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6 : 불교의 경전결집과정]
초기교단과 경전결집(근본불교)
● 불교의 전파와 발전
1. 초기 교단과 경전 결집
불교의 교단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 녹야원(녹야원)에서 처음으로 법을 가르치셨을 때부터 비롯되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콘다나[ 陳女]'등 다섯 명의 수행자가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이 교단 형성의 시초이다.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일컫는 이 녹야원에서의 첫 설법 이후, 다섯 수행자의 뒤를 이어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날로 늘어났다. 그 중에는 출가(出家)하여 수행에만 전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 집에 있으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재가 신도들은 더욱 많았다. 불교 교단은 출가 수행자와 재가의 신도들로 이루어진다. 이를 승가(僧伽)라고 하는데 '화합된 무리[和合衆]'라는 뜻이다.
이처럼 부처님께 귀의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불교 교단은 더욱 크게 확장되었다. 부처님 당시의 교단은 부처님의 높은 인격과 뛰어난 교화력으로 훌륭하게 유지되었다. 출가 수행자들은 부처님의 설법과 계율, 그리고 교단의 일정한 규칙에 따라 오직 진리를 깨닫기 위해 수행에 전념하였다. 또한, 위로는 국왕에서부터 아래로는 천민에 이르는 모든 계층의 재가 신도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충실하게 수행했다. 불교교단의 이와 같은 모습은 부처님 입멸(入滅)후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출가자나 재가자를 막론하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와 다름없이 모두 화합하여 법을 실천하였다. 이 때에 교단을 유지하는 데 길잡이가 되었던 것은 부처님께서 밝혀 놓으신 법과, 정해 놓으신 계율이었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입멸을 눈앞에 두고 비탄에 빠진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타이르셨다.
"나의 입멸을 슬퍼하지 말아라. 무릇 육신은 반드시 멸하는 법이다. 그러나, 비록 내 육신은 멸하더라도 법신(法身)은 결코 멸하지 않는다. 법신이란 내가 지금까지 45년 동안 설해 온 법과 계율 가운데 빛나고 있는 '무상(無上)의 정각(正覺)'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입멸한 뒤에는 법과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 지켜나아가라." 부처님만을 의지하고 그 가르침을 받들어 오던 당시의 수행자들에게 부처님의 입멸은 더할 나위 없는 큰 슬픔이었다. 그러나 입멸에 앞서 간곡히 타이르신 부처님의 이 같은 말씀은 그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제자들은 부처님의 법신이야말로 이 세상에 어둠을 밝혀 주는 진리의 빛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과 계율을 잘 받들어, 그 속에서 부처님의 높은 덕을 기리고 그 가르침대로 수행할 것을 다짐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이 입멸하시자 그들은 제일 먼저 법과 계율을 정리하였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과 계율을 간추려 정리하는 일을 결집(結集)이라 한다. 이런 결집이 인도 불교교단에서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제 1차 결집은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직후에 부처님의 수제자(首弟子)인 마하카샤파가 중심이 되어 모였다. 교단의 장로(長老)와 비구 등 모두 5백 명이 마가다 국의 라자가하 성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3개월에 걸쳐 주로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법과 계율을 정리하였다. 이로부터 백년 쯤 후에는 계율을 새롭게 정리하는 제2차 결집이 있었고, 다시 백년 가량 지나서는 아쇼카(A oka) 왕의 주선으로 제3차 결집이 이루어졌다. 제 3차 결집에서는 법과 계율 외에 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내용인 논(論)이 정리되었다. 그리하여 불교의 가르침을 총칭하는 경(법).율. 론의 삼장(三藏)이 이 때 모두 갖추어지게 된 것이다. 또, 그 동안 결집된 내용은 문자화되지 않고 구전(口傳)되어 왔는데, 제3차 결집에서는 그것을 모두 문자로 기록하였다. 그후 다시 3백년쯤 지나 대월지국의 카니슈카(Kani ka) 왕의 뒷받침 아래 삼장의 주석(註釋)들을 정리하는 제4차 결집이 있었다. 육신의 부처님을 대신할 법과 계율의 결집에 이어, 그것들에 대한 연구 논서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정리된 것이다. 제 1차 결집이후, 초기 불교교단의 제자들은 이러한 법과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 화합하여 교단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부처님의 인격적인 감화가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던 시대이기도 하였다. 그후 세월이 흐르자, 불교교단은 표면상의 평온한 모습과는 달리 안으로는 서로의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즉,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지 약 1백 년 가량 지나면서부터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려는 보수적인 장로들에 대하여 이를 자유롭게 해석하려는 젊은 층의 비구들이 출현한 것이다. 그러나 제 2차 결집이 있기 이전까지 불교교단은 여전히 통일된 승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부처님 재세 당시부터 이 시기까지를 근본불교(根本佛敎) 시대라 한다.
