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역사의 뒤안길

羅世纘(나세찬,1498~1551) 일대기

이름없는풀뿌리 2015. 11. 8. 10:50

[이종범의 호남인물열전] [28] 나세찬

1534년(중종29) 초겨울 정시(庭試)가 있었다. 정3품 당상관 이하 문신에게 시국대책을 묻는 특별시험이었다. 문제는 예의와 겸양의 기풍을 만회하는 방안을 묻는 '예양책(禮讓策)'이었다. 김안로의 권세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때였다. 이런 답안이 올라왔다.

"지금 조정은 편당을 짓고 서로 배척하기에 겨를이 없고, 공심(公心)은 싸락눈처럼 쓸려가고 사의(私意)가 유성처럼 치닫는데, 어찌 조정의 화평을 바라겠나이까? 전하께서 만약 부정불공(不正不公)한 마수에 걸려들면 다만 불화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지록지간(指鹿之奸)이 어찌 진나라 이세(二世)의 조정에만 있겠나이까?"

여기에서 '지록지간'은 사슴을 말이라고 임금을 속인 조고(趙高)인데, 누가 보아도 김안로를 빗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권간(權奸)이 국정을 농단하면 조정 불화가 문제가 아니라 사직이 위태롭고 국가가 멸망한다는 것이다. 김안로의 눈에 불길이 솟았고 수족들은 벌떼처럼 일어났다. "조정을 비방하고 공갈했으며 배후가 있다."

의금부는 즉각 대책문의 주인공을 잡아들였다. 나세찬(羅世纘,1498∼1551)이었다. 나주 문평면 출생으로 1528년(31살) 문과에 들고 전라도 나주와 황해도 황주의 향교 훈도를 거쳐 두 달 전에 예문관 검열에 부임하였다. 본관은 금성.

의금부는 매섭게 배후를 추궁하였다. 나세찬은 나주훈도 시절 목사이던 박상에게 들은 말을 실토하였다.

"기묘년 선비가 어찌 전부 옳았겠는가? 그런데 너무 심하게 배척하였으니 어찌 원망스럽지 않겠는가!"


그러나 박상은 4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었다. 사자를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매질은 더욱 무서웠다. 그렇게 여섯 차례,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임금이 겨우 무마하였다. "글 짓는 선비의 목숨을 형틀 아래 맡길 수는 없다." 들것에 실려 옥문을 나오면서 외마디, "옥중에서 사십일, 귀양길은 삼천리."

유배지는 경상도 고성 바닷가. 하룻밤을 진주의 친구에게 신세졌다. 달빛 내린 창문에 그림자가 어른거리자 친구가 물었다. "어찌 이러시는가?" "발로는 뛸 수 없어도 손으로는 춤출 수 있다네." 사람들은 감탄하였다. "원통하고 서글퍼도 화락하고 진솔하니, 정말 원망을 모르는 사람이다."

무서운 고난에도 맑고 넉넉한 나세찬의 모습은 김안로의 흑심(黑心)을 비추는 거울과 같았다. 이로부터 김안로의 권세도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언제 지었을까? 임금은 배와 같다는 장편서사 '군유주부(君猶舟賦)'의 뭉클함은 차라리 시리다.

"누가 말하였는가? 지존의 한 분이 외로운 배보다 위태롭다고. 크고 넓은 저 강하가 아무리 위태로워도… 어찌 백성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겠는가? 임금이 스스로 나라의 명맥을 무너뜨린 것이라. 정말 민심을 한번 잃으면, 배 안의 믿던 사람들부터 모두 원수가 된다네."

흔히 정권 말기 권력누수를 절름발이 오리(lame duck)에 비유한다. 그런데 같은 배를 탄 믿었던 사람부터 등을 돌린다고 하였으니, 실로 그러하다. 그래서 마지막의 울림은 크다. "물은 백성이라, 험준하고 평탄함은 물에 있고, 편안하고 위태로움은 사람에 있다네."

 

전남 나주시 문평면 동원리 서원마을에 있는 송재사(松齋祠). 나세찬을 위한 사우. 여기에 정미사화로 사사된 나주 출신 임형수(굟亨秀), 이순신 휘하에서 거북선을 건조한 조선 최고의 선박기술자 나대용(羅大用), 나세찬의 손자로 정개청에게 배우고 임진왜란 때 소모사로 활약한 나덕원(羅德元), 나세찬의 종증손(從曾孫)으로 문과에 급제한 나무송(羅茂松)₩무춘(茂春) 형제를 배향하였다. 1702년에 세웠다. 1868년 훼철당하고 1933년 복원했다. /이종범 교수

 

 


中宗 78卷, 29年(1534 甲午 / 명 가정(嘉靖) 13年) 10月 29日(壬戌) 6번째기사

나세찬의 대책은 다음과 같다.

