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洪益參考資料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09 : 訓民正音(훈민정음)]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7. 11:46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반갑도다, 훈민정음 원본의 나타남이여!"

36분전 | 연합뉴스 | 다음뉴스

뉴스) 이희용 기자 = "훈민정음 반포 후로 500년 동안의 실록에 훈민정음 간행 기록이...복 주신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 반갑도다, 훈민정음 원본의 나타남이여...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09 : 訓民正音(훈민정음)] 

 

  

제목 : 훈민정음 출처 :  한국브리태니커회사
 
설명 : 〈훈민정음〉, 언해본, 서강대학교도서관 소장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다.

목판본

으로 2권 2책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에 소장되어 있다. 책으로서의 훈민정음에는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니…"라고 한 《훈민정음예의본》과, 글자를 지은 뜻과 사용법 등을 풀이한 《훈민정음해례본》이 있다. 전자에 대해서는 《

세종실록

》과 《

월인석보

()》 첫권에 같은 내용이 실려 있어 널리 알려졌으나, 후자에 대하여는 1940년 발견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한글의 형체에 대하여 고대글자 모방설, 고전() 기원설, 범자() 기원설,

몽골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창살 모양의 기원설까지 나올 정도로 구구한 억설이 있었으나, 이 책의 출현으로 모두 일소되고

발음기관

상형설()이 제자원리()였음이 밝혀졌다. 후자는 예의()·해례(

정인지

서문 등 3부분 33장으로 되었는데,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었고, 해례는 정인지(

박팽년

(

신숙주

(

성삼문

()·최항(

강희안

()·이개()·이선로() 등

집현전

(殿) 학사가 집필하였다. 정인지가 대표로 쓴 서문에는 1446년 9월 상순으로 발간일을 명시하고 있어, 후일

한글날

제정의 바탕이 되었다. 1940년까지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

() 주하동() 이한걸가()에 소장되었던 해례본은 그의 선조 이천(蕆)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세종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었다. 이 책이 발견되어 간송미술관에 소장되기까지에는

김태준

()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발견 당시 예의본의 앞부분 두 장이 낙장되어 있었던 것을 이한걸의 셋째 아들 용준()의 글씨로 보완하였다. 용준은 안평대군체()에 조예가 깊었으며, 선전()에 입선한 서예가였다. 낙장된 이유는

연산군

의 언문책을 가진 자를 처벌하는 언문정책 때문에 부득이 앞의 두 장을 찢어내고 보관하였다고 하며, 이를 입수한

전형필

은 6·25전쟁 때 이 한 권만을 오동상자에 넣고 피란을 떠났으며, 잘 때에도 베개 삼아 베고 잤다는 일화가 전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으로 지정되었다.

 

[훈민정음 판본 종류]세종이 1443년 12월에 창제한 새 글자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원문으로 간행한 한문본(漢文本)이 두 가지,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한 언해본(諺解本)이 네 가지 있다. 한문본은 모두 목판본이고, 『세종실록』에 실린 훈민정음 예의본과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원본은 1446년 세종 28년에 정인지 등 여덟 명이 세종의 명으로 훈민정음을 설명한 한문해설서로, 『훈민정음』 또는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한다. 이것이 국내에서 유일한 훈민정음의 원본이며,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후 조선어학회에서 1946년 영인본을 발행한 뒤,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훈민정음의 영인본이 널리 보급되었다. 언해본으로는 목판본으로 고(故) 박승빈 씨가 소장한 『훈민정음』과 『월인석보』 첫 머리에 실리고 서강대학교에 소장된 『세종어제훈민정음』, 월인석보본을 모본으로 다시 한번 새겨서 펴낸 희방사(喜方寺) 복각본 그리고 필사본인 일본 궁내성본의 훈민정음 등 네 가지가 남아 있다. 199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어 보존되고 있다.

 

 
[개설]
1443년(세종 25년) 완성되어 1446년 음력 9월 상순(양력 10월 상순)에 반포된 훈민정음의 말뜻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다. 한때 언문(諺文)·언서(諺書)·반절(反切)·암클 등으로 낯춰 불리기도 했으며, 오늘날에는 '한글'이라고 한다. 문자체계의 특징은 한 음절을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는 음소문자(音素文字)이면서 음절단위로 적는 음절문자의 성격을 함께 지닌 점이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문자체계는 초성 17자, 중성 11자로 모두 28자였으나, 그중 초성의 ' , ,ㅿ'과 중성의 ' '가 폐기되어, 오늘날에는 24자만 쓰인다. 그밖에 28자를 이용한 병서(竝書)·연서(連書) 문자가 쓰였으며, 성조를 표시하는 방점이 쓰였다. 
 
 
 

훈민정음 언해본 (訓民正音 諺解本)

  

 

<그림1> 1446년(세종 28년) 음력 9월에 반포, 세종대왕 본인의 서문이기 때문에 "훈민정음..."으로 시작

 

<그림 2> 1459년(세조(수양대군) 5년), [월인석보]에 실린 훈민정음, 선조인 "세종어제훈민정음..."으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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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 언해본 - 세조 5년(1459년) 간행된 [월인석보]에 실린 훈민정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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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http://hangeul.naver.com/unhaebonViewer.nhn 에서 가져왔음을 밝힙니다.

 




 

 

 




 


 


 




 

 

 

 

 

 

 

 

 

 

 

 

 

 

 

 

 

 

 

 

 

 

 

 

 

 

 

 

 

 

 

 

 

 

 

 

 
 
  • 창제 목적 및 과정
〈훈민정음〉 서문은 다음과 같다. "나랏말 미 中國에 달아 文字와로 서르 디 아니 이런 젼 로 어린 百姓이 니르고져 배 이셔도 내 제 뜻을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 내 이 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여듧 字를 노니 사 마다 니겨 날로 메 便安킈 고져 미니라"라는 서문에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목적과 함께 새 글자 창제의 바탕을 이룬 정신이 나타나 있다. 즉 첫째 우리가 중국 글자를 빌려서 우리말을 적고 있으나 이는 중국말을 적는 데 맞는 글자이므로 우리말을 적는 데 맞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우리말을 적는 데 맞는 글자를 만들기 위해 새 글자를 만든다고 한 점에 민족자주정신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둘째, '어린(어리석은) 백성'이란 일반 백성을 가리키는 말로, 한자를 배울 수 없었던 사람들을 위해 배우기 쉬운 글자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민본정신이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창제과정은 조선시대의 일종의 연구소인 집현전의 학자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 박팽년(朴彭年)·최항(崔恒)·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강희안(姜希顔)·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 집현전 학자들은 당시 지속적으로 세종의 사업을 뒷받침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훈민정음의 창제에는 당시의 유일한 언어학이었던 중국 운학(韻學)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중국 운학은 일종의 음성학과 음운론의 연구로서 그 주된 목적은 운서편찬에 있었다. 따라서 중국 운학에 관심이 깊었던 학문적 경향이 언어에 대한 관심을 북돋우었고, 그것이 국어의 표기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과 이어진 결과 훈민정음 창제의 기틀이 되었으리라 추정된다. 이는 세종이 중국에서 사신이 올 때마다 의문나는 점을 물었고, 성삼문 등으로 하여금 랴오둥[遼東]에 귀양와 있던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黃瓚)에게 13번이나 찾아가서 음운에 관하여 물어보게 했다는 기록으로도 알 수 있다. 1443년 훈민정음이 완성된 후, 세종은 3년간의 보충연구 기간을 가졌다. 이 기간 동안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를 지어 훈민정음의 실용성을 시험해 보는 한편, 집현전 학사들로 하여금 훈민정음의 본문을 풀이한 해례서(解例書)를 편찬하게 했다.
 
 
  • 원본
세종은 훈민정음을 소개하는 책 이름을 글자 이름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 하여 판각했다. 이 책은 오랫동안 전해지지 않다가 1940년 7월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 이한걸(李漢杰)의 집에서 발견되었는데, 현재는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을 〈훈민정음〉해례본, 〈훈민정음〉한문본, 〈훈민정음〉원본이라고 한다. 목판본 1책 33장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 : 네 테두리가 2줄로 됨)에 유계(有界 : 책의 행간에 경계선이 있음)이고, 소흑구(小黑口 : 책의 중간인 판심의 위아래에 가느다란 검은 줄이 있음)로 되어 있다. 발견 당시 책의 처음 2장이 빠진 것을 나중에 붓글씨로 적어 넣을 때 실수하여 '세종어제서문'의 끝자인 '耳'자가 '矣'자로 바뀐 듯하다(〈세종실록〉에는 '耳'자로 기록됨). 이밖에 주해본 〈훈민정음〉으로는 희방사본(喜方寺本)·박씨본과 일본의 궁내성본(宮內省本)·가나자와본[金澤本] 등이 있다.
 
 
[내용]
〈훈민정음〉은 예의편(例義篇)·해례편·정인지서문(鄭麟趾序文)의 3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의편은 훈민정음의 창제 취지와 새 글자의 음가(音價) 및 운용법에 관한 내용으로, 크게 7가지로 볼 수 있다. ① 훈민정음 창제 취지를 밝힌 세종의 서문, ② 초성 17자(ㄱㅋ , ㄷㅌㄴ, ㅂㅍㅁ, ㅈㅊㅅ, ㅇㅎ , ㄹㅿ 등)에 대한 설명, ③ 중성 11자( ㅡㅣㅗㅏㅜㅓㅛㅑㅠㅕ 등)에 관한 설명, ④ 종성은 초성을 다시 쓴다는 규정, ⑤ 순경음(脣輕音)과 병서에 관한 규정, ⑥ 초성과 중성의 결합관계, ⑦ 평성·거성·상성·입성의 성조 표기에 관한 규정이 그것이다. 해례편은 새 글자의 제자원리와 그 음가 및 운용법, 문자가 표시하는 음운체계 등에 관한 내용으로, 제자해·초성해·중성해·종성해·합자해·용자례 등으로 나누어 기술되어 있다.
  
 
  • 제자해
세종 때는 고려 후기에 도입된 성리학이 더욱 발달한 시기였는데, 세종은 성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태극설(太極說)과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을 새 글자의 제자원리에 적용했다. 제자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주의 모든 현상을 태극·음양·오행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사상을 받아들여 사람의 성음(聲音)에도 음양의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둘째, 훈민정음 28자의 자형은 상형(象形)에 의해 제정했다. 즉 아음(牙音)의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설음(舌音)의 'ㄴ'은 혀가 입천장에 붙는 모양을, 순음(脣音)의 'ㅁ'은 입의 모양을, 치음(齒音)의 'ㅅ'은 이의 모양을, 후음(喉音)의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각각 본떠 만들었으며, 'ㄱㅋ', 'ㄴㄷㅌ', 'ㅁㅂㅍ', 'ㅅㅈㅊ', 'ㅇ ㅎ'과 같이 획을 더하여 소리가 거세짐을 나타냈다. 셋째, 사람의 소리가 오행·계절·음계에 맞는다고 보았다.
넷째, 성음의 청탁(淸濁)을 중국의 운서에 따라 분류했다.
다섯째, 순경음의 자형구조와 발성에 대해 순경음이 양순마찰음(兩脣摩擦音)임을 설명했다. 여섯째, 중성 중 ' ㅡ ㅣ'에 대해서 천(天 : )·지(地 : ㅡ)·인(人 : ㅣ) 의 삼재론(三才論)을 내세워 설명하고, 나머지 8중성은 위의 세 글자의 교합(交合)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혔으며, 이를 합(闔)과 벽(闢), 양(陽)과 음(陰)으로 설명했다.
일곱째, 중성 ' ㅡ ㅣ'의 세 소리를 삼재 또는 삼극(三極)으로 보아, ' '는 ' ㅡ ㅣ' 세 소리의 으뜸[冠]이고, ' ㅡ ㅣ'는 8성의 머리[首]가 된다고 했다. 여덟째, 〈주역 周易〉의 계사(繫辭)에 나오는 "천일(天一)·지이(地二)·천삼(天三)·지사(地四)………"의 천수(天數)·지수(地數)를 중성에 적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① ' '는 처음 하늘에서 나니 '천일생수'(天一生水)의 위(位)요, ② ' '는 다음이니 '천삼생목'(天三生木)의 위요, ③ ' '는 처음 땅에서 나니 '지이생화'(地二生火)의 위요, ④ ' '는 다음이니 '지사생금'(地四生金)의 위요, ⑤ ' '가 2번째 하늘에서 나니 '천칠성화'(天七成火)의 수(數)요, ⑥ ' '가 다음이니 '천구성금'(天九成金)의 수요, ⑦ ' '가 2번째 땅에서 나니 '지육성수'(地六成水)의 수요, ⑧ ' '는 다음이니 '지팔성목'(地八成木)의 수라 했다. 또한 ' '는 '천오생토'(天五生土)의 위요, 'ㅡ'는 '지십성토'(地十成土)의 수인데, 'ㅣ'만이 위수(位數)가 없다고 했다. ⑨ 초성이 종성으로 다시 쓰이는 것을 성리학의 관점에서 설명해, 만물이 땅에서 나서 땅으로 돌아감에 비유했다.
 
 
  • 초성해
초성은 운서의 자모이며, 이로부터 성음(聲音)이 생겨난다고 정의하고, 각 자모를 〈동국정운〉의 23자모 체계에 일치시켜 설명했다. 예를 들면 "아음인 '君'자의 초성은 'ㄱ'이고, 그 'ㄱ'이 ' '과 합쳐 '군'이 된다"라는 식이다.
 
 
  • 중성해
중성은 자운(子韻)의 한가운데서 초성·종성과 합해 음절을 이룬다고 정의하고 합용의 예를 들었다. 첫째, ' '(呑)자의 중성은 ' '인데 ' '가 'ㅌ'과 'ㄴ' 사이에서 ' '이 되고, '즉'(卽)자의 중성은 'ㅡ'인데 'ㅡ'는 'ㅈ'과 'ㄱ' 사이에서 '즉'이 되며, '침'(侵)자의 중성은 'ㅣ'인데 'ㅣ'가 'ㅊ'과 'ㅁ' 사이에서 '침'이 된다. 둘째, 두 자의 합용에는 ' '와 ' '가 모두 ' '에서 나왔으므로 합하여 ' '가 되고, ' '와 ' '가 모두 'ㅣ'에서 나왔으므로 ' '가 되며, ' '와 ' '가 모두 'ㅡ'에서 나왔으므로 합하여 ' '가 되고, ' '와 ' '가 모두 'ㅣ'에서 나왔으므로 합하여 ' '가 되는 것이니, 서로 합해서 어그러짐이 없다. 셋째. 'ㅣ'자의 쓰임이 가장 많은데, 한 자의 중성으로 'ㅣ'와 서로 합하는 것은 ' '의 10자이며, 두 자의 중성으로 'ㅣ'와 합하는 것은 ' '의 4자이다.
 
 
[종성해]
종성은 초성과 중성을 이어받아 음절을 이룬다고 정의했는데,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소리의 완급이 있으므로 평성·상성·거성 3성의 종성은 입성의 촉급(促急)과 같지 않고, 불청불탁의 자( ㄴ ㅁ ㅇ ㄹ ㅿ)는 소리가 세지 않아서 종성으로 쓰면 평성·상성·거성에 맞으며, 전청·차청·전탁은 소리가 거세어 종성으로 쓰면 입성이 된다. 따라서 ' ㄴ ㅁ ㅇ ㄹ ㅿ'의 6자는 평성·상성·거성 3성의 종성이 되고, 나머지는 입성의 종성이 된다. 둘째, 'ㄱ ㄷ ㄴ ㅂ ㅁ ㅅ ㄹ' 8자로 종성을 쓸 수 있다. 즉 'ㅅ ㅈ ㅿ ㅊ'은 'ㅅ'으로, 'ㄷ ㅌ'은 'ㄷ'으로, 'ㅂ ㅍ'은 'ㅂ'으로 통용될 수 있다. 셋째, 'ㅇ'은 소리가 맑고 비어서 반드시 종성으로 쓰지 않더라도 중성이 음을 이룰 수 있다(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에서는 중성으로 끝난 한자음에 'ㅇ'종성을 표기했음). 넷째, 반혓소리 'ㄹ'은 우리말 종성에만 쓰일 뿐 한자에는 쓸 수 없다.
  
 
  • 합자해
초성·중성·종성의 자모가 실제 사용될 때 합자를 이루는 규정으로서, 25개 어휘의 표기상의 실례를 들어서 그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① 초성은 중성의 위 또는 왼쪽에 쓴다. 예를 들면 '군'(君)자의 'ㄱ'은 'ㅜ'위에 있고, '업'(業)자의 'ㅇ'은 'ㅓ'의 왼쪽에 있다. ② 중성은 초성의 밑이나 오른쪽에 쓴다. 둥근 것( )과 가로 된 것(ㅡ )은 초성글자의 밑에 쓴다. 예를 들면 '즉'(卽)자의 'ㅡ'는 'ㅈ'의 밑에 있다. 세로된 것은(ㅣ )는 초성글자의 오른쪽에 쓴다. 예를 들면 '침'(侵)자의 'ㅣ'는 'ㅊ'의 오른쪽에 있다. ③ 종성은 초성·중성의 밑에 쓴다. 예를 들면 '군'(君)자의 'ㄴ'은 '구'자의 밑에 있다. ④ 병서에는 합용병서·각자병서가 있다. 합용병서의 예로는 '따'[地]의 'ㄸ', '짝'[隻]의 'ㅉ' 등이 있다. 각자병서의 예로는 '혀'는 '혀'[舌]의 뜻이나, ' '는 '인'[引]의 뜻이 되며, '괴여'는 내가 남을 사랑한다는 뜻인데, '괴 '는 내가 사랑받는다는 뜻이 되는 경우 등이다. 중성 합용의 예로는 '과'[琴株]의 ' ', '홰'[炬]의 ' ' 등이 있다. 종성 합용의 예로는 '흙'[土]의 ㄺ, '낤'[釣]의 ㄳ 등이 있다.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쓸 때, 한글로 한자의 중성·종성을 보충할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孔子ㅣ 魯ㅅ사람'에서 'ㅣ'와 'ㅅ' 등이다. ⑥ 중국의 사성(四聲)을 도입하여 글자 왼편에 방점(傍點)으로 표시한다. 그러나 중국어의 사성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국어의 성조 체계에 적합한 표기를 마련했다. 즉 평성은 점이 없고, 상성은 점 2개로 표시하고, 거성은 점 1개로 표시하며, 입성은 'ㄷ ㅂ'받침의 음절인데, 방점을 더하는 것은 평성·상성·거성의 경우와 같다. ⑦ 초성의 ' '과 'ㅇ'은 서로 비슷해서 국어에서 통용될 수 있다. ⑧ 반설음(半舌音) 'ㄹ'에 경중(輕重)이 있다. 국어에서는 구별해서 쓰지 않지만, 갖추어서 쓰고자 할 때는 순경음의 예를 따른다. 즉 'ㄹ'을 'ㅇ' 밑에 써서 반설경음(半舌輕音 : )을 만든다. ⑨ 이중모음 ' '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 용자례
초성·중성·종성의 자모 하나하나에 대해 어휘의 표기상의 실례를 들어서 그 사용법을 보여준 내용이다. 예를 들면 ① 초성의 감 [ : ㄱ의 예]·콩[大頭 : ㅋ의 예]·담[墻 : ㄷ의 예]·벌[蜂 : ㅂ의 예], 뫼[山 : ㅁ의 예] 등, ② 중성의 리[橋 : 의 예]·믈[水 : ㅡ의 예]·밀[蠟 : ㅣ의 예]·논[水田 : ㅗ의 예] 등, ③ 종성의 닥[楮 : ㄱ의 예]·갇[笠 : ㄷ의 예]·범[虎 : ㅁ의 예]·잣[海松 : ㅅ의 예]·별[星 : ㄹ의 예] 등 94개의 어휘가 수록되어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 訓民正音 解例本 ) 

  • 세종대왕 서문 序文
  •              제자해 制字解 
  •              초성해 初聲解 
  •              중성해 中聲解 
  •              종성해 終聲解 
  •              합자해 合字解
  •              용례부분 用字例
  •    정인지 서문 序文
 



















































 
 
 
 
 

 

 





























 

 













 

 

 

 

훈민정음 해례본 ; 制字解 (1446.9.상한)


訓民正音解例. 解例 : 훈민정음 해레편은 훈민정음 의예편에서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는 내용을
다시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 용자례등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자세히 설명한 부분이다.
制字解 : 훈민정음의 제자원리, 음가 등을 송학이론과 중국음운학적 견지에서 설명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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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地之道

: 주자학파에서는 一陰一陽이 되는 것. 태극을 도라고 하였는데,
훈민정음 해례 편찬자들도 이 설을 좇아 해례의 첫머리에 이런 말을 한 것이다.


 

一陰陽五行而已. 坤復之間

坤復之間 : 곤이나 복이나 易의 괘명인데, 곤복지간이란 역의 괘도상 곤괘에서 복괘에 이르는 사이이며
無極이라 하는데, 무극은 태극이다.


 

爲太極. 而動靜之後爲陰陽..

陰陽 : 태극도에서는 陽變陰合해서 오행이 생긴다고 했고,
우주 만물은 오행인 金水木火土와 결부되어 있어서, 사람의 성음도 오행과 겸부된것으로 본 것이다.


 

凡有生類在天地之間者. 捨陰陽而何之. 故人之聲音. 皆有陰陽之理. 顧人不察耳.
今正音之作. 初非智營而力索..

智營而力索 : 황극경세서에 "西山蔡氏曰......陰陽之中又陰陽 出於自然 不待智營而力索也"라고 한부분이 있다.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理旣不二. 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用 : 송학에서는 모든 사물의 근본이나 바탕이 되는 것을 體, 그 작용이나 응용, 활용을 용이라고 하는데,
해례에는 이 개념이 도입되어 체, 용이 많이 쓰이고 있다. 여기의 용도 응용, 활용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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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의 이치는 한 음양과 오행일 따름이니, 곤과 복-괘의 이름-의 사이가 태극이 되고,
움직임과 고요함의 뒤가 음양이 된다. 무릇 하늘과 땅사이에서 삶을 누리고 있는 무리들이 음양을 버리고 어찌 살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의 소리가 다 음양의 이치가 있으되, 돌아보건대 사람이 살피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정음-한글-의 만듦은 처음부터 슬기로써 이룩하고 힘으로써 찾음이 아니라,
다만 그 소리를 따라 그 이치를 다할 따름이니,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거늘,
어찌 하늘과 땅과 귀신으로 더불어 그 쓰임(작용)을 같이 하지 않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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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

各象其形而制之 : 훈민정음의 제자원리를 분명히 밝힌 구절이다.
당시에는 중국의 문자학이론을 크게 참고하였을 것이므로 문자학의 기본이 되는 六書 가운데에서도
가장 근본이 되는 상형을 훈민정음의 제자원리로 삼고, 이를 자음자의 제자와 모음자의 제자의 바탕으로 하였다.
자음자는 발음기관 또는 자음발음시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고,
제자순서는 먼저 牙舌脣齒喉음별로 기본글자 ㄱㄴㅁㅅㅇ를 제자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해서 발음이 센 음의 순서대로 획을 더하여 다른 자음글자들을 제자했다.
이를 제자해에서는 因聲加劃이라고 표현하였다.

初聲凡十七字. 牙音ㄱ. 象舌根閉喉之形. 舌音ㄴ. 象舌附上 之形. 脣音ㅁ. 象口形. 齒音ㅅ. 象齒形. 喉音ㅇ. 象喉形.
ㅋ比ㄱ. 聲出稍 . 故加 . ㄴ而ㄷ. ㄷ而ㅌ. ㅁ而ㅂ. ㅂ而ㅍ. ㅅ而ㅈ. ㅈ而ㅊ. ㅇ而ㅡ. ㅡ而ㅎ. 其因聲加 之義皆同.
而唯 爲異..

唯'이응자'爲異 : 다른 자음 글자들은 모두 기본글자에다가 획을 더하여 만든 글자지만
'이응자'만은 기본글자 ㄱ에 획을 더하여 만든 글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즉 '이응자'는 ㅇ에서 나온 글자라는 뜻이다.


 

半舌音ㄹ. 半齒音 . 亦象舌齒之形而異其體..

異其體 : ㄹ,  도 각각 그 기본글자인 ㄴ과 ㅅ에 획을 더하여 만든 글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즉, 體인 ㄴ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고, 달리 제자하였다는 뜻이다.
여기의 字形으로 보고, "그 자형이 다르다"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無加 之義焉. 夫人之有聲本於五行..

人之有聲本於五行 : 제자해 첫머리에서 사람의 성음도 오행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하였으므로
여기서도 다음과 같이 古今韻會擧要나 切韻指掌圖의 "辨字母次第例" 등을 참고로하여
오행(木火土金水), 오시(春夏季夏秋冬), 오음(角徵宮商羽),오방(東南中央西北)등과 결부시켜 설명한 것이다.
다만 본문에서는 合諸四時라고 하였으나 실지로는 五時로 설명되어 있다.


 

故合諸四時而不悖. 犀之五音而不戾. 喉邃而潤. 水也. 聲虛而通..

聲虛而通 : 오음을 아설순치후의 순으로 설명한 것이 아니라 목부터 조음기관의 순서에 따라
입술까지 조음기관의 모양 또는 작 조음기관에서 조음되는 각 음에 대하여 음상 중심으로 설명한 부분이다.
여기서는 목과 목에서 발음되는 후음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이하의 부분도 같다.


