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달라이 라마]<3>72세 나이가 무색한 ‘책벌레’
2000년 7월 2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스미스소니언 세계민속축제에서 달라이 라마가 다른 티베트 스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참석 군중에게 평화의 인사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요즘 수행자들이 꼭 깊은 산속이나 암굴에서 민중을 멀리한 채 자기만의 수행을 고집하는 것도 재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때 그런 경험을 갖는 것은 좋지만 수행자라면서 민중과 함께하지 않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열린 세상에서 문제가 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1998년 한 법문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달라이 라마란 칭호를 갖고 만난 정치가 학자 수행자 과학자 연예인 스포츠인 등 수많은 유명인사 가운데 당신이 가장 감동받고 최고로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이 나왔다.
“내가 만났던 수많은 분 중에서 성자와 같은 놀라운 분은 토머스 머튼 신부님이었습니다. 한번 만나 보고는 계속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어서 모든 일정을 연기 취소하고 3일 동안 함께 얘기를 나눴습니다.”
머튼 신부는 1960년대 초 베트남전 반전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 후 머튼 신부는 동양사상에 대해 깊은 공부를 하고자 태국으로 갔는데, 도착하던 날 밤 호텔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해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달라이 라마는 가끔 기독교 단체의 초청에도 참석하며, 심지어 영국의 어느 수도원에 초청돼 개인적으로 성경 해석까지도 했다. 그때 참석한 성직자는 물론 일반 청중도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때의 연설내용은 ‘달라이 라마, 예수를 말하다’란 책으로 나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됐다.
필자에게 존경과 믿음의 한 근원은 바로 72세의 나이에도 계속 경전을 보고 공부하는 모습이다. 2000년 TV에서 촬영하러 왔을 때 당신 침실까지 공개한 적이 있다. 함께 들어가면서 책상 위에 길게 펼쳐진 경전을 가리키며 “이것은 내가 며칠 후 남부 인도 세라 사원에서 법문할 교재라 읽고 있다”고 하셨다. 늘 한 가지에 고정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열어 놓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다.
1988년이었던가. 당신과 독대하면서 말씀을 나누던 중, 신라시대 원측 스님이 주석을 한 논서가 티베트장경에 있다는 것을 알고 베이징판의 복사본을 보여 드렸더니 얼른 앞쪽을 읽어 보고 “아, 이것은 중국의 학자 스님인 웬측의 논서로 ‘해심밀경소’라고 하는데, 우리 티베트장경에 몇 개 안 되는 한문본에서 티베트어로 번역된 귀중한 유식 논서입니다”라고 했다. 내가 얼른 “아닌데요, 그분은 한국 스님이고 원측이라고 합니다”고 했더니 크게 놀랐다. “아니, 웬측 스님이 한국 스님입니까?” “그럼요, 우리나라 신라 때 스님이지요. 생존 연대는 서기 613∼696년이고요.” 이 대화 이후로 티베트 불교 강단에서는 발음부터 원측으로 고쳐졌고,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정정해 가르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불교에 대해 늘 이렇게 말한다. “우리 티베트 불교는 날란다(5세기 설립됐다 12세기에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된 일종의 불교 대학으로 불교 연구의 중심지였음)의 전통을 계승, 발전한 겁니다. 꼭 티베트 불교라 할 것이 없지요. 옛날 인도의 큰 스승들은 거의 날란다 출신이었고, 특히 대승불교의 중관사상에 기반을 둔 사상체계로 봅니다. 거기에서 티베트 옷을 입은 수행체계로 이뤄지지요. 어쨌든 티베트 불교는 소승·대승, 현교와 밀교·금강승까지 두루 포함한 불교체제입니다. 소승을 알지 못하면 어찌 대승을 알겠습니까. 저는 아침마다 불단에 예불을 올릴 때, 거의 날란다 출신의 큰 스승이신 용수, 무착, 세친, 진나, 적천, 법칭, 월칭 등으로 이어지는 열일곱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예를 올립니다. 이분들의 논소(論疏)로 지금까지 우리의 불법이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온 것 아닙니까. 우리는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경(經)과 이후 큰 스승들의 논(論)과 소(疏)를 많이 보아 가면서 자기 수행을 해 나가야 합니다. 법보가 아닙니까. 이렇게 경론소 법에 의지해 공부하며 나아갈 때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지 않으면서 끝내는 보리심(菩提心)을 기반으로 한 공성(空性·연기법의 근본)의 깨달음에 이르니까요. 그래서 저는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 중에 법보의 소중함을 가장 위에 둔답니다.”
사실 티베트 사찰의 법당에 가 보면 우리 한국의 전통 사찰과 비슷하지만 한 가지 다른 게 있다. 그건 불상 좌우에 꼭 모든 경전을 모셔 둔다는 점이다. 부처님과 법을 상징하는 경전을 함께 예경한다. 티베트에서는 상식적으로 불상은 부처님을 나타내고, 경전은 부처님이 설한 법을 나타내며, 이 법을 이끌고 지키는 승가(僧家·스님들의 공동체)를 탑으로 나타낸다. 불교가 중국, 한국으로 이어오면서 탑은 불사리를 모시거나 큰스님의 유골을 모시는 전통으로 변했지만 티베트에서는 탑이 삼보의 한 면으로 간주돼 부처님의 마음(心)을 상징한다. 그래서 티베트에는 어디에고 간에 큰 탑이 있고 그 주위를 돌면서 염불을 하며 마음을 정화하는 코라(시계방향의 탑돌이)의식을 하는 것이 하루 일과나 다름없는 일상적 행사다.
한편 개인적으로 말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필자가 출가 전에 신학교에 다녔던 것에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가톨릭에 대한 회의나 불신에서 출가한 게 아니다. 지금도 짧은 신학교 생활을 진심으로 보배롭게 여긴다. 나는 그곳에서 뼛속 깊이 배운 수도자의 삼덕인 청빈·순결·순명을 지금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청정한 계행을 가톨릭에서 먼저 배운 것이다. 절에 들어오니 그대로 청빈은 무소유였고, 순결은 청정이었으며, 순명은 하심(下心·겸손)이었다. 구도의 장소만 바뀌었지 사상이 바뀐 게 없다. 단 윤회의 문제, 생사의 문제에서 내 길을 선택한 것이다. 지금도 잠깐 몸담았던 가톨릭의 삶에서 배운 것이 내 일생 수행자로서의 기반임을 숨김없이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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