 

“하늘이 일원(一元)의 기(氣)로 위에서 화(和)하여 만물이 생성되고 임금이 일심(一心)의 덕(德)으로 위에서 화하여 만백성이 다스려지니, 위대하도다, 화의 덕이여!
책제(策題)에 이르신 ‘나라를 다스리는 길[爲治之道]’에서부터 ‘일일이 따져 말할 수 있겠는가.[可歷數而言之歟]’까지 두세 번씩 봉독하고 매우 황공하였습니다.
예절과 겸양은 치도에 있어서 크나큰 임무이며 풍속은 국가의 원기입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인심이 풍속에 관계되고 천하의 풍속이 예양(禮讓)에서 이루어집니다. 풍속을 선하게 하고 싶은 이는 반드시 예절과 겸양을 숭상하며, 예절과 겸양을 숭상하는 이는 반드시 인심을 화합하게 합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인심이 화합되지 않으면 예절과 겸양은 그것을 숭상하는 근본을 이미 잃은 것인데 예절과 겸양이 어떻게 숭상되겠습니까? 예절과 겸양이 숭상되지 않는다면 풍속은 이미 선하게 할 여지를 잃은 것인데 풍속이 무엇을 말미암아 선하게 되겠습니까.
대저 민생(民生)은 본래 후하고 인심은 본래 화목한 것입니다. 예절과 겸양이 숭상되지 않고 풍속이 선하지 않은 것이 어찌 풍속의 죄이겠습니까. 도리어 그 근본이 먼저 없어진 탓입니다. 본래 후한 것이 민생이지만 언제나 후할 수는 없으며, 본래 화목한 것이 인심이지만 언제나 화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 성쇠가 있게 되는 기틀인 것입니다. 상고 시대의 요(堯)·순(舜)을 상고해 보건대, 밝은 덕(德)으로써 황극(皇極)을 세우고 백성을 화합으로 인도하였으므로 조정에서는 구덕(九德)17281) 이 다 이루어지고 도유(都兪)17282) 하고 서로 겸양하는 미풍이 있었습니다. 조정의 화합이 이와 같다면 백성의 화합을 알 만합니다. 백성들은 공명 정대하고 화락하여 집집마다 다 표창할 만한 아름다운 풍속을 지녔습니다. 백성의 화합이 이와 같다면 만방(萬邦)의 화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화합하게 되는 차례를 궁구한다면, 구족(九族)의 화합하는 것은 백성의 마음을 골고루 밝히는 것에 앞서는 것이고 백성의 마음을 골고루 밝히는 것은 만방을 화합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구족이 이미 화목하고 백성의 마음이 골고루 밝으며 만방이 화합했다면 당시의 천하는 티없이 맑은 세상이었을 것이므로 예절이나 겸양이 불미할까, 풍속이 온후하지 못할까를 어찌 염려나 했겠습니까. 진실로 아득한 세상이라 논할 수는 없습니다.
삼대(三代)17283) 이후로 예교(禮敎)의 교화가 천하에 행해지지 않은 지가 오래입니다. 한 고조(漢高祖)는 포학으로 망한 진(秦)의 뒤를 이었으므로 관후한 장자의 풍도로써 한나라 일대의 왕업을 이룩했으며, 그 관인(寬仁)의 일맥(一脈)은 천하의 인심을 화합하기에 또한 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엔 풍속의 온후함을 숭상하여 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으니 인심이 화합하지 못하다거나 풍속이 순박하지 못하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만 성인의 ‘중화(中和)’라는 일단만 빌어다가 장구한 다스림을 이루고자 하였으므로, 그 퇴폐되고 부진(不振)한 인심은 이미 정치와 교화에 있어서 큰 좀[蠧]처럼 되어서 마침내 왕망(王莽)이 찬탈하는 화(禍)를 구제하지 못하였으니, 이래서야 풍교(風敎)를 거론할 수 있겠습니까? 한(漢)·당(唐) 이후로, 도를 조금 알았다고 일컬어지는 임금들이 있기는 하였지만 어떤 임금은 대강(大綱)을 바루지 못했고 어떤 임금은 온갖 조목을 펴지 못했으니, 예절과 겸양 및 정치와 교화의 미덕을 시행할 근본을 이미 잃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시기하고 서로 모함하는 습속을 면치 못했으니, 오늘날에 전하를 위해 거론할 만한 가치도 없습니다.
책제(策題)에 ‘나의 보잘것없는 덕으로[予以涼德]……’에서부터 ‘……매우 슬프게 여긴다[予甚悼焉]’까지 재삼 봉독하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주상 전하께서 태평한 시대에 처하시고 큰 포부를 가지시어 이제(二帝)17284) 삼왕(三王)17285) 의 도를 마음에 쌓으신 지 30년이 되어갑니다. 마땅히 우선해야 할 예절과 겸양의 풍속에 대하여 이를 유지하고 배양해가는 공을 극대화하지 않음이 없으셨다면, 도가 흡족하고 정치는 다스려지고 풍속은 순미(淳美)한 징후를 보여야 마땅할 텐데, 어찌하여 선비들은 성현의 광명 정대한 학문을 힘쓰지 아니하고 사견(私見)을 고집하여 각기 두 마음을 품고 있으며, 조정에 벼슬하는 자들은 마음을 합쳐 일에 힘쓰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호오(好惡)가 한결같지 아니하며 옳고 그름이 분명치 아니하여 논의가 있을 때엔 어느 말을 들어야 할지를 모른단 말입니까. 이 어찌 인심이 크게 어그러진 것이라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전하의 조정이 화합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정한 마음은 구름 흩어지듯 사라지고 사특한 뜻은 유성처럼 달리며 사사롭게 서로 표방하고 앞을 다투어서 서로 속이며, 자세하기 좋아하는 것은 군자가 익힐 일이 아닌데 지금 다들 익히며, 무리를 짓는 것은 군자가 숭상할 일이 아닌데 지금 다들 숭상하며, 젊은이가 어른을 능멸해서는 안 되는데 지금 다들 능멸하며, 천인이 귀인을 해쳐서는 안 되는데 지금 다들 해치고 있으니, 이 어찌 사습(士習)의 큰 병통이 아니겠습니까. 전하의 풍속이 화합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자식이 하늘과 땅으로 여기는 것은 부모인데 제 손으로 시해하는 자가 있으며, 종이 복종하고 섬기는 자는 상전인데 상전을 죽이는 자가 있으며, 아전은 관아에서 일을 보는 자인데 관원을 모해하는 자가 있으며, 처첩(妻妾)은 남편이 부양하는 자인데 모해하는 자가 있으니, 이 어찌 인륜의 큰 변괴가 아니겠습니까. 전하의 민심이 화합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아, 이러한 조정으로 예절과 겸양의 풍속을 이루려고 한다면 어렵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민심으로 풍속이 선하게 되기를 바란다면 어렵지 않겠습니까.
