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文化圈에 대하여
1. 고대 동아시아 있어 한자의 위상과 역할
(1) 漢字는 동양의 세계문자다
한자필담이란 중국사람들만의 의사소통이 아니다. 한국·일본·베트남사람들도 서로 말로는 통하지 않아도 한자필담으로 어느정도는 통할 수 있다. 한국인들에게 중국방문의 길이 트인 것도 어언 십년이 되나보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 다녀왔고 이들중 대다수가 중국어를 할 줄 모른다. 대개는 안내나 통역에 의존했을 테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인들과 짧게라도 필담을 한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여행담에서 걸핏하면 나오는 얘기가 바로 중국거리의 모든 간판이 간체자로 되어있어 모르는 글자들이 많아 불편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간화되기 이전의 한자 즉 繁體字는 알아볼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이 서울 거리의 간판이 모두 한글로 되어있어(한자간판을 일시에 모두 한글간판으로 바꾸게 한 것도 70년대 였나보다) 불편하다고 한다. 이전에 한자로 되어있었을 때는 알아 볼 수 있어서 편리했다는 얘기다. 우리는 옛부터 한자를 써왔다. 한자는 우리글자화되어서 도무지 외국문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우리는 동양문명을 중국문명과 동일시한다. 한국·중국·일본이라는 동양삼국의 문명이 모두 중국문명권 속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동양문명권은 한자를 매개로 하여 형성된 것이므로 한자문명권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한자는 동양의 세계문자다.
일찍이 한국·일본·베트남등 중국의 주변국가에 한자가 전래되어
-언어체계가 중국어와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20세기에 들어서서까지 공식서사(書寫)체계로 계속 한자와 한문을 사용해 왔으며 지금까지도 부분적으로 한자를 사용하고 있다.
(2) 韓國에 漢字가 傳來된 時期
지금 한국어에서 한자어휘가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상어휘에서고 2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한자가 언제 한반도에 전래되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교류 역사를 통하여 한자의 전래시기를 추정해볼 수 있다. 한우띠(漢武帝)가 B·C. 108년에 한반도 지역에 漢四郡을 설치한 이후에 한자가 대거 유입되었을 것이며, 그 후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4세기에서 6세기경에 걸쳐 晉·六朝등의 조대로 이어지는 중국역대왕조와 육로와 해로를 통하여 경쟁적으로 교류를 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교류를 통하여 한자는 끊임없이 한반도로 유입되었을 것이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문(414)에 새겨진 1,800여자의 한자, 백제의 박사 고흥이 처음으로 문자(한자)를 사용하여 『서기』(360?)를 지었다는 『사기』의 기록, 신라의 지증마립간(500∼514)이 처음으로 중국식 주군현제를 받아들이고, 니사금, 마립간을 중국식 명칭인 왕으로 칭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8세기에 唐律을 받아들이고 모든 지명을 중국식한자로 고치는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중국식법제의 도입 등은 모두 한자가 전래되어 통치계층에서 사용된 시간의 축적이 상당히 되어있는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므로, 한반도에서는 늦어도 6세기에는 통치계층에서 한자를 널리 사용했을 뿐만이 아니라 한문을 文語(written language)로 삼았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3) 日本에 漢字가 전래된 시기
한자가 일본에는 5·6세기경에 한반도의 백제를 거쳐서 전래되기도 하고 직접 전래되기도 하였는데, 중국남방의 육조문화와 접촉하였으므로 전래된 한자음도 육조음 즉 南朝音이었다. 초기의 遣隋使나 留學僧이 중국에 가서 배워온 중국어도 이와 별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奈良朝에 이르기까지 일본한자음은 육조음 일색이었으며, 이 한자음을 吳音이라고 부른다. 또한 7세기 말에서 8세기경에 걸쳐 견당사·유학승에 의해 전해진 것은 당조의 長安音이다. 당시 중국문화의 중심지가 이미 남방의 육조에서 북방의 당조로 옮겨갔기 때문에 이들이 장안음을 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바로 이 장안음으로 발음하는 일본한자음을 漢音이라고 부른다. 그위에 또 鎌倉時代(1185∼1573)에 중국의 송·원·명조에 내왕하던 선종의 승려들에 의해 전해진 한자음을 당송음이라고 부른다. 일본의 저명한 중국어음운학자 토오도오 아키야스는 이 당송음의 모체를 14세기경의 항주음으로 보았다.
