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가 한국땅인 이유...
2012/03/19 20:04
http://blog.naver.com/hgb408/150134438718
잊을만하면 독도 문제가 터져 나오고 온 나라안은 들끓는다. 물론 일본이 문제를 일으킨다. 그리고 한국인 누구나 우리 땅 독도에 대한 관심이 남달리 높은 탓도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국면이 서서히 공론화 하고 있다. 언론이나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의식있는 시민들의 입에서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다면, 같은 논리에서 대마도도 한국 땅이라고 주장해야 하고, 적어도 독도문제 처리에 있어 유력한 카드로는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좋은 지적이다. 언론도 앞다투어 실었고 인터넷에서도 뜨겁게 달아 올랐다. 이렇게 보면 일본이 독도 문제를 거론하면 할수록 대마도 문제도 점차 현안화하고 우리 국민들의 인식도 강화되게 되어 있는 셈이다.
사실 일본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한국이 '대마도는 한국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더 근거 있다. 전북대학교 하우봉 교수처럼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고 있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우리 땅이라고 주장해도 근거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문헌 기록이나 역사적 사실로 보더라도 맞는 말이다.
한단고기(桓檀古記. 1911년 계연수 펴냄. 한민족의 신화시대부터 고려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책)에는 삼국의 분국을 설치하여 통치했다고 되어 있고, 삼국사기·대주편년략(대마도사를 편년체로 기록. 1723년 간행) 등에도 신라가 지배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시대에 이어 고려대에도 우리 조정에 조공을 바쳐 왔으며, 세종실록에는 '대마도는 본시 우리나라 땅(對馬島本是我國之地)'이라는 기록이 분명하게 나와 있다.
1860년 김정호(호는 고산자. ?-1864. 지리학자)가 제작한 <대동여지전도>에 대마도를 당연히 우리 땅으로 표시했고, 1908년 전해산이 제작한 <전국지도>에도 경상도의 일부로서 대마도와 큐슈 사이로 영토선이 그어져 있다. 같은 해 만든 <대한제국지도>에도 마찬가지다.
대마도는 면적이 서울보다 약간 넓은 695㎢이며 부산과 48.5km(26해리), 큐슈와는 132km(69해리) 거리에 있는 섬이다. 거리상으로 보자면 우리 남해안 바로 턱밑에 있다. 맑은 날이면 부산 태종대에서 바로 보일 만큼 가깝다.
애초에는 신라인 등 한겨레가 살았고, 신라 때에는 경상도 계림에 속해 있었으며, 892년에는 반(反)신라 움직임이 있자 45척의 함대로 정벌하여 통치력을 회복한 바 있다. 고려 중기에는 조공무역(진봉선 무역)을 했고 경상도 안찰사의 지휘를 받았다.
이후 영토 관리가 허술해지면서 일본인들이 점차 이주해 와 정착했으며, 이들이 고려 말에 이르러 극도로 해안을 어지럽히자 1389년 공양왕 1년 박위 장군이 전함 1백여 척을 이끌고 일본함선 3백여 척을 격침시킨 후 대마도를 정벌했다.
당시 우리 해군의 전함은 대형함 위주였다. 특히 포(砲)의 사정거리가 멀고 파괴력이 강해 위협적이었다. 반면 일본의 함대는 소형함에다 포 등 무기의 성능에서 비교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양국의 해군력 비교에서 함대 숫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훗날 7년전쟁 당시에도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해군이 연전연승을 거두며 해상권을 확고하게 장악할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이 되기도 했다.
1396년 태조 시절에는 김사형의 지휘하에 재정벌에 나선 적이 있고, 1419년 6월에는 이종무 정벌군 사령관의 지휘아래 함선 227척, 병력 17,285명을 이끌고 최대규모의 정벌을 완료했고 경상도의 속주임을 다시한번 확인한다(6월 20일 대마도 아소만에 상륙한 정벌군이 대마도주의 항복을 권했으나 반응이 없자 본격적인 토벌에 나선다. 129척의 선박을 소각·포획하고, 가옥도 1940여채나 불태운다. 아울러 저항하는 왜구를 죽이고 포로로 삼음으로서 나라의 걱정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고려말기와 조선대의 대마도 정벌은 왜구의 해안침입을 막고자 그 근원을 무력화하기 위해 벌인 것으로, 수 차례의 정벌에서 대마도를 한국의 영토로 밝히고 평정에 나섰으며, 본국 정부가 최고의 통치주체임을 확고하게 확인한 바 있다.