2. 교단의 새로운 전개
초기불교시대 사람들은 부처님에 의해 직접 교화받는 영광을 누렸으며, 그들은 출가하거나 또는 재가로 있으면서 부처님을 흠모하고 따랐다. 이 시대의 교화 영역은 부처님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각지로 다니면서 가르침을 펼침으로써 더욱 넓어져 갔다. 이렇게 해서 불교는 주로 중인도 일대에 확대됐다. 부처님이 입멸한 뒤에도 전도 사업은 계속 왕성하게 이루어져 불교는 중인도 전체에 퍼져나갔고 특히 서방(西方)과 서남방(西南方)으로의 전도가 이루어져 드디어 아라비아에까지 도달할 정도였다. 불교를 신봉하는 그룹은 교단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형성돼 발전일로를 걸었다. 일반 민중에게 불교를 교화하기 위해서 인도의 윤회전생사상이 채용되어 부처님의 전생이야기인 <자타카(本生譚)>가 만들어졌다. 한편으로는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의 유골과 유품을 모시는 스투파 탑(塔) 숭배가 일어났으며 탑숭배는 아름다운 조각예술을 꽃피웠다. 불교가 이처럼 널리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본디 불교가 가진 평등주의와 자비 사상 등 고유한 성격 때문이며 또한, 인도의 성왕(聖王)이라 일컫는 '아쇼카(A oka)'왕에 의해 불교가 국가 통치의 기본 이념이 되었고,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던 것이다.
이 무렵 불교교단은 크게 변천하고 있었다. 그 동안 계율적 문제로 의견을 달리 해 오던 장로들과 젊은 비구들의 이견이 제2차 결집 이후 표면화되어 마침내 보수적인 장로 중심의 상좌부(上座部)와 진보적인 비구 중심의 대중부(大衆部)의 두 부파로 나누어졌다. 이를 근본 2부 분열이라고 일컫는다. 이런 근본 분열 이후 100여 년이 지나자 교단은 상좌와 대중2부에서 각각 말파(末派)가 생겨나 이윽고 20부파를 이루게 되었다. 이로써 근본 불교에 이어 이른바 부파불교(部派佛敎)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이 시대의 특징은, 각 부파마다 교법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활발해져서, 수많은 논(論)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논이란 부처님이 설하신 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일종의 주석(註釋)이다. 이로써 경․율에 논이 포함되어 불교의 삼장(三藏)이 성립되었다. 교법에 대한 연구는 근본 불교시대에도 부분적으로 있었지만, 부파 불교시대에 이르러 더욱 특색있게 진전되었다. 근본 2부의 분열은 계율의 해석과 수용에 관한 교단 내의 의견대립에서 시작되었으나, 불교의 지역적인 발전, 교법의 특성있는 연구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불교교단의 새로운 전개가 되었다.
