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305)정도전 삼봉집 제5권 / 불씨잡변(佛氏雜辨) /불씨 자비의 변[佛氏慈悲之辨]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5. 05:05

불씨 자비의 변[佛氏慈悲之辨]

 

하늘과 땅이 물(物)을 생(生)하는 것으로써 마음을 삼았는데, 사람은 이 천지가 물을 생하는 마음을 얻어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가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이른바 인(仁)이다.

불씨(佛氏)는 비록 오랑캐[夷狄]이지만 역시 사람의 종류임에는 틀림이 없으니, 어찌 홀로 이러한 마음이 없으리요?

우리 유가의 이른바 측은(惻隱)은 불씨의 이른바 자비(慈悲)이니 모두가 인(仁)의 용(用)이다. 그런데 그 말을 내세움은 비록 같으나 그 시행하는 방법은 서로 크게 다르다.

대개 육친(肉親)은 나와 더불어 기(氣)가 같은 것이요, 사람은 나와 더불어 유(類)가 같은 것이요, 물(物)은 나와 더불어 생(生)이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어진 마음의 베푸는 바는 육친에서부터 사람에, 물(物)에까지 미쳐서 흐르는 물이 첫째 웅덩이에 가득찬 후에 둘째와 셋째의 웅덩이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그 근본이 깊으면 그 미치는 바도 먼 것이다.

온 천하의 물(物)이 모두 나의 인애(仁愛) 속에 있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친(親)한 이를 친하게 한 후에 백성에게 어질게 하고, 백성에게 어질게 한 후에 만물을 사랑한다.”

고 하나니, 이것이 유자(儒者)의 도는 하나이고 실(實)이며 연속된다는 까닭이다.

불씨는 그렇지 않다.

그는 물(物)에 대하여서는 표독한 승냥이ㆍ호랑이 같은 것에나 미세한 모기 같은 것에도 자기 몸을 뜯어 먹혀가면서 아깝게 여기려 하지 않는가 하면, 사람에 대하여서는 월(越)나라 사람이냐 진(秦)나라 사람이냐를 가리지 않고, 배고픈 자에게는 밥을 먹이려 들고, 추위에 떠는 자에게는 옷을 밀어주어 입히려 드니, 이른바 보시(布施)라는 것이다. 그런데 부자(夫子)와 같은 지친(至親)에 대하여서나 군신(君臣)과 같은 지극히 공경하여야 할 데에 대하여서는 반드시 끊어 버리려 드니 이는 무슨 뜻인가? 그뿐인가, 사람이 스스로 신중을 기하는 것은 부모 처자가 있어서 그것에 배려하기 때문이거늘, 불씨는 인륜을 가합(假合)이라 하여, 아들은 그 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고, 신하는 그 임금을 임금으로 여기지 않아서, 은혜와 의리(義理)가 강쇠되고 각박한지라 자기 지친(至親) 보기를 길 가는 사람같이 보고, 공경해야 할 어른 대하기를 어린아이 대하듯이 하여 그 근본과 원류를 먼저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사람과 만물에 미치는 것이 뿌리 없는 나무나 원류(源流) 없는 물이 쉽게 고갈(枯竭)되는 것과 같아, 끝내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만물을 구제하는 효과가 없다. 그런데 칼을 빼어 뱀[蛇]을 죽이는 데는 조금도 애석함이 없는가 하면, 지옥(地獄)의 설은 참혹하기 그지없으니, 도리어 은혜라고는 적은 사람이 된다. 앞서 이른바 자비(慈悲)란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이 마음의 천리(天理)는 끝내 어둡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극히 혼폐(昏蔽)한 사람일지라도 한번 부모를 보면 효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유연(油然)히 생겨나는 것인데, 어찌 돌이켜 구하지 않고 이에 말하기를,

 

“전생의 많은 습기(習氣)를 다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애착의 뿌리[愛根]가 아직 남아있다.”

라고 하니 미혹에 집착되어 깨닫지 못함이 이보다 더할 수 없다. 불씨의 교(敎)는 의(義)가 없고 이(理)가 없는 까닭으로 명교(名敎 유교(儒敎)의 별칭)에서 용납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런 까닭이다.

 

 

 

佛氏慈悲之辨

天地以生物爲心。而人得天地生物之心以生。故人皆有不忍人之心。此卽所謂仁也。佛雖夷狄。亦人之類耳。安得獨無此心哉。吾儒所謂惻隱。佛氏所謂慈悲。皆仁之用也。其立言雖同。而其所施之方則大相遠矣。蓋親。與我同氣者也。人。與我同類者也。物。與我同生者也。故仁心之所施。自親而人而物。如水之流盈於第一坎而後達於第二第三之坎。其本深。故其及者遠。擧天下之物。無一不在吾仁愛之中。故曰。親親而仁民。仁民而愛物。此儒者之道。所以爲一爲實爲連續也。佛氏則不然。其於物也。毒如豺虎。微如蚊蝱。尙欲以其身餧之而不辭。其於人也。越人有飢者。思欲推食而食之。秦人有寒者。思欲推衣而衣之。所謂布施者也。若夫至親如父子。至敬如君臣。必欲絶而去之。果何意歟。且人之所以自重愼者。以有父母妻子爲之顧藉也。佛氏以人倫爲假合。子不父其父。臣不君其君。恩義衰薄。視至親如路人。視至敬如弁髦。其本源先失。故其及於人物者。如木之無根。水之無源。易致枯竭。卒無利人濟物之效。而拔劍斬蛇。略無愛惜。地獄之說。極其慘酷。反爲少恩之人。向之所謂慈悲者。果安在哉。然而此心之天。終有不可得而昧者。故雖昏蔽之極。一見父母則孝愛之心油然而生。盍亦反而求之。而乃曰多生習氣未盡除。故愛根尙在。執迷不悟。莫此爲甚。佛氏之敎。所以無義無理。而名敎所不容者此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