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문명의 근원,동방족의 수메르 문명
▲ 카르발라 시아파 압바스 사원
수메르인들이 살던 지역은 지금의 이라크 지역을 의미한다. 바그다드 시내에 있는 고대문명 박물관이란 지금으로부터 7000년 된 수메르의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박물관이 이라크 전쟁으로 약탈자들에 의해 모두 털렸다고 한다. 이 박물관의 나브할 아민 부소장은 "우리의 유산은 끝났다"고 말할 정도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배우는 인류문명의 4대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메소포타문명은 말 그대로 'meso-potamia'로 양강(兩江) 사이란 뜻이다. 양강이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성서에 나오는 '에덴'동산으로 불리는 딜문동산도 바로 이 양강 사이에 있는 지역이며, 이 동산마저 이번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지금 세계는 겨우 200년 역사 밖에 안되는 미국이 전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3살짜리 아이의 손에 핵폭탄을 들려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니 미치광이가 손에 미사일을 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라크-이란-북한은 '문명의 축(axis of civilization)'
부시가 '악의 축'으로 부른 나라, 즉 이라크 이란 북한은 모두 인류 초고대 문명의 발상지란 점에서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지금 북한 학자들은 '대동강문명'이라고 하여 검은머루 유적지 발견 이후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더 오래 된 문명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고 한다. 부시는 지금 이런 세 나라만 골라 '악의 축' 운운하면서 공격 표적으로 삼고 있다. 이를 미국의 '역사 콤플렉스'라고나 해 두자.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한 무리의 인간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이 장면을 구약성서 창세기는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평야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창세기 11장 2절)라고 적었다. 이 한 무리의 인간들을 'Sumerian'이라고 하며 그 뜻은 '검은 머리'라는 뜻이다. 성서는 이 거대한 사건을 몇 줄로 처리하고 있다.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7000여년 전의 사건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양강 지역에 올 때 문자와 학교제도와 법제도 등 고급문화를 이미 가지고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도대체 어디서 있다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이주해 왔느냐이다.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겨져 있는 이 수메르인들의 유래 문제를 소위 '수메르 문제 거리 Sumer Problem'라 할 정도이다.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문명도 수메르보다 무려 1000년 이후의 것이며,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문명도 그와 비슷한 후기 문명이다. 이스라엘의 '셈 Shem'족의 유래도 'Shum'에서 유래했다. 수메르인들이 가지고 온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문명으로, 그 당시 지금의 히브리인들은 말 그대로 'Habiru'로 그 말의 의미는 '떠돌이' 혹은 '산적'의 의미 등을 갖는다.수메르인들이 설형문자라는 것을 사용할 당시 히브리인들은 문자도 없었으며 옷이란 동물 가죽을 벗겨 입고 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수메르인들은 직조기술을 발견하여 이미 옷을 물들여 입고 다녔다. 건축술도 발달하여 2층 가옥을 지을 정도였다. 지금 발견되고 이번 전쟁으로 도난당한 토판들은 거의 경제거래 문서들로서 이는 거래를 한 다음 남긴 계약문서들이다. 한국의 강신택 교수는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분야의 연구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 바그다드에서 이라크 정부가 미국의 공습으로 파괴됐다고 주장하는 건물을 이라크 한 소년이 둘러보고 있다
기독교와 수메르 문명
