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sr]역사,종교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십대 제자(十大 弟子)

이름없는풀뿌리 2015. 12. 16. 10:52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십대 제자(十大 弟子)


  붓다(Buddha : '불타(佛陀)'의 영어식 표기(英語式 表記))를 수행(遂行)한 1,250인의 상수 제자(上首 弟子) 가운데 가장 뛰어난 10명의 제자(弟子)를 일컫는 말로서 그 이름을 최초(最初)로 밝혀 놓은 경전(經典)은『유마경(維摩經)』인데, 원래는 성문제자(聲聞弟子)들이 유정(有情)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여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체득하지 못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 대표격(代表格)인 10명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列擧)한 것이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붓다(Buddha : 불타(佛陀))의 가장 핵심적(核心的)인 제자(弟子)로 취급받게 되었음

  그 후 구마라습(鳩摩羅什)의 수제자(首弟子)로 교리(敎理)에 가장 밝아 습문사철(什門四哲 : 구마라습 문하(鳩摩羅什 門下)에 있는 4명의 밝은 제자(弟子)) 중 으뜸으로 꼽혀 역경(譯經)에 많이 참여했던 승조(僧肇 : 383~414)가 지은『유마경(維摩經)』의 주석서(註釋書)인『주유마힐경(注維摩詰經)』에서 그들의 특기(特技)가 명쾌하게 정리되었는데, 10가지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能力)을 가지고 붓다의 가르침을 가장 잘 실천(實踐)하였기에 각 분야(分野)의 제일(第一)이라는 칭호(稱號)를 받아 ‘존자(尊者)’나 ‘타(陀)’로 불리게 되었음


1. 마하 가섭(摩訶 迦葉 : Mahā-Kāśyapa) 존자(尊者)

<마하가섭 - 석굴암>


① 생애(生涯)

  인도(印度) 마가다(摩迦陀 : Magadha)국(國) 왕사성(王舍城) 마하사다라촌(村)의 장자(長者)이자 대부호(大富豪)였던 바라문(婆羅門) 니그로다칼파의 아들로서 일찌기 비야리(毘耶利)성(城) 바라문(婆羅門)의 딸 발타라가비리야와 결혼(結婚)했지만 12년 만에 부모(父母)를 여의자, 세속적(世俗的)인 욕망(慾望)의 무상(無常)함을 깨달아 이미 상당한 나이에 부부(夫婦)가 함께 붓다에게 귀의(歸依)한 후 8일 만에 이리한과(阿羅漢果)를 증득(證得)하였음

  욕심(慾心)이 적고 족(足)한 줄을 알아 엄격(嚴格)한 규율(規律)을 행하며 거친 옷과 거처(居處)에 구애되지 않고 지상(地上)의 목표(目標)인 진리(眞理)를 깨치기 위해 용맹정진(勇猛精進)함으로써 ‘두타 제일(頭陀 第一 : ‘두타(Dhūta)’는 ‘금욕고행(禁慾苦行)’이란 의미(意味)임)’로 꼽히고 있음

  붓다와 떨어져 숲 속에서 두타행(頭陀行 : ‘속세(俗世)의 번뇌(煩惱)의 때를 털어버리고 의식주(衣食住)에 탐착(貪着)하지 않고 오로지 불교(佛敎)의 수행(修行)에만 전념하는 금욕고행(禁慾苦行)’을 말함)에 열중하다가 붓다가 열반(涅槃)할 때 자리에 있지 못해 뒤늦게 달려와 울부짖자 붓다가 관(棺) 속에서 두 발이 삐져나와 그를 반겼다는 ‘곽시쌍부(槨示雙趺)’의 고사(故事)의 주인공(主人公)이기도 한데, 이 고사(故事)는 ‘염화미소(拈花微笑)’의 그것과 함께 선종(禪宗)에서 가섭(迦葉)이 불멸(佛滅) 후 석가모니(釋迦牟尼)의 법(法)을 첫 번째로 전수(傳受)받은 제1대(第一代) 전법 제자(傳法 弟子), 즉 제1조(第一祖)로 인정받는 상징(象徵)이 되었음 

② 탄생(誕生)과 관련한 전생담(前生談)

