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 진가의 변[佛氏眞假之辨]
불씨는 마음과 성(性)을 진상(眞常)이라 하고 천지만물은 가합(假合)된 것이라 하였다. 그의 말에 이르기를,
“일체(一切) 중생(衆生)과 가지가지의 환화(幻化)가 모두 여래의 원각묘심(圓覺妙心)에서 나왔으니, 그것은 마치 허공에 나타나는 꽃[空華]이나, 물에 비친 달[第二月]과 같다.”
【안】 이 글은 《원각경(圓覺經)》에서 나온 말이다. “중생들의 업식(業識)으로서는 자기 몸속에 바로 여래의 원각묘심이 있는 줄을 모른다. 만일 지혜로써 작용에 비춘다면 법계(法界)의 진실성이 없는 것은 허공에 나타나는 꽃과 같고, 중생들의 허망한 모양은 물에 비친 달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묘심(妙心)은 본래의 달이고 물에 비친 달은 달의 그림자인 것이다.”고 되어 있다.
하고, 또 말하기를,
“공(空)이 대각(大覺) 가운데에서 생겨나는 것은, 바다에 물거품이 하나 일어나는 것과 같아, 유루(有漏)와 미진국(微塵國)이 모두 공에 의하여 세워진 것이다.”
【안】 이 글은 《능엄경》에서 나왔다. “대각해(大覺海) 가운데는 본래 공(空)도 유(有)도 없는 것인데, 미혹(迷惑)의 바람이 고동(鼓動)하면 공의 물거품이 망령되이 발하여 모든 유(有)가 생겨나고 미혹의 바람이 자게 되면 공의 물거품도 없어지기 마련이라. 그러므로 거기에 의지해 생기는 모든 유는 다 유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공의 대각이 원융(圓融)해야만 다시 원묘(元妙)로 돌아간다.”고 되어 있다.
하였다. 불씨의 말에 그 폐해가 많으나 그러나 인륜(人倫)을 끊어 버리고도 조금도 기탄(忌憚)함이 없는 것이 이 병의 근원이니, 부득이 고쳐주지 않을 수 없다.
대개 천지만물이 있기 전에 필경 태극(太極)이 먼저 있어, 천지 만물의 이치가 그 가운데에 이미 혼연(渾然)하게 갖추어졌으리라. 그러므로,
“태극이 양의(兩儀)를 생(生)하고 양의(兩儀)가 사상(四象)을 생(生)한다.”
고 하였으니, 천만 가지 변화가 모두 이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마치 물에 근원이 있어 만 갈래로 흘러나감과 같고, 나무에 뿌리가 있어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는 것과 같아, 이것은 사람의 지혜와 힘으로 할 수도 없는 것이요, 또한 사람의 지혜와 힘으로 막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초학자와 더불어 이야기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니, 모든 사람이 쉽게 볼 수 있는 것부터 이야기하리라.
불씨가 죽은 지 이미 수천 년이 지났다. 하늘이 땅 위를 높이 덮은 것이 이처럼 확실하고, 땅이 하늘 밑에 판판히 뻗은 것이 이같이 뚜렷하며, 사람과 만물이 그 사이에서 태어남이 이같이 찬란하며, 해와 달과 추위와 더위가 가고 옴이 이같이 정연하다.
이리하여 천체는 지극히 크나, 그 주위의 운전(運轉)하는 도수[度]나, 일월성신(日月星辰)의 거꾸로 가고 바로 가고 빨리 가고 느리게 가는 운행[行]은 비록 비바람 불고 어두운 저녁을 당하여도 능히 8척(尺)의 선기(璇璣)와 몇 촌(寸)의 옥형(玉衡)에 벗어날 수 없고, 햇수의 쌓임이 몇 억 년에 이르러도 24절기(節氣)의 고루 나뉨이나, 삭허(朔虛)ㆍ기영(氣盈)하는 그 여분(餘分)의 쌓임이 털끝같이 미세한 데 이르러서도 또한 승(乘)과 제(除)의 두 방법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맹자(孟子)의 이른바,
“하늘의 높음이나 성신(星辰)의 멂이라도, 진실로 그 연고를 구한다면 천년 후의 동지(冬至)도 앉아서 알 수 있다.”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또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인가? 반드시 실(實)한 이치가 있어 그렇게 되도록 주장하는 것이리라.
