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아이들과 다시 가 본 제주의 풍광 3 -용눈이오름-
(6) 용눈이 오름
이렇게 어머니 품속같이
따스하고 부드럽고 포근한 오름이 제주에 368개나 된다는데
큰 애가 용케도 그중 용눈이를 선택하여 계획.
오름이 2만5천 년 전 생성됐다하니
그 때에 바로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들이 제주에 왔다면
이 기생화산이 솟아나는 모습을 보았으리라.
아니 보았을 것이다.
사계리 해안 용암 바위에 그들의 발자국이 새겨졌다니...
야생에서 난생 처음 보는 타래난초, 솔나물이 반겨 줌.
아이들과 오름을 오르다 보니 모오든 근심 걱정 사라지다.
내일 높다는 다랑쉬오름을 올라보자고 하니 흔쾌히 OK. 하지만...
배달9213/개천5914/단기4349/서기2016/07/17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다랑쉬 오름을 배경으로>
<잘 보면 산 아래 돌담으로 보호되는 무덤이 보임. 주인공은 누구일까?>
<급사면의 다랑쉬 오름이 건너편에>
<야생에서 처음보는 타래난의 우아한 모습>
<역시 야생에서 처음보는 솔나물>
<반바퀴 돌아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는 편안한 길>
용눈이오름 龍臥岳(용와악)
산정부는 북동쪽의 정상봉을 중심으로 세 봉우리를 이루고,
그 안에 동서쪽으로 다소 트여있는 타원형의 분화구가 있으며,
전체적으로 산체는 동사면 쪽으로 얕게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이룬다.
서사면 기슭에는 정상부가 주발모양으로
오목하게 패어 있는 아담한 기생화산과 원추형 기생화산인 알오름 2개가 딸려 있어,
용눈이오름은 여러 종류의 화구로 이루어진 복합형 화산체라고 할 수 있다.
오름 기슭자락에는 따라비나 둔지봉, 서검은오름의 주변과 같이
용암암설류의 언덕이 산재해 있는데,
이는 용눈이 화산체가 형성된 뒤
용암류의 유출에 의해 산정의 화구륜 일부가 파괴되면서
용암류와 함께 흘러내린 토사가 이동, 퇴적된 것으로
알오름이나 언덕 같은 형태를 이룬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미루어 이 오름의 용암은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분출된 용암으로 판단되고 있으며,
`기생화산` 이라는 용어는 원론적으로 한라산 순상 화산체의
화산산록상에서 화산분화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소화산체이므로,
용눈이오름과 주변의 오름과 같이 한라산 중산간을 돌아가며
화산용암류의 산록상에서 분화구를 갖는 작은 화산을 의미한다.
오름의 전 사면은 잔디와 함께 풀밭을 이루는
아름답고 전형적인 제주오름의 모습이며,
지피식물로서 미나리아재비, 할미꽃 등이 자생하고 있다.
마치 용이 누워있는 형체라는 데서 연유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는 龍臥岳(용와악)으로 표기돼 있다.
산 복판이 크게 패어있는 것이 용이 누웠던 자리 같다고 해서
용눈이오름이라 부른다는 설도 있다.
* 표고 247.8m / 비고 88m / 둘레 2,685m / 면적 404,264㎡ / 저경 773m
다랑쉬오름(월랑봉)
다랑쉬오름이 소재하는 구좌읍 송당 일대의 동부 중산간지역은
아끈다랑쉬오름·돝오름·손자봉·용눈이오름·은월봉·높은오름·아부오름·동거문오름 등
제주도에서 오름이 가장 높은 밀도로 분포하는 대표적인 오름지대이다.
산정 표고 382m의 다랑쉬오름은
비고(比高) 227m, 둘레 3,391m, 기저직경 1,013m의
단성화산(單成火山: 일회의 분화활동으로 만들어진 소형 화산)으로서,
스트롬볼리식 분화에 의해 형성된 분석구(噴石丘) 또는 스코리아콘(scoria cone)이다.
제주도에 분포하는 분석구를 대표하는 오름으로서,
등고선으로 표현하면 사면이 동심원군으로 그려질 만큼 모식적인 원추형 화산체이다.
평균 경사각이 28°에 달하는 급경사의 직선사면으로 이루어진
화산체의 형태적 특징을 고려하면 다랑쉬오름의 형성시기는
오래 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오름의 산정에는 직경이 기저직경의 1/4 크기인 원형의 굼부리,
즉 분화구가 깊은 깔때기 모양으로 나타난다.
최대 깊이가 115m에 달하므로 비슷한 깊이의 백록담 분화구와 자주 비교된다.
그러나 스코리아 퇴적층의 높은 투수성으로 인하여
물이 고이지 않으므로 화구호는 발달하지 않는다.
다랑쉬오름에는 과거 탐방객의 답압(踏壓)과 부적절하게 설정된 노선으로 인하여
탐방로를 따라 스코리아 퇴적층이 드러나는 등 토양침식이 현저하게 발생하였다.
그 결과 오름 기저부에서 화구륜까지 직선으로 뻗어 있던 탐방로를 폐쇄하고
오름 사면을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새로운 노선으로 조정하였다.
오름 인근에 있었던 다랑쉬마을은 4·3사건 당시 소개령으로 폐촌 되었고,
마을에서 300m 정도 떨어져 있는 다랑쉬굴에서는
1992년에 4·3사건의 희생자 유골 11구가 발견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다랑시악(多郞時岳),
『대동지지』에는 대랑수악(大郞秀岳),
『제주군읍지』에는 다랑수악(多浪秀岳)으로 등장하며,
일제강점기부터 월랑봉(月郞峰)으로 표기하였다.
다랑쉬오름의 ‘다랑’은 높다는 뜻의 고구려어 달(達)과 관련이 있다고도 하며
봉우리가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고 하여 랑(月郞)이라고 표기했다는 등
여러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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