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사상과 현대 한국정치-정치가 양성을 중심으로-
박홍규
1980년대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달성한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공고화 과정을 거쳤지만, 민주주의 수준이 질적으로 향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번 19대 총선 과정을 살펴볼 때, 정치가의 수준이 향상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욱 회의적이다. 기존의 정치인은 물론 정당공천을 통해 정치권에 진입한 새로운 인물 또한 견실한 정책 선거를 지향하기보다는 득표를 위해 실행가능성이 낮은 공약空約을 남발하고, 네거티브 선거캠페인을 행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화’를 위해서는 분명 긴급한 치료를 요하는 상황임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의 정치학은 무엇을 했고,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먼저 근대 이후 서구 정치사상 및 미국 중심의 현대 정치학의 특징을 살펴보고, 그러한 서구 정치학을 충실히 추종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 정치학계의 상황과 문제점을 지적한 다음, 제도개혁론과 정치가론을 함께 가지고 있는 정도전 사상을 통해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핵심 단어 : 정도전, 정치가 양성, 행태주의, 마키아벨리, 홉스, 로크
『한국학논집』 제47집(2012). pp. 127~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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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현대 한국정치의 상황
1980년대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달성한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공고화 과정을 거쳤지만, 민주주의 수준이 질적으로 향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발전과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낮은 수준의 정치적 제도화, 정치적 부패의 만연,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의 증대와 경제적 불안감의 확대, 사회적 불신과 정치적 제도에 관한 낮은 신뢰수준 등의 현상은 성숙한 민주사회라는 평가를 내리기 어렵게 한다. 특히 이번 19대 총선 과정을 살펴볼 때, 정치엘리트의 수준이 향상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욱 회의적이다. 기존의 정치인은 물론 정당공천을 통해 정치권에 진입한 새로운 인물 또한 견실한 정책 선거를 지향하기보다는 득표를 위해 실행가능성이 낮은 공약(空約)을 남발하고, 네거티브 선거캠페인을 행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화’를 위해서는 분명 긴급한 치료를 요하는 상황임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의 정치학은 무엇을 했고,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먼저 근대 이후 서구 정치사상 및 미국 중심의 현대 정치학의 특징을 살펴보고, 그러한 서구 정치학을 충실히 추종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 정치학계의 상황과 문제점을 지적한 다음, 제도개혁론과 정치가론을 함께 가지고 있는 정도전 사상을 통해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2. 서구 근대 정치사상 및 현대 정치학의 접근방식
근대는 중세의 신으로부터 해방된 개체로서의 인간을 상정한다. 따라서 근대 서구 정치학은 욕망의 주체이자 이성의 소유자인 인간이 신이 아닌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 질서를 창출하는 것을 핵심과제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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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새로운 질서(분열된 이탈리아의 통일)를 위한 군주의 통치술을 전개하였다. 그의 통치술은 바람직한 인간이 아니라 현존하는 인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관심을 경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 십상이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많은 무자비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필요하다면 부도덕하게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1
마키아벨리는 중세적 인간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자신의 눈앞에 현존하는 인간, 즉 근대적 인간을 바탕으로 질서를 구축할 수 있는 논리를 주장한다. 그가 묘사하는 인간은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일 뿐이다.
이 점은 인간 일반에 대해서 말해준다. 즉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자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고 이득에 눈이 어둡다는 것이다. 당신이 은혜를 베푸는 동안 사람들은 모두 당신에게 온갖 충성을 바친다. … 그러나 당신이 정작 궁지에 몰리게 되면, 그들은 등을 돌린다. 따라서 전적으로 그들의 약속을 믿고 다른 방비책을 소홀히 한 군주는 몰락을 자초할 뿐이다. …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받는 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덜 주저한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1) 마키아벨리. 2003. 『군주론』. 강정인·문지영 옮김. 까치. 107-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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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의무감에 의해서 유지되는데 인간은 지나치게 이해타산적이어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자신을 사랑한 자를 팽개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써 유지되며 항상 효과적이다.2
이러한 이해타산적인 인간에게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군주는 상황에 따라 악덕을 행할 수 있는 신중한 인물이어야 한다.
군주가 앞에서 말한 것들 중에서 좋다고 생각되는 성품들(virtues)을 모두 갖추고 있다면 그야말로 가장 찬양받을 만하며, 모든 사람들이 이를 기꺼이 인정할 것이라는 점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갖추는 것이 가능하지 않고, 상황이란 것이 전적으로 유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신중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권력기반을 파괴할 법한 악덕으로 악명을 떨치는 것을 피하고, 또 정치적으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악덕들도 가급적 피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후자의 악덕은 별다른 불안을 느끼지 않고 즐겨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권력을 보존하기 어려운 악덕으로 악명을 떨치는 것에 대해서는 개의치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고려할 때, 얼핏 유덕한 것으로 보이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키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3
그렇다고 해서 마키아벨리가 악덕, 악행 그 자체를 권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악행을 요구한다면 기꺼이 그것을 실행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2) 같은 책. 117쪽.
3) 같은 책. 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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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는 특히 신생 군주는 좋다고 생각되는 방법으로 처신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종종 신의 없이, 무자비하게, 비인도적으로 행동하고 종교의 계율을 무시하도록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운명의 풍향과 변모하는 상황이 그를 제약함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거기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바꿀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 … 가급적이면 올바른 행동으로부터 벗어나지 말아야 하겠지만 필요하다면 비행을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4
그러나 군주의 악행을 요구하는 상황이란 역시 “인간이란 신의가 없고 당신과 맺은 약속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5 인간의 본질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따라서 질서를 창출하려는 군주는 이러한 인간의 본질에 부합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군주가 자신의 약속을 지키며 기만책을 쓰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찬양받을 만한 것인지를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에 따르면 우리 시대에 위대한 업적을 성취한 군주는 자신의 약속을 별로 중시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을 혼동시키는 데에 능숙한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신의를 지키는 자들에게 맞서서 항상 승리를 거두었다.6
이상과 같은 마키아벨리가 묘사한 근대적 인간의 모습은 홉스가 『리바이어던』을 저술할 때도 등장한다. 그러나 홉스는 마키아벨리와 달리 현존하는 인간이 아니라 ‘자연상태’라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4) 같은 책. 125쪽.
