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sr]인류진화

직립보행과 인류 7만년의 여정

이름없는풀뿌리 2019. 5. 30. 13:22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인류 7만년의 여정

입력 : 2015.09.18 11:07 ㅣ 수정 : 2015.09.2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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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고갱의 대표작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1897년 고갱은 자살을 결심한 후 유언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캔버스에 유채. 139×374.7㎝.
미국 보스턴 미술관 소장.

- 인류의 출발은 초신성 폭발에서 
남태평양 타이티 섬에서 생을 마감한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은 자살을 결심한 후 자신의 유언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것이 유명한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는 그의 대표작이다. ​100여 년 전인 1897년 연말께 한 달을 밤낮으로 그려 완성한 이 대작이 던진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할 사람은 당시 지구상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대과학에 힘입어 우리는 그 정답을 지금은 알고 있다. 

46억 년 전 아직도 형성되지 않은 태양계 근처에서 생을 다한 늙은 별이 초신성 폭발을 일으켰고, 그 충격으로 거대한 분자구름이 중력 붕괴를 일으켜 태양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초신성이 우주공간으로 품어낸 물질들이 지구가 형성될 때 합류했으며, 그 물질들을 재료삼아 이윽고 지구에서는 생명체가 나타났다. 

사실 이러한 우리의 근본을 알게 된 지는 1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한스 베테라는 미국 물리학자가 1938년 별 내부에서 수소가 헬륨으로 변환되는 핵융합 과정에서 별의 에너지가 나온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이다(그는 이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아울러 수천 년 동안 별이 반짝이는 이유를 알지 못했던 인류는 한스 베테의 덕으로 밤하늘에서 별들이 반짝이는 이유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별이 핵융합으로 빛을 내지 않았다면, 그리고 초신성이 폭발하여 우주공간으로 제 몸을 풀어내지 않았다면, 우리 인류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인류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우리가 온 곳은 바로 저 밤하늘의 별들인 것이다.

- '우리'는 누구인가? 
이 지구상에는 약 100만 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그 100만 종 중의 하나인 당신은 분류학적으로 본다면, 사람과(Hominidae)에 속하는 고릴라속, 침팬지속, 사람속 중 사람속의 1종으로서, 두 발로 걸어다니는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하는 영장류이다. 이것이 당신이라는 생물체에 대한 가감 없는 정의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현생 인류를 포함하는 종의 학명으로,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인류의 정의에서 말한 ‘두 발로 서서 걷는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 깊은 말이다. 뒷발만으로 이동이 가능한 직립보행을 함으로써 자유로워진 앞발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두 손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불을 사용하면서 고기를 익혀 먹는 바람에 충분한 단백질 공급으로 뇌의 용량이 커졌고, 추운 곳에서도 살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다른 동물들과의 생존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된 까닭이다. 그러나 직립보행 탓에 인간만이 치질을 앓게 됐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 세계의 인류. 유전자 연구를 통해 모두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후손들임이 밝혀졌다.
그림/위키



하지만 이렇게 인류에 대한 정의를 내리더라도 사실 썩 개운치는 않다. 사람처럼 복잡한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어떻게 보면 우주보다도 더 복잡하고 신비스러운 존재가 바로 사람이 아닌가.
자신을 낳아준 우주에 대해 연구하고 사색하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그래서 ‘우주 속에서 가장 큰 기적은 사람이다’는 말까지 있다. 특히 젊은이들은 자신이 그처럼 소중하고 기적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우주에서 기적처럼 희귀한 존재인 사람의 기원은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 

-인류의 한 어머니 '아프리카 이브' 
약 200만 년 전부터 시작하는 현생 인류 이전의 호모 하빌리스니, 호모 에렉투스니 하는 화석인류와 유인원 등의 이야기는 훌쩍 뛰어넘고, 현생인류의 기원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인류학이 지금까지 밝혀낸 것을 간략히 간추린다면, 약 20만 년 전에 현생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20만 년이라면 46억 년 지구 역사에서 0.005%에 지나지 않는 기간이다. 우리 인류가 오랜 지구의 역사에서 볼 때 극히 최근에 무대 위에 오른 '신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짧은 기간에 인류는 70억 인구로 팽창을 거듭하여 지구 행성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며 군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구 자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지구 종말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현대의 가장 큰 특징이다. 

어쨌든 인류 기원설에는 아프리카에서 유럽, 아시아로 확산하여 지역에 따라 분화했다는 다지역 기원설과, 아프리카 단일 기원설이 있다. 아프리카 단일 기원설은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이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갑자기 출현했으며, 그때부터 5만 년 전까지 그 전에 이미 정착에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 등 모든 다른 원시 인류들을 몰아내고 주도권을 잡았다는 이론이다. 

