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洪益參考資料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1 : 三一神誥(삼일신고)]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7. 12:31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1 : 三一神誥(삼일신고)]


 

‘한’사상으로 본 「檀君神話」  고려대 설  중 환


<목 차>

1. 머릿말

2. 「三一神誥」의 理解와 지금까지의 硏究

3. ‘한’사상으로 본 「檀君神話」

 (1) 性通: 一神降衷과 性通光明

 (2) 功完: 在世理化와 弘益人間

4. 맺는 말


1.머릿말

우선 안호상님의 다음 글을 한번 읽어 보기로 한다.


오늘날 세계 온 인류는 자주, 독립적 개인과 민족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이 자주, 독립성은 자기 민족의 주체성 확립에서 되며, 또 이것은 자기 민족의 고유한 正統的 종교와 철학에서 되는 것이다. 이 정통적 종교와 철학인 단군 한배검(檀君王儉)과 花郞의 종교와 철학과 또 이것에 관한 책들이 엄연히 있는데 그것은 곧 단군 한배검이 손수 남기신 세‧한얼 말씀「(三一神誥)과 天符經, 또 뒷 시대에 지어낸 事記, 理大全 및 會三經 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종교가들과 철학도들이 우리의 이 정통적 종교와 철학의 연구는 너무나 소홀하니, 참으로 한심하고 통탄할 일이다.1)


이 글은 꽤 오랜 전에 쓰여진 것이다. 이 후 벌써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이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세상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계화다 뭐다 해서 온 나라 집집마다 영어하는 소리가 드높아가는 이때에 더욱 유효하다고 할 것이다. 지금은 분명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변해가는 세계화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동서냉전의 이데올로기전이 끝나고 민족주의가 부활하는 때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 세계화와 지방화의 동시진행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세계화와 지방화는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지, 지방화 없는 세계화나 세계화 없는 지방화는 그 존재의 존재를 위태롭게 할 뿐인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시대에 우리 국문학 작품도 우리 사상과 철학으로 해석하는 작업이 절실함을 깨닫고 이미 몇 편의 논문에서 이를 시험해 보았다. 본 논문도 그러한 취지에서 쓰였음을 우선 말하고 싶다. 혹자는 여기서 ‘한’사상이나 「삼일신고」, 「한단고기」 같은 책자를 운위하면, 아직 우리 학계에서는 이를 이상하게 보는 듯한 시선도 없지 않음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서양이론도 부지런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이런 문학연구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필자의 이런 작업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여기서 다루는 「단군신화」는 우리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이 신화 속에는 우리의 가장 고유한 사상과 정서가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신화를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고유한 경전인 「천부경」이나 「삼일신고」나 「366사」등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온당한 방법일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종교경전에는 그 민족의 철학과 사상을 체계화한 것이므로, 우리 고유 경전에는 우리의 고유한 사상의 원형이 가장 구체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삼일신고」의 이론을 가지고 우리 민족 시원의 신화인 ‘단군신화’를 해석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한다. 특히 본고에서는 환웅천왕과 단군왕검의 일생을 「三一神誥」의 一神降衷, 性通光明, 在世理化, 弘益人間의 과정에 대입하여 해석함으로써, 이들이야말로 한국의 가장 이상적인 원형적 인간상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한국문학에 나타난 여러 인간상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를 앞둔 현대에 살면서 필자는 우리 것만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어느 쪽의 것이 더 우수하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다만 어느 것이 우리 문학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가장 적합한가를 말하고 싶다.

일찍이 신라의 崔致遠선생은 당시 세계의 모든 정신이었던 儒佛仙이 우리의 玄妙之道 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필자는 유불선은 물론 오늘날의 서양 基督敎思想까지도 우리 사상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는 우리의 현묘지도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이 다. 다른 말로 바꾸면, 우리 사상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互換性이 풍부한 사상이란 말도 된다. 앞으로의 세계화시대에는 호환성이 풍부한 사상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한’사상연구를 더욱 심화시키고, 이를 우리 것으로 확인해 두는 작업이 시급하다 할 것이다.

‘단군신화’에 대한 자료는 「삼국유사」설화를 주 text로 삼고, 필요에 따라 「한단고기」에서 부분적으로 인용할 것이다.


2. 「三一神誥」의 理解와 지금까지의 硏究

「삼일신고」는 「천부경」과 「366事(參佺戒經)」와 더불어 우리 나라의 고유한 경전이다. 혹자는 이 같은 경전들을 후대에 조작된 僞書라거나, 아니면 현대사회에서는 고리타분한 것으로 거들떠볼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이를 거들떠볼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 논문 역시 더 이상 거들떠볼 가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고 논의를 계속하기로 한다.

「삼일신고」의 내용을 가장 적절히 설명하고 있는 말은, ‘執一含三, 會三歸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풀이하면 ‘하나 속에 셋이 있고, 셋이 모이면 하나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하나’는 곧 一神降衷이며, ‘셋’은 곧 性通光明‧在世理化‧弘益人間이다. 따라서 일신강충을 이루게 되면 성통광명‧재세이화‧홍익인간을 할 수 있게 되고, 거꾸로 성통광명, 재세이화, 홍익인간을 하면 다시 본래 바탕인 일신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곧 하나에서 셋으로, 셋에서 하나로 돌고 도는 循環의 眞理를 이 책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數로 표시하면, 三이 一이 되고, 一이 三이 되는 원리로서, 「삼일신고」의 ‘三一’의 의미이다. 이 말은 三인 인간이 一인 신의 영역에 들어감을 뜻한다. 그리고 ‘神誥’의 의미는 신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서 합하여 ‘삼일신고’인 것이다.2) 물론 「삼일신고」에는 성통과 공완만 나와있다. 그러나 이를 「한단고기」의 天地人經을 참고하여, 성통을 일신강충과 성통광명으로, 공완을 재세이화와 홍익인간으로 분석한 것은 최동환님의 큰 업적으로 보고, 본고에서는 그의 견해를 따르기로 한다.3)

여기서 중요한 것은 三이 一이 되고, 一이 三이 되는 과정의 이해이다. 「삼일신고」에서 일이 삼이 되는 과정은 性通이라 하고, 삼이 일이 되는 과정은 功完이라 한다. 그리고 이를 「천부경」과 연관해서 말하자면, 성통의 과정은 ‘一始無始一’에서 ‘一終無終一’까지의 과정이며, 공완의 과정은 거꾸로 ‘一終無終一’에서 ‘一始無始一’까지의 과정이다.