5) 같은 책. 123쪽.
6) 같은 책. 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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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은 나면서부터 평등하다.” 왜냐하면 “자연은 인간을 신체와 정신의 능력에 있어서 평등하게 창조했”기 때문이다.7 이러한 ‘능력의 평등’에서부터 인간은 욕망을 달성하는 데 있어 ‘희망의 평등’이 발생한다. “따라서 만일 어떤 두 사람이 같은 것을 의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둘 다 향유할 수 없다면, 그들은 적으로 된다. 그리고 그들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멸망시키거나 굴복시키려고 노력하”는 상호불신의 상황이 전개된다.8 이러한 상호불신으로부터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을 지키는 데 있어서 선수를 치는 것과 같은 적절한 방법은 없고, 폭력이나 간계에 의해서 그가 그를 위태롭게 하는데 충분한 다른 힘을 만나지 않을 때까지, 그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그 자신의 보존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것이다.9 홉스는 “모든 사람이 그 자신의 본성, 즉 그 자신의 생명의 보존을 위해 스스로 원하는 대로 그 자신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 갖는 자유”10를 자연권이라고 규정한다. 모든 사람이 자연권을 갖고 있는 자연상태를 홉스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인간이 그들 모두를 두렵게 하는 공통의 힘이 없이 사는 시기에는, 그들은 전쟁이라고 불리는 상태에 있으며, 그리고 그러한 전쟁은 모든 사람에 대한 모든 사람의 전쟁인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이란 전투나 싸우는 행동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전투에 의해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충분히 알려진 기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11
7) 홉스. 1982. 『리바이어던』. 한승조 옮김. 삼성출판사. 223쪽.
8) 같은 책. 224쪽.
9) 같은 책. 224-225쪽.
10) 같은 책. 228쪽.
11) 같은 책. 225-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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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상태에서는 근로의 여지가 없다. 그것의 성과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도 나쁜 것은 계속적 공포와 폭력에 의한 죽음에 대한 공포이며, 인간의 생활은 고독하며 가난하고 험악하며 잔인하고 짧은 것이다.12
모든 사람에 대한 모든 사람의 전쟁 속에서는 어떠한 것도 부정한 것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정(正)과 사(邪), 정의와 부정의의 관념이 거기에 존재할 여지는 없다.13 그러나 이러한 상태로부터 벗어나 질서를 창출하고자 하는 정념과 이성이 인간에게 작동하게 된다. 이는 평화에 대한 정념과 평화를 가능케 하는 이성의 명령, 즉 자연법이다.
인간을 평화로 지향케 하는 정념은 죽음에 대한 공포나 편리한 생활에 필요한 것과 같은 것들에 대한 의욕이며, 그들의 근로에 의해서 그것들을 획득하려는 희망이다. 그리고 이성은 인간들이 동의에 이를 수 있는 적절한 조항들을 시사한다. 이러한 조항들은 자연의 법률들이라고 불리는 것이다.14
자연법이란 이성에 의해 발견된 계율 또는 일반적 법칙으로, “모든 사람은 그가 그것을 획득하려는 희망을 가지는 한, 평화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평화를 추구하고 그것을 따르라”는 것이 제1의 자연법이다.15 이로부터 제2의 자연법이 도출된다. “인간은 평화와 자신의 방어를 위해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한, 타인도 그러할 때에는 모든 것에 대한 이러
12) 같은 책. 226쪽
13) 같은 책. 227쪽.
14) 같은 책. 228쪽.
15) 같은 책. 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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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리(자연권)를 포기해야만 한다.”16
계약을 통해 자연권을 상호 양도함으로써, “사람도 신의 창조를 모방하여 자연을 인공동물로 만들어볼 수가 있는 것이다.”17 “정치공동체, 즉 국가는 바로 이런 솜씨에 의하여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의 인공적 인간과도 같은 리바이어던이다.”18 홉스는 사악한 인간에게 법과 정치제도를 통해 질서를 부여하는 ‘제도규율적 질서론’을 주장했다.
또한 로크는 홉스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인간의 불완전성을 전제로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한 정치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다. 로크는 『통치론』에서 다음과 같이 자연상태를 설명한다. “자연상태란 사람들이 타인의 허락을 구하거나 그의 의지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법의 테두리안에서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고 자신의 소유물과 인신(人身)을 처분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의 상태이다. 그것은 또한 평등한 상태이기도 한데, 거기서 모든 권력과 권한은 호혜적이며 무릇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지 않는다.”19 이러한 자연상태는 ‘자유의 상태’이지 ‘방종의 상태’는 아니다.
그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의 인신과 소유물을 처분할 수 있는 통제받지 않는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그는 자신을 파괴할 수 없으며, 또 그의 소유하에 있는 어떠한 피조물도 살해할 수 없다. 자연상태에는 그것을 지배하는 자연법이 있으며 그 법은 모든 사람을 구속한다. 그리고 그 법인 이성은 조언을 구하는 모든 인류에게 인간은 모두 평
16) 같은 책. 229쪽.
17) 같은 책. 149쪽.
18) 같은 책. 149쪽.
19) 존 로크. 1996. 『통치론』. 강정인·문지영 옮김. 까치.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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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하고 독립된 존재이므로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명, 건강, 자유 또는 소유물에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20
또한 로크의 자연상태에서는 만인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가하는 것을 억제하고 모든 인류의 평화와 보전을 지향하는 자연법의 준수를 확보하기 위해서, 자연법의 집행이 모든 사람의 수중에 맡겨져 있다.21
자연상태에서 한 인간은 다른 인간에 대해서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 … 차분한 이성과 양심이 명하는 바에 따라 범법자에게 그의 침해에 비례하여 보복을 가할 수 있는 권력으로서 배상과 범죄의 억제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 모든 사람은 위반자를 처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자연법의 집행자가 된다.22
그러나 자연상태에는 많은 것들이 결여되어 있다.