1) 일본한자음의 특성
일본한자음(Sino-Japanese)은 조선한자음(Sino-Korean)이나 월남한자음(Sino-Vitname)과는 달리 吳音·閒吟·唐宋音이라는 세가지 체계가 각각 서로 다른 시기와 지역의 중국어음을 반영하면서 명료하게 구분되어 있다. 중국으로부터 한자를 받아들인 양상이 이와같이 삼국에서 유독 일본만이 다른 이유는 역시 지정학적인 차이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이나 베트남은 중국대륙과 연접해 있기 때문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줄곧 중국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서 중구그이 정치적 간섭을 계속 받아왔으면, 한자와도 끊임없이 접촉해왔기 때문에, 어느시기에 대대적으로 전래된 그 시대의 한자음의 체계를 자기화 시켜 보존해 내려갈 수 있는 느긋한 환경이 마련되지 못하였다. 그야말로 중국왕조의 교체를 피부로 실감하며 급급하게 보조 맞추어 따라가야 하는 여유 없는 역사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다르다. 바다건너 있기 때문에 일본역사상 단 한번도 중국의 침략을 받아본 적이 없다. 중국과의 교류는 정치적 위협 속에서의 교류가 아니고 타의에 의한 교류도 아니고 또 끊임없는 교류도 아니다. 그러므로 백제를 통하여서나 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취사선택하고 자기화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한자음은 이와 같은 환경 속에서 공간과 시간의 층이 다른 세가지 한자음 체계가 뒤죽박죽 섞이거나 잔손됨이 없이 완전하게 보존되어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2) 한자의 수용양태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
우리는 여기서 토인비(Arnold Toynbee)의 문화사적 표현을 빌려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각각 교차역 문화(cross-road culture)와 종착역문화(dead-end culture)로 나누어, 이 두 나라의 중국문화 마코토교수의 논리를 따라가보자. 중국문명권에서 한국은 漢文化 전해의 교차역 즉 중간역으로 漢文化가 흘러들어와 흘러나가는 철저한 통로역할을 하여 중국의 각 시대에 대두된 다양한 사상을 일본으로 속속 전해보내고 축적하지 않아 다양한 漢文化를 수용하지 못하였다. 반면에 일본은 漢文化가 흘러들어 오기만 하고 흘러나가지 않는 종착역으로 사건의 흐름에 따라 흘러 들어오는 모든 다양한 사상이 후자가 전자를 부정하지 않고 전자에 계속 첨가되고 축적되는 형태로 수용되었으며, 그 다양성 속에서 공존과 화해의 논리가 발달했다고 그는 명쾌하게 지적하였다. 송명유학의 전래 및 수용을 예로 들어보면, 한국은 관학인 주자학 일변도인데 반하여 일본은 주자학과 더불어 양명학도 받아들여 "경직된 성리학"에서 탈피하였다. 자, 이제 중국문자 즉 한자의 수용이라는 우리의 논제에 쿠로미즈교수의 논리를 그대로 대입시켜 보자. 일본한자음체계는 서로 다른 시기에 다른 루트를 통해 들어온 吳音·漢音·唐宋音이 서로 배제하지 않고 공존하고 있으나. 한국은 끊임없이 들어오는 각 시대의 한어음 체계를 우리 것을 정착시키지 못하고, 계속 바뀌는 중국의 조대와 더불어 계속 흘려보냈기 때문에 고대의 보다 이른 시기의 한자음 체계들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였다. 15세기 중엽에 이르러 훈민정음을 창제하였고 뒤이어 한자음체계를 표준화시키는 작업으로 편찬된 것이 바로 『東國正韻』이다. 이 『東國正韻』이 소위 표준 朝鮮漢字音을 수록한 韻書이다. 그렇다면 이 조선한자음은 중국의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의 음의 체계를 반영하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서는 아직까지 정설이 없으며 이견이 분분하다. 스웨덴의 중국언어학자 칼그렌(1889-1978)은 6·7세기 唐代 長安音이 조선한자음의 모체라고 주장하였으며, 일본의 아리사카 히데요는 10세기 宋代 開封音이 모체라고 주장하였다. 이밖에도 몇 가지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중국음운학자들은 조선한자음의 來源에 대하여 그 시기와 지역을 거론하여 명백하게 규정하기보다는 묵묵하게 "六朝의 切韻音" 혹은 "隋唐代의 中古音"체계를 재구하는 데 있어서 참고자료로 이 조선한자음 자료를 유효적절하게 갖다 쓸 뿐이다. 물론 이와 같은 자료 이용방법의 근저에는 칼그렌의 추정 시기대로 조선한자음은 6·7세기의 중국표준 한어음의 체계가 들어와서 형성된 것이라는 암묵적 시인이 깔려있다. 『切韻』이라는 601년에 나온 운서가 반영하는 음의 체계를 시기로 본다. 그런데 『切韻』의 체계가 어느 지역의 음을 반영하는지, 그 성격에 대하여 또한 학자마다 주장하는 바가 제 각각이다. 칼그렌은 『切韻』이 7세기 장안방언을 대표한다고 주장하였으면, 혹자는 洛陽方言이다, 또는 금릉방언이다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혹자는 『切韻』이라는 운서는 실제 방언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기존 韻書들의 집대성 작품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육조의 독서 음의 체계다, 또는 吳方言이다, 南北音의 혼합체이다, 등등으로 각인각색이니, 조선한자음의 내원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조선한자음의 내원에 대하여 이견의 폭이 넓은 것은 조선한자음에는 육조이전의 고음을 반영하는 음도 있고 수당대의 음을 반영하는 음도 있고, 또 개중에는 북송대의 음을 반영하는 음도 있는 등, 서로 다른 시대의 음들의 혼재현상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설명한대로 고대로부터 한어가 끊임없이 한반도로 유입되어 기존체계가 끊임없이 도태되며 새 체계로 대체 되어가는 과정에서 무의식중에 구체계가 완전히 도태되지 않고 소수가 새체계 속에 앙금처럼 그대로 남는 부분이 있다보니, 이렇게 부분적으로 반영하는 시대가 다른 현상이 나타나게 되고, 결국은 현대음운학자들의 이설을 야기 시킨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된다. 조선한자음 중에서 부분적으로 아무리 반영하는 시대가 이르다고 해야 진한을 올라가지 못한다. 중국 상고음 즉 선진시대의 중국어음을 반영하는 예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의외로 순수한 한국어로 여겨져 온 낱말 중에서 중국 상고음을 반영하는 예들이 다소 발견된다. 중국어음운학지식에 근거하여 분석해본 결과 이 몇몇 낱말들의 어원이 선진시대의 중국어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나는 이 몇몇 예들을 가지고 한국어의 중국어 기원설을 주장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단지 여기서 이 예들을 선진시대부터 중국과 한국간에 밀접한 문화교로와 언어교섭이 있었다는 확증으로 제시하고자 할뿐이다.
