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과학적인韓國史

(25)한일 월드컵 성공은 과학과 토종의 합작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12. 11:37
한일 월드컵 성공은 과학과 토종의 합작
과학 소산 축구공과 한인의 친화가 빚은 쾌거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누가 되는가는 항상 초미의 관심사인데 2004년 6월 18일, 네덜란드 출신 조 본프레레(본명은 요하네스 프란시스쿠스 본프레레. 58세)가 중도 하차한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아 2006독일월드컵까지 한국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지난 2000년 12월 히딩크 전 감독, 에메 자케 전 프랑스대표팀 감독, 보라 밀루티노비치 전 중국대표팀 감독 등과 함께 2002한일월드컵 사령탑 자리를 놓고 경합했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그를 선임하게 된 배경 중에 하나라고 설명됐다.

본프레레 감독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 나이지리아를 이끌고 이 대회 4강에서 베베토, 호베르 투 카를루스가 포진한 우승후보 브라질을 4:3으로 꺾은데 이어 결승에서 에르난 크레스포가 버티고 있던 아르헨티나를 3:2로 격파하고 올림픽 첫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본프레레 감독의 발탁으로 히딩크의 신화를 다시금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측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한일월드컵에서 이룬 4강 신화를 다시금 이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유능한 축구감독이 한국축구대표팀을 이끌더라도 거스 히딩크가 갖고 있던 카리스마와 한국팀이 4강까지 오르게 된 여러 가지 특별한 조건과 열기를 되살리는 것이 어렵다고 예단하기 때문이다.

<엽전 근성의 한국인>
필자는 1990년 월드컵 때는 독일 보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파리에 있었는데 두 나라 모두 우승했다. 그러고 보니 월드컵에 관한 한 꽤 운이 좋은 셈이다. 월드컵이 우승국의 주장에게 안겨지는 장면을 TV에서 보자마자 자동차를 타고 길거리로 나갔더니 그야말로 열광적인 함성과 기쁨으로 온 도시가 떠들썩했다.

길거리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차를 세우며 세차게 흔들기도 하고 맥주를 뿌리기도 했다. 가족들과 함께 탔으므로 자동차가 파손되고 가족들에게 위해를 입히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반면에 우리에게는 왜 이런 축제의 장면이 없는가하고 이방인으로서 한없이 부럽게 바라봤다.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끝난 다음에도 '엽전(葉錢) 근성'이니 '조센징(朝鮮人)은 할 수 없다'느니 하며 스스로를 비하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해외에 나가서 각종 스포츠 경기에 참패를 하면 제일 먼저 '외국인들과 같이 잘 먹지 못해서' 체력이 달린다고 변명했다. 평소 육식을 즐겨먹는 외국인들의 식생활에서 나오는 튼튼한 체력을 단기간의 훈련을 통해 갖춘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항변했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도 이와 같은 자조적인 자격지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히딩크가 용병 축구전문가로 파격적으로 발탁되었지만 막상 현장에서 뛰어야 할 축구선수들은 모두 한국의 토종이므로 단기간의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거치더라도 외국인들과의 체력전에서 밀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한일 월드컵'의 뚜껑이 열리자 예상을 뒤엎는 현상이 나타났다. 유럽의 축구 강호들이 오히려 한국 선수들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에 놀라움을 토로했다. 한국인이 포르투칼, 이탈리아, 스페인을 격파할 때 승리할 수 있던 원동력은 기술보다도 그들을 압박할 수 있는 체력이라고 극찬했다. 한국인들도 유럽인들과 대등한 체력으로 경기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외국인이라면 당연히 신체적 조건이 월등하다는 열등감과 패배주의를 깨끗히 씻어 버릴 수 있었다.

더욱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것은 2002년 6월 25일, 독일과 결승전 진출을 가리는 준결승전, 월드컵이 열리는 한국의 심장부 광화문, 시청에는 무려 140만 명이 몰렸고 서울 시민의 1/4인 250여만 명이 거리 응원에 나섰다는 점이다. 그들은 '붉은악마' 유니폼과 호각, 태극기로 온 천지를 도배했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어른이고 아이고, 젊은이고 노인이고, 회사원이고 학생이고 구별도 없는 붉은 티셔츠 하나만 입고도 누구라 할 것 없는 구호에 따라 모두 같은 목소리로 합창했다.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시청앞 길거리 응원 모습. 세계를 놀라게 한 길거리 응원은 세계를 놀라게 하는 것은 물론 한국민도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증거가 되었다.