서로 사양하는 아름다움이 당(唐)·우(虞)의 조정에만 행해지고 유독 전하의 조정에서는 행해지지 않아야 하며, 집집마다 표창해야 할 착한 풍습이 어찌 당우의 민심에만 행해지고 유독 전하의 민심에는 행해지지 말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어찌 인심의 화합이 유독 당우에만 풍성하고 오늘의 인심엔 인색하겠습니까. 조정은 사류들의 근본인데 조정이 이와 같으니 선비들의 학문이 밝지 못한 것이 괴이할 것 없으며, 사류들은 만백성의 소망인데 사류로서 이와 같으니 만백성들이 화합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신이 일찍이 백집사(百執事)의 말직에 있으면서 그 까닭을 곰곰 생각하여 아뢰려 한 지 이미 오래인데, 전하께서 책제(策題)에서 언급하셨으니 하늘과 땅, 귀신과 사람 모두의 복입니다. 신은 삼가 다음과 같이 씁니다.
수(受)는 억만 명의 신하를 두었으나 억만의 마음으로 갈라졌고 주(周)나라는 신하 3천 명을 두었으나 마음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이것으로써 논하건대, 천하의 인심은 진실로 하나가 아니면 안 되고 더욱이 조정의 인심은 하나여야 합니다. 하나로 만드는 길은 화합에 있습니다. 조정이 화합을 잃은 근본 이유는 신이 감히 그 유래를 알지 못합니다. 지난 폐조(廢朝)17286) 때 전국의 인심이 모두 난정(亂政)을 싫어하였는데 전하께서 백성을 물불 같은 환란에서 건지신 뒤로 전국의 인심이 한가지로 선정(善政)을 좋아하여 오늘 같은 좋은 시대에 이르렀는데, 조정의 불화가 어디에서 일어나고 어느 일에서 이루어졌는지 신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아, 오늘날의 조정의 마음은 몇 억만의 마음인 줄 알 수조차 없는 것입니다. 차마 말을 못하겠습니다. 지금 조정에 있는 자들을 보면, 도를 함께하는 자끼리 벗삼는다고 말하면서 제각기 편당된 견해를 품으며, 항상 어떻게 하면 벼슬을 얻을까 하는 걱정과 혹시 잃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가슴속에 있으므로 서로 배척하기에 겨를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한직에서 원한을 품고 있는 자가 뒷날 분란의 불씨가 될 줄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식견이 있는 이가 한심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만약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바르지 못하고 공변되지 못한 자의 마수에 떨어진다면 전하의 조정은 아마도 불화(不和)에만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중용》에, 중화(中和)를 이루면 천지가 자리하고 만물이 길러진다고 하였습니다. 천지도 자리할 수 있는데 하물며 본래 후한 민생이겠습니까. 만물도 길러질 수 있는데 하물며 본래 화한 인심이겠습니까. 중화의 도를 가지고 황극의 덕을 세워서 먼저 호오(好惡)와 시비의 법칙부터 정한 뒤 인물을 진퇴시키는 것을 한 사람의 말 때문에 그 일이 좌우되게 하지 않으며 내 스스로의 호오와 시비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본심의 기준을 어그러지게 하지 않는다면 조정의 선비들은 모두 전하의 중화의 덕으로 인하여 편당이 없어져서 호오가 하나로 되고 시비가 정해지며 조정이 거의 화합하게 될 것입니다. 조정이 이미 화합했다면 장중하게 서로 사양하는 예가 옛날엔 있었는데 지금인들 어찌 없겠습니까. 집집마다 표창할 만한 풍속이 옛날에 있었는데 지금엔 왜 없겠습니까.
논쟁이 없을 수는 없지만 마침내 화합되지 않으면 안 되며 시비는 가려져야 하지만 마침내는 화합되어져야 합니다. 하물며 편을 갈라서 화합할 줄 모르는 것이 소인인데 자세하기 좋아하고 을 귀히 여기는 버릇을 고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린이와 어른, 귀한 자와 천한 자의 분수는 하늘이 정한 질서인데 어른을 능멸하고 귀한 자를 해치는 풍조를 고쳐 없애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부자의 천륜과 부부의 도의는 예부터 한번도 민멸된 적이 없는데 한 사람이라도 인륜상의 불행이 있으면 어찌해서 교화하여 선한 다스림이 되게 하지 않습니까. 노복과 주인, 서리(胥吏)와 관원간의 상하의 분수 또한 자연 질서에 근원해서 만든 예(禮)인데, 계층 사이의 일시적 불행을 어찌해서 선한 풍속으로 교화하지 않습니까. 조정의 불화가 염려될 뿐입니다. 신은 이 두어 가지 폐단이 조정의 불화에서 생긴 줄로 아나 조정의 불화는, 누가 그 잘못을 책임질지 모르겠습니다. 《역경》에, 나의 활동을 살피고 백성의 삶을 살핀다고 했습니다. 전하께서는 어찌해서 만백성의 풍속이 아름다운가 아름답지 못한가를 살핌으로써 조정을 살피지 않으시며, 조정의 불화를 살핌으로써 그 까닭이 자신에게 있음을 살피지 못하십니까. 우(禹)순(舜)에게 경계드리기를, 속마음을 화(和)하게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신도 조정의 불화야말로 조정의 큰 근심거리이며 조정의 병통을 구원하는 길은 조정의 마음을 화합하는 길보다 더 나은 길이 없다는 것을 더욱 잘 압니다.