(4) 베트남에 한자가 전래된 시기
베트남은 한자로 越南이라고 표기한다. "베트남"은 바로 越南을 월남한자음으로 발음한 것이다. 베트남어는 수식어가 피수식어의 뒤에 오기 때문에 월남은 바로 남월의 의미가 된다. 이 국명에서도 나타나듯이 베트남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越, 그리고 진한대의 百越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옛부터 중국역사서에 南越, ?越, 駱越, 交趾, 交州, 九眞, 安南이라는 지명, 국명 내지는 종족명으로 불리워져 왔다. 베트남은 B. C. 112년 漢文帝에게 점령된 이후부터 939년에 吳權이 독립왕조를 수립할 때까지 천년간이라는 긴 세월을 중국의 압제하에서 신음하였다. 중국은 베트남을 천년동안 중국의 한 郡 혹은 州로 복속시키고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통치해왔다. 이같이 한국보다 더욱 심하게 직접적으로 중국의 간섭과 지배를 받아온 베트남은 고대부터 한자문명권 속에서 자연히 한자와 한문을 자기들의 문어로 삼고 지내왔다. 그러다가 939년에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한문화를 점차 객관화 시켜가는 과정을 거쳐 11세기초에 세운 李朝에 이르러서는 중국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동시에 각종 중국법제를 도입하고 과거제도를 실시하는 등 본격적이고 의식적으로 한문화를 도입하고 정착시키게 된다. 한자의 체계적인 정착도 이러한 여가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한자음, 일본한자음과 더불어 한자문명권의 토로이카를 구성하는 월남한자음 체계는 프랑스의 한학자 마스페로가 10세기 당대 장안방언에 기초한 北方讀書音에 기반을 두고 성립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南亞語族으로 분류되는 베트남어에서 낱말 60%가 漢語借用語이며, 이 차용어는 베트남한자음 즉 월남한자음으로 발음된다.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던 1885년에 베트남국어의 로마표기가 정서법으로 채택되어 國語라고 불리우며 계속 사용되어 왔으며, 이는 바로 현재의 유일한 문자체계이다. 이 정서법의 기초가 된 것은 17세기에 프랑스 선교사 알렉산더 드 로드가 로마에서 펴낸『베트남어-포르투갈어-라틴어 사전』(1651)이다. 그전에도 문자체계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13세기에 한자의 형태를 겹쳐서 복잡하게 만든 字姜이라는 베트남 민족문자를 한자와 섞어쓰는 문자표현수단이 있었다. 그러나 이 字姜은 한자와 같은 표의문자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남아어족에 속하는 베트남어의 문자체계로는 부적합하기 때문에 보편화되지 못했으며, 로마자정서법으로 대체된 지금 이 字姜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5) 한자문명권에서 한자의 영향력과 그 변용
한자의 영향력은 한자를 매개로 한 중국문명의 전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 일본, 베트남처럼 문자 없는 주변국의 언어에 漢字라는 문자 자체가 그대로 대여되기도 하고, 字姜이나 假名처럼 문자설계의 청사진을 제공하기도 했다. 베트남의 字姜은 한자형태를 겹쳐서 복잡하게 만든 것이고, 일본의 카나는 그 반대로 한자의 변 또는 초서체를 본떠서 간단히 만든 문자체계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死字가 된지 오랜 여진문자나 거란문자도 한자체의 변용이다.
11세기초에 중국의 서북부 陜西, 甘肅지역 그러니까 바로 실크로드 어구에 자리잡고 있던 불교왕국 西夏도 한자체를 모방하여 서하문자를 만들었다. 서하왕국은 거란 여진과는 달리 1227년 멸망할 때까지 중국의 史籍이나 佛經을 서하문자로 다량 번역하였다.