전국 450여 곳에 4700만 명의 인구 중에 무려 800만 국민들이 모였다. 결과는 독일에 1:0 패배. 한국의 패배로 결승 진출이 좌절되자 여자들은 서로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으며 북채를 쥔 응원단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도 잠시. 한국팀의 패배에 실망하여 축구감독을 욕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내 '대∼한민국'의 연호가 터져 나오면서 한국팀 축구 선수들의 불굴의 투혼을 격려하는 목소리가 여기 저기서 터져 나왔다.

경기가 끝난 후 상당시간이 지났음에도 길거리응원단의 집단 행동은 어느 누구라도 예상치 못한 응집력을 보여주었다. 곧바로 전국 곳곳에서 축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수백 여명 씩 무리를 지어 응원구호를 외쳤고, 태극기가 수없이 휘날렸으며 축포가 터지는 가운데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이들의 함성은 새벽이 끝나서야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느꼈던 부러움을 우리나라의 잔치마당에서 누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감동을 느꼈고 우리 국민들에게 그동안 씌워졌던 정체성에 대한 몇 십 년의 콤플렉스도 한꺼번에 벗어버릴 수 있었다.

<지구를 들썩거리게 한 함성>
길거리응원의 특징 중에 하나는 한국사회에서 그동안 금기시 해 온 갖가지 '상징' 즉 붉은 색과 태극기에 도전장을 내밀고 권위와 획일주의를 거부했으며 이들의 견인차는 유명한 '붉은악마'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붉은악마의 치우천황 로고. 치우천황은 기원전 2700년경 배달나라 제14대 왕으로 중국의 황제(黃帝)와 중원의 패권을 두고 전쟁을 벌였다. 탁록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중국 한족이 이민족과 벌인 최초의 전투이다.


신성시하던 태극기를 패션으로 만든 파격은 상상력 부재에 시달리던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었고 이들을 'W(월드컵)세대', '대∼한민국 세대'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W세대뿐만이 아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국기로 옷을 만들어 입거나 몸에 걸치고, 국기를 얼굴이나 몸에 그리거나 붙이고 길거리 응원에 참가했다.

그동안 2002년 한 일 월드컵 기간 중에 나타난 놀라운 현상에 대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나름대로 진단하고 평가했으므로 이곳에서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다음 두 가지에 대해서만 설명한다.

우선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인이 쏟은 에너지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는 것이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거리의 응원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수치로 풀어보자.

2002년 6월 25일 한국의 거리에는 800만 시민이 전국 곳곳에 모였는데 이는 4700만 국민의 거의 17%나 되는 숫자이다. 이들이 거리 응원에 내뿜은 에너지는 가히 천문학적이라고 볼 수 있다.

1인당 1일 발산 에너지는 대략 2500㎉가 되는데 이날 많은 사람들이 정오부터 축구가 끝난 자정까지 쉬지 않고 '대∼한민국'이나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쳐댔다. 거의 12시간에 걸친 열띤 응원이었으나 이를 6시간으로 줄여 계산한다면 1인당 625킬로칼로리를 발산했다는 뜻으로 이날 한국민들이 거리에 분출한 에너지는 5,000,000,000 ㎉이다.

이 에너지를 태양에너지로 흡수하려면 한국의 경우 집열기 1㎡ 당 평균 2500㎉를 획득할 수 있으므로 무려 2,000,000㎡ 즉 606,060여 평의 집열기가 하루 종일 태양열을 흡수한 양이 된다. 태양에너지를 집열하는 집열기의 가격을 400,000원/㎡으로 산정 하더라도 무려 8,000억 원이 소요된다.

