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가죽을 벗기고 잔혹한 고문을 가한 칼빈과 그의 종교국 | ||||
상상을 초월한 칼빈과 칼빈니스트의 악마적 살인 행각 | ||||
* 칼빈과 그의 종교국(칼빈니스트)은 어떻게 고문했나 1) 다양하고 잔악한 칼빈과 망나니 종교국의 고문방법 (1) 엄지손가락을 조이고 발바닥을 불로 지지고 밧줄로 잡아당기는 참혹한 고문 칼빈과 그의 종교국이 가한 고문은 악명 높은 카톨릭의 종교재판소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칼빈)의 권고에 따라 심문할 때에 나사로 엄지손가락을 조이는 고문과 밧줄로 잡아 당기는 고문외에 발바닥을 불로 지지는 고문까지 더해졌다(stefan Zweig. op. cit. p.80)는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칼빈의 종교국에 의해 자행된 밧줄로 잡아당기는 고문이란 높다란 천장에 도르레를 달아 놓고 사람을 밧줄에 묶어 반대편에서 잡아당기면 사람이 들려 올려 공중에 매달리는 고문을 말한다. 그렇게 매달린 사람은 혹은 그 상태에서 떨어뜨리면 바닥에 내 동그라지는데 그러면 신체의 부위들은 탈구되어 죽거나 그런 방식으로 해서 그 천장에 매달린 상태로 죽거나 아니면 그렇게 고문을 당하다가 끌어 내려져 사형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발바닥을 불에 달군 쇠로 지지는 고문으로 가혹하기가 이를 데 없는 고문을 하는 등, 이러한 고문은 카톨릭의 종교재판에서도 그대로 행해진 방법들이며 칼빈에 의해서도 동일하게 자행되었다. 주목할만한 것은, 바로 '단순한 혐의만 받고 잡혀온 사람들'에게도 너무도 잔인한 고문이 행해졌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사람들에게 잔인한 고문을 가했기 때문에 그들은 고문실로 끌려가 다시 그 처참한 고문을 받지 않기 위해서 차라리 목숨을 끊었다. 그만큼 가혹하고 잔악한 고문이었음을 말해준다. (2) 창자가 튀어나오도록 꼬쟁이로 쑤시는 칼빈과 종교국(망나니의 대명사인 칼빈니스 트 종교조직) 칼빈이 고문한 방식을 보면 '자신의 교리에 일치하지 않는다고 창자가 튀어나오도록 꼬쟁이로 쑤시고'(stefan Zweig. op. cit. p.193)라고 하였다. 칼빈과 그의 종교국이 얼마나 잔악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고문하고 학살하였는가 하는 것은 그들이 사람들을 어떻게 죽였는가에 대한 그 참혹한 방법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그들이 사람에게 얼마나 잔악하게 학살하는 방법을 보면 사람들의 배를 가르고 꼬쟁이로 쑤셔 죽이는 방법을 동원한 것을 보면 그 참상이 얼마나 가혹한 것이었는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칼빈은 살인마이다. 그는 섭리예정이라는 기묘한 교리를 통해서 자신이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교활한 교리에 따른 거듭남 없는 전이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그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교훈은 자기 것이었으며 그 본질을 벗겨보면 그것은 자기를 위한 위장된 성경이라는 것이 사실적으로 증명된다. 거듭 밝히는 것이지만 성경에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고 하였다. 칼빈이 참혹하게 사람들을 죽였는가? 그의 위장된 교리의 잔악상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 사상에 그 행위가 나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어떠한 경우라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도리어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죽을 위기에 있을지라도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칼빈은 죽인다. 왜냐하면 칼빈의 교리는 사람을 죽이는 교리이기 때문이다. 칼빈의 교리를 냉정히 들여다 보면 사람을 죽이는 교리라는 것이 통렬하게 그 정체가 드러나고 만다. (3)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칼빈과 그의 종교국(망나니인 칼빈니스트 종교국) 칼빈은 자신의 교리에 맞지 않는다고 '사람의 가죽을 벗기고 죽였다'(stefan Zweig. op. cit. p.193)고 역사는 고발하고 있다. 가죽을 벗긴다는 것은 유럽에서 관행적으로 자행되었던 고문방식의 한 유형인데 이는 머리의 가죽을 벗긴다거나 하는 유형의 것이다. 머리의 가죽이나 살갗의 가죽을 벗긴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새로운 신교를 창설하였다는 개신교에서 이러한 만행이 저질러졌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엄연하게 자행된 것이다. 칼빈과 그의 종교국은 사람의 가죽까지 벗기는 잔악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고문하였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다고 사람의 가죽을 벗기라고 하였는가? 가죽을 벗기는 존재는 악마이다. 악마의 교리를 가지고 있기에 악마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들의 고문이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 다음의 행위가 무엇이었는가를 보면 그 참상과 끔찍함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렇게 가죽이 벗겨진 사람의 다음 운명은 죽음이나 추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칼빈과 그의 종교국의 이와 같은 만행을 가증스럽게 할 수 있었던 근거는 그들의 망상적인 교리에 의해서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이와 같은 행위를 하도록 하나님의 계획된 예정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시고 자신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죽을 벗기도록 했다는 것인가? 칼빈주의 교리에 의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시켰다는 것이다. (4) 가죽 벗긴 사람 소금으로 문지르는 칼빈과 망나니인 칼빈니스트 종교국 칼빈이 자행한 참혹한 고문을 보면 '(사람의 가죽을 벗겨낸 후) 소금으로 문질렀다'(stefan Zweig. op. cit. p.193)라고 하였다. 