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관도사와 국립현충원 풍수(1) 벚꽃
아침 뉴스에 서울의 3대 벚꽃 명소로
여의도 윤중제,
석촌호수 둘레길,
국립현충원이라 하여 오늘 나섬.
그러니까 국립현충원은 2013년 6월
친구와 갔었는데 아내는 아직 못 가봐
보여주면 좋아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2) 국립 현충원
야탑에서 9408번 광역버스를 타고
정문을 내리니 온통 하이얀 벚꽃 세상이다.
분향소에 들러 묵념을 올리고
무명용사탑을 지나
사병들의 무덤을 지나
이승만, 김대중,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차례로 뵙고 아내와 묵념을 올렸다.
아내는 국립현충원이라 하여
유명인들이 분향하는 모습이 TV에도 비치고하여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알았는데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을뿐더러
각 대통령님들 묘소에도
아무런 제약없이 찾아 볼 수 있는 곳이어서 놀랍다는 반응.
(3) 육관 손석우의 神眼
김일성 사망 예언 적중으로
世間을 놀라게 한 육관도사 손석우씨에 의하면
박대통령 내외분 쌍분 묘소 중
육영수여사 쪽은
水脈이 지나고 있어 시신이 편안치 못해
형제, 자매들이 불화하는 등
후손이 평탄치 못하여 移葬하여야 한다고
육관도사의 生前에 강력히 주장하였지만
무슨 이유로 실행되지는 못했다는데...
(큰 영애 박근혜의 반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說도 있음)
그러나 그리하였다면
昨今에 박근혜 전대통령에 밀어닥친
저 환난이 비껴갔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어쨋튼 凡人의 눈으로 보기에는
장군 묘역 상단부에 한강까지 내려다보이는
박대통령 내외 쌍분은
병풍 같은 서달산을 배산으로
좌청룡 우백호가 뚜렷한
아주 좋은 明堂으로만 보이더라.
(4) 14명의 임금을 배출한 창빈 안씨
이어 창빈안씨의 묘소에도 들러
이곳이 조선 14명의 임금을 배출한 창빈안씨가
원래 동작동 명당의 원주인이었음을 설명하여 주니
나의 유식함에 놀라는 아내의 반응.
이승만 대통령 묘소와
김대중 대통령 묘소 중간에 위치한
선조의 할머니,
9세의 어린 나이로 궐에 들어가
궁녀의 신분에서 빈까지 올라
중종의 총애로 2남 1녀를 낳았는데
2子인 덕흥대원군이 바로 선조의 아버지로
그의 핏줄을 이은 하성군(선조)을 비롯하여 순종에 이르기까지
14명의 君王을 배출한 사람의 무덤치고는
아무리 궁녀출신이라지만 너무 검소하다.
그렇게 호국지장사까지 둘러보고
언덕에 핀 제비꽃, 꽃마리, 광대나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충효길 일부구간을 걸어보고
다시 현충원 경내로 돌아와 벚꽃을 감상하다가
정문을 빠져나와 광역버스로 歸家.
배달9214/개천5915/단기4350/서기2017/04/10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1. 4년만에 다시 찾은 국립현충원
2. 능수 벚꽃이 이처럼 숙연함을 더하게 한다.
3. 온통 하얀 조화의 애도 물결
4. 분향소
5. 무명용사 분향소
6. 일반사병묘역
7. 이승만 대통령
8. 창빈안씨 묘역
9. 사실 현충원내에서 최고의 명당이라는 장군묘역의 조망
10. 김대중 대통령
11. 박정희 대통령
12. 박정희 대통령 운구차
13. 호국지장사에서
육관 손석우(1928.4 – 1998.8) “터” 주요 내용
(1)
손석우씨는 1993년 7월에 펴 낸 "터"라는 저서에서
전주 모악산의 김태서 묘를 살펴보고
그 후손 김일성의 49년간 절대권력 운이 94년 9월 14일에 끝난다고 예언했는데
정말 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심장마비로 사망을 했읍니다.
그러자 "터"라는 풍수 서적은 한때 베스트셀러가 되었었습니다.
(2)
그리고 한때 손 석우 씨는 동작동 육영수 묘에 물이 찼다고 비난하며
박정희 묘역시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 박지만은 마약혐의로 2번에 걸쳐
구속이 되었고 박 근혜도 유세 도중 얼굴에 테러를 당한 바 있읍니다.
하여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2007년 7월경 풍수 전문가로부터 육영수 박정희 산소에
생기 처방을 했습니다. 그리고 약 5년 후 (2012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되었읍니다.
그러나 박근혜도 청와대에 들어간 후 강력한 음기터인 관저를 만나
몇 년 살다 보니 몸에 생기가 소진되어 탄핵이란 우환이 닥친 것으로 봅니다.
(3)
그중에 김일성 사망을 예고합니다.
이 책이 나온 시기는 김일성이 사망하기 일년 전인 1993년 7월에 나오는데...
'전주 김씨 문장공 김태서 묘의 발복과 김일성의 운명'(p 110)이란 편에서
시조인 김태서의 묘터가 전주 모악산의 중턱에 있는 명당자리인데...