인간이 이와 같은 에너지를 방출하려면 음식으로 흡수해야하는데 이를 계산한다면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다. 달걀은 66,667,000개, 짜장면은 무려 11,363,000그릇에 해당한다. 이를 소고기로 환산하면 3,731,343킬로그램(134㎉/100g)이 소요되며 돼지고기로 환산할 경우 3,546,099킬로그램(141㎉/100g)이 필요하다. 황소 한 마리를 400킬로그램으로 볼 때 9,328마리, 돼지 한 마리를 150킬로그램이라고 볼 때 무려 23,640마리가 소요되어야 하는 양이다.

태극기 패션. 태극기는 길거리 응원단을 결속시키는 구심체로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함성을 생각해보자.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소리의 세기는 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의 세기의 1,000,000,000,000배까지이다. 그러나 소리의 크기의 차이는 이보다 훨씬 적다.

귀가 듣는 상대적 소리의 크기를 음량이라 하고 데시벨(db) 단위로 측정한다. 데시벨은 로그눈금을 사용하므로 10데시벨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인 0데시벨보다 10배, 20데시벨은 100배이다. 일반적으로 집에서의 라디오 소리를 40데시벨, 집에서의 대화소리를 65데시벨, 귀에 장애를 주는 소리를 85데시벨, 매우 혼잡한 교차로는 90데시벨, 도로공사 시 굴착기의 소음은 100데시벨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큰 소음은 제트기 이륙 때 나는 소리로 140데시벨로 본다. 인간은 120데시벨에서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고 140데시벨에서 고막에 통증을 느끼며 방향감각을 일시 잃는다.

전문가들은 6월25일 광화문에서 국민들이 한꺼번에 터뜨린 함성을 150데시벨로 보았다. 150데시벨이 얼마나 높은 수치인가는 일반 소음계(sound level meter)의 측정 범위가 30∼130데시벨인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800만 명이 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소리를 질렀다면 200데시벨도 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엄밀한 계산을 한다면 이보다 훨씬 낮은 수치가 되지만 전 세계에서 아직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프레미엄까지 붙여 적어도 제트기의 소음보다 100만 배는 된다고 가정해도 무리는 아닐 성 싶다.

이들의 함성으로 지구가 들썩들썩했을 것이라는 데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한국민이 마음껏 동시에 터뜨린 함성으로 고막이 터지거나 귀에 병이 들었다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세계인들이 TV에서 한국민들이 지르는 함성을 보고 기가 질렸음은 틀림없는 일이다.

<과학으로 뒷받침된 월드컵>
월드컵이 진행되는 동안 지구촌이 온통 월드컵 열기로 들끓었다는 것을 한국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현장에서 체험했기 때문이다. 우승후보로 알려진 축구 강국이 약체 팀에 덜미를 잡혀 고전했는가 하면 축구 후진국으로 평가받던 한국, 터키가 4강으로 올라가는 신화를 창조하기도 했다. 축구공 하나가 세계를 웃기고 울리는 요물이 된 것이다.

축구가 올림픽을 제칠 정도로 세계인의 인기를 끄는 이유는 아프리카 오지로부터 서방 선진국에 이르기까지 공 하나만 있으면 별다른 장비 없이 맨발로도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라 할지라도 공 하나만 잘 차면 부와 명예를 얻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축구에 대한 환상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축구가 모든 스포츠 경기 중 가장 많은 팬을 갖고 있다는 것은 축구가 인간과 그만큼 밀접한 스포츠라임을 뜻한다. 또한 축구가 현재와 같이 발전하여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과학이 축구의 발전을 꾸준히 뒷받침해왔기 때문이다. 각 시대의 축구 장비에는 그때  그때의 과학적인 첨단기술이 접합돼 있는 것이다.  

축구공 제작 전문가와 학자들은 우선 완벽한 구형의 축구공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로 고심했다. 축구공이 완벽한 구형이 될수록 지면과의 마찰이 적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잘 아는 사실이다. 축구공은 8조각, 12조각, 18조각, 20조각을 거쳐 정오각형 12개와 정육각형20개인 32조각으로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학자들은 축구공의 제작 공정 등에 미루어 32조각의 공이 앞으로 장기간 사용될 것으로 믿고 있다.

2002년 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 어떤 축구공보다도 탄력, 반발력, 회전력이 뛰어나다는 피버노바는 고압의 작은 공기 방울이 들어있는 첨단 소재인 ‘신택틱폼’(기포강화플라스틱)과 방수 처리된 인조 가죽으로 만들었다.