 

如水之虛明而流通也. 於時爲冬. 於音爲羽. 牙錯而長. 木也. 聲似喉而實. 如木之生於水而有形也.
於時爲春. 於音爲角. 舌銳而動. 火也. 聲轉而 . 如火之轉展而揚揚也. 於時爲夏. 於音爲徵..

徵字는 화음치.


 

齒剛而斷. 金也. 聲屑而滯. 如金之屑 而鍛成也. 於時爲秋. 於音爲商. 脣方而合. 土也.
聲含而廣. 如土之含蓄萬物而廣大也. 於時爲季夏. 於音爲宮. 然水乃生物之源. 火乃成物之用.
故五行之中. 水火爲大. 喉乃出聲之門. 舌乃辨聲之管. 故五音之中. 喉舌爲主也..

然水乃生物之源.......喉舌爲主也 : 오행과 조음기관을 결부시켰을 때 水=喉, 火=舌이므로
오행중에서 水火가 중요하듯이 발음기관 중에서도 喉舌이 가장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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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 스물 여덟자는 각각 그 꼴을 본따서 지음이니, 첫 소리가 무릇 열 일곱자이다.
어금니 소리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닫는 꼴을 본뜬 것이고, 혓소리ㄴ은 혀가 윗잇몸에 붙는 꼴을 본뜬 것이고,
입술소리ㅁ은 입의 꼴을 본뜬 것이고, 잇소리ㅅ은 이의 꼴을 본뜬 것이고, 목구멍 소리ㅇ은 목구멍의 꼴을 본뜬 것이다.
ㅋ은ㄱ에 견주어 소리 남이 조금 세므로 획을 더한 것이고, ㄴ에서 ㄷ으로, ㄷ에서 ㅌ으로 함과,
ㅁ에서 ㅂ으로 ㅂ에서 ㅍ으로 함과, ㅅ에서 ㅈ으로 ㅈ에서 ㅊ으로 함과, ㅇ에서 ㅡ으로 ㅡ에서 ㅎ으로 함도,
그 소리를 따라 획을 더한 뜻이 같되,
오직 '이응자'는 다르며, 반혓소리ㄹ과, 반잇소리 '세모자'는 또한 혀와 이의 꼴을 본뜨되,
그 본을 달리하여 획을 더하는 뜻이 없다.<ㅠㄱ> 대저 사람의 소리 있음이 오행에 근본함이다.
그러므로 네철(四時)에 어울리어 거슬리지 않으며, 다섯 소리(宮商角徵羽)에 맞아서 어기지 않는다.
목구멍이 깊숙하고 미끄러움은 물이다. 소리가 비고 통함이 물의 맑고 흐르는 것과 같으니,
철로는 겨울(冬)이 되고, 소리로는 우(羽)가 된다. 어금니가 어긋나고 긺은 나무이다. 소리는 목구멍 소리와 같되,
여문 것 (實)이 나무가 물에 나서 꼴이 있음과 같으니, 철로는 봄(春)이 되고, 소리로는 각(角)이 된다.
혀가 빠르고 움직임은 불이다. 소리가 구르고 날램은 마치 불의 이글거리며 활활 타오르는 것과 같은 것으로,
철로는 여름이 되고, 소리로는 치(徵)가 된다. 이가 단단하고 끊음은 쇠다.
소리가 부스러지고 걸림이(엉김이) 쇠의 부스러기가 부스러지지만 단련되어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것으로
철로는 가을(秋)이 되고, 소리로는 상(商)이 된다. 입술이 모나고 붙음은 흙이다.
소리가 머금고 넒음이 흙이 만물을 머금어 넓고 큼과 같으니, 철로는 늦 여름(季夏)이 되고, 소리로는 궁(宮)이 된다.
그러나 물은 사물을 나게하는 근원이고, 불은 물건을 이루는데 쓰임이다.(작용한다.)
그러므로 오행가운데 물과 불이 큰 것이다. 목구멍은 소리를 내는 문이고, 혀는 소리를 구별하는 관이니,
그러므로 다섯 소리 가운데 목구멍 소리와 혓소리가 주장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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喉居後而牙次之. 北東之位也. 舌齒又次之. 南西之位也. 脣居末. 土無定位而寄旺四季之義也.
是則初聲之中. 自有陰陽五行方位之數也. 又以聲音淸濁.

聲音淸濁 : 중국음운학에서는 중고한어의 語頭子音을 조음위치별로 나누어 아설순치후의 오음으로 분류하고
(반설음, 반치음 까지 합하면 칠음), 같은 조음위치에서 발음되는 음들을 다시 음의 성질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全淸(無氣無聲子音) 파열음, 마찰음, 파찰음
次淸(有氣無聲子音) 파열음, 마찰음, 파찰음
全濁(無氣有聲子音, 전탁을 有氣有聲子音이라 추정하기도 함) 파열음, 마찰음, 파찰음
不淸不濁(次濁, 淸濁, 半淸, 半濁이라고도 함) 鼻音, 舌側音, 半母音(喩音)
이런 기준에 의하여 당말, 북송초에 36字母를 선정하여 한어의 어두자음을 표시하는 음성기호처럼 사용해 왔다.
훈민정음은 이 자모표와는 따로이 15세기 중세국어에 맞는 자음을 선정하여 23子音字를 창제하였는데,
그 분류방식은 36자모표를 본받은 바가 있다.
그리하여 훈민정음해례에서도 이 분류법을 따라서 국어의 자음을 분류하였는데,
전탁음만은 한어 자음의 유성음과는 달리 국어의 된소리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15세기 문헌에서는 전탁자들이 두가지 구실을 해서 동국정운식 한자음이나 홍무정운역훈 한음표기에는
한자음의 유성음을 나타내려고 하였고, 국어를 표기할 때에는 된소리를 나타내기 위하여 쓰이었다.
다만, 당시의 우리 선인들이 유성음의 음가를 된소리처럼 인식하고 있었는지 모르는 일이다.

 

而言之. ㄱㄷㅂㅅㅡ. 爲全淸. ㅋㅌㅍㅊㅎ. 爲次淸. ㄲㄸㅃㅉㅆ . 爲全濁.
ㄴㅁㅇㄹ . 爲不淸不濁. ㄴㅁㅇ. 其聲最不 . 故次序雖在於後. 而象形制字則爲之始..

次序雖在於後......制字則爲之始 : 전청, 차청, 전탁, 불청불탁의 순으로 보면 ㄴㅁㅇ은 불청불탁 소속음이라
그 순서가 뒤가 되지만, 각 조음기관에서 가장 약한 음을 골라 조음상태를 상형하여 제자할 때의 순은
이들 글자가 각 음의 맨 앞이라는 뜻이다.

 

ㅅㅈ雖皆爲全淸. 而ㅅ比ㅈ. 聲不 . 故亦爲制字之始. 唯牙之 .
雖舌根閉喉聲氣出鼻. 而其聲如ㅇ相似. 故韻書疑與喩多相混用..

 

疑與喩多相混用 : 중국음운학에서는 어두자음을 분류하여 36자모표를 만들고,
각 자모로 하여금 각 어두자음을 대표하게 하였는데, 疑母는 '이응'을, 喩母는 ㅇ을 대표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元代이후 어두의 '이응'음이 소실되어 운서에서는 疑모자와 喩모자가 서로 그 배열상 혼용이 되었다.
이 사실을 해례에서는 '이응'과 ㅇ의 소리가 相似라고 표현했다.

 

今亦取象於喉. 而不爲牙音制字之始..

今亦取象於喉 而不爲牙音制字之始 : 해례 편찬자들은 '이응'과 ㅇ가 음가가 비슷하여
'이응'자가 ㅇ자와 마찬가지로 목구멍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이응'자는 아음의 불청불탁의 소속자이면서도 아음의 기본문자가 되지 않았다고 설명한 것이다.
다른 조음위치에서 발견되는 글자들은 불청불탁자가 기본문자가 되었었다.

 

盖喉屬水而牙屬木.  雖在牙爲與ㅇ相似. 猶木之萌芽生於水而柔軟. 尙多水氣也..

雖在牙而與ㅇ相似......尙多水氣也 : 여기서는 '이응'과 ㅇ가 자형상 비슷하다는 뜻이며,
'이응'자는 아음이라 오행으로는 나무이고, ㅇ자는 후음이라 물인데,
다른 아음자와는 달리'이응'자가 ㅇ자를 본받아 제자되었으므로
마치 나무가 물에서 생겨났으나 아직 물기가 있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ㄱ木之成質. ㅋ木之盛長. ㄲ木之老壯. 故至此乃皆取象於牙也. 全淸竝書則爲全濁. 以其全淸之聲凝則爲全濁也.

 
全淸之聲凝則爲全濁 : 전탁음의 음가를 밝힌 것이다. 전탁음은 전청음에 성문 폐쇄음 凝이 수반된 것이다.
 

唯喉音次淸爲全濁者. 盖以ㅡ聲深.

ㅡ聲深 : ㅡ자의 음가가 성문폐쇄음임을 말한 것이다.

 

不如之凝. ㅎ比ㅡ聲淺. 故凝而爲全濁也. ㅇ連書脣音之下. 則爲脣輕音者. 以輕音脣乍合而喉聲多也..

以輕音......喉聲多也 : 순경음의 음가가 양순마찰음임을 설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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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이 뒤에 있고 어금니가 다음에 있으니 북녘과 동녘의 자리이고,
혀와 이가 그 다음에 있으니 남녘과 서녘의 자리이고,
입술은 끝에 있으니 흙이 정한 자리 없이 네철의 끝에 붙어 왕성하는 뜻이다.
이는 곧 첫소리 가운데 스스로 음양오행 방위의 수가 있음이다.
또 소리의 맑고 흐림으로써 말하건데, ㄱㄷㅂㅈㅅㅡ은 온 맑음 소리(全淸)가 되고,
ㅋㅌㅍㅊㅎ은 버금 맑음 소리(次淸)가 되고, ㄲㄸㅃㅉㅆ 은 온 흐림 소리(全濁)가 되고,
ㄴㅁㅇㄹ 은 맑지도 흐리지도 않은 소리(不淸不濁)가 된다.
ㄴㅁㅇ은 그 소리가 가장 세지 않음으로 차례는 비록 뒤에 있으나,
꼴을 본따서 글자를 지음에는 처음을 삼고,
ㅅㅈ은 비록 다 온 맑은 소리가 되나 ㅅ이 ㅈ에 견주어
소리가 세지 않으므로 또한 글자짓는 처음을 삼고,
오직 어금니 소리의 '이응'은 비록 혀뿌리가 목구멍을 닫되 소리 기운이 코로 나와
그 소리가 ㅇ으로 더불어 서로 비슷하므로 운서에서도
 의(疑)와 유(喩)가 서로 많이 혼용되는 것이다.
이제 또한 목구멍을 본따서 만들었으나 어금니 소리 글자 지음의 처음을 삼지 아니한 것이니,
대개 목구멍은 물에 속하고 어금니는 나무에 속한 까닭이며,
'이응'이 비록 어금니에 있으나 ㅇ으로 더불어 서로 비슷함이
마치 나무의 움(싹)이 물에서 나서 부드러워 아직 물기가 많음과 같다.
ㄱ은 나무의 바탕이 생긴 것이고, ㅋ은 나무가 성히 자란 것이고, ㄲ은 나무가 늙고 단단한 것이니,
그러므로 이들에 이르러는 모두 어금니에서 모양을 본딴 것이다.
온 맑음 소리를 ㄱ아(나란히) 쓰면 온 흐림 소리가 되니
그 온 맑음의 소리가 엉기면 온 흐림이 되기 때문이다. ㅎ은 ㅡ보다 소리가 앝음으로 엉기어서 온 흐림이 되기 때문이다.
ㅇ을 입술소리 아래에 이어 쓰면 곧 입술 가벼운 소리가 되는 것은
가벼운 소리는 입술이 조금 닫히고 목구멍 소리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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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聲凡十一字..

中聲凡十一字 : 15세기 중세국어의 단모음은 7이었으나 훈민정음 창제자들은 ㅛㅑㅠㅕ도 각각 단일단위자로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중성자를 11자라고 한 다음, 易의 天地人三才를 상형하여 국어 모음자의 기본자로 창제하고
자형(圓平立), 상형내용(天地人), 혀모양(縮 小縮 不縮), 음상(深 不深不淺 淺) 등으로 설명하였다.

舌縮而聲深. 天開於子也. 形之圓. 象乎天也. ㅡ舌小縮而聲不深不淺. 坤闢於丑也.
形之平. 象乎地也. ㅣ舌不縮而聲淺. 人生於寅也. 形之立. 象乎人也. 此下八聲. 一闔一闢..

此下八聲一闔一闢 : 훈민정음해례 편찬자들은 기본모음 .
ㅡㅣ 이외의 모음을 그 원순성 여부로 분류하여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闔 ㅗ ㅜ ㅛ ㅠ (口蹙)
闢 ㅏ ㅓ ㅑ ㅕ (口張)
이런 분류법은 중세국어의 단모음 가운데 . ㅗㅏ를 한 부류로, ㅡㅜㅓ를 한 부류로 보고, 다음과 같이 좁 데서 나온 것이다.
ㅗ <---- 口蹙 . ----> 口張ㅏ
ㅜ <---- 口蹙ㅡ----> 口張ㅓ

 

ㅗ與 . 同而口蹙. 其形則 . 與ㅡ合而成. 取天地初交之義也. ㅏ與 . 同而口張. 其形則ㅣ與 . 合而成.
取天地之用發於事物待人而成也. ㅜ與ㅡ同而口蹙. 其形則ㅡ與 . 合而成. 亦取天地初交之義也.
ㅓ與ㅡ同而口張. 其形則 . 與ㅣ合而成. 亦取天地之用發於事物待人而成也. ㅛ與ㅗ同而起於ㅣ. ㅑ與ㅏ同而起於ㅣ..

起於ㅣ : 훈민정음 제자해에서는 같은 이중모음인데도 ㅛㅑㅠㅕ는 ㅣ로 시작되는 이중모음으로 설명하고,
ㅘㅝ는 중성해에서 합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시 역학이론으로 ㅛㅑㅠㅕ를 설명하여
"ㅛㅑㅠㅕ起於ㅣ 而兼乎人"이라고하여 ㅣ모음으로 시작되는 이중모음은 ㅣ=사람이므로
모두 사람이 들어 있다고 하였다.
 

ㅠ與ㅜ同而起於ㅣ. ㅕ與ㅓ同而起於ㅣ. ㅗㅏㅜㅓ始於天地. 爲初出也. ㅛㅑㅠㅕ起於ㅣ而兼乎人. 爲再出也.
ㅗㅏㅜㅓ之一其圓者. 取其初生之義也. ㅛㅑㅠㅕ之二其圓者. 取其再生之義也.
ㅗㅏㅛㅑ之圓居上與外者. 以其出於天而爲陽也. ㅜㅓㅠㅕ之圓居下與內者. 以其出於地而爲陰也..

ㅗㅏㅛㅑ之圓居上..... 爲陰也 : 역학계몽의 "陽上交於陰 陰下交於陽"과 같은 사상을 응용한 설명이다.
 

. 之貫於八聲者. 猶陽之統陰.

陽之統陰 : 역학계몽의 "各書以五奇數統四偶數 而各居其所 盖生於陽以統陰而肇其變數之用"을 응용한 설명이다.
. 는 天을 상형한 것이나 天을 또 陽으로 본데서 나온 설명이다.

而周流萬物也. ㅛㅑㅠㅕ之皆兼乎人者. 以人爲萬物之靈而能參兩儀也. 取象於天地人而三才之道備矣..

三才之道備矣 : 易經繫辭下 제10장에서 "易之爲書也 廣大悉備 有天道焉 有人道焉 有地道焉 兼三才而兩之
故六 六書 非_也 三才之道也"라고 한 것을 여기서는 훈민정음의 기본모음자와 결부시켜 설명한 것이다.
三才之道는 天地人의 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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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소리는 무릇 열 한자이니, . 는 혀가 움추려들고 소리가 깊으니, 하늘이 자(子)시에 열린 것이다.
꼴의 둥글음은 하늘을 본뜬 것이다.
ㅡ는 혀가 조금 움추려지고 소리가 깊지도 않고 얕지도 않으니, 땅이 축(丑)시에 열림이다.
꼴의 평평함은 땅을 본뜬 것이다.
ㅣ는 혀가 움추려지지않고 소리가 옅으니 사람이 인(寅)시에 남이다. 꼴의 섬은 사람을 본뜬 것이다.
이 아래 여ㄷ소리는 하나는 닫히고 하나는 열리니, ㅗ는 . 로 더불어 같되 입이 오므라지는 것이다.
그 꼴은 . 와 ㅡ가 어울리어 됨이니,하늘과 땅이 처음 사귐을 뜻함이다.
ㅏ는 . 와 더불어 같되 입이 벌어지는 것이며, 그 꼴은 ㅣ와 . 가 어울리어 됨이니
하늘과 땅의 쓰임이 일과 사물에 나타나 사람을 기다려 이루어짐을 뜻함이다.
ㅜ는 ㅡ로 더불어 같되 입이 오므라지는 것이다. 그 꼴은 ㅡ와 . 가 어울리어 됨이니,
또한 하늘과 땅의 처음 사귐을 뜻한다.
ㅓ는 ㅡ로 더불어 같되 입이 벌어지는 것이며, 그 꼴은 . 와 ㅣ가 어울리어 됨이니,
또한 하늘과 땅의 쓰임이 일과 사물에 나타나 사람을 기다려 이루어짐을 뜻한다.
ㅛ는 ㅗ와 더불어 같되, ㅣ에서 일어나고 ㅑ는 ㅏ와 더불어 같되 ㅣ에서 일어나고
ㅠ는 ㅜ와 더불어 같되 ㅣ에서 일어나고 ㅕ는 ㅓ와 더불어 같되 ㅣ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ㅗㅏㅜㅓ는 하늘과 땅에서 비롯함이니 처음 나옴이 되고,
ㅛㅑㅠㅕ는 ㅣ에서 일어나서 사람을 겸함이니, 거듭 남이 되는 것이다.
ㅗㅏㅜㅓ의 그 둥글음을 하나로 한 것은 그 처음 남을 뜻함이고,
ㅛㅑㅠㅕ의 그 둥글음을 둘로 한 것은 그 거듭 남을 뜻함이다.
ㅗㅏㅛㅑ의 둥글음이 위와 밖에 있음은 그 하늘에서 나와 양이 되기 때문이고,
ㅜㅓㅠㅕ의 둥글음이 아래와 안에 있음은 그 땅에서 나와 음이 되기 때문이다.
. 가 여덟 소리에 일관하고 있음은 양이 음을 거느려 온갖 사물에 두루 흐름과 같음이다.
ㅛㅑㅠㅕ가 다 사람을 겸한 것은 사람이 온갖 사물의 영장이되어 능히 음양에 참여하기 때문이니
하늘과 땅과 사람을 본떠서 삼재의 이치를 갖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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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才爲萬物之先. 而天又爲三才之始. 猶 . ㅡㅣ三字爲八聲之首. 而 . 又爲三字之冠也.
ㅗ初生於天. 天一生水之位也. ㅏ次之. 天三生木之位也. ㅜ初生於地. 地二生火之位也. ㅓ次之. 地四生金之位也.
ㅛ再生於天. 天七成火之數也. ㅑ次之. 天九成金之數也. ㅠ再生於地. 地六成水之數也. ㅕ次之. 地八成木之數也..
ㅗ初生於天......地八成木之數也 : 역경계사에서는 1부타 10까지의 수에서 奇數를 天에,
偶數를 地에 배합했는데, 鄭玄의 易法에서는 천지의 수를 1에서 5까지를 生位, 6에서 10까지를 成數라하고,
여기에다가 五行과 四季, 四方을 결부시켰으며, 奇를 陽, 偶을 陰으로 보았다.
훈민정음해례에서는 여기의 奇에 양성모음, 偶에 음성모음을 배합시켰다.
位 數 圖
方位 五行 生 位 成 數
北 水 天 一 ㅗ 地 六 ㅠ
南 火 地 二 ㅜ 天 七 ㅛ
東 木 天 三 ㅏ 地 八 ㅕ
西 金 地 四 ㅓ 天 九 ㅑ
中 土 天 五 . 地 十 ㅣ

水火未離乎氣. 陰陽交合之初. 故闔. 木金陰陽之定質. 故闢..

水火未離乎氣......故闢 : 緯數圖에서 水는 ㅗㅠ, 火는 ㅜㅛ라고 하였으므로 ㅗㅠㅜㅛ는 闔(원순모음)이고,
木은 ㅏㅕ, 金은 ㅓㅑ라고 히였으므로 ㅏㅕㅓㅑ는 闢(장순모음)이라는 뜻이다.

. 天五土之位也. 一地十成土之數也. ㅣ獨無位數者. 盖以人則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ㅣ獨無位數者.....妙合而凝 : 앞의 位數圈에서 ㅣ모음은 아무데도 배정이 않되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한 부분이다.
중성자의 제자원리를 설명할 때 ㅣ 모음계에 대하여 "形之立 象乎人也"라고 하였으므로
ㅣ모음은 人이 되는데 이 人에 대한 태극도설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固未可以定位成數論也. 是則中聲之中. 亦自有陰陽五行方位之數也.
以初聲對中聲而言之. 陰陽. 天道也. 剛柔. 地道也..

以初聲對中聲而言之.....地道也 : 여기서는 邵雍의 황극경세성음창화도의 술어를 훈민정음과 결부시켜 설명했다.
소옹은 모음을 天聲, 자음을 地音이라고 했는데, 음양은 모음과 관계되는 술어이기 때문에
천에 강유는 자음과 관계가 있어 지에 결부시켰다.

中聲者. 一深一淺一闔一闢. 是則陰陽分而五行之氣具焉. 天之用也..

中聲者.....天地用也 : 모음의 모든 성질을 한데 모아 설명한 것이다.
예컨대, . 는 深, ㅣ는 淺, ㅗ는 闔, ㅏ는 闢이다. 중성의 모든 성질을 천의 用으로 설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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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재(天地人)는 온갖 사물의 앞이 되되, 하늘이 또 삼재의 처음이 되나니
. ㅡㅣ 석자가 여덟 소리의 머리가 되며 . 가 또 석자의 머리가 됨과 같다.
ㅗ가 처음으로 하늘에서 나니, 하늘이 첫째로 물을 내는 자리이다. ㅏ가 다음되니 하늘이 셋째로 나무를 내는 자리이며,
ㅜ가 처음으로 땅에서 나니, 땅이 둘째로 불을 내는 자리이다. ㅓ가 다음이 되니, 땅이 넷째로 쇠를 내는 자리이다.
ㅛ가 다시 하늘에서 나니, 하늘이 일곱째로 불을 이루는 수이다. ㅑ가 다음이 되니, 하늘이 아홉째로 쇠를 이루는 수며,
ㅠ가 다시 하늘에서 나니, 땅이 여섯째로 물을 이루는 수이다. ㅕ가 다음이 되니, 땅이 여덟째로 나무를 이루는 수이다.
물과 불이 아직 기운이 나누이지 못함은, 음과 양이 사귀어 어울린 처음이므로 닫히고,
나무와 쇠는 음과 양의 정해진 바탕이므로 열리는 것이다.
. 는 하늘이 다섯째로 흙을 내는 자리이고, ㅡ는 땅이 열째로 흙을 이루는 수이며,
ㅣ는 홀로 자리와 수가 없음은 대개 사람은 무극의 진리와 음양 오행의 정기가 묘하게 어울리어 엉긴 것이며
진실로 한정된 자리와 이루는 수로써 의논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가운데 소리 중에 또한 스스로 음양 오행 방위의 수가 있음이다.
첫 소리를 가운데 소리에 대비하여 말한다면, 음과 양은 하늘의 이치이고, 단단함과 부드러움은 땅의 이치이다.
가운데 소리는 하나가 깊으면 하나가 얕으며, 하나가 닫히면 하나가 열리는데,
이는 곧 음과 양이 나뉘고 오해의 기운이 갖추어진 하늘의 쓰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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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聲者. 或虛或實或 或滯或重若輕. 是則剛柔著而五行之質成焉. 地之功也..

初聲者......地之功也 : 자음의 모든 성질을 한데 모아 설명한 것이다.
예컨대 虛는 후음, 實은 아음, 은 설음, 滯는 치음, 或重或輕은 순중음과 순경음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초성과 땅이 결부된 것으로 보고 초성의 모든 성질을 지의 功으로 설명한 것이다.

中聲以深淺闔闢唱之於前. 初成以五音淸濁. 和之於後. 而爲初亦爲終. 亦可見萬物初生於地. 復歸於地也.
以初中終合成之字言之. 亦有動靜互根陰陽交變之義焉. 動者. 天也. 靜者. 地也. 兼乎動靜者. 人也..

以初中終......兼乎動靜者 人也 : 초성자, 중성자, 종성자를 각각 字索처럼 생각하고
이들을 합해져 하나의 문자단위, 즉 음절문자처럼 쓰이는 것을 천지인삼재와 음양설을 가지고 설명한 것이다.