(6) 한자의 과거와 미래
한자는 고금과 남북에 구애됨이 없이 시공을 초월하여 동양의 공통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왔다. 이렇듯 한자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까닭이 시각에 호소하는 표의문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앞서 누누이 강조했던 것처럼 한자는 배우기 어렵다. 그러나 일단 배워 익히고 나면 여간해서는 잊어버리지 않게되며 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시각적 파악의 단위로 인식이 되는 시각적 문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자문명권 태생의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의 비디오아트 작품의 소재로 한자가 다른 무엇보다도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도 역시 한자가 시각적 문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자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수천년간 동아시아의 언어문화를 이끌어왔다. 그동안 거란, 여진, 서하문자, 字姜처럼 한자를 모방해서 만든 주변국가들의 문자가 사자가 되고, 북한이나 베트남처럼 차용어를 한자에서 자국의 문자체계로 바꾸어 표기하고 한자를 폐지하는 등, 전반적으로 볼 때 한자의 사용범위가 점차 축소되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앞으로 한국에서 언제까지 한자가 명맥을 유지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상황으로 볼 때 분명한 것은 한자는 중국에서 굳건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나갈 것이며, 일본에서도 한자폐지의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으니, 한자는 지금까지 존속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존속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보면 앞서 말한 교차역문화의 특성으로 북한은 한자를 전면 폐지하고, 남한은 폐지와 사용의 갈림길에 서있고, 일본은 축적과 공존과 화해라는 종착역의 문화특성 때문에 한자와 카나가 아무런 갈등없이 화해 속에서 공존하고 있는게 아닐까?
1) 고대 동아시아 각국의 공동문어문학의 동질성
한문은 중국에서 전래된 문어이다. 중국에서 이미 구어와는 다르게 다듬어진 형태로 이용되고 보급되었다. 유교 및 불교로 뒷받침된 고급의 문화를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해서 경전어인 한문을 힘써 익혀야 했으며, 까다롭게 격식화된 표현을 구사해 작품창작을 하는 능력을 소수의 지배층 지식인이 독점하고 우월감의 근거로 삼을 필요가 있었다. 그전에는 여러 종족 또는 소집단에 따라 나누어져 있는 문학으로 각기 자기네가 우월하고 주위의 다른 집단이나 피지배층은 열등하고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 생각은 고대의 자기중심주의여서 중세의 보편주의와는 다르다. 중세에는 한문으로 표현되는 유교 불교가 함께 통용되는 '天下同文'의 영역에서 사람은 누구나 사람이어서 서로 대등하다는 논리가 널리 인정되었고, 그 근거 위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차별상을 합리화했다. 그래서 중세의 보편주의가 나라마다의 특수성, 사회생활에서의 차별 등과 이원론적인 관계를 맺었다. 한문이라는 '천하동문'의 공동문어가 각국의 구어와 공존한 것도 동질적인 현상이었다.
이와 같은 원리에 따라 고대문학과 중세문학을 구분하는 방법은 한문의 본고장인 중국에도 적용된다. 한문은 중국의 고대문학을 기록하는 데 쓰이다가, 기원전 202년에서 기원후 220년까지 한 제국에서 여러 민족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문어로 바뀌고, 589년에서 907년까지의 수·당 제국에서 보편적 가치관과 세련된 표현의 격식을 갖추었다. 587년에 시작된 과거제도가 1911년에 폐지되기까지 한문학의 지배가 제도화되어 있었다. 漢代의 文과 唐代의 詩 두 단계에 걸친 공동문어 규범화가 요약되어 있다. 1919년 이후에 구어인 '백화'만으로 문학창작을 하자 중세문학이 근대문학으로 바뀌었다.
