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과학적인韓國史

(26)숨쉬는 그릇 옹기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12. 11:38
숨쉬는 그릇 옹기
물 안새지만 공기는 통과…부패 막고 발효 잘돼
우리나라 유산을 과학이라는 잣대로 다시 바라보면 그다지 과학적으로 보이지 않는 민속 문화 중에 대단한 과학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우리나라 민속용품 중에서 가장 과학적이라고 생각되는 3가지를 꼽으라면 옹기, 지게를 비롯한 운반도구, 장승을 지목한다.

경상도나 전라도에 살면서 장 담그는데 남다른 비법을 갖고 있는 할머니가 서울에 시집간 딸의 집에서 장을 담가 주었는데 원래의 맛이 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것을 자주 듣는다. 반대로 경기도에서 할머니로부터 장 담그는 방법을 익혀서 전라도나 경상도로 시집을 갔는데 장 맛이 나쁘다고 시어머니로부터 핀잔을 들었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발효 및 저장 시설로 안성맞춤인 옹기가 지역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제작되었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옹기는 각 지역에 따라 다소 다르게 제작되었는데 정동찬을 비롯한 국립중앙과학관 연구팀은 한국 옹기를 세 지역으로 나누어 구분했다.

옹기 장식. 근래 옹기는 실외 장식품으로도 사용된다.


중부 이북에서 주로 사용되는 소위 북부지방의 옹기는 전반적으로 입(口徑)이 큰 것이 특징이다. 반면에 배 부분이 부르지 않고 키가 높다. 중부지방의 옹기는 대체로 밑과 입 지름의 크기가 비슷하며 항아리의 생김새도 맵시 있다. 남부지방의 옹기는 타지방에 비해 배가 부른 편이지만 전라도 지방과 경상도 지방의 옹기가 다소 다르다. 경상도 지역의 항아리 몸통의 지름에 대한 입의 지름보다 전라도 지역의 항아리 입이 훨씬 더 넓다. 특히 경상도 지역 옹기의 경우 입은 호남지역과 마찬가지로 좁지만 어깨로부터 배까지 점차적으로 팽창돼 수박동이 모습을 취한 것이 특징이다.

옹기의 모양이 다른 것은 그 지역의 환경과 기후조건에 따라 다르게 제작됐기 때문이다. 중부지역은 일조량과 기온이 높지 않으므로 장을 담글 때 자외선을 충분히 쪼이게 하기위해 입이 벌어지게 만들었다. 반면 영호남지역은 중부지역에 비해 기온이 높고 일조량이 많으므로 옹기 입이 넓으면 수분증발이 많아진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입을 좁게 만들고 대신 어깨를 넓게 함으로써 옹기 표면으로 복사열을 보다 많이 받아들이도록 했다. 그러므로 영호남지역 법식으로 중부지역에서 장을 담그면 장맛도 다르고 신선도도 낮아지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우리 선조들이 과학적인 지식을 갖고 음식문화를 개발했다는 것을 뜻한다.

〈살아 숨쉬는 그릇의 전당 장독대〉

우리의 전통가옥은 대부분 부엌과 가까운 집 뒤 높직한 곳에 장독대를 둔다. 장독대에 그 집의 웬만한 세간사리가 다 얹혀있는데 그 종류도 다양하다. 큰 독, 작은 독, 항아리, 단지, 동이, 떡시루, 소주 고리, 약탕기 등 옹기로 된 그릇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시장의 조그만 옹기전을 방불케 한다. 이런 광경은 아주 정겨운 것이어서 고향을 나타내는 광고 그림으로도 많이 쓰인다.

우리조상들은 각종 장의 비축과 장독대의 관리 상태를 보고 그 집 여인들의 살림 솜씨와 매무새를 짐작했다. 장독대는 바로 옹기의 전시장이다. 옹기는 커다란 독을 비롯하여  항아리와 단지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헤아릴 수없이 많다. 한약을 달이는 약탕관, 찌개를 끓이는 뚝배기, 관혼상제에 빠지지 않는 약주 주조용기, 정화기능을 갖는 물독 등이 모두 생활옹기이다.

옹기장수. 식수를 길어 나르는 것은 대부분 여자들의 차지였다. 사진 뒤에 보이는 옹기들은 여자들이 물을 길을 때, 이고 다닌 물동이들이다.