盖五行在天則神之運也. 在地則質之成也. 在人즉仁禮信義智神之運也.
肝心脾肺腎質之成也. 初聲有發動之義. 天之事也. 終聲有止定之義. 地之事也. 中聲承初之生. 接終之成. 人之事也.
盖字韻之要在於中聲. 初終合而成音. 亦猶天地生成萬物. 而其財成輔相則必賴乎人也.
終聲之復用初聲者. 以其動而陽者乾也. 靜而陰者亦乾也. 乾實分陰陽而無不君宰也..

終聲之復用初聲者.....無不君宰也 : 초성자가 그대로 종성자로 사용되는 것을 易理로 설명한 것이다.
天=乾=초성자

一元之氣周流不窮. 四時之運. 循環無端. 故貞而復元..

貞而復元 : 성리대전 理氣篇에 주자의 말인 "以一歲言之 有春夏秋冬 以乾言之 有元亨利貞"이라는 것이 있고,
또 "貞復生元 無窮如此라는 것이 있는데, 元亨利貞 春夏秋冬으로 보고 설명을 전개한 것이다.

冬而復春. 初聲之復爲終. 終聲之復爲初. 亦此義也. 旴. 正音作而天地萬物之理咸備.
其神矣哉. 是殆天啓聖心而假手焉者乎. 訣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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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리는 혹은 비고 혹은 차며, 혹은 드날리고 혹은 걸리며, 혹은 무겁고 혹은 가벼움은
이는 곧 단단함과 부드러움이 나타나서 오행의 바탕을 이룸이니, 땅의 공이다.
가운데 소리는 깊고 얕고 닫히고 열림으로써 앞에서 부르고,
첫 소리는 다섯 소리의 맑고 흐림으로써 뒤에서 화답하여 처음도 되고 끝도 되니
또한 온갖 사물이 처음에 땅에서 나와 다시 땅으로 돌아감을 볼 수 있다.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가 어울리어 글자가 된 것을 말하면, 또한 움직임과 고요함이 서로 뿌리되며,
음과 양이 사귀어 바뀌는 뜻이 있나니, 움직임은 하늘이고, 고요함은 땅이고, 움직임과 고요함을 겸한 것은 사람이다.
대개 오행이 하늘에 있어서는 신의 운행이고, 땅에 있어서는 바탕의 이룸이고,
사람에 있어서는 어짊과 예도와 믿음과 의와 슬기가 신의 운행이며, 간장과 심장과 비장과 폐장과 신장은 바탕의 이룸이다.
첫 소리는 발하고 움직이는 뜻이 있으니, 하늘의 일이고, 끝 소리는 그치고 머무르는 뜻이 있으니, 땅의 일이고,
가운데 소리는 첫 소리의 남을 이으며, 끝 소리의 이룸을 이어줌으로 사람의 일이다.
대개 자운의 중심은 가운데 소리에 있어서 첫 소리와 끝 소리가 어울리어 소리를 이루는 것이
또한 하늘과 땅이 온갖 사물을 낳아 이루되 그 재물을 이룩하는 것을 반드시 사람에게 힘입음과 같음이다.
끝 소리에 다시 첫 소리를 쓰는 것은 그 움직이고 양인 것도 건이고, 고요하고 음인 것도 또한 건이니,
건은 진실로 음과 양이 나뉘지만 다스리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다. 한 원의 기운이 두루 흘러 다하지 아니하고
네 철의 운행이 돌고 돌아 끝이 없으므로 정에서 다시 원으로 되며, 겨울에서 다시 봄으로 되는 것이니,
첫 소리가 다시 끝이 됨과 끝 쇠리가 다시 처음이 됨이 또한 이 뜻이다.
아아, 정음이 지어짐에 하늘과 땅과 온갖 사물의 이치가 모두 갖추어지니, 그 신령스럽기도 하다.
이 아마 하늘이 임금님의 마음을 열으시어 솜씨를 빌린 것임일 것이다. 간추려 이르건대,



天地之化本一氣 천지의 기운은 본디 한 기운이며
陰陽五行相始終 음양 오행 서로 처음 되며 끝이 되었다.
物於兩間有形聲 두 사이에 있는 사물이 꼴과 소리 다 있으되
元本無二理數通 본디 근본은 두 이치 없으니 이수가 통한다.
正音制字尙其象 정음의 글자 지음은 그 모양을 본따서
因聲之 每加 세게 나는 소리 따라 매양 획을 더 하였다.
音出牙舌脣齒喉 소리는 어금니, 혀, 입술, 이, 목구멍에서 나오니
是爲初聲字十七 이것이 첫 소리로 열일곱 글자로다.
牙取舌根閉喉形 어금니 소리는 혀뿌리가 목구멍을 닫는 꼴을 본뜨며,
唯業似欲取義別  (業)만은 ㅇ(欲)와 비슷하나 뜻을 취함이 다르며
舌 象舌附上 혀 소리는 혀끝이 윗 잇몸에 붙음이고,
脣則實是取口形 임술소리는 진실로 입의 꼴을 본뜸이며,
齒喉直取齒喉象 잇소리와 목구멍 소리도 바로 이와 목구멍 꼴을 본땄으니
知斯五義聲自明 이 다섯자의 이치 알면 소리 절로 밝아진다.
又有半舌半齒音 또한 반혀소리 ㄹ자와 반잇소리  자가 있으니
取象同而體則異 본뜸은 한 가지나 모양만은 다르다.
那彌成欲聲不 ㄴ(那) ㅁ(彌) ㅅ(成) ㅇ(欲)은 센 소리가 아니므로
次序雖後象形始 차례로는 뒤로되 상형에는 처음이다.
配諸四時與沖氣 네 철과 음양 화기 두루 맞아 짝이 되어,
五行五音無不協 오행과 오음이 안 어울림이 없다.
維喉爲水冬與羽 목구멍 소리는 물(水)이며 겨울(冬)이며 우(羽)가 되며,
牙 春木其音角 어금니 소리는 봄(春)이며 나무(木)이며 그 음이 각(角)이다.
치音夏火是舌聲 치음은 여름(夏)이며 불(火)이며 혀소리(舌)이며,
齒則商秋又是金 잇소리는 상(商)이며 가을(秋)이며 또한 쇠(金)이다.
脣於位數本無定 입술소리는 위치나 수에서나 본디부터 정함 없어도,
土而季夏爲宮音 흙(土)이 되고 늦 여름(季夏)의 궁(宮) 소리로 된다.
聲音又自有淸濁 소리는 본디부터 맑고 흐림이 있으니,
要於初發細推尋 반드시 처음 남에 자세히 살필 것이다.
全淸聲是君斗霰 온 맑은 소리로는 ㄱ(君) ㄷ(斗) ㅂ(霰)이며,
卽成相亦全淸聲 ㅈ(卽) ㅅ(成) ㅡ(읍) 또한 온 맑음 소리이다.
若 快呑漂侵虛 ㅋ(快) ㅌ(呑) ㅍ(漂) ㅊ(侵) ㅎ(虛)과 같은 것은,
五音各一爲次淸 다섯 소리 제 각각 버금 맑음 소리이다.
全濁之聲糾覃步 온 흐림 소리는 ㄲ(糾) ㄸ(覃) ㅃ(步)과
又有慈邪亦有洪 ㅉ(慈) ㅆ(邪)과 또  (洪)이 있다.
全淸竝書爲全濁 온 맑음 소리를 나란히 쓰면 온 흐림 소리가 되는데,
有洪自虛是不同 다만  (洪)이 ㅎ(虛)에서 된 것만 같지 않다.
業那彌欲及閭穰  (業) ㄴ(那) ㅁ(彌)과 ㄹ(閭)  (穰)은
其聲不淸又不濁 그 소리가 맑지도 않고 흐리지도 않다.
欲之連書爲脣輕 ㅇ(欲)을 이어 쓰면 입술 가벼운 소리가 되니,
喉聲多而脣乍合 목구멍 소리 많고 입술은 조금 붙는다.
中聲十一亦取象 가운데 소리 열 하나 또한 꼴을 본땄으니,
精義未可容易觀 자세한 뜻은 쉬이 보이지 못할 것이다.
呑擬於天聲最深 . (呑)는 하늘 본뜸이라 소리 가장 깊으니,
所以圓形如彈丸 그러므로 둥근 꼴이 탄알 모양 같으니,
卽聲不深又不淺 ㅡ(卽) 소리는 깊지도 않고 또 앝지도 않으니,
其形之平象乎地 그 모양 평평함이 땅을 본뜸이고
侵象人立所聲淺 ㅣ(侵)는 사람 선 꼴로서 그 소리는 얕으니,
三才之道斯爲備 삼재의 이치는 이에 갖추어 졌다.
洪出於天尙爲闔 ㅗ(洪)는 하늘에서 나서 아직 닫힌 것이니,
象取天圓合地平 하늘이 둥글고 땅이 평평함을 아울러 본뜨고,
覃亦出天爲己闢 ㅏ(覃)는 또한 하늘에서 나서 이미 열린 것이니,
發於事物就人成 일과 사물에 나타나 사람에서 이룸이다.
用初生義一其圓 처음 나는 뜻으로써 둥글음이 하나이나,
出天爲陽在上外 하늘에서 나와 양이 되어 위와 밖에 있으며,
欲穰兼八爲再出 ㅛ(欲)와 ㅑ(穰)는 사람을 겸해 다시 남이 되나니,
二圓爲形見其義 둥근 꼴을 둘로 하여 그 뜻을 보인 것이다.
君業成霰出於地 ㅜ(君)와 ㅓ(業)와 ㅠ(成)와 ㅕ(霰)는 땅에서 나옴이니,
據例自知何須評 예로 미루어 알 것이라 다시 무엇을 이루리.
呑之爲字貫八聲 . (呑)자가 여덟 소리를 일관하고 있는 것은
維天之用偏流行 하늘의 쓰임이 두루 흘러 다님이고,
四聲兼人亦有由 네 소리가 사람을 겸함 또한 까닭이 있으니,
人參天地爲最靈 하늘 땅에 참여하여 사람이 가장 신령함이다.
且就三聲究至理 세가지 소리에 나아가 깊은 이치를 또 살피면,
自有剛柔與陰陽 스스로 단단함과 부드러움 음과양이 있으니
中是天用陰陽分 가운데 소리는 하늘의 쓰임으로 음과 양이 나뉘고
初 地功剛柔彰 첫 소리는 땅의 공으로 단단하고 부드럽다.
中聲唱之初聲和 가운데 소리가 부르면 첫 소리가 화답함은
天先乎地理自然 땅보다 하늘이 앞선 자연의 이치이다.
和者爲初亦爲終 화답함은 처음이 되며 끝도 되나니,
物生復歸皆於坤 사물이 났다 돌아감이 모두 땅에 있다.
陰變爲陽陽變陰 음이 바뀌어 양이 되고 양이 바뀌어 음이 되니,
一動一靜互爲根 움직이고 고요함이 서로 ㅃ부리가 된다.
初聲復有發生義 첫 소리는 다시 발하는 뜻이 있으니
爲陽之動主於天 움직임의 양이 되어 하늘에 주장하고,
終聲比地陰之靜 끝 소리는 땅에 견주어 고요함의 음이 되니,
字音於此止定焉 글자 소리 여기에서 그칠 자리를 잡힌다.
韻成要在中聲用 소리를 이루는 중요함이 가운데 소리에 있으니,
人能輔相天地宜 사람이 능히 하늘과 땅을 ㄱ고 돕는다.
陽之爲用通於陰 양의 쓰임 됨이 음에도 통하여서,
至而伸則反而歸 이르러 펴면 다시 돌아오게 되니,
初終雖云分兩儀 처음과 끝 소리가 음양으로 나뉜다 하지만은,
終用初聲義可知 끝 소리에 첫 소리를 쓰는 뜻을 알 것이다.
正音之字只卄八 정음의 글자 수가 스물 여덟 뿐이로되,
探 錯綜窮深幾 어려운 이치를 찾아 깊은 것을 뚫었으며,
指遠言近爽民易 뜻은 멀되 말 가까워 백성을 인도하기 좋을 것이니,
天授何曾智巧爲 하늘의 주심이라 재주로만 어찌 되겠는가?



####참고문헌####
강신항. 訓民正音. 신구문화사. 1974.
강신항. 訓民正音硏究.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87.
박병채. 訓民正音. 박영사. 1976.
박종국. 訓民正音. 정음사.

 

 
한글의 위대성(한겨레 신문)
 
1) 1997년 10월1일,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문자는?
2) 1998년부터 2002년 말까지 유네스코는 말뿐인 언어 2900여종에 가장 적합한 문자를 찾는 연구를 했는데, 여기서 최고의 평가를 받은 문자는?
3) 유네스코가 문맹퇴치 기여자에게 주는 상의 이름은 어떤 문자를 염두에 두고 지어졌나?
4) 지구상 100여개의 문자 가운데 제작자 그리고 제작 원리와 이념이 정리되어 있는 유일한 문자는?
5)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에서 사용하는 문자는? 6) 일본의 오사카시는 엑스포 기념 세계민족박물관을 지어 세계의 문자를 전시했는데, 이 가운데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문자는? 7) 언어학 연구에서 세계 최고라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언어학대학이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실용성 등의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긴 결과 1등을 차지한 문자는? 8) 컴퓨터 자판에서 모음은 오른손으로, 자음은 왼손으로 칠 수 있는 유일한 문자는? 9) 이동전화의 한정된 자판을 가장 능률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 디지털시대의 총아로 떠오를 문자는? 10) 발음기관의 움직임과 작용, 음성학적 특질을 본떠 만들었으며, 음양오행의 철학적 원리와 하늘·땅·사람의 존재론적 구조를 담고 있는 문자는? 11) 〈대지〉의 작가 펄 벅이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평가했고, 〈알파베타〉의 저자 존 맨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말한 문자는? 12) 언어학자 라이샤워 교수가 “가장 과학적인 표기체제”라고, 시카고대학의 매콜리 교수는 “10월9일이면 꼭 한국 음식을 먹으며 지낸다”며 존경심을 털어놓은 문자는? 13) 영국 리스대학교의 제프리 샘슨 교수가, 기본글자에 획을 더해 동일 계열의 글자(ㄱ, ㄲ, ㅋ)를 만든 독창성은 어떤 문자에서도 볼 수 없다고 칭송한 문자는? 14) 그런데, 정작 그 나라 사람들은 그 귀함과 고마움을 잘 모르는 문자는?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한겨레 신문)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만 프랑스에서 세계언어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학술회의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학자들은 참가하지 않았는데, 그 회의에서 한국어를 세계공통어로 쓰면 좋겠다는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KBS1, 96.10.9)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글의 우수성을 정작 우리 자신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1986년 5월, 서울대학 이현복 교수는 영국의 리스대학의 음성언어학과를 방문하였다. 그때 리스대학의 제프리 샘슨(Geoffrey ampson) 교수는 한글이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도 독특하지만 기본글자에 획을 더하여 음성학적으로 동일계열의 글자를 쪼개 만들어 내는 방법(ㄱ-ㅋ-ㄲ)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훌륭하다고 극찬하였다. 그러면서 한글을 표음문자이지만 새로운 차원의 자질문자(feature system)로 분류하였다. 1985년에 펴낸 <<문자체계 Writing System>>라는 저서에서는 한글을 특별히 독립된 장으로 다루면서, 그것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극찬한 바 있다. 한글은 그때까지 전통적인 문자 분류방식에 따라 음소(音素)문자로 분류되어 왔는데, 사실은 음소라는 알파벳 경지를 넘어 그보다 더 세분된 단위인 자질(自質)까지 지니고 있으므로 자질문자란 개념을 덧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프리 샘슨 교수가 우리의 문화를 좀 더 알기를 원해 덕수궁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덕수궁 안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 앞에 이르러 갑자기 큰절을 올리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문자를 만들어 주신 분이라고.

또 미국 시카고 대학의 매콜리 교수도 해마다 한글날이면 강의마저 휴강한채 집으로 학생들을 불러모아 파티를 연다고 한다. 한글날은 한국사람 뿐만 아니라 언어학자라면 반드시 기념해야될 경사스런 날이라면서 매년 기념행사를 갖는다고 한다. 그리고 방문한 분들께 꼭 한국 전통음식을 대접한다고 한다.

언어 연구학으로는 세계 최고인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학 대학에서 세계 모든 문자를 순위를 매겨(합리성,과학성,독창성... 등의 기준으로) 진열해 놓았는데 그 1위는 자랑스럽게도 [한글]이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997년10월1일, 유네스코에서 우리나라 훈민정음을 세계기록 유산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디스커버지 수록기사 전문 (그림 사진 제외)
1. 한글에 관한 디스커버리기사 전문
Writing Right
By Jared Diamond
Some written languages are a precise reflection of a people's speech, while others, like english, are a complete mess. Is this alphabetical evolution? Or the unequal application of logic to literacy?

Do you know how to read and write English? You answer, "Of course, Jared Diamond, you dope. How else would I be reading this magazine?" In that case, have you ever tried to explain the rules behind written English to someone? The logic, say, of spelling the word seed as we do instead of cede, ceed, or sied? Or why the sound sh can be written as ce (as in ocean), ti (as in nation), or ss (as in issue), to name just a few possibilities?

Innumerable examples like these illustrate the notorious difficulties of written English, even for educated adults. As I am now rediscovering through my twin sons in the first grade, English spelling is so inconsistent that children who have learned the basic rules (insofar as there are any) still can't pronounce many written words or spell words spoken to them. Danish writing is also difficult, Chinese and South Korean harder, and Japanese hardest of all. But it didn't have to be that way. French children can at least pronounce almost any written word, though they often cannot spell spoken words. In Finland and North Korea the fit between spoken sounds and written signs is so nearly perfect that the question "How do you spell it?" is virtually unknown.

"Civilized" people have always considered literacy as the divide between themselves and barbarians. Surely, if we civilized English speakers sat down to devise a writing system, we could do as well as Finns or North Koreans. Why, then, is there such variation in the precision of writing systems? With thousands of years of literacy now behind us, are today's writing systems--even imperfect ones like our own--at least more precise than ancient ones, such as Egyptian hieroglyphics? Why do we, or any other people, cling to systems that are demonstrably lousy at doing what they're supposed to do?

Before exploring these questions, we need to remind ourselves of the three basic strategies that underlie writing systems. The strategies differ in the size of the speech unit denoted by one written sign: either a single basic sound, or a whole syllable, or a whole word.

The most widespread strategy in the modern world is the alphabet, which ideally would provide a unique sign--a letter--for every basic sound, or phoneme, of the language. Another widespread strategy employs logograms, written signs that stand for whole words. Before the spread of alphabetic writing, systems heavily dependent on logograms were common and included Egyptian hieroglyphs, Mayan glyphs, and Sumerian cuneiform. Logograms continue to be used today, notably in Chinese and in kanji, the predominant writing system employed by the Japanese.

The third strategy uses a sign for each syllable. For instance, there could be separate signs for the syllables fa, mi, and ly, which could be strung together to write the word family. Such syllabaries were common in ancient times, as exemplified by the Linear B writing of Mycenaean Greece. Some persist today, of which the most important is the kana syllabary, used by the Japanese for telegrams, among other things.

I've intentionally termed these three approaches strategies rather than writing systems because no actual writing system employs one strategy exclusively. Like all "alphabetic" writing systems, English uses many logograms, such as numerals and various arbitrary signs-- +, $, %, for example--that are not made up of phonetic elements. "Logographic" Egyptian hieroglyphs included many syllabic signs plus a virtual alphabet of individual letters for each consonant.

Writing systems are still coming into existence, consciously designed by trained linguists. Missionaries, for example, are translating the Bible into native languages of New Guinea, and Chinese government linguists are producing writing materials for their tribal peoples. Most such tailor-made systems modify existing alphabets, although some instead invent syllabaries. But those conscious creations are developed by professional linguists, and linguistics itself is barely a few centuries old. How did writing systems arise before that--also through purposeful design, or by slow evolution? Is there any way we can figure out whether Egyptian hieroglyphs, for example, were a conscious creation?

One way of approaching that question is to look at historical examples of systems that we know were consciously designed by nonprofessionals. A prime example is Korea's remarkable hangul alphabet. By the fifteenth century, when this alphabet was invented, Koreans had been struggling for more than 1,000 years with cumbersome adaptations of already cumbersome Chinese writing--a "gift" from their larger, influential neighbor. The unhappy results were described in 1446 by Korea's King Sejong:

"The sounds of our country's language differ from those of the Middle Kingdom [China] and are not confluent with the sounds of our characters. Therefore, among the ignorant people there have been many who, having something they want to put into words, have in the end been unable to express their feelings. I have been distressed because of this, and have newly designed 28 letters, which I wish to have everyone practice at their ease and make convenient for their daily use."

The king's 28 letters have been described by scholars as "the world's best alphabet" and "the most scientific system of writing." They are an ultrarational system devised from scratch to incorporate three unique features.

First, hangul vowels can be distinguished at a glance from hangul consonants: the vowels are written as long vertical or horizontal lines with small attached marks; consonants, meanwhile, are all compact geometric signs. Related vowels or consonants are further grouped by related shapes. For example, the signs for the round vowels u and o are similar, as are the signs for the velar consonants g, k, and kh.

Even more remarkable, the shape of each consonant depicts the position in which the lips, mouth, or tongue is held to pronounce that letter. For instance, the signs for n and d depict the tip of the tongue raised to touch the front of the palate; k depicts the outline of the root of the tongue blocking the throat. Twentieth-century scholars were incredulous that those resemblances could really be intentional until 1940, when they discovered the original draft of King Sejong's 1446 proclamation and found the logic explicitly spelled out.

Finally, hangul letters are grouped vertically and horizontally into square blocks corresponding to syllables, separated by spaces greater than those between letters but less than those between words. That's as if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were to contain the sentence:

A me a cr a te e qua

ll n re e d l

As a result, the Korean hangul alphabet combines the advantages of a syllabary with those of an alphabet: there are only 28 signs to remember, but the grouping of signs into larger sound bites facilitates rapid scanning and comprehension.

The Korean alphabet provides an excellent example of the cultural phenomenon of "idea diffusion." That phenomenon contrasts with the detailed copying often involved in the spread of technology: we infer that wheels, for example, began to diffuse across Europe around 3500 B.C. because all those early wheels conformed to the same detailed design. However, the Korean alphabet conformed to no existing design; instead it was the idea of writing that diffused to Korea. So too did the idea of square blocks, suggested by the block format of Chinese characters; and so did the idea of an alphabet, probably borrowed from Mongol, Tibetan, or Indian Buddhist writing. But the details were invented from first principles.

There are many other writing systems that we know were deliberately designed by historical individuals. In addition, there are some ancient scripts that are so regularly organized that we can safely infer purposeful design from them as well, even though nothing has come down to us about their origins.

For example, we have documents dating from the fourteenth century B.C., from the ancient Syrian coastal town of Ugarit, that are written in a doubly remarkable 30-letter alphabet. The letters were formed by a technique then widespread in the Near East called cuneiform writing, in which a reed stylus was pressed into a clay tablet. Depending on the stylus's orientation, a sign could be a wedge-tipped vertical line, a wedge-tipped horizontal line, or a broad wedge.

The Ugaritic alphabet's most striking feature is its regularity. The letterforms include one, two, or three parallel or sequential vertical or horizontal lines; one, two, or three horizontal lines crossed by the same number of vertical lines; and so on. Each of the 30 letters requires, on average, barely three strokes to be drawn, yet each is easily distinguished from the others. The overall result is an economy of strokes and consequently, we assume, a speed of writing and ease of reading. The other remarkable feature of the Ugaritic alphabet is that the letters requiring the fewest strokes may have represented the most frequently heard sounds of the Semitic language then spoken at Ugarit. Again, this would make it easier to write fast.

Those two laborsaving devices could hardly have arisen by chance. They imply that some Ugarit genius sat down and used his or her brain to design the Ugaritic alphabet purposefully. As we shall see, by 1400 B.C. the idea of an alphabet was already hundreds of years old in the Near East. And cuneiform writing was by then nearly 2,000 years old. However, as with King Sejong's 28 letters, the Ugarit genius received only those basic ideas by diffusion, then designed the letterforms and the remaining principles independently.

There were other ancient writing systems with such regular organization and for which we can similarly infer tailor-made creation. Furthermore, evidence suggests that even some highly irregular systems were consciously designed. The clearest example of these is the most famous of all ancient writing systems: Egyptian hieroglyphics, a complex mixture of logograms, syllabic signs, unpronounced signs, and a 24-letter consonantal alphabet. Despite this system's complexity, two facts suggest that the underlying principles were quickly designed and did not evolve through a lengthy process of trial and error. The first is that Egyptian hieroglyphic writing appears suddenly around 3050 B.C. in nearly full-blown form, as annotations to scenes carved on ceremonial objects. Even though Egypt's dry climate would have been favorable for preserving any earlier experiments in developing those signs, no such evidence of gradual development has come down to us.

The other fact arguing for the deliberate creation of Egyptian hieroglyphic writing is that it appears suspiciously soon after the appearance of Sumerian cuneiform a couple of centuries earlier, at a time of intense contact and trade linking Egypt and Sumer. It would be incredible if, after millions of years of human illiteracy, two societies in contact happened independently to develop writing systems within a few hundred years of each other. The most likely explanation, again, is idea diffusion. The Egyptians probably learned the idea and some principles of writing from the Sumerians. The other principles and all the specific forms of the letters were then quickly designed by some Egyptian who was clever, but not quite as clever as Korea's King Sejong.