첫째, 자연상태에는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이자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분쟁을 해결하는 공통된 척도로서의 공통의 동의를 통해서 수용되고 인정된 법률 그리고 확립되고 안정된, 잘 알려진 법률이 없다.
둘째, 자연상태에는 확립된 법에 따라 모든 다툼을 해결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널리 알려진 무사공평한 재판관이 없다.
셋째, 자연상태에는 비록 올라른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이를 뒷받침해서 지원해주
20) 같은 책. 13쪽.
21) 같은 책. 14쪽.
22) 같은 책. 14-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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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 적절한 집행을 확보해주는 권력이 종종 결여되어 있다.23
따라서 인류는 자연상태에 따르는 온갖 특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거기에 남아 있는 동안 단지 열악한 상황에 시달리게 되므로, 급기야 사람들은 그들이 자연상태에서 가졌던 평등, 자유 및 집행권을 사회의 선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입법부가 처리할 수 있도록 사회의 수중에 양도하게 된다.24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고, 각자 모두 자연법의 집행권을 포기하여 그것을 공공체(the publick)에게 양도하는 곳에서만 비로소 정치사회(political society) 또는 시민사회(civil society)가 존재하게 된다.25
비록 루소와 같은 이질적인 존재가 있기는 했지만, 이상에서 서술했듯이 마키아벨리에서 홉스 그리고 로크에 이르는 서구 근대 정치사상의 근본 저류는 면면히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규율적 정치론의 흐름을 이어 정치학이 하나의 학문 분야로 독립된 것은 1860년대 후반이었다. 비록 독립된 학문분과를 이루기는 했지만, 여전히 정치학은 역사학, 철학, 법학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면서 정치현상의 역사적인 면, 규범적인 면을 다루거나, 법, 정치기구, 정치제도 등을 서술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으며,26 정치체제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에 관해 상세하게 서술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즉 중요한 인물이나 제도, 법문서, 헌법, 정치기구들을 열거하면서 서
23) 같은 책. 120쪽.
24) 같은 책. 123쪽.
25) 같은 책. 85쪽.
26) 신명순. 1999. 『비교정치』. 박영사.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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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하거나 역사적 사건을 시대 순으로 나열하여, 법적인 것이나 공식적인 것에만 주된 관심을 두었다. 이 당시에는 법학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헌법뿐만 아니라 정부의 공식적인 기구들인 내각, 의회, 법원, 관료, 선거제도 등이 주된 연구의 대상이었다.27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행태주의 정치학은 정치학의 과학화를 주창하여 일세를 풍미하게 된다.
1960년대에 들어서 비교정치학에서 지적인 혁명이 일어났다. 비교정치학 분야에서 공식적인 정부기구 등에 관한 관심의 집중을 벗어나 정치현실에 관한 탐구가 증대하여 정책결정이나 정치과정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였다. 방법론적으로는 계량적인 방법을 도입하고 자료의 분석과 사용에서 정확한 측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단순한 서술보다는 지적인 것을 추구하고 이론을 정립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전의 서술적, 나열적, 규범적인 것에서 설명적, 예측적인 학문으로 변화하였다. 비교정치학의 이러한 발전은 행태주의(behavioralism)의 대두와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행태주의는 정태적인 법이나 기구, 제도보다는 인간의 행태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다.28
인간의 정치적 행동은 제도적 질서, 합리적 손익계산, 가치판단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이며,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일정한 유형을 반복적으로 나타내는 정치적 행동을 정치행태(political behavior)라고 부른다.29 행태주의 연구는 정치제도의 모습이나 특징을 단순히 서술하는 작업을 넘어서서, 제도 속의 인간의 정치행태가 형성되는 역동적 과정을 파악하려는 목적을 갖
27) 같은 책. 8쪽.
28) 같은 책. 10쪽.
29) 김웅진. 2008. 「행태주의와 경험과학 연구: 전제, 영역과 설계」. 『정치학이해의 길잡이2 정치이론과 방법론』. 법문사.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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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다.30
행태주의자는 정치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치행태를 어디까지나 ‘제도에 귀속된 행태’로 간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태주의자들이 정치행태에 관심을 두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선택과 결정이야말로 정치의 존재론적 본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31 즉, 행태주의자들은 자신의 고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인간의 선택과 결정은 반드시 일정한 행태로 표출되기 마련이며, 따라서 행태연구는 곧 정치현상의 본질적 속성에 관한 연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32 그러나 행태주의 연구가 개인의 정치행태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며, 개인을 넘어서서 조직과 집단, 더 나아가 정치체계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정치적 역동을 그 연구대상으로 삼는다.33
행태주의는 과학적 운동을 표방하고 있으며, 과학의 의미와 목표, 과학적 연구의 절차에 관한 입장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전제와 입장은 이스튼(David Easton)이 정리한 행태과학 운동의 ‘지적 초석’에 명확히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행태주의 정치학으로 명명된 미국정치학은 다양한 각도에서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반세기에 걸쳐 전제와 분석논리를 끊임없이 수정, 발전시키는 가운데 경험과학 연구(empirical research)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대응하면서 현대 정치학을 떠받치고 있는 이론적, 방법론적 주류의 한 갈래로서 그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즉 20세기 전반부에 걸쳐 정치학 연구에 과학적 시각을 도입하려는 학문적 운동으로 시작된 행태주
30) 같은 책. 5쪽.
31) 같은 책. 3-4쪽.
32) 같은 책. 4쪽.
33) 같은 책.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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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는 오늘날에 이르러 치밀한 연구 프로그램 내지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됨으로써 현대 정치학에 있어서 ‘강한 과학(strong science)으로서의 안정된 지위를 누리고 있다.34
해방 이후 한국의 정치학은 미국정치학의 우산 속에서 전개되었다. 그 중에서도 정치과정론, 정치발전론, 민주주의론 등을 다루는 비교정치학 분야가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대통령제도, 정당제도, 선거제도 개선론 등 민주주의 제도 설계 및 운영에 관한 연구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나아가 현실에서 시행되고 있는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전제로 하여 그 속에서 전개되는 정치과정 특히 선거 행태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정치학 분야의 연구가 많아지고 수준이 깊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질은 저하되고 있는 듯하다. 다양하게 제시되는 제도개선론(4년 중임제 개헌, 정당공천제 개혁)은 쉽게 실행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급기야 근년에 들어 비교정치학은 오히려 퇴조의 경향을 보이는 반면 국제정치학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치현상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할만한 다른 접근방식은 없는가? 제도개혁론과 정치가론을 함께 가지고 있는 정도전 사상에 주목해보자.
