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망나니 조직의 인간 살상의 전모 | ||||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에 의한 인간사냥의 광란의 역사 | ||||
(2) 칼빈과 그의 수발이 되었던 종교국 칼빈과 제네바의 종교국과의 관계가 어떠한 성격이었는지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종교국은 칼빈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모든 목적과 행위들은 그의 충직한 '종교국'을 통해서 성취시켜 나갔다. 따라서 종교국은 칼빈의 손과 발이었기에 종교국의 행위와 제네바의 권력을 장악하고 칼빈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동조한 기욤 파렐(Guillaum Farel)에 대한 평가는 칼빈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칼빈은 자신의 '도덕적 테러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감시할 조직체를 만들었다. 종교국의 그것이었다. --어떤 것도 그들의 감시를 벗어날 수 없었다'('폭력에 대항한 양심' Stefan Zweig, 안인희 역. 자작나무. 1998, 4. p.72). 그러므로 종교국은 칼빈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대신하는 수발 역할을 하였다. 그의 활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종교국은 제네바에서 근심없이 숨쉬는 것도 죄악이라고 규정하였기 때문에 곧 안전하다고 느끼는 일은 불가능하였다. --칼빈의 도덕경찰은 칼빈만큼이나 망각이나 용서를 몰랐다'('폭력에 대항한 양심' Stefan Zweig, 안인희 역. 자작나무. 1998, 4. p.81&83)고 하였다. 이러한 칼빈의 지배 아래 종교국은 칼빈의 전적인 지시와 명령에 따라 움직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종교국의 형리인 장로들에게는 모든 개인의 생활을 감독할 의무가 주어졌다. 어떤 것도 그들의 감시를 벗어날 수 없었고, --그와같은 종합적인 감독체계가 도입된 그 날부터 제네바에서 개인의 사생활이란 없어졌다. 칼빈은 어디로든 고소나 고발을 하도록 밀정과 감시인을 보내곤 하던 카톨릭의 종교재판 당국을 단번에 추월해 버렸다.'('폭력에 대항한 양심' Stefan Zweig, 안인희 역. 자작나무. 1998, 4. p.72) 칼빈 자신에 의해 제네바 각 처에서 발탁된 장로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 조직은 칼빈의 도덕경찰로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종교국을 통해 시행되었다. 따라서 이 종교국과 여기에서 활동하는 장로교들은 칼빈의 지도이념 하에 움직이고 행동하였다('종교국-목사5, 장로-12, 합17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국은 제네바 시의 신정일치를 원칙으로 하는 과두정부의 중추기관이었다'). 13,000명의 제네바 시를 3교구로 구분하고 이유 없이 예배 출석치 않는 자들은 벌금을 바쳐야 했다. (3) 종료국의 모든 판단을 독점한 칼빈 칼빈은 종교국에서 '최후 판결권을 독점한 왕자의 지위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종교국(법원)을 좌우할 수 있는 판사의 역할까지 담당하였다. 그의 성경 해석 여하에 따라 모든 죄의 유무와 경중이 결정되었다.'(柏井園 저'基督敎師' 1957. p.427; 조찬선 op.cit. p.90) 그리고 칼빈은 '자기 없이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종교국의 의장이었고...시의회의 상설 고문관, 종교전쟁의 정치적 사령관...신정 국가의 모든 장관직을 한 몸에 갖고 있었다.'(Stefan Zweig. op.cit. p.67)고 하였다. 칼빈이 종교국에서 어떠한 위치와 어떤 관계에 있었는가를 말해준다. 이는 도덕경찰국인 종교국이 칼빈의 분신과도 같았으며 칼빈의 모든 의사를 반영한 기관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관계는 칼빈의 종교국이 행하는 모든 결정 다시 말해 사형을 내리는 일이나 잔악한 고문의 방식조차 모두 칼빈의 결정과 명령과 허락 하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4) 반드시 해명과 전제되어야 하는 역사적 진실 흔히 칼빈주의자들은 칼빈이 사람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 때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칼빈은 그 때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었다.' '포악한 카톨릭과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등등의 변명과 이유로 합리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칼빈이 무수한 사람들을 죽인 것은 카톨릭과의 전쟁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칼빈이 제네바에 입성했을 때는 이미 제네바는 신교로 바뀌어 있었다. 중요한 역사적 사실은, 제네바 시의 카톨릭과의 쟁투는 파렐에 의해서 거의 평정되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칼빈이 카톨릭과 관련한 전쟁의 과정 속에서 불가피하게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던 직접적인 사례는 거의 없었다. 칼빈이 사람들을 살상한 대상들은 대개 칼빈이 제네바 시를 통치하는 과정에서 그의 무자비한 통치와 사상에 저항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을 참혹하게 살상하였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2) 칼빈의 인간사냥에 대한 역사적 증언 (1) 4년동안 제네바 시를 통치하며 58명의 사람들을 죽인 칼빈 칼빈이 불과 1만 3천명의 제네바 시를 4년 동안 통치하며('조찬선' op.cit. p.94참조)그 자신은 물론 그가 장악한 종교국을 통해 죽인 공식적인 인원만도 58명에 이르며 추방한 인원은 76명에 달한다. 칼빈과 그의 후예들인 청교도들에 의해 자행한 인간 사냥은 신교 가운데서도 가장 잔혹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역사는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다. 칼빈이 자행한 인간사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다. '칼빈 역시 사회통제를 위해 당시 대중적이던 마녀사냥에 집착했다'('문화사' 이혜령외 7인,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p.431)고 확인해 주고 있다. 이러한 살상들을 한 줄의 말로 축약시켜 버리기에는 그 인간사냥의 규모가 적지 않으며 이에 수반된 수많은 고문과 가혹한 행위들이 종교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덮어 버리는 것은 만부당한 일이다. 