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낙서장(잡)

‘아버님’은 ‘아버지’의 높임말이 아니다

이름없는풀뿌리 2015. 10. 2. 11:23

‘아버님’은 ‘아버지’의 높임말이 아니다


‘아버지’는 호칭이며, 자기 아버지에 대한 존칭이다.

‘아버님’은 지칭이며, 호칭으로 사용할 시에는 다른 사람의 아버지에 대한 존칭이다.


‘아버지와 아버님’, ‘어머니와 어머님’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를 아무 거리낌 없이 ‘아버님’이라 부른다든지, ‘장인․장모’를 ‘아버지․어머니’라 부른다. 상인들은 아무나 붙잡고 ‘아버지․어머니’라 호객을 하고 있으며, 방송리포터나 아나운서들도 출연자들을 보고 ‘아버지․어머니’라며 같은 일을 저지르고 있다.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이루어지다 보니 자기 아버지를 ‘춘부장(椿府丈)’이라 부르는 망언에 까지 이르는 지경이다. 사람들은 잘못된 것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누구하나 바로 잡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일상 언어로 굳어지는 듯하여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글 중 몇 가지 사례를 들어 그 잘못을 지적하고 바른말 사용을 알아보도록 하자.


1) 2007년 8월 24일 J일보 블로그에서 추천한 글(http://blog.joins.com/daeyk/8413813)에 <무학이셨던 우리 아버님>, <우리 춘부장을 네이버에서 검색하여 보았다>라는 글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2) J일보에서 ‘우리말 바루기’를 연재하고 있는 000기자는 <‘엄마․아빠’는 ‘어머니․아버지’를 부르는 어린아이들의 말이고, ‘어머니․아버지’의 높임말은 ‘어머님․아버님’이다. …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설명의 첫째 항목에 ‘어머님․아버님’은 ‘어머니․아버지’의 높임말이라고 돼 있다. 어떤 경우에 사용하느냐 하는 것의 문제일 뿐이지 ‘어머님․아버님’이 ‘어머니․아버지’의 높임말이라는 것 자체에는 오류가 없다.(http://blog.joins.com/bsb2001/8033577)>비록 표준국어대사전을 인용하고는 있지만 ‘오류가 없다’라고 단정을 짓고 있다.


3) 2007년 8월 26일 J일보 000기자는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우리말의 문제점을 전통유교의 잔재라고 지적하며 (http://blog.joins.com/cjh59/8395317) <호칭의 허위의식은 실리보다 명분, ‘내재적 가치’보다 겉모습을 중시해온 전통적 유교주의의 폐단>이며, 또 <‘겉모습을 중시해온 전통적 유교주의’의 잔재일 것>이라며 우리말의 잘못된 사용을 전통유교 폐단의 잔재라 하였다.


‘아버지’를 국어사전에서는 ‘자기를 낳은 어머니의 남편, 즉 부친(父親)’이라 하였고, ‘어머니’를 ‘자기를 낳은 여자, 즉 모친(母親)’이라 하였다. 그리고 ‘아버님’을 ‘아버지’의 높임말이라 하였으며, ‘어머님’을 ‘어머니’의 높임말이라 하였다. 또한 ‘아범’을 ‘아버지’의 낮춤말이라 하였으며, ‘어멈’을 ‘어머니’의 낮춤말 이라 하였다.


국어사전에서 ‘호칭’이란 ‘불러 일컬음’이라 하였고, ‘지칭’은 ‘가리켜 일컬음’이라 하였다. 다시 말하면 ‘호칭’은 ‘면전에서 상대방을 부르는 말, 즉 2인칭’이고, ‘지칭’은 ‘글이나 편지 또는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을 가리키는 말, 즉 3인칭’인 것이다.


호칭이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을 해서 써야 한다. ‘아버지’는 나를 낳아주신 분이다. 국어사전에서는 그 의미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서인지 나를 낳아준 여인의 남편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낮춤말인가? 높임말인가? 국어사전에서는 ‘아버지’의 높임말은 ‘아버님’이라 했으니 분명 ‘아버지’는 ‘아버님’의 낮춤말이다.