  한편 가섭(迦葉)의 탄생(誕生)과 관련해서는 다음의 전생담(前生談)이 전해오고 있음

    성(姓)은 바라문(婆羅門)이고, 아버지는 음택(飮澤)이요, 어머니는 향지(香志)였다. 옛적에 단금사(鍛金師)로서 금(金)의 성품(性品)을 잘 알아 부드럽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부법전(付法傳)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 비바시불(毘婆尸佛)께서 열반(涅槃)에 드신 뒤에 네 무리[사중(四衆)]가 탑(塔)을 세웠는데, 탑(塔) 안에 모신 불상(佛像)의 얼굴에 금빛이 조금 파괴되어 있었다. 이때에 어떤 가난한 여자가 금(金) 구슬을 가지고 단금사(鍛金師)에게 가서 불상(佛像)의 얼굴을 장식(裝飾)해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단금사(鍛金師)와 같이 육체 관계(肉體 關係 : 즉 ‘연(姻)’임)가 없는 부부(夫婦)가 되자고 서원(誓願)을 세웠다. 단금사(鍛金師)는 이 까닭에 91겁(劫) 동안 몸이 모두 금빛이었고, 뒤에 범천(梵天)에 태어났다가 범천(梵天)의 수명(壽命)이 다한 뒤에는 중인도(中印度)의 마가다(摩迦陀)국(國)에 있는 바라문(婆羅門)의 집에 태어나서 ‘가섭(迦葉)’이라 이름하니, 한문(漢文)으로 번역(飜譯)하면 음광승존(飮光勝尊)인데 금빛에 의하여 불려진 명호(名號)이다.”라 전한다.

    이 까닭에 출가(出家)하여 유정(有情)을 제도(濟度)하려는 뜻을 내니 부처님께서 어서 오라고 하시자, 머리와 수염이 저절로 깎이고 가사(袈裟)가 몸에 입혀졌으며, 항상 대중(大衆) 가운데서 제일(第一)이라는 칭찬(稱讚)을 받았다.

③ ‘삼처전심(三處傳心)’ 고사(故事)의 주인공(主人公)

  욕심(慾心)이 적고 족(足)한 줄을 알아 엄격(嚴格)한 규율(規律)을 행하며 거친 옷과 거처(居處)에 구애(拘碍)되지 않고 지상(地上)의 목표(目標)인 진리(眞理)를 깨치기 위해 용맹정진(勇猛精進)했기에 부처의 십대 제자(十大 弟子)중 ‘두타 제일(頭陀 第一)’로 꼽혔는데, 하루는 숲 속에서 두타행(頭陀行 : ‘두타(Dhūta)’는 ‘속세(俗世) 번뇌(煩惱)의 때를 털어버리고 의식주(衣食住)에 탐착(貪着)하지 않고 오로지 수행(修行)에만 전념(專念)하는 금욕고행(禁慾苦行)’)에 열중(熱中)하다가 붓다가 구시(舊尸)성(城) 천관사(天觀寺)에서 열반(涅槃)할 때, 그 자리에 있지 못해 뒤늦게 달려와 울부짖자 붓다의 관(棺) 속에서 두 발이 삐져나와 가섭(迦葉)을 반겼다는 ‘곽시쌍부(槨示雙趺)’의 고사(故事)의 주인공(主人公)이기도 함

  이 고사(故事)는 비야리(毘耶離)성(城)의 서쪽에 있는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가섭(迦葉)과 자리를 나눠 앉았다는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및 영취산(靈鷲山) 설법(說法) 시(時)에 부처가 대범천왕(大梵天王)이 공양(供養)한 금바라(金波羅)라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니 오직 가섭(迦葉)만이 빙긋 웃었다는 ‘염화시중(拈花示衆)’의 그것과 함께 흔히 부처의 ‘삼처전심(三處傳心 : ‘부처가 세 번에 걸쳐 마음의 법(法)을 가섭(迦葉)에게 전함’)’에 속하는데, 이로 인해 가섭(迦葉)은 선종(禪宗)에서 석가모니(釋迦牟尼)의 법(法)을 첫 번째로 전수(傳受)받은 제1대(第一代) 전법 제자(傳法 弟子), 즉 제1조(第一祖)로 인정(認定)받는 상징(象徵)이 되었으며, 또한 석가모니(釋迦牟尼)의 “나에게는 정법안장(正法眼藏)․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으나 상(相)이 없는 실상(實相)이며 미묘(微妙)한 법문(法文)으로서 문자(文字)로 표현(表現)할 수 없어 별도(別途)로 전해야 하니, 이제 이것을 마하 가섭(摩訶 迦葉)에게 맡기노라[아유정법안장 열반묘심 실상무상 미묘법문 불립문자 교외별전 부촉마하가섭(我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 微妙法門 不立文字 敎外別傳 付囑摩訶迦葉)].”란 가르침에서 유래(由來)한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이 선종(禪宗)의 종지(宗旨)가 되었음

