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왜 틀렸다는 걸까. 연합회는 세종대왕 때엔 서양에서 율리우스력을 썼으므로 오늘날 양력으로 환산할 때도 당시 기준인 율리우스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종대왕 사후 100년이 넘게 지난 1582년에 만들어진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한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이들 주장대로라면 세종대왕 탄생일은 양력 5월 7일, 서거일은 양력 3월 30일이 된다.
'그레고리력'은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 13세 때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태양력이다. 그레고리력 이전까지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5년에 만든 '율리우스력'이 대세였다.
1년을 360일(30일×12달)로 잡고 나머지 5일은 축제일로 정한 고대 이집트 달력을 수정해 만든 게 율리우스력이다. 1년을 평년 365일로 하고 4년마다 하루를 더 넣은 윤년을 둬 오차를 줄였다.
그럼에도 실제 지구가 태양 주위를 정확히 한 바퀴 도는 시간과는 1년에 11분 정도 차이가 났다. 세월이 지날수록 오차가 누적돼 16세기 들어선 열흘로 벌어졌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일을 기준으로 정한 부활절과 달력상 부활절의 차이가 커지자 기독교인들의 불만이 점점 쌓여갔다. 이걸 바로잡기 위해 만든 게 그레고리력이다. 400년 동안 97일의 윤일을 뒀고 누적된 오차를 없애려고 1582년 10월 5일부터 14일을 날려버렸다. 10월 4일 다음 날을 10월 15일로 정한 것이다. 하루 사이에 열흘을 보낸 셈이다.
새로운 달력은 권력 투쟁의 산물이기도 했다. 교황이 율리우스력을 폐지하고 그레고리력을 도입한 배경엔 신교의 싹을 누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됐다. 예나 지금이나 '표준'을 틀어쥐는 것이 힘인 까닭에 신교도들은 "교황이 새 달력으로 기독교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며 그레고리력을 거부했다.
그레고리력이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은 요즘에도 율리우스력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 에티오피아는 율리우스력에 따라 재작년에야 새천년(2000년)을 맞았고, 율리우스력을 따르는 러시아 정교회도 해마다 성탄절을 1월 7일에 지낸다.
프랑스혁명 때엔 일주일을 7일 대신 10일로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급진 혁명세력은 기독교 전통을 없앤다며 시간과 달력에 10진법을 도입했다. 한 시간은 100분, 하루는 10시간, 1주일은 10일로 정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달력은 호응을 얻지 못했고 나폴레옹이 다시 권력을 잡은 뒤 소리없이 사라졌다.
1896년에 고종이 태양력을 도입한 것도 중국 중심의 시간관념을 탈피하자는 취지였다. 연호도 새로운 양력을 세운다는 의미로 '건양(建陽)'으로 정했다. 고종은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이라고 공표했다. 이후 공문서에 양력 표기를 시작했지만 민간에선 여전히 음력을 썼다.
이렇게 도입된 양력이 110여년 만에 법적 근거를 갖게 됐다. 박영아 의원이 대표 발의해 이달 2일부터 시행된 '천문법'이다. 천문법 이전에는 조항이 하나로 된 '표준시에 관한 법률'이 그나마 관련법령으로 꼽혔다. 하지만 '표준시는 동경 135도의 자오선을 표준자오선으로 한다'는 내용만으로 양력 사용의 근거를 삼을 순 없었다. 그래서 만든 게 '천문법'이다. 이 법에선 '날짜는 양력인 그레고리력을 기준으로 하되 음력을 병행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1~2년 간격으로 생기는 윤초에 대해서도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발표하도록 했다.
박영아 의원은 "천체 운행을 근거로 산출하는 날짜와 시간은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개념인데도 기존 법령에선 태양력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아 역법(曆法) 체계를 오해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예컨대 2006년엔 일부 인터넷 포털과 휴대전화의 달력에서 설날을 실제보다 하루 늦은 1월 30일로 표기해 혼선을 빚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공식자료가 아닌 비공식적 만세력으로 음력을 계산해 생긴 오류였다.
작년 말엔 고대 마야 달력에서 유래한 2012년 지구 종말론이 유행했다. 마야 달력은 태양력과 달리 260일을 1년으로 치는데 수천년 뒤의 개기월식과 일식 날짜까지 정확히 맞혔다고 한다. 5125년을 주기로 하는 이 달력의 끝이 2012년 12월 21일이다. 이 날 지구가 멸망 위기에 몰린다는 영화 '2012' 개봉과 더불어 종말론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이틀 앞선 2012년 12월 19일은 다음 대통령 선거일이다.
이번에 시행된 천문법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은 "이 법이 적어도 국내에서 황당한 '지구 멸망론' 확산을 막는 데는 기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