그러면 성통과 공완을 좀더 살펴보고 본문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성통은 하나님의 세계에 접근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내부에 하나님이 내려와 계시니 一神降衷이요, 자신의 중앙의 眞性이 곧 하나님이니 진성을 통하면 하나님의 광명에 접근할 수 있어 성통광명이다. 따라서 性通은 원래의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의 참됨임을 깨달아 하나님의 참됨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서,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는 것이니 자기완성이다. 따라서 성통은 一神인 眞性과 통했다는 말로, 쉽게 말해서 인간이 스스로 神임을 아는 과정을 말한다. 따라서 성통광명을 이룬다는 것은 인간의 자기완성으로서, 스스로에게서 일신을 찾는 과정이다.4) 이것을 불교에서는 覺이라 하고, 기독교에서는 聖靈을 받았다라 하고, 유학에서는 克己라 한다.

대부분의 종교는 이 단계를 최종 목표로 하고 있으나, 「삼일신고」는 이를 하나의 과정으로만 규정하고 있는 점에서 중요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삼일신고」 제3장 天宮에서 ‘하나님이 계시는 천궁에 이르는 길에 오로지 성통을 하고 功完을 한 자라야 천궁에서 영원한 쾌락을 누릴 수 있다’5)고 명시한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성통은 공완을 하기 위한 준비 과정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성통을 한 뒤, 공완을 이루기 위해서는 천하를 위해 재세이화, 홍익인간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완은 곧 재세이화·홍익인간으로서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 자기 완성을 이룩한 사람이 자신이 되찾은 하나님의 참됨을 가지고 모든 인간이 하나님이 계신 하늘의 천궁에서 많은 신령님과 철인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생활을 땅 위에서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지혜와 힘을 기울이는 것이니, 이는 자신이 되찾은 하나님의 참됨을 세상에 실현하는 것으로서 곧 자기실현이다. 그러므로 공완은 인간을 최대 최상의 경지인 하나님의 경지로 이끌어 올리는 것이며, 인간이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이며,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즐거움을 영원히 누리며 살 수 있게 하는 唯一無二한 길이다.6) 따라서 功完이야말로 재세이화와 홍익인간의 정신이며, 지상에 天國을 건설하려는 이상이며,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佛國土와 大同世界를 건설하고자 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이상이기도 하다.

이제까지의 설명에서, 우리는 「삼일신고」의 핵심이 일신강충 · 성통광명 · 재세이화 · 홍익인간임을 알 수 있다. 성통은 자기 완성으로서 스스로에게서 일신강충과 성통광명을 찾는 과정이며, 공완은 천하를 위해 재세이화 홍익인간을 하는 과정이다. 이 둘은 서로 맞물려서 영원한 순환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것을 ‘한’사상이라 한다.

본고에서는 ‘단군신화’의 환웅천왕과 단군왕검의 일생이 「삼일신고」의 성통공완의 정신과 일치한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한다. 만일 이것이 증명된다면, 우리의 고유한 이상적 인간상은 바로 「삼일신고」의 정신을 구현한 환웅천왕이나 단군왕검과 같은 삶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환웅천왕이나 단군왕검은 과거의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가 추구해 가야할 하나의 전형적 인간형으로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단군신화」에 대해서는 역사학적, 민속학내지는 인류학적, 고고학적, 사회경제사적, 문학적 연구 등 전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이 사실이다. 이는 이 신화가 씨족적으로는 祖上神話요, 역사적으로는 建國神話이며, 종교적으로는 山神神話가 되기 때문이다.7) 그러나 「단군신화」에 나타나는 환웅천왕이나 단군왕검 개개인의 생애를 ‘한’사상으로 연구한 구체적인 논의는 아직 보이지 않는 듯하다. 다만 환인, 환웅천왕, 단군왕검의 관계구조를 三一的으로 분석한 것이나, 이의 정신을 「삼일신고」적으로 언급한 것들은 간혹 보이고 있다.

安浩相은 「배달의 宗敎와 哲學과 歷史」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위대한 인간 단군의 탄생은 거기에 君,師,父 삼위일체의 신격을 겸비하고 있으며, 그러한 삼위의 공동체로서 단군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단군신화의 삼일개념이 존립하고 있다. 환인은 父요, 환웅은 師요, 환검은 君이니, 이 3신은 한얼로서의 천신인 것이다.8)


그는 여기서 환인, 환웅, 환검을 君師父 삼위일체의 신으로 파악하여 「단군신화」를 파악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른 글에서도 한임과 한웅과 한검 등 3신을 한얼로 보고 이를 한얼이치로 분석하였다.9)

정진홍은 「단군신화」가 어떻게 종교적인 것으로 정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삼일신고」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고 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10)

이을호 역시 三一의 논리로 「단군신화」를 분석한 바 있다. 그는 「단군신화」가 會三歸一의 원리로 짜여져 있으니, 셋은 하나로 돌아가는 신화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셋은 「神事記」에 의해 造化主인 환인, 敎化主인 환웅, 그리고 治化主인 단군이라 하여 이들을 三神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의 내용을 유불선 삼교로 나누어 역시 하나로 돌아가는 회감귀일의 논리임을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귀일사상은 중국의 분화사상과 달리 한사상의 특징이라고 하였다.11) 그리고 그는 다른 논문에서 「단군신화」를 ‘한’사상으로 분석하였으니, 對數的 또는 全數的 수식을 통하여 부자, 군신, 부부의 三綱이 ‘한’사상 속에 내포되어 있다고 하였다.12) 이는 단군교에서 말하는 대로, 「삼일신고」적으로 우리 조상신들을 해석한 것이라 할 것인데, 「삼일신고」의 정신대로 3이 1이되고, 1이 3이 되는 원리에 의해 우리 조상신들을 자리매김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환인, 환웅, 단군왕검의 생애를 구체적으로 따로따로 논하지는 않았다.

이은봉은 「단군신화」 가운데 환인, 환웅, 단군이 셋이면서 실은 하나라는 관념이 나타나고 있어 우리를 당황시키고 있다13)고 한다. 그리고 三,一의 관계를 體와 用의 관계로 보고, 한얼사람주의는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의 종합적인 전제요 원리가 된다고 하면서도, 이은봉 역시 환웅과 단군왕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구체적인 분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외에도 「단군신화」를 재세이화나 홍익인간 등 부분적으로 ‘한’사상으로 본 논문들은 있으나, 환웅천왕이나 단군왕검 개개인의 구체적 일생에 대한 연구와는 거리가 멀다.

살펴본 대로, 이전의 연구자들이 「단군신화」에 三一의 원리를 적용하면서도, 환웅천왕이나  단군왕검의 개인적 생애에 대한 성통과 공완의 과정을 설명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이유는 「삼일신고」에 나타난 성통과 공완의 원리을 「天地人經」의 일신강충, 성통광명, 재세이화, 홍익인간의 개념으로까지 확대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생긴 한계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삼일의 원리를 「천지인경」과 연결시킨 최동환의 업적은 아주 큰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서는 앞에서 말한 대로, 그의 이론에 많이 힘입었음을 거듭 밝혀 둔다.