 

④ 경율 결집(經律 結集)

  불멸(佛滅) 후에는 상수(上首)가 되어 아난(阿難)․우바리(優婆離)와 함께 경율(經律)을 결집(結集)하였는데, 이와 관련해 전해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음

    가섭(迦葉)이 대중(大衆)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 아난 비구(阿難 比丘)는 아는 것이 많고 큰 지혜(智慧)가 있으며, 항상 여래(如來)를 따라 모시면서 청정(淸淨)한 범행(梵行)을 닦았고, 부처님께 들은 법문(法文)은 그릇에 물을 옮기듯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므로 부처님께서 항상 총명(聰明)함이 제일(第一)이라 하셨으니, 이제 그를 청해서 수다라장(修多羅藏)을 결집(結集)하게 함이 좋겠습니다.”

    대중(大衆)이 모두 잠자코 있자, 아난(阿難)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지금 법안(法眼)을 발표(發表)하라.”

    아난(阿難)이 그 말을 듣고 승낙(承諾)한 뒤에 대중(大衆)의 마음을 관찰(觀察)하면서「게송(偈頌)」을 말했다.

    비구(比丘)의 여러 권속(眷屬)들이

    부처님을 떠나서는 장엄(莊嚴) 못하는 것이

    넓고 넓은 허공(虛空)에 퍼진

    별들이 달을 여읜 것 같다.

    아난(阿難)은 다시 대중(大衆)의 발에 예배(禮拜)하고 자리에 올라 “이와 같이 내가 들었으니 어느 때 부처님께서 아무 곳에 계시면서 아무 경(經)을 말씀하셨고, 인간(人間)과 하늘이 받들어 행하였다.”라고 말하였다.

    가섭(迦葉)이 여러 비구(比丘)들에게 물었다. “아난(阿難)의 말이 틀림이 없는가?”

    모두가 대답(對答)했다. “세존(世尊)의 말씀과 다르지 않소.”

    가섭(迦葉)이 또 아난(阿難)에게 말했다. “내 나이 많아 오래 머무르지 못하겠으니, 이제 바른 법(法)을 그대에게 맡긴다. 그대는 잘 지키라. 그리고 나의「게송(偈頌)」을 들으라.”

    법(法)이라 하나 법(法)이라는 본래(本來)의 법(法)엔

    법(法)도 없고 법(法) 아닌 것도 없으니

    어찌 한 법(法) 가운데

    법(法)과 법(法) 아닌 것이 있으랴

 

    이「게송(偈頌)」을 마친 뒤에 가섭(迦葉)은 곧 금란가사(金襴袈裟)를 가지고 계족산(鷄足山)에 들어가서 자씨불(慈氏佛)이 하생(下生)하기를 기다렸다.


2. 아난(阿難 : Ānanda) 존자(尊者)

<아난존자 - 석굴암>


① 생애(生涯)

  성(姓)은 찰제리(刹帝利)요, 아버지는 곡반왕(斛飯王)이며 왕사성(王舍城) 출신(出身)의 아난(阿難)은 붓다의 사촌동생(四寸同生)이자 제바달다(堤婆達多 : ?~?)의 친동생(親同生)으로 부처가 성도(成道)하던 날 밤에 태어나 8세(歲) 때 출가(出家)한 뒤, 붓다가 55세 때 처음으로 시자(侍子)가 되어 25년간 붓다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은 채 신변(身邊)을 뒷바라지하면서 귀가 밝아 잘 듣고 또 기억력(記憶力)이 탁월(卓越)해 붓다의 온갖 법문(法文)을 모두 들어 외웠던 ‘다문 제일(多聞 第一)’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가섭(迦葉)과 함께 후대(後代)에 양대 제자(兩大 弟子)로 꼽힐 뿐 아니라,『능엄경(楞嚴經)』의 등장인물(登場人物)이기도 함

