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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51 : 한글도 수출합시다. / 한글 수출 1호 탄생]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7. 14:36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51 : 한글도 수출합시다. / 한글 수출 1호 탄생]


[사람들] “한글도 수출합시다” 中소수민족에 보급추진

 
兪碩在기자 karma@chosun.com /입력 : 2003.01.29 19:43 49' / 수정 : 2003.01.29 19:44 54'
 
 
 
▲ 한글 자·모음 22개를 사용해 중국의 소수민족 로바(Lhoba)족 언어를 적는 시스템을 고안한 성균관대 중문과 전광진 교수./최순호기자
언어만 있을 뿐, 아직도 문자(文字)를 갖지 못한 지구촌 오지의 사람들에게 한글을 ‘수출’한다! 한 한자(漢字) 전문가가 한글을 이용해 중국 변방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의 언어를 쓸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해 냈다.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의 전광진(全廣鎭)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전 교수는 “한글이 한반도에서만 쓰여야 한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이라고 말한다. 한글의 우수성을 목놓아 부르짖으면서도, 다른 언어를 적을 때 아예 한글을 쓰는 활용 방안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는 것.

 

“알파벳은 수백 종, 아라비아 문자와 키릴 문자도 각각 20여 종의 언어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한글이 진정 우수하다고 한다면 알파벳처럼 다른 언어에도 활용될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우수성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 교수는 조선일보에 5년째 ‘생활한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중국 언어·문자 전문가. 그는 현재 중국 내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21개 민족이 문자를 갖지 못한 것에 착안, 이들을 대상으로 한 한글 보급 방안을 계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선택한 민족은 시짱(西藏) 자치구 동남부 히말라야 기슭에 살고 있는 로바(Lhoba·珞巴)족. 20만~30만명에 이르는 전체 인구 중 대부분은 인도에 살고 있고, 중국 국경 안에는 2300여명이 거주한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농한기엔 수렵을 겸하는 이들은 대부분 중국어를 할 줄 모른다고 한다.

 


“로바족의 언어는 자음 22개와 모음 7개 등 모두 29개 음소(音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음소 수가 비교적 적어 한글 자모(子母)로 바꾸기가 쉬운 편이었죠.” 전 교수는 국제음성기호(IPA)로 적힌 로바어를 ▲음성학적 유사성 ▲현재 사용되는 한글 자모의 최대한 활용 ▲보조 기호의 사용 최소화라는 세 가지 원칙에서 한글로 바꿨다. 그 결과 작년 말 한글 자음 15개(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 ㅈ ㅊ ㅎ ㄲ ㄸ ㅃ ㅉ), 모음 7개(ㅏ ㅓ ㅗ ㅜ ㅡ ㅣ ㅔ)로 ‘로바어―한글 서사법(JLH 시스템)’을 완성했다.

 

‘소가 풀을 먹고 싶어한다’는 뜻의 로바어는 ‘고다: 따삐: 도: 능 다’, ‘당신 담배 피우지 말라’는 ‘노: 므끄 ? 이오 까’, ‘그는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춘다’는 ‘꼬:세: 땅 다 뽁 다’, ‘들소 고기는 삶아서 먹습니까?’는 ‘서벤 이딘 껑거 도: 더보 이에?’로 적을 수 있다.

 

“현재의 한글보다 자모가 훨씬 많은 ‘확장판 한글’을 문자 없는 민족에 보급하려 한 예는 그 전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엔 컴퓨터 처리가 매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죠.”  전 교수가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 바로 이것. 숱한 노력 끝에 음절 첫머리에 나오는 자음 ‘ŋ’을 ‘ㅇ’ 대신 ‘ ’로 적도록 한 것만 빼고는 모두 컴퓨터 자판으로 입력할 수 있게 했다.

 

로바족이 실제로 이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이제 시작입니다. 중국 정부의 공인이 필요하겠지만, 중국 내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이 이미 한글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알파벳보다 한글을 사용하는 게 더 쉽고 훌륭한 것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이죠.”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국립 대만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전 교수는 ‘중국어-티베트어 동일 어원어휘연구’ ‘중국 문자-훈고학 사전’ 등의 저서를 갖고 있다.

 

 


[만물상] 한글 수출

 
오태진 논설위원 tjoh@chosun.com/입력 : 2004.01.11 17:50 24' / 수정 : 2004.01.11 21:31 15'

 


몇 년 전 어느 TV 다큐멘터리에서 케냐 서부 사막지대의 포콧족(族)이 한글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문자가 없는 이 유목부족의 청년은, 한국말은 몰라도 한국인 선교사에게서 배운 한글로 자기네 언어를 표기하고 있었다. 자기 이름과 여자친구 이름을 한글로 적는 청년의 모습에서 국제적 표음문자로서 한글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중국 시장(西藏) 자치구 히말라야 기슭에 사는 소수민족 로바족은 중국어 대신 고유 언어를 쓴다. 중문학자 전광진(全廣鎭) 교수는 2년 전 로바어를 한글 자음 15개와 모음 7개로 표기하는 시스템을 고안해 냈다. ‘소가 풀을 먹고 싶어한다’는 로바어를 ‘고다: 따삐: 도: 능 다’로 적는 식이다. 그는 문자가 없는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에 한글을 보급하겠다는 복안을 품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이 다하기 전에 깨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고 했다. 한글은 배우기 쉽고 표기의 폭이 넓으며 알파벳보다 발음과 글자가 잘 일치한다는 점에서 한국이 수출할 수 있는 최고의 문화재다. 전광진 교수는 “한글이 한반도에서만 쓰여야 한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이라며 “알파벳처럼 다른 언어에도 활용될 때 비로소 우수성을 공인받는 것”이라고 했다.