3. ‘한’으로 본 「檀君神話」

여기서는 먼저 환웅천왕과 단군왕검의 일생이 우리의 고유경전인 「삼일신고」의 원리, 즉 성통과 공완의 과정과 어떻게 일치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단군신화」와 「삼일신고」의 관계에 대해서 이은봉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환인, 환웅, 단군을 이렇게 내면화시키면 이들은 서로 상호침투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삼위일체가 지니고 있는 비밀에 관심을 보이고 환인, 환웅, 단군이 셋이면서 실은 하나라고 파악한 역사적 실례는 渤海 高王(휘는 大祚榮 700?-719)이 지었다고 하는 「御製삼일신고」와 盤安郡王 大野勃이 지었다고 하는 「三一神誥序」에서 보인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문헌적 가치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지만 단군신화의 삼위사상에 대해 관심을 보인 最古의 책으로 보이므로 그런 면에서 한번 검토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14)


여기서 이은봉은 환인, 환웅, 단군이 셋이면서 하나라는 사실을 「삼일신고」로 검토해 볼 만한 거치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앞에서 말한 대로 이들의 三一的 관계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를 「삼일신고」적으로 분석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머리말에서 밝힌 것처럼 이들의 생애를 3.1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檀君神話의 循環構造에 대한 力學的 考察」15)에서 「단군신화」에는 단군왕검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환웅천왕과 단군왕검의 두 이야기가 복합된 하나의 신화임을 말하였다. 즉 「단군신화」는 환웅천왕의 이야기와 단군왕검의 이야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환웅과 단군왕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삼일신고」에 의해 함께 풀이할 것이다.


(1)性通: 一神降衷과 性通光明

「단군신화」는 환웅천왕과 단군왕검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반부는 환웅천왕의 이야기요, 후반부는 단군왕검의 이야기다. 그런데 「단군신화」에는 환웅천왕은 물론 단군왕검에 대한 일신강충과 성통광명에 대한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지 않다. 왜 그런지 우선 신화의 전반부를 읽어 보기로 한다.


옛날 桓國의 庶子 桓雄이 늘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의 일을 貪求하였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굽어 살펴 세가지가 바른 太白山 주변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음을 알고는, 天符印 3개를 주고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턱 神檀樹 아래로 내려와 그곳을 神市라 하였으니, 그가 이른바 桓雄天王이었다. 風伯, 雨師, 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人命, 질병, 형벌, 선악 등을 맡아 보살피되, 무릇 인간의 3백 6십여 가지의 일을 두루 맡아 다스렸다.

이때 한 곰과 한 범이 한 동굴 속에서 함께 살면서 항상 神人 환웅에게 빌어 사람으로 탈바꿈하기를 원하였다. 신인은 곧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人形을 얻게 되리라」고 일러 주었다. 곰과 범이 이것을 얻어 먹고 忌한 지 三七日만에 곰은 여자의 몸으로 변했으나 범은 잘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熊女는 더불어 혼인할 사람이 없으므로 매양 신단수 밑에서 잉태할 수 있게 하여 줄 것을 빌었다. 환웅이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뒤 혼인하여 아들을 낳아 檀君王儉이라 불렀다.16)



이 신화 초반부의 가장 큰 특징은 천신(天神), 곧 하느님의 강림이다. 즉 환웅천왕은 태백산의 꼭대기에 있는 神檀樹밑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이 삼위산과 태백산은 妙香山 또는 白頭山이라는 학설이 있으나, 그것이 어느 산이든 그 산은 고대인의 사고에서 천상계와 지상계를 잇는 우주의 중심축이요, 그 산의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는 오늘날의 부락제 神壇의 神木과 같은 山頂神壇이다.17) 이 산과 신단수는 높이 솟아 있어서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고 믿는 거룩한 산, 곧 宇宙山에 대한 신앙과 우주의 중심을 표시하는 神木信仰을 표현하고 있다. 하늘과 땅이 만나고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거룩한 곳이 宇宙山이요, 宇宙木이다.18)

곧 桓雄天王은 하느님의 아들로 하늘과 땅이 만나고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거룩한 우주산과 우주목을 통하여 땅으로 내려왔다. 「삼일신고」에서 일신강충한 신이 우리 뇌의 가운데에 내려와 계심을 말한다. 그런데 환웅천왕은 천신의 아들이므로, 그 역시 하늘의 신이다.  따라서 환웅천왕은 이미 신이므로, 그 이미 스스로 일신강충하고 성통광명한 존재임이 된다. 그러므로 신화에는 환웅천왕의 일신강충이나 성통광명에 관한 서술이 없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단군왕검은 환웅천왕이 일시 사람으로 화하고, 또 곰에서 여자로 변한 여자 사이에서 태어났다. 환웅천왕이 일시 사람으로 화한다는 것은 肉身化로, 육신화는 초월적인 신이 육신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초월자의 육신화의 경향은 통치자의 신격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대체로 제정일치시대에는 이러한 종교적 육신화의 현상이 나타났다고 보여진다.19)

곧 단군은 신과 동물 사이에서 태어난다. 그러므로 「단군신화」에 단군왕검에 대한 성통의 기술이 없다는 것은 조금 이상하게 여겨진다. 단군왕검은 천신인 환웅을 아버지로 두었지만, 어머니는 곰에서 사람으로 변한 熊女였기 때문이다. 즉 그는 반쪽 신이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는 천신이지만, 어머니는 천신이 아닌 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 신화에는 단군왕검에 대한 일신강충이나 성통광명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왜 그랬을까? 이는 아마도 단군왕검이 태어나면서부터 일신강충하고 성통광명한 존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일신강충하고 성통광명한 이야기가 반드시 서술되어야 이 이야기가 「삼일신고」의 논리에 맞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단군왕검이 완전히 일신강충하고 성통광명한 존재가 되려면, 그의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조차도 완전히 일신강충하고 성통광명한 존재여야 한다는 가정이 성립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단군왕검은 태어날 때부터 완전히 일신강충하고 성통광명한 존재라는 것이 무리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서 필자는 웅녀 역시 일신강충하고 성통광명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단군왕검의 부모 모두가 성통광명한 존재라면, 양반의 아들은 양반이 되듯이, 단군왕검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성통광명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는 그의 어머니가 어떻게 완전하게 일신강충하고 성통광명한 존재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완전한 천신이기 때문에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신강충이란 一神인 하나님은 움직이지 않는 가운데 하늘과 땅과 인간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니,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인간에 나뉘어 존재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나뉨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존재하시며, 인간의 性에서 하나님의 나뉨을 찾을 수 있으니 곧 性의 중앙에 존재하는 眞性이다. 진성은 인간의 腦에 존재하며, 진성은 곧 하나님의 나뉨이며, 하나님의 子이니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인간은 진성이 있어 하나님의 아들이며, 모든 인간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다. 이것을 하나님이 인간의 중앙에 내려와 계신다는 의미로 일신강충이라 한다.20)  「삼일신고」에서는 이를 ‘스스로의 본 바탕에서 씨앗을 구하라. 너의 뇌에 내려와 계시느니라’라고 말하고 있다.21) 그러므로 일신강충이란 한얼님인 一神이 인간의 중심에 내려와 계신다는 말이다.

