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과 서울숲과 홍천에서 본 음모(1)청계산에서
4/25-4/28 장가계 여독을 풀 겸
4/30부터 며칠 청계산 금토동 능선을 갔다.
정여창의 얼이 스민 이수봉에 사는 고양이. 그리고
내가 “얀철쭉”이라 한 아이. 그리고 보기드문
“백철쭉”아래 “각시 붓꽃”이 청치마 속에 얼굴을 가리고 있다.
옥상정원에는 분갈이한 “등심붓꽃”이 예쁘게 피었다.
장가계에서
『- 포옹과 악수만이 능사일까?
- 이 장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 혹자는 말한다. 국민의 80%가 지지하지 않느냐고...
- 민주주의의 최대 약점은 다수결 원칙의 모순이라고 본다.
- 진정한 리더는 미래를 내다보고 다수의 국민이 가는 길을 그대로 가지 말고
돌을 맞더라도 80%를 설득하며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가야 하지 않을까?』
라고 한 내 말이 현실이 되고 마는 現實.
그럴 줄 알았지만 아직도 환상에 있는 그들.
장가계간 일행들도 거의 그 모습에 들뜬 모습 - 나만 이상한 사람.
(2)서울숲에서
5/4일에는 전 직장 동료들과
『서울숲-남산』도심 산행을 했다.
서울이란 도시에 이런 숲길이 있슴에 모두 모두 감사.
서울숲(14:10) -> 응봉산(14:40, +1.6) -> 대현산(14:55, +0.7=2.3)
-> 호당공원(15:10, +1.1=4.5) -> 금호산(15:35, +1.1=4.5)
-> 버티생태교(15:40) -> 매봉산팔각정(16:00, +2.0=6.5)
-> 성곽마루(16:20) -> 국립극장(16:30, +1.3=7.8)
여기서도 파주에 투자하겠다고 들뜬 동료들의 모습
그들의 “한반도 비핵화”에 숨어있는 의도와
지금까지 반복되 온 배반의 역사를 말했지만
정신 차리자는 나의 말은 공허(空虛).
(3)홍천에서
5/9일에는 친한 지인부부와 홍천에 갔다.
홍천 휴게소 전망은 좋은 날씨에 훌륭했다.
심심산골에 피어있는 동의나물, 참죽을 뜯고
지인의 전원주택에서 청순한 매발톱을 보았다.
그리고 홍천 고을의 맑은 공기와 깨끗한 마을들을 보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그와 많은 걱정을 했다.
판문점 선언이 한 달도 안 되었건만
그 포옹과 악수의 溫氣가 가시기도 전에
태영호와 민간단체의 풍선과 식당종업원을 핑계로 宣言은 휴지화 되었다.
과연 그가 평화와 非核이 필요해서 판문점 턱을 넘어 왔을까?
여기가 다양한 의견이 있는 민주국가라는 사실을 모르고 정부의 통제를 요구하는가?
어린 독재자는 아직 아마추어는 아마추어 인가 보다.
그렇게 쉽게 마르지 않은 잉크를 지우려 하다니...
여기 집권층은 그들이 수십 번 약속을 어긴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중동의 테러집단은 테러를 하고 당당히 자신들의 소행이라 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이미 밝혀진 625만 하더라도
한 번도 사과는커녕 유감표시 조차 안한 아주 비겁한 집단.
정말 10만의 인민들을 수용소에 가둬두고 짐승 이하의 학대를 하고,
인간의 자유와 행복에 대한 기본을 잃은지 오래인 인민을 외면하고,
호가호위하는 소수의 인민만 평양에 모아놓고 호의호식하며
친인척은 물론 단지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형하는
3대에 걸쳐 내려온 어린 독재자가 진정성을 갖고 있다고 보고 악수를 하고 있나?
북의 어리지만 음흉한 독재자도, 여기의 우리 집권자들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런 기초적인 사실들을 모르고 있을 리 만무하다.
정보가 부족한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실상을 잘 알 것이다.
그러면 왜 저들은 가면을 쓰고 저런 능숙한 연기를 할까?
배달민족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각자(남과 북)의 눈 앞의 利益에 부합하기에 서로 악수하고
언론 앞에 하나의 능수능란한 연기에 충실하며 이용하는 죄인들이다.
아니 서로 그걸 잘 알면서 그러한 연기를 하기에
더더욱 나쁜 죄인들일 것이다.
진실로 진정성이 있다면 민족 앞에
잘못에 대한 고해성사가 먼저 선행되어야하고
짚고 넘어갈 것은 정확히 서로(남과 북)따지고
그 다음 단계에 포옹과 악수가 있다면 조금 믿어보겠다.
50년 이상의 대립이 진행되어 온 묵은 때를
그렇게 일거에 벗겨보려는 자체가 불가능이란 사실을 잘 알텐데...
갑자기 악수와 포옹과 성급히 확성기를 제거한다고 그 세월의 증오가 풀릴까?
지금의 이런 사태는 이미 예고 된 것이었다.
처음부터 집권층이 진정한 배달민족의
미래의 비전을 갖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없었다.
태영호의 “3층 서기실의 암호”를 읽어보지 않았어도
이미 간파하고 있었지만 읽어보고 나서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確信.
한시바삐 눈에 보이는 환호와 연기에 집착하지 않는
진정한 민족의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가 나타나기만 바랄 따름이다.
어려운 시기마다 선각자는 있어왔다.
배달민족의 오랜 역사를 보아도 항상 진정한 리더는 출현하여 왔다.
리더여! 한시바삐 오셔서 이 민족을 구해주소서.
배달9215/개천5916/단기4351/서기2018/05/21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덧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