 

동티모르 영부인과 외무장관이 방한해 엊그제 경북대측과 ‘떼뚬-훈민정음 연결 프로젝트’를 협의했다. 재작년 독립한 동티모르는 36개 종족이 포르투갈어, 인도네시아어를 비롯해 16개 언어를 쓰고 있고 대통령 취임식에서만 4개 언어가 사용됐다. 이 중 글자는 없어도 가장 많이 쓰이는 토속어 떼뚬을 문자화해 국민 통합과 국가 효율을 높이려는 프로젝트에 한글이 선정됐다. ‘한글 수출’ 1호인 셈인 데다, 한글이 다른 나라의 공식 문자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모은다.

 

세계엔 3000개 언어가 있지만 문자는 400종에 불과하다. 그만큼 한글이 진출할 여지도 크다. ‘떼뚬-훈민정음 프로젝트’ 뒤에는 동티모르 국립 딜리대 이은택 교수의 공이 있다. 동티모르에서 의료봉사와 목회활동으로 신망을 쌓은 그는 “한글이 떼뚬 문자화에 가장 알맞다”고 추천했다 한다. 방한한 동티모르 외무장관도 상록수부대 파병과 한국 민간인·기업·단체들의 지원에 거듭 감사했다. 남을 진심으로 돕고 배려하는 것이 한글과 한국문화의 수출길도 자연스레 트는 왕도임을 말해준다.

 

김정태(jtkim114)
추천수 : 4    반대수 : 0   
한글은 발음기호(훈민정음)로 탄생되었으나, 그 우수성 때문에 곧바로 문자로서 발전했습니다. 발음과 철자가 정확하게 일치하기에 '문자 없는' 전세계의 수 많은 소수민족에게 한글이라는 문화상품을 수출하는 일은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 (01/12/2004 00:21:25)
김혜원(noonoo70)
추천수 : 2    반대수 : 0   
한글과 한복을 보면 우리 나라가 이럴 나라가 결코 아닌데 말이죠...거참..쩝.^^~(01/11/2004 21:27:25)
이관우(wnddkd2243)
추천수 : 1    반대수 : 0   
듣든 소식중에 가장 기분 소식입니다.우리한글이 그나라에서 잘쓰여지면 얼마나 좋를까요 ? 생각만해도 가슴이 벅차오름니다 ...(01/12/2004 09:54:11)
이성근(lsk7cow)
추천수 : 1    반대수 : 0   
컴퓨터 분야에서도 우리가 급성장이유중 한글이 절대적이였다.한글자판은 가장빨리익숙해질수있는장점이있다.전세계 문자없는나라에 우리한글을 보급시키자.한국어를전혀몰라도 소리글 한글은 쉽게 배울수있는 장점 세계화 지름길보인다.(01/12/2004 08:45:38)


 

 

 원래 '한글'은 이렇게 어렵지 않았다

 

[기고] 원래 한글은 이렇게 어렵지 않았다

김진규 공주대 교수 입력 : 2010.10.08 23:04

김진규 공주대 교수

지난 학기 교환교수로 6개월 동안 호주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한국어와 한글을 가르치는 자원 봉사 한국인 교사들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시간이 되는 대로 한국어 교사 연수 모임에 가서 특강도 하고, 상담도 했다. 그러면서 새삼 절감하게 된 것은 우리 한글맞춤법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곳 한국어 교사들의 대부분은 한국어를 전공한 분들이 아니었다. 그분들이 하나같이 한글맞춤법을 왜 그렇게 어렵게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호주의 시드니에도 한류의 열풍으로 교포 2세·3세 어린이들이나 상당수의 호주 사람들까지도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고 있는데, 교사 자신들도 어려운 한글 적기를 어떻게 문화가 다른 그들에게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호소하였다.

'훨씬'과 '몹시'의 뒷소리는 왜 같이 된소리로 나는데 다르게 쓰는지, '숟가락'과 '젓가락'은 왜 받침이 다른지, '웬일'과 '왠지'에서 '왜'와 '웨'의 차이는 무엇이냐, '예, 아니요'에서 '아니오'가 아닌 이유는 무엇인지, 왜 '닐리리'가 아니고 '늴리리'라고 적어야 하며, '냇가, 횟수'와 '위층, 초점'에서 사이시옷을 붙이는 문제 등, 그들의 질문은 끝없이 계속되었다.

나는 그 이유들을 책에서 배운 대로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훨씬'은 유성음인 ㄹ 받침 아래이므로 된소리로 적고, '몹시'는 무성음 받침이므로 예사소리로 적은 것이다. 그리고 '저의 가락'이어서 '젓가락'이지만, '숟'은 '술(匙)'이라는 형태에서 온 것이므로 ㄹ이 ㄷ으로 바뀐 것 등으로 열심히 설명해도 그들의 표정은 굳어 있기만 하였다. 설명이 더 어렵다는 눈치다. 아마도 우리 국민 모두의 생각도 비슷할 것이다.

세종 임금은 한글을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간단하면서도 과학적이고 편리하게 만드셨는데, 지금 우리는 쉬운 글을 어렵게 사용하고 있다고 본다. 세종은 가급적 형태를 살리는 표기법을 좋아하였다. 세종이 관여한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의 표기에 잘 나타난다. 그러나 세종 이후 500년 동안 한글은 핍박받으며, 큰 원칙도 없이 발음되는 대로 적어 왔다.