한동안 서로 맞서왔던 다지역 기원설과 단일 기원설은 20세기 들어 발달한 유전 공학에 힘입어 승부가 판가름났다. 미국의 유전학자들은 DNA 연구를 통해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 인이라는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 인류 '7만년의 여정' 
우리 몸의 유전자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다양한 인종의 유전자 조사를 하면, 그들이 가진 DNA의 이력서도 만들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몸 속에 수백, 수천 년을 넘어 대대로 내려온 유전자 기록을 모두 갖고 있다. 자기의 유전자를 조사해 면 선조들의 과거까지 알 수 있다. 면봉으로 입천장을 문지르면 상피세포가 묻어나온다. 거기서 DNA를 뽑아내 조사하면 유전자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이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모계를 통해서만 전해진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하여, 현 인류의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현대인의 근원지는 아프리카 대륙이었으며, 어느 한 여성이 인류의 공통 조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여성에게 '아프리카 이브'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사람의 외모가 얼마나 다르든지 간에, 유전자 조사를 통해 인류 가계도를 추적한 결과, 지구상의 인류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작은 호모 사피엔스 집단의 후손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2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나타나 대륙 곳곳에서 살았던 인류 조상이 혹독한 기후 변화 때문에 약 7만 년 전, 살 길을 찾아 지구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져갔고, 저 북극 아래 동토대와 남북 아메리카에 이르는 7만년의 여정 끝에 결국은 오늘의 전 인류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아프리카를 탈출한 호모 사피엔스 집단의 머릿수까지 알아냈다. '약 700명 정도의 집단'이라고 한다. 이들은 소빙하기를 맞아 좁아진 홍해를 건너고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유럽으로, 아시아 대륙 남부와 북부로 뿔뿔이 흩어져갔다. 그들이 아라비아 반도에 한동안 정착했던 곳 중에는 '에덴'이라는 지명도 발견되었다.

 
▲ 초기 인류의 이동. 인류는 약 7만 년 전 아프리카를 탈출해,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호주 등 세계 곳곳으로 퍼져 오늘의 70억 인구를 이루었다. 모든 인류는 한 가족이다.
그림/위키



유럽으로 향했던 한 무리의 호모 사피엔스는 높은 지능과 자연 적응력을 무기로, 먼저 와서 살고 있던 원시 인류 네안데르탈 인을 서서히 몰아내고 몇천 년 만에 유럽의 주인이 되었다. 아시아 남쪽으로 향했던 무리들은 인도 대륙을 지나고 말레이를 거쳐, 결국 오스트레일리아까지 건너갔다. 뗏목으로 가더라도 며칠은 가야 하는 망망대해를 우리 조상들은 용감히 건너갔던 것이다.

한편, 아시아 북부로 향했던 무리들은 중국과 한반도로 가기도 했지만, 그 중 일부는 시베리아 동토 지대를 지나고, 빙하의 베링 육교(그때는 두 대륙이 이어져 있었다)를 건넌 다음, 태평양 서해안을 따라 남아메리카의 꼬리에까지 이르렀다. 

-70억 이산가족의 대상봉 
그 길은 실로 몇만km에 달하는, 참으로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더욱이 그 기간은 지구의 3분의 1일 얼어붙은 소빙하기였다니, 여로에 오른 그들의 고통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어린애와 여자들까지 데리고 가야 하는 길이었기에 도중에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서 죽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해냈다. 불굴의 의지로 그 험난한 대장정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인류의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가족과 형제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한번 상상해보기 바란다. 지금 당신이 그 자리에 있기까지 당신의 조상이 걸어왔을 그 멀고도 험한 행로를. 많은 원시 인류의 종들은 멸종의 길을 걸었지만, 7만 년 전쯤 아프리카를 떠났던 이 호모 사피엔스는 혹독한 자연과 맹수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결국 살아남았다. 

뿐만 아니라, 이 작은 무리는 오랜 기간에 걸쳐 지구의 다섯 대륙에 성공적으로 이주하여, 지금 21세기의 문명과 70억 인구를 이루게 되었다. 우리 70억 지구인들은 모두 이들의 후손이며 친척인 셈이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자랑스런 선조들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과학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우리 70억 인류 모두는 한 어머니로부터 이어져내려온 후손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아주 옛날에 흩어졌다가 다시 만난 친척이요 한 가족인 것이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사실이다. '70억 이산가족의 대상봉'이 바로 현재의 지구촌 공동체인 셈이다. 이것이 이 지구 행성 위에서 인류가 엮어낸 대서사가 아니면 무엇일까?

그 작은 무리가 7만년 만에 어떻게 70억의 인류로 증가할 수 있는가, 갸우뚱하는 이들도 있는데, 수학적으로 풀어보면 간단히 해결된다. 한 세대가 30년이라 보고, 한 세대 만에 2배수로 인구가 증가한다고 볼 때, 2의 33제곱이면 100억이 된다. 곧 1000년 동안 한 세대 만에 2제곱씩 인구 증가가 있다고 보면 바로 100억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7만년이라면 100억이 되고도 남을 오랜 시간이다.