된장, 김치, 젓갈, 막걸리, 식초 등 우리나라의 전통 음식은 거의 모두 발효식품이다. 이들 발효 식품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발효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옹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옹기는 큰 독을 비롯하여 항아리와 단지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헤아릴 수없이 많다. 한약을 달이는 약탕관, 찌개를 끓이는 뚝배기, 관혼상제에 빠지지 않는 약주 만드는 용기, 정화기능을 갖는 물독 등이 모두 생활용기이다.

옹기는 크게 질그릇과 오지그릇으로 나뉜다. 질그릇은 진흙만으로 초벌구이를 한 그릇으로 잿물을 입히지 않아 윤기가 없고 겉이 거칠거칠하고 오지그릇은 질그릇에 유약을 입혀 다시 구운 그릇으로 윤이 나고 단단하다.

일반적으로 ‘숨쉬는 그릇’이라 불리는 옹기는 현대에 들어와 더욱 과학적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옹기의 색은 바탕흙의 재료, 소성방법과 유약을 입히는 경우 유약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바탕흙에 포함되어 있는 산화철의 양이 큰 작용을 하는데 철화합믈은 산화성 불에는 갈색이나 붉은색, 밤색 계통의 색을 내며 환원성 불에서는 푸른색 계통의 색을 낸다. 특히 유약 속의 산화철은 산화성 불에 의해 황색유가 되며 농도는 대체로 1∼2퍼센트이다.

옹기는 적어도 1200~1300도라는 높은 온도에서 구워지는데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청자기가 구워지는 1250도보다 더 높은 온도이다.

옹기가 숨쉬는 그릇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옹기 벽 속에서 800도 이상에서만 나타나는 루사이트(leucite)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국립중앙과학관 학술총서6권 ‘옹기’편에 의하면 옹기를 굽는 과정에 고령토(Al2O3 SiO2 2H2O)가 루사이트(K2O Al2O3 4SiO2)로 변하는데 루사이트 현상에 의해 높은 온도로 가열됨에 따라 옹기 벽 내에 함유되어 있던 결정수가 빠져나가면서 미세기공이 생긴다.

이 미세기공은 공기는 통과시키지만 물은 통과시키지 않을 정도로 작아 스펀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비를 맞아도 빗물이 옹기 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서 공기는 옹기 안과 밖으로 서로 통하게 하여 안에 저장된 음식물을 잘 익게 하고 또 부패하지 않게 한다. 다시 말해 옹기 밖 공기와 옹기 안 공기가 순환작용을 하는 것이다. 현대과학에서 물의 침투는 막고 공기는 통하게 하는 것은 방수의 원리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옹기는 간장이나 된장 같은 것들의 이상적인 보관 기구로 그 뛰어난 여러 가지 기능은 과학으로 잘 설명되고 있다.

다양한 생활 옹기들. 옹기의 종류는 용도에 따라 다양한데 중앙에 전통 주류를 제조하는 소주고리가 보인다.


옹기는 구더기가 잘 꾀지 않고 발효가 잘되는 것도 특징이다. 술을 빚을 때에도 질그릇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질그릇은 반드시 좋아야 한다"며 좋은 술 만드는 여섯 가지 방법 중에 질그릇의 중요성을 적었다. 술 빚는 독이 좋고 나쁨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잘못된 독을 사용할 경우 술맛이 시게 된다는 말이다.

〈옹기의 역사〉

옹기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발효음식과 때를 같이했다고 추정되며 상고시대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이 죽으면 묻는 관을 비롯하여 제기, 식기, 솥 등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삼국지』의 〈위지동이전〉과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에서는 ‘집집마다 작은 창고를 갖추고 있었는데 그것을 부경이라고 불렀다. 고구려 사람들은 매우 청결하여 잘 저장된 발효식품을 만들어 먹기를 즐겼다’는 것이다. 그 같은 시설은 중국의 집안 지역은 물론 경상북도 봉화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학자들은 고구려의 남진정책으로 영주까지 고구려의 세력이 미쳤을 때의 유산으로 추정한다.

중국 집안 시에 보이는 부경. 현재도 집안 시에는 고구려시대의 저장고로 사용하던 부경이 원형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신형식 사진).