특히 1420년 세종은 대마도주를 조선의 신하로서 경상감사의 지휘 아래임을 못박아 두었다. 대마도도 이후로도 조선정부를 중앙정부로 여기고, 조공도 조선에 더 많이 하는 등 일본보다 한국을 중시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마땅히 직접 통치력을 행사하여 해도정책의 일환으로 관리하고, 개발사업에 나서야 했다. 물론 이 시기 동안에도 한반도에 속한 영토로 여겨 행정구역으로 포괄하고 있었다. 다만 대마도 정책의 기조는 대마도를 그저 행정구역으로 삼아 두고 호족에 관작을 내리거나 조공을 받는 등 직접 지배보다 정치적 속령화 정책, 즉 우리의 정치·행정 및 국제 질서에 포함된다고 생각하고 운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고려와 조선정부가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아 가벼이 여기고 영토관리를 허술히 하여 방치한 점은 아쉬운 일이다. 그런 와중에 일본인의 이주 정착이 계속되었고 근대에 접어들면서 일본화되었던 것이다. 특히 일본이 명치유신 때 대마도를 해체하고 나가사키현에 통합시키면서 조선의 외교권 접수와 함께 합병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있은지 얼마되지 않은 1949년 1월 7일, 이승만 대통령은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대마도는 역사적으로 한국영토'라고 선언했다. 여기에 더해 이대통령은 '대마도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쳐온 속지나 마찬가지였는데 350년 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대마도를 무력 강점한 뒤 일본 영토가 됐고, 이때 결사항전한 의병들의 전적비가 도처에 있다'며 배경까지 설명했다. 10여일 뒤에는 국회의원 31명이 '대마도 반환촉구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한다. 뿐만아니라 1951년 4월 27일에는 한국정부에서 대마도의 역사적 영토 주장을 하면서 미 국무부에 대마도 영유권을 공식 요구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처럼 현대사에 접어들자말자 다시 한번 영유권 주장을 밝히면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 바 있음에 주목해 두자.
대마도는 전략적 가치가 높다. 많은 수산자원과 농토-농사짓기에 적합하지는 않지만-를 얻는 한편, 배후 일본을 경계하고 압박할 수 있다. 태평양 진출을 위한 남진기지로 사용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런 까닭에 신라는 영토의 일부로 편입해 두고 직접 다스렸고, 조선 초에 이르기까지 수 차례 정벌을 하면서까지 대마도의 통치권자는 한국이며 대마도가 한국의 땅임을 확인하곤 했던 것이다.
특히 영토적으로 직접 지배하지 않았을 때라하더라도 19세기 후반 메이지정부가 대마도를 나가사키현에 강제 통합시키고 조선의 외교권마저 접수(물론 국제법적으로도 전혀 비합법적이고 정당하지 않다)하기 전까지 최소한 대마도는 늘 한반도의 국제질서에는 속해 있었다.
2002년 10월에는 독도박물관(경북 울릉군 도동리) 입구 약수공원에 표지석을 세워 '대마도는 본시 우리나라 땅'이라는 내용을 담은 표지석이 세워졌다. 높이 4.2m 폭 1.6m 크기에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 '대마도본시아국지지(對馬島本是我國之地)'라는 문장을 따고 월인천강지곡의 서체를 따라 새겨 놓은 것이다. 아울러 삼국사기와 세종실록 등의 기록을 토대로 원래부터 경상도의 영토였음을 보여주는 지도, 말을 기르던 땅이었음을 알리는 내용 등이 자세하게 새겨져 있기도 하다.
비록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관리상 실수와 현지 거주 주민이 근대화 이후 일본의 제국주의 열강화와 함께 강국으로 성장한 일본을 지향하는 것을 막지 못한 실책으로 일본화 하였지만, 우리가 대마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도 한일간 영토문제는 가변성을 지닌 채 현안으로 남을 것이다. 단기간내에 마무리될 문제가 아니다. 결국은 역사속의 선점권과 현재의 영유권, 국민의 관심과 열정, 국력의 강도와 국제환경 등 여러 여건에 따라 판가름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기회가 올 그날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우리의 삶의 터전을 우리가 먼저 버리거나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되물림에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정부와 신세대는 보다 효과적인 접근으로 대의를 성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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