일제 강점기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가 만든 '한글맞춤법 통일안'(1933년)은 55년 동안 우리말 표기의 좋은 그릇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를 부분적으로 수정 보완한 현행 '한글맞춤법'도 공표한 지 벌써 22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어제가 다르게 변화를 계속하고 있다. 1988년 올림픽이 열렸고, 경제 성장과 함께 국력이 향상되고, 특히 한류의 열풍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다문화사회의 문턱에 있다.

세계에는 약 5000종류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우리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8000만명 이상으로 세계 12위의 언어대국이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중국에는 80여 대학, 일본에는 45개 대학에 한국어과가 있고, 미국에는 주말 한국어 학교만도 1000곳이 넘고 특히 미국대학입시(SATⅡ)에 한국어가 채택되었다.

이제 한국어와 한글은 한반도에만 갇혀 있는 말과 글이 아니라 알파벳처럼 국제화를 꿈꾼다면, 지금까지의 발음을 지나치게 따르는 표기 그릇으로는 안 된다. 뜻있는 학술연구단체나 국가 기관에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한글맞춤법'으로 개정하는 논의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한글 수출 1호 탄생 / “따리마까시” 한글쓰는 인도네시아 섬

 

 
인구 6만 찌아찌아족 공식문자로 채택… ‘한글 세계화’ 첫 결실(2009/08/07)

인도네시아 소수민족이 세계 처음으로 한글을 공식문자로 도입했다. 한글이 해외에 공식적으로 보급되면서 과학적인 표음문자(·사람이 말하는 소리를 기호로 나타내는 문자)인 한글의 우수성이 다시금 주목받게 됐다.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이 사용하는 한글 교과서 ‘바하사 찌아찌아’(찌아찌아의 언어). 인도네시아 부퉁 섬 바우바우 시는 이 교과서로 찌아찌아족 학생들에게 한글로 표기된 고유어를 가르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사단법인 훈민정음학회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 주() 부퉁 섬 바우바우 시는 이 지역의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의 토착어를 표기할 공식문자로 한글을 도입하기로 하고 한글로 된 문자교육을 시작했다. 이 시는 지난달 21일부터 찌아찌아족 밀집지역인 소라올리오 지구의 초등학생 40여 명에게 한글로 된 찌아찌아어 교과서를 나눠주고 주 4시간씩 수업을 시작했다. 또 일부 고교에서도 매주 8시간씩 한국어 초급 교재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찌아찌아족들에게 보급된 교과서에서 손은 ‘을리마’, 발은 ‘까께’, 우산은 ‘빠우’ 등으로 표기됐다.

인구 6만여 명의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은 독자적 언어를 갖고 있지만 문자가 없어 고유어를 잃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를 알게 된 훈민정음학회 관계자들이 바우바우 시를 찾아가 한글 채택을 건의해 지난해 7월 한글 보급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어 서울대 이호영 교수(언어학)가 주도해 만든 한글 교과서를 보급했다. 앞으로 이곳에서 한글교육이 자리 잡아 상용화되면 한글이 해외로 전파된 첫 사례가 된다.

이 학회의 ‘한글 세계화 사업’은 지난해 5월부터 추진됐으며 그동안 한글 학계는 중국 헤이룽장() 성이나 태국, 네팔 오지의 소수민족에게 한글을 전파하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훈민정음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대 김주원 교수(언어학)는 “이 사업이 성공하면 우리 민족과 국가브랜드 가치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과서 편찬을 주도한 이호영 교수도 “한글은 문자가 없는 민족들이 민족 정체성과 문화를 보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찌아찌아족 “섬의 아름다운 전설, 한글로 후손에 전해야죠” 
 
■ ‘한글수출 1호’ 인도네시아 부퉁섬 찾아가보니
한국의 망부석 이야기처럼
풍부한 구전문화유산 많아
한글 열심히 배우고 싶은데
교과서 너무 부족해 아쉬워

《찌아찌아족이 사는 부퉁 섬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서울에서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까지 비행기로 7시간. 자카르타에서 다시 마카사르를 들러 큰다리(Kendari)까지 비행기로 5시간을 더 가야 했다. 큰다리에서 하루 두 번 있는 배를 타고 5시간 걸려 바다를 건넌 뒤에야 부퉁 섬에 도착했다. 8일 오후 3시 45분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해 부퉁 섬에 도착한 것은 9일 오후 9시. 28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었다. 하지만 한글을 쓰는 찌아찌아 사람들을 보자마자 피곤함은 눈 녹듯 사라졌다.》

찌아찌아 사람들은 웃음이 많았다. 가는 곳마다 “꼬레아?”라며 관심을 보였다. 기자가 “할로(HALO·영어의 헬로와 같음)”라고 손을 흔들자 어디서 배웠는지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며 깔깔 웃었다. 11일 먼 이국에서 만난 찌아찌아 사람들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들이 쓰는 한국말로 금방 정겹게 느껴졌다.

아직까지 한국인의 발걸음이 거의 없었던 곳. 가는 길도 마음도 멀기만 했던 부퉁 섬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쓴다. 찌아찌아족에겐 고유의 말이 있지만 글은 없었다. 지키고 싶은 아름다운 말이 있어도 짧은 문학작품 하나 글로 남기지 못했다. 처음으로 한글을 글로 가지게 되면서 찌아찌아족은 풍부한 문화유산을 오래 보존할 수 있게 됐다.


찌아찌아족은 근대까지 고립을 자처하며 자기만의 문화를 고수해 온 덕분에 독특한 전통 문화를 때 묻지 않은 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바우바우 시내에는 그들의 문화유산이 곳곳에 녹아 있다. 사람들이 집을 짓고 닭을 키우며 한가롭게 사는 곳 옆에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워진 둘레 2.47km의 ‘크레톤 요새’가 있다. 1542년 이 섬에 이슬람교가 들어오면서 첫 술탄(Sultan)이 된 왕의 무덤도 마을이 내다보이는 곳에 자연스레 자리 잡고 있다.