한문이 한국·일본·베트남으로 전해진 것은 무력침공의 결과가 아니며, 중국이 문화적으로 우월하고 다른 나라는 열등한 증거도 아니다. 일본은 중국의 침공을 받지 않았으면서 한국을 통해 한문을 익혀 751년에는 64인의 작품이 실린 한시집을 마련했다. 과거제도는 실시하지 않았으나 불교 또는 유교의 한문을 익히 지식인들이 시대마다 있어 고급문화를 관장했으며, 베트남은 1075년에서 191년까지 과거제도를 실시했고, 중국의 침공을 물리치는 승리를 거듭 이룩하고서도 한문학을 저버리지 않았다. 1427년에 명제국을 격퇴하고 베트남은 중국과 대등한 독자적인 문화를 지닌 나라라고 선언한 글도 한문으로 지었다. 그렇게 해서 한문문화의 창조력을 자기 것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중략)--
공동문어문학은 자국어 문학과 공존했다. 한국에서는 한문으로 한국의 구비전승, 특히 신화·전설·민요를 기록화 했으며, 한문과 한국어의 특징을 함께 지닌 혼합문체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문을 이용해 한국어를 표기하는 借字表記를 개발하고, 한국어 문장을 온통 적는 차자표기를 향찰이라고 했다. 향찰로 짓는 한국어 노래를 향가라고 했으며, 연대가 확인된 첫 작품은 594년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한국어의 음운과 음절 구성방법은 한자로 표기하기에 너무 복잡해 향찰이 널리 쓰일 수 없었으며 1446년에 한국어 음운을 정확하게 적은 독창적인 훈민정음을 만들어냈다. 훈민정음에 의한 국문문학은 한문학과 공존하면서 처음에는 사대부의 시조, 가사로 그 영역을 삼다가, 18세기 이후에는 시민 취향의 국문소설을 대량 산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이 중국문학에도 해당된다. 중국의 한자는 공동문어의 규범화된 문학에 쓰이는 한편 중국어 구어를 적는 데 쓰이기도 했고, 뒤의 것은 차자표기라 일컬어 마땅하다. 문인의 詩가 공동문어문학이라면 악부의 歌는 차자표기문학이어서 그 둘이 계속 공존했다. 산문에서는 당대의 변문, 송대의 화본, 명대의 희곡, 명청대의 백화소설로 차자표기문학이 이어지고 더욱 풍부해졌다. 그러다가 공동문어문학과 차자표기문학의 공존을 청산하고 근대문학을 이룩했다. 중국어 구어만 적는데 쓰이게 된 한자는 불필요하게 어렵고 복잡한 차자표기라서 로마자로 대치하려는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한자가 표음문자로 아주 불편해 문자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중국 안의 소수민족은 로마자를 택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향찰을 창안했듯이, 일본과 베트남에서도 한자를 이용해 자국어를 표기했다. 일본에서 '가나'라 하는 표기법은 770년에 편찬된 일본어 시가집 '만엽집'에서부터 널리 쓰였으며, 한자를 간략하게 만들어 원래의 글자와 다르게 쓰이도록 하는 지혜를 발휘해 불편 없이 정착되었다. 베트남에서 '추놈'이라고 한 표기법은 8세기에 처음 사용된 흔적이 있고, 14세기 이후에 애용되었는데 음과 뜻을 나타내는 한자를 복합시켜 새 글자를 만들었으므로 읽는 데는 혼란이 없으나 쓰기 어려웠다. 그런 차자표기 덕분에 한국의 '향가'와 상통하는 명칭을 지닌 일본의 '와카', 베트남의 '구옥으티'가 한자와 공존하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차자표기법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베트남에서는 1920년경부터 로마자를 택했다.
2) 한자 및 한자교육에 관한 신문기사 및 사설 모음
① 한자교육 찬성론자의 주장
<자료 1> 한자교육 한글 바로쓰기에도 도움
'21세기는 漢字文化圈이 주도할 것'이라는 미래학자들의 예측을 반영하듯 최근 우리 사회도 한자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부쩍 높아지고 있다.
얼마전 설문조사에서 학부모들은 한자혼용 73%.한글전용 27%의 찬성률을 보였는데 자녀에 대한 한자교육 여부를 묻는 항목에는 95.5%의 학부모가 자녀에게 한자를 가르치겠다고 대답했다. 전국 초등학교 교장선생님들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는 91.7%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한자를 교육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현재 55억의 세계인구중 한자문화권은 27.2%, 15억명이 넘는다. 미국 예일대 폴 케네디 교수는'21세기 준비'에서 '1962년 세계 GNP의 9%를 차지했던 서태평양(특히 동아시아)국가들이 2000년에는 세계 GNP의 약 25%를 차지하게 될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전후(戰後) 한 중 일 3국에는 로마자의 영향으로 한자퇴조 분위기가 만연했으나 중국 일본에서는 한자의 맥이 우리처럼 끊이지는 않았다. 중국은 현재 2천5백자의 상용한자와 1천자의 차(次)상용한자를 가르치고 있는데 한동안 사용해온 簡化字도 繁體字로 회귀하고 있다. 일본은 1천9백45자의 상용한자 중 1천6자를 소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외세배척의 명분으로 한동안 한자를 폐지했던 북한조차 69년부터 '고등중학 1년(우리의 초등5년에 해당)에서 대학까지 3천자의 한자를 다시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 젊은이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제나라의 국호나 부모의 성명은 물론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하는 이가 많다.