So far, I've been discussing writing systems created by conscious design. In contrast, other systems evolved by a lengthy process of trial and error, with new features added and old features modified or discarded at different stages. Sumerian cuneiform, the oldest known writing system in the world, is one prime example of such an evolved writing system.

Sumerian cuneiform may have begun around 8000 B.C. in the farming villages of the prehistoric Near East, when clay tokens of various simple shapes were developed for accounting purposes, such as recording numbers of sheep. In the last centuries before 3000 B.C., changes in accounting technology and the use of signs rapidly transformed the tokens into the first system of writing. This included a number of innovations, such as the organization of writing into horizontal lines. The most important, however, was the introduction of phonetic representation. The Sumerians figured out how to depict an abstract noun, one that could not be readily drawn as a picture, with another sign that was depictable and that had the same phonetic pronunciation. For instance, it's hard to draw a recognizable picture of life, say, but easy to draw a recognizable picture of arrow. In Sumerian, both these words are pronounced ti. The resulting ambiguity was resolved by adding a silent sign called a determinative to indicate the category of noun the intended object belonged to. Later the Sumerians expanded this phonetic practice, employing it to write syllables or letters constituting grammatical endings.

While revolutionary, the phonetic signs in Sumerian writing nonetheless fell far short of a complete syllabary or alphabet. Some symbols lacked any written sign, while the same sign could be written in different ways or be read as a word, syllable, or letter. The result was a clumsy mess. Eventually, as with the subsequent users of cuneiform writing and along with the 3,000 years of Egyptian hieroglyphics, all passed into oblivion, vanquished by the advantages of more precise alphabetic writing.

Most areas of the modern world write by means of alphabets because they offer the potential advantage of combining precision with simplicity. Alphabets apparently arose only once in history: among speakers of Semitic languages, roughly in the area from modern Syria to the Sinai, during the second millennium B.C. All the hundreds of ancient and modern alphabets were ultimately derived from that ancestral alphabet, either by idea diffusion or by actually copying and modifying letterforms.

There are two likely reasons that alphabets evolved first among Semites. First, Semitic word roots were specified uniquely by their consonants; vowels merely provided grammatical variations on that consonantal root. (An analogy is the English consonantal root s-ng, where vowel variations merely distinguish verb tenses--sing, sang, and sung--from one another and from the corresponding noun song.) As a result, writing Semitic languages with consonants alone still yields much of the meaning. Consequently, the first Semitic alphabet makers did not yet have to confront the added complication of vowels.

The second reason was the Semites' familiarity with the hieroglyphics used by nearby Egypt. As in Semitic languages, Egyptian word roots also depended mainly on consonants. As I've mentioned, Egyptian hieroglyphics actually included a complete set of 24 signs for the 24 Egyptian consonants. The Egyptians never took what would seem (to us) to be the logical next step of using just their alphabet and discarding all their other beautiful but messy signs. Indeed, probably no one would have noticed that the Egyptians even had a consonantal alphabet lost within their messy writing system had it not been for the rise of a true alphabet. Starting around 1700 B.C., though, the Semites did begin experimenting with that logical step.

Restricting signs to those for single consonants was only one crucial innovation that distinguished alphabets from other writing systems. Another helped users memorize the alphabet by placing the letters in a fixed sequence and giving them easy-to-remember names. Our English names are otherwise-meaningless monosyllables ("a," "bee," "cee," "dee," and so forth). The Greek names are equally meaningless polysyllables ("alpha," "beta," "gamma," "delta"). Those Greek names arose, in turn, as slight modifications, for Greek ears, of the Semitic letter names "aleph," "beth," "gimel," "daleth," and so on. But those Semitic names did possess meaning to Semites: they are the words for familiar objects (aleph = ox, beth = house, gimel = camel, daleth = door). Those Semitic words are related "acrophonically" to the Semitic consonants to which they refer--that is, the first letter of the object is also the letter that is named for the object. In addition, the earliest forms of the Semitic letters appear in many cases to be pictures of those same objects.

A third innovation laying the foundations for modern alphabets was the provision for vowels. While Semitic writing could be figured out even without vowel signs, the inclusion of vowels makes it more comprehensible since vowels carry the grammatical information. For Greek and most other non-Semitic languages, however, reading is scarcely possible without vowel signs. (Try reading the example "ll mn r crtd ql," used earlier in the Korean hangul format.)

The Semites began experimenting in the early days of their alphabet by adding small extra letters to indicate selected vowels (modern Arabic and Hebrew indicate vowels by dots or lines sprinkled above or below the consonantal letters). The Greeks improved on this idea in the eighth century B.C., becoming the first people to indicate all vowels systematically by the same types of letters used for consonants. The Greeks derived the forms of five vowel letters by co-opting letters used in the Phoenician Semitic alphabet for consonantal sounds lacking in Greek.

From those earliest Semitic alphabets, lines of evolutionary modifications lead to the modern Ethiopian, Arabic, Hebrew, Indian, and Southeast Asian alphabets. But the line most familiar to us was the one that led from the Phoenicians to the Greeks, on to the Etruscans, and finally to the Romans, whose alphabet with slight modifications is the one used to print this magazine.

As a group, alphabets have undergone nearly 4,000 years of evolution. Hundreds of alphabets have been adapted for individual languages, and some of those alphabets have now had long separate evolutionary histories. The result is that they differ greatly in how precisely they match signs to sounds, with English, linguists agree, being the worst of all. Even Danish, the second worst, doesn't come close to us in atrocity.

How did English spelling get to be so imprecise? (As a reminder of how bad it is, recall seven fascinating ways we can pronounce the letter o: try horse, on, one, oven, so, to, and woman.) Part of the reason is simply that it has had a long time to deteriorate--the English language has been written since about A.D. 600. Even if a freshly created writing system at first represents a spoken language precisely, pronunciation changes with time, and the writing system must therefore become increasingly imprecise if it is not periodically revised. But German has been written for nearly as long as has English, so that's not the sole answer. Another twist is spelling reforms. As anyone familiar with English and German books printed in the nineteenth century knows, nineteenth-century spelling is essentially identical to modern spelling for English, but not for German. That's the result of a major German spelling reform toward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The tragicomic history of English spelling adds to the horror. Those Irish missionaries who adapted the Latin alphabet to Old English did a good job of fitting signs to sounds. But disaster struck with the Norman conquest of England in 1066. Today only about half of English words are of Old English origin; the rest are mostly derived from French and Latin. English words were borrowed from the French using French spellings, according to rules very different from English spelling rules. That was bad enough, but as English borrowings from French continued, French pronunciation itself was changing without much change in French spelling. The result? The French words borrowed by English were spelled according to a whole spectrum of French spelling rules.

English pronunciation itself changed even more radically with time; for example, all written vowels came to sound the same in unstressed syllables. (That is, when pronounced in normal speech, the a in elegant, e in omen, i in raisin, o in kingdom, and u in walrus all sound much the same.) As new words were borrowed from different languages, they were spelled according to the whim of the individual writer or printer. But many English printers were trained in Germany or the Netherlands and brought back still other foreign spelling conventions besides French ones. Not until Samuel Johnson's dictionary of 1755 did English spelling start to become standardized.

While English may have the worst writing system in Europe, it is not the worst in the world. Chinese is even more difficult because of the large number of signs that must be independently memorized. As I said earlier, probably the most gratuitously difficult modern writing system is Japan's kanji. It originated from Chinese writing signs and now has the added difficulty that signs can variously be given Japanese pronunciations or modifications of various past Chinese pronunciations. An attempted remedy that compounds the confusion for Japanese readers is the insertion of spellings in yet another writing system, the kana syllabary, for hard- to-read kanji. As George Sansom, a leading authority on Japanese, put it, back in the 1920s: one hesitates for an epithet to describe a writing system which is so complex that it needs the aid of another system to explain it."

Do sub-ideal writing systems really make it harder for adults to read, or for children to learn to read? Many observations make clear that the answer is yes. In 1928 Turkey switched to the Latin alphabet from the Arabic alphabet, which has the twin disadvantages of a complex vowel notation and of changing the forms of letters depending on where they stand within a word. As a result of the switch, Turkish children learned to read in half the time formerly required. Chinese children take at least ten times longer to learn to read traditional Chinese characters than pinyin, a Chinese adaptation of the Latin alphabet. British children similarly learned to read faster and better with a simplified English spelling termed the Initial Teaching Alphabet than with our conventional spelling. Naturally, the educational problems caused by inconsistent spelling can be overcome by increased educational effort. For example, Japan, with the modern world's most difficult spelling system, paradoxically has one of the world's highest literacy rates--thanks to intensive schooling. Nevertheless, for a given educational effort, a simpler spelling system results in more literate adults.

Hebrew provides interesting proof that not only spelling but also letter shapes make a difference. Hebrew writing has several sets of extremely similar letters: only one letter is distinctively tall, and only one letter stands out by dipping below the line (ignoring the special forms of Hebrew letters at the ends of words). As a result, a study suggests that, on the average, readers of Hebrew have to stare at print for longer than do readers of Latin alphabets in order to distinguish those indistinctive letter shapes. That is, distinctive letter shapes permit faster reading.

Since details of writing systems do affect us, why do so many countries refuse to reform their writing systems? There appear to be several reasons for this seeming perverseness: aesthetics, prestige, and just plain conservatism. Chinese writing and Arabic writing are widely acknowledged to be beautiful and are treasured for that reason by their societies; so were ancient Egyptian hieroglyphics. In Japan and Korea, as in China, mastery of Chinese characters implies education and refinement and carries prestige. It's especially striking that Japan and South Korea stick to their fiendishly difficult Chinese-based characters when each country already has available its own superb simple script: kana for the Japanese, and the hangul alphabet for Korea.

Unlike some of these writing systems, our awful English spelling is not considered beautiful or prestigious, yet all efforts to reform it have failed. Our only excuse is conservatism and laziness. If we wanted, we could easily improve our writing to the level of Finland's, so that computer spell-check programs would be unneeded and no child beyond fourth grade would make spelling errors. For example, we should match English spelling consistently to English sounds, as does the Finnish alphabet. We should junk our superfluous letter c (always replaceable by either k or s), and we should coin new letters for sounds now spelled with arbitrary letter combinations (such as sh and th). Granted, spelling is part of our cultural heritage, and English spelling reform could thus be viewed as a cultural loss. But crazy spelling is a part of our culture whose loss would go as unmourned as the loss of our characteristic English medieval torture instruments.

But before you get too excited about those glorious prospects for reform, reflect on what happened to Korea's hangul alphabet. Although it was personally designed by King Sejong, not even a king could persuade his conservative Sinophilic countrymen to abandon their Chinese-derived script. South Korea persists with the resulting mess even today. only North Korea under Premier Kim Il Sung, a dictator far more powerful than King Sejong ever was, has adopted the wonderful hangul alphabet as the writing norm. Lacking a president with Kim Il Sung's power to ram unwanted blessings down our throats, we Americans shall continue to suffer under spelling rules that become more and more archaic as our pronunciation keeps changing. — June 1994   >> 이상 디스커버 홈페이지에서

 

2. Geoffrey Sampson의 홈페이지 주소

http://www.grsampson.net/

3. 한글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 학자들..
미국에 널리 알려진 과학전문지 디스커버리 지 1994년 6월호 「쓰기 적합함」이란 기사에서, ‘레어드 다이어먼드’라는 학자는‘한국에서 쓰는 한글은 독창성이 있고, 기호 배합 등 효율면에서 특히 돋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이며, 또 한글이 간결하고 우수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또 소설 『대지』의 유명한 여류작가 ‘펄벅’은 한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며,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하였고, 세종대왕을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극찬하였다.

미국 시카고(Chicago) 대학의 세계적인 언어학자 맥콜리(J. McCawley) 교수는 20여 년 동안이나 동료 언어학자들과 학생들, 친지들을 초대해서 한국음식을 차려놓고, 한글날을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언어학계가 한글날을 찬양하고, 공휴일로 기념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 타당한 일이다."고 그는 말한다.

유명한 동아시아 역사가인 하버드대학 라이샤워(O. Reichaurer)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한국인들은 전적으로 독창적이고 놀라운 음소문자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세계 어떤 나라의 문자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표기 체계"라고 말했다. 또 네델란드의 언어학자 보스(F. Vos) 교수는 그의 한국학 논문에서 "한글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라고 평했다.

저명한 언어학자인 영국의 샘슨(G. Sampson) 교수는 "한글이 과학적으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무엇보다도 한글은 발성기관의 소리내는 모습을 따라 체계적으로 창제된 과학적인 문자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문자 자체가 소리의 특질을 반영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외에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생리학자이며, 프리처상 수상자인 다이아몬드(J. Diamond) 교수, 일본 도꾜 외국어대 아세아 아프리카 연구소장인 우메다 히로유끼(梅田博之) 교수,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하는 삿세(W. Sasse) 교수, 파리 동양학 연구소의 파브르(A. Fabre) 교수, 미국 매어리랜드 대학 언어학과 램지(R. Ramsey) 교수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석학들이 한글을 극찬하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 오마이뉴스 당신은 한글을 아시나요? [속보, 연예오락] 2002년 11월 11일 (월) 08:42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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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어느 날, 퇴근 후의 저녁식사 겸 술자리에서 각 나라의 언어에 관한 토론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중국인 직원 눈이 번쩍거리더군요. 그러면서 먼저 자기 나라 언어와 글자에 대한 우수성에 대해 엄청 자랑해대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중국어의 어순은 영어와 거의 비슷해서 사실 중국 사람들은 조금만 노력하면 영어에 금새 적응합니다. 입에 접착제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그들 특유의 사성의 억양만 제외하면 자신들의 말로 생각하는 대로 영어의 단어만 대입하면 되는 경우가 많죠. 게다가 한국인들이나 일본인들이 적응하려고 땀깨나 흘리는 유럽언어의 Z,V,F,R 등의 발음이 중국어에도 존재해서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점은 처음에는 부럽더군요. 그런 때가 되면 일본 사람들도 나섭니다.( 안나서도 되는데..... )일본 말의 아름다음과 또 일본 글자의 우수성(나중에 후회하게 되죠 )에 대해 나름대로의 지식을 피력합니다. 이미 천여년 전에, 아직 다른 아시아 나라들이 중국문자에 독식되어 자신들 고유의 문자를 가지고 있지 못할 때 (이거 한국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자신들은 카타카나와 그에 병행해서 히라가나가 창조됨으로서 독자의 문자체계를 이미 만들었다나 하면서 말입니다. 오기가 생기더군요. 아 물론 코웃음도 나오고요. 그러면서 이제까지 그리 튀지 못했던 나와 내 고향에 대해 자랑할 때도 되었다 싶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중국인 직원들과 일본인 직원들에게 한가지 요청을 했습니다. '맥도널드 햄버거'를 자기 나라 말로 써 보라고요. 그랬더니 중국인 직원은 이렇게 쓰고 읽더군요. McDonald Hamburger 麥當勞 漢堡 (마이당로우 한뽀우) 일본인 직원은 이렇게 쓰고 읽고요. McDonald Hamburger マクドナルドハンバーガー (마꾸도나르도 함바가) 저는 이렇게 쓰고 읽었죠. McDonald Hamburger 맥도널드 햄버거 (맥도널드 햄버거) 하하하하! 그 순간 당황해서 일그러지던 그 중국인 직원과 일본인 직원들의 얼굴을 여러분들에게 보여줄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제가 느꼈던 그 통쾌함과 희열도요. 특히 일본인 직원의 얼굴은 열이 받았는지 얼굴이 시뻘게지더군요. 자기 나라 말이 아닌 단어를 가장 근접한 발음으로 적어낼수 있는 사람이 저 혼자 뿐이었으니 무리도 아닐 겁니다.

주:소리의 표현을 한글은 11,000 (일만 천)개 이상, 일본어는 약 300개, 중국어(한자)는 400 여개, 한글은 세계 언어중 가장 많은 발음을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는 거기 있던 모든 미국인 직원들의 이름을 읽게 하고 각기 자기 나라(한중일) 글로 쓰기를 했는데 중국과 일본 직원들은 한글하고는 게임이 안된다는 걸 결국 깨닫게 되더군요. 그때부터는 저의 독무대였습니다. 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의 구조를 나열하고 그 모든 것이 어떻게 조합되고 소리값을 가지게 되는가 미국인 직원들에게 강의 아닌 강의를 시작한 지 딱 두 시간만에 거기 있는 미국인 직원들 중의 하나가 자기 이름을 한글로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외워서 쓰는 게 아니고 제가 써 놓은 한글의 모양과 발음 기호를 비교하면서 자기 스스로 유추해 내서 조합을 시킨거죠. 그 직원 정말 좋아하더군요. 외국어로 자신의 이름을 금방 쓸 수 있게 되어서 말입니다. 중국인 직원은 가르칠 시도조차! 못하고, 일본인 직원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미국인 직원들이 이해를 못하니까 결국 포기하게 된 후 제가 단 두 시간 만에 영어만 아는 직원에게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쓰게 만들고 보니,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겁게 올라 오는 어떤 자부심에 스스로도 어쩔줄 모르게 감격했습니다. 더더구나 아무 말도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는 중국인과 일본인 직원들을 보니 그 뿌듯함이 더했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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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가 프랑스어보다 아름다운가? ( 김상준의 한국어 바로보기-16 )
“한국어가 프랑스말보다 아름답다!”
최근 ‘욘사마’를 사랑하는 일본의 열성 팬들이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지난 연말 방송계의 원로로부터 들은 이 말은 세계 언어학계를 뒤흔들만한 발언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중국에서 열린 한∙중∙일 3국 방송제작자들의 모임에서 한 일본인 프로듀서가 모임의 공식언어를 한국어로 하자고 제안했다는 말을 들었다. 필자는 이런 말들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말과 프랑스어에는 음성학적으로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 두 나라말에는 ‘ㄴ’구개음과 같은 음이 발달해 있다. 프랑스어의 ‘아비뇽, 다르따냥’에 있는 ‘냥, 뇽’과 같은 음이 한국어에 많이 발달해 있다. ‘상냥, 안녕, 숭늉’과 같은 말이나, ‘청룡[청뇽], 영업용[영엄뇽]’과 같은 말에 있는 음소이다. 받침이 없는 구개음 ‘냐, 녀, 뇨, 뉴, 니'와 같은 음들도 말을 부드럽게 하는 음소이다. 이 계열의 음들은 스페인어를 비롯한 일부 유럽 언어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말소리를 부드럽게 하는 구개음 계열 음소들은 외국인들이 어렵게 느끼는 발음이다. 또한 우리말의 다양한 활용어미들과 의태어 의성어, 경어법 등을 어렵게 느낀다. 외국인들이 어렵다고 하니까, 우리말을 비과학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언어는 비과학적인 말이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조음기관은 다른 어떤 기관보다 과학적으로 돼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한국어는 대단히 과학적인 말일 뿐만 아니라, 언어학적으로 수준이 높은 말이다. 프랑스어는 세계적으로 아름답다고 정평이 나있는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대단히 중요한 조건에서 우리 한국어는 프랑스어보다 우위에 있는 말이다. 프랑스어는 고유의 문자가 없다. 프랑스어를 기록하는 문자는 프랑스 고유의 문자가 아닌 로만 알파벳이다. 알파벳은 로마인이 라틴어를 표기하기 위해 완성한 문자이다. 우리 한국어는 훈민정음이라는 고유의 문자가 있는 말이다. 이렇게 우리 한국어는 음성언어와 문자언어가 완벽하게 갖춰진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와 같은 소수가 사용하는 언어는 머지않아 말살될 것이기 때문에 영어를 공용어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미래의 세계는 영어와 중국어 등 세력이 큰 언어만 남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어를 빨리 공용어로 지정해 교육을 강화하고, 한국어를 버리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들의 주장 중에는 인터넷상의 언어가 영어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미래를 잘 내다보지 못한 결과의 하나이다.인류의 지혜의 산물인 전자통신의 발달로 인해 세계 각국의 언어를 자동 통역하는 기계가 속속 등장하고 있으며, 2020년경에는 통역기의 완성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생활언어의 자동통역이 이뤄지면 당연히 인터넷상에서의 세계 각국 언어도 web으로 연결해 완벽하게 호환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언중의 수는 7500만이다. 어떤 이는 우리 한국어를 일컬어 “다수가 쓰는 언어의 말석, 소수가 쓰는 언어의 선두”로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말과 글의 경쟁력을 연구하는 이들은 “한글과 한국어는 사용하는 언중의 수, 한글의 과학성과 경제성, 그리고 컴퓨터 등의 활용을 바탕으로 해서 영향력 면에서 중국어와 일본어 등 동양언어를 압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영어 등 로마자를 바탕으로 쓰는 언어들과도 충분한 경쟁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동남아와 미주, 유럽 등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높아지면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동남아시아, 중국, 일본 등에서의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한국어에 대한 해외에서의 수요가 커지고 있다. 때맞춰 국회는 2004년 12월 29일 본회의를 열어 국어기본법을 통과시켰다. 국어기본법의 제정으로 안으로는 한국어의 발전을 꾀하고, 밖으로는 국제적 보급과 확산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어렵게 마련된 한국어에 관한 기본법이 자연스러운 한국어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처럼 ‘한글전용이냐’, ‘국한문 혼용이냐’와 같이 국력낭비를 초래하는 논쟁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각종 이익집단이나 개인들이 국익과 무관한 한국어 관련 사업을 펼치려 하거나, 국어전문가 등의 이름으로 자리를 차지려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국민이 감시해야 할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서는 음성언어가 대단히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컴퓨터가 말을 알아듣고 말을 만들어 내는 시대, 전자기기와 인간이 대화를 나누는 시대, 외국인과의 즉시 통역시대는 표준화된 음성언어의 필요성이 절실해질 것이다. 따라서 한국어 정책과 교육도 이와 같은 전자기기와의 대화에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한국어를 ‘정확한 발음, 알맞은 크기, 적절한 속도’를 갖춘 세련된 언어로 가꿔 나가도록 국어기본법이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어는 프랑스말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어야 한다. 또한 각종 국제회의,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회의에서는 “한국어를 공용어로 한다.”는 말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어정책 당국과 교육계, 언론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
  

훈민정음의 위상

 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란 뜻이며, 조선 왕조 제4대 임금인 세종이 그때까지 사용되던 한자가 우리말과 구조가 다른 중국어의 표기를 위한 문자체계여서 대다수 백성들이 배워 사용할 수 없는 사실을 안타까워하여 세종 25년(1443)에 우리말의 표기에 적합한 문자체계를 완성하고 "훈민정음"이라 명명하였다. 세종 28년(1446)에 정인지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설명한 한문해설서를 전권 33장 1책으로 발간하였는데 책의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하였다.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현존 본은 1940년경 경북 안동 어느 고가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국내에서 유일한 귀중본이다.

 

세종은 새로 만든 새문자에 대하여 창제의 목적을 밝힌 서문과 새문자 하나 하나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예시하고 설명한 글을 짓고 집현전의 학자들에게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용례를 짓도록하여 책을 만들고 이것을 백성들에게 널리 공표하였다. 이책에는 세종어제 서문과 훈민정음 음가 및 운용법을 밝힌 예의편이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합자해, 용자해 순으로 기술되어 있다. 세계의 많은 민족들이 자기의 언어를 표기하기 위하여 문자를 만들려고 노력하였으나, 한글과 같이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사람이 이미 존재한 문자에서 직접으로 영향받지 않고 독창적으로 새 문자를 만들고 한 국가의 공용문자로 사용하게 한 일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더욱이 새 문자에 대한 해설을 책으로 출판한 일은 유례가 없었던 역사적인 일이었다. 특히, 이 책에서 문자를 만든 원리와 문자 사용에 대한 설명에 나타나는 이론의 정연함과 엄정함에 대해서는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정인지의 서문이 1446년 음력 9월 상순에 쓰여졌다고 되어 있어 늦어도 음력 9월 10일에 출판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에서 이 책의 출판일을 기념하여 한글날로 제정한 것이나 유네스코에서 문맹퇴치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세종대왕상을 주는 것은 이 책의 문화사적 의의를 나타낸다. 훈민정음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훈민정음, 곧 한글은 28자로 된 알파벳으로, 오늘날에는 4가지가 안 쓰이고 24자만 쓰이는데, 한국어를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배우기와 사용하기에도 편리한 문자체계이다. 문자체계 자체로도 독창적이며 과학적이라고 인정되고 있어 그 의의가 크다 할 것이다. 이 책은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최항, 박팽년, 강희안, 이개, 이선로 등 집현전의 8학자가 집필한 것으로 훈민정음의 내용을 살펴보면 두 부분으로 되었는데 제 1부는 세종이 지은 것으로 책의 본문에 해당된다.