피가 흐르는 그 곳에 소금으로 문지르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인가를 상상해 보라. 이 고통이 얼마나 끔찍하고 사악한 행위인가는 두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이러한 만행을 저질러 놓고 칼빈주의 자들이 외치기를 '칼빈주의 원리에서 세운 나라 치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높이 보지 않는 나라가 없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행위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높인 것인가? 그렇게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서 지금 스위스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개신교(칼빈 예수교)의 교세가 땅에 떨어졌는가? 칼빈과 그의 종교국은 이러한 만행이 모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였다'고 하는데 우리는 칼빈의 예정론이 외치는 하나님이 과연 어떤 하나님이고 누구의 하나님인지 그들이 외치는 신적 존재의 실체가 누구인가를 가려야만 한다. 정녕 성경이 말하는 생명의 하나님과는 별개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반드시 밝혀야만 한다. (5) 칼로 찢고 고문한 칼빈과 그의 망나니 칼빈니스트 종교국 칼빈은 자신의 교리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잡아 들여 '칼로 찢었다.'(stefan Zweig. op. cit. p.193)고 하였다. 칼로 찢었다는 것은 배를 찢고, 사람의 가죽을 찢고 송곳 같은 것으로 신체의 민감한 부분들을 불로 달구어진 도구로 잔악하게 지져대고 하는 것을 포함하는데 이러한 고문은 카톨릭의 종교재판에서 흔히 사용되던 것('Babylon Mystery Religon', Relph Edward Woodrow', 기독교문서선교회 편 김덕군 '로마카톨릭의 어제와 오늘' 1994.3.10. p.146)으로 이는 주로 카톨릭의 종교재판소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고문 방식이 칼빈과 그의 종교국에서도 그대로 시행된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칼빈은 칼로 다스린 칼의 사람이다. 그가 수많은 책을 썼다고 그것이 모두 성경에 관한 책이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하나같이 가면의 신학이며 위장된 거짓의 교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그의 손에 실질적으로 주어진 것은 칼이며 그는 자신을 추종하는 총신(寵臣)들에게 칼을 쥐어주며 칼로 저항하는 자들을 다스리라고 독려했다. 그런 칼빈이기에 잡아들인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김없이 칼로 사람을 찢어대는 만행으로 사람들을 고문했던 것이다. (6) 불에 그을려 죽인 칼빈과 그의 종교국 칼빈은 '불에 그을려(화형) 죽이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한 천천히 온갖 방법으로 고통을 주라고 명령하였다(stefan Zweig. op. cit. p.193)고 하였다. 불에 그을려 죽인다는 것은 곧 화형을 시킨다는 것을 말한다. 카톨릭이 자행한 종교재판에 의하면 1211년 라바우어(Lavaur)라는 지역에서는 하루에 400명의 사람들이 산채로 화형을 당하기도 하였는데, 칼빈의 제네바에서는 주로 샹펠 광장에서 화형이 처해지곤 하였다.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칼빈은 4년 동안에 35명의 사람들을 공식적으로 화형에 처해 죽인 것이다. 그런데 불을 사용하는 것은 반드시 공개적인 제네바 시의 샹펠 광장 같은 곳에서만 자행된 것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자행하는 고문장소에서 불로 달구어진 쇠를 이용하여 고문하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불에 태워 화형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고문실에서 불에 그을려 죽게 하는 방식은 중세 시대에 흔히 사용되는 가장 흔한 고문의 방식 가운데 하나였다. (7) 사람을 절단내는 고문을 가한 칼빈과 그의 종교국 칼빈과 그의 종교국은 자신들이 잡아들인 사람들을 '절단 내는 살상을 저질렀다'(stefan Zweig. op. cit. p.193)고 한다. '사람을 절단 냈다'는 것은 사람의 몸을 절단 즉 '잘랐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목을 자르는 것이든 몸을 자르는 것이든 모두 마찬가지였다. 칼이나 기타 수단들을 통해서 사람의 몸을 자르는 것으로 잔악하다는 것은 달리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고문 방식은 도르래에 의해 높은 천장에 올려져 거기서 매달려 죽는 방식이나 아니면 그 높은 곳에서 아래로 추락시켜 죽이는 방식도 함께 동원되었다. 이러한 고문 방식은 가혹하기로 유명했던 카톨릭의 고문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이와 같은 고문 방식이 종교의 자유를 외친 신교에서 자행되었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칼빈이 이를 그대로 재현한 이후로는 개신교도 당연히 이러한 살인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 결과 당시 서구에 점차 가열된 르네상스나 계몽주의 사상가들이나 사회로부터 개신교는 집중적인 공격을 당하게 되어 개신교는 양쪽으로부터 협공을 당해 1650년 이후로는 사람들은 신교에 큰 실망을 하고 빠져나감으로 급격하게 무너지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런 점에서 칼빈이 사람을 절단 내는 인간 사냥이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결과를 안긴 것이다. (8) 사람을 물에 빠뜨려 죽인 칼빈과 그의 종교국 물에 빠뜨려 죽이는 것은 주로 마녀 재판에 많이 사용한 것이나 반대파나 종교재판으로 상대방을 죽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것도 포함한다. 칼빈이 주도한 종교국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을 물에 빠뜨려 죽였다'(stefan Zweig. op. cit. p.193)고 하였다. 