한자를 아는 사람은 따로 일본어. 중국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그들과 筆談을 나눌 수 있고 도로표지나 간판 등을 알아볼 수 있다. 이는 한자문화권의 관광객이 우리 나라를 방문해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한글전용을 주장해온 분들은 한자를 잘 아는 분들이다. 한자를 아는 이는 한글만 쓴다해도 큰 불편은 없다. 한자를 모르는 이는 이와 다르다. 피(被)한글전용교육 세대인 우리 젊은이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한자는 시각문자'라 할 때의 '視角'과 '視覺'을 구분하지 못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 중 한글을 사랑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으나 한글 바르게 쓰기와 교육현장에서마저 한자를 없애자는 발상은 구분돼야 하고 한글을 바로 쓰기 위해서도 한자교육은 필요하다. 엄연한 현실을 외면한 채 후세대를 우리 역사로부터 단절시키고 같은 한자문화권마저 고립시키는 파행적 교육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로 더이상 계속돼서는 안된다. 『조선일보』
<자료 2> 교육부 '한글 한문정책 변화없다'
교육부는 26일 '한글 전용법'과 초등학교 한자교육 문제를 놓고 최근 한글학회 등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학술단체와 이에 반대하는 한국어문회 등이 논란을 빚고 있는 것과 관련, '교과서의 한글·한문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육부는 이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건의한 것에 대해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교육을 하자거나 국어교과서 외에도 한자를 섞어 쓰자는 주장과 모든 교과서를 한글만으로 써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까지의 문자교육정책에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많다'며 문자교육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내용의 회신을 보냈다.
한편 한글학회 등은 '각급 학교의 교과서는 한글만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초등학교에서 학교장 재량으로 실시하고 있는 비생산적 한문교육은 마땅히 철폐돼야 한다'고, 한국어문회 등은 '한글전용법 폐지와 함께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94. 5. 25.
<자료 3> '8개국 공통상용한자 논의 활발'
한-중-일 3국을 비롯한 대만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등 한자문화권 국가들의 공통상용한자 제정을 위한 국제간 협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제한자진흥협의회(회장 정병학)가 중국문자학회와 공동으로 11월 27,28일 중국 소주에서 개최한 제4회 국제한자토론회는 '한자문화권 국가간 상용한자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청신호를 보낸 행사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 동안 한국과 일본의 적극적 움직임에 비해 문자정책의 민감성으로 인해 소극적 태도를 보이던 중국이 이번 행사를 주최했다는 것만으로 공통상용한자 제정운동은 큰 힘을 얻은 셈이다. 『조선일보』
<자료 4> '한자는 가장 지적이고 합리적'
91년11월 서울에서 첫 회의가 열린 이래 세 차례의 토론회를 거쳐 제시된 '1996자'안에 대해 그 동안 한국은 전적 찬성, 일본은 연구안으로 채택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여온 반면 중국은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회의에서도 한국 측은 기존의 안을 바탕으로 연구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며 가장 앞선 입장을 보였고, 일본도 적극적 검토의사를 밝혔지만 중국 측은 4가지 원칙을 제시하는 선에서 그쳤다.
언어는 국가별로 상황이 다르며, 따라서 서로간 차이에 대한 조사작업이 선행돼야 하고, 그런 다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단계적으로 고쳐가자는 것이다. 또 컴퓨터 관련 부분에 대한 연구도 선행돼야 할 것이라는 조건도 달았다. 중국 측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제 어렵사리 간자체가 자리 잡아가는 상황인데 자칫 공통상용한자 문제를 제기했다가는 언어정책 전체가 흔들릴 수 있어 신중히 대처한다는 게 중국의 솔직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관계자들은 이 정도의 원칙제시도 중국으로서는 대단히 어려운 결심을 한 것이라며 2002년까지는 공통상용한자 제정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대표를 겸한 정병학 회장은 '공통상용한자 제정은 복고운동이 아니라 아시아커뮤니케이션 공동체설립을 위한 미래지향형 운동이라는 점을 우리 나라 사람들도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제회의에서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국가간 사정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2002년까지 제정작업이 완결되고 실행에 들어갈 수 있는가는 또다른 문제로 남는다. 당장 우리 경우만 해도 한글전용이 원칙인 상태에서 공통상용한자를 어떻게 법제화할 수 있느냐는 난제다. 이재전 한자교육진흥회장은 '내년 중 국한문혼용법을 입법 추진하겠다'고 밝히지만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워낙 양분돼 있어 결과는 미지수다. 『조선일보』'95. 6. 28.
<자료 5> 한자문맹
최근 보도된 '대학졸업생의 한자능력 조사'에서 우리 대학생의 한자실력이 너무 형편없다는 결과가 나온 것은 여러 면에서 우려할 만한 사태다. 한자 1천자의 훈과 음을 알고 5백자는 쓸 수 있는 정도를 측정하는 한자 4급 시험에 명색이 대졸자 들이 평균 30점도 안되고 합격점인 70점 이상이 단 두 명 뿐 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더 한심한 것은 자신의 대학과 전공학과를 한자로 제대로 쓴 사람이 46%와 35%에 불과했고 심지어 5% 정도는 자신의 이름도 정확하게 못썼으며 부모 형제의 이름을 못쓰는 사람이 절반을 넘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한자 문맹현상이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이 같은 결과가 바로 요즘 우리 대학졸업자 일반의 한자실력이라고 확언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그런 현실의 일단을 보여준다는 점은 우리를 당혹케 한다. 일제 때 같으면 소학교만 나와도 어느 정도의 한자실력이 있어서 취직해서 사무를 보거나 사회생활을 하는데도 상당한 교양인으로 부족함이 없었다고 하는데 어떻게된 셈인지 요즘은 대학교육을 받아도 그렇지 못하다면 이게 보통 문제는 아니다.