 

전하께서 만약 화합을 이루는 근본을 듣고자 하십니까? 송(宋)나라의 신하 주자(朱子)가,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몸을 단속하며 사물을 대할 적마다 조그만 어긋남도 없고 가는 곳마다 그러하지 않은 적이 없다면 화(和)의 극치를 이룬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임금이 된 이는 일심(一心)의 온전한 덕을 화평하게 가져 천하의 인민 모두가 크고도 넓은 왕도(王都)에로 돌아오게 한다면 이것은 천지(天地)와 일원(一元) 가운데서 어느 한 물건도 일원의 원리 속에 화합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윤(伊尹)도 자신이 탕(湯)과 함께 일덕(一德)을 지니고 능히 천심(天心)에 부합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로 보건대, 임금은 위에서 화합하고 대신은 밑에서 화합해야만 화합의 도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힘써 이윤 같은 대성인을 찾아 그로 하여금 하늘이 준 벼슬에 앉아 하늘이 준 직무를 다스리며 정사를 보는 가장 높은 기관에서 마음을 화합하게 가져 힘써 일하게 한다면, 날마다 삼덕(三德)과 육덕(六德)이 실현되어 이것이 태평한 세월에 흔히 보는 일물(一物)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또한 백관(百官)들은 서로 본받아 함께 다스림을 이루며 화기(和氣)가 넘치어 천지에 충만할 것입니다. 인심의 화합이 이 정도에 이르면 예양(禮讓)이나 풍속 따위의 일은 다스림에 따르는 하나의 부수물에 불과할 뿐일 터이니 염려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책제(策題)의 끝 부분의 물으심에 신은 더욱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지금의 시무(時務)를 알지 못하는 신으로서 어찌 조정의 일을 알겠습니까. 한(漢)나라의 신하 동중서(董仲舒)의 말에 ‘임금은 마음을 바르게 하여 조정을 바르게 하고 조정을 바르게 하여 백관(百官)을 바르게 하고 백관을 바르게 하여 만백성을 바르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로써 물으심에 대해 만분의 하나라도 책임을 면할까 합니다. 황공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태백산사고본】 39책 78권 19장 A면
【영인본】 17책 541면

[註 17282]도유(都兪) : 도는 왕의 의견에 찬탄할 때 신하가 내는 탄미의 소리요, 유는 신하가 제시한 의견에 왕이 환영 내지 허락의 뜻을 나타낼 때 내는 소리다. 《서경(書經)》 요전(堯典)·순전(舜典)·대우모(大禹謨).

[註 17283]삼대(三代) : 하(夏)·은(殷)·주(周).

[註 17284]이제(二帝) : 요제와 순제.

[註 17285]삼왕(三王) : 우왕·탕왕·문왕·무왕.

[註 17286]지난 폐조(廢朝) : 연산군.

 