  용모(容貌)가 빼어나 여자(女子)들의 유혹(誘惑)을 많이 받았으나 굳은 지조(志操)로 모두 물리친 아난(阿難)은 불멸(佛滅) 후 가섭(迦葉)으로부터 아난오죄(阿難五罪)와 미이욕(未離欲)의 꾸짖음을 받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하여 확연히 깨달았는데, 그리하여 왕사성(王舍城)의 불전제일결집(佛典第一結集 : B.C. 544년(?)) 때 동참(同參)하여 모든 경전(經典)을 송출(誦出)해내는 암송자(暗誦者)로서의 대단한 역량(力量)을 발휘(發揮)하였으며, 나중에는 가섭 존자(迦葉 尊者)의 뒤를 이어 불교(佛敎)의 제2조(第二祖)가 되었음


② 상나화수(商那和脩)와 관련된 일화(逸話)

  다음은 아난(阿難)이 입적(入寂)하기 전에 상나화수(商那和脩)를 제자(弟子)로 삼는 과정(過程)과 관련해 전해오고 있는 이야기임   


    아난(阿難)이 ‘내가 한 나라에서만 열반(涅槃)에 들면 여러 나라에 싸움이 일어날 터이니 옳지 못하다. 의당 평등(平等)한 법(法)으로 유정(有情)을 제도(濟度)하리라.’라 생각하고 항하[갠지스강(Ganges 江)]의 중류(中流)에서 그대로 열반(涅槃)에 들려 하는데, 산하대지(山下大地)가 여섯 가지로 진동(震動)하였다.

    설산(雪山) 안에 오백 선인(仙人)이 있다가 이런 상서(祥瑞)를 보고 허공(虛空)으로 날아와서 아난(阿難)의 발에 예배(禮拜)하고 꿇어앉아 청(請)했다. “저는 큰 스님에 의하여 불법(佛法)을 증득(證得)하려 하오니 바라옵건대 큰 자비(慈悲)를 드리우셔서 저희들을 제도(濟度)해 주소서.”

    아난(阿難)이 잠자코 허락(許諾)하고 곧 항하[갠지스강]를 변하게 하여 온통 황금(黃金) 땅으로 만든 뒤에, 그들에게 거룩한 법(法)을 말해 주었다.

    아난(阿難)이 다시 ‘먼저 제도(濟度)한 제자(弟子)들이 모두 모이리라.’고 생각하니, 잠깐 사이에 오백 아라한(阿羅漢)이 허공(虛空)에서 내려와 여러 선인(仙人)들에게 출가(出家)하는 구족계(具足戒)를 주었다.

    그 선인(仙人)들 가운데 두 아라한(阿羅漢)이 있었으니 하나는 상나화수(商那和脩)요, 또 하나는 말전지(末田地)였다.

    아난(阿難)은 상나화수(商那和脩)가 법기(法器)임을 알고 말했다. “옛적에 여래(如來)께서 거룩한 법안(法眼)을 마하 가섭(摩訶 迦葉)에게 전하셨고, 가섭(迦葉)이 선정(禪定)에 드실 때에 나에게 부탁하셨는데, 나도 이제 열반(涅槃)에 들려하니 이것을 그대에게 전하겠노라. 그대는 나의 가르침을 받고 나의「게송(偈頌)」을 들으라."


    본래(本來)의 법(法)을 전하니

    전한 뒤에는 법(法)이라 할 것 없네

    각각 스스로 깨달으라

    깨달으면 법(法) 없음도 없다.


    아난(阿難)이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다 전한 뒤에 몸을 허공(虛空)으로 솟구쳐 18가지 변화(變化)를 지은 뒤에 풍분신삼매(風奮迅三昧)에 들어 몸을 네 몫으로 나누니, 하나는 도리천(忉利天)에 봉안(奉安)하고, 또 하나는 사갈라(沙竭羅) 용궁(龍宮)에 봉안(奉安)했으며, 또 하나는 비사리(毘舍離)에, 나머지 하나는 아사세(阿闍世) 왕(王)에게 봉안(奉安)하였는데 모두가 보배탑(塔)을 세워 공양(供養)하였다.