1830년대 처음으로 이라크에서 수메르 문자가 발견되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은 기독교였다. 왜냐하면 가장 최초의 사건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생겼을 것이라 여겨져 왔고 에덴동산도 그 지역 어딜 것이라 믿어 오던 터에 창세기의 창조설화와 홍수 설화 등이 수메르의 토판 속에 그대로 그 원형이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 남자와 여자가 있었고, 동산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 그런데 슈메르에서는 여자가 아닌 남자가 먼저 따먹는 다는 둥 그리고 홍수가 사람들이 다 죽는 데 지아슈드라는 의인이 있어서 배를 만들어 사람들은 구제한다는 둥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서부터 성서학자들은 기독교를 보는 눈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으며, 기독교 안에서도 성서의 역사를 다시 쓰자는 주장과 그것을 반대하는 주장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한국의 기독교 장로교(기장)과 예수교 장로교(예장) 등이 갈라지는 이유도 바로 성서를 보는 이런 시각의 차이 때문이다. 기장은 고고학의 발견을 수용하는 입장이고, 예장은 그렇지 않는 입장이었다. 이것이 1950년대 한국 교회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수메르의 유산을 성서의 한 유산으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고급문화 수메르에 대하여 히브리 문화를 저급문화로 분류한다. 서양문명은 그리스의 합리적 이성과 히브리의 감성적 신앙이라는 두 물줄기로 이루어진다. 이 두 물줄기는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 만난다.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르 우르 남무 왕국이 멸망하면서 슈메르 문명은 두 갈래로 갈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올림푸스 신전의 원형이 수메르의 딜문 동산의 그것이라고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히브리인들의 정신적 유산은 그대로 수메르의 것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자, 그러면 이라크가 저렇게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인류 문명의 정신적 고향이 황폐화되거나 말살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텍사스의 한 카우보이가 나타나 한 손에는 미사일을 한 손에는 핵무기를 들고 인류의 정신적 유산을 짓밟고 있다. 아무도 지금 그를 말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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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수메르인들은 과연 어디서 왔는가? 이것이 수메르 문제의 화두이다. 그들의 유래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남긴 문자이다. 토판에 세겨진 설형문자는 아무튼 인류 최초의 문자로 평가받고 있다.지금 전 세계 언어학자들은 어떻게든 수메르어와 자기 모국어의 동일성을 찾아 자기들의 언어가 세계 최고의 언어임을 내세우려 하고 있다.
그래서 헝가리, 프랑스, 독일 등도 자국의 언어가 수메르어와 그 유사성이 발견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극동으로 눈을 돌려보면, 1920년대 볼(C. J. Ball)이 이미 <중국어와 수메르어(Chinese and Sumerian)>을 저술하였다. 방대한 분량을 통해 두 언어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해 놓고 있다. 심지어 일본인 요시와라(R. Yoshiyara)는 1991년에 '수메르어와 일본어'를 저술, 발간하였다. 어느 두 언어가 같은 계통이라면 먼저 언어의 특징이 같아야 하고, 문법 구조가 같아야 하고, 유사한 언어 특히 수사가 같아야 한다. 우리가 인도와 유럽의 언어가 같다고 하는 것은 영어, 독어, 프랑스어, 인도 샨스크리트어가 모두 이 세 가지 점에서 같기 때문이다. 물론 수메르어와의 비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생각키로는 이 세가지 점에서 거의 완벽하게 같은 언어는 우리 한국어가 아닌가 한다.
먼저 언어의 특징이란 수메르어가 교착언어인데 교착언어란 우리말의 주어나 목적어 다음에 '은, 는, 이, 가' 등이 붇는 언어를 의미한다. 이는 우랄 알타이언어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런데 중국와 인구어는 일단 교착언어가 아니다. 그래서 수메르어와는 그 특징에 있어서 같지 않다. 다음으로 문법 구조에 있어서 수메르어는 '주어+목적어+동사'이다. 이는 영어 혹은 중국어와는 다르고 우리말과는 같은 구조이다. 마지막으로 수사(數詞)에 있어서 같아야 하는 데 <삼국사기>에는 고대 우리말의 수사가 남아 있다. 필자는 수메르 수사와 우리 고대 수사를 비교 한 바 있으며, 최근 히브리대학에서 수메르어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 온 조철수 교수가 더욱 심화연구 하여 발표 한 바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수메르어는 처음 1을 ' as'라고 하는 데 이는 삼국유사 고(古)한국어의 그것과 일치한다. "처음 빨래 를" '아시 빨래' 라고 하며 아침은 '아사'라고 하는 것이며 해 뜨는 아침을 의미하는 Asis가 여기서 유래한다.