3. 정도전의 제도론
정도전은 제도개혁론자였다. 위화도회군 이후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부상한 신흥유신세력들은 고려사회 폐해의 근간이 되고 있던 토지제도의 개혁에 착수했다. 그 세력의 일원인 정도전은 삼대(三代)의 이상적인 토지제
34) 같은 책.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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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 정전제(井田制)를 자신의 개혁 모델로 설정하고 있었다.35
전하(태조 이성계)는 잠저에 있을 때 친히 그 폐단을 보고 개탄스럽게 여기어 사전을 혁파하는 일을 자기의 소임으로 정하였다. 그것은 대개 경내의 토지를 모두 몰수하여 국가에 귀속시키고, 인구를 헤아려서 토지를 나누어 주어서 옛날의 올바른 토지제도를 회복시키려고 한 것(蓋欲盡取境內之田, 屬之公家, 計民授田, 以復古者田制之正)이었는데,36
“옛날의 올바른 토지제도”의 양상을 정도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옛날에는 토지를 관에서 소유하여 백성에게 주었으니, 백성이 경작하는 토지는 모두 관에서 준 것이었다. 천하의 백성으로서 토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고 경작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백성은 빈부나 강약의 차이가 그다지 심하지 않았으며, 토지에서의 소출이 모두 국가에 들어갔으므로 나라도 역시 부유하였다.37
이러한 이상적인 제도를 정도전은 고려에서 실행하고자 했다.
사전을 개혁하는 의론은 신이 처음에 생각하기를 모두 공가(公家)에 속하게 하면 국용(國用)을 후하게 하고 병식(兵食)을 족하게 하며 사대부들에게 녹(祿)을 주고 군역에 공급함으로써 상하로 하여금 궤핍(乏)의 근심이 없게 하는 것이었습니다.38
35) 이하의 서술 내용은 최상용·박홍규. 2007. 『정치가 정도전』에서 요약한 것임.
36) 정도전. 『삼봉집』 卷13(朝鮮經國典上). 「賦典」. 經理.
37) 위의 글.
38) 『고려사』 권119. 列傳32; 정도전. 『삼봉집』 卷7. 「拾遺」. 恭讓朝辭右軍摠制使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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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도전은 자신이 구상한 정전제를 모델로 한 전제(田制)를 실행하지 못했고, 조준이 선봉에 서서 추진한 과전법이 시행되었다. “그런데 뜻을 결국 이룰 수 없었고, 이어 전하에게 청하여 제조관(提調官)을 면한 지 오래인데 분전(分田)이 균평하지 못하다는 원망이 모두 신에게 돌아왔습니다.”39라는 서술에서 알 수 있듯이, 과전법 시행 이후에 제기된 불평이 정도전에게 집중되었다.40
원래 정도전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이상론을 전면에 내세워 관철시키려 하지 않았다. 당시 권력투쟁을 수반한 전제개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준과 견해를 달리하여 자신의 이상론을 주장한다는 것은 이성계파의 분열을 의미했기에, 정도전은 조준과 이색의 대립을 주시하며, 주자주의자로서 삼대의 정전제의 이상을 견지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조준을 통해 실행 가능한 전제개혁을 관철시켜갔던 것이다. 그리고 비록 이상적 토지제도 개혁을 단념하였지만 과전법 시행의 성과에 대해서는 정도전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뜻을 같이한 2, 3명의 대신들과 함께 전대의 법을 강구하고 오늘의 현실에 알맞은 것을 참작한 다음, 경내의 토지를 측량하여 파악된 토지를 결수로 계산하여 그 중의 얼마를 상공전, 국용전, 군자전, 문무역과전으로 나누어 주고, 한량으로서 경성에 거주하면서 왕실을 호위하는 자, 과부로서 수절하는 자, 향역·진도(津渡)의 관리,
39) 위의 글.
40) 과전법은 비록 여말 조준을 중심으로 한 사전개혁론자들의 개혁안이 받아들여져 단행된 것으로 일전다주(一田多主)의 현상을 척결하는데 커다란 성과를 거두기는 하였지만, 이색을 중심으로 한 사전개선론자와 개혁론자들의 견해를 절충한 위에 수조지를 존속시키고 사적 소유에 기반한 농장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불철저한 개혁이었다 할 수 있다. 정도전에 대한 불만은 정도전이 가진 이상주의적 제도개혁에 대한 불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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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민과 공장에 이르기까지 공역을 맡는 자에게도 모두 토지를 주었다. 백성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일이 비록 옛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으나, 토지 제도를 정제하여 일대의 전법을 삼았으니, 전조의 문란한 제도에 비하면 어찌 만 배나 나은 게 아니겠는가.41
정도전은 이상적 제도를 현실에 실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이상을 추구하다 현실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보다는 한발 물러서서 차선을 택하였던 것이다.
제도주의자로서의 정도전의 진정한 면모는 조선건국 이후에 드러난다. 건국 직후 정도전은 최초의 법전인 『조선경국전』(1394)을 저술하여 중앙집권적 국가운영 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법체계를 수립하였다. 그는 『주례』를 모델로 하여 군주의 통치행위를 여섯 분야로 분류하여 법제화하였다. 이를 육전체제라고 하며 원래 『주례』의 육전은 천관(天官)·지관(地官)·춘관(春官)·하관(夏官)·추관(秋官)·동관(冬官)의 여섯 개로 나뉘는 관직 체제인데, 『조선경국전』에서 정도전은 치전(治典)·부전(賦典)·예전(禮典)·정전(政典)·헌전(憲典)·공전(工典)으로 구성하였다.42
치전은 총서, 관제, 재상연표, 입관, 보리, 군관, 전곡, 봉작승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서에서는 총재(재상)가 행정을 총괄해야 함을 주장한다. 세습군주제에서는 군주의 자질에 따라 정치의 질에 차이가 나므로, 군주는 현명한 재상을 선택하여 행정을 위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로 설정되어 있다. 관제에서는 관직이 직능적으로 분산되어야 함을 논하고, 재상연표에서는 재상에 요구되는 자질이 피력되어 있다. 입관에서는 인재등용의
41) 정도전. 『삼봉집』 卷13(朝鮮經國典上). 「賦典」. 經理.