"김일성의 운명은 이미 그 시조 묘에 의해서 정해져 있다.
김일성과 같은 큰 인물은 산천의 정기 없이는 생겨나지도 못 한다.
김일성은 이 묘역의 정기를 한몸에 받고 태어났는데 묘자기리 미좌축향(未坐丑向)으로 만
49년 동안은 절대권력을 행사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1945년부터 시작된 김일성의 통치기간은 49년이 되는
1994년 갑술년 초겨울 무렵이면 끝난다.
정확히 말하자면 음력 9월 14일 인시(새벽 3~5시)에 그 묘의 정기가 사라진다.
따라서 그의 운은 앞으로 1년이면 다하게 되는 것이다.(p117)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이 나온 다음 해에 예언대로
1994년 7월 8일에 새벽에 갑작스런 심장마비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죠.
그런데 더 중요한 내용은 따로 있습니다.
'서울의 풍수와 한민족의 장래'(p 188) 부분에선
"앞으로 미8군을 비롯한 수많은 각종 부대들이 서울을 떠 날 것이다." (p 197)
이 부분은 지난 뉴스나 신문 기사를 통해 서울의 용산기지 및
경기 북부의 미2사단을 후방으로 배치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사실은
'자미원의 비밀과 남연군 묘의 도굴 사건' (p 259)부분입니다.
자미원은 충남 서산에 있는데 바로 이곳에서
장차 통일된 세계를 다스릴 제왕이 이 혈의 발복으로 등극한다는 내용입니다. (p 262)
육관 손석우(1928.4 – 1998.8) 주요 약력
1926년 경북 울진군 기성리 다천면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고 한다.
호적에는 1930년생으로 늦게 올려져 있다고 하며 소학교를 졸업하고 형편상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어 농사를 지으며 70리밖 선배의 집에 찾아다니며
독학으로 교원 자격고시에 합격하여 한때 울진 사동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6.25동란을 겪으면서 군에 입대, 1957년 장교로 제대를 하였다고 한다.
이후 장준하선생이 주필로 있던 사상계 잡지사에서 근무하던 중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자 정치에 뜻을 품고
민주공화당 울진지구당 위원장이 되어 박정희 후보를 마포 집을 팔아가면서까지 도왔으나
공천을 받지 못하자 분개하여 공화당을 탈당하였으며, 정치와 세태의 각박함을 경험후,
오대산 적멸보궁 밑에 움막을 짓고 8일동안 기도를 하던 중 혼절하여 스님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산을 내려오면서 땅속에 뱀이 엉켜있다거나, 묻혀있는 권총이 보이는 등
땅속을 유리속 같이 보는 신통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저서 '터'나 언론 인터뷰등에서 자칭 당대 최고의 풍수라며 풍수지리는
학문과 이론이 아니라 땅속 수 십 미터를 볼 수 있는 神眼이 있어야 穴을 찾을 수 있고,
자신의 눈만이 혈을 찾을 수 있는 神眼을 가진 도사라고 거침없이 말하던 인물이다.
오늘날 풍수지리에 대한 관심이 그가 일반인에게
신비감을 줌으로서 고조시켰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풍수지리를 왜곡하여 혹세무민하였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국모 육영수에 관한 육관의 해석
옛 결에 이르기를, 삼각산과 남산이 분할될 때 왕이 급사하리라 했는데,
육여사가 저격당한 그날은 마침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는 날이었으니, 한양의 주산(북악)과
안산(남산)의 지맥이 끊기자 왕비가 급사해버린 형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풍수학적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박정희를 대신하여 비명에 간 셈이다.
'이거 안되겠다. 여기는 악혈이다.
내 평생 백골에 적악하는 것을 피하는게 신조요 서원인데, 이럴 수없다.
이 자리에 들면 국모의 시신은 썩지도 않을 것이다.'
'여기 이자리는 음양의 교구가 안되는 자리이고 냉혈입니다.
냉혈이니 시신이 썩지 않고, 음양교구가 안되니 자손이 끊어집니다.
딸이라도 시집가서는 살 수가 없게 됩니다. 이 동작동이라는 터는
공작이 날개를 펴서 날아가는 모양인데, 이런 공작새의 형국에는 명당이 밑에 있지 위에
있지 않습니다. 여기는 포란의 자리도 아니고 그 훨씬 윗쪽이니 윗쪽은 나쁜 곳입니다.'
'절더러 바보라 하셔도 좋습니다. 그
러나 저는 백골적악을 안하기로 서원을 세운 사람입니다. 귀신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지사로서 첫째가는 금기사항입니다. 지금의 저 자리에 쓰면 반드시 영부인의 시신이
편치 못합니다. 그러니 제가 이 돈을 받으면, 아무리 저 자리가
나쁜 자리라고 강경하게 반대했어도 결국은 동참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돈 아니라 비록 천하를 준다 하더라도 그리는 못합니다.‘
이른바 당대 2대 풍수가들
75년 육영수 비운의 흉탄에 서거하자
박정희는 당대 2풍수를 국립묘지로 모셔올 것을 명한다.