 

본문의 내용은 새문자를 창제한 목적을 천명한 훈민정음 서문과, 새문자 28자를 초성 11자로 나누어 차례로 예시하고 설명한 다음에 이들을 결합하여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예구로 되어 있다. 제2부는 세종의 명령에 따라 젊은 학자들이 지은 본문에 대한 주석이다. 그것은 새문자의 제작원리를 설명한 제자해, 음절 두음을 표기하는 자음 17자를 설명한 초성해, 모음 11자를 설명한 종성 해, 음절말지음을 설명한 종성해, 초성․중성․종성이 결합하여 음절을 표기하는 방법을 설명한 합자해, 새문자로서 단어를 표기한 예를 보인 용자례의 6장으로 나뉜다. 끝에는 정인지의 훈민정음해례본 서문이 붙어있다. 훈민정음은 전체 분량이 본문 4장, 주석과 정인지의 서문 29장으로 된 33장에 지나지 않으나, 이론 전체가 정연하고 서술이 과학적인 내용의 책이다. 문자를 만든 원리와 문자 사용에 대한 설명에 나타나는 이론은 현대의 세계 언어학자들이 높이 평가하고 있다.

 

훈민정음을 서지학적으로 살펴보면 본체가 33장, 표지가 2장으로 된 책인데, 세로 32.3cm,가로 20cm의 크기로 되어 있다. 장정은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5침안으로 된 선장본이다. 책의 크기가 당시 중국과 일본의 책들보다 크다. 이 책은 유려한 글씨로 정료하게 새긴 목판으로 인쇄되어 있다. 사용된 종이나 먹도 우수하여 한국의 15세기 출판문화의 우수함이 드러나 있다. 책장은 각기 2면이 인쇄되어 있는데, 인쇄된 1면의 크기는 세로 23.3cm, 가로 16.5cm이다. 이 책에는 구두점과 성조 표시의 구너점이 사용되어 있다. 세종이 창제한 새 글자는 오늘날까지 자형이 조금씩 변화되어 왔으나 이 책의 자형이 가장 초기의 모습이다.     

증산도에서 보는 한글

 

장차 우리 나라 말과 글을 세계 사람들이 배워가리라 한글은 세계 어느 나라의 어떤 문자보다도 매우 과학적이며 철학적이다. 그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와 문자는 그 민족의 정서와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아가 역사까지도 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증산 상제님께서 ‘장차 천하만방의 언어, 풍속, 관습, 문자를 하나로 통일하리라.(도전 2:16)?’, ‘우리 나라 말과 글을 세계 사람들이 배워가리라.(도전 7:66)’라고 하셨다. 장차 세계 공용어가 될 우리글,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감히 한마당 글을 펼쳐보고자 한다.

 

한글의 기원은 가림토 문자

 

우리는 흔히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 선포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 전해진 것으로 한글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단군 시대에 만들어진 유서 깊은 글자다. 정확히 말해 단군3세 가륵임금 때인 B.C 2181년에 정음 38자를 만들어 ‘가림토(加臨土)’ 문자라고 명명하여 발표한 것이 그 시초다. 놀랍게도 과거 우리민족의 활동무대였던 만주에는 가림토 문자 비석이 우뚝 서 있다. 그 비석을 탁본한 것이 높이 2m, 폭이 32㎝인 것을 보면 비석은 이보다 조금더 클 것이다. 세종대왕은 성삼문을 만주 방면으로 열세 번이나 보내어 가림토 문자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글을 연구케 하였다. 그리하여 집현전 학자들인 성삼문, 박팽년, 최항, 신숙주 등과 가림토 문자를 실제 쓰기에 편리하도록 다듬어서 서기 1446년 병인 음력 9월 상한(양력 10월 9일)에 훈민정음 28자를 반포하였다.

 

한글은 음양오행의 원리로 만들어졌다

 

우리 민족 문화의 뿌리는 음양오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과 글은 물론이요, 음식, 주거, 의복, 의학, 음악 등 어느 하나 음양오행과 관련되지 않은 분야가 없다. 한글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원리와 음양오행(陰陽五行) 원리를 바탕으로 창제되었다. 한글의 기본 형태는 천(天), 지(地), 인(人), 원(圓), 방(方), 각(角)의 형태로 나누어지는데, 천은 , 지는 ―, 인은 |로 표시하여 모음을 만드는 데에 이용한다. 하늘은 둥글어서 둥근 점이요. 땅은 평평하여 一자이고 천지간에 서 있는 것이 사람이라 |자로 표시하는 것이다. 원(○), 방(□), 각(△)은 자음을 만드는 데에 이용한다. 원방각의 구조는 인간을 말한다. 원은 사람의 머리이고 방은 사람의 몸통이다. 각은 손발의 움직임을 상징한다. 또한 각은 만물이 싹트는 모양이며, 방은 잎이 넓게 자라는 모양이며, 원은 열매 맺는 모양을 말한다. 우주 만물은 오행의 원리에 따라 존재하는데, 우리말의 소리법칙도 이 원리에 맞추어 창제되었다. 따라서 한글은 이 세상의 온갖 소리를 그대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이다. 소리는 입안의 목구멍¹에서 시작되어 어금니², 혀³, 이⁴, 입술5 을 통해 나온다.

 

한글의 오행체계 (도표) 위의 표에서 보듯이 자음은 오행의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그리고 기본음이 있고 각 기본음에서 파생하여 계열음이 생김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기본음 ㄷ에서 ㅡ을 떼면 ㄴ이 된다. 또한 ㄷ에 ㅡ을 보태면 ㅌ이 되고 ㄷ에 ㄱ을 보태면 ㄹ이 된다. 또 ㄷ에 ㄷ을 합치면 ㄸ이 된다. 한글이 얼마나 지혜롭게 이루어졌는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외국인도 극찬하는 한글의 우수성

 

미국에 널리 알려진 과학전문지 디스커버리 지 1994년 6월호 「쓰기 적합함」이란 기사에서, ‘레어드 다이어먼드’라는 학자는 ‘한국에서 쓰는 한글이 독창성이 있고 기호 배합 등 효율 면에서 특히 돋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극찬한 바 있다.(조선일보 94.5.25). 그는 또 ‘한글이 간결하고 우수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말한다. 또 소설 『대지』를 쓴 미국의 유명한 여류작가 ‘펄벅’은 한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세종대왕을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극찬하였다(조선일보 96.10.7). 그런가 하면 시카고 대학의 메콜리(J. D. McCawley) 교수는 미국사람이지만 우리 나라의 한글날인 10월9일이면 매해 빠짐없이 한국의 음식을 먹으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KBS1, 96.10.9). 몇 년전 프랑스에서 세계언어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학술회의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학자들은 참가하지 않았는데, 그 회의에서 한국어를 세계공통어로 쓰면 좋겠다는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KBS1, 96.10.9).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 글의 우수성을 정작 우리 자신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1986년 5월, 서울대학 이현복 교수는 영국의 리스대학의 음성언어학과를 방문하였다. 그때 리스대학의 제푸리 샘슨(Geoffrey Sampson) 교수는 한글이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도 독특하지만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하여 음성학적으로 동일계열의 글자를 파생해내는 방법(‘ㄱ-ㅋ-ㄲ’)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훌륭하다고 극찬하였다. 그러면서 한글을 표음문자이지만 새로운 차원의 자질문자(feature system)로 분류하였다. 샘슨교수의 이러한 분류방법은 세계최초의 일이며 한글이 세계 유일의 자질문자로서 가장 우수한 문자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지난 1997년 10월1일, 유네스코에서 우리 나라 훈민정음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한글은 가장 발달한 음소문자

 

한글은 소리글자(표음문자) 중에서도 가장 발달한 음소 문자이다. 즉, 글자 하나하나가 낱소리(하나의 소리)를 표기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은 모음이 열자이고 자음이 열넉자이다. 그리고 받침이 27종 있다. 모음과 자음을 합치면 하나의 글자가 되고 여기에 받침을 더해 사용할 수도 있다. 이처럼 한글은 그 구성 원리가 간단하기 때문에 배우기가 대단히 쉽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모든 어린이들이 한글을 알고 있다. 또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이기도 하다. 한글은 글자 그대로 읽을 뿐 아니라, 인쇄체나 필기체 등이 따로 없다. 이에 반해 영어는 인쇄체와 필기체가 서로 다르다. 또한 대문자와 소문자의 구별이 있고 글자대로 읽지 않는다. 예를 들어 speak(말한다)를 ‘스피-크’라고 발음한다. ea를 ‘이-’로 발음하는 것이다. 그런데 head(머리)는 ‘헤드’라고 발음한다. 같은 ea인데도 ‘에’라고 발음한다. 또 knee(무릎)를 ‘니-’라고 발음하는데, 여기서는 K자가 있는데도 발음을 하지 않는다. 이처럼 영어는 알지 못 하면 읽을 수조차 없다. 국제어로 그 위상을 뽐내고 있는 영어에 비해 우리의 한글이 더 없이 우수한 글임에 틀림없다. 그렇기에 한글의 우수성이 세계에 널리 알려질수록 영어는 국제어의 자리를 한글에 양보해야 할 것이다.

 

한글은 가장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

 

한글 문화권에 사는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기는 쉽다. 영어발음을 90%이상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소리의 표현을 우리말은 8800개를 낼 수 있다. 이에 비해 일본어는 300개, 중국말(한자)은 400여개라고 하니 우리말의 표현력이 무려 20배가 넘는다. 세계언어 중에 단연 독보적인 존재인 것이다.(조선일보, 96.10.7, 재미동포 박춘양의 발표기사) 외국인이 말을 할 때 흔히 제스츄어를 많이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언어의 표현력이 부족하여 생기는 습관이다. 우리는 말로써 충분히 표현되기 때문에 제스츄어를 굳이 쓸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제스츄어 쓰는 것이 세련된 문화인 것처럼 인식되어 한 때는 흉내내려고 했던 사람들도 있었으니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우리말은 외국어로 번역이 안되는 것이 너무 많아서 나쁘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사실 우리말의 표현 그대로는 세계 어느 나라 언어로도 번역을 못한다. 우리말은 표현력도 세계 으뜸이지만 어감(語感), 정감(情感), 음감(音感) 등도 으뜸이다. 외국에서 우리말을 번역 못하는 것은 우리말이 뒤떨어져서가 아니다. 외국어가 표현력이 부족하여 우리말을 번역하지 못하는 것이 어떻게 우리 책임이라 할 수 있을까? “가자미 냄비에 물을 잘잘 부어 살근살근 끓이고 졸졸 졸여서 노리끼한 고기를 보시기에 소복하게 담아서 괴괴한 달빛 아래에 사랑하는 님과 둘이서 술 한 잔 곁들이니 살살 목을 넘는 요맛이 달콤하기도 하다.” 너무나 다양하고 아름다운 표현법이다. 이 표현과 어감을 어떻게 외국어로 제대로 번역해 내겠는가?

 

한자도 우리가 만든 우리의 문자

 

삼라만상(森羅萬象)에 음양(陰陽)이 있듯이, 우리글에도 음양의 짝이 있다. 한글은 양이요, 한자는 음이다. 한자의 시조로 불리는 창힐은 배달국시대 제14세 치우천황의 후손으로 동이사람이다. 초기의 문자로서 실증된 최초의 자료는 갑골문(甲骨文)이다. 거북이 배뼈와 소 어깨뼈에 주로 새겨진 갑골문자는 3천4백년전 중국 은(殷)나라 때 사용된 것으로, 황하 이북 은나라 도읍지였던 지금의 안양(安養)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명지대 진태하(陳泰夏) 교수(국문학, 한국 국어교육학회 회장)는 대만에서 문자학을 연구하면서 갑골문에서 북방민족이 아니면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특징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연구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漢字’라는 명칭은 옳지 않으며, 고대 한민족의 글이라는 ‘고한글(古韓契)’ 혹은 ‘동방문자(東方文字)’ 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교수는 또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표의문자도 만들었고, 가장 과학적인 표음문자도 만들었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이 일은 한민족의 큰 자랑이다’라고 강조한다. 이것이 입증되는 날,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는 한글 전용론자들과 한자와 한글을 혼용해야 한다는 논쟁 자체가 불필요하게 될 것이다. 한글은 한글로서의 장점이 있고, 한자는 한자로서의 장점이 있다. 이 둘을 합하여 쓸 때 가장 합리적이고 완벽한 언어가 된다. 다시 말해 한자와 한글의 혼용은 음양의 합덕인 것이다.

 

자랑스런 우리 글의 이름, 한글

 

왜 한글이라고 할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한’이란 자를 애용해 왔다. 현재 우리 나라의 국호가 한국(韓國)이라는 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한의 뜻은 왕, 수장, 우두머리, 하나, 크다, 바르다, 많다, 밝다, 훌륭하다, 하느님 등 여러 가지 좋은 뜻이 담겨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28자를 반포할 당시 훈민정음이라 불리어졌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언문(諺文), 언서(諺書)라고도 했으며, 그 후에는 반절, 암클, 아랫글, 가갸글, 국서, 국문, 조선글 등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근대에까지 이르렀다. 그 중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불리던 명칭은 ‘언문(상말을 적는 상스러운 글자)’이었다. 그러나 개화기에 접어들어, 언문이라는 이름은 사대주의에서 나온 이름이라 하여, 주시경 선생께서 비로소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이 명칭이 일반화한 것은, 조선어학회에서 훈민정음 반포 8주갑이 되던 병인년 음력 9월 29일을 반포 기념일로 정하여 처음에는 ‘가갸날’이라고 부르다가 1928년에 ‘한글날’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면서 부터이다. ‘한글’이라는 명칭의 뜻은 ‘한나라의 글’, ‘큰글’, ‘세상에서 첫째 가는 글’등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한글’은 한나라, 한겨레와 함께 영원히 뻗어나갈 글이요, 큰 글이니, 남녀노소 모두 한가지로 넓고 크게 써야할 글이며, 세상에서 첫째 가는 글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상제님 말씀처럼 앞으로 우리말, 우리글이 세계 공용어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명한 일이다. 천지에 수기(水氣)가 돌 때에는 만국 사람이 배우지 않고도 말을 통하게 되나니, 그 때에는 와지끈 소리가 나리라.차 우리 나라 글을 세계가 배워갈 것이요, 우리 나라 말을 세계 사람이 배워가리라. (도전 7:66) (*)   

[세종대왕의 약사]

  세종대왕 조선 제4대 왕(재위 1418~50),휘, 도, 자 원정, 시호, 장헌 태종의 셋째 아들로 원경왕후 민씨 소생.비 는 청천부원군 심온의 딸 소헌왕후,1408년(태종 8)충녕군에 봉군, 13년(태종 13)에 대군이 되고 18년에 왕세자에 책봉, 동년 8월에 22세 나이로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즉위 후 정치, 경제 ,문화면에 훌륭한 치적을 쌓아 수준 높은 민족문화의 창달과 조선 왕조의 기틀을 튼튼히 하였다. 재위 기간 동안 유교 정치의 기틀을 확립하고, 공업을 시행하는 등 각종 제도를 정비해 조선 왕조의 기반을 굳건히 하였다. 또한 한글 창제를 비롯하여 조선 시대 문화의 융성에 이바지하고 과학 기술을 크게 발전시키는 한편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국토를 넓혔다. 1420년에 설치된 집현전은 젊고 유능한 학자들을 육성하는 동시에 왕과 세자에 대한 학문적인 자문과 교육과 각종 학술 연구, 서적 편찬을 담당하는 기구였다. 그는 정치적으로 중앙집권 체제를 운영하기 위하여 20년에 집현전을 설치하고 황희, 맹사성, 허조, 등의 청백리를 등용하여 왕권과 신권의 조화에 노력하여 의정부의 독주를 견제했고, 왕립 학술기관으로 확장하여 변계량, 신숙주, 정인지, 성삼문, 최항 등 장년층의 학자를 등용하여 정치자문, 왕실 교육, 서적 편찬 등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하였다. 그리고 궁내에 정음청을 설치, 성삼문, 신숙주, 최항 등으로 하여금 43년(세종 25)한글을 창제하게 하고 46년 이를 반포하였다. "훈민정음" 28자를 제정하여 반포하는 한편 정음청을 두어 유교 전적. 음운서 등의 국문 출간을 담당하게 했으며, 학문의 장려에 힘쓰면서 "효행록", "삼강행실", "오례의", "자치통감훈의", "치평요람", "용비어천가", "고려사", "역대 병요", "동국정운",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의방유취" 등 각종 서적을 편찬하게 했다. 또한 이천에게 명하여 경인자, 갑인자, 병진자 등을 제작하게 하였는데, 그 중에서 갑인자는 정교하기로 유명한 활자이다. 초기에는 억불책을 써서 5교 양종을 선종과 교종의 2종으로 통합하여 각 18개 사찰만 인정하고 경행을 금지했으나, 말년에는 궁중에 내불당을 짓고 승과제도, 경해을 인정하는 등 왕실 불교로 장려하여 불교 발달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여 25년 관습도감을 설치하고 박연으로 하여금 아악을 정리하게 하여 음악을 장려하였다. 박연에게 명하여 아악기를 개조하여 고래의 아악, 당악, 향악의 모든 악기, 악곡, 악보 등을 종합 정리하게 했으며, "정대업", "보태평" 등 저명한 악곡을 제작하게 하였다. 또한 실록 보관을 위하여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에 4대 사고를 설치했는데,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만 남고 모두 불타버렸다. 과학기술에 대한 업적은 42년 이천 ,장영실로 하여금 우량을 분포 측정기인 측우기를 제작하게 했는데, 이는 1639년 이탈리아의 B.가스텔리가 발명한 측우기보다 약 2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그리고 궁중에 과학관인 흠경각을 설치하고 과학기구를 비치하도록 했고, 훈천의, 해시계, 물시계 등 각종 과학기구를 발명하였다. 김담, 이순지 등을 시켜 중국 원 나라의 수시력, 명나라의 대통력을 참작하고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빌어 역서인 칠정산내외편을 편찬했고, 천문, 역법, 의상등에 관한 지식을 종합한 <제가역상집>을 이순지가 펴냈다. 경제, 사회 정책면은 36년 공법상정소를 설치하고 각 도의 토지를 비척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누어 세율을 달리하는 안을 실시했으나 결함이 많았으므로 43년에 공법상정소의 안을 시정하기 위하여 전제상정소를 설치하고 풍흉에 따라 연분 9등법과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전분6등법에 의한 수등이척법으로 조세의 공평화를 도모했으며, 전국의 토지를 20년 마다 측량하여 양안을 작성하도록 했다. 그리고 의창, 의료제도, 금부삼복법을 제정했고, 노비에 D대한 지위등을 개선, 사형을 금하도록 했다. 대외정책면에서는 국가의 주권 확립과 영토확장에 진력한 치적을 들 수 있다. 명나라와의 관계를 보면, 처녀진헌을 폐지하는 한편, 당나라에 보내던 금, 은의 조공물을 폐지하고 마, 포로 대신하도록 했다. 그리고 여진과의 관계는 무력을 강경책을 쓰거나 회유하는 화존 양변책을 썼는데, 두만강 유역의 여진은 김종서로 하여금 구축하도록 하고 6진을 개척하여 국토를 확장하였다. 압록강 유역의 여진은 최윤덕, 이천등으로 하여금 구축하게 하고, 4군을 설치하였다. 이 때의 국경선이 압록강으로부터 두만강까지 확보되어 이 곳에 사민정책을 실시하는 등 국토의 균형된 발정에 노력하였다. 그리고 일보고는 19년(세종1) 이종무로 하여금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섬을 정벌하게 했으며, 이후 쓰시마 도주소 사다모리가 사죄하고 통상을 간청해오자, 26년 삼포를 개항하였다. 이후 왜인의 출입이 증가하자 43년 왜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하여 신숙주의 교섭으로 변효문과 소 사다모리 사이에 계해조약을 체결하게 하여 1년 동안에 입항할수 있는 세견선을 50척으로 제한했고, 세사미를 200섬으로 제한하는 한편, 반드시 수도서인에 한하여 왕래하도록 무역과 출입을 통제하였다.  능은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있는 영름인데 처음에는 광주에 있었으나, 69년(예종 1)에 이곳으로 옮겼다.  세종조는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유교 정치, 찬란한 문화가 이룩된 시대이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기틀을 잡은 시기였다. 집현전을 통하여 많은 인재를 길렀고, 유교 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 제도를 정비하였으며, 나아가 겨레 문화를 높이는 데에 기본이 된 훈민정음의 창제, 방대한 편찬 사업, 농업과 과학 기술의 발전, 의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업적으로 나라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다.

 

[한글 창제 과정]

 조선의 넷째 임금인 세종(1397-1450)-세종의 성명은 이도이며 자는 원정(元正)이고, 시호는 '세종 장헌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다-은 워낙 슬기롭고 능한 임금이라, 나라 안팎을 지키고 백성을 위하는 일을 많이 벌이면서, 무엇보다도 교육에 각별한 정성을 기울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세종 임금은 즉위한 뒤 4년(1422)부터 책을 박는데 기초가 되는 활자의 글씨체 개량을 직접 지휘할 만큼 글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많은 분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성과 뛰어난 자질은 세종 25년(1443) 음력 12월에 몸소 훈민정음 곧 한글을 만들어냄으로써 유감없이 빛을 내었다. 세종 임금은 왕립 연구소라 할 집현전에 모아 기른 인재들 가운데 일부-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강희안, 이개, 이선로, 성삼문 등-를 궁중의 언문청 또는 정음청에 따라 모아 보좌를 받으면서 한글 만들기를 주도했다.   그때 집현전의 신하인 최만리가 대표가 되어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줄거리로 새 글자 만들기를 반대하는 상소(1444)를 했다. (

최만리는‘역사의 죄인’인가?

)
  첫째, 대대로 중국의 문물을 본받고 섬기며 사는 처지에 한자와는 이질적인 소리 글자를 만드는 것은 중국에 대해서 부끄러운 일이다.
  둘째, 한자와 다른 글자를 가진 몽고, 서하, 여진, 일본, 서번(티베트) 등은 하나 같이 오랑캐들뿐이니,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것은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일이다.
  셋째, 새 글자는 이두보다도 더 비속하고 그저 쉽기만 한 것이라 어려운 한자로 된 중국의 높은 학문과 멀어 지게 만들어 우리네 문화수준을 떨어지게 할 것이다.
  넷째, 송사에 억울한 경우가 생기는 것은 한자를 잘 알고 쓰는 중국사회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며, 한자나 이두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관리의 자질에 따른 것이니 새 글자를 만들 이유가 되지 못한다.
  다섯째, 새 글자를 만드는 것은 풍속을 크게 바꾸는 일인만큼, 온 국민과 선조와 중국에 묻고 훗날 고침이 없도록 심사 숙고를 거듭해야 마땅한데, 그런 신중함이 전혀 없이 적은 수의 사람들만으로 졸속하게 추진하고 있고, 상감은 몸을 헤쳐 가며 지나친 정성을 쏟고 있다.
  여섯째, 학문과 수도에 정진해야 할 동궁(문종)이 인격 성장과 무관한 글자 만들기에 정력을 소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세종 임금은 이에 대해서 세세히 답변하지는 않고, 설총이 백성의 글자 생활을 돕기 위해 이두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한글도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탐해서가 아니라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만드는 중대한 나랏일임을 먼저 밝히고, 다만 넷째 의견에 대해서 사리를 모르는 속된 선비의 생각이라고 비판하고,
여섯째 의견에 대해서 한글의 중요함에 비추어 동궁이 관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답변했다.
  세종 임금은 당신 나름으로 신중하게 다듬기를 계속하고 신하들과 함께 몇 가지 문헌을 한글로 만드는 실용의 시험을 거쳐 세 해사 지나서야 [훈민정음(1446)]을 통해 반포했다. 이 책의 머리에 실린 짧은 글을 통해서 세종 임금은 중국 것에 사로잡히지 않은 곧은 줏대와 백성들의 어려움을 벗겨 주고자 하는 어진 마음과 단지 삶의 편의를 위해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는 실용주의 정신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우리 나라의 말이 중국말과 달라서,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에 어진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뜻을 담아서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것을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들어 내놓으니,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깨우쳐 날로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國之語音異乎中國 與文子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而 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   -발췌문(김정수(1994), 한글의 역사와 미래, 열화당 p17-21)  [한글의 원리] 한글 만들기는 우선 여덟 개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닿소리 글자 다섯(ㄱㄴㅁㅅㅇ)과 홀소리 글자 셋(ㆍㅡㅣ)이다. 글자 만들기에서 닿소리와 홀소리를 구별한 것은 이 두 가지 소리가 소리마디를 이룰 때 그 구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홀소리는 이름 그 대로 홀로 소리마디를 이룰 수 있는 독립적인 소리인데, 닿소리는 홀소리와 닿아야 내기가 쉬운 의존적인 소리이다.