42) 이하의 서술 내용은 한영우. 1999.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을 참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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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이 설명되고, 보리에서는 하급 기술직인 서리가 시험에 의해 선발되어 함이 주장되고, 군관은 군사제도의 개혁이, 전곡은 국가재정의 운영원칙이, 봉작승습은 공신에 대한 예우가 서술되어 있다.
부전에서는 국가가 인민에게서 수취하는 부와 그에 관련된 재정원칙을 설명하고 있다. 우선 부를 산출하는 주군과 판적을 논하고, 이어서 부의 제도인 경리(經理)와 부의 근본인 농상, 부를 국가에 바치는 부세, 부의 수송인 조운, 부의 보조인 염철·산장·수량·공장세(工匠稅)·상세(商稅)·선세(船稅)를 열거한다.(이상이 수입의 측면) 이어서 지출의 측면이 설명되는 부분은 상공(上供)·국용(國用)·녹봉·군자·의창·혜민·전약국이다. 마지막으로 부를 완화하는 견면(免)으로 끝을 맺는다.
재정의 최고 원칙은 “수입을 헤아려 지출함(量入爲出)”으로써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정도전이 「부전」의 총서(總序)에서 제시한 재정원칙은 수입과 지출의 항목을 획정하고 각 항목에 따른 운영원칙을 제시한 것으로, 수입과 지출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재생산적 경제순환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통해 조선왕조의 재정제도를 구축하고자 했다. 앞서 서술했듯이 이상적 토지개혁론자였던 정도전은 조선건국 이후에 불완전하지만 시행되고 있던 과전법을 소여로 하여 재정제도를 확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예전에서는 왕과 신하가 만나는 조회를 비롯하여, 국가의 각종 제사와 연향, 통신 수단인 부서, 수레와 의복, 음악, 달력, 왕을 교육시키는 경연, 학교와 과거제도를 비롯한 인재의 등용, 왕이 신민의 의견을 구하는 구언제도, 중국과의 외교, 시호, 정표, 향음주, 기타 관혼상제 등에 관한 의례의 원칙을 설명하고 있다. 이어지는 정전은 병전에 해당한다. 병전을 정전이라고 한 것은 군사제도가 기본적으로 바르지 못한 인간을 바르게 하는 정인(正人)의 도덕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입장에서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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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제를 비롯하여, 군기·교습·정점 등을 차례로 논한다. 마지막 헌전은 형전에 해당하는 것으로 형벌을 다루고, 공전은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물품의 제조와 토목공사 등을 운영하는 원칙이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조선경국전』에서 제시된 제도론은 이후 『경국대전』의 편찬으로 이어져 조선왕조의 법전으로 확립된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정도전이 『조선경국전』에서 제도론에만 머무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4. 정도전의 정치가론
국가를 구성하는 여섯 부분의 제도와 그 운영원칙을 논한 『조선경국전』의 곳곳에서 정도전은 그 제도를 운영하는 관리자에 관해서 논하고 있다.
우선 「부전」의 총서에서는 “토지가 있고 인민이 있은 뒤에 부를 얻을 수 있고, 덕(德)이 있은 뒤에 그 부를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 신은 덕으로써 부전의 근본을 삼는다”43고 하여 운영관리자의 덕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부전」의 곳곳에 운영자에 대한 논의가 나타난다.
그러나 올바른 관리를 얻지 못하여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 조금이라도 마땅함을 잃게 된다면 폐해가 생기게 되니,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44
이렇게 하자면 역시 이를 관장하는 데 올바른 사람을 얻어서, 이 제도를 거듭 밝혀 거행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다.45
43) 정도전. 『삼봉집』 卷13(朝鮮經國典上). 「賦典」. 總序.
44) 정도전. 『삼봉집』 卷13(朝鮮經國典上). 「賦典」. 漕運.
45) 정도전. 『삼봉집』 卷13(朝鮮經國典上). 「賦典」. 義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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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전약국을 관장하는 책임자는 자기의 직책을 충실히 이행하여 국가의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이 영원히 빛나게 하여야 할 것이다.46
대개 선왕이 법을 만든 것은 천리에 따른 것이지만, 후세 사람이 부세에 폐단을 일으키는 것은 인욕 때문이다. 재신(才臣)과 계리(計吏)로 부세를 다스리는 자는 마땅히 인욕을 억제하고 천리를 간직할 것을 생각해야 옳을 일이다.47
정도전은 제도만 갖추면 왕조가 저절로 다스려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주자주의자였던 정도전은 제도를 운영하는 인간의 중요성을 『조선경국전』에서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헌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을은 천지에서 의기(義氣)가 되는데, 형조(刑曹)를 추관(秋官)이라고 하니, 그 작용이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천지의 도는 마음이 없어도 조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운행하는데 어긋남이 없거니와, 성인의 법은 사람에 의해서 한 뒤에 시행되기 때문에 반드시 공경하고 애휼하는 인(仁)과 밝고 신중한 마음을 다한 뒤에나 시행될 수 있는 것이다.48
소송을 처결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덕을 밝혀서 백성들로 하여금 외복(畏服)하게 하고, 악한 일을 막고 분내는 것을 징계하여 끝내는 처결할 소송 사건이 없어지게 한 다음에야 백성의 덕성이 후하게 될 것이다.49
46) 정도전. 『삼봉집』 卷13(朝鮮經國典上). 「賦典」. 惠民典藥局.
47) 정도전. 『삼봉집』 卷13(朝鮮經國典上). 「賦典」. 賦稅.
48) 정도전. 『삼봉집』 卷14(朝鮮經國典下). 「憲典」. 總序.