생각해보면 나를 포함하여 인류는 우주의 오랜 사랑이 키워온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우주의 역사 138억 년, 지구의 역사 46억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없었더라면, 우리 인류는 이 우주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몸속의 수소원자 한 개, 산소원자 한 개도 우주와 인연이 닿아 있으며 오랜 시간의 저편과 엮여 있는 것이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의 전 부인이기도 했던 진화생물학자인 린 마굴리스는 우주적인 시각에서 인간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생명은 또한 우주가 인간의 모습을 띠고, 자신에게 던져보는 한 물음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0918601009#csidx1e70bebb5ea1b219efd5d2c8bdf7a54

 

 

인류 진화의 연결 고리 화석 발견

 

아프리카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앞선 280만년 전의 최초 인류 화석이 발견됐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ASU) 등 국제 공동 연구진은 5일 '사이언스'에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2013년 발견된 아래턱뼈 화석(LD 350-1)이 지금까지 알려진 호모(homo) 속(屬) 인류의 화석 호모(homo) 하빌리스 보다 50만년 앞선 280만년 전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2013년 아프리카 아파르 지역에서 치아 5개 붙어 있는 상태로 발견된 왼쪽 아래턱뼈 화석(LD 350-1)은 연대 측정 결과, 280만년 전 것으로 분석되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의 직계 조상이 발견된 셈이다.

 

이 시기는 인류 진화 연구에서 인류의 최고 공동 조상으로 400만년 전 출현한 것으로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390-290만년 전. 일명 루시)와 '사람'(homo) 명칭이 처음 붙은 호모(homo) 하빌리스가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230만년 전 사이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기간이다.

 

화석(LD 350-1)이 발견된 지역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화석으로 유명한 '루시'(Lucy)가 발견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애리조나 주립대 윌리엄 킴블 교수는 “화석(LD 350-1)은 마지막 '루시'의 화석이 발견된 시기와 120만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이 화석의 주인공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이어 등장한 최초의 '사람'(homo) 조상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화석의 주인공이 초기 호모 속에 속했던 인류인지 아니면 새로운 종인지는 알 수 없다며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 뉴스, 입력: 2015.03.05일)

 

 

 

■ 과연 인류는 어떻게 진화(進化)해 왔을까?

 

★ 포유류(哺乳類)에서 하등 영장류가 진화(進化)되어 출현 (7400만년 전)  ★ 타이하르디너(Teilhardina), 가장 오래된 하등 영장류(靈長類) (5,600만년 전  하등 영장류(靈長類)의 집단 생활 시작 (5200만년 전) →  다위니우스 마실라에 [4,700만년 전. 일명 이다, 하등 원원아목(原猿亞目)] →  하등 원원류(原猿類. procimians. 매우 작고 꼬리 달린 원숭이) 출현 (4500만년 전) →  에오시미아스 (4,000만 년 전)[꼬리없는 고등 영장류(靈長類)인 유인원(類人猿)]   간레아 메가카니나 (3,800만년 전)   이집토피테쿠스 (3,500만년 전)   프로플리오피테쿠스 (3,200만년 전)   프로콘술 (2,500만년전. 원숭이와 사람과(人科)의 중간 형태)   드리오피테쿠스 (2,300만년 전)   플리오피테쿠스 [2,000만년 전. 사람상과(人上科)(Hominoidea)의 유인원]   아노이아피테쿠스 (1,900만년 전)  라마피테쿠스 (1,500만년 전. 원숭이와 사람과(人科)의 중간 형태)   케냐피테쿠스 (1,400만년 전)   플리오바테스 카탈로니에 (1,160만년 전. 일명 라이아)   오레오피테쿠스 [900만년 전.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 인간 등의 사람과(人科) 조상]   인간. 침팬지 분화 (800만년전)   투마이 (700만년 전)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440만년 전. 일명 아르디)   아르디피테쿠스 아나멘시스 (42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390-290만년 전. 일명 루시)   최초의 사람(homo)호모 속(屬) 인류 (280만년 전)   호모(homo) 하빌리스 (23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 (50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 (현생 인류. 동양 28만년 전, 서양 20만년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8-4만년 전)

 

● 호모 사피엔스 (동양 28만년 전, 서양 20만년전) : 현생(現生) 인류 출현

 