축구공의 재질도 축구 경기를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초창기에는 소나 돼지의 오줌보에 바람을 넣거나 동물가죽에 털을 집어넣어 공을 만들었다. 그 후 고무가 생산되면서 내부에 고무를 넣고 겉을 가죽으로 꿰맨 원형축구공이 탄생됐지만 무겁고 탄력이 별로 없는데다 공이 선수들 의도대로 잘 나가지 않았다.

더욱이 천연가죽으로 만든 축구공은 수중 전에서 맥을 못 추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1982년 스페인월드컵 때 방수 가죽을 사용해 물에 젖어도 공의 무게가 크게 변하지 않는 첨단 축구공이 등장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는 천연가죽보다 방수성과 탄력이 뛰어난 인조가죽이 선 보였다. 미국월드컵에서는 스폰지 형태의 폴리우레탄 폼이 사용됐고 프랑스월드컵 때는 폴리우레탄 폼보다 반발력이 더 뛰어난 ‘신택틱 폼’이 개발됐다. 이 자재는 골 득점력이 줄어들어 월드컵의 흥미를 반감시키던 축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미국과 프랑스 월드컵은 1990년 이전 대회보다 평균 0.5골이 더 많은 골 득점을 보여주었다. 이번 한·일 월드컵의 공인 구 ‘피버노바’에서도 세 겹의 기본 패널(층)이 삼차원 기능성을 가지도록 해 공격수들이 정확하게 공을 조절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현대 축구에서 축구화는 단순히 발을 보호하는 신발이 아니라 선수의 재능과 능력을 높이는 첨단장비이다. 축구화는 한 짝의 무게가 200그램에 불과한 초경량 제품이 출현했고 축구화 바닥의 징의 수도 과학자들의 계산에 의해 선택되고 있다.  

축구복에도 기존 축구복의 단점을 극복한 첨단기술과 신소재가 동원된다. 축구선수들을 괴롭히는 것은 축구장의 열기와 땀이다. 땀에 젖은 유니폼은 무겁고 축축해 선수들에게 불쾌감을 주어 결국 선수들의 경기능력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현대과학은 축구복을 2중 구조로 만들어 땀을 빠르게 흡수하고 건조시키며 열을 바깥으로 쉽게 배출시키게 함으로써 선수들의 경기능력을 현저하게 높여 놓았다. 더구나 축구복은 2겹인데도 불구하고 기존 축구복보다 매우 가볍다.

2002년 6월18일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 때 한국 문전 앞에서 이탈리아의 비에리 선수가 헤딩슛을 위해 솟구쳐 오르자 한국의 최진철 선수가 필사적으로 비에리의 유니폼을 붙잡았다. 그러나 비에리의 유니폼은 고무줄처럼 늘어났고 결국 그의 헤딩으로 공은 한국 골문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탈리아 공격수 비에리의 선취골. 한국-이탈리아의 월드컵 16강전에서 이탈리아의 공격수 비에리(가운데 오른쪽)가 최진철의 밀착마크에도 불구하고 선취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이 고무줄 유니폼은 미국 듀퐁사가 개발한 신소재 ‘라이크라’로 이 소재는 땀의 흡수와 건조가 빠를 뿐만 아니라 최대 7배까지 늘어나는 신축성을 지니고 있어 상대선수가 웬만큼 붙잡아도 소용이 없다. 뿐만 아니라 축구선수 힘의 70%가 하체에서 나오는 것에 착안하여 힘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팬티와 양말의 안쪽 겹에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 정도의 얇은 초극세사가 첨가된 제품도 등장했다.