자식과 조카들에게전통 춤인 린다춤과 무술을 가르쳐온 라사미리 씨(46)는 “찌아찌아족의 문화유산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란다”고 자랑했다. 찌아찌아족은 해마다 두 번씩 전통 춤과 무술, 음악을 미리 부족 주민들 앞에서 선보이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다. 예전에는 모내기철 신에게 풍작을 기원하면서, 수확 뒤 감사 인사를 드리며 축제를 열었지만 지금은 네덜란드에서 독립한 8월 17일 독립기념일 행사를 앞두고 공연을 펼친다. 공연은 신에게 인사를 올리는 제단인 바루가 앞에서 열린다. 찌아찌아족은 바루가를 다른 장소로 옮기면서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건물 전체를 들어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글이 없어 이렇다 할 역사서나 전통 문학이 하나도 없다. 글이 없어 입으로만 전해 내려오다 보니 많은 부분이 변형되고 소멸돼 원형을 찾기가 힘들다.

바루가 앞에서 열린 찌아찌아 전통 공연에서 1등상을 거머쥔 아리스 씨(23)는 “직접 전통 춤을 배워 소중한 전통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글이 없다는 게 우리에게 모자란 부분이었다”며 “앞으로 한글을 통해 찌아찌아족의 문화를 더 풍부하게 발전시킬 수 있게 됐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고교에서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카사타니아 양(15·여)은 찌아찌아족인 아버지와 삼촌, 어머니에게서 찌아찌아족의 전설을 듣고 자랐다. 하지만 카사타니아 양이 기억하는 전설은 많지 않다. 찌아찌아어로 된 이야기를 인도네시아어로 그대로 번역하기도 힘들고 어린 시절 잠결에 들었던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키만큼 긴 여자가 연인을 기다리다 돌이 됐대요.” 아버지가 찌아찌아어로 들려준 길고 긴 망부석 이야기 중에서 카사타니아 양이 기억하는 내용은 이게 전부다. 카사타니아 양은 “책으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면 잊어버리지 않고 친척 동생에게도 자세히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한글 수업에 열심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그는 한글 공책을 펼쳐 들었다. ‘바하사 찌아찌아’ 교과서도 30권밖에 없어 초등학교 4개 반이 조금씩 나눠 가졌는데,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는 아비딘 선생님이 쓰는 한 권밖에 없다. 카사타니아 양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써준 노트 필기만 가지고 책 한 권 꽂혀 있지 않은 빈 책상에 앉아 복습을 한다.

카사타니아 양의 어머니 와사리 씨(52)는 찌아찌아어밖에 할 줄 모른다. 대부분이 인도네시아어도 함께 할 줄 알지만 와사리 씨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해 부모님께 배운 찌아찌아어만 한다. 카사타니아 양은 문자가 없는 찌아찌아어만 해 글을 쓸 줄 모르는 어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싶단다. 그런 딸을 보며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모범생인 막내딸이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 한국어 선생님이 됐으면 좋겠어요.”

영어 선생님이 한글 전도사로
아비딘 씨, 이호영 교수와 교과서 내… 사전 출간 계획도


바우바우 시 제6고등학교(SMA6) 영어 교사인 아비딘 씨(33)는 한여름 인도네시아에서도 긴팔에 잠바를 입고 다닌다. “한국이 어땠느냐”는 물음에 아비딘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우기를 빼고는 1년 내내 무더운 날씨 속에 살아 추위를 많이 타는 인도네시아인 아비딘 씨는 한국 이야기를 꺼내자 추웠던 기억에 몸서리쳤다.

서울대 이호영 교수(언어학)와 함께 한글로 된 찌아찌아어 교과서 ‘바하사 찌아찌아’를 만들기 위해 아비딘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한국에 머물렀다. 서울대 근처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 16.5m²(5평)짜리 원룸을 구해 놓고 혼자 5개월을 지냈다. 무슬림이라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어 학교 밥 대신 근처 시장에서 쌀과 생선을 사다 밥을 지어 먹었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들을 먼 고향에 두고 온 그는 코끝이 시리게 추운 날이면 어김없이 아들 생각이 났다. 같이 한국을 찾은 다른 영어 선생님은 매일 가족 생각에 울다가 포기하고 부퉁 섬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깊숙한 섬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한국에까지 와 서울대 교수와 함께 연구를 하게 된 것은 한글로 된 교과서 때문이었다. 이 교수는 한국외국어대 전태현 교수(말레이·인도네시아통번역학과)의 소개로 찌아찌아족을 알게 됐다. 자기 글이 없는 민족에게 한글을 주고 싶었던 전 교수는 고유의 말은 있지만 글이 없고 중앙정부의 견제가 덜한 부족을 찾다가 찌아찌아족을 알게 됐다. 이 교수는 지난해 7월 찌아찌아족을 만나러 와 바우바우 시의 아미룰 타밈 시장과 교육 관계자들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한글을 쓰겠다”는 대답을 얻어냈다.

이 교수와 아비딘 씨는 내년 여름 전까지 ‘바하사 찌아찌아’ 2권을 만들 계획이다. 찌아찌아어 한국어 인도네시아어 아랍어 등 4개 국어로 된 사전도 낼 계획이다.

바우바우(인도네시아)=신민기 기자
 
 
 
 
“인다우뻬엘루이소오, 꼬레아” 한글, 아이들 등불이 되다
 
가 나 다 라”… 한글로 읽고 쓰는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 초등학교에 가보니

11일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 주() 부퉁 섬 바우바우 시에 위치한 까르야바루 초등학교. 교실 벽이 푸른 섬 앞바다를 닮아 청록색이었다. 교실에서는 ‘찌아찌아어’ 공부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교실 칠판에는 한글이 빼곡했다. ‘까아나(집)’ ‘시골라(학교)’ ‘보꾸(책).’