언어 이외에 수메르 유래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 지구라트'이다. 지구라트는 벽돌로 쌓은 인조 탑이다. 물론 피라밋의 유래이며, 구약성서의 바벨탑의 전신이 다름 아닌 지구라트이다. 지구라트는 천문관측소, 고동 회의소, 제단, 무덤 등 다기능를 가지고 있다. 생각키로는 수메르인들이 어느 고산지대에 살다가 양강 유역으로 내려 왔다고 보는 것이다. 지구라트의 기능들이란 산이 가지고 있는 기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걸프 지역으로 통해 들어 온 해양족이 아니고 자고로스산맥을 타고 내려 온 고산족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라크 북쪽 산악지대와 그 너머 어디선가 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행히 고고학자들은 지금 터키 그리고 몽고 지역까지 수메르의 유적을 찾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기원전 3500년경 과연 그 찬란한 고급 문명을 가지고 있던 지역은 과연 어딘가? 그밖에 수메르와 한국은 묘장제도, 순장제도, 60진법, 최고지도자의 상징을 봉황으로 삼고 있는 점 등에 있어서 앞으로 두고두고 그 유사성이 연구의 대상으로 남겨져 있다. 그러나 역사 콤플렉스에 걸린 미국에게는 이런 역사연구마저도 두려움의 대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인디언 원주민을 학살하고 세운 역사의 원죄 때문에 결국 미국은 끝까지 자기들 보다 오래된 나라들의 민족문화를 말살해 나갈 것이다. 미국의 양대 세력인 유대인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이익이 의기투합할 때는 무슨 짓이든 저지를 것이다. 이라크 박물관이 약탈당하는 소식을 멀리서 접하면서 가슴 조이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부디 도난당한 유물들이 무사히 박물관으로 되돌아오길 바란다.
글/김상일(한신대 전 교수, Korea Project Director, Claremont Center for Process Studies)
[자료]환국과 슈메르
수메르인들의 기록과 연대는 아브라함 시대 보다 수세기 앞서는 것이며 따라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인간 세상에는 이미 고도로 발전된 문명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 이들의 문명은 기원전 3000년 전까지 올라가며 이로써 성서고고학이 독점하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성서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수메르의 중요한 종교 도시인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나아갔다고 전하는데 본디 우르 사람이었던 그가 수메르 문명아래서 60여년을 살다가 가나안땅으로 가서 살적에 어느 나라의 말을 사용했고 그가 썼던 문자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자명해진다.
수메르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들을 판독해나가는 과정에서 성서에 등장하는 야훼의 창조이야기, 에덴동산설화, 노아홍수 이야기, 욥기,아가서,바벨탑사건...등
수많은 내용들이 수메르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이 밝혀지자 성서학자들은 충격과 참담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슈메르인들이 가지고 있던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문명이며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보다도 무려 1천년 전의 문명이라는데에 고고학자들은 당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슈메르인들이 설형문자를 사용하고 직조기술의 사용으로 옷을 물들여 입고 다닐 당시 히브리인은 문자도 없었으며 동물가죽을 벗겨입고 다녔었다.
성서학자들은 인류최초의 문명 발상지가 팔레스타인 지역이라고 여겼고, 에덴동산도 그지역 어딜 것이라 믿어오던 터에 슈메르유적(지금의 이라크에 위치함)의 발견은 그야말로 전세계 크리스트교의 본질을 뒤흔드는 일이 아닐수 없기 때문이다.
슈메르에는 이미 에덴동산 설화가 있었고 에덴동산과 남자 여자가 등장하며 동산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까지 성서와 너무나 흡사한 설화가 있었고,노아의 홍수와 흡사한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노아라는 이름은 지아슈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전 세계인들이 보고 있는 성서가 슈메르 문자의 판독으로 이제 한낮 휴지조각에 처해지게 된 것에 성서학자들은 참담함을 감출수 없는 것이다.