3.대승불교의 출현
부파불교가 난해한 교리를 확립하고 실천에 전념하고 있는 사이에 불교인들에 의해 일종의 새로운 불교 개혁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것이 이른바 대승불교(大乘佛敎; M h yana)가 그것이다. 마하(M h )는 '크다' 야나(yana)는 '탈것(乘物)' 또는 '가르침'을 의미하는 말이다. 대승불교는 부파 불교에 대한 반성에서 일어났다. 따라서, 대승불교는 부처님의 법에 대한 해석은 물론이고, 실천에 있어서도 부파불교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부파 불교에서는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을 열반(涅槃)에 두고 있다. 열반은 절대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부파 불교에서는 세속을 벗어나 열반을 이룩한 아라한(阿羅漢)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삼는다. 이에 비해 대승불교에서는 깨달음을 구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데 그 궁극적인 목적을 둔다. 이와 같은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이 보살(菩薩)이며, 보살은 대승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이다. 이와 같이, 대승불교에서는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열반이 아니라, 성불(成佛)이며, 추구해야할 인격은 아라한이 아니라 보살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대승불교의 정신으로 볼 때, 부파 불교는 교법에 대한 이해나 목적이나 그 이상이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편협한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소승(小乘)이라고 불렀다. 모든 중생을 다 함께 깨달음의 세계로 태우고 가는 '큰 수레'가 아니라, 개인의 열반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작은 수레'라는 뜻이다. 이렇게 하여, 대승 불교와 부파불교는 서로 날카롭게 대립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가르쥬나(龍樹, 약 150~250), 아르야테바(提婆, 170~270)와 같은 대학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대승 경전의 기본이 되는 '공(空) 사상'을 학문적으로 완성하여 더욱 크게 선양하였다. 이후 인도 불교학계에서는 이런 공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중관철학(中觀哲學)이 크게 일어났다. 한편, 4세기 후반에는 다시 아상가(無着, 310~390), 바스반두(世親, 320~400)등이 나타나 대승불교가 지나치게 공 사상에 기우는 것을 경계하였다. 이들은 인간의 주관적인 인식을 중심으로 한 사상 체계를 완성하였다. 이 새로운 사상을 유식철학(唯識哲學)이라 한다.
중관․유식철학의 발전으로 대승불교는 그 내용이 더욱 풍부해졌다. 그러나 성격이 판이한 두 학파의 발전은 결국 학문적으로 심한 대립의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이 때문에 대승 불교는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 뿐만 아니라 두 학파의 지나친 철학 이론 대립은 부파 불교의 전철을 밟는 듯한 감을 주었다. 이런 가운데 다시 7세기 경 밀교(密敎)가 일어나 9세기 이후, 인도의 대승불교계를 휩쓸었다. 밀교는 중관․유식의 두 대승불교 철학을 하나의 이론적 체계로 결합하여 진언(眞言)․인계(印契)․만다라(曼陀羅)를 포함한 의식(儀式)을 통해 종교적 경지를 실현해 보려는 것이다. 기원전 2세기 경부터 일어난 대승 불교 운동은 이상과 같이 변천하는 가운데, 이슬람의 침입으로 13세기 이후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게 되었다. 그 후 불교는 남쪽으로는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서 상좌부의 전통으로 이어졌다. 또한, 북쪽으로는 티벳, 중국, 한국, 일본 등 각지에서 대승불교로 찬란하게 발전하였다. 이 중 중국불교는 대승불교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정립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북방 대승불교의 기반이 되었다.
기원전 2세기 경, 한(漢) 무제(武帝)의 서역(西域) 경영으로 동서의 교통로가 열리게 되었으며, 오늘날의 '실크로드'가 바로 그것이다. 불교도 이 길을 따라 차차 동쪽으로 옮아갔다.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후한 명제(明帝)가 서역에 사절을 보내어 불교를 들여온 서기 67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이질적인 중국 문화에 수용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랐다. 그러나 중국불교계의 선구자들은 이런 어려움을 끈질긴 집념과 노력으로 극복하여 대승 불교의 꽃을 피웠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중국불교계의 선구자들에 의해 산스크리트어나 서역어로 된 경전을 한문으로 옮기는 일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뒤따랐고 또, 불교학의 연구는 종파(宗派) 발생의 토대가 되어 중국불교의 특색을 종파 불교라 할 만큼 많은 학파와 종파가 생겨났다.