그리고 성통광명은 일신강충한 인간이 스스로 광명한 일신을 찾아가서 그와 하나가 되는 과정이며, 이것은 곧 자기완성의 길이기도 하다. 즉 眞性은 움직이지 않는 가운데, 하늘과 땅과 인간의 중심이 되는 일신이 인간의 중심에 내려와 계심이니, 인간은 스스로의 중심에서 우주의 절대자이며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 性通이란 性의 중심인 眞性에 도달하는 것이며 光明은 하나님의 모습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광명에 도달하는 것이 곧 성통광명이며, 이것이 곧 道通이다.22) 땅의 사람이 하늘의 신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성통광명한 존재가 되어야한다.

이제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단군신화」에서 곰이 사람이 되는 이야기를 우선 살펴보고나서 논의를 계속하기로 한다.


이때 한 곰과 한 범이 한 동굴 속에서 함께 살면서 항상 神人 환웅에게 빌어 사람으로 탈바꿈하기를 원하였다. 신인은 곧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人形을 얻게 되리라」고 일러 주었다. 곰과 범이 이것을 얻어 먹고 忌한 지 三七日만에 곰은 여자의 몸으로 변했으나 범은 잘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23)


이 부분은 곰이 사람이 되는 부분이나, 곰이나 범 같은 존재가 어떻게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잘 암시해 주는 대목이다. 이는 통과제의(通過祭儀)이면서, 동시에 「삼일신고」적으로 말하자면 일신강충하고 성통광명하게 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여기의 주된 이야기는 곰이 사람이 되는 이야기이다. 곰은 문자 그대로는 동물이다. 동물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는 한 차원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 공식을 사람에게로 환원하면, 곰처럼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신령한 참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삼일신고」적으로 말한다면, 스스로 아직 일신강충한 존재임을 모르는 존재에서 스스로가 신이 내려와 계시는 거룩한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아 성통광명한 신적인 존재가 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흔히 인간은 동물과 신과의 중간적 존대라 이른다. 그러므로 인간이 신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호랑이나 곰 같은 동물성을 극복해야 한다. 이것이 성통광명이다. 말에 조금 비약이 있는 듯하지만,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에 보면, ‘한 곰과 한 범이 한 동굴 속에서 살면서 항상 神人 환웅에게 빌어 사람으로 탈바꿈하기를 원하였다’고 나와 있다. 여기서 곰과 범은 곰 같은 사람과 범 같은 사람으로 해석해도 문학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들이 곰이나 범 같은 사람이란 것은 아직 이들이 스스로 일신강충한  존재임을 몰랐다는 말이니, 즉 스스로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임을 알지 못한 상태를 암시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동물들이 사는 어두운 동굴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언제인가부터 환웅천왕에게 사람으로 탈바꿈하기를 원하였다. 이는 이들이 동물 같은 생활에서 사람 같은 생활을 하기를 원한 것의 은유적 표현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곰이나 호랑이 같은 미개한 사람들이 스스로에게도 하나님이 내려와 계심을 알고 신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원한 것이다. 그 신 같은 사람은 환웅천왕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이것은 곰이나 범에게 일신이 강충한 것을 깨달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통광명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에 신인 환웅천왕은 성통광명을 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였다.

첫째는 쑥과 마늘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쑥은 지금도 藥用으로 중요시되거니와 고대의 우리 선조는 이것을 神草視하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마늘도 神異한 식물로 생각하였던 모양이니 지금도 그것은 우리의 음식생활에 극히 중요한 것이다. 인류가 식용하는 이러한 중요한 식물을 먹으면 獸類가 인류로 변할 수 있다고 고대인은 생각하였다.24) 그리고 미시나(三品彰英)은 쑥은 일반적으로 여성과 깊은 관계를 갖는 종교적인 약초라고 말하고 성년식이나 혹은 成巫式 등에서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交靈에 의례 때 단식, 자극물의 음식, 어둠 속의 幽閉 등과 함께 널리 행해졌던 것이라 한다.25)

둘째로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고 했다.

지모신을 상징하는 웅녀는 햇빛을 못 본체 동굴 속에 삼칠일을 머문 끝에 인간으로 재생했다. 빛은 생명을 뜻하는 보편적인 종교적 상징이다. 그러므로 빛 없는 동굴 속에 있다가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는 것은 일단 죽어서 창조 이전의 모태로 들어갔다가 다시 창조되어 재생한다는 穀神의 신비에 대한 표현이다. 그리고 곰에서 여인으로 변했다는 것은 새로운 존재로 질적 변화를 가져온 종교적 체험을 상징한 것이요, 종교적 이니시에이션을 표현한 이야기다.26) 특히 유폐는 이니시에이션에서 중요한 몫을 하였던 것 같다. 「단군신화」에 원류를 두고 있는 「주몽신화」에서도 熊神淵의 여인이 銅室 가운데 유폐되어 있다. 즉 유폐가 神子出誕의 전제조건이 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27)

결국 환웅천왕이 곰과 호랑이 같은 사람들에게 마늘과 쑥을 주고 백일을 견디라고 한 것은, 결코 그 일이 쉬운 게 아님을 뜻한다. 이렇게 그것을 고행의 의미로 주었다는 것은 마늘과 쑥이 먹기 어려운 식물임을 암시한다. 뿐만 아니라 햇빛을 보지 말라고 했으니, 어둠을 견디라는 말이다. 원시인들에게 있어서 어둠은 하나의 공포이며 죽음이며 절망이었다. 쓰고, 맵고, 답답한 어둠, 이것을 견디는 자만이 인간이 될 수 있다.28) 여기서 인간은 물론 동물 같은 인간에서 신과 교통할 수 있는 성스러운 인간임을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국 진리는 단순한 노력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엄격한 연금술적인 수업이고, 그렇게 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는 특별한 체험임을 알게 한다. 환웅천왕이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보낸 것도 그런 뜻으로 이해되며, 「태백일사」가 쑥을 끓여 먹으면 냉증을 치유하고, 마늘은 구워서 먹으면 魔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이 점과 관련된다. 쑥과 마늘이 수도자의 필수품임을 「산해경」에 보이는 巫女의 기록에 관한 기록, 또 피라밋의 刻文에 마늘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29)

이제 웅녀는 세 가지의 고난을 이겨내고 성통광명한 존대로 다시 태어났다. 즉 그녀는 동물적인 것을 버리고 신적인 존재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삼일신고」적으로 말하면 성통광명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이는 「한단고기」에서 환웅천왕이 곰과 호랑이에게 ‘너희들이 이를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저절로 참된 평등을 이루어 만물을 구제하고 쉽사리 사람까지 교화하는 도리를 아는 大人이 될 수 있을 것이다.30)는 대목에서, 우리는 웅녀가 성통광명한 대인적 존재임을 한번더 확인할 수 있다.