최초의 문명임에도 불구하고 건물 하나가 많게는 수백개의 방이 있는 건물을 비롯해 굉장한 주거지역을 이루며 살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당시에 이미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상수도와 하수도를 만들었습니다. PVC나 스텐파이프는 아니고요, 도자기를 구워 상하수도 시설을 한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 그저 원숭이 비슷한 존재들이 아니고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조차도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갖춘 것이 이제 몇 년 되었습니까?
그런데 인류 최초의 문명이 이미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명에 대한 가장 놀라운 발견중의 하나는 수메르 문자의 발견입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자는 수메르 사람들이 쓰던 설형문자입니다. 보시는바와 같이 이런 수많은 점토판이 발견되었습니다.
수메르의 길가메시라는 족장이 기록한 서사시인데, 그 내용이 성경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내용이 거의 같습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의 기록에 노아의 홍수 사건 기록이 나온다는 것인데, 이는 인류 최초의 문명 이전에 분명 노아의 홍수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수메르 문명이 홍수 이후에 생겨난 문명임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수메르라는 말의 어원은'세메르'에서 왔는데, '셈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노아의 아들중에서 장자권을 가진 자 '셈의 나라'라는 것이지요.
대홍수는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야훼와는 무관한 것입니다.
신석기 4기 빙하기가 끝날 무렵 간빙기 기원전 1만년 경에 북반구의 빙하가 갑자기 대거 녹아내리면서 대홍수가 일어났고 실제로 이사건으로 고대의 저지대 문명의 대다수가 멸망했습니다. 이 대홍수 이야기는 수메르 신화에 적혀있고 이후에 유태인들이 바이블에 그것을 자신들의 일인냥 기록한 것입니다. 홍해 갈라짐 현상은 현재에도 지구에 여러곳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이 과학적인 현상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수메르 문명 발굴의 처음 목적이 성경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에덴과 전설을 증명하는 것이었지요. 발굴결과 중 길가메시 서사시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성경이 길가메시를 비롯한 수메르 신화를 카피한 쪽으로 결론이 납니다.
성경에서 유태인의 시조 아브라함은 수메르의 우르 출신으로 이집트로 이주한 불법 체류자였습니다. 수메르 문자 해독으로 성경은 수메르,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여러 설화들을 섞어서 만든 것임을 입증한 셈입니다.
기원이 밝혀지지 않은 신비의 민족
수메르 사람들은 분명하지는 않으나 대략 기원전 4500~4000년 사이에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 평야에 나타나 살기 시작하였다. 인간이 사용한 도구로 시대를 구분하는 통상적인 시대구분법에 따른다면 이때는 목축과 농경생활이 막 시작된 신석기시대였다. 메소포타미아 평야지대에는 수메르인들이 들어오기 이전에 셈어족과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여러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수메르인들은 이들보다 우월한 문화를 지니고 이주하여 이내 이들을 압도하고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수메르인들이 어디에서 기원한 민족인지, 그리고 이들의 초기역사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분명한 정설이 없다. 이들의 기원이 매우 불명확한 반면, 이들이 남긴 문화유산이 너무도 두드러지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수메르인들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신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 내가 읽은 책 가운데 한권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는 것도 있었다.
"수메르 문헌의 제시된 증거에 기초해 볼 때, 기자의 피라미드는 시나이 사막에 위치한 우주기지에서 끝나는, 우주관제센터의 착륙복도 일부로서 외계인들에 의해 유도장치로 쓰일 목적으로 건설된 듯하다"
이글의 저자에 따르면 고대 수메르인들은 태양계의 일곱 번째 행성인 지구를 일종의 행성간 버스정거장으로 사용했던 우주여행자들의 자손으로서 이들이 바로 이집트 기자에 있는 대피라밋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수메르인의 기원에 관한 이 저자의 추리는 바로 다음과 같은 의문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모든 것의 이전'이었던 문화가 갑자기 등장하여 복잡한 문자,경제체제,그리고 잘 구성된 사회구조를 완벽하게 갖출 수 있었을까?"