4. 세계의 불교
오늘날 세계불교의 판도는 크게 4대 권역으로 나눌 수 있다. 동남아 지역에 퍼져 있는 상좌부(上座部) 불교, 중국․한국․일본을 잇는 대승 불교, 네팔․몽고․소련 일부 지역의 밀교권 불교, 그리고 유럽과 미국 등지에 전파된 새로운 불교가 그것이다. 이들 4개 권역의 불교는 교리 내용이나 전통에 있어서 제각기 특색을 지니고 있다. 즉, 교의(敎義)나 전통은 서로 다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것이며, 또 그로부터 발전되어 온 것임에는 틀림없다. 다시 말해서 각기 다른 사회와 역사 속에서 구현되어 온 부처님의 가르침이며, 그 자체의 체질에 맞게 수용된 불교이다.
[상좌부]
상좌부 불교란 초기 불교의 순수하고 바른 전통을 충실하게 지키는 보수적인 전통 불교를 말한다. 중국․한국․일본 등지의 북방불교와 구분하여 남방 불교라고도 부르는데, 현재 스리랑카․미얀마․태국․라오스․캄보디아 등에서 열렬히 신봉되고 있다. 스리랑카는 인구의 90%가 불교 신자이며, 불교가 완전히 생활화되어 있다. 각 가정은 물론 사무실이나 버스에도 불상이 모셔져있고, 아침이면 국영 방송국의 예불 방송에 맞추어 예불을 올리고 하루를 시작한다. 스리랑카 불교는 기원전 3세기 경, 아쇼카 왕이 그의 아들 마힌다 장로를 파견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후 줄곧 상좌부 불교의 중심지가 되어 주변 여러 나라에 불교를 전파시켰다. 스리랑카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미얀마는 국민의 85%가 불교도이다. 이 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생활이 불교와 밀착되어 있고, 국민 교육도 대부분 사원에서 담당하고 있다. 특히, 8~9세의 어린이는 지방의 사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기초 교육을 받도록 되어 있다. 태국은 불교를 정식 국교로 삼는 유일한 나라이다. 인구의 93%가 불교 신자이며, 이 나라의 국왕은 불교의 수호자로서 반드시 계(戒)를 받는다. 또 남자들은 일정 기간의 승려 생활을 거쳐야 공무원이 될 수 있다. 복지․교육․문화 등 사원의 대 사회 활동이 활발하다.
[대승불교]
대승불교는 인도에서 일어나 주로 북방 지역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중국․한국․일본 등은 전통적으로 대승 불교를 신봉해 온 나라들이다. 중국은 대승 불교를 크게 꽃피운 나라로서 한문 대장경을 완성하는 등, 불교 문화의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한국 불교는 천 6백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국내 여러 종교 가운데 가장 많은 신자 수를 가진 전통적인 민족 종교이다. 일본은 한국을 통해 불교를 처음 받아들였는데, 1억 2천만 인구 가운데 9천여 만 명이 불교 신자이며 사원 수도 10여 만 개 소에 달한다. 일본에 있어 불교는 최대의 종교이며, 그만큼 사회적인 영향도 크다. 현재 이 나라의 불교학 수준은 세계적이며 스님들의 사회적 지위도 높은 편이다.