이제 그녀는 천신인 환웅천왕과 결합하여 새로운 창조에 동참하였으니, 단군왕검을 낳은 것이 그것이다. 이를 유동식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창조는 하늘의 신과 땅의 인간의 융합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러한 융합을 위하여는 먼저 하느님이 강림했어야만 했고, 인간은 자기부정을 매개로 성화되지 아니하면 아니 되었다. 곧 웅녀의 경우와 같이 죽고 다시 사는 종교적 이니시에이션을 경과하지 아니하고는 거룩한 신과 결합할 수 없다. 이러한 신인융합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이 창조되어 단군이 태어났고,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인 나라가 창조되었다.31)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 단군왕검은 본래 성통광명한 존재인 환웅천왕을 아버지로 또 원래 곰 같이 미련하고 어리석었지만 어둠과 씀과 매움을 이겨내고 성통광명하게 된 웅녀를 어머니로 두었기에, 그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성통광명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본 신화에서는 환웅천왕과 마찬가지로 단군왕검에 대한 일신강충과 성통광명의 모티브가 나타나 있지 않음을 알 수 있게 된다.


(3) 功完: 在世理化와 弘益人間

재세이화란 세상에서 삼라만상의 氣를 理로 변화시켜 理化世界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리고 홍익인간이란 스스로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룬 재세이화를 남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이다. 이것이 6,000년 전 배달민족이 건국하면서 내세운 國是인 것이다.32)

여기에서 환웅천왕과 단군왕검의 재세이화하고 홍익인간하는 사업을 각각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환웅천왕은 태어나면서부터 일신강충하고 성통광명한 존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에 나와서 재세이화와 홍익인간의 사업을 펼쳐야 한다. 왜냐하면 「삼일신고」에 의하면 성통을 한 사람은 공완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먼저 환웅천왕이 지상에서 한 사업을 신화에서 우선 살펴보기로 한다.


옛날 桓나라의 庶子 桓雄은 늘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의 일을 탐내어 구하였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굽어 살펴 三危山과 太白山 주변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음을 알고는, 天符印 3개를 주고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턱 神檀樹 아래로 내려와 그곳을 神市라 하였으니, 그가 이른바 桓雄天王이었다. 風伯, 雨師, 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人命, 질병, 형벌, 선악 등을 맡아 보살피되, 무릇 인간의 3백 6십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였으니, 세상에서 이치로 다스렸다.33)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즉 환웅은 ‘늘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의 일을 탐내어 구하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그가 앞에서 천신의 아들로서 성통광명한 존재라고 하였다. 즉 그는 이미 일신강충과 성통광명의 과정을 끝낸 哲人이기에, 그가 다음 단계로서 그가 할 일은 「삼일신고」에 의하면 재세이화와 홍익인간임이 분명해진다. 따라서 그는 늘 하늘 위, 즉 신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래, 즉 인간세계에 뜻이 있었던 것이다. 이 뜻은 그가 인간세계에서 재세이화와 홍익인간을 이루려는 뜻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야 그는 「삼일신고」의 정신을 다 이루는 것이다.

이제 그의 아버지의 행동을 보자. 그의 아버지 역시 아들이 성통광명한 존재임을 알기에 그가 다음 할 일은 재세이화와 홍익인간임을 알고 있었으니, ‘여러 곳을 굽어 살펴 삼위산과 태백산 주변이 널리 인간을 이롭세 할 수 있는’, 즉 홍익인간할 수 있는 곳임을 알고 그곳으로 가서 다스리게 했던 것에서 이런 사실을 읽을 수 있다. 아들과 아버지의 뜻이 서로 일치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삼일신고」의 정신을 이어받은 ‘한’민족이기 때문이다.

이때 환웅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천부인 3개는 무엇일까?

일본에 三種의 神器가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최남선은 천부인 3개를 추측하여 巫具인 鏡, 劍, 그리고 冠이라고 하였다.34) 이는 지금도 우리 무속에서 무당의 권능을 세습할 때 물려주는 巫具로 그 잔영을 남기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이른바 명두라고 하는 거울, 칼, 방울이라고 한다.35) 장덕순은 이를 神, 人間, 自然의 三界를 다스리는 제왕의 권위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36)

이를 보면 아직도 천부인 3개에 대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 진짜 천부인 3개는 무엇이며,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

천부인 3개는 뒤에 나오는 風伯, 雨師, 雲師의 이야기와 연관지어 생각해야 하는데, 이는 「한단고기」 태백일사 삼한광경본기 제4의 첫머리에 나오는 다음 기록을 검토해 보면, 모든 의문이 저절로 풀리게 된다.


풍백은 천부를 거울에 새겨 앞서가고, 우사는 북을 치면서 돌아가며 춤을 추고, 운사는 佰劍으로 호위하였으니, 대저 천제가 산에 임하실 때의 의식은 이처럼 장중하였다.37)


여기서 보면 우리는 천부인 3개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곧 풍백, 우사, 운사가 천제가 산에 임할 때에 가지고 가던 ‘거울, 북, 칼’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최남선은 ‘거울’과 ‘칼’은 확실한데, 나머지 하나가 ‘鈴, 鼓, 冠’ 중의 ‘관’이라고 하였는데,38) 여기 「한단고기」를 보면, ‘구슬’이나 ‘모자’가 아니라, ‘북’이 확실하다. 구슬은 물론 아니다. 그러면 여기서 거울, 북, 칼의 의미는 무엇일까?

최동환은 이 거울과 북과 칼을 성통광명, 재세이화, 홍익인간의 상징으로 보았다. 필자도 이 의견에 전적을 동감한다. 그는 거울은 인간이 자신의 본 모습을 眞性을 통하여 발견한다는 행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거울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또한 재세이화란 대자연의 호흡을 조절하여 대자연으로부터의 피해를 없애고, 나아가 대자연을 인간의 복지와 행복된 생활을 위하여 활용하는 것이니, 규칙적을 울리는 북소리는 바로 이런 대자연의 호흡을 조절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끝으로 칼은 자유와 평등 아래 하나로 뭉쳐진 모든 사람들의 뜻을 상징한다고 하였다.39)

결국 환웅천왕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거울과 북과 칼은 세상에 나가 사람들을 성통광명하게 하고 재세이화하고 홍익인간하는 물건들이다. 이로 미루어 환웅천왕은 아버지로부터 천부인 3개를 받으면서 땅에서 이러한 사업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는 곧 「삼일신고」의 정신대로 모든 백성을 다스리라는 명령에 다름아니다.

