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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자리샤리프에 있는 알리 모스크의 흰색 비둘기. 이곳 사람들은 흰색 비둘기를 신성시한다. 이 비둘기들은 알리의 묘 부근에는 절대 배설물을 버리지 않는다. |
아프간 북부의 최대도시 마자리샤리프를 향해 출발한다. 카불을 출발한 지 2시간 남짓 달려가자 차리카르(Charikar)란 작은 도시를 만난다. 이곳에서 여러 갈래로 길이 나뉜다. 서쪽으로는 시바르 패스를 경유해 바미얀으로 가는 길이고, 동쪽으로는 힌두쿠시 산맥 자락을 따라 펼쳐지는 판지시르(Panjshir)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판지시르 계곡은 아프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골짜기라고 한다. 안조만 패스(Anjoman Pass?4,430m)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는 힌두쿠시 산맥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정세불안으로 들어가기 힘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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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리 모스크 전경. |
차리카르를 벗어나면서 힌두쿠시 산맥의 고개인 살랑 패스(Salang Pass)를 향해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오른쪽으로 흐르는 살랑강 골짜기 여기저기에는 탱크들이 강물에 박혀 있다. 무장한 미군 차량행렬이 고갯길을 오른다. 그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다른 차량들이 잠시 길을 비켜준다. 언덕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지나는 미군들의 얼굴에서 이곳이 아직 전장임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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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흐에 있는 파르사의 묘. 중세의 시인이자 성인으로 추앙 받고 있다. |
고갯길 길섶에 깃발 꽂힌 작은 무덤이 하나 있다. 우리 운전사가 그 묘지에 경의를 표하고 지난다. 이곳을 지나던 버스가 브레이크 고장을 일으키자 버스 차장이 자동차 뒷바퀴에 몸을 던져 버스를 멈추게 하고 50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차장의 희생정신을 되새기며 그의 넋을 위로한다고 한다.
굽이굽이 고갯길을 올라가자 눈사태방지용 간이터널이 나타난다. 도로 위에 지붕을 씌운 이 터널은 눈이 많은 겨울 힌두쿠시 산맥을 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몇 개의 간이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해발 3,360m 지점에 위치한 살랑 패스 터널을 지난다. 이 고갯길은 아프간 남북을 이어주는 유일한 길로 군사적, 상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길이다. 터널 길이는 2.7km, 터널 양쪽 눈사태 방지용 간이터널까지 합하면 꽤 긴 터널이다. 이 터널은 1958년 구소련에 의해 건설됐다.
상이용사 운전사 몽타스
터널을 빠져나와 길섶에 차를 세운다. 힌두쿠시 산맥의 능선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진다. 고도가 별로 높지 않아 고갯마루에 만년설은 별로 없지만 산세만큼은 웅장하다. 살랑 패스를 넘어서면서 아프간 북부지방으로 들어선다. 남부에 비해 너른 평원이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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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발 3,363m인 살랑 패스 주변 힌두쿠시 산맥의 산세. 아프칸 중부를 가로지르고 있는 힌두쿠시 산맥의 고갯길로, 아프칸 북부로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길이다. 1964년 구소련이 터널을 뚫었다. 이 터널은 길이가 2.7km에 달하며 그 외 에 4.5km의 눈사태 방지용 간이터널이 있어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도 차가 다닐 수 있다. |
새벽에 출발한 버스가 높은 고갯길을 넘다보니 어느 듯 해는 중천에 와 있다. 한낮의 태양은 대지를 다 태울 듯 사정없이 내리꽂힌다. 에어컨이 고장 난 버스 안의 온도는 이미 체온을 훨씬 넘어버렸다. 숨 막히는 더위 탓인지 지나는 마을에도 인적은 없다. 텅 빈 마을에 버려진 탱크, 전쟁의 폐허로 어디론가 떠나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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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흐 장날 약장수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파는 약은 며큐롬 같은 소독약이다. |
카불에서 마자리샤리프까지 450km. 얼마나 남았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물어볼 대상도 물어볼 사람도 더위에 지쳐 쓰러져 있다. 한 여름의 아프간 더위는 잔인할 정도로 혹독하다. 우리의 운전사 몽타스만이 더위에 아랑곳 않고 묵묵히 운전하고 있다.