1) 동양의 호모 사피엔스 (28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생각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1986년 중국 요녕성 요동(遼東) 반도 잉커우(營口)현 서남쪽, 발해만에서 30㎞ 떨어진 금우산(金牛山.진뉴산)에서 28만년 전(前) 현생(現生) 인류 화석이 발견되자 학계는 흥분했다. 한반도 북부 발해만에서 현생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뒤집는 선사 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현생 인류의 기원은 28만년 전에 아시아 동북에 존재했던 금우산인(金牛山人)으로 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금우산인(金牛山人)부터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로 돌입했으며, 현생(現生) 인류 기원은 28만년 전의 한반도 북부의 발해만(渤海灣)이라는 것이다. 동북(東北) 아시아에서는 호모 사피엔스 (20만년 전)의 유적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4만년 전)의 유적이 함께 발견되고 있다. 적어도 한반도 북부 발해만(渤海灣)의 발해 문명(요하 문명)과 한반도 일대의 고대 유적에서는 고(古)인류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졌음 보여주고 있다. 

 

2) 서양의 호모 사피엔스 (20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생각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s)이 이에 해당한다.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s)의 화석이 독일·프랑스·벨기에·이탈리아 등에서 발견되었다. 키가 작고 건장하며 힘이 세었다. 이들의 두개골은 무거운 이마뼈, 큰 이빨과 작은 광대뼈를 가지고 있었다. 두 발로 걸어 다녔지만 그 모양이 현대인과는 달랐다.

 

●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동양 8만년전, 서양 4만년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는 ‘현명한 인간’이란 뜻이다. 런던대 연구진은 2015년 중국 남부 후난(湖南)성 융저우(永州) 다오(道)현에서 현재의 인류와 비슷하게 치아를 47개 가진 8만년 전 인류 화석을 찾아냈다. 동북(東北) 아시아에서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유적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의 유적이 함께 발견되고 있다. 적어도 한반도 북부 발해만(渤海灣)의 발해 문명(요하 문명)과 한반도 일대의 고대 유적에서는 고(古)인류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졌음 보여주고 있다.

 

4만년 전 크로마뇽인(Cro-Magnons)들이 여기에 해당하며,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모습을 새기거나 조각상을 만들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에 있는 크로마뇽인의 동굴에서 발견된 동물의 그림은 매우 아름답다. 이 그림들은 크로마뇽인들에게 주술적 의미를 가졌던 것 같다. 최초로 예술을 시작한 인류는 바로 이들이었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는 두 발로 서서 걸어 다니는 사람과의 영장류이다. 추상적인 생각언어(言語) 사용, 자기 반성, 문제 해결을 할 수 있고, 감정(感情)을 느낄 수 있는 고도로 발달한 두뇌를 지니고 있다. 팔을 이용해 다른 종보다 훨씬 정교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 언어(言語)와 문자(文字)를 이용한다.

 

■ 28만년 전 발해만에서 구석기 인류가 살았다.

 

1986년 중국 요녕성 요동(遼東) 반도 잉커우(營口)현 서남쪽, 발해만에서 30㎞ 떨어진 금우산(金牛山.진뉴산)에서 28만년 전(前) 현생(現生) 인류 화석이 발견되자 학계는 흥분했다. 한반도 북부 발해만에서 현생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뒤집는 선사 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금우산(金牛山) 화석이 베이징 원인(猿人)(68만-78만년전) 보다 발달한 인과(人科)임이 확인되면서 학계는 금우산(金牛山)인의 존재를 현생 인류 진화(進化)의 큰 과정으로 설명해 놓고 있다. 베이징 원인(猿人)은 1923년 중국 베이징 남쪽 저우커우뎬(周口店)에서 발견된 68만-78만년전의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를 말한다. 금우산인(金牛山人)은 호모 에렉투스(200만년 전)와 호모 사피엔스의 사이, 즉 초기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진화하는 과도기적 단계를 이끈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저명한 인류학자인 자란보(賈蘭波)는 “베이징인이 살고 있을 당시, 베이징인 보다 진보적인 특징을 가진, 즉 원시 부엌까지 갖춘 금우산인(金牛山人)이 있었다”면서 “금우산인부터 초기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시대로 돌입했다”고 말했다. 요서(遼西) 구릉과 요동(遼東) 산간 지역에서 구석기(舊石器) 시대의 전기. 중기. 후기 유적이 두루 관찰되고 있다.

 

현생 인류의 기원은 한반도 북부의 발해만(渤海灣, 보하이완)에서 탄생한 발해 문명(요하 문명)이며, 28만년 전에 아시아 동북에 존재했던 금우산인(金牛山人)으로 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금우산인(金牛山人)부터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로 돌입했으며, 현생 인류의 기원은 28만년 전의 한반도 북부의 발해만(渤海灣)이라는 것이다.

 

■ 구석기에서 신석기까지 발해만에서 끊이지 않고 살았다.

