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漫遊의漢詩紀行

술! 하십니까? 이 정도는 되어야지요.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13. 10:14

飮中八仙歌(음중팔선가)            술 취한 신선 여덟        杜甫(두보)



知章騎馬似乘船(지장기마사승선)   하지장은 말을 타면 배를 탄듯하고,

眼花落井水底眠(안화락정수저면)    몽롱한 상태여서 우물에 빠진다 해도 그냥 잠을 자리라

汝陽三斗始朝天(여양삼두시조천)    여양은 서 말은 마셔야 조정에 나가고,

道逢국車口流涎(도봉국차구유연)     길에서 누룩 수레만 만나도 군침을 흘리고,

恨不移封向酒泉(한불이봉향주천)   주천으로의 봉작이전 못함을 한스러워 한다.

左相日興費萬錢(좌상일흥비만전)    좌상은 하루 유흥비로 만전이나 탕진하고,

飮如長鯨吸百川(음여장경흡백천)     큰 고래가 강물 들이키듯 술을 마시며,

銜杯樂聖稱避賢(함배낙성칭피현)    맑은 술이나 마셨지 막걸리 따윈 거덜 떠보지도 않았다.

宗之瀟灑美少年(종지소쇄미소년)    종지는 멋쟁이 미남인데,

擧觴白眼望靑天(거상백안망청천)    잔 들고  흰 눈으로 푸른 하늘을 쳐다보는 모습이란,

皎如玉樹臨風前(교여옥수임풍전)    옥으로 다듬은 나무가 바람 앞에 흔들리는 듯 하다.

蘇晋長齊繡佛前(소진장제수불전)   소진은 수놓은 부처 앞에서 오랫동안 정진하다가도,

醉中往往愛逃禪(취중왕왕애도선)    취하면 때때로 참선을 파하기를 즐겨하곤 한다.

李伯一斗詩百篇(이백일두시백편)   이백은 술 한말에 백편 시를 써는데,

長安市上酒家眠(장안시상주가면)   장안시내 술집에 곯아떨어지기도 일쑤이다.

天子呼來不上船(천자호래불상선)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고,

自稱臣是酒中仙(자칭신시주중선)   자칭“신은 술 마시는 신선입니다” 한다.

張旭三杯草聖傳(장욱삼배초성전)   장욱은 석잔 쯤 마셔야 초서를 쓰는데,

脫帽露頂王公前(탈모노정왕공전)   모자 벗고 민머리로 왕공귀족 앞에 나서며,

揮毫落紙如雲煙(휘호락지여운연)   종이위에 일필휘지 구름 같고 연기 같다.

樵遂五斗方草然(초수오두방초연)   초수는 다섯 말은 마셔야 신명이 나는 데,

高談雄辯驚四筵(고담웅변경사연)   고담준론 빼어난 말솜씨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국: 누룩 국(麥+曲)



주1)지장: 하지장(659~744):자는 계진(季眞),월주 영흥(永興:하남성 내황현)사람이다. 86세를 살았으니 당시로는 대단히 장수를 한 복 많은 노인 이였다. 벼슬길도 순탄 하여,만년에 은퇴 시 황제가 어시를 하사하고 황태자이하 백관이 전송했다 하니 이만저만 한 복 노인이 아닐 수 없다.이백을 현종에게 천거하였고, 이백을 일러 謫仙이라 칭한, 언변 좋고, 술 잘 마시고 시. 문장, 서예에도 능통한 初唐時 사람이다.

2)여양: 여양왕(汝陽王) 이진(李璡).玄宗의 조카.

3)이봉향주천: 주천(酒泉)으로 영지를 옮겨 봉함을 받다. 주천은 지금의 甘肅省 서북부의 지명. 땅에서 술이 샘솟는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함.

4)좌상: 이적지(李適之:?~747).천보 원년(742년)에 좌승상에 올랐다. 후에 현종의 신임 두고 정적 이임보(李林甫)와 대립하다 실각하고 자살하였다 한다.

5)낙성칭피현:삼국시대 위 무제(曹操: 삼국지의 주인공인 그 조조이다)가 금주령을 내리자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은어로 술을 칭하여 청주는 성인이라 부르고 탁주는 현인이라 불렀다한다.

6)종지: 최종지(崔宗之)

7)소쇄: 깔끔하고 잘 생기다.

8)백안: 곁눈질로 흘기다. 晉의 阮籍(죽림칠현 중일인)이 세속적인 인사를 대 할 때는 눈의 흰 자위를 굴려 백안시 하고 고매한 인격의 선비를 대 할 때는 눈을 똑 바로 뜨고 반갑고 정중하게 대했다는 고사가 있다.

9)소진: 평생 불교를 신봉하여 자수한 미륵불 한 폭을 보물처럼 간직했다는 일화가 있다.

10)이백: 시선 이백을 말한다.

11)장욱: 초서의 잘 써서 草聖이라 불렸다.

12)초수: 일생 벼슬을 않고 처사로 지냈다.

13)경사연: 잔치에 모인 사람을 놀라게 하다.



盛唐 때 두보와 친분이 있거나 그가 친애의 뜻을 두고 있던 사람들 중에 호방하게 술 마시기를 즐겨하던 시인 여덟명, 즉 하지장, 이진,이적지,최종지,소진,이백,장욱,초수 등이 세속적인 예의 규범을 벗어나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한,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 세속의 명리에는 부합치 못하고 울분과 비탄 속에 살던 시인들로 두보역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인지라 이들의 생활태도를 상당히 미화하고 있다.

하기야 당시이니 이런 모습의 시인들이 시중의 화제로 회자되기도 했겠지만 요즈음 같아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아마, 이런 정도의 술주정이면 몇몇 사람은 신문사회면을 장식하기이전, 인터넷상에서 벌써 작살이 나도 여러 번일 것이다.

하니 그들이 오늘을 살지 않고 그 때를 살았기를 천만 다행이라 할까?

감사합니다.

'12漫遊의漢詩紀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드 산림욕장  (0) 2015.08.13
한 여름에 읽는 시  (0) 2015.08.13
장마철에 읽는 漢詩  (0) 2015.08.13
추사(秋史)의 망부가(亡婦歌)  (0) 2015.08.13
"두자미(杜子美)의 봄" 은 가고....   (0) 2015.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