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최근의 논쟁에 즈음하여 / 풀뿌리-
(1)
역사란 무엇일까?
실로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정의하여 왔지만
나는 단재 선생님이 가장 잘 정의하였다고 본다.
주지하다시피 선생은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 하였다.
그 처절한 투쟁의 결과물이 역사란 뜻이다.
다시 말해 승리자의 기록이란 뜻이다.
뒤집어 말하면 오늘날 기록으로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 대부분이
승리자에 의해 인위적인 작위(作爲)가 가해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역사를 파악하려면 그 기록 이면의 사정을
주도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승리자의 기록을 깡그리 뭉개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단지 그 기록들은 참고사항일 뿐이라는 이야기이고 성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역사 기록물, 유물 유적과 함께
인류고고학적 자료, 풍습, 전래설화, 언어의 비교분석 등
모든 요소를 종합하여
승리자의 기록인 역사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는 일은 보람 있는 일이리라.
단재 선생의 역사의 정의에는
이러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는 데는 이론(異論)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2)
우리는 흔히 어떤 기록물을 인용하여 마치 그것이 진리라도 되는 양
원문을 소중히 붙여놓고 자기주장을 한다.
자기의 주장 이외에는 그 어떠한 주장도 이단(異端)으로 정의하고
자칭 학자라는 본연의 체통도 분연히 떨쳐버리고
삼류 잡배의 언사로써 상대방을 능욕하기를 서슴치 않는다.
실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누가 누구에게[낫 놓고 ㄱ자를 가르친다]는 말인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언필칭 배달의 역사를 논하는 사학계의
거두라는 자의 연재 시리즈 제목임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서로 감싸 안고 나아가야 할, 일제의 식민사학에 맞서야 할
민족사학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더더욱 개탄스러운 일이고 민망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완고한 주장은 더더욱 허무맹랑한
국수주의자등의 궤변으로 터부시됨의 단초를 스스로 제공하는
제살 깎아먹기에 다름 아니다.
(3)
우리의 슬픈 민족사의 내력을 보면
그러한 다툼은 실로 더더욱 민망한 일이다.
[삼국 대륙기원설]이 진실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일이 아닌 것이다.
진실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아직 단언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
승리자의 기록인 정사에 언급되지 않았다고 정신병자적 취급을 하여서도 안 되고
철저한 자료의 검증 없이 아전인수 격으로 주장함은 더더욱 아니 될 것이다.
다만 그러한 토론 과정을 통하여
민족사의 합리적인 추적을 도출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지나(중국)의 중화사상에 의해 주변 민족의 역사가 왜곡되고
내부의 불교주의, 유교주의에 의해 반도중심으로 우리 스스로 왜곡하고
또 다시 일제의 치밀한 전략으로 기획된 조선사편수회에 의해 뒤틀어지고
그것도 부족하여 그 일제 식민사학의 거두라는 이들의 후예들이
해방 후 지금까지 당당히 살아남은 빈민족주의자들과 합세하여
정계, 관계, 학계, 문화계에 까지 이 땅의 기초로 자리함으로
끊임없이 스스로에 의해 왜곡, 굴절, 자기비하의 논리로 잉태하여
교과서에 수록됨으로써 그렇게 우리 역사를 배워 온 것이 어김없는 사실이리라.
이는 우리가 역사를 너무 실증적인 자료만
맹신하는데서 오는 오류가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은둔과 겸양을 좋아하고 친자연적인 재료로 건축(나무, 풀, 흙 등)을 하여온
우리 민족에게는 타민족의 역사에 비해 실증적인 자료가 부족하다.
기록보다는 깊은 내밀의 세계에서 수양함을 제일 덕목으로 알던
우리 선조들의 자료는 타민족에 비해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또한 사실이다.
그나마 약간 존재하던
유물, 유적, 기록물은 잦은 전란으로 전소되었다.
또한 역사상 2년에 1번꼴의 외침은
극소수로 남아 있던 민족 주체적인 고유의 역사서가 분탕되는바 되었다.
그리하여 외독(外毒)에 오염된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역사서만 전래케 하였다.
(4)
역사에는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고 본다.
역사 기록물, 실존하는 유물 유적에만 의존하는 실증적 접근법과
주변상황(인류고고학적 자료, 풍습, 전래설화, 언어의 비교분석, 유전자 분석 등)을
고려한 확증적인 접근법이 있는데
이 두 가지 중
실증이 아니면 미신으로 타부시하는 것은 민족사학계 내부에도 여전하다.
이는 말로는 민족사학자임을 자처하면서
식민사학의 영향을 받은 관변사학에 간접적으로 세뇌된 결과이다.
(5)
그러하니 이번에는 지나(중국)에서 우리의 역사를
깡그리 중화의 역사에 편입하려고 넘보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자초한 일은 아닐까?