  'ㄱ(기역)'이란 글자는 이 글자가 나타내는 소리를 낼 때 혀의 뒤쪽 곧 어금니에 닿는 혀의 부분이 곱사등처럼 굽어 목젖 가까이 붙는 옆 모양을 본뜬 것이다. 이 글자의 소리와 같은 입 모양으로 나는 소리가 'ㅋ,ㄲ' 글자의 소리들이라, 그 글자 모양도 서로 비슷하게 만들어 졌다. 'ㄱ'에 금이 하나 덧붙은 'ㅋ'은 그 소리가 ㄱ[그] 소리에는 없는 ㅎ[흐] 소리가 함께 나서 아주 거세어 지기 때문이다. 'ㄱ'을 겹쳐 'ㄲ'을 만든 것은 ㄲ[끄] 소리가 ㄱ[그] 소리보다 목과 입 전체에 힘을 많이 줘 내는 센소리이기 때문이다. 이 소리들을 모두 어금닛소리 또는 뒤혓소리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앞에 말한 대로 이런 소리들을 낼 때는 언제나 어금니에 닿는 뒤혀 부분이 굽어 오르기 때문이다. 
  'ㄴ(니은)'이란 글자는 이 글자의 소리를 낼 때 혀의 앞쪽이 우묵하게 구부러지고 혀끝이 윗잇몸에 붙는 옆 모양을 본뜬 것이다. 이 글자의 소리와 같은 입 모양으로 나는 소리가 `ㄷ(디귿) ㅌ(티읕) ㄸ(쌍디귿) ㅥ(쌍니은)` 글자의 소리들이라, 이 글자 모양도 비슷하게 만들어 졌다. 이 소리들을 모두 혓소리 또는 앞혓소리라고 부른다. ㄴ[느]는 아주 부드러운 소리이고 ㄷ[드]는 그보다 굳은 소리이기 때문에 'ㄴ'에 금을 하나 더해서 'ㄷ'을 만들었다. 'ㄷ'에서 'ㅌ ㄸ'이 나온 이치는 앞의 'ㄱ'에서 'ㅋ ㄲ'이 나온 이치와 같다. 역시 'ㄴ'에서 번져 나온 것이 'ㄹ(리을)' 글자인데, 그 소리가 부드러움에도 불구하고 금이 많이 덧붙었다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그 소리는 혀끝이 ㄴ와 비슷한 자리에 닿되 혀의 모양이 많이 구부러지거나 떨게 되는 반혓소리다. 이 글자도 혀의 옆 모습을 본떴음을 짐작할 수 있다.  
  'ㅁ(미음)'이란 글자는 이 글자의 소리를 낼 때 아래위의 두 입술이 붙기 때문에 입의 모양을 본뜨고 모나게 다듬은 것이다. 이 글자의 소리를 낼 때와 마찬가지로 두 입술을 붙이고 내는 소리가 'ㅂ(비읍), ㅍ(피읖), ㅃ(쌍비읍)' 글자의 소리들이라, 이들도 'ㅁ' 한 글자에서 번져 나간 것이다. ㅁ[므]는 아주 부드러운 소리이고 ㅂ[브]는 그보다 굳은 소리이기 때문에 'ㅁ'에 두 뿔을 더해서 'ㅂ'을 만들었다. 'ㅂ'글자에 아래로 두 발을 붙이고 옆으로 눕힌 것이 'ㅍ' 글자이고, 'ㅂ' 글자를 두 개 겹친 것이 'ㅃ' 글자이다. 이처럼 'ㅂ'에서 'ㅍ, ㅃ'이 나온 이치는 'ㄱ'에서 'ㅋ, ㄲ'이 나온 이치와 같다. 이 글자들의 소리를 모두 입술소리라고 부른다. 

  'ㅅ(시옷)'이란 글자는 이 글자의 소리를 낼 때 혀끝과 윗니 사이를 좁히고 그 사이로 바람을 스쳐 내게 되기 때문에 이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이 글자의 소리보다 더 되게 나는 소리를 적기 위해서 겹쳐 만든 것이 'ㅆ(쌍시옷)' 글자이다. 또 이 글자의 소리보다 더 굳게 나는 소리를 적기 위해서 금을 더해 만든 것이 'ㅈ(지읒)'이고, 이 'ㅈ'보다 더 되게 나는 소리를 적기 위해서 다시 겹쳐 만든 것이 'ㅉ(쌍지읒)'이다. 이런 소리들을 묶어서 잇소리라고 부른다. 역시 'ㅅ'에서 번져 나온 것이 'ㅿ(반시옷)'인데, 그 소리가 더 부드러움에도 불구하고 금이 더해 졌다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그 소리는 혀끝이 ㅅ[스]와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혀끝을 울려 내는 반잇소리이다. 

  'ㅇ(이응)'이란 글자는 목청이 울리는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목구멍의 동그란 단면을 본뜬 것이다. 마찬가지로 목청에서 나되 그보다 더 굳은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 글자에 금을 얹어 'ㆆ(된이응)'을 만들었다. 이 'ㆆ'의 소리는 이를테면 "앗! 안됏!"라고 말할 때 'ㅅ'받침으로 적히는 소리와 같은 것이다. 이 말을 정확히 적자면 실은 "앟! 안됗!"로 적어야 된다는 말이다. 이 소리보다 더 거센 목청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금을 하나 더 그어 'ㅎ(히읗)'을 만들었다. 또 'ㅇ'의 소리보다 더 된 소리를 적기 위해서 'ㆀ(쌍이읗)'을 만들었고, 'ㅎ'의 소리보다 더 된 소리를 적기 위해서 'ㆅ(쌍이읗)'을 만들었다. 역시 'ㅇ'에서 번져 나온 것이 'ㆁ(옛이응)'이다. 이 글자의 소리를 낼 때 혀의 모양이 'ㄱ' 따위의 소리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ㄱ'을 본받지 않고 'ㅇ'을 본받아 만든 것은 또한 예외적인 일인데, 그것은 'ㆁ'의 소리가 'ㅇ'의 소리처럼 목청 울림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소리의 느낌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고, 또 'ㅇ'보다는 더 굳은 맛이 있기 때문에 금을 하나 더 그어 만든 것이다.
 이제 닿소리 글자들이 번져 나온 관계를 통틀어 보면, 밑 글자(기본 글자) 다섯이 적어도 서른 아홉으로 번진 셈이다. 이러한 닿소리 홑글자들을 둘씩 셋씩 겹쳐 적은 세종 당대의 닿소리 겹글자들까지 포함시킨다면 그 번진 수효는 예순일곱으로 늘어난다. 초성(11): ㅥ, ㅳ, ㅄ, ㅴ, ㅵ, ㅶ, ㅷ, ㅺ, ㅻ, ㅼ, ㅽ
종성(17): ㅦ, ㅧ, ㅨ, ㄺ, ㅩ, ㅪ, ㄻ, ㄼ, ㅫ, ㄽ, ㅬ, ㅭ, ㅮ, ㅯ, ㅰ, ㅄ, ㆂ
  다음으로 홀소리는 닿소리와 그 성격이 다른 만큼, 그 글자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다. 점 'ㆍ(아래아)'와 직선 둘 'ㅡ, ㅣ' 이들이 홀소리 글자의 밑글자다. 점은 하늘의 둥근 모습을 본뜨노라 한 것이고, 수평선은 땅을 본뜨노라 한 것이고, 수직선은 사람을 본뜨노라 한 것이다. 이 세 글자가 나타내는 소리는 세 가지 종류의 홀소리들 가운데 각각 그 대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홀소리 글자들의 밑 글자가 된 것이다. 세 종류의 홀소리란, 첫째가 밝은홀소리이고 둘째가 어두운홀소리이며 셋째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가운데 홀소리이다.
이 세 글자가 다음과 같이 먼저 일곱 개로, 나중에는 다음과 같이 모두 서른 한 개나 되는 홀소리 글자로 번져 나갔다.
  밝은 홀소리 가운데 가장 중립적이며 대표적인 소리는 점 'ㆍ(아래아)'로 나타내는 소리이다. 이와 같은 밝은 홀소리로 우선 'ㅗ'와 'ㅏ'로 나타내는 소리가 있다. 'ㅗ'는 그 소리가 밝은 소리임을 나타내기 이해서 아래아 'ㆍ'를 'ㅡ'의 위에 올려 놓은 것이고, 'ㅏ'는 역시 그 소리가 밝은 소리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아래아 'ㆍ'를 'ㅣ'의 밖에 내어 놓은 것이다.   'ㅗ' 소리는 'ㆍ'소리보다 입술을 오무려 내는 소리이고, 'ㅏ' 소리는 'ㆍ'소리보다 입술을 펴서 내는 소리이다.   이들 세 글자 'ㅏ, ㅗ, ㆍ'의 소리에 'ㅣ' 가운데 홀소리가 앞에 포개어져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ㅑ, ㅛ,  '들이다. 이 가운데 다섯 글자 'ㅏ, ㅑ, ㅗ, ㅛ, ㆍ'의 소리에 'ㅣ' 가운데 홀소리가 뒤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ㅐ, ㅒ, ㅚ, ㆉ, ㆎ'들이다. 이 가운데 다시 두 글자 'ㅏ, ㅐ'의 소리에 'ㅗ' 소리가 앞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가 'ㅘ, ㅙ'들이며, 또한 이와 비슷하게 두 글자 'ㅑ, ㅒ'의 소리에 'ㅛ' 소리가 앞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가 'ㆇ, ㆈ'들이다. 다만 이들 전체 가운데 세 글자 'ㆇ, ㆈ,  '들은 실제로 쓰인 일이 없는 만큼 이론적인 가능성을 보인 데 지나지 않는다. 아무튼 이들 밝은 홀소리 글자를 모두 합하면 열 다섯 자이다.   어두운 홀소리 가운데 가장 중립적이며 대표적인 소리는 'ㅡ'로 나타내는 소리이다. 이와 같은 어두운 홀소리로 우선 'ㅜ'와 'ㅓ'로 나타내는 소리가 있다. 'ㅜ'는 그 소리가 어두운 소리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ㅡ'의 아래에 'ㆍ'를 내려 놓은 것이고, 'ㅓ'는 역시 그 소리가 어두운 소리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ㅣ'의 안에 'ㆍ'를 들여 놓은 것이다. 'ㅜ' 소리는 'ㅡ'소리보다 입술을 오무려 내는 소리이고, 'ㅓ'소리는 'ㅡ'소리보다 입술을 펴서 내는 소리이다.   이들 세 글자 'ㅓ, ㅜ, ㅡ'의 소리에 'ㅣ' 가운데 홀소리가 앞에 포개어져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ㅕ, ㅠ,  '들이다. 이 가운데 다섯 글자 'ㅓ, ㅕ, ㅕ, ㅠ, ㅠ, ㅡ'의 소리에 'ㅣ' 가운데 홀소리가 뒤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ㅔ, ㅖ, ㅟ, ㆌ, ㅢ'들이다. 이 가운데 다시 두 글자 'ㅓ, ㅔ'의 소리에 'ㅜ'소리가 앞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가 'ㅝ, ㅞ'들이며, 또한 이와 비슷하게 두 글자 'ㅕ, ㅖ'의 소리에 'ㅠ' 소리가 앞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가 'ㆊ, ㆋ'들이다. 이들 가운데 한 글자 ' '도 이론적인 가능성을 보인 데 지나지 않지만, 아무튼 어두운 홀소리 글자들은 모두 열 다섯 자이다.   이와 같이 한글이 만들어 진 경위를 훑어 보면, 닿소리 글자 다섯이 예순일곱으로, 홀소리 글자 셋이 서른 하나로, 다시 말하면 밑 글자 여덟이 모두 아흔 여덟으로 곧 열 두 곱 넘게 불어난 셈이다. 그것도 치밀한 연결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글만들기의 이처럼 독창적이고도 정연한 조직성에 대해서 미국의 역사학사 레드야드(The Korean Reform od 1446: The Origin, backgroung and Early History of Korean Alphabet)는 다음과 같이 예찬하고 있다.   "한글의 가장 특이하고 흥미로운 요소는 시각적인 모양과 시각적인 기능 사이에 치밀한 대응이 나타나 있는 점이다. 닿소리 글자와 모양은 홀소리 글자의 모양과 아예 유형이 다를 Q분만 아니라 이 두 갈래 안에서조차 세종 임금은 낱 글자의 모양을 통해서 또 다른 중요한 여러 관계가 드러나도록 했다. 닿소리 글자에서는 글자 모양이 닿소리의 종류와 관련되어 있고, 홀소리 글자에서는 뒤홀소리와 가운데 홀소리 부류가 조직적으로 엄격하게 구별되어 있다. 이처럼 멋과 뜻을 갖춘 합리적인 낱소리 글자는 다시 없다......모양과 기능의 관계라는 생각을 구현한 방식에 대해서는 참으로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소리 종류를 따라 글자 모양을 체계적으로 한다는 것만으로도 족히 그렇다 할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그 모양 자체가 그 소리와 관련된 발음 기관을 본떠 꾸민 것이라니......이것은 정녕 언어학적인 호사의 극치다! 조선의 음운학자들은 참으로 솜씨가 많았거니와, 창조적인 상상력도 모자람이 없었던 것이다."  -전문인용(김정수(1994), 한글의 역사와 미래, 열화당 p21-28) ※ 자료제공 : 류수현(연세대학교 국어정보학 석사 과정) * 한글의 옛 이름   훈민정음은 세종이 지은 이름이지만, 언문 반절은 한글을 두고 지은 고유한 이름은 아니다. 언문은 한자가 아닌 속된 글자를 이르는 것이며 반절은 한자의 소리기호라는 뜻으로 한글이 한자의 소리 기호로 쓰여짐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렇듯이 한글을 '바른소리' 곧 '소리'라고 이른 것은 한글은 뜻과 관계없는 소리의 기호이므로 소리 그 자체를 뜻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훈민정음은 우리나라의 말의 정음의 체계를 말하는 것이다.

 

체계
朝鮮
글자
한자
언문
소리체계
글자소리 소리체계
홍무정운
동국정운
말소리 소리체계
X
훈민정음
소리기호
반절
반절

 

  따라서, 한글의 이름으로 불려진 훈민정음, 반절, 언문은 어느 것이나 한글의 글자 이름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고 한글의 일함과 속됨의 성격에 따라 일컬어진 것이다.* 御製訓民正音의 성격과 의도   어제 훈민정음은 그 성격이 반포용 한글교재이다. 그 머리말에서 한글을 만든 까닭을 밝혔으며, 그 다음은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설명한 교재이다.
  그러나 그 머리말의 내용과 전체 글의 실제 표현은 아주 다르다. 이것은 한문을 잘 아는 당시 양반 지식 계층을 위한 한글교재이다. 만약 그 머리말대로 백성들을 위한 반포용 교재였다면 한문이 아닌 향찰로 표기하였을 거시며, 특히 한자음에 필요한 초성의 전탁음의 글자를 설명하거나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초성의 글자와 글자 설명은 성운학적 자모체계를 이루고 있어 어떤 운서의 자모체계를 알리는 범례의 일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御製訓民正音은 당시의 양반 지식 계층에게 28자 한글체계를 알림과 동시에 23자모체계의 어떤 운서의 범례의 구실을 하는 이중 의도로 이루어진 것이며 내용상 28자 한글체계와 34성운체계를 복합시킨 것이다.
* 만든 연대 창제: 세종 25년(1443년) 음력 12월
반포: 세종 28년(1446년) 음력 9월 상한
훈민정음 창제일
- 세종실록(권 102) 25년(1443) 癸亥 12월:
○ 是月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 乃成字 .... 是訓民正音
- 정인지 서문:
○ 癸亥冬, 我殿下創製正音二十八字
훈민정음 반포일
○ 是月訓民正音成, 御製曰, 國之語音 異乎中國 (세종실록 권102 28년(1446) 丙寅 9월)
→ 1446년 음력 9월29일(양력 10월 28일)에 따라 조선어학회에서 1926년부터 한글날로 지정

○ 正統 十一年九月上澣, 資憲大夫禮曹判書集賢殿大提學知春秋館事 世子右賓客 臣鄭麟趾 拜手稽首謹書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 서문`)
→ 正統11년9월上澣(상순:10일)은 음력 9월10일(양력10월 9일)이므로 1940년부터 한글날을 10월 9일로 정함

* 창제목적 ① 모든 백성들이 쉽게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 애민정신
② 우리 정신에 맞는 우리말을 가지도록 - 주체정신, 자주정신
③ 한자음의 정리와 통일된 표기를 위하여 - 실용정신

# 한자음의 정리는 우리말과 다른 중국말을 인식한 데서 비롯되었다. 즉, 한자는 우리말이 아니므로 외래어로서 본디 음에 충실하고자 한 것이다.(因俗歸正;동국정운)
* 훈민정음의 표기상의 특징(15C표기)① ㅸ,ㆅ,ㅿ,ㆁ 등이 모두 사용됨.
② 방점 쓰임.(성조체계존재)
③ 모음 조화가 잘 지켜짐.
④ 이어적기 위주로 표기(연철중심;표음주의)
⑤ 8종성 가족용 표기
⑥ 동국정운식 한자표기(이상적 발음)
* 제자원리 1. 초성17자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먼저 五音의 기본글자를 만들고 여기에 획을 더하여 가획글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발음기관의 모양과는 관계없이 다른 글자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이체글자라 한다.

 

五音 /종류
상형
기본글자
가획글자
이체글자
엄쏘리[牙音]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형상
혀쏘리[舌音]
혀가 윗잇몸에 닿는 형상
ㄷ,ㅌ
입시울쏘리[脣音]
입술 모양의 형상
ㅂ,ㅍ
 
니쏘리[齒音]
이의 형상
ㅈ,ㅊ
목소리[喉音]
목구멍의 형상
ㆆ,ㅎ
 

 

초성 17자의 순서: ㄱ,ㅋ,ㆁ / ㄷ,ㅌ,ㄴ / ㅂ,ㅍ,ㅁ / ㅈ,ㅊ,ㅅ / ㆆ,ㅎ,ㅇ / ㄹ,ㅿ 2.중성 11자   天, 地, 人의 三才를 본떠서 기본 글자를 만들고, 이것을 합하여 초출자와 재출자를 만들었다.

 

성질 /종류
상형
기본글자
初出字
再出字
양성무음
하늘의 둥근 모양
ㆍ(天)
ㅗ,ㅏ
ㅛ,ㅑ
음성모음
땅의 평평한 모양
ㅡ(地)
ㅜ,ㅓ
ㅠ,ㅕ
중성모음
사람이 서 있는 모양
ㅣ(人)
   

 

모음 11자의 순서: ㆍ,ㅡ,ㅣ / ㅗ,ㅏ,ㅜ,ㅓ / ㅛ,ㅑ,ㅠ,ㅕ 3.훈민정음 초성 23자의 체계

 

소리의 성질 五音
牙音
舌音
脣音
齒音
喉音
半舌音
半齒音
全淸(예사소리)
   
次淸(거센소리)
   
全濁(된소리)
   
不淸不濁(울림소리)
 
全淸
     
     
全濁
     
     
기본자음의 象形
          혀모양 `ㄴ`에서 이의 모양 `ㅅ`에서

 

 * 자음과 모음의 운용 연서법(連書法 니ㅿㅓ 쓰기); 순경음을 만드는 법- 훈민정음 예의에 나오는 규정
- 순음 'ㅁㅂㅍㅃ' 밑에 'ㅇ'을 붙여 씀
- 'ㅸ'은 국어에 ㅱ,ㆄ,ㅹ은 동국정운식 표기에 사용
- 성종 때 없어짐
병서법(竝書法 ㅸㅏ 쓰기); 자음을 나란히 붙여 쓰는 법 -훈민정음 예의에 나오는 규정
- 초성이나 종성에 자음을 옆으로 나란히 붙여 쓰는 법
各字竝書: 같은 자음을 옆으로 나란히 붙여서 쓰는 법 (ㄲ,ㄸ,ㅃ,ㅥ,ㆀ,ㆅ)
合用竝書: 서로 다른 글자를 병서하여 쓰는 법 (ㄳ,ㄶ,ㄺ,ㅦ,ㅨ,ㅫ,ㅭ,ㅵ)
부서법(附書法 브텨쓰기); 자음에 모음을 붙여 쓰는 법 -훈민정음 예의에 나오는 규정
右書: 자음의 오른쪽에 모음을 붙여 쓰는 법 (가)
下書: 자음의 아래쪽에 모음을 붙여 쓰는 법 (그)
성음법(成音法 ); 낱글자를 합하여 음절을 만드는 법-훈민정음 예의에 나오는 규정
-凡字必合而成音; 무릇 낱글자(음운)는 반드시 합해져야 음절이 된다. 우리말의 음절 구성의 필수 요소는 중성인 모음이다. 초성, 종성 등 자음은 선택적이다.
* 사성점 -傍點이라고도 하며 훈민정음 예의에 나오는 규정이다.
- 15,16세기 문헌에 나타나며, 왼쪽에 점을 찍어서 성조를 나타냈다.
- 음의 고저가 현대어에서 음의 장단으로 바뀌었다.

 

四聲
성질
방점
훈민정음
소리의 높낮이
平聲
安而和
무점
맛 낫가 반 소리
처음과 끝이 한결같이 부드럽고 낮은 소리
上聲
和而擧
2점
처저미 낫갑고 내종이 노판 소리
처음은 낮으나 끝은 들려서 높아지는 소리
去聲
擧而壯
1점
맛 노판 소리
처음과 끝이 한결같이 높고 씩씩한 소리
入聲
促而急
 
ㅅ발리 긋닫는 소리
촉급하게 빨리 끝달리는 소리 (무성음 k,t,p로 끝난 소리)

 

平聲(_) 上聲(↗) 去聲(-) 入聲(↘)  

 


 

[풀이]

우리 나라의 말이 중국말과 달라서,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에 어린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뜻을 담아서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것을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들어 내놓으니,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깨우쳐 날로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우리글 이름의 변천사 우리글은 창제된 이후에 훈민정음, 정음, 언문, 반절 등으로 불려오다 주시경 선생에 의해서 한글이라는 제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창제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글 이름의 변천 과정을 알아 봅시다.

가. 훈민정음(訓民正音)

-우리 글자를 창제할 때 붙인 이름(1443년)
-정음: 정인지 서문에서 사용
 보기> - 정인지 서문:
          癸亥冬,我殿下創製正音二十八字,略揭例義,以示之,名曰訓民正音
          - 세종실록(권102) 28년(1446) 丙寅 9월:
          是月訓民正音成,御製曰,國之語音異乎中國
          - 월인석보의 머리글에 있던 어제훈민정음:
          百姓을 가르치시논 正(졍)한 소리라

나. 諺文

-상스런 말을 적은 글이란 뜻.
 보기> - 세종실록 계해(세종 25년) 12월조:
          是月上親制諺文二十八字,其字倣古篆,分爲初中終聲,合之然後
          - 세종실록 병신(26년) 2월 20일 상소문:
          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今之諺文不亦便民乎
          - 세종 28년 새로운 문자의 보급과 실천을 위해서 諺文聽 설치

-한문과 언문의 쓰임 비교

중국말: 言語 중국글: 漢文, 眞書
우리말: 方言, 俚語, 俗語, 諺語 우리글: 諺文, 諺書, 諺字

다. 反切

-한글은 음소문자(낱소리 글자)라서 소리를 나타내는 방법이 반절과 비슷하다하여 생겨난 이름
 보기> 최세진의 訓蒙字會: 諺文字母,俗所謂反切二十七字

-반절: 한자의 음을 표시할 때, 쉬운 한자를 이용하여 성과 운으로 나타내는 법.
 보기> 天: 他前[ㅌ + ㅕㄴ > 텬] 東: 德紅[ㄷ + 옹 > 동]

라. 기타: 암클, 창살글자, 중글, 상말글

마. 근대의 우리글 이름

-갑오경장(1894) 이후: 國語, 國文
 보기> 주시경의 저서: 국문론(1897), 국어문법(1898), 국문문법(1905)
          주시경의 단체: 국문동식회(1896), 국어연구회(1907)

-한나라말(韓):한국어, 한나라글:한국문
 보기> {보중친목회보} 1호(1910)에 실린 주시경의 글

-경술국치(1910) 이후:조선어
 보기> 조선어문법(1911), 조선어전(1911), 조선어강습원(1911)

-한말
 보기> 국어연구회 강습소 제2회 수료 증서(1911.4.1)의 문구
          [한말익힘곳침]

-배달말
 보기> [국어연구회]를 '배달말글몯음(조선어문회)로 바꿈.(1911.9.17)

-한글: 주시경이 지은 우리글 이름으로 `한`은 `큰`이란 뜻이다.
 보기> [배달말글몯음](조선어문회)를 [한글모]로 개칭
          최남선 [아이들보이]지(1913.9)의 '한글풀이'
          [한글배곳](1914.4)(조선어강습원)
          김두봉의 [조선말본](1915) 머리말
             -> '한글모임자 한샘'이라는 말
          이규영: 한글모죽보기(1916~1919)
          1927년 2월 8일 [조선어연구회]에서 기관지 [한글] 간행
          훈민정음 반포일 [한글날(1928,가갸날)]

 

 

 

한글날 · 한글의 역사

 

세종대왕 | 우리글 이름변천사 | 御製訓民正音 | 훈민정음 원리 | 훈민정음 풀이 | 훈민정음 언해본


  한글날


1926년11월4일 조선어연구회(한글학회의 전신)가 주축이 되어 매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하여 행사를 거행했고 1928년에 명칭을 '한글날'로 바꾸었다.
1932, 1933년에는 음력을 율리우스력으로 환산하여 양력 10월 29일에 행사를 치렀으며,
1934~45년에는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여 10월 28일에 행사를 치렀다. 그러나 지금의 한글날은 1940년 〈훈민정음〉 원본을 발견하여 그 말문(末文)에 적힌 "正統十一年九月上澣"에 근거한 것으로,
이를 양력으로 환산해보면 1446년(세종 28) 10월 9일이므로 1945년에 10월 9일로 확정했다.
 이 날에는 세종문화상을 시상하고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英陵)을 참배하며 전국에서 학술대회 및 각종 백일장을 거행한다.