『삼국사기』에는 옹기에 관한 내용이 많이 있다. 백제 2대 다루왕 11년 ‘가을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에게 술 빚는 것을 금하게 했다’는 기록도 있고 신라 31대 신문왕은 왕이 왕비를 맞이하는데 신부 집에 보내는 명세서에 쌀, 술, 기름, 꿀, 간장, 포, 젓갈 등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이것들을 저장하고 발효시키는 데 옹기를 사용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와기전(瓦器典)이라는 도기류를 생산하는 기관이 있었으며 소속관원으로 간(干) 1인과 사(史) 6인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음에 비추어 옹기가 체계적으로 제작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고려시대 기록으로는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 식수를 저장하는 옹기의 규모는 높이 6자, 너비 4자5치, 용량은 3섬2대라고 한 것을 볼 때 매우 큰 용기를 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옹기에 대한 자료가 비교적 풍부했다. 이에 따르면 용기 제작은 임진왜란 이후에도 계속 발전했고 일상생활에서 가장 요긴하게 쓰이는 것이 큰 질그릇이었다.

조선 초기에 발간된 『경국대전』에 의하면 사기장(沙器匠)이 모두 386인으로 사옹원(司饔院)에서 380인, 내수사(內需司)에서 6인이 일을 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경상도 초계군과 진주목에 황옹(黃甕)만을 굽는 가마가 세 군데 있었다. 또한 『경국대전』에도 충청도 임주에 황옹장(黃瓮匠) 1인이 있었다고 적혀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황옹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독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동국여지승람』, 『육전조례』, 『사시찬요』 등에도 옹기에 관한 언급이 있다. 또한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에는 발효음식의 제조방법과 올바른 옹기의 사용방법이 구체적으로 소개돼 있다. 특히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는 흙으로 빚은 옹기들이 명확히 분류돼 있다.

옹기를 굽는 가마는 도자기 가마와는 달리 경사진 곳에 기다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런 옹기가마를 보통 통가마라고 부르는데 미국에서는 이를 튜브킬른(tubekiln)이라하고 일본에서는 아니가마라고 부른다.  작은 가마는 3~4미터, 큰 것은 40~50미터의 긴 튜브형태로 20~30도의 경사진 언덕에 설치하며 가마 밑 부분이나 옆 부분 한두 군데에 있는 문을 통해 기물을 재임하고 밑에서부터 소성(燒成)하면서 예열(豫熱)한다. 천장에 난 작은 화구를 통해 나무를 투입하여 가마 전체의 온도를 일정하게 조정함으로 가마가 길어도 균일한 소성이 가능하다. 경사진 언덕에 가마를 짓기 때문에 경사도 그 자체가 굴뚝 역할을 한다. 밑에서부터 점차 소성하여 올라가기 때문에 소성이 끝난 부분은 자연히 냉각되고 그 윗부분이 예열이 되기 때문에 반연속가마로 부르기도 한다.

충청도와 전라북도 일원에서는 조대불통가마를 사용한다. 이 가마는 외형상 ‘ㄱ' 자형 구조로, 불통과 가마 칸이 90도로 꺾여져 있다. 가마 중간에 2, 3개의 문이 있고 봉통과 기물 실이 살창으로 막혀 있어 기물에 직접 닿지 않고 예열이 되므로 기물의 파손이 적은데 이런 형태의 가마는 세계에서 유일한 것이다.

조대불통가마 구조도. 조대불통가마는 외형상 ‘ㄱ' 자형 구조로 불통과 가마 칸이 90도로 꺾여져 있는데 이런 형태의 가마는 세계에서 유일한 것이다.


〈현대화에 밀려나는 전통옹기〉

옹기의 내화도(耐火度)를 높이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화학조성 중 Al2O3가 많아야 하며, 착색을 할 때에는 Fe2O3나 MgO와 같은 금속 산화물의 양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또한 옹기를 만들 대에는 주로 환원분위기에서 옹기가 구워짐으로 TiO2의 함유량도 큰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가능한 한 옹기를 만들 대 가마의 분위기나 옹기의 착색도에 따라 Fe2O3,. MgO, TiO2의 양을 적당히 조절한다. 그러나 정확한 흙의 화학분석기가 없었던 과거에 우리 선조들은 흙의 빛깔과 뭉쳤을 때 부서지는 강도 등을 참고하여 옹기를 굽는 장소와 흙을 선택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옹기를 제작하는 태토의 일반적인 화학조성은 SiO2가 65~70%, Al2O3가 20~24%, 알칼리산화물이 6~8%일 때 가장 이상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기수 교수는 이와 같은 조성물이 1200~1300도에서 소결하여 내화도가 약 SK30(1천6백70도)이 되는 소지를 얻는다고 발표했다.

