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sr]산행,여행

스페인 마드리드/톨레도

이름없는풀뿌리 2015. 9. 14. 16:14

 

 

스페인 광장

                      

 

16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마드리드는 시가지가 깨끗하고 크고 작은 공원이 많아서 좋다. 더구나 마드리드는 그 뜻이 ‘맑은 물의 도시’라니 얼마나 좋은가. 이 도시는 매일 3교대로 청소를 할 뿐만 아니라 자정 이후에는 모든 도로를 물로 씻어 내린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래서 시가지는 어디를 가도 깨끗하고 아름답다.

   마드리드는 인구 400만의 에스파냐의 수도로 나라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교통의 요지이다. 고도 655m의 고원 위에 자리한 이 도시는 연강수량은 438㎜에 불과하다.

  구시가지에는 왕궁과 간선도로의 기점이 된 <라푸에르타 델 솔(태양의 문)>이라 불리는 타원형 광장과 1600년대에 야외극장으로 지어져 발코니가 달린 건물에 둘러싸여 있는 마요르광장, 세계적인 프라도미술관 등이 있어서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고 있다.

  푸에르타 델솔은 옛날에 이 광장 출입문(푸에르타)에 태양(솔)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광장은 교통과 문화·경제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근대적인 편의시설이 맨 처음 갖추어진 곳으로 해마다 새해맞이 축제행사가 열린다.

   마드리드의 관광 1번지는 누가 무엇으라고 해도 스페인 마드리드 왕궁이다. 1700년대에 건립한 이 왕궁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이 있던 자리에 1736년 페리페 5세와 이사벨 여왕에 의해 29년간에 걸쳐서 새로 건축된 것이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인 슈바라, 사케티, 사바티니에 의해서 건설된 이 왕궁은 2,800여개의 방이 있고 지금도 스페인의 공식 행사는 이곳에서 치르고 있으며 50개의 방이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스페인 왕궁 

 

 

 

 

 

 

  1912년까지 국왕 실제로 거주한 이 왕궁은 벽화와 황금 테이불, 의자. 집기, 천정화 등이 한마디로 대단했으며 지금도 년 간 60일 정도는 국왕이 직접 사용한다고 한다.

  옛날에 연회장으로 사용하던 방에는 어느 장군의 흉상과 남여의 나신상이 있고 벽에는 벽걸이 카피트가 많았다. 상제리제가 많은 이 방에는 카를로스 1세의 상이 있고 왕과 왕비의 금옥좌와 사자상이 있었는데 사방으로 거울을 장식한 것은 사람들의 동정을 확인하기 위해서란다.

  까를로스 3세 방은 그를 기리기 위해서 꾸민 방으로 옛날에 침실로 사용하던 파란색의 방이다. 그는 마드리드를 형성시킨 국왕으로 지금도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으며 벽에 걸린 4점의 초상화는 그의 부부와 까를로스 4세 내외의 상이라고 한다.

  카스피리니의 방은 동양풍의 방으로 천정의 조각이 대단하며 상제리제가 크고 섬세하다.

바닥은 대리석으로 문양을 놓았고 천에 은실로 수를 놓아 벽을 만들었다.

  도자기의 방은 벽면이 모두 도자기 도자기로 장식되었으며 노란색의 방은 천에 화려한 문양의 그림을 그려서 장식을 한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

  연회장에는 긴 테이블에 수십 개의 의자가 놓았는데 145명의 식탁이 마련되어있었고 모두 은으로 만든 식기를 사용하는 것은 독약을 예방하기 위해서란다.

  그 다음에는 악기의 방도 있었고 당구장과 여성 흡연실도 있었지만 모두가 호화찬란해서 나는 할말을 잊고 말았다. 스페인 왕궁은 참으로 대단한 건물이었다.

  왕궁 부근에 있는 오리엔트 광장은 꽃과 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었다. 그 한가운데 있는  페리페 4세의 기마동상은 지금 당장이라도 적군을 무찌를 듯 힘이 흘러넘치고, 부근에는 시민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거기서 멀지 않는 곳이 있는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na)은 스페인의 위대한 작가 세르반 테스의 서거 3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것으로 그의 동상과 함께 돈키호테와 산쵸의 동상이 있다. 그 곁에 있는 두 여인은 이상과 현실의 여인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제일 위에는 지구의를 이고 책을 읽는 사람들의 상이 있는데 이곳은 지금 스페인의 상징으로 되어있다.

