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sr]인류진화

성경에 기술된 인간의 초기 역사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19. 13:41

창조와 대홍수 사이의 기간

 

이때의 사람들과 문명을 생각해 보기 전에 우선 아담-이브에서 대홍수까지의 기간과 아브라함 시대까지는 얼마나 긴지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우리의 많은 영어 성경의 난외주(欄外註)에는 특정 사건의 발생 시기를 말해주는 날짜들이 있다. 이 날자들은 아일랜드 주교였던 제임스 어셔(Ussher, 또는 Usher)에 의해서 계산되었고 1701년판 킹 제임스 번역본 성경에 수록되었다.

 

어셔는 BC 4,004년을 세계의 창조 년도로 보았고, 그 이후의 어떤 이들은 그 사건이 발생한 날짜의 시각까지도 기술한 바 있다. 진화론자들은 그와 같이 확정된 숫자를 비웃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우주의 기원이 150억 년 전이고, 지구의 기원은 46억 년 전이며, 우주가 3분 동안에 빅뱅으로 만들어졌다고 선포하는 진화론자들의 생각에 비하면 그렇게 웃기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계속 논의될 것이다.

 

어셔는 구약성경에 있는 각기 다른 연대기(시간 간격에 관한 연구)의 날자들을 매우 복잡하게 더하고 빼고 함으로써 이 숫자들을 계산해 내었다. 어셔가 계산한 BC 4,004년은 마소라 학파가 펴낸 히브리어 판 구약성경에 근거한 것이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인 70인 역과 사마리아 오경, 그리고 역사가 요세푸스는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족장들이 첫 아들들을 낳았을 때의 나이를 다르게 잡고 있다.

 

그래서 구약기간의 길이가 늘어났다. 70인 역은 그 기간을 1,466년으로, 요세푸스는 1201년으로, 사마리아 오경은 301년으로 잡는다. 이와 같이 다른 숫자들도 창조의 일자를 1,500년 이상으로 변경치 못한다. 계산에 넣어야할 또 다른 요소는 구약의 연대기에 있는 ‘begat’ (역자 주: ‘주로 아버지 기준으로 자식을 보다’라는 뜻) 이라는 단어의 용법이다.

 

창세기 5장과 11장에 있는 구약 족장들의 연대에서 어셔는 begat 이라는 단어를 문자적인 의미로 해석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것같이 보이나, 한편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begat이 고손까지의 단순한 조상을 나타내는 광의로 사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표현은 마1:8의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라는 구절에도 있다. 그러나 구약 역대상 3:11-12에서 우리는 요람이 웃시야의 고조부임을 알 수 있는데, 마1:8에는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등의 이름이 빠져 있다. 요람은 아하시야의 아버지요, 아하시야는 요하스의 아버지요, 요아스는 아마샤의 아버지였다. 그래서 Uzziah와 Azariah라고도 불렸던 웃시야의 진짜 아버지는 아마샤였다.

 

유사한 경우가 창46:18에도 있는데, 거기에는 실바가 야곱에게서 자손 16명을 낳았다고 되어 있는 반면, 그녀의 손자들과 증손들이 16명 가운데 계상되어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 신구약에 있는 계보의 목적은 주로 메시야 약속의 역사를 보여주고 아담과 이브로부터 여자에게서 날 약속된 씨인 세상의 구세주인 예수까지의 후손들의 혈통을 보여주자는 데에 있었다.

 

이런 모든 편차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창조 시기는 어셔가 제안한 BC 4,004년을 넘어 2,000년에서 1, 2백년을 넘기는 어렵다. 어떤 이는 창조의 년대를 BC 8,000년까지 잡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고도한 문명이 이집트나 수메르에서 BC 3,500-4,000경에 이미 존재했었다는 어떤 고고학자들과 역사가들의 주장을 더욱 가능하고 그럴듯하게 해준다. 안트(Arndt) 교수는 1932년판 그의 저서 <성경의 난해 구절들(Bible Difficulties)> 51쪽에서 두 가지 시간 설을 강하게 주장했다.

 

즉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그의 지혜로 성경에 대한 완전하고 절대적으로 확실한 연대기를 가능케 할 만큼의 정보를 우리에게 허락키 않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들의 연대기 계산치의 결과를 발표함에 있어 순수하고 겸허하게 말한다면......”

 

그래서 나는 구약 연대기의 기록들로 독자에게 부담을 주지는 않겠다.


초기 인간들의 매우 긴 수명

 

그러나 구약 족장들과 관련하여 몇 가지 언급해야 할 것 같다. 한 가지는 그들이 오늘날 인간들의 수명의 10 내지 12배에 달하는 900세 이상을 향수하는 초 장수를 누렸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이런 결과로 아담은 7, 8세대 후손에게 천지 창조와 인간의 타락에 관한 얘기를 직접 구전할 만큼 여러 세대가 동시대를 함께 살았다. 그는 9, 10세대 후손인 므두셀라나 라멕과 대화할 수 있었고, 그들은 노아의 아들인 셈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셈은 아브라함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어셔의 연대기에 따르면 2,100년 동안, 또는 세상 존재기간의 약 2/3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에 창조 기사는 이런 식으로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 단지 2세대를 통해 전해졌다. 

 

더구나 우리는 이렇게 고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 씌어진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당시에 존재했으리라고 여겨지는 기록과 역사들은 노아 때에 있었던 극도로 격렬하고 거칠고 진흙투성이의 파괴적인 홍수로 멸실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명심해야할 또 다른 사항은 이집트와 바벨론인들의 전통들이다. 그들은 각각 구약성경의 열 족장들과 유사한 10명의 왕들을 홍수 전 기간에 가지고 있었다. 이 모든 사실들은 비록 이집트와 바벨론의 기록들에 있는 인간의 수명들이 지극히 높게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홍수 이전 시대에 가족의 수장이나 통치자들로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성경의 기사에 신빙성을 부여한다.