사단법인 훈민정음학회와 바우바우 시가 지난해 7월 한글 보급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이 지역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의 토착어를 표기할 공식 문자로 한글을 도입하기로 함에 따라 고유 언어는 있지만 글이 없었던 찌아찌아족은 지난달부터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

본보 7일자 2면 참조 
▶“따리마까시” 한글쓰는 인도네시아 섬

동아일보는 한국 언론 최초로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배우고 있는 부퉁 섬 바우바우 시를 찾았다.

까르야바루 초등학교에서 부퉁 섬의 유일한 한글 교사인 아비딘 씨(33)가 “읽어볼 사람?”이라고 말하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다. “까, 아, 나.” 한 글자씩 또박또박 읽는 목소리가 어색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에서는 한글로 된 ‘바하사 찌아찌아’(찌아찌아의 언어라는 의미) 교과서로 찌아찌아어를 배운다. 일주일에 딱 한 번 수업을 하지만 두 차례 수업 만에 아이들은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다 외웠다.


“메자(책상)” 하고 불러주자 받아 적는 아이도 있다. 아비딘 씨는 “아이들이 한글을 좋아해 한 번 수업한 뒤에 자음과 모음을 외워 오라고 했더니 일주일 만에 다 외워 오더라”고 자랑했다. “한국 아이들도 한글 공부를 어려워한다고 들었어요. 우리 아이들은 한글이 좋다고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 와요.”

이 섬에서는 고교에도 한국어 수업이 생겼다. 그동안 고교에서는 인도네시아어와 영어 외에 아랍어를 가르쳐 왔지만 아랍어 대신 한국어를 가르치기로 했다. 이 섬에 사는 주민들은 모두 무슬림이기 때문에 그동안 코란을 읽기 위해 아랍어를 배웠다.

까르야바루 초등학교에 다니는 술리스 양(9)은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가운데 한글로 배우는 찌아찌아어와 수학이 제일 재미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술리스’라는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주자 말괄량이 꼬마아이는 입도 꼭 다물고 그대로 베껴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누마 양(10)도 한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뜨고 한글로 적힌 단어를 큰 소리로 따라 읽었다. 기자가 ‘사랑합니다’라고 공책에 적어 주자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도 또박또박 “사랑합니다”라고 읽었다. 반대로 한글로 적힌 찌아찌아어 단어들을 기자가 소리 내어 읽자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깔깔거렸다. 아이들은 어색한 발음이지만 처음 본 한국인이 찌아찌아어를 말하는 게 신기하기만 한 것처럼 보였다. 바우바우(인도네시아)=신민기 기자
 
  
 
“간판-교통표지판도 한글로 바꿀 계획”
 
■ 부퉁섬 바우바우 타밈 시장

“글이 없어 풍부한 전통을 계승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찌아찌아족에게한글
을 사용하게 해줘 고맙습니다.”

11일 오전 바우바우 시 시장 집무실에서 만난 아미룰 타밈 시장(사진·55)은 인도네시아어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7월 16일 바우바우 시 타밈 시장은 사단법인 훈민정음학회와 찌아찌아어를 담는 글로 한글을 사용한다는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타밈 시장은 “찌아찌아족의 고유한 언어 유산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주민들이 쉽게 쓸 수 있으면서도 세계화 가능성이 있는 글자를 찾았다”며 한글 채택 배경을 밝혔다.

한국이 빠른 기간에 경제성장을 이룬 것도 이유가 됐다. 이곳 곳곳에서는 공사가 한창이다. 낡은 건물을 부수고 빈터에는 3층 높이 건물도 세우고 있다. 부퉁 섬 옆에 있는 발리 섬처럼 국제적인 관광지로 키우겠다는 발전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는 “한국처럼 아시아에서 발전하는 나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한글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며 “한국이 선도하는 정보기술(IT)이나 여러 과학 기술을 배우는 데에도 한글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주민들 대부분이 사용하는 인도네시아어나 눈에 익은 로마자, 무슬림이 자주 접하게 되는 아랍어를 빌려와 쓰자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면서도 “하지만 찌아찌아어 발음을 그대로 표기하기에는 모두 한계가 있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한글로 된 ‘바하사 찌아찌아’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아비딘 씨는 “찌아찌아족에만 있는 ‘다’ ‘바’ 발음은 인도네시아어의 T, P로는 정확하게 표현할 수가 없는데 한글로는 복잡한 발음을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인도네시아어를 쓸 경우에 표기는 같은데 의미가 달라 혼동을 주는 경우도 많아 더 적합한 한글을 택했다”고 덧붙였다.
 
바우바우 시는 학교 수업 외에도 시 전체에 한글을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타밈 시장은 “바우바우 시 시민 중에는 시외나 국외로 나가 일자리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다”며 “한국어를 배우면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국의 국제적 기업에 취직하기가 더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도시 안의 간판이나 교통표지판에도 한글을 사용할 예정이다.