3. 사리불(舍利弗 : Ṥārĩputra)

 

<사리불 - 석굴암>

  어릴 때부터 목건련(目犍連)과 친분(親分)이 두터웠던 사이로 육사 외도(六邪 外道)의 한 사람으로 회의론(懷疑論)을 주장(主張)하던 산자야(Sānjaya)의 문하(門下)에 있다가 붓다의 가르침을 받고 감복(感服)하여 250명의 제자(弟子)들을 이끌고 귀의(歸依)한 인물(人物)인데, 수보리(須菩提 : Subhūti)와 함께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으며 실제로 붓다가 살아 있던 당시에는 제일 존장(第一 尊長)으로 뛰어난 제자(弟子)였으나 붓다보다 먼저 열반(涅槃)에 들었음

  ‘지혜 제일(智慧 第一)’로 꼽히는 사리불(舍利弗)은 해박(該博)한 지식(知識)과 통찰력(通察力)을 지녔으며 교단(敎團)의 통솔력(統率力)에도 능력(能力)을 발휘하여 붓다로부터 ‘장자(長子)’라고 불렸는데, 불교(佛敎) 이외의 사상(思想)에도 능통(能通)하여 여러 차례 불교(佛敎)를 비방(誹謗)하는 외도(外道)들을 이치(理致)로써 굴복(屈伏)시키기도 하였음

  또한, 사리불(舍利弗)은 붓다가 최초(最初)로『반야심경(般若心經 : 본 이름은『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密多心經)』이며 총(總) 260자(字)로 이루어진 경전(經典)임』을 설법(說法)한 인물(人物)이기도 한데, 이는『반야심경(般若心經)』이 바로 ‘진리(眞理)를 깨치는 지혜(智慧)를 설(說)한 경(經)’이며, 그가 ‘지혜 제일(智慧 第一)’로 손꼽힌 제자(弟子)였기 때문임 


4. 목건련(目犍連 : Mahā-Maudgalyāyana)

 

<목견련 - 석굴암>
 

  사리불(舍利弗)의 친(親)한 친구(親舊)로 그와 함께 붓다에게 귀의(歸依)할 때 이미 장로(長老)로 대접받았던 인물(人物)로서, 붓다의 열반(涅槃)을 차마 볼 수 없어 먼저 입멸(入滅)하였다고 함

  ‘신통 제일(神通 第一)’이라 일컬어지듯이 외도(外道)들과의 싸움이 있을 경우 선봉(先鋒)에 서서 신통력(神通力)을 발휘하곤 했으며, 또한 그 뛰어난 신통력(神通力)으로 지옥(地獄)에 떨어진 어머니를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공양(供養)을 드려 구해내 온 효성(孝誠)으로 잘 알려져 있음


5. 아나율(阿那律 : Aniruddha)

 

<아나율 - 석굴암>

  붓다의 사촌(四寸) 동생으로 결의(決意)가 투철(透徹)하고 집중력(集中力)이 강했으며 교단(敎團)에서 화합(和合)의 모범(模範)을 보인 인물(人物)임

  어느 날 붓다 앞에서 졸다가 책망(責望)을 들은 뒤 후회(後悔)한 나머지 다시는 눈을 감지 않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워 조금도 잠을 자지 않아 병(病)이 났으며, “모자람이나 지나침이나 모두 옳지 않다”는 붓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심(決心)을 굽히지 않아 마침내 시력(視力)을 잃고 말았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마음의 눈[심안(心眼)]을 얻어 ‘천안 제일(天眼 第一 : ‘천안(天眼)’은 ‘천인(天人)들처럼 과거(過去)․현재(現在)․미래(未來)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눈’을 의미함)’이 됨


6. 부루나(富樓那 : Pūrnamaitrāyani)

 

<부루나 - 석굴암>

  언변(言辯)이 뛰어나 많은 중생(衆生)들을 교화(敎化)한 ‘설법 제일(說法 第一)’의 인물(人物)로 불교(佛敎)에 입문(入門)하기 전에 브라만교[바라문교(婆羅門敎 : Brahmanism)]의 많은 문헌(文獻)을 섭렵(涉獵)하여 풍부한 지식(知識)을 쌓았으며, 그가 설법(說法)할 때마다 탁월(卓越)한 언변(言辯)으로 먼저 뭇 사람들을 기쁘게 한 뒤 가슴을 찌르는 고언(苦言)으로 가책감(呵責感)을 들게 하고 끝으로 밝은 지혜(智慧)로 모든 것이 공(空)함을 가르쳐 수많은 사람을 제도(濟度)하였는데, 그리하여 흔히 전도자(傳道者)의 표상(表象)으로 일컬어짐