49) 정도전. 『삼봉집』 卷14(朝鮮經國典下). 「憲典」. 罵訴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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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자체만으로는 좋아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을 제대로 얻는 데 달려 있는 것이다. … 반드시 조심스럽게 구휼하는 인자스러움과 밝고 신중한 덕을 갖춘 다음에라야 그 좋은 법을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50
정전에서도 정치가에 대한 정도전의 관심이 표출되고 있다.
다만 훌륭한 관리를 얻지 못한 까닭으로 … 이러한 폐단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법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51
사냥하는 일은 한가지로되, 그들 마음에는 천리와 인욕의 나뉨이 있어 치란과 존망이 각각 그 마음가짐에 따라서 나타났던 것이다. 이른바 터럭 끝만한 차이가 천리의 어긋남을 가져온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후세의 인주들은 어찌 취사하는 기틀을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52
이상과 같이 조선왕조의 제도를 제시하고 있는 『조선경국전』(1394)에서도 운영자에 관한 지적이 등장하고 있지만, 정도전이 운영자인 치자의 문제(관직을 중심으로 그 직분과 운영원리)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경제문감』(1395)과 『경제문감별집』(1397)에서이다.
1395년에 찬진된 『경제문감』은 『조선경국전』의 보유편에 해당한다. 『조선경국전』이 국정 전반의 방향을 제시한 종합적인 대전(大典)의 성격을 지녔다면, 『경제문감』은 그 가운데서 치전에 해당하는 권력구조 혹은 관료제
50) 정도전. 『삼봉집』 卷14(朝鮮經國典下). 「憲典」. 捕亡斷獄.
51) 정도전. 『삼봉집』 卷14(朝鮮經國典下). 「政典」. 屯田.
52) 정도전. 『삼봉집』 卷14(朝鮮經國典下). 「政典」. 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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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 문제를 보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문감』에서는 재상으로부터 시작하여 대관·간관·위병·감사·주목·군태수·현령의 차례로 관료체계의 주요 부분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정도전의 저술 목적이다. 그것은 책의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제문감(經濟文鑑)’이란 ‘경세제민을 추구하는 자에게 문장으로 귀감을 제시한다’ 혹은 ‘경세제민에 필요한 경계의 문장’이라는 뜻이다. 『조선경국전』을 통해 제시된 정통왕조의 법제를 운영하는 자를 위한 경계서(警戒書)란 의미이다. 이 책에는 각 관제의 연혁과 기능에 대해서 서술되어 있으며 또한 각 관제의 관료가 수행해야 하는 규범적인 주장이 피력되어 있다. 『경제문감』 찬진 후 1397년에 저술된 군주만을 다룬 내용인 『경제문감별집』 또한 군주를 위한 경계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정도전은 제도뿐만 아니라 그 제도를 운영하는 정치가에 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 경세가였다.
다음 절에서는 정도전이 구체적인 정치가 양성 및 충원에 관해 제시한 내용을 살펴본다.
5. 정치가 양성 및 충원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요체는 인재를 등용하는 데 있을 뿐”이라고 단언한 정도전은 인재의 양성과 충원에 관해 고대의 이상시대의 모습을 제시한다.
옛날에는 인재를 등용하는 이가 인재 양성을 평소부터 해 오고, 인재 선택을 매우 정밀하게 하였다. 그래서 입관(入官)하는 길이 좁고 재임하는 기간이 길었다. 인재 양성을 평소부터 해 온 때문에 인재가 제대로 양성되었고, 인재 선택을 매우 정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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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입관하는 길이 좁았기 때문에 요행을 바라고 함부로 덤벼드는 마음을 먹지 못하였으며, 재임하는 기간이 길기 때문에 현능한 사람이 재주를 제대로 발휘해서 일의 공적이 이루어졌던 것이다.53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위에 있는 사람이 인재양성의 도(道)를 상실하자 인재의 성취는 본인의 타고난 자질의 고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인재의 등용에 있어서도 혹은 인군의 사사로운 은혜에 힘입거나 혹은 고관이 이끌어 주거나 혹은 병졸 가운데서 발탁되거나 혹은 도필리(刀筆吏, 문서 작성이나 하는 하급관리) 가운데서 나오기도 하였다.”고 비판한다. 그나마 이러한 사례는 묵인할 수 있겠지만 더 심한 경우에는 “재산을 모은 자는 뇌물을 가지고서 관작을 구하고, 자녀를 가진 자는 혼인을 빙자하여 관작을 얻으니, 무슨 인재의 선택이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한탄한다. 그 결과 “재주 없는 자들이 뒤섞여서 관직에 나아가, 관작을 희구하는 데 싫증을 모르고 이리저리 내달리면서 날마다 관급(官級)이 뛰어오르기만을 일삼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한 문제는 관작을 구하자는 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임금이나 재상이 된 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투어 벼슬에 나아가려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저 사람에게서 벼슬을 빼앗아서 이 사람에게 주고, 아침에 벼슬을 주었다가 저녁에 파직시키는 등 한갓 구차하고 고식적인 방법으로 계책을 삼느라 날마다 겨를이 없으니, 재임하는 기간의 길고 짧음은 따질 것이 못된다. 비록 현명하고 지혜로운 인사가 있다 하더라도 어찌 자기의 재주를 제대로 발휘해서 일의 공적을 이룰 수 있겠는가?54
53) 정도전. 『삼봉집』 卷13(朝鮮經國典上). 「治典」. 入官.
54) 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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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를 정도전은 제방에 비유해서 “만 길이나 되는 큰 제방이 날마다 큰 물이 흘러들어 오는 것을 다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형세는 반드시 물이 제방을 무너뜨리고 범람하여 사방으로 넘쳐흐르고 말 터이니, 그처럼 국가도 따라서 망할 것이다.”라고 한심스러운 상황을 개탄한다. 이러한 폐단을 보인 ‘후세’에는 고려왕조도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조선건국을 통해 정도전은 전 왕조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했다.