저자에 따르면 수메르인들의 문화적 유산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당시 겨우 석기를 사용하던 원시시대 인간들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고도의 첨단문명을 가지고 외계에서 이주해온 우주인들 것이라고 생각해야만 합리적으로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수메르인들의 업적이 매우 뛰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느날 갑자기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수메르인들의 역사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알게 되겠지만, 그것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부단한 실험과 개량을 통해 단계적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교착어를 사용한 검은 머리의 사람들
수메르인들은 자신을 "검은 머리의 사람들"(black-headed people)이라고 불렀으며, 자신들이 사는 땅을 수메르(Sumer)라고 불렀다. 수메르인이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지만, 이 말의 원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는 설이 없다. 분명한 것은 이들의 생김새가 주위에 있던 셈어족이나 인도유럽어족의 여러 민족들하고는 매우 달랐으며, 수메르인들 자신은 이러한 생김새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자기민족을 주위 민족들과 구분해 불렀다는 것이다.
이들의 언어 역시 주위의 민족들이 사용하던 것하고는 매우 달랐다. 그들의 언어는 명사에다 토씨를 바꿔서 주어나 목적어로 표현하는 교착어(agglutinative)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것은 지금 우리말이 속해있는 우랄 알타이언어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수메르인들이 검은 머리칼을 지니고 있었고, 교착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동양의 일부 사학자들은 이들을 동아시아의 민족들과 연관시키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학설들을 제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른바 "재야사학자"들 중에 수메르인을 우리 한민족과 연관시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라는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서에 따르면 단군 이전에 한민족이 세운 12개의 나라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로 수밀이(須密爾)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재야 사학자들은 바로 이 수밀이국이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던 그 수메르국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수메르역사를 정통으로 연구해온 서양학자들은 수메르민족의 기원을 오늘날의 동아시아 민족들과 연계시키는데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사무엘 크레이머는 수메르인들 자신들은 처음부터 메소포타미아에 태어나 그곳에서 살아온 것으로 믿었다고 말한다. 저명한 아랍사학자인 히티(Philip K. Hitti)는 수메르어가 터키어, 헝가리어, 핀란드어 등에서 발견되는 교착어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점을 제외한 다른 어떤 특성도 이들 언어 또는 기타의 우랄 알타이어나 몽고어와 비슷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각종 부조물에 나타난 수메르인들의 생김새를 보아서는 그들이 긴 머리의 지중해 인종과 넓은 이마의 북동부 산악지대인인 아르메니아족과의 혼혈로 보여진다고 말하고 있다.
수메르 유적발굴에 지대한 공을 세운 고고학자 레오나드 울리(Leonard Woolley)와 역시 고고학자인 독일인 세람(C. W. Ceram) 등은 수메르인들이 계단 모양의 신전을 만들어 그곳에 신을 모신 것을 본다면 산악지대가 그들의 고향으로서 신들은 높은 언덕 위에 산다고 생각한 것 같으며, 수메르 축조물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 목조건물 양식에 따라 지어져 있는 점으로 보아 나무가 무성한 고지대가 그들의 발원지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인류학자인 영국인 아더 케이트(Arthur Kate)는 인더스강 계곡이 수메르인들의 발원지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주장은 아직까지 어느 것이 맞다고 분명히 말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어쨌거나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을 이룩한 수메르민족이 지금의 중동민족들과 같은 뿌리를 가진 민족이 아니고 어찌 보면 우리 민족과 관련이 깊을 수도 있다고 하는 점은 우리에게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슈메르인은 한국인이다.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History Begins at Sumer)]의 저자로 유명한 사뮤엘크레머 교수는 최초의 창조설화를 비롯한 교육제도, 사법제도 등 인류 최초의 39개 사건이 모두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펀주: 수메르문명 -> 에게문명 -> 이집트,그리스)
이라크(메소포타미아)지역과 한국은 그토록 멀리 떨어져있는 데도 같은 언어로 분류된다.) 특히 조사를 사용해서 문장의 의미가 달라지는 언어는 '교착어'의 유일한 특징이라 할수 있다.