 

 

 

 

스페인 광장 

 

1605년에 《돈 키호테 Don Quixote》를 지은 세르반테스는 1547년 에스파니아 알칼라데에나레스에서 출생했다. 가난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마드리드에서 로페스 데 오요스의 사숙(私塾)에서 잠시 공부를 한 것 외에는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는 이탈리아에 주둔하는 에스파냐 군대에 입대하여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왼손에 부상을 입었다. 1575년에 에스파냐로 귀국하던 도중 해적들의 습격을 받고 끌려가서 1580년까지 5년간 알제리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선교사에 의해 구출되었다.

  1584년 18년 연하인 카타리나와 결혼하고 이듬해에 처녀작 소설 《라 갈라테아 La Galatea》를 출판했다. 그 후 많은 희곡을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금은 《알제리의 생활》과 《라 누만시아》 등 2편만 전해오고 있다.

  그 후 문학을 버린 그는 무명의 세금 수금원으로 생계를 유지하였고, 몇 번인가 투옥당하기도 했으며 빈곤한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1605년 명작 《돈 키호테》 제1부를 출판하여  사람들의 갈채를 받았으나, 출판 후 어느 변사사건의 혐의를 받아 한때 구속된 적도 있었다.

  1615년 《돈 키호테》 제2부를 출판하였으며 만년에는 종교적인 결사에 가담하고, 아카데미아 셀바헤라는 작가 단체에 가입하였다가 1616년 마드리드에서 사망했는데, 이 날은 W.셰익스피어망일과 같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명한 레얄마드리드 축구경기장은 무려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경기장이다. 유명한 축구클럽 레얄마드리드의 홈구장이기도 한 이곳은 축구박물관까지 있다니 대단한 곳이 아닌가. 이 축구클럽은 오늘도 세계적인 명문클럽임을 자랑하고 있다. 마드리드는 역사와 전통과 환경이 한데 어우러진 스페인의 수도다운 도시였다.   

 

 

 

 스페인 왕궁

 

 

 

 

 

 

 마드리드 시가지

 

 

 

 

 필립 4세 기마상

 

 

 

 

 스페인 광장의 돈키호테 상

 

 

 

 

똘레도 대성당 원경

 

                  15, 스페인 카톨릭의 총본산 똘레도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약 7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톨레도는 비록 그리 크지는 않지만 스페인 남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풍부한 문화유산이 있는 곳이다.  

  이 도시를 대표하는 똘레도 성채(Alcazar)는 14세기에 지어졌으며 톨레도의 가장 아름다운 유적으로 서고트인, 무슬람,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수차례 건설되었던 곳이다. 또한 스페인 내란동안 이곳은 파시스트들에 의해 작전 베이스로 사용되어 많이 파괴되었다. 성채는 네 개의 탑이 있어서 더욱 아름답고 드라마틱한 모습을 하고 있다.

  Zocodover광장은 톨레도를 대표하는 아담한 광장으로 과거에는 가축을 사고팔던 시장이었다. 이곳은 보통 톨레도 관광의 시작이 되는 지점이며 대부분의 톨레도 여행사에서 행사하는 대부분의 로컬 투어를 이곳에서 시작한다.

   야외에 설치된 에스카레터를 타고 올라간 유대인 마을은 좁은 골목길의 연속이었다. 이곳에 유태인들이 모여서 살았는데 국왕이 추방령을 내리자 그들은 포르투갈로 이주해 가버렸다고 한다.

  먼저 찾은 산토 토메 교회(Igesia de Santo Tome)는 1586년에 완성된 엘그레코(El ntierro)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The Burial of the Count OF Orgaz)이란 그림과 오르가스 백작의 묘가 있어서 유명하며 세계의 관광객들이 이 그림을 보기 위해서 많이 찾아온다.

  오르가드 백작은 신앙심이 강한 귀족으로 이 교회를 위해 많은 기부금을 헌납했으며 죽은 후에도 전 재산을 이 교회에 기증했다.

  16세기 후반에 그린 이 그림은 그가 죽은 지 200년이 지난 후 그린 것으로 상하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단부는 지상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죽은 백작을 장례를 치르는 광경이고 상단부는 천상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백작이 하늘로 승천하는 광경을 그린 것이다.