한글 교육과 한국과의 긴밀한 교류를 돕기 위해 ‘코리아센터’도 건립할 계획이다. 내년 여름까지 완공될 코리아센터에는 도서관과 컴퓨터실 등 교육 공간과 공연, 전시 공간 등 문화 교류를 담당할 곳이 들어서게 된다. 타밈 시장은 “올겨울 한국을 방문해 한글 교육과 문화 교류 등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바우바우(인도네시아)=신민기 기자
 
  

[사람과 이야기] 찌아찌아족(인도네시아 소수민족)에 문자 선물… "한글은 내 운명"

입력 : 2009.08.21 02:41

훈민정음학회 이기남(李基南) 이사장

한글 보급하는 이기남 훈민정음학회 이사장
일제강점 때 교사 아버지 한글 가르치다 면직당해
건설업 승승장구하다가 어느날 문득 한글보급 작심
"세계 문자 박물관 세울 것"

1948년 6월 대구 중구 봉산동 대구초등학교 교정에 이 학교 6학년 50여명이 줄지어 섰다. 맨 앞줄 가운데 교장 선생님이 앉고, 그 옆에 교감과 담임 선생님이 앉았다. 담임교사는 눈매가 똘똘한 단발머리 소녀를 자기 옆에 앉혔다. 그 시절엔 6학년인데도 한글 읽기와 쓰기가 서툰 아이들이 많았다. 어려서 일본말만 배우다가 해방 후에야 한글을 익힌 탓이다. 소녀는 달랐다. 어려서부터 집에서 한글을 깨쳐 글을 술술 읽었다.

이 소녀가 훈민정음학회 이기남(李基南·75) 이사장이다. 이 이사장은 최근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族)이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할 문자로 한글을 채택하는 데 기여한 '숨은 공신'이다. 찌아찌아족 학생들을 위한 한글 교재 '바하사 찌아찌아1'을 펴낸 서울대 언어학과 이호영(46) 교수는 "이번 일은 한글 세계화의 첫 성과"라며 "이 이사장의 재정적 도움이 없었다면 결실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이 한글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된 것은 아버지 원암(圓庵) 이규동(1905~1991) 선생 덕분이었다. 경북대 사범대 학장을 지낸 이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대구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몰래 한글을 가르치다 면직(免職)당했다.

"아버지가 '비록 지금은 못 쓰지만 우리 말과 글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신문지에 '가나다'를 함께 쓰면서 아버지에게 한글을 배웠지요. 해방이 왔을 때 열한 살이었는데, 우리 말을 마음껏 쓸 수 있게 된다는 생각에 무척 들떴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한글로 자신들의 언어를 기록할 수 있게 된 인도네시아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 어린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훈민정음학회 제공
이 이사장은 1958년 경북대 사범대 가정교육과를 졸업한 뒤, 모교 부속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1960년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남편과 결혼했다. 남편을 따라 상경한 그는 건설업으로 재산을 모은 뒤 1980년대 중반 컴퓨터로 관심을 돌렸다.

"지인이 갖고 있던 '개인용 컴퓨터'를 처음 보고 깜짝 놀랐어요. 문서 작성 등의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는 이 기계가 널리 쓰일 거라는 생각을 했지요. 화면에 나오는 언어가 영어뿐이기에 한글도 쓸 수 있냐고 물었더니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전부터 애정을 가지고 있던 한글과 관련된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는 '신명시스템즈'라는 회사를 차리고, 매킨토시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한글 서체 'SM폰트'를 개발했다. 매킨토시는 출판·인쇄 분야에서 주로 쓰인다.

1993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 이사장은 2002년 아버지의 호를 따서 '원암문화재단'을 설립했다. 한글의 소중함을 강조했던 아버지의 뜻을 기리며 한글 세계화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선교사들을 개별적으로 후원했어요. 그분들을 만나러 네팔의 산간 동네, 인도네시아의 섬마을을 찾아가기도 했는데, 성과를 얻지 못했지요. 열정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더군요. 언어학 전문가들과 힘을 합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고향 대구 지역의 학자들을 만나 '문자가 없는 민족에게 한글을 보급하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이미 한글과 한국어를 연구하는 학회와 단체들이 있는데 굳이 또 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겠냐"고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이 이사장은 2007년 서울대 언어학과 김주원(53) 교수를 찾아갔다. 김 교수가 호응했다. 김 교수를 중심으로 뜻을 같이하는 학자들이 모였다. 그해 한글날(10월 9일) 훈민정음학회 창립식이 열렸다. 지난해에는 국제 학술대회도 열었다. 오는 10월에는 문자학을 다루는 국제 학술지 '스크립타(Scripta)' 창간호를 발간할 예정이다.

이 학회 총무이사를 맡은 서울대 이호영 교수는 "훈민정음학회는 '문자 없는 민족이 한글을 채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학회들과 구별된다"고 했다.

이 이사장이 '한글 전파'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문자가 있어야 언어와 문화가 소멸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한글을 사용해서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할 수 있게 되면 소수민족들이 자기네의 고유한 역사와 전통을 기록할 수 있게 된다"며 "한글은 컴퓨터로 구현하기 편리한 데다 IT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 소수민족이 역사를 기록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에 알맞다"고 했다.

이 이사장의 다음 목표는 국내에 '세계 문자 박물관'을 세우는 것이다. 그는 "문자는 문화의 근간"이라며 "세계 문자의 기원을 밝힌 여러 자료를 집대성한 박물관을 만들면 전 세계 연구자들이 앞다퉈 한국을 찾지 않겠냐"고 했다.

"한국은 힘으로 다른 나라의 유물을 빼앗거나 막대한 돈으로 사들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명확한 목적에 의해 창조된 문자를 가지고 있고요. 세계 문자 연구의 구심점이 될 박물관이 생긴다면, 한국이 최적지가 아닐까요?"

 

 

문자 없던 '찌아찌아족' 한글 수혈 9년… 어떻게 달라졌나

인도네시아의 어느 마을, 문자가 없는 민족이 있었다. 어느날,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자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글자를 갖게 된 이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말을 제대로 쓰고 읽기 시작했다.동화 같은..