건국 직후 인재 양성과 충원에 관한 시설과 제도가 정비되었다. 그 내용은 『조선경국전』 「예전」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먼저 인재를 양성할 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는 교화의 근본이다. 여기에서 인륜을 밝히고, 여기에서 인재를 양성한다. 삼대(三代) 이전에는 학교 제도가 크게 갖추어졌었고, 진(秦)·한(漢) 이후로도 학교 제도가 비록 순수하지는 못하였으나 학교를 중히 여기지 않음이 없었으니, 일대의 정치 득실이 학교의 흥패에 좌우되었다. 조선의 중앙에 성균관을 설치하여 공경(公卿)·대부(大夫)의 자제 및 백성 가운데서 준수한 자를 가르치고, 부학 교수(部學敎授)55를 두어 동유(童幼)를 가르치며, 또 이 제도를 확대하여 주·부·군·현에도 모두 향학(鄕學, 향교)을 설치하고 교수와 생도를 두었다. 병률(兵律)·서산(書算)·의약(醫藥)·상역(象譯, 통역) 등도 역시 이상과 같이 교수를 두고 때에 맞추어 가르치고 있으니, 그 교육이 또한 지극하다.56
학교에서의 교육에 상응하여 과거제도 또한 정비되었다. 정도전은 과거제도 역시 주나라를 이상시하였다.
55) 서울의 동부·서부·남부·중부에 세운 학당.
56) 정도전. 『삼봉집』 卷13(朝鮮經國典上). 「禮典」. 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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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제도는 그 유래가 이미 오래다. 주(周)나라 때에는 대사도(大司徒)가 육덕(六德)·육행(六行)·육예(六藝)로써 만민을 가르쳤는데, 그 중에서 현능한 사람을 빈례(賓禮)로 천거하고서 이를 선사(選士)라 하였고, 태학(太學)에 천거하고서 이를 준사(俊士)라 하였으며, 사마(司馬)에 천거하고서 이를 진사(進士)라 하였다. 그리고 평론이 정한 뒤에 관작을 맡기고, 관작을 맡긴 뒤에 작위를 주며, 작위가 정한 뒤에 녹을 주었다. 인재를 교양함이 매우 철저했고, 인재를 선택함이 매우 정밀하였으며, 인재를 등용함이 매우 신중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주(成周) 시대의 인재의 융성함과 정치의 아름다움(政治之美)은 후세에서 능히 미칠 바가 아니었다.57
조선에서는 구체적으로 7과(科)가 설정되었다.
3년마다 한 번씩 대비(大比, 3년마다 관리의 성적을 考査하는 것)하여 경학(經學)으로 시험해서 경학의 밝기와 덕행의 수양 정도를 평가하고, 부(賦)·논(論)·대책(對策)으로 시험해서 문장과 경세제민의 재주를 평가하니, 이것이 문과(文科)이다.58
군대는 나라에서 항상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니 무예를 연습시키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훈련관(訓鍊觀)을 설치하고 도략(韜略)과 전진법(戰陣法)을 가르치고 있다.59
문서를 다루는 일, 회계를 기록하여 보고하는 일, 돈이나 곡식을 다루는 일, 토목·건축의 경영, 물품 공급과 손님에게 응대하는 예절 따위를 익히지 않을 수 없다고 생
57) 정도전. 『삼봉집』 卷13(朝鮮經國典上). 「禮典」. 貢擧.
58) 정도전. 『삼봉집』 卷13(朝鮮經國典上). 「治典」. 入官.
59) 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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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여, 이학(吏學)을 설치하였다.60
역(譯)은 사명을 받들어 중국과 통하기 위한 것이요, 의(醫)는 질병을 치료하여 요절을 막기 위한 것이요, 음양복서(陰陽卜筮)는 혐의를 해결하고 주저되는 일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역학(譯學)·의학(醫學)·음양복서학(陰陽卜筮學)을 설치하고 각기 인재를 시험 선발하는 과(科)를 두었으니, 인재를 양성함이 가히 지극하다 하겠고, 인재를 선발함이 가히 정밀하다 하겠다.61
이상의 7과(科)에 들지 않은 사람은 본인 자신이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유사(有司) 또한 법으로 이를 억제하고 있으므로 입관하는 길이 좁아졌다고 평가한다.
전하는 즉위하자 과거법을 손익한 다음, 성균관에 명하여 사서(四書)·오경(五經)으로써 시험보이게 하니, 이것은 대개 옛날 명경과(明經科)의 의의인 것이며, 예부에 명하여 부론(賦論)으로써 시험보이게 하니, 이것은 곧 옛날의 박학굉사(博學宏詞)의 의의인 것이다. 이렇게 한 다음에 대책(對策)으로써 시험보이니, 이것은 곧 옛날의 현량 방정(賢良方正)·직언 극간(直言極諫)의 의의인 것이다. 일거에 수대의 제도가 모두 갖추어진 셈이다. 장차 사문(私門)이 막히고 공도(公道)가 열리며, 부화자(浮華者)가 배척되고 진유(眞儒)가 배출되어, 정치의 융성함이 한·당을 능가하고 성주를 뒤쫓아 갈 것을 볼 것이니, 아! 거룩한 일이로다.62
60) 위의 글.
61) 위의 글.
62) 정도전. 『삼봉집』 卷13(朝鮮經國典上). 「禮典」. 貢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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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관제도 정해져서 “1품(品)에서 9품에 이르기까지 이를 다시 정(正)·종(從)으로 나누어 18급(級)으로 하고, 매 1급을 다시 2자(資)로 나누어 졌다.” 그리고 “15개월의 임기가 지나면 1자를 높여 주고, 30개월이 지나면 1급을 올려 주고 있으니, 재임하는 기간이 또한 길어졌다.”고 한다.
인재를 충원하는 방법으로 과거 이외에 “장상(將相)과 대신(大臣)은 모두 백성에게 공덕이 있고, 또 그들의 자손은 가훈을 이어받아서 예의를 잘 알고 있으므로 모두 벼슬을 할 만하다고 생각하여, 문음(門蔭)제도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정도전은 천거제도의 필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선비로서 초야에 묻혀 있는 사람들 중에는 혹 도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은 재능을 품고 있으면서도 발탁되지 못한 사람도 있다. 진실로 위에 있는 사람이 정성스럽게 구하고 근실하게 찾지 않으면 그들을 나오게 해서 그들을 등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후한 예로 부르고 높은 관작으로써 대우하는 것이니, 옛날의 철왕(哲王)들이 지극히 훌륭한 치세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렇게 한 때문이었다.63
천거의 논리에 따라 이성계는 즉위하자 바로 초야에 묻혀 있는 인재를 구하는 뜻을 피력하였다.