그들은 수 년 전부터 엄청난 예산을 퍼부어가며 실증적으로
고구려의 역사를 지나 변방의 역사로 만들어가는 자료를 구축해가는 중인데
우리가 갑자기 전란이라도 일어난 듯 호들갑을 떤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평소부터 꾸준히 산개된 고구려의 자료를 성벽을 쌓듯 구축해 나가야 한다.
혹자는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마련이라며 애써 무시하려한다.
실로 개탄스러운 태도이다.
대저 역사가 한번 왜곡되면 뒤집어진 예는 드물다.
흩어진 고구려의 벽돌처럼 산개한 사료들을 그들이 주워 모아
지나(중국)식 만리장성 쌓듯 쌓고 난 다음
허물려 든다면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지금 그들은 고구려의 유물, 유적에 가리개를 씌워가며
지나(중국) 식으로 자료를 왜곡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실증적으로 산개된 고구려 자료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등산객의 등산화에 밟혀지고 시민 체육시설에 망가지는
가까이 있는 아차산의 고구려 보루유적부터,
그리고 남북한이 함께 손을 잡고 평양과 중원과 진파리를
답사하고 구축하고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일회성의 단말마에 그치지 말고 꾸준히 이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족 사학계. 아니 이 "아! 고구려"부터
소아적 편집적인 자기주장을 과감히 버리고
건전한 토론과 경청, 경시를 통하여
아를 버리고 타를 수용하여야 한다고 본다.
(6)
150억 년 전 우주가 탄생하고
46억 년 전 지구가 태어날 때 까지
아무도 인간이 이 세상에 출현할 줄은 몰랐다.
3억 년 전에 단세포 동물이 출현하였고
250만 년 전에 유인원이 출현하였으나 지금 우리와는 큰 관련이 없다고 한다.
50만 년 전에 호모에렉투스(네안데르탈인)가 나타났다가 전멸하고
3만 년 전에야 우리의 조상인 호모싸피엔스싸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먹거리를 찾아 유럽으로, 아시아로, 아메리카를
떠돌다가 수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고, 멸하고, 흥하고 부지하여 오고 있다.
그러할진대 니캉네캉하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150억년으로 중간기에 접어든 저 광대무변한 우주의 역사에서
겨우 250만년, 아니 3만 년 된 인간종자가 현재 하는 행위는 얼마나 우둔한가?
서기 원년에 2억이던 인간이 현재 60억이다. 곧 80억이 된다고 한다.
그러한 인간은 언제까지 지구의 주인으로써 존재할 것인가?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들도 현재 씨알머리 하나 없이 멸하고 말았다.
그 인간들이 먹고 마시고 살아가기에도 걱정이 태산인데
[삼국 대륙기원설]이 어떻고 [지나 역사 왜곡]이 어떻고
[왜 왕조의 진실]이 어떻고 [안파견 한인, 치우 천황, 자부선인]이 어떻고
[녹도문, 가림토문, 각필, 한글]이 어떻고는 어쩌면 사치요 우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에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러한 논쟁은 필요한 것이다.
은둔과 겸양을 좋아한 찬란한 민족상고사를 밝힘은
앞서 말한 첩첩산중의 우매한 문제를 산적한 인류미래를
위하여 절대 필요한 것이다.
(7)
역사도
사상도 종교도 문학도 민족도
승리만을 위해서 존재할 때
하늘은 가차 없이 철퇴를 내려 멸하였다.
즉 역사 하나만을 보더라도
박식한 역사가가 되기 이전에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한때 미당 서정주를 좋아했다.
그의 [귀촉도, 꽃밭의 독백, 푸르른 날, 국화 옆에서, 질마재 신화]등
미당의 시 줄줄 외우고 다녔다.
그러나 그가 친일 부역 작가였고,
징용을 찬양하고 천황찬가를 짓고
징병을 독려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훗날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명이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다.]라고 했다는 것을 듣고는
그와 결별하여야 했다.
이 경우 문학과 정치와 도덕을 분리한다면
나는 미당을 좋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왜 결별하여야 했는가?
문학도 사상과 행동과 가치관이 수반되지 않을 때
그의 주옥같은 시는 한낱 가면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역사를 논하는 자의
몸가짐, 마음가짐, 행동거지는 특히 중요하다고 본다.
즉 역사가 이전에 사람이 먼저 되라고 권면하고 싶다.