 

중국의 궈다순은 발해만 유역에서 나타난 체계적인 구석기 문화의 연계성을 설명한다. 즉 발해만 유역에서는 금우산인. 먀오허우산인. 거쯔둥인. 샤오구산인 말고도 음미할 만한 구석기 유적들이 많다는 것이다. 즉 압록강 하구인 둥강(東港)시 첸양(前陽) 동굴 인류 화석과 젠핑인(建平人), 젠셴(錦縣) 선자타이(沈家台) 유적, 링위안(凌源)의 시바젠팡(西八間房) 유적 등이다. 그는 “요서(遼西) 구릉과 요동(遼東) 산간 지역에서 구석기 전기. 중기. 후기 유적이 두루 관찰된다”면서 “이는 고(古)인류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졌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1973년 평남 덕천군 승리산에서 ‘덕천인(10만-4만년 전)’과 ‘승리산인(4만-3만년 전)’이 잇달아 발견됐다. 1977년엔 평양시 력포 구역 대현동에서 력포인이, 1980년에는 평양 검은 모루 동굴에서 후기 구석기 시대의 인류 화석(룡곡인)과 석기가 확인됐다. 또한 같은 해 평양 승호 구역 만달리에서는 ‘만달인’ 화석이 나왔다.

 

남한에서도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유적에서 7만년 전(前)의 구석기 시대 유물이 쏟아져 나올 뿐만 아니라, 4만년 전(前) 충북 청원군 가덕면 노현리의 흥수 아이 유적지에서는 옛코끼리(Elephas antiguitas) 상아가 발견되었으며, 한반도에는 70곳이 넘는 구석기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선문대 이형구 교수는 “예컨대 1980년 발견된 평양시 상원군 용곡리의 룡곡 1호 동굴 유적의 경우 구석기는 물론 신석기 인류 화석도 나왔다”면서 “이것은 구석기 시대부터 신석기 시대까지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살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 꼬리 없는 유인원(類人猿),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이동

 

1995년 05월, 약 4,000만년 전에 살았던 유인원인 에오시미아스(Eosimias) 화석이 중국 산서성(山西省) 황하(黃河) 유역 일대에서 발견됐다. 이 화석은 고등 영장류의 초기 진화가 아시아에서 일어났다는 증거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 자료를 보면, 인류가 아시아(Asia)에서 기원해 아프리카(Africa)로 이동했을 것임을 시사하는 새로운 증거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인간과 긴팔 원숭이, 침팬지 등을 포함한 꼬리 없는 영장류를 지칭하는 유인원(類人猿)들은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는 것이 지배적인 학설이었지만, 반대로 이들이 아시아(Asia)에서 기원해 아프리카(Africa)로 이동했을 것임을 시사하는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다고 사이언스 데일리와 뉴욕 타임스가 2010.10.29일 보도했다.

 

프랑스 푸아티에 대학의 장 자크 예거 교수가 이끄는 미국. 프랑스 연구진은 리비아(Libya) 중부의 두르 아트 탈라 단애 지대에서 발견된 3천 900만년 전 유인원(類人猿) 화석들이 3종류의 분명히 다른 종이며, 몇몇 유인원(類人猿) 종들이 약 3천900만년 전 다른 대륙 즉 아시아로부터 건너와 아프리카에서 대량 서식하게 됐다는 것을 네이처(nature)지에 발표했다.

 

미국 카네기 자연사 박물관의 고생물학자 크리스토퍼 비어드는 "이처럼 다양한 화석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은 유인원들이 아시아(Asia)에서부터 아프리카(Africa)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매우 큼을 말해준다. 아프리카에서 이전의 화석들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들 유인원들의 최초 진화지로 주목할 곳은 아시아(Asia)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장 자크 예거 교수는 발견된 유인원 화석들이 모습은 오늘날의 영장류와 비슷하지만 크기는 몸무게는 100-480g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이 중 최소한 한 종은 아시아 미얀마(Myanmar)에서 발견된 3천 800만년 전의 아시아 유인원(類人猿)인 간레아 메가카니나(Ganlea megacanina)와 유연 관계에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아시아(Asia)에서 아프리카(Africa)로 유인원의 이동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아프리카(Africa) 인류 기원설은 폐기되고 있다.

 

1987년 버클리의 유전학자들인 앨런 윌슨과 레베카 칸, 마크 스톤킹은 전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발표한다.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 분석을 통해 지구촌에 살고 있는 60억명 인류의 조상은 지금부터 약 15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어느 여성이라고 입증해낸 것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서 일종의 세포 전지 구실을 한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에는 1만 6500개의 독특한 DNA가 존재하고 있다. 이 DNA의 염기 서열은 사람마다 아주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 미토콘드리아를 어머니의 난자에게서만 물려받는다는 점이다. 정자는 염색체만을 전달하며, 약간의 미토콘드리아를 갖고 있지만 수정 과정에서 팽개쳐버린다. 윌슨 등 과학자들은 바로 이 점에 착안했다.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30억명의 여성에게 있는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 DNA를 계속 역추적하면, 윗세대 여성으로 올라 갈수록 수십억에서 수백만, 수천, 수십, 한자릿 수로 줄어들게 된다. 이 결과 과학자들은 현생 인류의 조상을 15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자매인 두 여성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 여인에게 붙은 이름이 바로 ‘미토콘드리아 이브’인 것이다. 그리고 이 이브의 후손 중 일부는 약 10만년 전 아프리카를 탈출해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간다. 이것이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학설이다.