찌아찌아족 한국 며느리 1호 "한글 배우고선 다들 우쭐해져요"

최종권 입력 2019.11.13. 05:02 수정 2019.11.13. 07:15

               
뜨리·강민구씨 부부 찌아찌아족 한글교육 앞장
한글 채택 10년, '한글거리' 생기고 한류 바람
뜨리 부부 "한국인 교사 부족, 교재 지원 필요"
인도네시아 바우바우시 출신 뜨리(왼쪽)와 남편 강민구씨는 지난해 9월 결혼했다. 뜨리는 쯔아쯔아족이 거주하는 마을 학교에 보조교사로 일하며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최종권 기자

“잊혀 가는 부톤 왕국의 역사를 한글로 기록하고 싶어요.”       
인도네시아 부톤섬 바우바우시에 사는 뜨리(26)는 한글 전도사다. 부톤섬 소수 민족인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부족어로 채택한 2009년 현지 교사로 파견된 정덕영(58)씨에게 처음 한글을 배웠다. 대학교 4학년 때인 2016년 정씨의 한글 교실 자원봉사를 자처해 한국어도 익혔다. 지금은 보조교사로 바우바우시의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찌아찌아족은 우리나라의 ‘한글 나눔 1호’ 사례로 꼽힌다. 이들이 사는 부톤섬은 인구 50만여 명 가운데 찌아찌아족이 7만여 명을 차지한다. 찌아찌아족은 바우바우시의 소라올리오 마을, 바따우가군, 빠사르와조군에 모여 살고 있다.

이들은 독자적 언어가 있지만, 표기법이 없어 고유어를 잃을 처지에 놓였었다. 바우바우시는 2009년 훈민정음학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찌아찌아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뜨리가 인도네시아 바우바우시의 한 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 강민구씨]

한글이 보급된 바우바우시에도 한류가 불고 있다. 한글을 배운 학생들 사이에서 방탄소년단이나 그룹 엑소 등 우리나라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영화를 동시 상영하고 ‘깐뿡 꼬레아’라는 한글 거리도 생겼다. 일부 도로에는 한글 표지판도 생겼다.

뜨리는 “한글을 배운 현지인들 사이에선 다른 사람이 접할 수 없는 정보나 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 우쭐해 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방탄소년단 같은 아이돌이나 한국 영화 등을 통해 한류를 접하고 싶은 아이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뜨리는 언어에 호기심이 많은 소녀였다고 한다. 고교 1학년인 2009년, 한 달간 정덕영씨에게서 한글 강의를 듣고 대학에선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뜨리는 “한글의 자음·모음을 익히고 발음을 연습하고 읽는 데까지 일주일 정도 걸렸다”며 “혼자 공부를 하다 막히면 정덕영 선생님께 메일을 보내거나 인터넷으로 궁금한 점을 풀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자원봉사를 위해 다시 한글 교실을 찾으면서 획을 긋는 순서와 한국말까지 배우게 됐다. 뜨리의 한국어 실력은 유창한 수준이다. 현재는 바우바우시 학교 3곳과 보육원에서 정씨를 도와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다.
지난달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573돌 한글날 경축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와 뜨리(오른쪽 두번째)가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뜨리는 지난해 9월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 홍보국장인 강민구(40)씨와 결혼했다. 한글 나눔에 관심이 많았던 강씨가 바우바우시를 자주 오가면서 인연이 됐다. 임신 5개월째인 뜨리는 지난달 20일 치러진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입국했다. 한글날 경축식에 초청받아 이낙연 국무총리 옆에서 함께 만세삼창을 외치기도 했다.

뜨리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기리는 행사에 참석하게 돼 뜻깊었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이달 말 다시 바우바우시로 돌아갈 계획이다.

현재 찌아찌아족 한글학교의 한국인 교사는 정덕영씨 혼자뿐이다. 한국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장기간 끊기면서 한글 교육 시간을 늘리거나 교재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한글을 배우고 싶은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수업을 듣고 다시 반납하는 형편이다.

강씨는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를 통해 소액기부금 후원을 받아 최소한의 체류비 정도를 지원하는 상황”이라며 “한국인 교사를 추가 파견하거나 교재 보급을 늘린다면 바우바우시에 한글이 빨리 확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바우바우시에 현지 청년들이 조성한 깜뿡 코레아는 우리나라 말로 한글마당 또는 한글거리로 불린다. [사진 강민구씨]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찌아찌아'부터 '피그미'까지… 지구촌 발음기호 된 한글

조선일보 입력 2019.11.21 03:00

[조선일보 100년 기획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9] 한글, 소수민족의 문자가 되다

찌아찌아족 한글 도입 10주년
시장·학교 등에 한글간판 내걸려… 배출한 한글 교육생만 2000여명
문자 없는 아프리카 피그미족은 고유 언어 '치뗌보' 한글로 표기

이곳 간판은 한글로 돼 있다. '까루야바루 국립 초등학교'부터 '까루야바루 시장'까지, 표지판부터 벽화까지 한글이 빼곡하다. '사랑해 당신을!'이라고 한글로 쓴 포토존도 있다.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族)의 최근 풍경이다. 찌아찌아족이 가장 많이 사는 부톤섬 바우바우시(市) 소라올리오 마을에는 '한국 마을'(깜뿡 꼬레아)이 조성돼 학교·시장·버스 정류장에 한글 팻말이 내걸렸고, 사진 촬영용 한복 대여 가게도 생겨났다. 이곳서 10년째 활동 중인 한글 교사 정덕영(58)씨는 "지금껏 배출된 한글 교육생이 2000명 정도"라고 말했다.