[낫 놓고 ㄱ자 가르치기]라든가, 내 주장 이외에는 모두[역사 사기꾼]으로
치부한다는 것은 역사가의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
그러하다 할지라도 그렇게 치부하는 용기를 좀더 누그러트린다면
더욱 가르치기가 돋보일 것이요, 사기꾼인 점이 더욱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은 우리 민족의 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광명이세(光明利世)의 정신을
항상 염두에 둔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본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와 성현의 가르침이 있다지만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살아간다는 사상만큼 위대한 사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특정집단의 이해만을 위해서만
사상, 종교, 민족, 국가가 존재하는 역사의 흐름에서
배달의 후손인 우리 역사가들은 인간세계의 광명을 위해서 살아가겠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지고한 사상을 가진 배달의
드넓은 시각을 가지고 우리 사학계에서만이라도 아집을 버리고
세계 미래를 밝히는 등불을 찾아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역사가 곧 미래이기 때문에...
배달9201/개천5902/단기4337/서기2004/8/14/한밭에서
이름 없는 풀뿌리 나강하(서)
덧붙임)
20010310 (KBS역사스페셜) | 역사만이 희망이다, 단재 신채호 |
인구증가
서기 1년에 전세계의 인구는 불과 2억5천만명 정도였으나 서기 1700년경에는 인구가 배가 되어 5억이 넘었다. 1850년 경에는 약 12억의 인구에 이르렀으며, 1975년에는 인구가 40억으로 증가되었다. 1987년 세계인구는 50억을 돌파하여 2000년에는 60억을 넘어 2025년에는 83억, 2070년에는 1백억명을 이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된다.
인 구 |
시 기 |
인구가 약 2배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 |
2.5억 |
기원초 |
약 1600년 약 200년 약 80년 약 45년 약 25년 약 25년 |
5.5억 |
1650년 | |
11.7 억 |
1850년 | |
20.2억 |
1930년 | |
40.3억 |
1975년 | |
60.0억 |
2000년 | |
83.0억 |
2025년 |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매년 7%,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와 나이지리아의 수도 라고스는 매년 14%의 인구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은 전체 인구의 70%가 도시에 살고 있으며, 인도는 인구의 20%가 대도시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0년에는 서울의 인구가 240만명에 불과했으나, 1997년말 현재 서울에 1,039만명, 수도권에 2,137만명이 살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인구는 총인구의 1/2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대도시 인구집중문제가 심각하다. 1997년말 현재 우리나라(남한)의 인구는 4천6백만명을 넘고 있으며 인구증가율은 0.9%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인구밀도는 454명/㎢로 방글라데시(836명), 대만(590명)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조밀한 국가이다. <중앙일보(1998.9.3)>
대국굴기(大國堀起 대전일보 06/12/28) 중국이 급기야 대국의 야망을 확연히 드러냈다. 대국굴기(大國堀起-대국의 흥성)라는 12부작 역사다큐멘터리를 통해서다. 중국의 관영중앙TV(CCTV)가 최근 방영한 이 다큐멘터리는 15세기 이후 500년간 세계를 주름잡았던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미국 등 9개 대국의 흥망사를 다뤘다. 시리즈가 회를 거듭할수록 중국사회는 서서히 들끓기 시작했다. 시리즈가 끝나자 시청자들로부터 재방송하라는 전화가 빗발쳤다. 결국 CCTV측은 이 프로그램을 재방송하기에 이르렀고, 특별 제작한 6장짜리 DVD도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영국편에서는 의회의 역할을 부각하고,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에 대해서는 불굴의 모험정신으로 해양시대를 개척했다고 칭송했다. 독일은 의무교육과 학문을, 미국은 언론자유를, 일본은 서구의 제도와 가치를 수용한 것이 각각 대국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소개했다. 러시아편에서는 낡은 사회주의를 새롭게 할 기회를 잃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처지가 되었다며 중국의 개방이 옳은 길이었음을 은유적으로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중국이 대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의회, 교육, 언론자유 같은 이른바 서구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존중하고, 이들 국가들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눈과 귀를 의심했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사상의 핵심인 마르크스와 마오쩌둥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제국주의 침략이나 인민침탈 등 그동안의 교과서적 표현을 버리고 과거 강대국의 흥성에서 중국이 현실적으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알려주고자 한 의도를 강하게 내비쳤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중국지도부의 의중이 다분히 실려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이 지난 2003년 11월부터 15세기 이래 세계 주요 9개국 발전사를 주제로 집단학습을 해왔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 프로그램은 후진타오 주석의 외교참모인 왕지쓰 국제관계학원장이 총지휘하고 자오화융 CCTV사장이 직접 제작을 맡았으며 제작기간만도 3년이 소요됐다고 한다. 정말 놀랍다. 대단한 나라라는 탄성과 함께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한국은 중국이 일어설 때마다 피해를 본 역사적 경험이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은지 정치지도자들에게 묻고 싶다. 만일 대국굴기의 국내 방영이 가능해진다면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에게 가장 먼저 시청을 권하고 싶다. 吳漢鎭<사회부장> 2006/12/28 09:3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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