축구는 그 장비에 현대과학이 접목돼 앞으로 스포츠의 제왕으로 더욱 더 부각될 수 있다. 세계의 축구 애호국들이 과학기술을 총동원하여 보다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축구를 만들기 위해 열을 올리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다. 축구에 대한 열기가 높아지고 선수와 팬들이 늘면 늘수록 축구공과 축구복, 스타킹과 축구화 등이 더욱 과학화되어 그 부가가치도 한층 높아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국의 대그룹에서 제품 개발에 힘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토불이된 길거리 응원>
월드컵이 열리기 전만 해도 한국의 꿈은 아주 소박했다. 월드컵에서 16강이 겨루는 본선에 한번 진출해 보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최소한 1승이라도 거두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히딩크 사단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기적을 이룩했다. 소박한 1승이 한발 한발 나아가 4강까지 진출했던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히딩크는 한국의 대표팀을 맡자마자 유럽이나 남미의 선진 축구와 맞서기 위해서는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면서 기본 체력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선진 기법을 도입했다. 이에 대해 일부 축구인들은 한국은 전통적으로 체력이 강하고 기술이 부족한 팀인데 다른 것을 제쳐두고 왜 체력강화 훈련을 하느냐고 비난했다. 그러나 히딩크는 이에 개의치 않고 자기 계획대로 선수들의 체력단련에 몰두하여 결국 경기장에서 세계적 강팀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히딩크의 성공 비결 중에 하나로 많은 사람들을 거론하는 것은 소위 ‘히딩크 사단’을 구성함에 있어 제반 상황을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능력 위주로 모든 것을 운용했다는 점이다.

히딩크는 선수선발에 있어 한국 축구의 고질인 지연과 학연을 철저히 무시하고 재능과 능력위주로 선수를 뽑았다고 말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선수를 뽑아 체계적이며 과학적으로 훈련시켜 한국팀으로 하여금 월드컵에서 적어도 16강엔 오르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외국인이어서 한국 내에 혈연은 물론 학연도 지연도 없는 사람이었다. 이점이 선수들을 객관적으로 뽑고 훈련시키는데 절대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논리에 약간의 모순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학연, 지연, 혈연에 억매인다는 것은 다른 말로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팔은 안으로 굽지 뒤로나 옆으로 굽지 않는다. 만약에 팔이 안으로 굽지 않는다면 그는 병신이라고 단정해도 좋다. 불가피하게 많은 경쟁자 중에서 일부를 선택해야 한다면 같은 능력과 자질을 갖고 있는 경우, 누구나 자신이 잘 알거나 연관이 있는 사람들을 추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히딩크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발탁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히딩크가 사전에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로 소위 과거부터 히딩크와 여러 가지 면에서 인맥이 있던 사람들이다.

히딩크 감독이 선수 교체와 작전 등을 가장 먼저 논의하는 사람이 바로 핌 베어백 코치인데 그는 히딩크 감독과 같은 네덜란드 출신이며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는 행정업무를 맡았던 얀 룰프스 기술분석관은 암스테르담의 프레이에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네덜란드인이다. 체력담당 트레이너인 레이몬드 베르하이옌은 네덜란드축구협회 소속으로 지난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도 히딩크 감독과 호흡을 맞췄는데 이들은 히딩크의 요청에 의해서 히딩크사단에 합류한 사람이다. 만약에 학연, 지연, 혈연 모두 비난받아야 한다면 히딩크가 자신이 잘 아는 네덜란드 전문가들을 데려왔으므로 그 역시 비난을 모면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각계에서 학연, 지연, 혈연이 문제가 되는 것은 경력도 검증이 되지 않고 능력과 자질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정실이나 안면에 의해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지 학연, 지연, 혈연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히딩크를 헹가래치는 한국대표팀. 선수들 한국대표팀 선수들이 터키와의 3 4위전이 끝난 후 히딩크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히딩크는 한국인들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희망을 심어주는데 성공했다.


히딩크는 한국축구팀 선수들에게 '서로 이름을 불러라'라고 주문했다. 그는 2002년 3월 스페인 전지훈련에서도 '후배들도 선배들의 이름을 불러라'고 지시하면서 일부러 대형 원탁을 식당에 마련하고 선후배가 골고루 섞여 앉아 이야기를 많이 나누도록 했다. 이는 한국 선수들간의 대화가 고참선수에서 후배선수로 흐르는 '일방 통행'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그 '벽'을 허물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된다. 일부 언론에서는 '새까만' 후배가 선배의 이름을 불러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 선수들 간의 결속이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고까지 적었다.