이에 대한 모든 행위와 역사를 바로 규명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자행한 수많은 살상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졌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그들의 가르침이 성경을 말하는 정통으로 숭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칼빈주의자들에게 권력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칼빈과 같은 살상적 행위를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칼빈이 그와 같은 교리에 의거하여 잔악한 행위를 자행했기 때문에 그의 후예들 또한 그것이 그리스도의 신앙인 줄 알고 그 같은 일을 행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작은 도시지만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평화와 사랑에 의해 질서 되어진 복음적 방식으로 다스려졌는가? 과연 칼빈과 그의 후예들이 인간의 존엄적 방식으로 다스렸는가? 과연 칼빈과 그의 후예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높였고 이웃을 사랑하고 사유재산이 아니라 그 귀중한 이웃의 목숨과 자유를 얼마나 지켜 주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재임기간 4년 동안 58명 중 35명을 불태워 죽인 칼빈 칼빈의 참혹한 통치는 그가 재임하는 4년여 동안에 불과 1만 3천명 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도시에서 순전히 불에 태워 죽이는 화형으로 죽인 사람들만도 35명이나 되었다. 역사가는 '칼빈이 통치한 처음 5년 동안에 비교적 작은 이 도시(제네바)에서 35명이 화형 당하였다'(Stefan Zweig. op.cit. p.128)라고 고발하고 있다. 제네바시의 인구비율로 보면 실로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살상을 앞세운 종교개혁이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엄연한 살상적 행위요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빙자한 살상 행위들인 것이다. 그야말로 그 작은 도시 제네바를 피로 물들였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칼빈의 잔인성과 폭력성이 어떠했느냐 하는 것을 여실히 말해 주는 것이다. 그들이 칼빈주의자들이 외치는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산실이었다는 말인가? 1만 3천여 명밖에 되지 않는 도시에서 4년 동안 35명을 불태워 죽였다는 것, 더구나 그들의 손에 죽어야만 했던 사람들이 살인죄를 진 것도 아니고 국가 반란죄를 진 것도 아닐텐데 그들을 죽인 것은 그냥 사람을 죽인 살인자에 지나지 않는다. 증언자들에 의해서 보더라도 칼빈은 이 잔혹한 처형 방식인 화형을 가장 선호하였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간악한 사람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칼빈주의 자들이 주장하는 '칼빈주의 원리에서 세운 나라치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높이 보지 않는 나라가 없다'는 말은 언제나 그들의 교리와 신학과 신앙관의 이중성이 그러하듯이 가증스러운 기만적인 거짓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칼빈부터 종교를 앞세워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을 대로 짓밟은 파렴치한 기만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3) 통치기간 4년 동안 10명을 목잘라 죽인 칼빈 "칼빈이 통치한 처음 5년 동안에 비교적 작은 이 도시(제네바)에서 --10명이 목이 잘리고--"(Stefan Zweig. op.cit. p.128)라는 증언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4년 동안에 10명의 사람들의 목을 잘라 죽였다. 화형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목 자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와 같은 만행이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휘장을 내 걸어 놓고 하였는데 실로 찬란한 위장을 통한 합법적인 산인이었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사람들의 목을 수없이 자를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가차없이 목을 자르라고 명령하였던가? 물론 칼빈의 주장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계시가 그렇게 하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이것이 보다 심각한 문제이다.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 좋은 대로 가져다 붙이면서 다른 사람들의 목숨까지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석하여 정당화시키며 서슴없이 살상을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칼빈주의에서 인간의 생명이나 인권 따위는 한낱 거룩함을 가장하기 위한 위장이라는 것은 칼빈의 행위를 통해 여실히 증명되는 것이다. 우리가 냉정한 시각을 가지고 주시해야 하는 것은 이렇게 적용하는 하나님의 이름이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철저하고 교활하게 이용하는 칼빈의 위장된 사상과 교리적 적용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아직까지 이에 대한 전무가 전면적으로 공개된 바가 없어 칼빈과 칼빈의 후예들이 기독교 정통으로 행세하고 있지만 무수한 사람들을 불태워 죽이고 목잘라 죽이는 만행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 아니듯이 그의 만행을 합리화시켜 주는 칼빈교리의 위장된 허상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하고 그 진상은 공개되어져야만 한다. 심상용 목사 |
'17[sr]역사,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의 가죽을 벗기고 잔혹한 고문을 가한 칼빈과 그의 종교국 (0) | 2015.08.19 |
---|---|
칼빈과 칼빈 추종자들의 광란의 역사 (0) | 2015.08.19 |
빈의 허구적인 종교 개혁과 잔악한 살상을 밝히며... (0) | 2015.08.19 |
노아의 홍수에 관한 16개의 질문과 답 (0) | 2015.08.19 |
하느님의 이름...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0) | 2015.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