羅世纉對策曰:
天以一元之氣, 和於上, 而品物遂; 君以一心之德, 和於上, 而萬民治。 大哉, 和之爲德乎! 聖策曰: “爲治之道, 止可歷數, 而言之歟?” 臣奉讀再三, 不勝殞越于下。 臣聞禮讓者, 治道之大務, 而風俗者, 國家之元氣也。 是以天下之人心, 關於風俗, 天下之風俗, 成於禮讓。 欲善其風俗者。 必崇其禮讓, 欲崇其禮讓者, 必和其人心。 何者, 人心不和, 則禮讓已失其崇之之本, 而禮讓何自而崇乎? 禮讓不崇, 則風俗已失其善之之地, 而風俗何由而善乎? 大抵, 惟民生本厚, 人心本和, 而至於禮讓之不崇, 風俗之不善, 是豈風俗之罪哉? 顧其本先亡故也。 本厚者民生, 而不能常厚; 本和者人心, 而不能常和者, 此豈非世道升降之機哉? 曰若稽古上世, , 以克明之德, 建極於上, 而導民於和, 故問其朝, 則九德咸事, 而濟濟焉有都(喩)〔兪〕相讓之美焉。 朝廷之和如此, 則百姓之和, 可知矣。 問于民, 則百姓昭明, 而熙熙焉有比屋可封之俗焉。 百姓之和如此, 則萬邦之和, 可知矣。 然究其所以和之之序, 則九族旣睦者, 非先於平章百姓乎? 平章百姓者, 非先於協和萬邦乎? 九族之旣睦, 百姓之平章, 萬邦之協和, 則當時之天下, 皆將游泳於和氣中鳶魚之天, 而禮讓之不美、風俗之不厚, 何足慮哉? 信乎! 邈乎! 其無以議爲也。 三代以降, 禮敎之化, 不行於天下久矣。 承暴決裂之餘, 以寬厚長者之風, 成一代漢家之業, 而寬仁一脈, 亦足以和天下之心, 故當此之時, 風流尙厚, 而至於恥言人過, 則人心, 不可謂不和, 風俗, 不可謂不淳矣。 然徒借聖人中和之一端, 而欲成久長之治, 故其頹靡不振之人心, 已爲風化之大蠹, 而竟不救王家僭竊之禍, 則奚足與議於風敎哉? 以來, 固有號爲稍稍知道之君, 而或有大綱不正焉, 或有萬目不張焉。 其於禮讓風化之美, 已失其施之之本, 而猶不免媮激相傾之習焉, 則不可爲殿下今日道也。 聖策曰: “予以涼德, 止予甚悼焉。” 臣捧讀再三, 不勝殞越于下。 恭惟主上殿下, 處豐亨之久, 當大有爲之交, 以二帝、三王之道, 會諸心, 將三十年于玆矣, 而其於禮讓風俗之所當先者, 其所以維持作養之功, 無所不用其極, 則是宜道洽政治, 風淳、俗美之候, 而奈何爲士者, 不務聖賢光明、正大之學, 而曲執私見, 各懷貳心, 至於朝廷之上, 紆靑(施)〔拖〕紫者, 漫不知同寅協恭爲何事, 而好惡不一, 是非不明, 論議之際, 莫適所從, 則此豈非人心之大戾乎? 殿下之朝廷, 可謂和乎? 或有公心雲掃, 私意星馳, 私相榜標, 競尙欺誣。 好俠非君子之習, 而今皆習之, 貴儻非君子之尙, 而今皆尙之; 少不可凌長, 而今皆凌之, 賤不可妨貴, 而今皆妨之, 此豈非士習之大病乎? 殿下之風俗, 可謂和乎? 子之天地者, 父母, 而或有手刃者焉: 奴之服事者, 家主, 而或有戕殺者焉, 吏胥者, 事於官者也; 而圖之者有焉, 妻妾者, 養於我者也, 而謀之者有焉。 此豈非人倫之大變乎? 殿下之民心, 可謂和乎? 嗚呼! 以此朝廷, 欲成禮讓之風, 不亦難乎! 以此民心, 欲致風俗之善, 不亦難乎! 相讓之美, 何獨行於之朝廷, 而獨不行於殿下之朝廷乎? 可封之俗, 何獨行於之民心, 而獨不行於殿下之民心乎? 是豈人心之和, 獨豐於, 而獨嗇於於今之人心乎? 朝廷者, 士類之本, 而朝廷而如是, 無怪乎士學之不明也。 士類者, 萬民之望也, 而士類而如是, 無怪乎萬民之不和也。 臣嘗居百執事之後, 而私究其故, 欲言者久矣。 殿下之言及此, 天地神人之福也。 臣謹按《書》曰: “有臣億萬, 唯億萬心; 有臣三千, 唯一心。” 以是論之, 天下之人心, 固不可不一, 而朝廷之人心, 尤不可不一也。 一之之道, 其不在於和之乎? 朝廷失和之本, 臣不敢知, 其來有由乎! 昔在廢朝, 一國之人心, 同於厭亂, 而自殿下, 拯溺救焚之後, 一國之人心, 同於好治, 式克至于今日休。 臣不知朝廷之不和, 起於何道, 而成於何事也。 嗚呼! 今之朝廷之心, 抑不知其幾億萬心耶? 不忍言也。 竊觀今世之立朝者, 自以爲同道爲朋, 各懷偏黨之見, 不以邪正、消長, 爲國家治亂之大慮, 而患得、患失之念, 常存于中, 故互相排斥之不暇。 不知銜冤於散地者, 爲他日治亂之一機, 豈不寒心於有識哉? 殿下若於此, 小墜不正、不公之手, 則殿下之朝廷, 恐不止於不和也。 臣聞《中庸》曰: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天地可位, 而況於本厚之民生乎? 萬物可育, 而況於本和之人心乎? 以中和之道, 建皇極之德, 而先定其好惡、是非之天, 其於人物之進退, 不以一人之言, 有所輕重於其中, 而使己之好惡、是非, 不戾於本心之權衡, 則朝廷之士, 亦皆以殿下中和之德, 爲無偏、無黨之會極, 好惡可一、是非可定, 朝廷庶可和矣。 朝廷旣和, 則濟濟相讓者, 古有其禮, 而今豈無之乎? 比屋可封者, 古有其俗, 而今豈無之乎? 論議不可不爭, 而竟不能不歸於和; 是非不可不分, 而竟不能不歸於和矣。 況乎比而不和者, 小人, 則好俠貴黨之習, 其可不改之乎? 少長、貴賤之分, 乃天之所序, 則凌長、妨貴之風, 其可不革之乎? 父子之天、夫婦之義, 終古未嘗泯滅, 則一人彝倫之不幸, 豈不化爲善治乎? 奴之於主、吏胥之於官也, 上下之分, 亦源於天秩之定禮, 則一時尊卑之不幸, 豈不化爲善俗乎? 只慮朝廷之不和耳。 臣故以數者之弊, 生於朝廷之不和, 而朝廷之不和, 不知(雖)〔誰〕任其咎哉? 《易》曰: “觀我生, 觀民也。” 殿下何不觀萬民風俗之美惡, 而觀其朝廷, 觀其朝廷之不和, 而觀其在己乎? 之戒曰: “和衷哉!” 臣益知朝廷不和, 爲朝廷之大患, 而救朝廷之病, 無如和朝廷之心也。 殿下欲聞其致和之本, 則臣子朱子不云乎? “自戒懼而約之, 以至於應物之處, 無小差謬, 而無適不然, 則極其和矣。” 爲人主者, 苟能和一心之全德, 而使天下人民, 皆歸於王道蕩蕩之中, 則比如天地一元之中, 寧有一物之不和其性哉? 伊尹曰: “躬曁, 咸有一德, 克享天心。” 由是觀之, 人主和德於上, 而大臣和協於下, 乃所以和之之道也。 今者務得如伊尹之元聖者, 使之居天位、治天職, 而同寅協恭於廊廟之上, 則日宣三德、六德者, 亦不過泰和陶冶中之一物, 而百僚師師, 同底于治。 和氣薰蒸, 透徹於天地之中矣。 人心之和, 至於如此, 則禮讓風俗等事, 特治化中緖餘耳。 何足慮哉? 聖策篇終之問, 尤有戚戚焉。 臣不識當時之務, 安知朝廷之事哉? 臣嘗讀董仲舒之言曰: “人君正心, 以正朝廷; 正朝廷, 以正百官; 正百官, 以正萬民。” 願以是說, 仰塞聖問之萬一。 臣不勝激切屛營之至。

