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광장
16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마드리드는 시가지가 깨끗하고 크고 작은 공원이 많아서 좋다. 더구나 마드리드는 그 뜻이 ‘맑은 물의 도시’라니 얼마나 좋은가. 이 도시는 매일 3교대로 청소를 할 뿐만 아니라 자정 이후에는 모든 도로를 물로 씻어 내린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래서 시가지는 어디를 가도 깨끗하고 아름답다.
마드리드는 인구 400만의 에스파냐의 수도로 나라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교통의 요지이다. 고도 655m의 고원 위에 자리한 이 도시는 연강수량은 438㎜에 불과하다.
구시가지에는 왕궁과 간선도로의 기점이 된 <라푸에르타 델 솔(태양의 문)>이라 불리는 타원형 광장과 1600년대에 야외극장으로 지어져 발코니가 달린 건물에 둘러싸여 있는 마요르광장, 세계적인 프라도미술관 등이 있어서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고 있다.
푸에르타 델솔은 옛날에 이 광장 출입문(푸에르타)에 태양(솔)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광장은 교통과 문화·경제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근대적인 편의시설이 맨 처음 갖추어진 곳으로 해마다 새해맞이 축제행사가 열린다.
마드리드의 관광 1번지는 누가 무엇으라고 해도 스페인 마드리드 왕궁이다. 1700년대에 건립한 이 왕궁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이 있던 자리에 1736년 페리페 5세와 이사벨 여왕에 의해 29년간에 걸쳐서 새로 건축된 것이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인 슈바라, 사케티, 사바티니에 의해서 건설된 이 왕궁은 2,800여개의 방이 있고 지금도 스페인의 공식 행사는 이곳에서 치르고 있으며 50개의 방이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스페인 왕궁
1912년까지 국왕 실제로 거주한 이 왕궁은 벽화와 황금 테이불, 의자. 집기, 천정화 등이 한마디로 대단했으며 지금도 년 간 60일 정도는 국왕이 직접 사용한다고 한다.
옛날에 연회장으로 사용하던 방에는 어느 장군의 흉상과 남여의 나신상이 있고 벽에는 벽걸이 카피트가 많았다. 상제리제가 많은 이 방에는 카를로스 1세의 상이 있고 왕과 왕비의 금옥좌와 사자상이 있었는데 사방으로 거울을 장식한 것은 사람들의 동정을 확인하기 위해서란다.
까를로스 3세 방은 그를 기리기 위해서 꾸민 방으로 옛날에 침실로 사용하던 파란색의 방이다. 그는 마드리드를 형성시킨 국왕으로 지금도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으며 벽에 걸린 4점의 초상화는 그의 부부와 까를로스 4세 내외의 상이라고 한다.
카스피리니의 방은 동양풍의 방으로 천정의 조각이 대단하며 상제리제가 크고 섬세하다.
바닥은 대리석으로 문양을 놓았고 천에 은실로 수를 놓아 벽을 만들었다.
도자기의 방은 벽면이 모두 도자기 도자기로 장식되었으며 노란색의 방은 천에 화려한 문양의 그림을 그려서 장식을 한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
연회장에는 긴 테이블에 수십 개의 의자가 놓았는데 145명의 식탁이 마련되어있었고 모두 은으로 만든 식기를 사용하는 것은 독약을 예방하기 위해서란다.
그 다음에는 악기의 방도 있었고 당구장과 여성 흡연실도 있었지만 모두가 호화찬란해서 나는 할말을 잊고 말았다. 스페인 왕궁은 참으로 대단한 건물이었다.
왕궁 부근에 있는 오리엔트 광장은 꽃과 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었다. 그 한가운데 있는 페리페 4세의 기마동상은 지금 당장이라도 적군을 무찌를 듯 힘이 흘러넘치고, 부근에는 시민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거기서 멀지 않는 곳이 있는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na)은 스페인의 위대한 작가 세르반 테스의 서거 3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것으로 그의 동상과 함께 돈키호테와 산쵸의 동상이 있다. 그 곁에 있는 두 여인은 이상과 현실의 여인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제일 위에는 지구의를 이고 책을 읽는 사람들의 상이 있는데 이곳은 지금 스페인의 상징으로 되어있다.
스페인 광장
1605년에 《돈 키호테 Don Quixote》를 지은 세르반테스는 1547년 에스파니아 알칼라데에나레스에서 출생했다. 가난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마드리드에서 로페스 데 오요스의 사숙(私塾)에서 잠시 공부를 한 것 외에는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는 이탈리아에 주둔하는 에스파냐 군대에 입대하여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왼손에 부상을 입었다. 1575년에 에스파냐로 귀국하던 도중 해적들의 습격을 받고 끌려가서 1580년까지 5년간 알제리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선교사에 의해 구출되었다.
1584년 18년 연하인 카타리나와 결혼하고 이듬해에 처녀작 소설 《라 갈라테아 La Galatea》를 출판했다. 그 후 많은 희곡을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금은 《알제리의 생활》과 《라 누만시아》 등 2편만 전해오고 있다.
그 후 문학을 버린 그는 무명의 세금 수금원으로 생계를 유지하였고, 몇 번인가 투옥당하기도 했으며 빈곤한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1605년 명작 《돈 키호테》 제1부를 출판하여 사람들의 갈채를 받았으나, 출판 후 어느 변사사건의 혐의를 받아 한때 구속된 적도 있었다.
1615년 《돈 키호테》 제2부를 출판하였으며 만년에는 종교적인 결사에 가담하고, 아카데미아 셀바헤라는 작가 단체에 가입하였다가 1616년 마드리드에서 사망했는데, 이 날은 W.셰익스피어 사망일과 같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명한 레얄마드리드 축구경기장은 무려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경기장이다. 유명한 축구클럽 레얄마드리드의 홈구장이기도 한 이곳은 축구박물관까지 있다니 대단한 곳이 아닌가. 이 축구클럽은 오늘도 세계적인 명문클럽임을 자랑하고 있다. 마드리드는 역사와 전통과 환경이 한데 어우러진 스페인의 수도다운 도시였다.
스페인 왕궁
마드리드 시가지
필립 4세 기마상
스페인 광장의 돈키호테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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