달리는 차 안에서 금일봉을 건네받고 동작동 국립묘지로 각각 도착한 2풍수가.
비록 몸은 갔지만 죽어서라도 국운에 보탬이 되기 위해 박정희의 명으로
최고 명혈 자리에 육여사를 모시고자 함이다.
청오는 지금의 육여사 자리를 주장했고 이 자리가 바로 남북통일을 이룰 자리이며
박지만대에 이르러 만주까지 진출할 자리라고 하였다.
반대로 육관은 금일봉을 돌려주며
이곳에 자리하면 박근혜는 평생 결혼도 못하고 집안이 크게 불행해진다 주장하였다.
대세는 청오로 쏠리고
지금까지 그곳에 육여사가 잠들어 있지만 시간이 흐르고 현재 과연 누가 정확했는가?
당시 박근혜도 옆에서 그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고 책에 기록되어 있다.
[김두규의 國運風水]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 2018.04.21 03:02 조선일보
(1)
육관도사 손석우씨
"이곳선 시신 안 썩어" 지관신부 임응승 신부 "이곳에 수맥 흐른다"
박근혜 대통령 된 후 '냉혈론' 잠잠해지다가 징역 24년 선고에 재부상
지난 8일 일요일 서울 동작동 현충원에 갔다. 이때쯤 피는 수양벚꽃이 일품이다.
가는 길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았다.
이틀 전 4월 6일은 그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 선고가 내려진 날이었다.
평소보다 참배객이 많았다. 참배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는 이들의 이야기엔
몇 가지 유형이 있었다. "이 나라와 박근혜 대통령을 굽어 살피소서!"(70대 여인)
"유죄 선고를 내린 재판장 천벌받아야 해!"(70대 남자 일행 5명) 또 하나 빠지지 않는
말이 있었다. "정말, 박 대통령 부부 묘에 물이 차는 것일까?"(60대 남자 일행 3명)
마지막 발언은 오래전부터 전해져온 이른바 '냉혈론(冷穴論)'이다.
1993년 육관도사로 유명했던 손석우씨가 이곳을 가리켜
"시신이 썩지 않는 냉혈의 땅"이라고 주장하였다. 여기에 유럽의 수맥이론을 풍수에
접목하여 '지관신부'로 유명했던 임응승 신부(2015년 작고)가 "이곳에 수맥이 흐른다"고
가세하였다. "간접적으로 후손들에게 수차례 이장을 권장했다"는
신부님의 말을 필자도 들은 적이 있다.
(2)
'냉혈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잠잠해지더니 유죄 선고와
더불어 다시 떠오른다. 그 시작은 1974년 육영수 여사가 이곳에 안장될 때부터였다.
이 터를 잡은 이는 당대 최고의 술사 지창룡과 손석우씨로 알려졌다.
실제 그들은 그렇게 자랑하였다. 그런데 20년 후 손씨가 발을 뺀다.
"내가 육 여사 장지에 도착했을 때 지씨가 이미 자리를 정해놓았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나에게 의견을 묻기에 '냉혈이어서 시신이 썩지 않고,
음양교구가 안 되니 딸이라도 시집을 가 살 수 없게 된다'고 하였다."(손석우)
이에 대해 지씨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육 여사가 저격당한 날 밤중에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다. 다음 날 현장에 갔더니
이미 최 풍수와 남 풍수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구덩이를 파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내가 현장 작업을 지휘하였다. 무덤 뒤 약한 용세(내룡)가 마음에 걸려
수백 트럭의 흙을 날라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
그런데 지씨가 언급한 '최 풍수와 남 풍수'는 지금까지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과연 이곳은 냉혈이 맞을까? 땅속 일은 알 수 없고,
술사들의 주장은 저마다 달라 모두 믿기 어렵다. 다만 지씨 말대로 수백 트럭의 흙으로
내룡을 만들었다면 이곳은 묘 뒤[龍]가 허(虛)함을 의미한다. 용이 없으면 혈(穴)도 없다.
"자리가 습하여 해마다 잔디 교체를 한다"는 말을 1990년대 후반
그곳 관리인에게 들은 적 있다. 또한 박 전 대통령 무덤 뒷산과 그 앞산인
장군봉(장군 묘역) 사이에 고갯길이 있어 바람이 세다. 바람[風]과 물[水]에 문제가 있다.
(3)
이곳만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묘는 창빈안씨(선조임금 할머니) 묘역을 침범한 ‘
범장론(犯葬論)'의 덫에 걸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는 자리를 정할 때
봉황이 알을 품는 길지라 하였으나 구덩이를 파던 중 돌이 나오는 바람에
'봉황항문파열론'(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의 덫에 걸렸다.
이승만 대통령 묘만이 그나마 제대로 된 자리로,
신령스러운 거북이 물을 마시는 '영구음수형(靈龜飮水形)'이라고 한다.(지창룡)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대통령들처럼 연고지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대통령을 배출한 생가와 선영'은 당연 길지이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그곳은
새로운 관광지가 되며, 죽으면 고향으로 간다는 '귀향장(歸鄕葬)'의 모범이 될 것이다.
혼령이 되어 조상님들, 고향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