 

한편, 1986년 중국 요녕성 요동(遼東) 반도 잉커우(營口)현 서남쪽, 발해만에서 30㎞ 떨어진 금우산(金牛山)에서 28만년 전 인류 화석이 발견되자 학계는 흥분했다. 한반도 북부 발해만에서 현생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 뒤집는 선사 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15만년 전 아프리카 두 여성 보다 13만년이나 앞선 28만년 전의 금우산(金牛山)인이 발견된 것이다.

 

■ 흑피옥, 인류 문명사를 새로 쓸 비밀 열쇠이다.

 

2006년 8월 하순 중국 북부 내몽고(內蒙古) 자치구 우란차푸(烏蘭察布)시 외곽의 풀이 무성한 초원 지대에서 김희용씨는 비밀의 문물(文物)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흑피옥(黑皮玉)이다. 흑피옥이 발견된 주변에는 신전(神殿)벽돌식 무덤 등 고대 문명의 흔적이 역력했다. 주변 일대에는 또 다른 여러 기의 분묘가 눈에 띄었고, 인근 산꼭대기에서는 신전(神殿)의 흔적과 비슷한 터도 발견된다. 그가 그 동안 중국 현지에서 수집해 소장 중인 흑피옥은 수백여 점에 달한다. 크기는 작게는 수십cm의 소형 조각상에서 크게는 1m를 훌쩍 넘는 대형 조각상까지 매우 다양하다.

 

서울대 기초 과학 공동 기기원에 흑피옥(黑皮玉) 1점의 시료를 채취해 탄소 연대 측정을 의뢰한 결과, 흑피옥의 제작 연대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1만 4,300년 전(前)쯤으로 추정된 것이다. 이는 구석기 시대 후반에 해당되며, 기존의 세계 4대 문명(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황하. 인더스)보다 거의 1만 년 이상 앞서는 것이다. 기존의 인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대사건이다.

 

흑피옥 조각상의 정교함으로 미뤄 1만 4,300년 전 인류 사회가 결코 미개하거나 야만적인 상태가 아니었으며, 상당한 정도의 문명 사회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 나아가 흑피옥 문화를 ‘초(超)고대 문명’ 또는 ‘제1차 인류 문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흑피옥은 달(倍達 BC 3,897-2,333)의 홍산(紅山) 문화 유적지에서 출토되는 옥기(玉器)들과 모양이 비슷하다. 김희용 씨는 흑피옥 출토지 발견 이후 중국(中國) 당국에 자신이 소장한 흑피옥 전부를 기증하는 대신 한국과 세계 각국 학자들을 포함시킨 조사단의 공식 발굴을 제안한 바 있다.

 

중국 북부 내몽고(內蒙古)의 흑피옥(黑皮玉) 문화와 요서(遼西) 지역의 배달(倍達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를 정점으로 하는 요하(遼河) 문명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요하 문명을 주도한 세력은 바로 우리 민족인 배달(倍達) 민족 사람들이었다. 흑피옥(黑皮玉) 문화가 요하(遼河) 문명이 시간차를 두고 계승되었으며, 흑피옥 문화 → 요하 문명 및 홍산 문화 → 한반도(韓半島)로 흐르는 이동 경로 설정이 가능해진다.

 

■ 나반. 아만, 아담. 이브는 최초의 인간이 아니다.

 

이황(李滉) 선생의 제자가 이황 선생에게 ‘태초에 인간이 1-2명 나왔습니까?’ 물었다. 이황 선생이 대답하기를 ‘봄에 농부가 1-2개만 뿌리더냐!’ 라고 했다. 태초에 인류 최초의 인간은 1-2명의 조상에게서 출발할 수는 없고, 태초에 다수의 최초 인간들이 함께 나왔다는 것이다. 주역(周易)에 시어간(始於艮) 종어간(終於艮)이라고 적혀있다. 모든 만물의 시작과 끝이 간방(艮方)에서 이루어 진다는 뜻이다. 간방(艮方)은 한반도 일대를 말한다.

