물원(중국어:故宮博物院, 병음:Gùgōng Bówùyùan)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자금성은 영어로 직역하면 'Purple Forbidden City'이지만, 실제로는 'Forbidden City'라고 불린다. 東西로 760m, 南北으로 960m, 경복궁의 약 2배인 72만 m²의 넓이에 800채의 건물과 9999 개의 방이 배치되어 있다. 1961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고, 1987년 "명·청 시대의 궁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곳 午門의 가운데 문은 황제만 사용하고 현재도 일반인의 출입을 엄금한다. 명나라의 3대 황제 영락제는 권좌에 오른 지 4년째 되던 1406년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기고 만리장성 이후 중국 최대의 역사라 불리는 자금성 쌓기에 나섰다. 이후 14년간 100만 명의 인부가 이 공사에 동원됐다. 사용된 건축 자재의 量도 상상을 초월해 벽돌 1억만 개와 기와 2억만 개가 사용됐다. 기둥에 쓰일 나무는 사천지방에서 조달된 것으로 運送에만 4년이 걸렸다. 전각의 받침대와 부조에 쓰인 돌은 50km 떨어진 채석장에서 날랐다. 돌 하나의 무게가 200톤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 당시 부역자들은 겨울철 길에 물을 뿌려 氷板을 만든 뒤 돌들을 날랐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자금성에는 皇帝 一家를 위해서 9천 명의 侍女와 1천 명의 內侍도 함께 살았다. 明나라가 亡한 후에도 청나라의 皇帝들과 皇族들이 起居하여 明.淸의 24명의 황제들이 500년간 거주하였다. '그는 또 수많은 뜰을 건너가야 한다. 그 많은 뜰을 다 지났다 해도 새로운 계단을 만나게 되고, 다시 뜰을 지나고 또 다시 다른 궁전을 만나게 된다. 끝없이 몇 백 년, 몇 천 년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황제가 파견한 使節은 결코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 권력의 고독을 다룬 프란츠 카프카의 <황제의 메시지>에 나오는 ‘그곳’은 바로 자금성이다. 8백 여 개의 건축물과 9천 여 개의 방이 있는 곳. 10m에 이르는 높은 성벽과 50m 너비의 거대한 해자로 에워싸인 그곳은 카프카의 말 그대로 드넓은 뜰과 수많은 건물로 지어져 빠져 나올 수 없는 迷路다. 자금성의 주위에는 해자와 장벽들로 둘러싸여 있다. 垓字의 넓이는 52m이며 깊이는 6m에 이른다. 해자에는 동서남북으로 해자를 가로지르는 4개의 다리가 있다. 궁궐 주의의 장벽의 길이는 3km에 이르며 높이는 10m나 되며 4개의 큰 출입구가 뚫려져 있다. 자금성의 지붕은 대부분 黃色 기와로 쌓여있다. 하지만 황실 書家의 지붕만은 검은 기와로 되어 있는데, 검은색은 물을 상징한다고 하여 검은 기와가 화재로부터 서가를 지켜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금성은 1900년에 일어난 의화단 운동으로 유럽 列强들에 의해 베이징이 점령당하여 크게 훼손되기도 하였다. 자금성을 가득 메운 紫色은 기쁨과 행복을 상징하는 빛깔이며, 동시에 宇宙의 중심인 북극성을 상징한다. 북극성은 하늘의 궁전이 있는 곳. 하늘의 아들 즉 천자인 皇帝가 사는 궁전 역시 그 하늘을 상징하는 紫色으로 지었다. 南과 北의 긴 축 위에 놓인 자금성의 건축물들은 모두 南向이다. 이는 남쪽의 陽氣를 받고 북쪽의 바람과 陰氣로부터 황궁을 보호하려는 의도다. 城 내부는 정무 처리를 위한 구역(외조)과 황제의 주거 구역(내정)으로 크게 나뉜다. 남쪽에 있는 외조는 자금성의 정문인 午門에서 시작된다. 북쪽 방향으로 태화문·태화전·중화전·보화전이 한 줄로 늘어서 있고, 그 동서에 문화전·무영전 등의 전각(殿閣)이 있다. 높이 35m, 면적 2377㎡의 웅장한 태화전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당나라 때에는 주요 의식이 치러지던 곳이다. 태화전의 앞마당에는 병사 9만 명이 모일 수 있는 넓은 뜰이 있다. 외조의 북쪽으로 내정이 펼쳐진다. 내정의 주요 건축물로는 건청궁·교태전·곤녕궁 등이 있다. 자금성은 철통같은 보안으로 황제를 지켰다. 바닥에는 걸을 때 경쾌한 발소리를 내는 특별한 벽돌이 갈려 있다. 이 벽돌의 효과는 음향만은 아니었다. 땅 밑에서 뚫고 올라올지 모를 침입자를 막기 위해 40여 장의 벽돌을 겹쳐 쌓았다. 성 내에는 後苑을 제외하고는 나무가 전혀 없다. 