 


羅世纘(나세찬)1498 ~ 1551
본관 금성. 자 비승(丕承). 호 송재(松齋). 시호 희민(僖敏). 1525년(중종 20) 사마시를 거쳐, 152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36년 문과중시에 장원급제, 봉교(奉敎)가 되었다. 중시에 응시할 때 대책문(對策文)에서 김안로(金安老)의 전횡을 통박한 것이 화근이 되어, 김안로의 모함으로 고성에 위리안치되었다. 1537년 김안로가 사사(賜死)되자 봉교에 복직, 이듬해 다시 발영시(拔英試)에 장원급제하여 문명을 떨쳤다.

1544년 이조참의(參議)·동부승지(同副承旨)·대사성을 거쳐, 한성부우윤(右尹)으로 춘추관동지사(同知事)를 겸임하여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판결사(判決事)·대사간, 1546년(명종 1) 대사헌(大司憲), 1548년 충청도관찰사·한성부우윤을 거쳐 이듬해 전주부윤이 되었다. 전남 나주의 송재사(松齋祠)에 배향(配享)되었다. 문집에 《송재유고》, 저서에 《병상부(病床賦)》 등이 있다.


四碧亭(사벽정)-羅世纘(나세찬)

 

槐松茅水列山根(괴송모수렬산근) : 회나무, 솔나무, 띠풀, 그리고 물이 산 밑에 벌려있고
太吠鷄鳴自一村(태폐계명자일촌) : 한 마을에서 개 짖고 닭우는 소리 들려온다
邀弟邀兄兼邀客(요제요형겸요객) : 동생 맞고, 형 맞고 그리고 손님도 맞아
攜琴携牘又携蹲(휴금휴독우휴준) : 거문고 가지고, 책 가지고 그리고 술동이도 준비한다.
笑吟幾戒農桑務(소음기계농상무) : 웃으며 시 읊으며 몇 번이나 농사와 양잠일 경계했으며
學問寧忘孝悌敦(학문녕망효제돈) : 학문함에도 어찌 충성과 효도의 돈독함을 잊겠는가
獨撫繁纓回白首(독무번영회백수) : 혼자 며슬길 버리고 늙어서 돌아왔으니
只綠時未報君恩(지록시미보군은) : 다만 시대가 성은에 보답하지 못할 때이기 때문이라네

  

 

送宋使重之燕京(송송사중지연경)-羅世纘(나세찬)

송사중이 연경에 가는 것을 전송하다-羅世纘(나세찬)