[밀교권 불교]
대승 불교 말기인 7세기경에 일어난 밀교는 티벳에 들어가 '라마교'라는 독자적인 불교를 형성하였다. 티벳의 정치․문화 등은 완전히 밀교와 일치되어 있고 공산화 이전까지만 해도 불교의 최고 지도자가 곧 이 나라의 정치 지도자였다. 밀교는 일찍이 몽고에 전해져 크게 성행하였고, 소련의 일부인 부리야트 지방에까지 퍼졌다. 1959년 티벳이 중공에 합병되자 많은 라마 승려들이 네팔과 시킴․부탄 등지로 옮겨갔다. 밀교의 전통은 오늘날 주로 이 지역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서구의 불교]
19세기 말경부터 유럽에 전파되기 시작한 불교는 처음에는, 불교학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 동안 이 지역에서는 상당히 수준 높은 불교학 연구가 이루어졌고, 신자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또 20세기에는 미주지역에도 불교가 소개되어 주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퍼져가고 있다. 현재 서구에서 불교 활동이 비교적 활발한 나라는, 일찍이 동양학 연구의 본산이었던 영국․프랑스․독일․벨기에 등이다. 미주 쪽에서는 미국과 호주 등을 꼽을 수 있다.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의 불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이들 지역이 전통적인 기독교 문화권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현대 문명의 병폐와 서구 사상에 회의를 느낀 서구인들이 차츰 동양 사상, 특히 불교의 가르침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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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풀뿌리 |
[만물상] 불교와 서양인 이선민 논설위원 smlee@chosun.com 입력 : 2007.11.12 22:47 소설 ‘독일인의 사랑’을 쓴 막스 뮐러(1823~1900)는 고대 인도 언어와 문화에 밝은 언어학자이자 종교학자였다. 인도 고대 경전 ‘리그베다’를 독일어로 옮기고 동양 종교 경전을 모은 ‘동방성전(聖典·50권)’을 펴냈다. 옥스퍼드대에서 평생 방대한 편찬작업을 벌인 그는 불교에도 해박해 대승불교 경전도 여러 권 직접 번역했다. ▶‘동방성전’의 남방불교 부분을 맡은 사람이 리스 데이비스였다. 식민지 스리랑카의 영국 관리였던 그는 발굴현장에서 나온 팔리어(語) 불교 경전을 보고 학자로 변신했다. 팔리성전(聖典)협회를 세워 팔리어 경전 연구와 보존에 나섰다. 고대 인도 언어 팔리어로 된 경전은 초기 불교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한문 경전은 역시 인도 고대 언어의 하나인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번역한 것이다. 한글대장경은 산스크리트어?한문?한글로 옮겨졌다. 이 과정에서 원뜻이 미묘한 변화를 겪었다. ▶유럽의 불교가 지적 관심에서 시작됐다면 미국은 종교적 측면이 강했다. 일본 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가 1897년 미국으로 건너가 번역과 저술, 강연으로 일본 선(禪)불교를 전파했다. 이 영향으로 ‘선(禪)’을 일본어 발음인 ‘젠(ZEN)’이라 부른다. 1960년대엔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 라마가 해외활동을 하면서 티베트 불교가 미국에 상륙했다. 1970년대부터는 한국 불교 해외 포교 선구자 숭산 스님이 미국 동부를 파고들었다. 그가 대학가를 돌며 토막 영어로 한 열정적 법문을 듣고 많은 미국의 젊은 엘리트들이 머리를 깎았다. ▶하버드대 대학원생 시절 숭산 스님을 만나 제자가 된 현각 스님이 최근 뉴욕에서 유명한 달라이 라마 추종자인 할리우드 스타 리처드 기어와 불교 수행에 관해 나눈 대담이 어제 조선일보에 실렸다. 서양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동양의 불교에 빠져든 두 사람은 “자기를 비우라”는 부처님 가르침에서 큰 기쁨을 느꼈다고 했다. ▶한때 서양인이 불교를 믿는다고 하면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동양 스님들도 불교를 공부하러 서양으로 유학 가는 세상이다. 벽안의 스님이 영어로 하는 법문이 더 귀에 쏙 들어오는 경험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세계화시대에 불교는 이제 동양인의 독점물이 아니다. 서양인 불자(佛子)의 진지한 모습을 보면 ‘달마가 도(道)를 전하러 동쪽으로 왔다’는 고사(故事)처럼 서양인이 불교를 가르치러 이 땅에 올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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