 

1977년 9월판 리더스 다이제스트 130쪽에 1922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굴을 시작했던 영국의 고고학자인 레오나드 우울리 경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다. “우울리가 발굴을 시작하기 이전에도 여러 학자들은 왕조의 핵심사인 소위 수메르 왕들의 목록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홍수 이전에 통치했던 왕들로 시작한다. 그리고 무려 총 241,000년에 8왕조가 더해진다. 연대기는 분명히 엉터리다”라고 우울리는 평했다.“

 

대홍수 이후의 수메르인들은 대홍수 이전 시대에 그들보다 앞서 존재했던 문명에 대한 어느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구약시대 사람들의 장수에 관한 또 다른 문제는 그들이 어째서 그렇게도 장수할 수 있었는 지와 홍수 이후 사람들의 수명은 왜 시대가 지날수록 점점 더 단축되어 갔느냐는 것이다. 홍수 직후에는 그전 사람들에 비해 약 절반인 450년을 향수했다. 아브라함 시대까지는 수명이 175 세로 낮아졌다.

 

이에 대한 명백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때까지 지구를 둘러싸고 있던 보호적 물 층(궁창 위의 물)과 관련이 있다. 창1:6-7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과학자들은 이 물 층이 태양으로부터 오는 장파장에 대하여 보호막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층은 또한 과학자들이 남극 상공의 오존층에 구멍이 생겨서 지구는 그것을 잃어가고 있다고 우려하는 보호적 오존층을 결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홍수 전에 물 층과 오존층이 지구에 내려오는 유해한 방사선을 막아주었다면 생물들은 더 건강하고 더 장수하며 홍수전의 생물들의 몸집이 훨씬 컸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처음에 창조되었던 상태의 전 지구에서는 인간들이 질병에 걸리거나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엄청난 방사선의 양과 하나님이 내린 저주와 함께 다른 요소들이 더해져서 지구는 인간을 점진적으로 약화시키고 수명을 감소케 하였을 것이다.


성경에는 선사 시대가 없다.

 

창세기에 이름들이 올라있고 신약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다시 거론되는 사람들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언급해야겠다. 성경에 나와 있는 역사는 추정이나 이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진화론자들이 선사 시대에 관하여 즐겨 언급하는 기간 동안에 있어서의 사람들의 실제 이름과 그들이 언제 살았으며 얼마나 오래 살았으며 무엇을 하였는가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실제 역사는 놀라우리만큼 많다. 그리고 그것은 우둔하고 건조하고 재미도 없고 지루하기까지 한 어떤 것들처럼 진부한 것이다. 눅3:23에서 시작되는 약 60세대의 족보 이야기에서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었고, 요셉은 헬리의, 헬리는 맛닷의 아들이었더라.” 등등. 그리고 그 장의 마지막 즈음(36절)에 이르러 “아(르)박삿은 셈의 아들이었더라” 라고 계속 쓰고 있다.

 

그러고 나서 창10:6-11로 거슬러 올라가 셈의 친척들이 나온다. 그의 친척들이란 동생인 함의 후손이요, 함의 아들들 중 하나의 이름은 구스요, 그의 아들은 니므롯이다. 그러므로 니므롯은 셈의 조카의 아들이다. 이 니므롯에 관하여 창10:8-11에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라고 씌어있다. 바벨은 또한 바벨론이라고도 한다. 바벨론 또는 수메르는 세계의 역사책들이 시작되고 있는 곳이다. 이것이 그들의 실제 역사의 시작이다.

 

그러나 성경의 진술은 니므롯의 5촌 할아버지이고 노아의 아들인 셈으로 이어진다. 눅3:36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면서 혹이 선사 시대라고 부르는 곳으로 연결한다. 노아의 아들이었고, 라멕의 아들이었고, 므두셀라의 아들이었고, 에녹의 아들이었고, 야렛의 아들이었고, 마할랄렐의 아들이었고, 가이난의 아들이었고, 에노스의 아들이었고, 셋의 아들이었고, 아담의 아들이었고, 하나님(창조주)의 아들이었던 셈.

 

그리고 노아의 조상들은 거의 900세 이상을 살았다. 이것이 진화론자들이 무시하고 경멸하며, 그들이 관장하는 역사책에 없는 역사이다. 그러나 창세기가 우리에게 주는 것보다도 더 나은 소위 선사적인 역사 혹은 사실의 역사를 우리나 우리 자녀들이 가질 수 있을까? 만약에 진화론자들이 창세기 첫 부분의 11장을, 진정한 과학자들이 진리 탐구를 위하여 실험실에서 하는 것과 같은 정신으로 고려해 보기만 한다면 그들은 창조에 대한 성경의 설명이 만물의 기원을 설명하는 양식 있고 합리적인 유일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교육 현장으로부터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권리들을 위한 싸움에서 글로브를 벗을 때가 왔다. 성경을 온 나라의 지역학교가 채택케 함으로써가 아니라, 진화론자들의 종교적, 반종교적 신앙과 신념들을 학교에서 몰아냄으로써 말이다.

 

나는 교회와 국가의 단순한 분리가 아니라 “의회는 종교의 설립에 관한 법률을 만들지 말 것”을 규정한 (진화론자들의 종교 및 반 종교를 포함해서) 종교와 국가의 분리라고 하는 미국 헌법 수정조항 제1조의 조항들에서 분리 문제를 다룰 때 이 사항을 언급하려고 한다. 이 주제에 대해서 추가적인 취급이 있을 것이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