이는 결국 우리 학교교육에서 한자교육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겠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어느 정도 필수적으로 한자를 교육했더라면 지금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지금 와서 해묵은 한글전용-국한문 혼용 논쟁에 가세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70년대 한글전용 교육의 여파가 현실적으로 좋지 않은 방향으로 결실을 맺고있지 않나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75년부터 중-고교에서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하는 교과서를 채택하고 있고, 또 1천8백자의 교육용 한자를 정하기도 했다. 72년부터는 한문교과도 생겨났다.
이런 한자교육의 여건변화는 결국 한자실력의 편차로 드러나고 있다고 할 것이다. 한글전용 시대에 교육받은 세대보다 그후의 세대가 한자실력이 조금 낫다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그 영향이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런 정도의 한자실력으로는 사회생활을 원활히 영위하기 어렵고, 동아시아 한자권 교류의 필요에도 크게 미치지 못한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우리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한자어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는데도 부족하고 우리 역사전통을 제대로 이해하는데도 부족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은 한자를 반드시 터득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그 때문에 근래 일부 기업이 회사에 들어온 사원들에게 한자교육도 시키고 시험을 통해 현실적 필요에 대응하기도 하는 궁색한 편법을 쓰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고교과정에서라도 국-한자 혼용교과서를 사용해서 한자실력을 늘려주는 것이 교육의 바른 길이 아닌가 싶다.
『조선일보』'97. 9. 8.
<자료 5> 한자 모르는 신세대 국학도 -- 한자문화
K대 국문과 2년 강모 군은 최근 한국현대문학 수업시간에 백철(1908∼1985)의 '문학개론'을 읽고 학생들간에 토론하는 숙제를 받았다. 강 군은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빌렸다. 그러나 모르는 한자가 많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강군 등은 이 책을 복사해서 일부분씩 나눠 각자 한자에 한글 토를 달았다. 그제서야 책을 읽을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읽기는 해도 뜻을 명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군은 답답했지만 새삼 한자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졸업 후 방송국 PD로 취직하고 싶다는 그는 '사회에 나가면 한자가 필요 없을 것'이라며 '한자 공부를 할 시간이 있으면 영어를 한마디라도 더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대 민병수 교수(국문학)는 근래 학생들의 한자 실력을 한마디로 '형편없다'고 말했다. 문과대학생이 답안지에 자신의 이름조차 잘못 쓰는 학생들이 상당수라는 것이다. 어느 공기업의 대졸(전문대 포함) 신입사원 입사 시험에서 응시자 263명중 대한을 틀린 사람이 64명, 삼천리를 못 쓴 사람이 108명이라는 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한자를 모르면 학업과 연구가 불가능한 분야도 사정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김명호 교수(한문학)는 '요즘 한국학 분야의 젊은 연구가들 사이에서도 한자실력 부족이 큰문제'라고 한숨을 쉬었다. 한국사-한국사상 등 한국학분야 교수들은 '학생들의 한자실력이 모자라 제대로 수업을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학문분야에서 언어해득 능력은 가장 중요한 연구수단이다. 따라서 국학분야 전공자의 한자실력 결핍은 학문적 성과를 추구할 수단이 없는 셈이다.
한적 국역기관인 민족문화추진회 송기채 편찬실장은 요즘 밤잠을 설친다고 주위에 털어놓는다. 선현들이 남긴 지식의 보고가 영원히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못할 가능성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민족문화추진위 인력 중 한적을 국역할 수 있는 전문가는 20명 정도. 대부분은 50대다. 대를 잇겠다는 후학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송 실장은 이들 전문인력이 은퇴하는 20년 뒤에는 '선조 들의 생활과 지혜, 사상을 담은 방대한 전적들을 영원히 해독하지 못하거나, 국역한다 하더라도 지지부진할 것이 뻔하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지금까지 민족문화추진위의 국역성과가 목표의 10%를 밑돌고, 서울대 규장각에 보존된 전적 30여만 권의 대부분이 아직도 한글로 옮겨지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화 단절우려다.
한자교육에 대한 찬반논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몰라도 별로 불편하지 않은 남의 글자를 애써 배울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과 '우리말과 글의 70%가 한자어이므로 한자는 곧 우리 말과 글'라는 찬성론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조차 한자를 외면한다면 위대한 선현들의 지적작업을 담은 수많은 전적들이 머잖아 폐지로 변하는 문화단절이 올 것은 명약관화하다. 외국어와 컴퓨터 교육 바람 속에서 이런 우려는 그대로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97. 9. 9.
② 한자교육 폐지론자의 주장
중국글자를 섞어쓰자는 어리석은 주장을 비판한다.
요즈음 몇몇 사람들이 우리 글에 한자를 섞어쓰자고 난리를 피우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이 세계경제에서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 지역은 한자문화권이다. 이런 국제화시대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자를 잘 알아야 한다.