◇소수민족의 발음기호가 된 한글

올해는 '한글 1호 진출 사례'인 찌아찌아족의 한글 도입 10주년이다. 말은 있으나 글은 없는 이곳에서 2009년 훈민정음학회 건의로 사업이 시작됐고, 2012년 세종학당이 문을 열었으나 예산 문제 등으로 7개월 만에 철수하는 아픔도 겪었다. 지금은 보육원 1곳과 초등학교 3곳(한글), 고등학교 2곳(한국어)에서 수업이 열리고, 지난해 8월부터 바따우가군(郡)으로도 교육 기회가 확대됐다. 정씨는 "한류 열풍 등으로 한글 인기가 높아졌다"며 "최근 학교 한 곳을 더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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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찌아찌아족 학생들이 칠판에 한글을 쓰고 있다. ‘까레나 인다우 삐시라무에 붕아붕아 이아 노꼬깜바’는 ‘내가 물을 줘야 꽃들이 자라날 수 있습니다’란 뜻이다. ②한국 동요 ‘과수원길’ 가사를 칠판에 한글로 적은 뒤 노래하는 아이들. ③부톤섬에 조성된 한글마을에 ‘올리엉아이소’라는 한글 팻말이 서있다. ‘올리엉아이소’는 ‘당신이 보고 싶어요’를 뜻한다.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

300여 민족이 500개 가까운 언어를 구사하는 인도네시아는 표기를 위해 고대 인도문자·로마자·아랍문자 등을 활용한다. 이 중 한글의 가장 큰 장점은 현지어 발음을 거의 정확히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 특유의 'β' 발음을 표기하기 위해 지금은 사라진 훈민정음 유성자음 '순경음 비읍(ㅸ)'도 발음기호로 도입했다. 찌아찌아족을 위한 한글 교과서를 집필한 서울대 언어학과 이호영 교수는 "한글은 소리를 기호화한 표음문자라 타 민족의 말을 옮겨 적기가 쉽다"며 "찌아찌아어 음절 구조가 한글과 통하는 점이 많고 'ㅏㅑㅜㅠㅘㅝ' 등의 모음도 다양해 적용이 편리하다"고 했다. 이곳 현지인 영어 교사 아비딘(42)씨도 한글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이 교수는 "생각지도 못했던 어두(語頭)자음군 표기 문제 등이 나타나 지난해 아비딘과 함께 서울에서 표기법 개정안 작업을 진행했다"며 "조만간 새 교과서와 '찌아찌아 한글 사전'도 완성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피그미족의 언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작업도 최근 완료됐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활동하는 최관신 선교사는 "피그미족은 고유 언어인 '치뗌보'('코끼리어'라는 뜻)를 갖고 있지만 문자가 없어 기록을 남길 수 없었다"며 "치뗌보를 한글 자모로 표기하는 안건이 2016년 동부 사우스키부주(州) 의회를 통과했다"고 했다. 소강춘(현 국립국어원장) 전주대 국어교육과 교수의 주도로 치뗌보의 한글 표기 체계를 완성했다. 성서의 4복음서를 한글 자모로 표기해 책자로 냈고, 한글 교재도 곧 출간할 예정이다. 사우스키부주 인구 600만명 중 치뗌보를 사용하는 인구는 100만명 정도. 최 선교사는 "내년 1월부터 우선 초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한글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소 원장은 "치뗌보에는 우리가 쓰지 않는 이중모음과 어두자음군이 있어 기존 한글 자모로 표기가 안 되는 건 새로 부호를 만들었다"며 "실제 보급돼 쓰이기 시작하면 개정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현지의 정치·문화·경제 조건 맞아야

다만 "문자 없는 미개한 지역에 한글을 수출했다"는 식의 접근은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5년 서울대 연구팀은 남미 볼리비아 아이마라족이 쓰는 아이마라어(語)를 위한 한글 표기법을 개발했다. 당시 연구를 진행한 권재일 한글학회장은 "문법이 우리와 구조적으로 비슷해 학술 연구를 진행했고, 이후 고유 문자가 없는 그들에게 한글을 보급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연구 결과와 대응 문자표를 제공하고 현지 휴대전화 자판에 한글을 담는 방안 등을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권 회장은 "문자 보급은 글자만 우수하다고 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지역의 정치·문화·경제적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가능하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21/2019112100235.html












 

생각사랑 선생님의 방문과 안내글을 받고 바로 와서 한편을 찾아 읽었습니다.
전교수님이나 선생님이나 한결같이 나라사랑 민족사랑과 한글사랑의 고귀한 분들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숙입니다. 또 이 좋은 자료를 이렇게나 수집하신 열정에 경의를 표해드립니다.
참 좋은 뜻을 가지셔서 제가 높이 우러러 뵙습니다. 자주 와서 많이많이 아주 많이 보겠습니다.
그동안은 산 사진만 주로 봤는데 사진도 무언이지만 엄청난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날잡아서 와가지고 공부도 좀하고 또 제가 봐도봐도 볼만한 산사진 열심히 보겠습니다. 2007/03/08
풀뿌리 아! 한밭에 사시는군요. 이곳에도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배달/개천/단기/서기]에 관하여는 제 글방의 "역사의 뒤안길"에 자세히 說해 놓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배달9204/개천5905/단기4340/서기2007/3/9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서) 2007/03/09 10:21:28  
산메아리 귀한 글과 자료를 잘 보고 갑니다.
실력갖추신 분들이 많아서 정말 배울 것이 많아 행복합니다.
자주 와서 공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7/03/09 17:00:45  
풀뿌리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같이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는 관심있는 분들이 게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배달9204/개천5905/단기4340/서기2007/3/11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서) 2007/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