그는 올해로 쉰이라는데 얼굴 나이는 일흔쯤 되어 보인다. 왼손 손가락 하나는 없고 손은 뒤틀려 있다. 즉 상이용사다. 그는 많은 소련군을 죽인 무자헤딘의 전쟁영웅이라며 우리에게 자랑을 하곤 한다. 그의 온 몸은 총상으로 성한 데가 없다. 뒤틀린 손으로 핸들을 잡았지만 운전솜씨만큼은 프로다. 아프칸에서의 운전은 곡예운전을 넘어 전투적 운전이다. 대부분의 차량이 일본에서 들여온 중고차들인데 운전석이 바뀌어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데도 이들은 잘도 피해서 달린다.
그의 앞에 검문소라도 나타나면 그것이 군인이든 경찰이든 우선 고함부터 치고 본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어 잘은 모르지만 대충 눈치로 봐서는 이러하다.
“내가 소련군을 몇 명이나 죽였는지 아느냐?”
그의 위세당당함에 대부분의 경찰과 군인들은 꼬리를 내리고 길을 터 준다. 그가 모는 차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프칸에서는 위안이 된다. 밤 10시가 넘어 낯선 도시에 도착했다. 전기 사정이 열악한 마자리샤리프는 어둠 속에 엎드려 있었다.
박트리아의 성터 빌라 히사르
마자리샤리프의 아침이 밝았다. 지난 밤 무더위와는 달리 아침 공기는 상쾌하다. 숙소 앞 공터에서 부르카를 입은 여자들이 토마토와 우유를 팔고 있다. 아프간에 온 이후 처음으로 여자들이 장사하는 것을 본다. 아프간 어디를 가도 바깥에서 일을 하는 것은 남자들뿐이다. 탈레반은 여자들이 집 밖에서 일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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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흐에 있는 빅트리아 왕국의 유적인 빌라 히사르 성터. |
마자리샤리프 외곽에 있는 발흐에 간다. 발흐는 기원전 4세기, 페르시아의 속국이었던 박트리아의 수도 박트라다. 박트리아에 정착했던 알렉산더 후예들은 이곳에 왕국을 세웠다. 그리스 문자를 쓰고 그리스식 건축물을 짓고 그리스의 신들을 믿었다. 발흐는 힌두쿠시 산맥 북쪽의 중요 도시로 번성했으나 19세기 전염병의 창궐로 도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근 마쟈리샤리프로 옮겨가 쇠퇴하고 말았다. 또 이곳은 조로아스터교의 짜라투스트라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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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 개 기둥의 모스크’라는 의미의 노군밧 모스크. 아프간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로 몇 개의 기둥만이 남아있다. 불탑이 있던 자리에 이 모스크가 들어섰다. |
박트리아 왕국의 유적인 성터 빌라 히사르에 올라본다. 흙벽돌로 축성된 당시의 성벽이 오랜 세월 비바람에 허물어져가고 있다. 알렉산더를 따라 이곳으로 몰려왔던 그리스인들이 이 성 안에서 살았던 것일까? 유적지에서의 상상은 늘 자유롭다. 2000년 전의 유적을 본다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아홉 개 기둥의 모스크’라는 의미의 노군밧(Nogunbat) 모스크를 보러간다. 성터 부근에 있는 이 모스크는 아프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몇 개의 기둥만이 남아있다. 함석으로 지붕을 만들어 보호하고 있다. 기원전 1세기경, 이곳에 불교가 번성하여 여러 곳에 불탑이 조성되었다. 이곳에 이슬람이 들어오면서 가장 크고 오래된 불탑의 자리 위에 이 모스크가 들어섰다. 기둥에는 아름다운 조각과 문양이 새겨져 있다.
아프칸 여성들의 족쇄 부르카
오늘은 이곳 발흐의 장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당나귀를 몰고 장으로 꾸역꾸역 몰려든다. 장터 옆에는 중세의 시인이자 성인으로 추앙 받고 있는 파르사의 묘와 기념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장터 공터에는 약장수가 전을 벌여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파는 약은 붉은 소독약 같은데 직접 사람을 불러내 발라 보이기도 한다.