나를 낳아주신 분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이다. 둘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한 분뿐인 나를 낳아주신 분에게 높임말을 쓸 때와 낮춤말을 쓸 때는 언제란 말인가? ‘아버지’라는 말은 윗사람을 칭할 때 쓰는 말이므로 그보다 더 존대하는 높임말은 없다. 윗사람을 경우에 따라 높게 또는 낮게 부른다면 그보다 더 큰 망발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말의 ‘아버지’는 극존칭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버님’의 낮춤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아버님’이 ‘아버지’보다 높임말이라는 것은 망언이요,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말이다. ‘어머니’ 역시 같다.


그렇다면 ‘아버님’은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여기에서는 한 가지 더 생각할 문제가 있는데 ‘아버지’는 호칭이라는 것이다. 즉 면전에서 부를 때 쓰는 말이다. 글이나 편지글 또는 돌아가셨을 때에는 ‘아버님’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지칭이라는 이야기이다. ‘아버지’와 ‘아버님’은 어디까지나 ‘호칭’과 ‘지칭’의 문제일 뿐이지, 높임말과 낮춤말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또한 ‘아버님’은 며느리가 시댁에서 남편의 아버지를 부를 때 쓰는 말이다. 친정의 아버지와 구분을 짓기 위해서이다. 사위가 ‘장인’을 부를 때도 ‘아버님’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즉 ‘아버님’은 ‘00의 아버지’의 준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결국 ‘아버님’은 ‘아버지’의 존칭이 아니라, 상대방(‘00의 아버지’ 할 때 ‘00’)을 위하다 보니 쓰는 말이며, 내 아버지와 구분하기 위해서 쓰는 말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친구나 다른 사람의 ‘아버지’를 뜻하는 말도 ‘아버님’이라는 말을 쓴다. 이때에도 ‘00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한자어로는 ‘춘부장(椿府丈)’이라 한다. 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 다른 사람에게 쓰는 말은 ‘선고(先考)’, ‘선친(先親)’이라고 쓰는 것이 좋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통명사로 생각할 때 낮춤말은 있다. ‘아범’과 ‘어멈’이 그것이다. ‘아범’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00의 아버지’를 친근하게 말할 때, ‘00아범’ 또는 줄여서 ‘아범’이라 말 할 수 있다. 대개 시아버지나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남편인 자기 자식을 칭할 때 쓰는 말이다. ‘어멈’ 또한 같이 쓰인다. 또한 예전에는 자식 있는 하인을 칭할 때도 썼다.


한자어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후 우리말에 녹아들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일제침략으로 나라를 잃고 난 뒤 오늘날까지 제대로 된 한문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아 한자어를 배우지 아니하고 자주 쓰지 않아 점차 잊혀지고 사라져 간다. 반면 우리말 한글이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지는 겨우 50여년 밖에 되지 않다 보니, 아직도 적당한 우리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로부터 60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버지’와 ‘아버님’이 혼용되고 ‘아버지’는 ‘아버님’의 낮춤말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망언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국어학자들은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망언을 사전에 넣지 말고, 합리적이고 타당한 우리글을 만들어 사전에 수록하여 쓰자고 한다면 누가 따르지 않겠는가? 나는 한문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말의 조어력이 한자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우리말의 70% 정도가 한자어로 이루어진 것을 볼 때 우리 모두가 한자를 배우고 한문을 익힌다면 위에 예를 든 글과 같은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성현의 글을 조박(糟粕)이라고 한다. 조박은 핵심적인 알맹이가 아니고 찌꺼기란 뜻이다. 성현의 사상이나 삶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삶의 길잡이가 될 수 있지만, 그대로 이해하고 외우고 모방한다고 해서 그 핵심을 다 전수해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토대로 해서 자신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말과 글의 쓰임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한다.


20070827, 올뫼 장광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