물에 빠뜨려 죽이는 방식은 칼빈과 그의 종교국 그리고 청교도들과 같은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흔히 사용된 재판의 대표적인 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관행은 급속히 퍼져나가 당시 칼빈주의 자들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물에 빠뜨려 심판하는 관행이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다. 특히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된 마녀재판의 경우 이 방법이 가장 흔하게 사용되었다. 칼빈 역시 자신의 교리에 일치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발가벗긴 채 밧줄로 묶고 사람을 물 속에 넣고 죽이는 방법을 사용하였음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칼빈의 이러한 심판의 방식은 이후에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유럽의 칼빈주의 자들의 인간사양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발전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무수히 죽이는 심판의 양식으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9) 해충들이 뜯어먹게 방치하는 칼빈과 그의 종교국 칼빈의 사상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화형을 당한 세르베토는 그가 감옥에 있으면서 해충들에 의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하소연하였다. 그는 탄식하기를 '벼룩이 나를 산채로 물어뜯어 죽이고 있어요 신발은 다 망가졌고 옷도 내복도 없습니다'(stefan Zweig. op. cit. p.151)--나의 배설물조차 치울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너무나 잔혹한 짓입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stefan Zweig. op. cit. p.151)고 하였다. 칼빈과 그의 종교국은 세르베토의 몸을 벼룩이 뜯어먹도록 방치하였다. 그리고 세르베토의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그의 배설물까지 치울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런 고문 방법은 카톨릭이 행하였던 고문방식과 같은 것으로 카톨릭은 마룻바닥이니 벽에 쇠사슬로 묶어 두고 피냄새로 달려온 쥐들이나 해충(vermin)의 먹이가 되도록 하여 극심한 고통을 주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고문 방식이 칼빈에게도 동일하게 취급되어 실행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0) 사람들은 칼빈과 그의 종교국에 의해 고문 받기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칼빈과 그의 종교국은 터무니없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 들였다. 그래서 제네바의 감옥은 항상 넘쳐 났으며, 칼빈의 종교국은 정말 하찮은 문제로 잡혀 들어온 사람들에게도 참혹하기 그지없는 고문을 가하였다. '단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에게도 너무나 잔인한 고문이 행해졌기 때문에 고발된 사람들은 고문실로 끌려가기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stefan Zweig. op. cit. p.80)고 하였다. 칼빈과 그의 종교국이 얼마나 잔인한 집단이었으며 무자비한 고문을 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칼빈과 그의 종교국의 가하는 고무의 유형들은 카톨릭의 종교재판소가 자행한 고문 방법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사람의 가죽을 벗기고 찢으며 물에 넣는 등의 방법에서 볼 수 있듯이 가혹하기로는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11) 자살하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박수 치게 하는 정책 제네바 감옥의 한가지 특징은 하찮은 죄목으로 잡혀 들어온 사람들에게도 잔혹한 형벌을 가하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 같은 고문을 당해 본 사람은 다시 고문을 당하기 전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시의회가 취한 아주 특이한 자살방지 제도가 다름 아닌 밤낮으로 감옥의 죄수들로 하여금 박수 치게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자 그와 같은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 마침내 시의회는 죄수들이 밤낮으로 손뼉을 치라는 규정을 만들어야만 했다'(stefan Zweig. op. cit. p.80)는 것이 그것이다.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손뼉을 치라는 칼빈의 자살방지 정책이야말로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정책인가? 자살을 선택해야 하는 무고한 사람들의 극단적인 선택은 칼빈의 종교국이 가하는 고문이 얼마나 심각하게 자행되었는가를 여실히 말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개혁이 아니다. 종교개혁이라는 간판을 내 걸고 자행한 살인 행위들이다. 이런 종교가 인간의 존엄성을 운운하거나 인간의 가치 따위를 논한다는 것은 가증스러운 위선적인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칼로 사람들을 짓밟고 죽이고 이룬 개혁이라면 그런 개혁은 형식만 다를 뿐이지 역사적으로 칼빈만이 아니라 얼마든지 있다. 가령 한국의 어느 군사독재자도 수많은 사람들을 삼청교육대로 보내 죽이고 한 것을 사회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하였다. 그런데 칼빈과 한국의 모 군부독재자와 비교해 보면 인구비율이나, 다스린 범위나, 고문의 방식인,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나 어느 면을 비교해 보아도 한국의 어느 군사독재자와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사악하고 잔악하였다. 심상용 목사(월드크리스챤성경학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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