암살자가 나무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天子의 居處지만 어쩌면 금으로 둘러싸인 감옥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금성은 1949년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뒤에야 비로소 일반에 공개됐다. 과거의 궁전이라는 뜻에서 공식 명칭은 ‘고궁’이 되었다. 왕조는 사라졌지만 해마다 600~8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자금성은 여전히 중국 문화의 중심으로 위용을 떨치고 있다. (3) 자금성 탐방 소감 일단 자금성의 午門 앞에 서면 경복궁보다 2배나 넓은 광활한 面積 위에 설계기술이 없던 時節 좌우 대칭의 웅장한 목조건축물을 건립한 建築術과 더불어 아주 방대하고 九重宮闕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웅장한 木造建物과 石造物에 압도당하게 된다. 하지만 地下의 敵의 침투에 대비하여 바닥은 두꺼운 벽돌을 깔아놓고 침투한 적의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깨어진 바닥 벽돌들을 그대로 두어 다니기 불편하게 한 점은 맨땅이거나 薄石을 깐 경복궁보다 그 아름다움이 떨어지고 침투한 적이 숨을 곳을 없애기 위하여 나무 한 그루 없는 적막한 공간에서 一生을 살아야하는 황제들은 罪囚와 다름없는 생활이었다는 점에서 결코 情感있고 價値있는 건축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황제의 목숨을 노리는 敵들이 많았다는 방증이리라. 또한 우리 건축물보다 巨大하긴 하지만 자연스런 나뭇결을 살린 우리의 목조기둥에 비하여 매끈하게 도장 처리하여 고졸한 맛이 떨어지는 기둥, 藝術的인 우리의 丹靑에 비하여 단순 간결한 건물의 단청이나 십장생 등을 도안한 우리의 담장에 비하여 투박한 담장, 四角전돌로 빈틈없이 쌓아 올린 우리의 성벽에 비하여 벽돌로 쌓고 미장을 한 후 붉은 색을 칠한 성벽은 그 거대함에 비하여 格이 떨어진다고 보여지고 耐久性에 있어서도 화강석인 우리의 재료에 비하여 벽돌이 주재료인 자금성벽은 훨씬 못 미친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거대한 자금성을 보고 일부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자괴감을 갖거나 중국의 屬國이었다고 절망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럴 일이 아니라고 본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금성에 비교하면 우리 경복궁이 뒷깐 만큼도 못하다고 하는 소리를 하는데 정확히 자금성의 1/2이므로 결코 작은 면적이 아니며 더구나 위에 언급한 그 예술성에 있어서는 자금성보다 휠씬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지나의 자금성은 자금성대로 웅장함과 거대한 멋이 있지만 경복궁 등 우리의 궁궐은 우리의 궁궐대로 그들과 견줄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새삼 확신하게 되었다.
(4) 귀 국(歸國) 그렇게 동양사람, 서양사람, 혼혈인들, 그리고 독특한 衣裳의 소수민족들이 뒤엉킨 人波 속에서 전자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자금성을 둘러 보고나니 12:00. 空港으로 이동, 점심 후 15:30 탑승(한국시간 16:30). 날씨가 좋아 北京에서 천진에 이르는 支那의 산하가 뚜렷하여 디카에 담고 싶은데 이미 자금성 후원에서 배터리 기능 상실하여 눈으로만 찍어 둠. 黃海 상공에서 도달하여 보니 역시 오후의 햇볕에 빛나는 우리의 바다와 섬들의 모습, 아름다운 고국산천을 바라보며 인천공항에 도착(18:00). 주차비 24,000원, 공항도로 이용료 7,100원 지불하고 20:00시 家族의 품에 안기다.
배달9205/개천5906/단기4341/서기2008/6/15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1. 구글로 본 韓國 景福宮, 三島 皇居, 支那 紫禁城의 비교 2. 권좌에 오른 4년 후 1406년부터 14년간 자금성을 지은 명나라의 3대 황제 영락제 3. 자금성 전경 4. 자금성 측면 해자와 성벽을 따라 오문 쪽으로 진입
 
5. 오문으로 진입 전 6. 천안문을 보고 다시 오문으로 가다가 7. 양귀비 전각 앞에 전시한 화포 8. 안내도 9. 오문의 성루와 황족 10. 태화문
 
 
11. 태화전
 
12. 중화전
 
13. 중화전 주변 14. 보화전 주변 15. 교태전 16. 교태전 주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