그러나 이것은 히딩크가 한국의 전통적인 미풍양식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한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 외국 영화의 경우 약간만 친해져도 성을 부르지 말고 이름을 부르라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장군이 사병에게조차 이름을 불러달라며 대기업의 회장이 신입사원의 등을 두드려주며 이름을 불러달라고 한다.

이는 외국인들로서는 상대방에 대한 덕목이요 아량으로 볼 수 있다. 장군이 사병에게 이름을 불러달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파격적인 일이 아니요 또한 어색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미풍양식에 의하면 부모나 선생님 등을 제외하고 타인이 자신의 이름을 직접 부르면 매우 황당해한다. 특히 선후배 관계가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돈독해지는 것이 아니며 남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이 한국인들이 지키는 미풍양식 중에서 하나인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히딩크가 선수들의 이름을 서로 부르면 친근하고 서로 대화가 많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한국선수들의 대화를 오히려 역행시키는 일이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 외국인들처럼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이 왜 나쁘냐는 것에 대한 토론은 의미 없다. 한국인으로서의 존재가치는 한국인만이 갖고 또 전수해나가는 미풍양식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지적을 생각하면 후배가 선배의 이름 부르기 명령이 결코 현명한 조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실제로 차두리나 박지성이 새까만 선배인 홍명보나 황선홍에게 지금도 이름을 직접 부르는 지 궁금하다.

더구나 한국 축구의 기적이 순전히 히딩크의 힘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히딩크의 지도방식과 훈련스타일, 전술 등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가 유럽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는 동안 줄곧 써왔던 방법을 그대로 한국 대표팀에 시도했다고도 볼 수 있다. 히딩크가 한국에 와서 성공한 요인은 그의 축구에 대한 전문지식과 이를 묵묵히 따라 준 선수들, 그리고 한국인만이 갖고 있는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이규태의 글에서 찾았다. 그의 글을 정리해 본다.

"세계 열강들을 물리친 비결을 히딩크는 선수들이 순박해 말을 잘 들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들었다. 감독 경력이 많으므로 그의 비교체험에서 나온 말로 들린다. 이것은 히딩크가 기득권이나 인지도 자존심 인맥 등 선수 선발에 내재하게 마련인 악지를 빼고 순수한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그동안 유럽축구는 체력, 남미축구는 기량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 그 한 시대를 접었다. 그 시대를 접게 만든 한국팀은 체력도 기량도 아니요 그렇다고 투지만도 아니다. 이해타산 않고 분골쇄신하게 만든 것은 바로 친화(親和)였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욕타임스〉는 한국인들이 월드컵을 통해 '혁명적인 의식의 변화'를 겪었다고 썼다. '대한민국'이 출범한 이래 전쟁과 피란, 민주화 시위와 항거는 있었지만 이처럼 전 국민을 들뜨게 만들고 즐겁게 만든 축제는 없었다. 잊고 살았던 아파트 이웃집 사람의 체취를 새로 느낄 수 있었고 표출하지 못했던 우리 속의 열정이 남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까지 정치판에서 기승을 부리던 지역주의라는 말이 사라질 정도로 한국민이 하나라는 것을 느끼게 만들었다는 것도 소득이다.

히딩크가 한국에 와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풍부한 축구에 대한 전문 지식에다 한국인만이 갖고 있었던 '친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히딩크의 잣대로 축구팀을 운영했기 때문에 한국이 4강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4강에 올라갈 수 있게끔 유도했고 또 그것이 가능하도록 제반 여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에 4강에 올라갔다는 것이 중요하다. 즉 우리의 것을 우리 것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월드컵을 통해 한국민들이 얻은 소득은 이뿐이 아니다. 가장 큰 소득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동원한 길거리 응원이야말로 한국이 세계 어느 민족에게 대놓고 자랑할 수 있는 '신토불이'가 되었다는 점이다.

월드컵의 열기가 또 다시 한국에서 일고 있지만 한국민의 역량은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이룩할 수 있다. 앞으로 열릴 월드컵에서 4강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 국민이 2002년 월드컵에서 보여준 역량을 월드컵을 비롯한 각 분야에서 발휘될 수 있도록 밀어주고 이끌어 나간다면 월드컵 4강 신화는 언제든지 올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기반은 과학기술이 토대가 되어야 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04/6/25 이종호(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