태토의 화학 분석치.


재래식 약토잿물은 유기물 속에서 흙이 산화된 것에 잿물을 약 30% 가량 섞은 것이다. 옹기 표면에 재래식 약토잿물을 입힌 후 대략 1,000~1,300도에서 구어 내는데 약토잿물을 사용하는 과정에 식염유(食鹽油)를 사용하기도 한다. 약토잿물이 녹을 때 식염을 뿌려주면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옹기는 현대화 추세로 위기를 맞고 있다는 보도를 우리는 자주 접한다. 질이 낮고 건강에 해로운 중금속물질인 광명단(光明丹)이 재래식 약토잿물 대신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광명단이 언제 어디서 들어왔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대개 19세기 초기에 유럽(프랑스)이나 일본에서 유입된 것 같다.

광명단 약토잿물(Pb3O4)은 광명단 약 40~50%, 약토 약 40~50%, 재약 10%을 배합해서 만든다. 때로는 망간도 넣는다. 광명단은 산화납이 주성분으로 매용제(융제)로 사용하는데 옹기에 입혀 구우면 붉은 색이 나고 표면이 유리처럼 광택이 뛰어나다. 망간은 착색제로 쓰이는데 구우면 검은색이 된다. 광명단과 망간을 포함한 유약을 사용하면 옹기의 빛깔이 새까맣게 빛남으로 일반인들이 선호한다.

사용된 유약의 숙성온도는 약 1천50도이다. 그러나 광명단의 주성분은 사산화납(Pb3O4)으로 이는 약 550도에서 분해되며, 제1산화납(PbO)으로 되는 융점은 880도가 된다. 바닥 흙이 가장 잘 익는 온도가 1200~1300도임을 감안하면 바닥 흙이 설 익는 상태에서 광명단이 녹음으로 옹기의 견고성 면에서도 결함이 나타난다.

그러나 광명단과 망간이 포함된 옹기는 인체에 해로운 납과 망간 성분이 용출될 수 있는데다가 납유약이 완전히 녹아 옹기의 구멍을 막아버리기 때문에 안에 저장되는 음식물이 ‘질식’해 죽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광명단 유약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유약이 산에 용해되는데 우리의 주식이라고 볼 수 있는 발효식품이 주로 산성이므로 유약이 음식물 속으로 침투한다는 점이다. 침투된 유약은 인체의 동맥에 중금속 형태로 유입돼 동맥경화증이나 고혈압을 유발한다. 특히 납은 무서운 공해병 ‘이따이이따이병’을 유발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광명단을 사용한 옹기가 납 때문에 인체에 해롭다는 것이 밝혀지자 1976년 보건사회부에서는 도자기 제조 및 옹기류 제조시 납이 함유된 유약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물론 광명단을 무조건 유해하다고 판정하는 것은 아니다. 1978년 법원은 광명단을 사용한 용기일지라도 인체에 꼭 유해하다는 것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광명단을 섞은 유약이라도 1,200도 이상에서 구우면 납 성분은 모두 날라 가고 규산연으로 변하여 인체에 해가 거의 없다는 연구결과에 의거한 것이다.

그러나 광명단을 섞는 것은 고운 색깔과 매끄러운 윤기를 위해서인데 이와 같은 효과를 얻으려면 850도를 넘을 수 없으므로 현재 쓰이고 있는 광명단을 사용한 옹기의 납 문제는 항상 남는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여하튼 광명단 문제는 생산업자나 소비자들에게 민감한 문제를 제기해 주어 근래에는 무광택 광명단을 사용하여 소비자들의 눈을 속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광명단 옹기가 국민건강과 보건에 해를 준다고 하자 광명단 옹기의 생산을 막자는 운동과 함께 전통 옹기를 사용하자는 운동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또한 정부에서는 전통 옹기장을 ‘중요무형문화재’로 등록하고 전통 옹기 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과거부터 우리 선조들이 사용해 온, 뛰어난 과학적 기능을 가진 옹기가 제 대접을 받는 날이 금명간 오리라고 생각된다. 04/7/9 이종호(
mystery123@korea.com · 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