(출처: 한국브리태니커회사, '브리태니커CD2000'의 "한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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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의 역사
한겨레에게는 둘도 없이 큰 자랑거리요, 세계 사람들은 알면 알수록 놀라는 문화재가 한글이다. 우리끼리는 처음에는 낯설어서 배척했고, 조금 알고 보니까 우습도록 쉬워서 멸시했고, 나중에는 굳은 버릇을 못 고쳐서 아녀자나 쓰라고 던져 버렸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 글자를 통한 지식의 대량 전달과 처리에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야 비로소 그 참된 값어치를 인정하게 된 문화의 고속 도로가 한글이다.

이런 보배를 우리는 얼마만큼이나 바로 알고 있는가?
그 내력과 실상을 알고 보면, 그 가치를 한결 확실하게 알게도 되고, 그 값을 지나치게 치는 잘못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 가운데는 한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아주 잘 아노라 하는데 실은 치우치게 알고 지나치게 값을 매기는 사람도 많다. 한글은 천하의 보배이지만, 흙이 묻은 보배라서 우리는 더욱 갈고 닦아 빛을 내야 한다.
- 김정수(1990), [한글의 역사와 미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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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 세종대왕의 약사 ]
  세종대왕 조선 제4대 왕(재위 1418~50),휘, 도, 자 원정, 시호, 장헌 태종의 셋째 아들로 원경왕후 민씨 소생.비 는 청천부원군 심온의 딸 소헌왕후,1408년(태종 8)충녕군에 봉군, 13년(태종 13)에 대군이 되고 18년에 왕세자에 책봉, 동년 8월에 22세 나이로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즉위 후 정치, 경제 ,문화면에 훌륭한 치적을 쌓아 수준 높은 민족문화의 창달과 조선 왕조의 기틀을 튼튼히 하였다. 재위 기간 동안 유교 정치의 기틀을 확립하고, 공업을 시행하는 등 각종 제도를 정비해 조선 왕조의 기반을 굳건히 하였다. 또한 한글 창제를 비롯하여 조선 시대 문화의 융성에 이바지하고 과학 기술을 크게 발전시키는 한편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국토를 넓혔다. 1420년에 설치된 집현전은 젊고 유능한 학자들을 육성하는 동시에 왕과 세자에 대한 학문적인 자문과 교육과 각종 학술 연구, 서적 편찬을 담당하는 기구였다.   그는 정치적으로 중앙집권 체제를 운영하기 위하여 20년에 집현전을 설치하고 황희, 맹사성, 허조, 등의 청백리를 등용하여 왕권과 신권의 조화에 노력하여 의정부의 독주를 견제했고, 왕립 학술기관으로 확장하여 변계량, 신숙주, 정인지, 성삼문, 최항 등 장년층의 학자를 등용하여 정치자문, 왕실 교육, 서적 편찬 등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하였다.
  그리고 궁내에 정음청을 설치, 성삼문, 신숙주, 최항 등으로 하여금 43년(세종 25)한글을 창제하게 하고 46년 이를 반포하였다. "훈민정음" 28자를 제정하여 반포하는 한편 정음청을 두어 유교 전적. 음운서 등의 국문 출간을 담당하게 했으며, 학문의 장려에 힘쓰면서 "효행록", "삼강행실", "오례의", "자치통감훈의", "치평요람", "용비어천가", "고려사", "역대 병요", "동국정운",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의방유취" 등 각종 서적을 편찬하게 했다. 또한 이천에게 명하여 경인자, 갑인자, 병진자 등을 제작하게 하였는데, 그 중에서 갑인자는 정교하기로 유명한 활자이다.
  초기에는 억불책을 써서 5교 양종을 선종과 교종의 2종으로 통합하여 각 18개 사찰만 인정하고 경행을 금지했으나, 말년에는 궁중에 내불당을 짓고 승과제도, 경해을 인정하는 등 왕실 불교로 장려하여 불교 발달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여 25년 관습도감을 설치하고 박연으로 하여금 아악을 정리하게 하여 음악을 장려하였다. 박연에게 명하여 아악기를 개조하여 고래의 아악, 당악, 향악의 모든 악기, 악곡, 악보 등을 종합 정리하게 했으며, "정대업", "보태평" 등 저명한 악곡을 제작하게 하였다.
또한 실록 보관을 위하여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에 4대 사고를 설치했는데,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만 남고 모두 불타버렸다.
  과학기술에 대한 업적은 42년 이천 ,장영실로 하여금 우량을 분포 측정기인 측우기를 제작하게 했는데, 이는 1639년 이탈리아의 B.가스텔리가 발명한 측우기보다 약 2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그리고 궁중에 과학관인 흠경각을 설치하고 과학기구를 비치하도록 했고, 훈천의, 해시계, 물시계 등 각종 과학기구를 발명하였다.
김담, 이순지 등을 시켜 중국 원 나라의 수시력, 명나라의 대통력을 참작하고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빌어 역서인 칠정산내외편을 편찬했고, 천문, 역법, 의상등에 관한 지식을 종합한 <제가역상집>을 이순지가 펴냈다.
  경제, 사회 정책면은 36년 공법상정소를 설치하고 각 도의 토지를 비척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누어 세율을 달리하는 안을 실시했으나 결함이 많았으므로 43년에 공법상정소의 안을 시정하기 위하여 전제상정소를 설치하고 풍흉에 따라 연분 9등법과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전분6등법에 의한 수등이척법으로 조세의 공평화를 도모했으며, 전국의 토지를 20년 마다 측량하여 양안을 작성하도록 했다. 그리고 의창, 의료제도, 금부삼복법을 제정했고, 노비에 D대한 지위등을 개선, 사형을 금하도록 했다.  대외정책면에서는 국가의 주권 확립과 영토확장에 진력한 치적을 들 수 있다. 명나라와의 관계를 보면, 처녀진헌을 폐지하는 한편, 당나라에 보내던 금, 은의 조공물을 폐지하고 마, 포로 대신하도록 했다. 그리고 여진과의 관계는 무력을 강경책을 쓰거나 회유하는 화존 양변책을 썼는데, 두만강 유역의 여진은 김종서로 하여금 구축하도록 하고 6진을 개척하여 국토를 확장하였다. 압록강 유역의 여진은 최윤덕, 이천등으로 하여금 구축하게 하고, 4군을 설치하였다. 이 때의 국경선이 압록강으로부터 두만강까지 확보되어 이 곳에 사민정책을 실시하는 등 국토의 균형된 발정에 노력하였다. 그리고 일보고는 19년(세종1) 이종무로 하여금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섬을 정벌하게 했으며, 이후 쓰시마 도주소 사다모리가 사죄하고 통상을 간청해오자, 26년 삼포를 개항하였다. 이후 왜인의 출입이 증가하자 43년 왜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하여 신숙주의 교섭으로 변효문과 소 사다모리 사이에 계해조약을 체결하게 하여 1년 동안에 입항할수 있는 세견선을 50척으로 제한했고, 세사미를 200섬으로 제한하는 한편, 반드시 수도서인에 한하여 왕래하도록 무역과 출입을 통제하였다.   능은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있는 영름인데 처음에는 광주에 있었으나, 69년(예종 1)에 이곳으로 옮겼다.   세종조는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유교 정치, 찬란한 문화가 이룩된 시대이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기틀을 잡은 시기였다. 집현전을 통하여 많은 인재를 길렀고, 유교 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 제도를 정비하였으며, 나아가 겨레 문화를 높이는 데에 기본이 된 훈민정음의 창제, 방대한 편찬 사업, 농업과 과학 기술의 발전, 의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업적으로 나라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다.
[세종대왕]
세종의 성명은 `이도`이며 자는 원정(元正)이고,
시호는 '세종 장헌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다.

 

1397년(1세) 4월 10일(양력 5월15일) 태종의 셋째 아들로 한양에서 탄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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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 이름의 변천사
우리글 이름의 변천사 우리글은 창제된 이후에 훈민정음, 정음, 언문, 반절 등으로 불려오다 주시경 선생에 의해서 한글이라는 제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창제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글 이름의 변천 과정을 알아 봅시다.

가. 훈민정음(訓民正音)

-우리 글자를 창제할 때 붙인 이름(1443년)
-정음: 정인지 서문에서 사용
 보기> - 정인지 서문:
          癸亥冬,我殿下創製正音二十八字,略揭例義,以示之,名曰訓民正音
          - 세종실록(권102) 28년(1446) 丙寅 9월:
          是月訓民正音成,御製曰,國之語音異乎中國
          - 월인석보의 머리글에 있던 어제훈민정음:
          百姓을 가르치시논 正(졍)한 소리라

나. 諺文

-상스런 말을 적은 글이란 뜻.
 보기> - 세종실록 계해(세종 25년) 12월조:
          是月上親制諺文二十八字,其字倣古篆,分爲初中終聲,合之然後
          - 세종실록 병신(26년) 2월 20일 상소문:
          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今之諺文不亦便民乎
          - 세종 28년 새로운 문자의 보급과 실천을 위해서 諺文聽 설치

-한문과 언문의 쓰임 비교

중국말: 言語 중국글: 漢文, 眞書
우리말: 方言, 俚語, 俗語, 諺語 우리글: 諺文, 諺書, 諺字

다. 反切

-한글은 음소문자(낱소리 글자)라서 소리를 나타내는 방법이 반절과 비슷하다하여 생겨난 이름
 보기> 최세진의 訓蒙字會: 諺文字母,俗所謂反切二十七字

-반절: 한자의 음을 표시할 때, 쉬운 한자를 이용하여 성과 운으로 나타내는 법.
 보기> 天: 他前[ㅌ + ㅕㄴ > 텬] 東: 德紅[ㄷ + 옹 > 동]

라. 기타: 암클, 창살글자, 중글, 상말글

마. 근대의 우리글 이름

-갑오경장(1894) 이후: 國語, 國文
 보기> 주시경의 저서: 국문론(1897), 국어문법(1898), 국문문법(1905)
          주시경의 단체: 국문동식회(1896), 국어연구회(1907)

-한나라말(韓):한국어, 한나라글:한국문
 보기> {보중친목회보} 1호(1910)에 실린 주시경의 글

-경술국치(1910) 이후:조선어
 보기> 조선어문법(1911), 조선어전(1911), 조선어강습원(1911)

-한말
 보기> 국어연구회 강습소 제2회 수료 증서(1911.4.1)의 문구
          [한말익힘곳침]

-배달말
 보기> [국어연구회]를 '배달말글몯음(조선어문회)로 바꿈.(1911.9.17)

-한글: 주시경이 지은 우리글 이름으로 `한`은 `큰`이란 뜻이다.
 보기> [배달말글몯음](조선어문회)를 [한글모]로 개칭
          최남선 [아이들보이]지(1913.9)의 '한글풀이'
          [한글배곳](1914.4)(조선어강습원)
          김두봉의 [조선말본](1915) 머리말
             -> '한글모임자 한샘'이라는 말
          이규영: 한글모죽보기(1916~1919)
          1927년 2월 8일 [조선어연구회]에서 기관지 [한글] 간행
          훈민정음 반포일 [한글날(1928,가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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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국어


 고대 한반도 및 이에 연결된 대륙의 일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세 언어가 있었다. 7세기 후반에 백제와 고구려가 잇달아 멸망한 뒤에 백제와 고구려의 언어는 점차 신라어로 바뀌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한반도의 언어적 통일이 성취되어 갔다. 고구려나 백제에도 이두나 향찰과 비슷한 표기법이 있었겠지만, 이들은 주로 신라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이두는 우리말이 된 한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순수한 한문에 능통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향찰은 신라의 향가 문학의 발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시기: - 10C(신라 멸망)
  의의: 언어적 통일 시기
  자료: 여러 역사책에 나오는 고유명사 표기(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실린 인명, 지명, 관명 등), 이두 자료, 향찰-삼국유사에 실린 향가 14수, 균여전에 실린 보현시원가 11수, 신라어 어휘를 기록한 단편, 고대 일본어에 들어간 차용어 표기: 한문(석독, 음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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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중세국어

 중세국어의 시기는 10세기부터 16세기까지 7세기 동안에 걸친다. 그러나 전기·후기의 구분은 왕조의 변혁이나 훈민정음의 창제와는 관계가 없다. 조선이 건국되어 서울이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겨졌으나, 개성과 한양은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고려 중앙어가 그대로 조선 중앙어로 계승된 것이었다. 훈민정음 역시 어디까지나 국어를 표기하는 문자체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그 출현이 국어의 음운, 문법, 어휘에 어떤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니다.
 전기와 후기의 구분은 14세기에 그 음운체계에 현저한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믿어지기 때문이다.

  시기: 고려건국 - 16C(고대국어의 중심어는 서라벌)   의의: 중심어가 이동했고 고려의 중심어는 조선으로 계승되었다.(개성과 한양은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다.)
  자료: 계림유사, 향악구급방
  표기: 중세국어에 와서 한자어가 격증하였다. 고려 광종 9년(958)에 과거제도를 실시한 것도 하나의 자극이 되어서 고려시대에 있어서는 완전히 문인 학자는 물론 일반 관리까지도 구어로서는 우리말을 사용하고 문어로서는 한문을 사용하는 기형적인 이중생활을 하였다. 이리하여 거의 모든 문화적 학술적 용어는 한자어에 의존함으로써 국어는 이들 엄청난 한자어에 압도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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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중세국어

 후기 중세국어 특히 15세기 중엽은 국어의 역사적 연구에서 각별한 주목을 받아 왔다. 그 주된 이유는 이 때에 훈민정음이 창제되어 이 문자로 많은 문헌이 간행된 데 있다.19세기와 20세기의 교체기에 훈민정음의 원리와 원형을 밝히려는 학자들의 노력에서 국어의 역사적 연구가 싹텄다.

  시기:14 - 16C
  의의: 이 시기부터 훈민정음으로 많은 문헌이 간행되었다.
  자료: 조선관역어, 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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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국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사회와 문화에서 점차 새로운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것은 안으로는 상업, 수공업의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 사회적인 변화가 현저했고, 밖으로는 서양 문물에 접하여 그 자극을 받은 결과였다. 이리하여 18세기에 들어 융성한 실학과 서민 문학이 발전했다.

  시기: 17 - 19C말
  정서법: 사성, ㆁ, ㅿ이 없어짐 어두합용병서에 혼란이 생겨 ㅄ계 낱말은 17C 소멸 종성의 ㅅ,ㄷ 혼란 어두가 된소리인 낱말이 증가 구개음화 생겨남 ㆍ소실 원순모음화가 일어남 모음조화의 파괴가 일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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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국어

 1945년 이후에 한글전용 운동이 전개되었다. 개화기부터 계속되었던 표준어와 정서법의 확립은 국문 정리 사업의 핵심이었다.

  시기: 20C -
  정서법: 모음체계에 혼란 ㅔ/ㅐ, ㅟ/ㅚ 음절구조는 `자음+(반모음)+모음+자음`의 형태가 됨 외국어의 영향 약어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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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위지동이전

 기원전후 부여(고구려, 부여, 예, 옥저), 한(마한, 변한, 진한), 숙신계(여진) 언어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三國志(삼국지, 289년)의 魏志(위지) 東夷傳(동이전)에 적힌 기록을 보면, 북쪽에는 夫餘(부여),高句麗(고구려),沃沮(옥저),濊(예)의 언어들이 있었다.
 고구려는 "東夷舊語 以爲夫餘別種 言語諸事 多與夫餘同"이라 하였고, 동옥저에 대해서는 "其言語與高句麗大同 時時小異"라 하였으며 예에 대해서는 "言語法俗 大抵與高句麗同"이라 하였다.
 이 기록을 믿는다면 이들 언어는 서로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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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 백제전

 고구려와 백제는 언어가 비슷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백제의 지배층이 고구려의 유이민이므로 지배층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고 피지배층의 언어는 한계언어였을 것이다.
 梁書(양서, 629년) 百濟傳(백제전)을 보면, 백제어는 "今言語服章 略與高驪同"이라 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백제의 지배족의 언어에 관한 기술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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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언해

 책으로서의 훈민정음은 해례본 훈민정음과 언해본 훈민정음의 두 가지가 있다.
 이는 모두 새로 만든 우리 글인 `훈민정음`을 풀이한 책이다. 한문으로 되어 있는 해례본은 본문과 해례 및 정인지의 서문으로 되어 있고, 언해본은 예의편인 본문이 중심이며 이에 중국의 치두음과 정치음을 더하여 언해한 것이다.
 언해본의 판본은 몇 가지가 있는데 월인석보 첫째 권 머리에 실려 있는 것을 1586년(선조 6년)이라는 간기가 있는 희방사본이라고 부른다. 해례본은 정인지의 서문에 의하여 1446년 지어진 것임을 알 수 있으나 언해본의 지어진 연대와 지은이는 알 수 없다.
 다만 중국의 치두음과 정치음을 구별한 점, 이영보래법을 규정하고 있는 점 등을 보아 <동국정운>이 이루어진 때부터 <월인석보> 간행에 이르는 동안에 집현전 학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희방사본 밖에 언해본의 이본으로는, 박승빈 소장 단행본, 일본 궁내성 소장본, 일본인 가나자와 소장본이 있다.

훈민정음 해례

 세종 25년 우리 글자인 훈민정음이 만들어지자 이에 대한 해례서가 세종 28년(1446년)에 한문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이름도 훈민정음이다. 이 한문본 훈민정음은 언해본 훈민정음과 구별하기 위해 한문본 훈민정음, 원본 훈민정음 또는 해례본 훈민정음이라 불린다.
 내용은, 세종 어제 서문과 새로 만든 글자의 음가와 그 운용법을 밝힌 예의가 본문으로 되어 있고, 이를 해설한 해례가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 용자례의 차례로 나뉘어져 있으며 끝에 정인지 서문이 붙어 있다. 해례에는 제자 원리, 음가, 글자의 운용법, 음운 체계 등이 상세하게 해설되어 있다.
 현존하는 판본은 전형필님 소장본으며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이다.

- 김영송(1994), 우리옛글(1), 세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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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정운

 동국정운은 훈민정음을 만드리 위해 중국 음운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세종 임금과 집현전 학사들이 당시 조선 한자음과 중국 음운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알고 소리 글자인 훈민정음을 써서 조선 한자음을 바로 잡으려고 만든 운서이다.
 세종 29년 9월에 만들어져 세종 30년 10월에 간행되었다. 엮은이는 신숙주, 최항, 성삼문, 박팽년, 이개, 강희안, 이현로, 조변안, 김증이며, 신숙주가 서문을 썼다.
 동국정운의 자모체계는 훈민정음과 같은 사성 23 자모체계이며 운은 모두 91운이다. 동국정운식 교정음은, 중국 한자음도 조선 한자음도 아닌 교정음이므로 오래가지 못하고, 만들어진지 약 40년 뒤인 성종 중기부터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한자음 실은 방식은, 이제까지 운서가 해오던 방식과는 달리 같은 운을 한데 묶은 다음 그 안에서 성조의 차례에 따라 글자를 벌여 놓은 것이다.
 판본은,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되어 전형필님이 소장하고 있는 권1, 권6(국보71보) 전씨본, 1972년 강릉 심교만님 집에서 발견되어 건국대학교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는 6권6책 전질(국보 142호)이 있다.

- 김영송(1994), 우리옛글(1), 세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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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

 용비어천가는 정인지의 서와 권제, 정인지, 안지 등의 진전을 따르면 새종 27년(1445년)에 완성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권 10뒤에 있는 최항의 발문에는 세종 29년(1447년) 2월에 완성되었다고 되어 있다. 편찬이 완성된 것은 이 해 10월이다. 원문인 노래는 정인지, 권제, 안지가 짓고, 주해는 박팽년, 강희안, 신숙주, 이현로, 성삼문, 이개, 신영손의 입곱 사람이 하고, 발문은 최항이 썼다. 짜임은 125장의 노래가 10권으로 되어 있는데, 정인지의 서문, 정인지, 권제, 안지의 진전, 노래 125장(한글 노래말, 한시, 한문주), 최항의 발문으로 되어 있다.
 이 노래는 조선조의 창업을 기린 것으로, 태조의 4대조인 목조의 터닦음으로부터 태종에까지 6대 익조, 도조, 환조, 태조, 태종의 왕업이 천명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 이어 오는 임금들에게 왕업을 지킴에 있어 삼가야 할 것을 들어 가르침을 목적으로 한 것인데, 1장과 125장을 빼고는 대련 형식이다. 용비어천가는 새로 지은 훈민정음으로 제일 먼저 만든 노래이므로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우리말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해 주는 문헌으로 어학적 자료의 가치가 높은 반면, 악장체 문학으로서의 문학, 음악적 가치와 그 내용상 역사적 가치 또한 높은 자료이다.
 초간본은 서울대학교 가람문고에 권1,2가 전하고, 중간본은 규장각 문고에 4종이 전한다. 그 중 광해군 4년(1612년)의 중간본이, 완본으로 전해지는 최고의 것이다.

- 김영송(1994), 우리옛글(1), 세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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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훈민정음(御製訓民正音)




  조선의 넷째 임금인 세종(1397-1450)-세종의 성명은 이도이며 자는 원정(元正)이고, 시호는 '세종 장헌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다-은 워낙 슬기롭고 능한 임금이라, 나라 안팎을 지키고 백성을 위하는 일을 많이 벌이면서, 무엇보다도 교육에 각별한 정성을 기울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세종 임금은 즉위한 뒤 4년(1422)부터 책을 박는데 기초가 되는 활자의 글씨체 개량을 직접 지휘할 만큼 글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많은 분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성과 뛰어난 자질은 세종 25년(1443) 음력 12월에 몸소 훈민정음 곧 한글을 만들어냄으로써 유감없이 빛을 내었다. 세종 임금은 왕립 연구소라 할 집현전에 모아 기른 인재들 가운데 일부-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강희안, 이개, 이선로, 성삼문 등-를 궁중의 언문청 또는 정음청에 따라 모아 보좌를 받으면서 한글 만들기를 주도했다.

  그때 집현전의 신하인 최만리가 대표가 되어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줄거리로 새 글자 만들기를 반대하는 상소(1444)를 했다. ( 최만리는‘역사의 죄인’인가?)

  첫째, 대대로 중국의 문물을 본받고 섬기며 사는 처지에 한자와는 이질적인 소리 글자를 만드는 것은 중국에 대해서 부끄러운 일이다.
  둘째, 한자와 다른 글자를 가진 몽고, 서하, 여진, 일본, 서번(티베트) 등은 하나 같이 오랑캐들뿐이니,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것은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일이다.
  셋째, 새 글자는 이두보다도 더 비속하고 그저 쉽기만 한 것이라 어려운 한자로 된 중국의 높은 학문과 멀어 지게 만들어 우리네 문화수준을 떨어지게 할 것이다.
  넷째, 송사에 억울한 경우가 생기는 것은 한자를 잘 알고 쓰는 중국사회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며, 한자나 이두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관리의 자질에 따른 것이니 새 글자를 만들 이유가 되지 못한다.
  다섯째, 새 글자를 만드는 것은 풍속을 크게 바꾸는 일인만큼, 온 국민과 선조와 중국에 묻고 훗날 고침이 없도록 심사 숙고를 거듭해야 마땅한데, 그런 신중함이 전혀 없이 적은 수의 사람들만으로 졸속하게 추진하고 있고, 상감은 몸을 헤쳐 가며 지나친 정성을 쏟고 있다.
  여섯째, 학문과 수도에 정진해야 할 동궁(문종)이 인격 성장과 무관한 글자 만들기에 정력을 소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세종 임금은 이에 대해서 세세히 답변하지는 않고, 설총이 백성의 글자 생활을 돕기 위해 이두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한글도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탐해서가 아니라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만드는 중대한 나랏일임을 먼저 밝히고, 다만 넷째 의견에 대해서 사리를 모르는 속된 선비의 생각이라고 비판하고,
여섯째 의견에 대해서 한글의 중요함에 비추어 동궁이 관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답변했다.


