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sr]역사,종교

티베트 불교 그 신비와 오해를 넘어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19. 13:29

불교평론 2000년 겨울 제 5호

 

[ 특집 1 ] 티베트 불교 그 신비와 오해를 넘어
지혜와 자비의 이중주, 티베트 불교 / 주민황
서양에 부는 티베트 불교의 열풍 / 이동호
달라이 라마, 그는 누구인가 / 김충현
티베트와 중국. 그 선연과 악연의 역사 / 김성수
한국불교속의 티베트 불교 / 허일범

 

 
 
주민황
 

1. 티베트 불교에 대한 오해:티베트 불교는 라마교?

- 목 차 -
  1. 티베트 불교에 대한 오해:티베트 불교는 라마교?
  2. 티베트 불교의 전래
  3. 티베트 불교의 교리적 특징
  4. 티베트 불교의 수행법과 그 특징
  5. 맺는 말

티베트 불교는 어떤 불교인가? 요즘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문제이다. 티베트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에서 변질된 불교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르친 불교는 시대에 따라서 부파불교, 대승불교, 밀교 등의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 그 세 가지 중의 어느 하나라도 불교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승불교는 부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이 아니므로 불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승불교의 지지자들은 대승불교의 뿌리를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찾는다. 밀교 역시 그렇다. 인도를 벗어난 불교는 여러 나라로 들어가서 그 나라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발달했다.

그래서 중국에 들어가서 그 문화 속에서 발전한 불교를 중국불교라고 하고, 티베트에 들어가서 발전한 불교를 티베트 불교, 한국에 들어와서 발전한 불교를 한국불교라고 부른다. 그러나 불교문화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해서 불교의 근본교리나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가 다른 것은 아니다. 불교문화는 단지 부가적인 것에 불과하다. 티베트 불교라고 불리는 불교는 티베트 사회에 적응해서 발전한 불교를 가리키지만, 그 뿌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두고 있으므로, 그것을 두고 정통 불교와는 다른 변형된 불교라고 말할 수는 없다.

티베트 불교를 라마교라고 부르면서 마치 티베트 불교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존하지 않고, 라마라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불교로서 정통 불교보다 격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티베트 불교는 결코 라마교가 아니다. 라마교라는 말은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티베트에는 라마교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라마(blama)’는 티베트 어로는 ‘최상의’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산스크리트의 ‘구루(guru)’를 뜻하는 말로 정착되었다. 티베트 인들은 불교에 대한 깊은 지식과 수행을 갖추고, 제자들에게 수행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라마’라는 명칭을 붙여준다. 티베트 인들은 사귀의를 한다. 라마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하는 것이다.

여기서 라마에게 귀의하는 것은 라마라는 개인을 삼보보다 높은 위치에 두기 때문이 아니다. 라마의 말씀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고, 라마의 생각은 부처님의 마음을 표현하며, 라마의 행동은 승가가 행해야 할 행동을 대표한다. 따라서 라마에게 귀의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마음과 말씀과 행동에 귀의한다는 뜻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우리 눈앞에서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눈앞에서 육체를 가지고 직접 부처님의 가르침과 마음을 전해주는 스승인 라마를 통해서 부처님을 보며, 중생들 속에 잠재된 불성을 일깨우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티베트 불교를 마치 부처님 대신에 라마를 신봉하는 변질된 불교처럼 보이게 하려고 라마교라 부르는 것은 티베트 불교를 비하시키려는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계속>

주민황

동국대 대학원 인도철학과 및 인도 델리대학 졸업. 불교학 박사. 역서로 《인도불교사상사》 《해방자 붓다, 반항자 붓다》 《티베트에서 온 행복의 열쇠》 《아름답게 사는 지혜》 《삶의 네 가지 진리》 《쉽게 깊이 읽는 불교입문》 《나의 아들, 달라이 라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