  그 다음에 찾은 톨레도 대사원 (Catedral de Toledo)은 스페인 카톨릭의 총본산으로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건물은 프랑스의 고딕 양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266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1493년에 완공되었으며, 길이 113m 폭 57m 중앙의 높이가 45m로 완공된 후에도 수차례 개축을 했지만 지금도 기본 골격은 변함이 없다.

  이 건물은 웅장하고 화려한 것이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가 그렇고 5개의 홀로 구성된 내부의 찬란한 조각이 그랬으며 완벽한 꼬딕양식의 건물이 또한 그랬다.

  먼저 본 제1실은 성가대실로 나무의자에 다양한 조각을 해놓았으며 의자 뒤에는 여러가지 전투장면을 조각해 두었다. 3면의 벽은 상부에는 대리석 조각의 성인상을, 하부에는 호두나무 성인상을 비치해 놓았으며 정면 중앙에는 예수의 부활을 안치해 놓았다.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은 벽에서 돌출하게 만들어 놓았고 정면 입구에는 예수를 않은 성모상을 안치해 놓았다.

  다음에 본 제2실은 제단으로 황금색 제단이 호화찬란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나무로 만든 조각품에다 도금을 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금빛이 너무나 찬란하여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신다. 중앙에 있는 성모상과 아기예수상은 은으로 만든 것이고 제일 높은 곳에는 십자가를 진  예수상이 안치되어 있다.

  제단뒷면은 18세기 나르시스토마에 의해서 조각도니 것으로 수많은 천사상과 함께 아래는 성모상과 예수님의 상이, 중간에는 4명의 천사상이, 제일 위에는 최후의 만찬이, 그 위에는 십자가를 든 예수상이 안치되어있다.

  제4실은 성직자의 회의장으로 황금색 천정화가 대단하고 벽의 위쪽에는 섬세한 구상화의  벽화가 그려져 있고 아래쪽에는 호두나무에 섬세한 조각을 한 것이 바람결에 나부끼는 소녀의 주름진 옷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나있다.

  제5실은 무늬가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바닥을 만들었는데 벽의 아래쪽은 역대 주교들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위에는 나체상의 대형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천정은 모두 금빛무늬가 찬란하다. 정면에는 위에는 천국의 예수상이, 중간에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아래에는 지옥의 나체상과 악마가 그려져 있다.

  제6실은 미술과 조각품의 전시실로 사제들의 옷과 종교용품 등이 전시되어있는데 그중에서도 주교들의 황금 옷은 붉고 푸르고 노란 바탕에 갖가지 수를 놓은 것이 호화롭기 그지없다. 이 방에는 성모 마리아 하강 그림과 함께 정면에는 커다란 예수상이 있고 그 주위에는 많은 작가들의 크고 작은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제7실은 보물실로 이 성당에서 가장 비싼 보석들로 가득 차 있다. 황금으로 된 장식품 중에는 16세기에 200kg나 되는 금으로 만든 황금성채가 있는가 하면 금으로 만든 십자가에 산호로 예수상을 만들어 놓은 것도 있고 각종 보석을 장식한 황금왕관, 황금 거울, 금으로 인쇄한 성경책, 엄청나게 큰 금반지 등은 보는 이를 놀라게 했다.

  이것들은 모두 남아메리카의 금을 가져와 만들었다니 그 때 아메리카에서는 얼마나 많은 금을 가져왔을까. 성당 뒤쪽에서 바라보니 정면에 있는 까마득히 높은 예수상이 하늘에 떠있는 것처럼 신비롭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지었다는 똘레도 대성당은 참으로 위대한 건물이다.

  오후 1시에 점심식사를 하고 부근을 산책하는데 11세기에 건설했다는 알깐다 다리가 보기만 해도 대단하다. 그래서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지만 스페인의 유적은 어디를 가나 대단하다.

  차를 타고 똘레도의 전망대라는 언덕에 올라서 시가지가 저만치 한눈에 보인다. 이것은 산토도밍고 교회이고 저것은 똘레도 대성당인데 11세기에 캐돌릭이 정복한 후 회교사원 터에다 성당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 두 건물을 중심으로 똘레도 시가지가 펼쳐져있는데 이곳 구시가지는 유네스코에 등록된 문화재란다. 똘레도는 산지를 감싸고 따호 강이 굽이쳐 흐르는 천연의 요새였다.

 

 

 

 

 

 

 

 똘레도 대성당

 

 

 

 

 똘레도 엣 다리

 

 

 

 

 똘레도 구시가지 원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