眼看遊舊半王京(안간유구반왕경) : 어릴 적 놀던 친구 반 수가 서울에 있어
蕭散秋風獨遠行(소산추풍독원행) : 가을 바람에 쓸쓸히 흩어져 홀로 먼 길을 간다
同國暮年忻末契(동국모년흔말계) : 같은 백성 늙은 나이에 뜻을 같이함이 기뻐서
別筵斜日惜深情(별연사일석심정) : 떠나는 자리의 석양은 깊은 정을 애석하게 한다
承顔膝下千金重(승안슬하천금중) : 당상에 모신 임금님 천금보다 귀중하고
奉詔關中萬里輕(봉조관중만리경) : 관중으로 가는 임금의 조서 받으니 만리도 가까워라
歷歷沿途皆勝習(역력연도개승습) : 지나가는 길가는 모두가 절경이라
詩魂先動過泰城(시혼선동과태성) : 진성을 지나자니 시혼이 먼저 이는구나.

  


恒慄兄弟(항율형제)-羅世纘(나세찬)

항률형제-羅世纘(나세찬)

墳墓天南每自悲(분묘천남매자비) : 분묘 보이는 남녁하늘 매번 슬픈데
況逢秋夕月明時(황봉추석월명시) : 하물며 추석 맞은 달 밝은 밤에야 어떠하리
望思巖畔泉應咽(망사암반천응열) : 망사암 부근 샘물소리 응당 울부짖고
逅遠臺前草幾衰(후원대전초기쇠) : 추원대 앞 풀들은 몇 번이나 시들었나
覺是今朝猶未去(각시금조유미거) : 올바른 도리 깨달은 오늘 아침에 오히려 가지 못하고
知非他日又何之(지비타일우하지) : 그릇됨을 아는 다른 날은 또 어디로 갈까
麻衣濕盡孤身淚(마의습진고신루) : 마의에 흠뻑 젖은 고신의 눈물
更向松楸滿面垂(갱향송추만면수) : 다시 선영을 향하니 얼굴에 눈물이 가득 흘러내린다.

  

 

三奇詩(삼기시)-羅世纘(나세찬)

삼기시-羅世纘(나세찬)

樓中邂逅有三奇(누중해후유삼기) : 누대에서 우연히 만난 세 사람

風雨樽前各把詩(풍우준전각파시) : 비바람 치는데 술동 앞에 앉아 각각 시를 짓는다

何日粗休心事了(하일조휴심사료) : 어느 때 내 마음의 일 쉬고서

閑尋漁艇下江時(한심어정하강시) : 한가로이 어선 찾아 강으로 내려갈까.

  

 

贈安正字(증안정자)-羅世纘(나세찬)

안정자에게-羅世纘(나세찬)

君何先達我何遲(군하선달아하지) : 그대는 어찌 먼저 출세하고 나는 어찌 늦은가

秋菊春蘭各有時(추국춘란각유시) : 가을엔 국화, 봄에는 난초 각각 때가 있는 것이네

莫道當年先折桂(막도당년선절계) : 당년에 먼저 계수나무 꺾었다 말하지 말게

廣寒猶有最高枝(광한유유최고지) : 광한전에는 여전히 가장 높은 가지 남아있다네

  

 

射帿(사후)-羅世纘(나세찬)

과녁을 쏘다-羅世纘(나세찬)

臂弓腰矢舞蹲蹲(비궁요시무준준) : 팔뚝엔 활, 허리엔 화살 차고 덩실덩실

風正帿顔日欲曛(풍정후안일욕훈) : 바람은 과녁에 불어들고 해는 지려한다

痛飮百杯連百中(통음백배연백중) : 백잔 술을 통음하고도 백번을 다 쏘아 맞추니

鼓聲雷落碧山雲(고성뇌락벽산운) : 북소리가 우뢰처럼 푸른 산에 떨어진다

  

 

附次韻潭陽府使盧克昌(부차운담양부사노극창)-羅世纘(나세찬)

담양부사노극창에게 차운하여부치다 -羅世纘(나세찬)

披榛鞭款段(피진편관단) : 잡목을 헤치고 관단마 채찍질하여
爲訪故人來(위방고인래) : 친구 찾아왔다
白雪埋山寺(백설매산사) : 산사는 흰 눈에 묻혀있고
黃眉入酒杯(황미입주배) : 황미는 술잔에 들어온다
君飛騰最健(군비등최건) : 그대는 비등하고 건강도 최고인데
吾老病堪欸(오노병감애) : 나는 병들고 늙어 한숨쉬노라
天使雲泥隔(천사운니격) : 하늘이 우리를 하늘과 땅으로 나누니
離腸謾九回(이장만구회) : 이별의 슬픔이 온몸에 퍼져온다

  

 

還七精寺(환칠정사)-羅世纘(나세찬)

칠정사에 돌아오다-羅世纘(나세찬)

布衣讀書處(포의독서처) : 포의로 글 읽던 곳으로
二十一年來(이십일년래) : 이십일년만에야 돌아왔다
興廢樓餘地(흥폐누여지) : 흥망성세로 누각의 터는 남아
悲歡酒滿杯(비환주만배) : 슬픈과 기쁨이 술잔에 가득하다
山深新雪盛(산심신설성) : 산이 깊어 새 눈이 쌓이고
林精舊禽欸(임정구금애) : 숲은 고요하고 옛 새들은 탄식한다
明日紅塵裏(명일홍진리) : 내일도 홍진 속에 사니
應知白首回(응지백수회) : 응당 배수로 돌아올 것을 알겠다

  

 

暮浦歸帆(모포귀범)-羅世纘(나세찬)

해 저문 포구로 돌아오는 돋단배 -羅世纘(나세찬)

芳州春水生(방주춘수생) : 녹음방초 우거진 모래섬에 봄물이 흐르고

風便一帆輕(풍편일범경) : 바람이 부니 한 돗단배가 빠르구나

夜深弄明月(야심농명월) : 밤 깊어 밝은 달과 노니

恰得鏡中行(흡득경중행) : 흡사 거울 속을 달리는 듯하여라.