 

환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三聖記)에 인류의 조상을 나반(那般)과 아만(阿曼)이라고 했는데, 이름을 처음 사용했던 족보(族譜)상 최초라는 것이지, 그 이전에 인류가 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이름’을 썼던 사람은 ‘나반(那般)’과 ‘아만(阿曼)’인 것이다.

 

그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지만 그 누구도 이름을 만들어 부르지는 않았다. ‘나반’과 ‘아만‘이 처음으로 이름을 만들어 호명(呼名)했다. 그리고, 그 후 그렇게 ‘이름’을 서로 만들어 부르다가 인류 최초로 성(性)씨를 정하고, 결혼(結婚) 제도를 정한 사람은 배달(倍達 BC 3,898-2,333) 5세 태우의 환웅의 12번째 아들인 ‘태호복희(太昊伏羲)’이며, 그 후 강(姜)씨가 인류 최초의 성(性)씨가 되었고, 그 후에 점점 족보(族譜)를 따지게 된 것이다.

 

노아(Noah)의 홍수 때, 노아 가족 이외의 인류는 모두 멸망당하였다고 적혀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노아(Noah)의 홍수 때와 노아의 홍수 이후에도 지구의 다른 지방에서 인류가 살고 있었다는 증거가 세계적으로 발굴된 고고학적 자료와 유물 및 서적들에서 수없이 발견되고 있다. 서양의 노아(Noah)의 홍수가 B.C 2,348년경에 발생했다. 그리고, 서양사람들이 그들의 시조로 믿고 있는 아담(Adam) 이브(eve)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상류에서 6,000년 전에 살았던 실존 인물이며, 서양에서는 최초로 ‘이름’을 사용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들은  족보(族譜)상 서양 사람들의 시조(始祖)가 되는 것이지, 그들이 인류의 최초의 인간은 아니다.

 

■ 우리 민족의 역사는 무려 9,200년이나 된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환국(桓國 BC 7,199-3,897)배달(倍達 BC 3,897-2,333)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 마한.변한.진한. 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년이나 된다. 인류 최초의 나라 환국(桓國 BC 7,199-3,897)이 바이칼호(Baikal lake)와 천산(天山) 산맥 일대에 세워졌었고, 그것의 국통(國統)을 이어서 북만주 일대에 배달(倍達 BC 3,898-2,333)이 세워졌었다.

 

인류의 문명은 북만주 일대에 위치해 있던 배달국(倍達 BCE 3,898-2,333)의 문명이 인류 4대 문명을 낳아 생겨 났다. 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紅山)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500-2,600년). 이집트 문명(BC 3,100년경). 황하 문명(BC 3,000-2,500년). 인더스 문명(BC 2,5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 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반도는 북방계 문명인이 남동쪽으로 이주해 오기 전에 이미 남방계 토착민이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었다. 배달(倍達 BC 3,898-2,333) 환웅께서 문명 개척단을 이끌고 북만주 일대에 나라를 세우기 이전부터 토착민(곰족. 호족)들은 살고 있었다. 또한,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단군께서 나라를 세우러 내려오기 전부터 토착민들은 역시 살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인의 유전 형질을 분석해 보면, (조용진 교수, 얼굴, 한국인의 낯) 넓적한 북방계와 오밀조밀한 남방계가 함께 혼합해서 섞여 있다고 한다.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발견된 탄화 볍씨는 15.000년 전(前) 세계 최고(最古)의 것으로 학계에 보고되어 있으며, 세계 피라미드 무덤 양식의 기초가 되는 석관묘(고인돌)는 세계에서 한반도가 가장 많다. 그리고 신석기 및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석관묘)은 한반도 중에서도 호남 지역이 세계 최대로 밀집 분포되어 있다. 북방식 고인돌은 전라북도 고창에서 발견된 것이 최남단의 것이며, 남방식 고인돌은 전라도 지방에 주로 밀집 분포하며, 한강 이남 지역에서 발견된다.

 

인류의 문명이 바이칼호(Baikal lake)와 천산(天山) 산맥 일대의 환국(桓國 BC 7,199-3,897)을 거쳐 북만주 일대의 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紅山) 문화와 발해만(渤海灣)의 발해 문명(요하 문명)을 꽃피웠는데, 그 무렵 이미 한반도에는 토착민들이 정착해 살고 있었고, 그런 바탕 위에 한반도북방계의 배달(倍達 BC 3,898-2,333)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 세워진 것이다.

 

B.C 2200년경부터 쓰여진 우리 민족 최초의 자료집인 산해경(山海經)에는 많은 지리 풍속들이 기록되어 있고 정확한 내용이 상세하게 나열되어 적혀있었기 때문에 한(漢)나라 때 유명한 역사학자 사마천 까지도 사기(史記)를 쓰면서 제일 많이 인용한 책이 산해경(山海經)이었다.

