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 선ㆍ교의 변[佛氏禪敎之辨]
불씨의 설이 그 최초에는 인연(因緣)과 과보(果報)를 논(論)하여 어리석은 백성을 속이고 꾀는 데 불과한지라, 비록 허무를 종(宗)으로 삼아 인사(人事)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선을 행하면 복을 얻고 악을 행하면 화를 얻는다는 설은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장하며, 몸가짐을 계율(戒律)에 맞춤으로써 방사(放肆)해지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게 하였었다. 그러므로 인륜은 비록 저버렸으면서도 의리를 모두 상실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달마(達摩)가 중국에 들어와서는 그의 설이 얕고 비루(卑陋)하여 고명(高明)한 선비들을 현혹시킬 수 없음을 스스로 깨닫고서 이에 말하기를,
“문자에도 의존하지 않고 언어의 길도 끊어졌다.”
하고는,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자기 본성만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외쳤다.
그 말이 한번 나와 첩경(捷徑)이 문득 열림으로써, 그들의 무리가 서로 돌려가며 논술하였으니,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선(善)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닦을 수 없으며 악(惡)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끊을 수도 없다.”
하여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도를 끊었고,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음(淫)과 노(怒)와 치(癡)도 모두 범행(梵行 음욕(淫欲)을 끊는 깨끗한 수행)이다.”
하니, 이는 계율(戒律)에 맞추어 몸 가지는 도를 잃어버렸거늘, 그럼에도 스스로 세속(世俗)의 일정한 형(型)에서 벗어나 속박을 풀어버린다 하여 오만하게 예법 밖으로 나가 제멋대로 방사(放肆)하기를 미친 것처럼 급급하니 사람의 도리라고는 조금도 없는지라, 이른바 의리라는 것도 이에 이르러 모두 상실했다 하겠다.
주문공(朱文公 주희(朱熹))은 이를 근심하여 다음의 시를 읊었다.
서방세계는 연과 업을 논하여 / 西方論緣業
비루하게도 뭇 어리석은 자들을 꾀는구나 / 卑卑喩群愚
흘러 전한 그 세대가 오래 됨에는 / 流傳世代久
사다리의 대임이 허공을 능가하도다 / 梯接凌空虛
이것저것 보고 모두 보며 심성을 가리켜 / 顧盻指心性
유무를 초월했다 이름지어 말하네 / 名言超有無
【안】 본설에 대략 세 가지 순서가 있으니 처음에 재계(齋戒)가 있고 그 다음에 의학(義學)이고 선학(禪學)이다. 연(緣)의 이름은 열둘이 있으니 촉(觸)ㆍ애(愛)ㆍ수(受)ㆍ취(取)ㆍ유(有)ㆍ생(生)ㆍ노(老)ㆍ사(死)ㆍ우(憂)ㆍ비(悲)ㆍ고(苦)ㆍ뇌(惱)이다. 업(業)의 이름은 셋이 있으니 신(身)ㆍ구(口)ㆍ의(意)이다. 심(心)과 성(性)을 가리킨다는 것은 나의 마음이 곧 불심이니, 나의 성(性)을 깨달아 부처를 이룬다는 것을 말함이다. 유무를 초월했다는 것은, 유를 말하면 ‘색(色)은 곧 공이다.’ 하고, 무를 말하면 ‘공은 곧 색이다.’ 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
빠른 길이 한번 열리자 / 捷徑一以開
바람에 휩쓸리듯 온 세상이 쏠리는데 / 靡然世爭趨
공만을 부르짖고 실은 밟지 않고 / 號空不踐實
저 가시덤불 길에 갈팡질팡하는구나 / 躓彼榛棘塗
그 누가 삼성을 계승하여 / 誰哉繼三聖
【안】 세 성인은 우(禹)ㆍ주공(周公)ㆍ공자(孔子)
우리들을 위해 그 글을 불사를 건가 / 爲我焚其書
주문공께서 이처럼 깊이 근심하신지라 나 또한 이를 위하여 서글퍼 재삼 탄식하는 바이다.
佛氏禪敎之辨
佛氏之說。其初不過論因緣果報。以誑誘愚民耳。雖以虛無爲宗。廢棄人事。尙有爲善得福。爲惡得禍之說。使人有所懲勸。持身戒律。不至於放肆。故人倫雖毀。義理未盡喪了。至達摩入中國。自知其說淺陋。不足以惑高明之士。於是曰。不立文字。言語道斷。直指人心。見性成佛。其說一出。捷徑便開。其徒轉相論述。或曰。善亦是心。不可將心修心。惡亦是心。不可將心斷心。善惡懲勸之道絶矣。或曰。及淫怒癡。皆是梵行。戒律持身之道失矣。自以爲不落窩臼。解縛去械。慠然出於禮法之外。放肆自恣。汲汲如狂。無復人理。所謂義理者。至此都喪也。朱文公憂之曰。西方論緣業。卑卑喩群愚。流傳世代久。梯接凌空虛。顧盻指心性。名言超有無。按佛說。大略有三。其初齋戒。後有義學。有禪學。緣之名有十二。曰觸愛受取有生老死憂悲苦惱。業之名有三。曰身口意。指心性。謂卽心是佛。見性成佛。超有無。謂言有則云色卽是空。言無則云空卽是色。 捷徑一以開。靡然世爭趨。號空不踐實。躓彼榛棘塗。誰哉繼三聖。按三聖。謂禹周公孔子。 爲我焚其書。甚哉。其憂之之深也。予亦爲之憮然三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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