~로, ~가, ~의 , ~를 와 같은 조사를 사용하는 언어는 '교착어'가 유일하다. 교착어를 쓰는 종족은 전세계적으로 어떤 민족인가? 동이족 계열 뿐이다.
터키도 교착어를 쓴다. 어순체계가 약간 다른데, 터어키에서는 현재에도 학교에서 국사시간에 한국을 형제국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터키 역사교과서는 한국과 터키는 같은 민족이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펀주: 터키는 수메르문명에 의하여 문명이 일어난 부근에 후에 '돌궐(투르크)'의 일부가 다시 이동하여 생긴 나라로 보임. 물론 그지역 사람들과 피가 많이 섞여서 지금 모습이 우리와 많이 다름. 돌궐은 배달민족은 아니지만 가까이 있던 민족.말하자면 삼국유사에 나오는 '호랑이족'이 아니었나 추정)
그외 지구촌의 소수종족 중에 교착어를 쓰는 곳이 그외 몇몇 종족은 중국의 묘족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교착어를 사용한다. (펀주: 묘족 - 동이(東夷)계열 민족. 인디언 - 만주와 시베리아의 고대한국에서 이동한 것으로 밝혀짐.)
슈메르어(발음)[ 뜻] |
한국어 발음[단어 뜻] |
슈메르발음[단어뜻] |
한국어 발음[단어 뜻] |
아누(Annu)[최고 신] |
하느님 [하느님,上帝] |
Bad 바드 [ 밭 ] |
밭 (Bat) [밭, 田 ] |
안 (An) [天] |
하늘 (ha) [ 하늘, 天 ] |
Na 나 [나 1인칭] |
나 Na [ 나,我 ] |
기르(Gir) |
길 (Gil) [路] |
Ge 그 [3인칭 ] |
그 Ge [ 3인칭 ] |
라 (Ra) [~ 에서 ] |
로 (Ro) [ 조사 ] |
I 이 [1 인칭 ] |
이 [지시대명사] |
아비 Abi [ 아버지 ] |
아비 (Bo) [ 夫 ] |
Uhma 움마[엄마 母] |
엄마 Uhma [엄마 母] |
니므 Nim [ 님 任 ] |
님 (Nim) [ 사람 任] |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수메르의 주신은 안누(Annu), 최고의 신을 뜻한다.
우리말의 하느님, 하늘님, 한울님과 같은 의미이다. 중세 이전에 쓰던 한눌님으로 기준하면 이 단어는 전부 같은 발음이 된다. (펀주: 고대 한국어에서 한 과 안 은 같은 말로 쓰임.)
하(아)가 뜻하는 것이 하늘과 위와 남성적인 것이라면 '느'가 뜻하는 것은 땅, 아래, 여성적인 것이다. (누리(땅), 누이(누나) 같은 말도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고 며느리, 마누라도 이 어원에서 나온, 여자를 지칭하는 말)
하느님이라는 말은 하늘과 땅 즉 천지를 부모로써 떠받드는 것이며 모든 사람은 천지부모의 자식이란 뜻이 언어 속에 그대로 전해진다. 이것은 우리민족의 근본사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슈메르어 안(An)은 하느님을 뜻한다. 또한 이 '안(An)'은 제정일치 사회에서 군왕의 표상이 되었다. 고대 한국에서 원래 제왕이란 우주의 최고신을 대신하여 이땅을 다스리는 성인을 말한다. 고대에서는 그 시대의 최고의 지혜와 덕을 갖춘 성인을 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세습제로 바뀌게 되면서 여러가지 폐해가 일어나게 되었다. (원래 왕조는 세습제가 아니었다. 선출방식에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면서 강력한 중앙집권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습제로 바뀌면서 여러가지 폐단도 같이 발생하게 된다)
한민족은 하늘과 땅의 민족이란 뜻이고 천손(하늘의 자손)민족의 뜻이다. 제왕은 (원래는) 스스로 솔선수범하여 스스로를 희생하고 백성들을 보살피는 그런 존재이다. 또한 지혜와 덕성을 갖추고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서 수많은 백성들을 더 살기 좋고 이롭게 한 존재이다.