  

 

沙池賞蓮(사지상연)-羅世纘(나세찬)

모랫가 연못에서 연꽃을 감상하다-羅世纘(나세찬)

太華誰移種(태화수이종) : 태화못에 누가 옮겨 심었는지

天然出水中(천연출수중) : 천연히 물 속을 뚫고 나왔구나

無風香自遠(무풍향자원) : 바람 없어도 향기 저절 멀리 퍼지니

欲採思何窮(욕채사하궁) : 캐고자 하는 생각 어찌 그치리오

  

 

龍庵望雲(용암망운)-羅世纘(나세찬)

용암에서 구름을 바라보다-羅世纘(나세찬)

神物厭平地(신물염평지) : 신령한 사물은 평지를 싫어하니

噓雲巖上水(허운암상수) : 바위 위의 물에서 구름을 불어올린다

變化在須臾(변화재수유) : 그 변화 잠깐동안에 이루어지니

蒼生望一起(창생망일기) : 사람들은 한번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南岡尋柏(남강심백)-羅世纘(나세찬)

남쪽 언덕에서 측백나무를 찾아-羅世纘(나세찬)

獨抱後調操(독포후조조) : 뒷날의 지조를 혼자 품고서

不愁風雨忙(불수풍우망) : 풍우의 두려움을 근심하지 않는구나

靑靑伴疎竹(청청반소죽) : 푸르고 푸르러 성긴 대만 상대하며

高處宿鸞鳳(고처숙난봉) : 높은 곳에서 잠자는 난새와 봉황새이어라.

  

 

槐亭射帿(괴정사후)-羅世纘(나세찬)

해나무 정자에서 과녁을 쏘다-羅世纘(나세찬)

綠影落彫弓(녹영락조궁) : 푸른 그림자 활에 떨어지니

共聞曹熟手(공문조숙수) : 마을의 명사수라 모두가 말한다

弛張付一爭(이장부일쟁) : 늦추고 달기며 겨루기를 청하니

立飮次邊酒(입음차변주) : 술 집에서 선 채로 술을 마시노라

  

 

鶴嶺聽松(학령청송)-羅世纘(나세찬)

학령에서 솔바람소리를 듣다 -羅世纘(나세찬)

九臯獨棲處(구고독서처) : 구학 깊은 못은 혼자 있는 곳이어늘

誰遣翠濤來(수견취도래) : 그 누가 큰 물결 보내오나

天寒聞更遠(천한문갱원) : 차가운 하늘로 물소리 들리다 다시 멀어지니

恐曳棟梁來(공예동량래) : 큰 물결 동량을 끌어올까 두려워라.

  

 

城川釣魚(성천조어)-羅世纘(나세찬)

성천에서 낚시하다-羅世纘(나세찬)

晩風吹釣絲(만풍취조사) : 저녁바람 낚싯줄에 불어와

芳草立多時(방초입다시) : 향긋한 풀 내음에 한참을 서있노라

得雋又何待(득준우하대) : 살찐 고기 잡았으니 다시 무엇을 더 기다리랴

歸來橫柳枝(귀래횡류지) : 돌아와 버드나무 가지에 걸쳐놓았노라

  

 

落山採蒪(낙산채박)-羅世纘(나세찬)

낙산채박-羅世纘(나세찬)

孤山一點明(고산일점명) : 외로운 산이 한 점으로 선명하고

白雨漾氷莖(백우양빙경) : 흰 빗물 출렁이다가 갑자기 얼음줄기 되는구나

豈待秋風至(기대추풍지) : 가을바람은 불어오는데, 내 어찌

季鷹先我行(계응선아행) : 계응 장한이 나보다 앞서 고향 가기를 기다릴까.

  

 

詠射帿(영사후)-羅世纘(나세찬)

과녁 맞추기를 노래함-羅世纘(나세찬)

壯士變秋月(장사변추월) : 사나이 가을달을 쏘니

雄風袖裏生(웅풍수리생) : 소매 속에서 웅장한 바람 이는구나

雷聲山下動(뇌성산하동) : 천둥소리 산하를 뒤흔드니

星落白雲傾(성락백운경) : 별이 떨어지고 흰구름은 기우는구나

 

 

 

2015.03.19

정자)-羅世纘(나세찬) 안정자에게-羅世纘(나세찬)... 최고지) : 광한전에는 여전히 가장 높은 가지 남아있다네 ​ ​ 서애 유성룡 ( 1542 ~ 1607)의 시 君何先達我何遲(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