경학(經學)에 밝고 행실이 닦여지고 도덕이 겸비하여 가히 사범이 될 만한 사람, 식견이 시무(時務)에 능통하고 재주가 경국제세(經國濟世)에 알맞아서 사공(事功)을 세울 만한 사람, 문사(文辭)에 익숙하고 필찰(筆札)에 솜씨가 있어서 문한(文翰)의 임무를 맡을 만한 사람, 율산(律算)에 정통하고 이치(吏治)에 달통하여 백성을 다루는 일
63) 정도전. 『삼봉집』 卷13(朝鮮經國典上). 「禮典」. 貢遺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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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감당할 만한 사람, 지모나 도략(韜略)이 깊고 용기가 삼군(三軍)에 으뜸이어서 장수가 될 만한 사람, 활쏘기와 말타기에 익숙하고 돌멩이를 던지는 일에 솜씨가 있어서 군무를 담당할 만한 사람, 그리고 천문(天文)·지리(地理)·복서(卜筮)·의약(醫藥) 중에서 한 가지 특기를 가진 사람들을 세밀히 찾아내서 조정에 보내라.64
정치가를 위한 교육은 신하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최고통치자인 군주에게도 요청되었다. 경연(經筵)이 바로 그것이다. 이성계의 즉위와 함께 경연관(經筵官)을 설치하여 고문(顧問)을 갖추었고, 인군이 만세의 법을 세우는 데 필요한 책인 『대학(大學)』과 진서산(眞西山)이 『대학』의 뜻을 확대하여, 제왕이 정치를 하는 순서와 학문을 하는 근본을 밝힌 『대학연의(大學衍義)』가 텍스트로 사용되었다.
정사를 청단하는 가운데 여가가 있을 때마다 혹은 『대학』을 친히 읽기도 하고, 혹은 다른 사람을 시켜서 강론하게도 하였으니, 비록 고종(高宗)의 수시로 학업에 힘쓴 것이나, 성왕(成王)의 학업이 일취월장한 것이더라도 어찌 이보다 나을 수 있었으랴. 아름답고 거룩한 일이로다.65
군주와 세자는 물론 재상을 필두로 한 관료 그리고 관료를 지향하는 자들을 포괄하는 정치가 양성과 충원의 체계가 정도전의 구상에 의해 성립되었고, 그것은 조선왕조가 장기 지속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64) 위의 글.
65) 정도전. 『삼봉집』 卷13(朝鮮經國典上). 「禮典」. 經筵.
154 ● 한국학논집(제47집)
6. 맺음말: 정도전 사상의 함의
순환하는 왕조에서 왕조의 명맥을 장구하게 유지하기 위한 방책은 창업기에 만들어진 전장제도와 우수한 신하의 등용이다. 『조선경국전』이 전자의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경제문감』은 후자의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다. 정도전은 역사서에 대한 탐구를 통해 창업기가 지나간 세습왕조에서 출중한 군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고, 그러한 상황에서 국가를 유지하는 요체를 ‘일대지제(一代之制)’와, ‘용군(庸君)’이나 ‘중주(中主)’를 보좌하여 국가를 운영해 갈 우수한 신하에서 찾았던 것이다. 조선 건국 이후 정도전은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에서 조선왕조의 제도와 그 제도의 운영자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제시했으며, 그를 통해 조선을 정통왕조로서 확립하고자 했다.66 이후 조선왕조는 1910년 일제에 의해 막을 내릴 때까지 지속하였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어 건국에 이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루어온 대한민국은 지금 민주주의의 성숙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근대 정치학과 현대의 미국정치학은 민주주의의 성숙화를 위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가운데 퇴조의 기미마저 노정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정치가의 자질의 문제를 소리 높여 논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정치가를 양성하는 시스템은 전무한 상태이다. 사회화과정에서 정치가의 기초훈련이 되지도 않으며 대학의 정치외교학과에서조차 정치가 양성과는 무관한 커리큘럼이 사용되고 있다. 국가도 정당도 민간에서도 정치가를 양성하지 않는다. 사회 각 분야에서 사다리를 통해 성장해온 사람
66) 최상용·박홍규. 2007. 『정치가 정도전』. 까치. 162쪽.
정도전 사상과 현대 한국정치 ● 155
들이 어느 순간 정치가로 진입하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저질의 정치행태를 치유하고 한국정치의 성숙화를 위하여 정도전의 사고와 실천이 갖고 있는 함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
『삼봉집』.
김웅진. 2008. 「행태주의와 경험과학 연구: 전제, 영역과 설계」. 『정치학이해의 길잡이2 정치이론과 방법론』. 법문사.
마키아벨리. 2003. 『군주론』. 강정인·문지영 옮김. 까치.
신명순. 1999. 『비교정치』. 박영사.
존 로크. 1996. 『통치론』. 강정인·문지영 옮김. 까치.
최상용·박홍규. 2007. 『정치가 정도전』. 까치.
한영우. 1999.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 지식산업사.
홉스. 1982. 『리바이어던』. 한승조 옮김. 삼성출판사.
(2012. 4. 16 접수; 2012. 6. 1 수정; 2012. 6. 8 채택)
156 ● 한국학논집(제47집)
박홍규(朴鴻圭)
1961년 생.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학술진흥회 외국인특별연구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 및 동양정치사상을 전공하였으며, 저서로 『山崎闇齋の政治理念』(2002), 『정치가 정도전』(2007), 역서로 『마루야마 마사오』(2011)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17세기 도쿠가와 일본에서의 화이문제」, 「中江兆民の平和理念と孟子」, “King Taejong as a Statesman” 등이 있다.
E-mail: hkpark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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