천을 파는 난장에는 부르카를 입은 여인들이 눈앞을 가린 그물망 사이로 천을 고르고, 장보기가 끝난 여자들은 공원 숲 그늘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있다. 이곳에 온 이후 가장 많은 여자들을 본다. 아프간 여자들을 사진 찍는 일은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사진을 찍다 남편에게 걸리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사진을 찍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들에게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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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간 북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들. |
이국에서 온 여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자들이 내 주위로 둘러 않는다. 그 중 한 여자가 내게 악수를 청한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손들을 내민다. 주변을 살피던 한 여자가 부르카를 벗어 내게 얼굴을 보여준다. 중년인 이 여성의 눈은 선하고 아름다웠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얼굴을 보여준다. 당나귀를 타고 한 남자가 이쪽으로 오자 여자들은 얼른 부르카를 내렸다.
1996년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은 재해석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포고령을 발표한다. 이 중 여성들에 대한 포고령은 무서우리만치 엄격한 것이었다. ‘모든 여성이 집 바깥에서 일하는 것이 금지된다. 부득이 바깥에 나갈 때는 온 몸을 천으로 뒤집어쓰는 부르카를 걸쳐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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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칸의 우물. 이런 우물들 대부분이 UN 구호단체에서 만들어준 것이다. |
부르카는 천으로 얼굴까지도 다 가린 채 눈 주위로 망사천이 있어 그걸 통해서만 바깥을 볼 수 있다. 이 부르카는 이전에도 존재했었지만 전통을 고집하는 시골에서나 스스로 착용하던 복장이었다. 이로써 모든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와 일자리가 박탈당하고 여자는 집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몸이 아파도 여성 의사가 없으니 진료를 받을 수도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탈레반이 물러간 지금도 여성들은 이 족쇄인 부르카를 벗지 못하고 생활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남성들은 부르카를 벗은 채 나다니는 여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부르카를 파는 집에서 부르카를 한 번 입어본다. 숨쉬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망사천을 통해 바깥을 보려면 얼렁거려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부르카를 입은 아프칸 여성들의 고통을 직접 체험해 본다.
시아파의 성지 알리 모스크
마자리샤리프의 알리 모스크는 무슬림 시아파의 성지다. 마호메트의 사위인 하즈랏 알리의 무덤이 이곳에 있다. 알리는 시아파의 창시자다. 마호메드가 갑자기 죽자 후계자 문제로 세력 싸움이 일어난다. 사위인 알리가 밀려나자 알리의 추종자들에 의해 시아파가 탄생되게 된다. 알리의 묘가 이곳에 위치하게 됨으로써 아프간 북부 사람들은 시아파를 믿게 되었다. 얼마 전 아프간을 지배했던 탈레반은 수니파로 시아파를 믿는 아프간 북부 사람들을 이교도처럼 여겨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북부 사람들은 탈레반 소리만 들어도 치를 떤다.
청색 돔의 알리 모스크는 마자리샤리프 사람들의 자랑이다. 3월21일 이들의 새해가 되면 전세계 시아파 교도들은 이 모스크를 찾아 순례를 온다. 이 모스크에서는 여러 기적이 행해져 사람들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눈이 보이지 않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1년 내내 이곳에서 기도하며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굴이소르크라는 튤립 축제가 열리는 봄이면 푸른 모스크가 붉은 튤립으로 장식된다고 한다. 아프간 북부 사람들은 남부 사람들에 비해 삶이 좀 더 여유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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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흐 장날에 나온 아프칸 여성들. |
신발을 벗고 모스크 경내에 들어가자 마치 푸른 세상에 들어온 것 같다. 코란의 싯구가 돌 위에 새겨진 큰 분수가 물을 뿜어 올리고 있다. 알리의 묘가 안치된 중앙 홀에는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다. 모스크 입구에서 한 사리야스(종교지도자)가 찾아온 사람들에게 잠언들을 들려주고 있다.
모스크 동쪽에는 수많은 흰색 비둘기가 날아다닌다. 이곳 사람들은 이 비둘기를 아주 신성시한다. 이 비둘기들은 알리의 묘 부근에는 절대 배설물을 버리지 않기로 유명하다. 정말로 모스크 주변 어디에도 비둘기의 배설물이 보이지 않았다. 또 다른 색깔의 비둘기가 이곳에 날아오면 하루만에 흰 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순례 온 사람들은 이 비둘기에게 밥을 주면서 알리의 신성에 고개를 숙인다.
한 무리의 비둘기들이 푸른 모스크를 배경으로 일제히 날아오른다. 평화의 상징인 저 비둘기들이 전쟁으로 얼룩진 이곳 사람들의 마음에 한 줄기 빛을 던져주고 있다. 목발을 짚은 순례자 한 사람이 기도를 하고 있다. 저 사람에게도 알리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