  세종 임금은 당신 나름으로 신중하게 다듬기를 계속하고 신하들과 함께 몇 가지 문헌을 한글로 만드는 실용의 시험을 거쳐 세 해사 지나서야 [훈민정음(1446)]을 통해 반포했다. 이 책의 머리에 실린 짧은 글을 통해서 세종 임금은 중국 것에 사로잡히지 않은 곧은 줏대와 백성들의 어려움을 벗겨 주고자 하는 어진 마음과 단지 삶의 편의를 위해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는 실용주의 정신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우리 나라의 말이 중국말과 달라서,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에 어진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뜻을 담아서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것을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들어 내놓으니,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깨우쳐 날로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國之語音異乎中國 與文子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而 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

-발췌문(김정수(1994), 한글의 역사와 미래, 열화당 p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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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결국 인간들이 살아간 흔적이라고 한다면 인물사는 역사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분야다. 그러나 인물에 대한 평가는 문중(門中)과 학파의 이해 관계, 시대적 상황에 의해 전혀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어떤 인물을 숭모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다른 인물을 깎아 내리는 비교사적 필법(筆法)은 인물사를 빗나가게 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 민족사를 되돌아보면, 영광에 못지 않게 오욕의 역사도 적지 않은데 그 중에서 가장 마음 아픈 것이 너무 오랫동안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중국의 문자를 빌려쓴 데서 비롯된다. 글자란 단순히 글을 쓰는 수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중국의 문화까지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저들의 중화주의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역사를 살게 됐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칭송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것은 한문이 너무 어려워 백성들이 전하고자 하 는 바를 글로 풀어 쓸 수 없음을 측은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역사에서 일찍이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명군(明君)이자, 현자(賢者)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한글의 역사를 얘기할 때 우리는 한 인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그 밑바닥에 깔고 이론을 전개한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최만리(崔萬理)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배운 역사에 의하면 그는 한글 창제에 반대했고, 이 사실로 인해 ‘역사의 죄인’으로 비난받고 있다. 과연 그럴 만한 인물일까?
최만리는 역사적으로 비난받은 사람이었던 탓에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 지조차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옛 문헌인‘국조방목(國朝榜目)’에 의하면 그는 해주(海州) 최씨의 시조인 해동공자 최충(海東孔子 崔沖)의 12대 후손으로 아버지의 이름은 최하(崔荷)였다고 한다. 그는 세종이 왕위에 등극한 1419년에 진사시 을과에 합격함으로써 벼슬길에 올랐다. 본시 학문이 높았던 최만리는 과거 합격과 더불어 벼슬이 올라 집현전에 들어가 박사(博士)를 거쳐 직제학(直提學)이 되었고, 1439년에는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잠시 임금의 곁을 떠났다가 이듬해 집현전 부제학이 되어 서울로 돌아와 세종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늙어서 고위직인 통정대부(通政大夫)에까지 올랐고 청백리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무능하거나 부덕했던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1443년이 저물어 갈 무렵, 세종은 오랜 노력 끝에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이듬해 연초가 되자 최만리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세종실록’ 갑자년(1444) 2월 20일(庚子)자에 실린 그의 상소문을 읽어보면 우리가 그의 진심을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어느 신하보다도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사업을 대단한 업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상소의 첫머리에서 ‘한글을 창제한 왕의 업적이 지극히 신묘해 사리를 밝히고 지혜를 나타내심이 천고에 뛰어난 업적’이라고 경하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상소를 이어가면서 몇 가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첫째, 한글을 쓰노라면 한문을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백성들이 장차 중국의 예법을 모르게 될 것이니 그 점이 걱정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최만리에게 두 가지 잘못이 있음을 알게 된다. 우 선 한글을 쓰게 되면 한문을 쓰지 않게 되리라는 것은 생각이 지나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때로부터 560년이 지난 지금도 한문이 없어져서는 안 된다 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고, 또 그들의 주장이 잘못 됐다고만 볼 수 없다면, 당시 최만리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을 크게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또 한 가지, 그가 중국의 제도(예법)를 버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 부분은 비난을 받을 만하다.
한글의 창제가 중국의 제도를 버리는 것도 아니려니와 중국의 제도로부터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국가의 운명을 바꿔 놓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가 중국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걱정한 것은 그가 한때 총명을 잃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의 정황으로 볼 때 그런 식의 사고에 대해 최만리 혼자 책임질 일은 아니었다. 상소가 합소(合疏·여러 명이 연명한 상소)였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신복룡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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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訓民正音) 원리

 

  한글 만들기는 우선 여덟 개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닿소리 글자 다섯(ㄱㄴㅁㅅㅇ)과 홀소리 글자 셋(ㆍㅡㅣ)이다. 글자 만들기에서 닿소리와 홀소리를 구별한 것은 이 두 가지 소리가 소리마디를 이룰 때 그 구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홀소리는 이름 그 대로 홀로 소리마디를 이룰 수 있는 독립적인 소리인데, 닿소리는 홀소리와 닿아야 내기가 쉬운 의존적인 소리이다.
  'ㄱ(기역)'이란 글자는 이 글자가 나타내는 소리를 낼 때 혀의 뒤쪽 곧 어금니에 닿는 혀의 부분이 곱사등처럼 굽어 목젖 가까이 붙는 옆 모양을 본뜬 것이다. 이 글자의 소리와 같은 입 모양으로 나는 소리가 'ㅋ,ㄲ' 글자의 소리들이라, 그 글자 모양도 서로 비슷하게 만들어 졌다. 'ㄱ'에 금이 하나 덧붙은 'ㅋ'은 그 소리가 ㄱ[그] 소리에는 없는 ㅎ[흐] 소리가 함께 나서 아주 거세어 지기 때문이다. 'ㄱ'을 겹쳐 'ㄲ'을 만든 것은 ㄲ[끄] 소리가 ㄱ[그] 소리보다 목과 입 전체에 힘을 많이 줘 내는 센소리이기 때문이다. 이 소리들을 모두 어금닛소리 또는 뒤혓소리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앞에 말한 대로 이런 소리들을 낼 때는 언제나 어금니에 닿는 뒤혀 부분이 굽어 오르기 때문이다.



  'ㄴ(니은)'이란 글자는 이 글자의 소리를 낼 때 혀의 앞쪽이 우묵하게 구부러지고 혀끝이 윗잇몸에 붙는 옆 모양을 본뜬 것이다. 이 글자의 소리와 같은 입 모양으로 나는 소리가 `ㄷ(디귿) ㅌ(티읕) ㄸ(쌍디귿) ㅥ(쌍니은)` 글자의 소리들이라, 이 글자 모양도 비슷하게 만들어 졌다. 이 소리들을 모두 혓소리 또는 앞혓소리라고 부른다. ㄴ[느]는 아주 부드러운 소리이고 ㄷ[드]는 그보다 굳은 소리이기 때문에 'ㄴ'에 금을 하나 더해서 'ㄷ'을 만들었다. 'ㄷ'에서 'ㅌ ㄸ'이 나온 이치는 앞의 'ㄱ'에서 'ㅋ ㄲ'이 나온 이치와 같다. 역시 'ㄴ'에서 번져 나온 것이 'ㄹ(리을)' 글자인데, 그 소리가 부드러움에도 불구하고 금이 많이 덧붙었다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그 소리는 혀끝이 ㄴ와 비슷한 자리에 닿되 혀의 모양이 많이 구부러지거나 떨게 되는 반혓소리다. 이 글자도 혀의 옆 모습을 본떴음을 짐작할 수 있다.

  'ㅁ(미음)'이란 글자는 이 글자의 소리를 낼 때 아래위의 두 입술이 붙기 때문에 입의 모양을 본뜨고 모나게 다듬은 것이다. 이 글자의 소리를 낼 때와 마찬가지로 두 입술을 붙이고 내는 소리가 'ㅂ(비읍), ㅍ(피읖), ㅃ(쌍비읍)' 글자의 소리들이라, 이들도 'ㅁ' 한 글자에서 번져 나간 것이다. ㅁ[므]는 아주 부드러운 소리이고 ㅂ[브]는 그보다 굳은 소리이기 때문에 'ㅁ'에 두 뿔을 더해서 'ㅂ'을 만들었다. 'ㅂ'글자에 아래로 두 발을 붙이고 옆으로 눕힌 것이 'ㅍ' 글자이고, 'ㅂ' 글자를 두 개 겹친 것이 'ㅃ' 글자이다. 이처럼 'ㅂ'에서 'ㅍ, ㅃ'이 나온 이치는 'ㄱ'에서 'ㅋ, ㄲ'이 나온 이치와 같다. 이 글자들의 소리를 모두 입술소리라고 부른다.



  'ㅅ(시옷)'이란 글자는 이 글자의 소리를 낼 때 혀끝과 윗니 사이를 좁히고 그 사이로 바람을 스쳐 내게 되기 때문에 이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이 글자의 소리보다 더 되게 나는 소리를 적기 위해서 겹쳐 만든 것이 'ㅆ(쌍시옷)' 글자이다. 또 이 글자의 소리보다 더 굳게 나는 소리를 적기 위해서 금을 더해 만든 것이 'ㅈ(지읒)'이고, 이 'ㅈ'보다 더 되게 나는 소리를 적기 위해서 다시 겹쳐 만든 것이 'ㅉ(쌍지읒)'이다. 이런 소리들을 묶어서 잇소리라고 부른다. 역시 'ㅅ'에서 번져 나온 것이 'ㅿ(반시옷)'인데, 그 소리가 더 부드러움에도 불구하고 금이 더해 졌다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그 소리는 혀끝이 ㅅ[스]와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혀끝을 울려 내는 반잇소리이다.

  'ㅇ(이응)'이란 글자는 목청이 울리는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목구멍의 동그란 단면을 본뜬 것이다. 마찬가지로 목청에서 나되 그보다 더 굳은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 글자에 금을 얹어 'ㆆ(된이응)'을 만들었다. 이 'ㆆ'의 소리는 이를테면 "앗! 안됏!"라고 말할 때 'ㅅ'받침으로 적히는 소리와 같은 것이다. 이 말을 정확히 적자면 실은 "앟! 안됗!"로 적어야 된다는 말이다. 이 소리보다 더 거센 목청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금을 하나 더 그어 'ㅎ(히읗)'을 만들었다. 또 'ㅇ'의 소리보다 더 된 소리를 적기 위해서 'ㆀ(쌍이읗)'을 만들었고, 'ㅎ'의 소리보다 더 된 소리를 적기 위해서 'ㆅ(쌍이읗)'을 만들었다. 역시 'ㅇ'에서 번져 나온 것이 'ㆁ(옛이응)'이다. 이 글자의 소리를 낼 때 혀의 모양이 'ㄱ' 따위의 소리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ㄱ'을 본받지 않고 'ㅇ'을 본받아 만든 것은 또한 예외적인 일인데, 그것은 'ㆁ'의 소리가 'ㅇ'의 소리처럼 목청 울림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소리의 느낌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고, 또 'ㅇ'보다는 더 굳은 맛이 있기 때문에 금을 하나 더 그어 만든 것이다.   이제 닿소리 글자들이 번져 나온 관계를 통틀어 보면, 밑 글자(기본 글자) 다섯이 적어도 서른 아홉으로 번진 셈이다. 이러한 닿소리 홑글자들을 둘씩 셋씩 겹쳐 적은 세종 당대의 닿소리 겹글자들까지 포함시킨다면 그 번진 수효는 예순일곱으로 늘어난다. 초성(11): ㅥ, ㅳ, ㅄ, ㅴ, ㅵ, ㅶ, ㅷ, ㅺ, ㅻ, ㅼ, ㅽ
종성(17): ㅦ, ㅧ, ㅨ, ㄺ, ㅩ, ㅪ, ㄻ, ㄼ, ㅫ, ㄽ, ㅬ, ㅭ, ㅮ, ㅯ, ㅰ, ㅄ, ㆂ   다음으로 홀소리는 닿소리와 그 성격이 다른 만큼, 그 글자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다. 점 'ㆍ(아래아)'와 직선 둘 'ㅡ, ㅣ' 이들이 홀소리 글자의 밑글자다. 점은 하늘의 둥근 모습을 본뜨노라 한 것이고, 수평선은 땅을 본뜨노라 한 것이고, 수직선은 사람을 본뜨노라 한 것이다. 이 세 글자가 나타내는 소리는 세 가지 종류의 홀소리들 가운데 각각 그 대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홀소리 글자들의 밑 글자가 된 것이다. 세 종류의 홀소리란, 첫째가 밝은홀소리이고 둘째가 어두운홀소리이며 셋째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가운데 홀소리이다.
이 세 글자가 다음과 같이 먼저 일곱 개로, 나중에는 다음과 같이 모두 서른 한 개나 되는 홀소리 글자로 번져 나갔다.
  밝은 홀소리 가운데 가장 중립적이며 대표적인 소리는 점 'ㆍ(아래아)'로 나타내는 소리이다. 이와 같은 밝은 홀소리로 우선 'ㅗ'와 'ㅏ'로 나타내는 소리가 있다. 'ㅗ'는 그 소리가 밝은 소리임을 나타내기 이해서 아래아 'ㆍ'를 'ㅡ'의 위에 올려 놓은 것이고, 'ㅏ'는 역시 그 소리가 밝은 소리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아래아 'ㆍ'를 'ㅣ'의 밖에 내어 놓은 것이다.   'ㅗ' 소리는 'ㆍ'소리보다 입술을 오무려 내는 소리이고, 'ㅏ' 소리는 'ㆍ'소리보다 입술을 펴서 내는 소리이다.   이들 세 글자 'ㅏ, ㅗ, ㆍ'의 소리에 'ㅣ' 가운데 홀소리가 앞에 포개어져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ㅑ, ㅛ,  '들이다. 이 가운데 다섯 글자 'ㅏ, ㅑ, ㅗ, ㅛ, ㆍ'의 소리에 'ㅣ' 가운데 홀소리가 뒤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ㅐ, ㅒ, ㅚ, ㆉ, ㆎ'들이다. 이 가운데 다시 두 글자 'ㅏ, ㅐ'의 소리에 'ㅗ' 소리가 앞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가 'ㅘ, ㅙ'들이며, 또한 이와 비슷하게 두 글자 'ㅑ, ㅒ'의 소리에 'ㅛ' 소리가 앞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가 'ㆇ, ㆈ'들이다. 다만 이들 전체 가운데 세 글자 'ㆇ, ㆈ,  '들은 실제로 쓰인 일이 없는 만큼 이론적인 가능성을 보인 데 지나지 않는다. 아무튼 이들 밝은 홀소리 글자를 모두 합하면 열 다섯 자이다.   어두운 홀소리 가운데 가장 중립적이며 대표적인 소리는 'ㅡ'로 나타내는 소리이다. 이와 같은 어두운 홀소리로 우선 'ㅜ'와 'ㅓ'로 나타내는 소리가 있다. 'ㅜ'는 그 소리가 어두운 소리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ㅡ'의 아래에 'ㆍ'를 내려 놓은 것이고, 'ㅓ'는 역시 그 소리가 어두운 소리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ㅣ'의 안에 'ㆍ'를 들여 놓은 것이다. 'ㅜ' 소리는 'ㅡ'소리보다 입술을 오무려 내는 소리이고, 'ㅓ'소리는 'ㅡ'소리보다 입술을 펴서 내는 소리이다.   이들 세 글자 'ㅓ, ㅜ, ㅡ'의 소리에 'ㅣ' 가운데 홀소리가 앞에 포개어져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ㅕ, ㅠ,  '들이다. 이 가운데 다섯 글자 'ㅓ, ㅕ, ㅕ, ㅠ, ㅠ, ㅡ'의 소리에 'ㅣ' 가운데 홀소리가 뒤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ㅔ, ㅖ, ㅟ, ㆌ, ㅢ'들이다. 이 가운데 다시 두 글자 'ㅓ, ㅔ'의 소리에 'ㅜ'소리가 앞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가 'ㅝ, ㅞ'들이며, 또한 이와 비슷하게 두 글자 'ㅕ, ㅖ'의 소리에 'ㅠ' 소리가 앞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가 'ㆊ, ㆋ'들이다. 이들 가운데 한 글자 ' '도 이론적인 가능성을 보인 데 지나지 않지만, 아무튼 어두운 홀소리 글자들은 모두 열 다섯 자이다.   이와 같이 한글이 만들어 진 경위를 훑어 보면, 닿소리 글자 다섯이 예순일곱으로, 홀소리 글자 셋이 서른 하나로, 다시 말하면 밑 글자 여덟이 모두 아흔 여덟으로 곧 열 두 곱 넘게 불어난 셈이다. 그것도 치밀한 연결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글만들기의 이처럼 독창적이고도 정연한 조직성에 대해서 미국의 역사학사 레드야드(The Korean Reform od 1446: The Origin, backgroung and Early History of Korean Alphabet)는 다음과 같이 예찬하고 있다.   "한글의 가장 특이하고 흥미로운 요소는 시각적인 모양과 시각적인 기능 사이에 치밀한 대응이 나타나 있는 점이다. 닿소리 글자와 모양은 홀소리 글자의 모양과 아예 유형이 다를 Q분만 아니라 이 두 갈래 안에서조차 세종 임금은 낱 글자의 모양을 통해서 또 다른 중요한 여러 관계가 드러나도록 했다. 닿소리 글자에서는 글자 모양이 닿소리의 종류와 관련되어 있고, 홀소리 글자에서는 뒤홀소리와 가운데 홀소리 부류가 조직적으로 엄격하게 구별되어 있다. 이처럼 멋과 뜻을 갖춘 합리적인 낱소리 글자는 다시 없다......모양과 기능의 관계라는 생각을 구현한 방식에 대해서는 참으로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소리 종류를 따라 글자 모양을 체계적으로 한다는 것만으로도 족히 그렇다 할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그 모양 자체가 그 소리와 관련된 발음 기관을 본떠 꾸민 것이라니......이것은 정녕 언어학적인 호사의 극치다! 조선의 음운학자들은 참으로 솜씨가 많았거니와, 창조적인 상상력도 모자람이 없었던 것이다." -전문인용(김정수(1994), 한글의 역사와 미래, 열화당 p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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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訓民正音) 풀이


* 한글의 옛 이름   훈민정음은 세종이 지은 이름이지만, 언문 반절은 한글을 두고 지은 고유한 이름은 아니다. 언문은 한자가 아닌 속된 글자를 이르는 것이며 반절은 한자의 소리기호라는 뜻으로 한글이 한자의 소리 기호로 쓰여짐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렇듯이 한글을 '바른소리' 곧 '소리'라고 이른 것은 한글은 뜻과 관계없는 소리의 기호이므로 소리 그 자체를 뜻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훈민정음은 우리나라의 말의 정음의 체계를 말하는 것이다.
체계
朝鮮
글자
한자
언문
소리체계
글자소리 소리체계
홍무정운
동국정운
말소리 소리체계
X
훈민정음
소리기호
반절
반절
  따라서, 한글의 이름으로 불려진 훈민정음, 반절, 언문은 어느 것이나 한글의 글자 이름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고 한글의 일함과 속됨의 성격에 따라 일컬어진 것이다.* 御製訓民正音의 성격과 의도   어제 훈민정음은 그 성격이 반포용 한글교재이다. 그 머리말에서 한글을 만든 까닭을 밝혔으며, 그 다음은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설명한 교재이다.
  그러나 그 머리말의 내용과 전체 글의 실제 표현은 아주 다르다. 이것은 한문을 잘 아는 당시 양반 지식 계층을 위한 한글교재이다. 만약 그 머리말대로 백성들을 위한 반포용 교재였다면 한문이 아닌 향찰로 표기하였을 거시며, 특히 한자음에 필요한 초성의 전탁음의 글자를 설명하거나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초성의 글자와 글자 설명은 성운학적 자모체계를 이루고 있어 어떤 운서의 자모체계를 알리는 범례의 일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御製訓民正音은 당시의 양반 지식 계층에게 28자 한글체계를 알림과 동시에 23자모체계의 어떤 운서의 범례의 구실을 하는 이중 의도로 이루어진 것이며 내용상 28자 한글체계와 34성운체계를 복합시킨 것이다.
* 만든 연대 창제: 세종 25년(1443년) 음력 12월
반포: 세종 28년(1446년) 음력 9월 상한
훈민정음 창제일
- 세종실록(권 102) 25년(1443) 癸亥 12월:
○ 是月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 乃成字 .... 是訓民正音
- 정인지 서문:
○ 癸亥冬, 我殿下創製正音二十八字
훈민정음 반포일
○ 是月訓民正音成, 御製曰, 國之語音 異乎中國 (세종실록 권102 28년(1446) 丙寅 9월)
→ 1446년 음력 9월29일(양력 10월 28일)에 따라 조선어학회에서 1926년부터 한글날로 지정

○ 正統 十一年九月上澣, 資憲大夫禮曹判書集賢殿大提學知春秋館事 世子右賓客 臣鄭麟趾 拜手稽首謹書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 서문`)
→ 正統11년9월上澣(상순:10일)은 음력 9월10일(양력10월 9일)이므로 1940년부터 한글날을 10월 9일로 정함

* 창제목적 ① 모든 백성들이 쉽게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 애민정신
② 우리 정신에 맞는 우리말을 가지도록 - 주체정신, 자주정신
③ 한자음의 정리와 통일된 표기를 위하여 - 실용정신

# 한자음의 정리는 우리말과 다른 중국말을 인식한 데서 비롯되었다. 즉, 한자는 우리말이 아니므로 외래어로서 본디 음에 충실하고자 한 것이다.(因俗歸正;동국정운)
* 훈민정음의 표기상의 특징(15C표기)① ㅸ,ㆅ,ㅿ,ㆁ 등이 모두 사용됨.
② 방점 쓰임.(성조체계존재)
③ 모음 조화가 잘 지켜짐.
④ 이어적기 위주로 표기(연철중심;표음주의)
⑤ 8종성 가족용 표기
⑥ 동국정운식 한자표기(이상적 발음)
* 제자원리 1. 초성17자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먼저 五音의 기본글자를 만들고 여기에 획을 더하여 가획글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발음기관의 모양과는 관계없이 다른 글자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이체글자라 한다.
五音 /종류
상형
기본글자
가획글자
이체글자
엄쏘리[牙音]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형상
혀쏘리[舌音]
혀가 윗잇몸에 닿는 형상
ㄷ,ㅌ
입시울쏘리[脣音]
입술 모양의 형상
ㅂ,ㅍ
 
니쏘리[齒音]
이의 형상
ㅈ,ㅊ
목소리[喉音]
목구멍의 형상
ㆆ,ㅎ
 
초성 17자의 순서: ㄱ,ㅋ,ㆁ / ㄷ,ㅌ,ㄴ / ㅂ,ㅍ,ㅁ / ㅈ,ㅊ,ㅅ / ㆆ,ㅎ,ㅇ / ㄹ,ㅿ 2.중성 11자   天, 地, 人의 三才를 본떠서 기본 글자를 만들고, 이것을 합하여 초출자와 재출자를 만들었다.
성질 /종류
상형
기본글자
初出字
再出字
양성무음
하늘의 둥근 모양
ㆍ(天)
ㅗ,ㅏ
ㅛ,ㅑ
음성모음
땅의 평평한 모양
ㅡ(地)
ㅜ,ㅓ
ㅠ,ㅕ
중성모음
사람이 서 있는 모양
ㅣ(人)
   
모음 11자의 순서: ㆍ,ㅡ,ㅣ / ㅗ,ㅏ,ㅜ,ㅓ / ㅛ,ㅑ,ㅠ,ㅕ 3.훈민정음 초성 23자의 체계
소리의 성질 五音
牙音
舌音
脣音
齒音
喉音
半舌音
半齒音
全淸(예사소리)
   
次淸(거센소리)
   
全濁(된소리)
   
不淸不濁(울림소리)
 
全淸
     
     
全濁
     
     
기본자음의 象形
          혀모양 `ㄴ`에서 이의 모양 `ㅅ`에서

 

* 자음과 모음의 운용 연서법(連書法 니ㅿㅓ 쓰기); 순경음을 만드는 법- 훈민정음 예의에 나오는 규정
- 순음 'ㅁㅂㅍㅃ' 밑에 'ㅇ'을 붙여 씀
- 'ㅸ'은 국어에 ㅱ,ㆄ,ㅹ은 동국정운식 표기에 사용
- 성종 때 없어짐
병서법(竝書法 ㅸㅏ 쓰기); 자음을 나란히 붙여 쓰는 법 -훈민정음 예의에 나오는 규정
- 초성이나 종성에 자음을 옆으로 나란히 붙여 쓰는 법
各字竝書: 같은 자음을 옆으로 나란히 붙여서 쓰는 법 (ㄲ,ㄸ,ㅃ,ㅥ,ㆀ,ㆅ)
合用竝書: 서로 다른 글자를 병서하여 쓰는 법 (ㄳ,ㄶ,ㄺ,ㅦ,ㅨ,ㅫ,ㅭ,ㅵ)
부서법(附書法 브텨쓰기); 자음에 모음을 붙여 쓰는 법 -훈민정음 예의에 나오는 규정
右書: 자음의 오른쪽에 모음을 붙여 쓰는 법 (가)
下書: 자음의 아래쪽에 모음을 붙여 쓰는 법 (그)
성음법(成音法 ); 낱글자를 합하여 음절을 만드는 법-훈민정음 예의에 나오는 규정
-凡字必合而成音; 무릇 낱글자(음운)는 반드시 합해져야 음절이 된다. 우리말의 음절 구성의 필수 요소는 중성인 모음이다. 초성, 종성 등 자음은 선택적이다.
* 사성점 -傍點이라고도 하며 훈민정음 예의에 나오는 규정이다.
- 15,16세기 문헌에 나타나며, 왼쪽에 점을 찍어서 성조를 나타냈다.
- 음의 고저가 현대어에서 음의 장단으로 바뀌었다.
四聲
성질
방점
훈민정음
소리의 높낮이
平聲
安而和
무점
맛 낫가 반 소리
처음과 끝이 한결같이 부드럽고 낮은 소리
上聲
和而擧
2점
처저미 낫갑고 내종이 노판 소리
처음은 낮으나 끝은 들려서 높아지는 소리
去聲
擧而壯
1점
맛 노판 소리
처음과 끝이 한결같이 높고 씩씩한 소리
入聲
促而急
 
ㅅ발리 긋닫는 소리
촉급하게 빨리 끝달리는 소리 (무성음 k,t,p로 끝난 소리)
平聲(_) 上聲(↗) 去聲(-) 入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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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訓民正音) 언해본

 

 



 

[풀이]

우리 나라의 말이 중국말과 달라서,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에 어진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뜻을 담아서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것을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들어 내놓으니,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깨우쳐 날로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 제목 : 한글날 | 세종대왕 | 훈민정음. 2002년 10월 02일 09시 07분. read: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