이러한 명령의 뜻을 지닌 천부인 3개를 가지고 그는 무리 3000명과 함께 세상에 내려온다. 그는 그 무리 중에 성통광명을 담당하는 풍백과, 재세이화를 주관하는 우사, 그리고 홍익인간 세계를 건설할 운사를 뽑아 거느리고, 이들과 함께 세상을 다스린다.

그리고 환웅천왕은 그가 내려온 곳을 神市라 했다. 그는 왜 하필 신시라 이름했을까?

신시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신이 모인 곳’40)으로, ‘신들이 사는 저자’라는 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환웅천왕이 신시를 건설했다면, 거기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신이 되어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이는 환웅천왕이 목표로 한 나라는 모든 사람들을 신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출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환웅천왕이 개국목표로 삼은 것이 바로 이 글자에 있다고 보고 싶으니, 바로 모든 백성을 신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이란, 「삼일신고」의  가르침대로 행하는 사람들이니, 달리 말하면, 신시의 백성들은 모두 일신강충한 존재들이니, 이들은 세상에서 성통광명하고, 재세이화하고, 홍익인간하고는 모두가 하늘로 다시 올라가는 사람들을 가르킨다. 이들이 바로 신인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3)이 신(1)이 되는 가르침이 바로 「삼일신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들은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로 곰과 호랑이의 삽화로 상징된 것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환웅천왕이 신시를 건설하고 나서 바로 곰과 호랑이의 삽화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곰은 환웅천왕의 뜻대로 신시의 백성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실패하고 다른 곳으로 쫓겨났다. 왜냐하면 그는 성통광면의 어려움을 겪어내지 못했으므로 신시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곰이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논란이 분분했던 부분이다. 필자는 이를 「단군신화」를 「삼국유사」 속에서만 해석하려고 한 탓에 범과 곰을 토템신앙으로 해석하는 등 결과적으로 「단군신화」를 신뢰하기 어려운 우화로 만들어 버렸다고 본다. 그런데 「한단고기」나 「태백일사」에서는 범을 원주민, 곰을 新住者라고 했고, 또 범은 잔인하고 약탈을 일삼는 대신 곰은 우둔하면서도 만만치 않다고 하였으니, 「한단고기」의 다음 대목은 이런 생각이 추측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사실임을 일깨워 준다.


 한국의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한 족속이 있어 이를 우환으로 여겼다. 한웅께서는 나라를 위해 삼신으로써 가르침을 삼아 무리를 모아 서약을 만드셔서 은밀하게 전제(剪除)의 뜻을 가졌다. 그때는 종족의 이름이 서로 달랐으니, 풍속도 차츰 달라져서 원래 살던 백성을 호랑이라 하고, 새로 살기 시작한 백성을 곰이라 했다. 그런데 호랑이는 성질이 탐욕스럽고 잔인하여 애오라지 약탈만을 일삼았고 곰은 어리석어 사람을 따르지 않고 자부하는 마음이 세어 조화되기를 거부하였으니, 같은 굴에 살았지만 점점 멀어지고 지금까지 한번도 서로 돕지도 않고 혼사도  트지 않을 뿐 나니라 일마다 서로 따르지도 않고 아직 한번도 뜻을 함께 한 적이 없었다. 이에 이르러 웅녀의 군(君)은 한웅에게 신덕(神德)이 있다 함을 듣고 곧 무리를 이끌고 가서 뵈옵고 말하기를 ‘바라옵건데 하나의 굴을 내리시어 하나같이 신계(神戒)의 백성이 되게 하시기를 비옵니다’라고 하니, 한웅께선 마침내 이를 허락하사 이를 맞아 들이시고 아들을 낳게 하였다. 호랑이는 종내 깨울칠 수 없는지라 이들을 사해로 쫓아 버렸다. 한족(韓族)의 일어남이 이에서 시작되었다.41)


이 글에서 보면, 호랑이 백성은 성질이 탐욕스럽고 잔인하여 애로라지 약탈만 일삼는 족속이고, 또한 곰 백성은 어리석어 사람을 따르지 않고 자부하는 마음이 세어 조화되기를 거부하였다. 이로써 우리는 신화에는 범처럼 머리와 눈알이 노란 인종과 곰처럼 머리와 눈알이 검은 인종이 각기 범과 곰으로 표현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범과 곰이 같은 굴에 있었다는 표현은 ‘穴’이 ‘穴寺’를 뜻하므로 같은 신정에 두 인종의 수도자가 있었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으며, 또 종교적으로 공존이 허락되었음을 알게 된다.42)

그러나 환웅천왕은 이들 모두를 신시의 백성, 즉 일신강충하고 성통광명한 神人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곰은 37일을 어둡고 쓰고 매운  고난을 이겨내고 성통광명하였으나, 호랑이는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사해로 쫓겨난 것을 이 글을 통해서 더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환웅천왕은 모든 백성을 성통광명한 신들로 만들고서는 이들을 세상에서 이치로 다스렸으니, 그는 풍백, 우사, 운사로 하여금 곡식, 인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맡아 보살피되, 무릇 인간 3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면서 세상에서 이치로 교화하였다. 물론 여기서 360여 가지의 일이란 1년 365일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이치에 맞게 다스렸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홍익인간의 사회인 것이다. 즉 모든 이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모두가 병없이 천명을 누리며, 형벌로써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질서 있는 복된 사회를 건설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홍익사회의 참모습인 것이 아닐까.

그러나 단군왕검의 통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다.