☞외국어는 일찍 가르치는 것이 좋다. 국민학교에서 한자 1천자는 가르쳐야 한다.
☞한자말을 잘 알자면 한자를 알아야 하고 한자로 써야 한다.
☞한자를 잘 익히려면 일상생활에서 널리 써야 한다.
☞교과서 신문 잡지에서 널리 섞어 적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주장에 대해 바르게 생각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하나하나 따져보고자 한다.
☞국제화시대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자를 잘 알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맞는 말이다. 우리가 문을 닫아걸고 살지 않을 바에야 다른 나라 말과 글을 잘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미국말을 잘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중국말을 잘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프랑스 말이나 독일 말이나 그밖에 다른 나라 말도 마찬가지이다.
☞국민학교에서 한자 1천자는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이 문제는 교육전문가들이 연구해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본다. 잘 모르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한자를 일찍 가르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논리에는 엉터리가 많다. 국민학교 6년을 다니고도 한글을 못 깨우치는 어린이들이 10% 쯤 된다는데, 마치 유치원에서 한글을 다 깨우치는 듯이 말하는 것을 보기로 들 수 있다. 소박한 생각으로는 우리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마음껏 뛰놀지 못하고 벅찬 공부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이 문제는 전문가들이 좋은 대안을 내놓기를 바란다.
☞한자말을 잘 알자면 한자를 알아야 하고 한자로 적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에서 중국이나 일본에서 건너온 한자말이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말의 뜻을 잘 알기 위해서 그 나라 말이나 글을 공부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한자를 알아야만 한자말을 아는 것은 아니다. 한자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도 시계가 무엇인지, 학교가 무엇인지, 수염이 무엇인지, 대통령이 무엇인지 잘 안다. 이것은 미국말을 배우지 않은 사람도 텔레비전이 무엇인지, 라디오가 무엇인지, 필름이 무엇인지 잘 아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에서 건너온 한자말이라고 해서 한자로 적어야 한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 미국에서 건너온 말이라고 알파벳으로 적어야 할 까닭이 없듯이 말이다.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말이라고 해서 그 나라 글로 적어야 한다면, 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의 글자를 다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게 되기나 할 일이며 바람직한 일인가? 한글로 적어서 알 수 없는 말이라면 쓰지 말아야 한다. 말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 소리인데, 소리를 알아도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른다면 그것은 그 나라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는 말이다.
☞한자를 잘 익히기 위해 교과서 신문 잡지에서 널리 섞어 적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주장이다. 한자말의 뿌리를 잘 알기 위해서 한자를 공부하는 것은 좋은 일이며, 한자를 쓰는 나라 사람과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 한자를 공부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한자를 우리 글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한자를 배우자고 우리 글에 한자를 끌어들여야 한다면, 미국말을 배우기 위해서는 미국말을 끌어들이고, 일본말을 배우기 위해서는 일본말을 끌어들이자는 주장으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아침에 일어나면 미국말로 '굿 모닝'이라 하고, 낮에 사람을 만나면 일본말로 '곤니치 와'라고 하고, 헤어질 때는 프랑스말로 '아 비엥토'라고 하면 좋겠는가? 또 글을 쓸 때는 다음과 같이 여러 나라 글을 섞어 적는게 좋겠는가? "臺灣 出身의 美國 group으로 韓國에도 낯익은 LA Boys가 國內에서 TV Tour Show를 펼친다." 이렇게 하다간 우리말, 우리 글은 누더기가 되어 버린다. 아니 이미 누더기가 되어 있다. 중국말 좋아하다가 우리말 가람은 버리고 강이라 말하고, 뫼는 버리고 산이라 하게 된 슬픈 일을 잊어버렸는가? 이런 일을 되풀이하자는 말인가? 그렇잖아도 요즘은 달걀은 안먹고 계란과 에그프라이만 먹는 세상이 아닌가?
한자를 익히기 위해서 한자를 우리 글에 섞어 적자고 하는 것은 외국말 외국 글을 배우기 위해서라면 우리말 우리글은 누더기로 만들어도 좋다는 더러운 사대주의 사상 말고는 아무 것도 아니다. 외국어는 외국어 학습서를 들고 다니면서 공부하면 될 터인데, 어째서 우리 교과서·신문·잡지를 외국어 학습서로 만들려고 하는가? 알아야 할 외국어는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우리말 우리글은 깨끗하게 지키고 가꿔나가야 한다. 몇 마디 공부했다고 제 잘났다는 듯이 지껄여서는 안되며, 몇 글자 배웠다고 우리 글에 섞어 적어서도 안 된다. 10개 나라말을 아는 사람이라도 우리 나라 사람끼리 말을 할 때는 깨끗한 우리말을 쓸 줄 알아야 하며, 우리 나라 사람이 보기 위한 글을 쓸 때는 한글로만 적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우리 것을 아끼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주장이 옳다고 여기리라 굳게 믿는다.
출처 : 충청남도중등한문교과교육연구회(한문교육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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