7. 가전연(迦栴延 : Mahā-Kātyāyana)

 

<가전연 - 석굴암>
 

  교리(敎理)의 이치(理致)를 잘 설파(說破)한 ‘논의 제일(論議 第一)’로 꼽히는데, 인도(印度)의 변방(邊方)에 이르기까지 각지(各地)에서 교화(敎化)에 힘을 기울여 포교(布敎)에 큰 공적(功績)을 남김


8. 수보리(須菩提 : Subhūti)

 

<수보리 - 석굴암>

  사리불(舍利弗 : Ṥārĩputra)과 함께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던 제자(弟子)로서 연기(緣起)의 근본 이치(根本 理致)인 공(空)에 통달(通達)한 ‘해공 제일(解空 第一)’의 인물(人物)로 알려져 있는데, 어느 날 수보리(須菩提)가 옷을 꿰매고 있을 때 붓다가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禮拜)를 드리려다 그만두고 다시 옷을 꿰맸는데, 붓다는 수보리(須菩提)가 ‘붓다의 형상(形象) 자체도 공(空)임을 알았다’고 하여 오히려 칭찬(稱讚)했다는 일화(逸話)가 전해오고 있음

  한편, 붓다가 열반(涅槃)에 들기 얼마 전에 사부대중(四部大衆)을 상대로 한『금강경(金剛經)』법회(法會)를 열면서 수보리(須菩提)를 상대자(相對者)로 지명(指名)하였는데, 이는 붓다가 마지막으로 깨달은 진리(眞理)의 요체(要諦)가 바로 ‘공(空)’이었으며, 또한 붓다의 제자(弟子) 중 ‘공(空)’을 깨달은 유일(唯一)한 인물(人物)이 바로 수보리(須菩提)였기 때문이라고 함


9. 우바리(優婆離 : Upāli)

 

<우바리 - 석굴암>

  교단(敎團)의 규율(規律)과 규칙(規則)에 정통(精通)하고 계율(戒律)을 잘 지킴으로써 ‘지계 제일(持戒 第一)’로 알려진 인물(人物)이자, 붓다 열반(涅槃) 후 제1 결집(第一 結集)에서 계율(戒律)을 암송(暗誦)해 내어 율장(律藏)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함

  석가족(釋迦族)의 이발사(理髮士)로서 인도(印度)의 계급제도(階級制度)인 카스트(Caste)의 제일 하층민(下層民)인 수드라(Sudra) 出身이었는데, 왕자(王子)들이 출가(出家)할 때 함께 출가(出家)하고 싶어하자 붓다가 왕자(王子)들보다 먼저 우바리(優婆離)의 출가(出家)를 허락(許諾)하였으며, 또한 세속(世俗)의 지위(地位)나 나이에 관계(關係)없이 교단(敎團)에 입문(入門)한 순서(順序)대로 비구(比丘)들의 서열(序列)을 가리도록 하여, 평등(平等)을 주장(主張)한 붓다의 사상(思想)이 구체적(具體的)으로 실천(實踐)되는 계기(契機)를 제공함


10. 라훌라(羅睺羅 : Rāhula)

 

<라훌라 - 석굴암>

  본래 의미(意味)로는 ‘장애물(障碍物)’․‘방해꾼’이란 뜻을 가진 ‘라훌라(羅睺羅)’는 붓다의 하나뿐인 아들의 이름이기도 한데, 라훌라(羅睺羅)는 아버지를 따라 출가(出家)한 후 은밀(隱密)히 계행(戒行)을 잘 지켜 수행(修行)한 ‘밀행 제일(密行 第一 : ‘밀행(密行)’은 ‘은밀(隱密)히 고행(苦行)하면서 수행(修行)하는 것’을 의미(意味)함)’의 인물(人物)이 됨

  성인(成人)이 되기 전에 출가(出家)한 최초(最初)의 사미(沙彌)로서 붓다의 아들이라 하여 특별대우(特別待遇)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주의(主意)와 훈계(訓戒)를 받으면서도 잘 참아내고 금계(禁戒)를 깨뜨리는 일이 없이 잘 지키며 독송(讀誦)을 열심히 하였음

 

 

글쓴이 : 박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