환웅천왕이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뒤 혼인하여 아들을 낳아 檀君王儉이라 불렀다. 당요가 제위에 오른 지 쉰해가 되던 庚寅에 平壤城에 도읍하고 비로소 朝鮮이라 하였고, 또 백악산 아사달에 도읍을 옮겼는데, 그곳을 弓忽山이라 하였고, 또 지금의 彌達이라고도 한다. 나라를 다스린 지는 1천 5백년이었다. 周虎王이 즉위하던 해 己卯에 箕子를 封하자 단군은 곧 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로 돌아와 숨어서 山神이 되었고 壽는 1천 9백 8세를 누렸다.43)


여기서 보면, 단군왕검은 다만 새로이 평양성에 도읍을 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한 사실과 그가 나라를 1500년을 다스리다가 뒤에 숨어서 山神이 된 사실만이 드러나 있다. 문자 그대로 본다면, 단군왕검이 재세이화, 홍익인간을 실천했는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문맥 전체의 흐름으로 보면, 단군왕검의 통치 역시 환웅천왕과 동일했기에 똑같은 말을 거듭 중복하여 쓰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즉 단군왕검 역시 1,500년 동안 모든 백성을 신들로 만들기 위해 이들을 세상에서 「삼일신고」의 이치대로 다스렸으니, 그 역시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인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맡아 보살피되, 무릇 인간 3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면서 세상에서 이치로 교화하였을 것이다. 단군왕검의 백성들을 역시 배부르게 먹이고, 병없이 천수를 누리게 하고, 서로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질서 있는 착한 세계를 건설하였을 것이니, 이 또한 홍익사회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만약 단군왕검의 통치술이 환웅천왕의 그것과 달랐다면 반드시 다르게 기록하였을 것이나 동일하였기에 더 이상 중복하여 기록하지 않았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단군왕검이나 환웅천왕의 통치는 「삼일신고」의 정신과 일치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홍익사회의 모습을 유동식은 시조 단군왕검이 새로운 문화질서인 고조선을 창건하여, 혼돈(chaos)으로부터 질서(cosmos)를 창조한 것이라고 하였다.44) 그리고 현용준은 이 태초적인 질서의 세계, 즉 홍익인간의 세계를 지상에 실현시키고 이를 주기적으로 회귀시키기 위한 반복적 행사가 바로 나라굿이라고 하였다.45) 모두 「「단군신화」의 원초적 의미를 적확하게 지적한 의논들이다.

결국 「단군신화」에서는 환웅천왕이나 단군왕검은 「삼일신고」에서 말한 대로, 태어나면서부터 일신강충하고 성통광명한 존재들이므로, 이들은 세상에서 재세이화하고 홍익인간하고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 하늘과 하나가 된 존재들임을 알 수 있다. 단군왕검이 죽어서 山神이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단군신화」에 나타나는 이들은 모두 우리의 고유경전인 「삼일신고」에 제시된 이상적 인간형에 다름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4. 맺는 말

이제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며 맺는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우리 민족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단군신화」를 떠올렸다. 이는 바로 여기에 등장하는 환웅천왕이나 단군왕검이 우리 민중들의 가장 전형적인 영웅상이었기에, 위기에 처한 민중들의 가장 사람받는 사람이 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에 필자는 단군왕검과 그의 아버지 환웅천왕의 생애가 어떠했는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정확하게 알게 된다면 한국인의 본래모습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우리 민족 고유의 이상적인 인간상은 어떠한지를 그려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본고에서는 「단군신화」에 나타나는 환웅천왕과 단군왕검의 일생을 우리 민족의 고유경전인 「삼일신고」와 우리의 가장 오래된 역사를 기록한 「한단고기」를 통하여 살펴보았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나 감정은 우리의 경전과 우리의 역사서에서 가장 잘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단군신화」는 우리의 고유한 경전과 역사서로 해석해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이들 책자에 대한 분분한 논의가 없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에 구애되지 않고 작업을 계속하였다. 문제는 이런 분석의 결과가 우리의 고유한 민족정서에 부합되는지의 여부에서 그 진위가 저절로 판가름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三一神誥」는 「天符經」 「366事」와 더불어 우리 민족 3대 경전의 하나이다.

특히 「삼일신고」에는 인간의 문제를 주로 거론하고 있는데, 이에 의하면 인간은 원래 一神降衷한 존재이기에, 세상에서 性通하고 功完해서 환웅천왕이나 단군왕검처럼 원래 내려왔던 하늘나라로 다시 올라가 신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론과 함께 그 방법론까지 가르쳐 주고 있다. 이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一神降衷한 존재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딸이란 말이다. 따라서 사람은 세상에서 각각 性通光明하고 在世理化하고 弘益人間하면 다시 一神에게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논리이다. 즉 하나인 하나님에게서 나온 인간이 세상에서 세 가지 일을 마치면 다시 하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것으로, 바로 3.1의 사상이 그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도달하기까지에는 최동환님의 저서에서 도움이 컸음은 본문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단군신화」에는 단군왕검뿐만 아니라 환인천왕에 대한 기록도 함께 있다. 따라서 이를 정확히 말하자면 「환인, 단군신화」라 해야 옳을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신화에 나타난 환웅천왕과 단군왕검의 일생이 「삼일신고」의 원리에 부합하는지를 일차 검토해 보았다.

먼저 이들의 性通過程을 알아보았다.

환웅천왕은 원래 天神이라 성통광명의 과정이 필요없으므로 본 신화에는 이에 대한 기술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단군왕검의 성통과정도 찾아볼 수 없다. 단군왕검은 아버지가 천신이지만, 어머니는 곰에서 사람으로 변한 熊女였다. 그러므로 이들 사이에 태어난 단군왕검은 반쪽 신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단군왕검의 성통과정이 없다. 이는 단군왕검 역시 환웅천왕처럼 태어날 때부터 성통광명한 존재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단군왕검이 태어날 때부터 성통광명한 존재가 되려면, 즉 반쪽 신이 아니라 완전한 신이 되려면 그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까지 완전한 신이어야 한다. 이를 신화에서 살펴보았다.

웅녀는 원래 곰같이 미련하고 우둔한 사람이었다. 흔히 인간은 신과 동물의 중간적 존재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참 사람 - 여기서 「삼일신고」적으로 말해서 성통광명한 존재가 되려면, 동물적인 잔재를 없애야 신과 동격이 될 수 있다. 웅녀는 스스로 동물적인 인간에서 벗어나 신적인 인간으로 변모하길 원했으니, 그가 환웅천왕에게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간청한 것이 그것이다. 여기에서의 사람은 물론 동물적인 사람이 아니라 성통광명한 신적인 사람임은 말할 여지도 없다. 이에 환웅천왕은 웅녀에게 사람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마늘과 쑥만 먹으면서 100일을 굴 속에서 견디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웅녀는 호랑이와 달리 이를 37일 동안 잘 견디어 드디어 사람이 되었다. 즉 그녀는 맵고 쓰고 어두운 고통을 이겨냄으로써, 그녀에게 있던 동물적인 본성을 모두 걷어내고 성통광명한 참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단군왕검은 참 사람들과의 만남, 즉 환웅천왕과 웅녀의 결합에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성통광명한 존재였다. 신화 속에 그의 성통과정에 대한 기술이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삼일신고」에 의하면 성통광명한 사람은 세상에서 功完을 이루어야 하니, 곧 在世理化하고 弘益人間을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본 신화에서 환웅천왕과 단군왕검의 공완과정을 살펴보았다.