슈메르인들이 사용했던 12궁도와 우리의 12간지, 60진법과 60천간, 흑해/홍해와 황해의 오행(5行)흔적, 한단고기의 12환국에 묘사된 수밀이(須密爾)와 수메르는 같은 뿌리라고 단언할수 있다. (편주: 어떤 학자분 - <'수밀이'는 원래 '소머리' 라는 말이다. 만주의 '우수하(牛首河)' 가 원래에는 '소머리강' 인 것처럼. 그러므로 '소머리' -> '수메르'가 된 것이다.>)
영국학자 '크래머'등의 발굴에 의하여 '머리가 검은 (Black Headed People) 동아시아 인들'이 문명을 다 가지고 들어와 수메르문명을 세웠다는 것이 밝혀짐.- 언어 이외에 수메르 유래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지구라트'이다. 지구라트는 벽돌로 쌓은 인조탑이다. 물론 피라밋의 유래이며, 구약성서의 바벨탑의 전신이 다름 아닌 지구라트이다.
다행히 고고학자들은 지금 터키 그리고 몽고지역까지 수메르의 유적을 찾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기원전 3500년경 과연 그 찬란한 고급문명을 가지고 있던 지역은 과연 어딘가? 그밖에 수메르와 한국은 묘장제도, 순장제도, 60진법, 최고지도자의 상징을 봉황으로 삼고 있는 점 등에 있어서 앞으로 두고두고 그 유사성이 연구의 대상으로 남겨져 있다.
아시아의 대제국 환국과 그들의 후예 슈메르문명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환단고기는 네 권으로 이루어져있다. 환인과 환웅 역사를 기록한 삼성기, 단군조선 역사가 담겨있는 단군세기, 고구려의 전신인 북부여 역사를 기록한 북부여기, 마지막으로 태백일사에는 상고시대부터 고려까지의 역사가 담겨있다. 그런데 이책 속에는 놀라운 역사가 펼쳐진다. 우리민족의 역사는 반만년이 아니라 일만년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단군조선이 있기 이전에 5천년 역사가 더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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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에 [환국]이 있었고, 환국의 뒤를 이어 신시라 불리는 배달국이 있었다. 그리고 단군조선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후 고구려 전신인 북부여, 북부여의 뒤를 이은 고구려, 대진국이라고 하는 발해, 고려의 역사로 펼쳐진다. 특히 상고시대가 찬란하다.
일만년 전 탄생한 최초의 국가 환국. 환국은 3300년 동안 일곱 명의 환인이 통치했다 한다. 그후 신시 배달국은 열여덟 명의 환웅이 천 오백년 이상 다스렸다고 한다. 환국과 신시 배달국이 오천년 정도 이어진 후, 마침내 단군조선이 탄생하는데, 마흔일곱 명의 단군이 통치했다고 한다. 윤명철교수(동국대 사학과)
환단고기의 특징은 우리민족의 위대성을 강조, 광활한 영토를 기술, 민족의 정체성을 자극한다. 환단고기에 담겨있는 우리민족의 활동무대는 상상을 초월한다. 삼성기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다.
'파내류산 아래 환인의 나라가 있는데 천해 동쪽 땅이다. 그 땅의 넓이가 남북 5만리, 동서 2만 여리에 이른다.' (삼성기 하편)
파내류산은 지금의 시베리아 중앙고원에 해당하고, 천해는 바이칼호수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만년 전에 탄생한 환국의 영토는 아시아를 넘어선다. 당시 환국은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자랑하던 나라였고, 이 땅에서 열두 나라를 거느리고 있었다.
이 나라 중에 수밀이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일부에서는 이 수밀이국을 고대 수메르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 주장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문명을 일으켰던 수메르민족이 우리민족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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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길림성의 고구려 고분 각저총의 널방 오른벽에 그려진 씨름도와, BC2500년경으로 추정되는 슈메르의 구리향로가, 똑같은 '왼씨름' 자세를 묘사하고 있다.
출처 : 플러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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