 

우리민족의 선조인 동이족(東夷族)은 지혜로운 민족으로 금속을 제일 먼저 다루었다고 하여 철(鐵)자의 옛날자인 ‘철(銕)족’이라 하였고, 큰 활을 잘 쏘는 민족 이라 하여 큰 대(大)자에 활궁(弓)을 합하여 ‘이(夷)족’이라고 하였다. 후대에 내려오면서 동이족(東夷族)을 중국 사람들이 ‘오랑캐 이(夷)’라고 억지로 낮추어 표현 하였을 뿐이다.

 

 

인류 진화 700만년, 생존의 비밀 품은 동굴 속으로…

2021-06-23 17:42ㅣ 수정 : 2021-06-24 07:23

중앙박물관 ‘호모사피엔스’ 특별전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 ‘호모사피엔스: 진화∞ 관계& 미래?’는 동굴처럼 꾸민 공간에서 동굴벽화를 영상으로 재현하는 등 다양한 전시 기법을 활용해 몰입감을 높였다.

 

중앙박물관 ‘호모사피엔스’ 특별전

●유물·고고자료 700여점 전시… 틀 깨는 연출

어둡고 굴곡진 통로 양쪽 벽에 코뿔소와 사자, 들소 떼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강을 건너는 사슴 무리, 황소를 창으로 사냥하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진다. 프랑스 쇼베 동굴과 라스코 동굴,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등 3만 2000년 전부터 1만 3000년 전 무렵에 그려진 동굴벽화 속 그림들이다. 전시 공간을 미로처럼 배치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음향 효과까지 더해 마치 동굴 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호모사피엔스: 진화∞ 관계& 미래?’(9월 26일까지)가 팬데믹 시대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사유하는 시의성 있는 주제와 유물을 나열하는 뻔한 전시의 틀을 깨는 신선한 연출로 주목받고 있다. 다섯 차례 대멸종 등 혹독한 적응기를 거쳐 온 인류의 진화 과정을 화석 유물과 고고 자료 등 전시품 700여점과 실감형 영상 등으로 풀어냈다.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 ‘호모사피엔스: 진화∞ 관계& 미래?’는 고인류 화석 표본 복제품을 입체적으로 배치하는 등 다양한 전시 기법을 활용해 몰입감을 높였다.

●20여종 진화 거쳐 살아남은 ‘호모사피엔스’

현재 78억명인 지구인은 호모사피엔스라는 단일종이다. 700만년 전 초기 인류가 처음 등장한 이래 20여종의 진화를 거쳐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만 남았다. 고인류 화석 표본 복제품들을 입체적으로 배치한 전시 도입부는 인류의 진화가 단선적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복잡하게 분화하는 과정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기 쉽게 일러 준다.

▲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한국 주먹도끼.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문가들은 호모사피엔스의 생존 능력 중 하나로 예술을 꼽는다. 동굴벽화가 대표적인 증거다. 전시장에 대형 영상으로 재현된 동굴벽화들의 세밀하고 웅장한 면모를 보면 “알타미라 이후 모든 것이 퇴보했다”고 한탄한 피카소의 심정에 동조하게 된다. 다채로운 형상의 비너스 조각품들과 장례 의식에 사용한 부장품에서도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호모사피엔스의 도구와 언어 사용도 흥미롭다. 길이 12m 벽에 세계 구석기의 기술체계와 한반도 구석기의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유물을 배치한 감각이 돋보인다. 4만년 전 무렵으로 추정되는 단양 수양개 유적에서 발견된 ‘눈금을 새긴 돌’도 눈길을 끈다.

▲ 디지털 기술과 3차원 실물 모형으로 구성한 전시 공간 함께하는 여정’.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자연 앞 인간… 첨단기술·공간 배치로 재현

전시 하이라이트는 호모사피엔스가 살아왔던 환경을 컴퓨터 기술로 구현하고, 매머드와 동굴곰 등 지금은 사라진 멸종 동물 화석의 3차원 프린팅 모형을 한 공간에 배치한 ‘함께하는 여정’이다. 관람객이 발길을 멈추면 디지털 호수에 파동이 일면서 옆 사람과 선으로 연결된다. 유전자 가위, 인공지능 등으로 신의 영역인 생명 창조를 넘보는 인간이지만 환경 위기와 바이러스 감염 등 자연의 공격 앞에선 나약한 존재라는 점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새삼 일깨워 줬다.

김상태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은 “코로나19 이전에 기획됐는데 팬데믹을 거치며 전시 내용도 진화했다”면서 “인류의 자부심을 강조하는 초기 기획안에서 지구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명체들과의 공존 메시지를 부각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소개했다. 인류학자, 역사학자, 뇌과학자 등 전문가 20여명이 참여한 전시 책자도 알차다. 오는 12월 국립중앙과학관, 내년 4월 전곡선사박물관에서 순회 전시할 예정이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