먼저 환웅천왕은 아버지인 환인으로부터 천부인 3개, 즉 거울과 북과 칼을 받고는, 풍백, 우사, 운사와 무리 3000을 거느리고 세상에 나온다. 그는 세상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성통광명하게하고 재세이화하고 홍익인간하게 하였다. 즉 그는 곡식, 인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맡아 보살피되, 무릇 인간 360역 가지의 일을 주관하면서 세상에서 이치로 교화하였다. 이것이 바로 홍익인간의 참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환웅천왕은 그가 다스리는 이런 홍익인간의 도시를 神市라 했다. 신시는 ‘신들이 모여 사는 저자’라는 말이니, 이는 바로 환웅천왕이 그가 다스리는 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신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신들의 세계는 바로 「삼일신고」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도시인 것이다. 왜냐하면 「삼일신고」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이 될 수 있는 길을 밝혀주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경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화에는 역시 단군왕검의 공완의 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다만 단군왕검이 새로이 평양성에 도읍을 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한 사실과 그가 나라를 1500년을 다스리다가 뒤에 숨어서 山神이 되었다고만 말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본다면, 단군왕검이 재세이화, 홍익인간을 실천했는지 안 했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단군신화」 전체 문맥의 흐름으로 보면, 단군왕검의 통치 역시 환웅천왕과 동일했기에 똑같은 말을 거듭 중복하여 쓰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단군왕검 역시 1,500년 동안 모든 백성을 신들로 만들기 위해 이들을 세상에서 「삼일신고」의 이치대로 다스렸으니, 백성들을 역시 배부르게 먹이고, 병없이 천수를 누리게 하고, 서로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질서 있고 착한 세계를 건설하였을 것이니, 이 또한 구체적인 홍익사회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살펴본 대로 환웅천왕이나 단군왕검은 「삼일신고」의 원리대로 세상을 살았다. 그리고 「삼일신고」의 약속대로 세상을 마칠 때는 神(山神)이 되었다.

결국 우리의 始祖들의 삶은 살펴본 대로 「삼일신고」의 원리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즉 일신강충한 신의 아들로 태어나, 세상에서 성통광명하고 재세이화하고, 나아가 홍익인간의 사회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 마치고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 이것이 한국인의 본래면목이 아닌가 하면서 글을 마친다.


1)안호상,단군과 화랑의 세‧한(3‧1)철학과 도의 원리들,이은봉엮음,


2)최동환, 「삼일신고」, 하남출판사, 1991, 14-5쪽 참조.


3)최동환, 삼일신고, 하남출판사, 1991, 250-283쪽 참조.


4)최동환,


5)三一神誥, 惟 性通功完者 朝 永得快樂.


6)최동환, 앞의 책, 154-5쪽.


7)玄容駿, 檀君神話의 文學的 考察,  崔正如博士頌壽紀念, 啓明大學校出版部,1983.


8)安浩相, 배달의 宗敎와 哲學과 歷史, 語文閣, 1964.


9)安浩相, 앞의 논문.


10)鄭鎭弘,神話의 構造的 分析,


11)李乙浩,檀君說話의 基本課題,이은봉엮음,


12)鄭鎭弘, 神話의 構造的 分析, 揆園史話의 神話, 宗敎學序說, 展望社, 1980.


13)이은봉,단군신화를 통한, 175쪽.


14)이은봉,단군신화를 177쪽


15)설중환, 단군신화의 역학적 고찰, 인문논집 , 고려대 인문대학


16)三國遺事, 卷一, 古朝鮮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靈艾一炷 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 熊女者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仮化而婚之 孕生子 號曰壇君王儉 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唐高卽位元年戊辰 則五十年丁巳 非庚寅也 疑其未實) 都平壤城(今西京) 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 又名弓(一作方)忽山 又今彌達 御國一千五百年 周虎王卽位己卯 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藏唐京 後還隱於阿斯達 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 唐裵


17)任東權, 檀君神話의 民俗學的 考察, 韓國民俗學論考, 宣明文化社, 1973, 352쪽.


18)미르치아 엘리아데, 이윤기옮김, 샤마니즘, 까치, 1992, 243-53쪽 참조.

   柳東植, 韓國巫敎의 歷史와 構造, 延世大學校 出版部, 1975, 31쪽.


19)이은봉,단군신화를 통한, 176.


20)같은 책, 46쪽.


21)三一神誥, 自性求子 降在爾腦.


22)최동환, 앞의 책, 253쪽.


23)三國遺事, 卷一, 古朝鮮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靈艾一炷 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 熊女者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仮化而婚之 孕生子 號曰壇君王儉 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唐高卽位元年戊辰 則五十年丁巳 非庚寅也 疑其未實) 都平壤城(今西京) 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 又名弓(一作方)忽山 又今彌達 御國一千五百年 周虎王卽位己卯 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藏唐京 後還隱於阿斯達 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 唐裵


24)孫晋泰先生全集,券6,224쪽.


25)三品彰英,建國神話論考,東京,1937,221-2쪽,李恩奉,앞의 논문에서 재인용.


26)유동식,104


27)이은봉,앞의 논문


28)李御寧, 神話 속의 韓國人, 甲寅出版社,1985, 24쪽.


29)朴容淑, 韓國의 始源思想, 文藝出版社, 206쪽 참조.


30)임승국 번역, 주해, 한단고기, 태백일사, 신시본기, 172-3쪽.


31)유동식,105.


32)최동환 해설, 천부경, 304-5쪽.


33)一然, 三國遺事, 卷一, 古朝鮮.

 昔有桓因(謂帝釋也) 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卽太伯今妙香山) 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여기의 번역은 李家源 三國遺事新譯, 太學社, 1995를 주로 참조하였다.)


34)崔南善, 檀君古記箋釋, 思想界, 1954 ,2월호.


35)玄容駿, 앞의 논문, 앞의 책.


36)張德順, 檀君神話의 文學的 試考, 이은봉 엮음, 단군신화연구, 온누리, 1994.


37)임승국 번역, 주해, 한단고기, 정신문화사, 1995. 195쪽.


38)崔南善, 앞의 논문.


39)최동환, 삼일신고, 162쪽.


40)崔南善, 앞의 논문.


41)태백일사, 신시본기, 171-2쪽.


42)朴容淑, 앞의 책, 205쪽 참조.


43)三國遺事, 卷一, 古朝鮮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靈艾一炷 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 熊女者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仮化而婚之 孕生子 號曰壇君王儉 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唐高卽位元年戊辰 則五十年丁巳 非庚寅也 疑其未實) 都平壤城(今西京) 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 又名弓(一作方)忽山 又今彌達 御國一千五百年 周虎王卽位己卯 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藏唐京 後還隱於阿斯達 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 唐裵

 

44)柳東植, 앞의 책, 33-4쪽 참조.


45)玄容駿, 앞의 논문,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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