또 가(假)라는 것은 잠시에 불과한 것으로 천만 년 오래 갈 수는 없는 것이며, 환(幻)이라고 하는 것은 한 사람을 속일 수 있어도 천만 사람을 믿게 할 수는 없는 것인데, 천지의 상구(常久)함이나 만물의 상생(常生)하는 것을 가(假)라고 하고 환(幻)이라고 하니 이는 어떻게 된 말인가?
아니, 불씨는 궁리(窮理)의 학이 없어 그 설을 구하여도 얻지 못함인가? 아니면 그 마음이 좁아 천지의 큼이나 만물의 많음을 그 안에 용납하지 못함인가? 그것도 아니면 지수(持守)의 요약(要約)만을 좋아하고 궁리의 번거로움이나 만변(萬變)에 수응(酬應)하는 수고로움을 싫어함인가?
장자(張子 장재(張載). 송나라 때 학자)가 말하기를,
“밝은 것은 다 속일 수 없다.”
하였거늘, 천지일월을 환망(幻妄)이라 하니, 불씨가 그런 병통을 받은 것이 반드시 유래가 있어서이다. 요컨대 그의 보는 바가 가려져 있으므로 그 말하는 바의 편벽됨이 이와 같은 것이다. 아아 애석한 일이기도 하다.
내 어찌 말 많이 하기를 좋아하겠는가마는, 내가 말을 그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저들의 마음이 너무 미혹(迷惑)되고 어두운 것이 불쌍하기 때문이요, 우리의 도(道)가 쇠폐(衰廢)될까 근심스럽기 때문이다.
[주1]유루(有漏) :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의 삼계(三界) 가운데 일체(一切)는 모두 다 번뇌를 함유하므로 유루(有漏)라 함. 불가(佛家)의 말로써 삼계의 번뇌(煩惱)를 말한다. 누(漏)라는 것은 번뇌의 이명(異名).
[주2]미진국(微塵國) : 세계미진(世界微塵)을 가리킴. 일체(一切)의 인과가 세계미진으로 인해서 성체(成體)한다.
佛氏眞假之辨
佛氏以心性爲眞。常以天地萬物爲假合。其言曰。一切衆生。種種幻化。皆生如來圓覺妙心。猶如空華及第二月。按此一段。出圓覺經。言衆生業識。不知自身內如來圓覺妙心。若以智照用。則法界之無實。如空華。衆生之妄相。如第二月。妙心。本月。第二月。影也。 又曰。空生大覺中。如海一漚發。有漏微塵國。皆依空所立。按此一段。出楞嚴經。言大覺海中。本絶空有。由迷風飄鼓。妄發空漚。而諸有生焉。迷風旣息。則空漚亦滅。所依諸有。遽不可得。而空覺圓融。復歸元妙。佛氏之言。其害多端。然滅絶倫理。略無忌憚者。此其病根也。不得不砭而藥之也。蓋未有天地萬物之前。畢竟先有太極。而天地萬物之理。已渾然具於其中。故曰太極生兩儀。兩儀生四象。千變萬化。皆從此出。如水之有源。萬泒流注。如木之有根。枝葉暢茂。此非人智力之所得而爲也。亦非人智力之所得而遏也。然此固有難與初學言者。以其衆人所易見者而言之。自佛氏歿。至今數千餘年。天之昆侖於上者。若是其確然也。地之磅礴於下者。若是其隤然也。人物之生於其間者。若是其燦然也。日月寒暑之往來。若是其秩然也。是以。天體至大。而其周圍運轉之度。日月星辰逆順疾徐之行。雖當風雨晦明之夕。而不能外於八尺之璣。數寸之衡。歲年之積。至於百千萬億之多。而二十四氣之平分。與夫朔虛氣盈餘分之積。至於毫釐絲忽之微。而亦不能外於乘除之兩策。孟子所謂天之高也。星辰之遠也。苟求其故。千歲之日至。可坐而致者。此也。是亦孰使之然歟。必有實理爲之主張也。且假者。可暫於一時。而不可久於千萬世。幻者。可欺於一人。而不可信於千萬人。而以天地之常久。萬物之常生。謂之假且幻。抑何說歟。豈佛氏無窮理之學。求其說而不得歟。抑其心隘。天地之大。萬物之衆。不得容於其中歟。豈樂夫持守之約。而厭夫窮理之煩。酬酢萬變之勞歟。張子曰。明不能盡誣。天地日月以爲幻妄。則佛氏受病之處。必有所自矣。要之其所見蔽。故其所言詖如此。嗚呼惜哉。予豈譊譊而多言者歟。予所言之而不已者。正惟彼心之迷昧爲可憐。而吾道之衰廢爲可憂而已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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