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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방북한 문선명 통일교 총재(左)와 부인 한학자 여사(右)가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세계일보 제공] | |
문선명 총재는 91년 11월 30일부터 12월 7일까지 북한에 머물렀다. 김 주석은 주석공관에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문 총재는 “(만나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얼싸안았다. 나는 철저한 반공주의자고, 김 주석은 공산당의 우두머리였다. 그러나 이념이나 신앙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헤어진 형제와도 같았다”고 말했다.
자서전에는 빠졌지만 이 장면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포옹을 했을 때 문 총재는 김 주석의 귀에 대고 다짜고짜 “형님!”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북측의 수행원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 자리에 함께했던 통일교 관계자는 “그 얘길 들은 김 주석은 호탕하게 웃더니 사진촬영 장소까지 가면서 문 총재의 손을 놓지 않았다. 사진을 찍을 때도 손을 꼭 잡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방문객과 함께 기념촬영을 할 때 김 주석은 늘 뒷짐을 졌다고 한다. 김 주석이 방문객의 손을 잡고 사진을 찍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자서전에는 두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하는 대목도 있다. 김 주석은 “백두산에서 곰 사냥을 해보면 분명히 반할 겁니다. 곰이 미련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꾀쟁이예요”라며 곰하고 딱 일 대 일로 맞닥뜨렸던 때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곰이 나를 보고는 꼼짝도 않는 겁니다. 곰을 피해 달아나면 어찌 되는 줄 아시죠? 서로 노려보며 두 시간 너머 흘렀는데 백두산의 추위가 오죽 유명합니까? 곰에게 먹혀 죽기 전에 얼어 죽을 지경이었지요.” 문 총재가 재촉했다. “아니, 그래서 어찌 되셨습니까?” 김 주석이 파안대소하며 답했다. “하하, 문 총재 앞에 앉아있는 내가 곰입니까, 사람입니까? 그게 답입니다그려.” 그 말을 듣고 문 총재도 큰 소리로 웃었다.
김 주석은 “문 총재, 다음에 오시거든 백두산에 사냥 한번 같이 가십시다”라고 청했다. 이에 문 총재는 “주석께서는 낚시도 좋아하시죠? 알래스카 코디악 섬에 할리벳이라는 곰만큼 큰 넙치가 삽니다. 우리 그거 한번 낚으러 가십시다”라고 화답했다. 김 주석은 “곰만큼 큰 넙치라고요? 그러면 당연히 가야지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문 총재는 “나중에 들으니 김 주석이 ‘문 총재는 배포가 크다. 내가 죽은 뒤에 남북 사이에 의논할 일이 생기면 반드시 문 총재를 찾아라’라고 김정일에게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우리가 어지간히 잘 통한 모양”이라고 돌아봤다.
이 밖에도 문 총재는 자서전에서 김 주석이 ‘금강산 개발’을 제안한 일과 자신이 김 주석에게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협정에 조인할 것을 건의한 일 등을 밝혔다. 지난해 7월에 일어났던 헬기 추락 사고에 대해서는 “헬기가 검은 비구름에 휩싸이더니 순식간에 산꼭대기에 처박혔다. 헬기가 뒤집히면서 내 몸이 안전벨트에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양쪽 팔걸이를 단단히 붙잡았다. 만일 내가 평소에 운동을 게을리했다면 거꾸로 매달린 순간 허리가 부러지고 말았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백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