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역사의 뒤안길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청와대, 그 영욕의 900년史(22/03/21)

이름없는풀뿌리 2022. 3. 21. 14:27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청와대, 그 영욕의 900년史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청와대, 그 영욕의 900년史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입력 2022. 03. 20. 23:51 댓글 925개 청와대 본관과 관저의 모습. /연합뉴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하게 되면, 지금의 청와대 자리는 고려 숙종 9년인 1104년 남경(南京) 궁궐을 그곳에 세운 뒤 918년 만에 ‘최고 권력자’와 무관한 장소로 바뀐다. 청와대는 900년을 넘는 영욕(榮辱)의 세월을 뒤로 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고려 숙종, 청와대 터에 궁궐 지어 고려가 지금의 서울 강북에 남경을 설치한 것은 1068년(문종 22년)의 일로, ‘고려사’에는 ‘남경에 신궁(新宮)을 세웠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이때의 신궁 위치가 어디였는지는 알 수 없다. 36년이 지나 15대 왕 숙종(재위 1095~1105) 때 다시 남경을 설치해 천도 계획을 세우고 1104년 남경 궁궐을 완성했다. ‘고려사’는 숙종이 대신과 내관을 거느리고 이곳을 찾아 10여 일 머물렀다고 기록했다. 이 궁궐이 지어진 장소가 어디였을까. ‘조선왕조실록’에 언급이 나온다. 1394년(태조 3년) 천도를 위해 한양을 답사한 권중화 등이 올린 상소에 “고려 숙종 때 경영했던 궁궐의 옛터가 너무 좁아 그 남쪽에 궁궐(경복궁) 터를 정했다”고 했다. 숙종 때 세운 남경 궁궐은 경복궁 북쪽인 지금의 청와대 자리였음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숙종은 당초 계획과는 달리 남경으로 천도하지는 않았다. 당시 도참서인 ‘도선기’에 ‘개경(개성), 서경(평양), 남경(서울)에서 4개월씩 머물러야 나라가 흥한다’고 적힌 것을 근거로 번갈아 거주하는 곳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남경 천도 계획은 다시 흐지부지됐고, 고려 말인 1382년(우왕 8년)에는 다시 천도가 이뤄져 임금이 남경 궁궐에서 머물렀으나 5개월 만에 개경으로 환궁했다. 어쨌든 고려 말까지는 그곳에 임금이 머무는 궁궐이 있었던 것이다. ◇충성 맹세 장소에서 경복궁 후원으로 조선왕조가 그 남쪽에 법궁인 경복궁을 세운 뒤 후원 격인 청와대 터는 계속 왕실 부지로 남았다. 이곳에는 회맹단(會盟壇)이라는 중요한 국가 시설이 세워졌다. 임금이 신하들로부터 충성 맹세를 받는 곳이었다. 특히 1417년(태종 17년)에는 개국공신과 그 적장자가 모두 모여 대규모 회맹을 했다. ‘숙종실록’에는 “경복궁 북문 밖은 회맹단인데 수석이 아름다운데도 주색과 유람에 빠진 연산군조차도 감히 후원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신성스런 곳으로 여겨졌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경복궁이 불탄 뒤로 청와대 터 역시 오랫동안 빈터로 방치돼 있었다. 그러나 1868년(고종 5년)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청와대 터의 성격은 또 한번 바뀌게 된다. 경복궁을 중건한 흥선대원군은 창덕궁의 넓은 후원인 춘당대(春塘臺) 같은 곳을 경복궁에도 만들려 했다. 그래서 이곳에 경무대(景武臺)라는 이름의 후원을 조성했다. ‘경무’란 무슨 뜻일까. ‘경복궁(景福宮)’의 ‘경(景)’과 경복궁 북문 ‘신무문(神武門)’의 ‘무(武)’에서 한 글자씩 딴 것이란 설이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는 “경무라는 말은 당시 많은 사람들의 시호로 쓰이던 이름으로, ‘큰 계책으로 나라의 난리를 진압한다’는 뜻이 있다”고 설명했다. 경무대에는 경복궁의 부속 전각들이 들어섰다. 총 32동의 건물이었다고 한다. 오운각(五雲閣)은 임금의 휴식 공간이었고, 융문당(隆文堂)과 융무당(隆武堂)은 과거 시험과 군사 훈련을 치르는 곳이었다.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지은 경농재(耕農齋) 주변에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밭이 있었다. 창덕궁 후원처럼 경치가 수려한 정원과 계곡도 있었다고 한다. 적어도 1910년 이전까지는 말이다. ◇1939년 일제 총독 관저가 들어서 일제가 1910년 강제합병 이후 숱한 경복궁 전각을 훼손할 때 신무문 북쪽의 전각들도 철거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런데 융문당과 융무당의 이야기는 좀 기이한데, 그건 그 두 건물이 지금도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융문당·융무당은 1928년 건물이 해체된 뒤 용산으로 옮겨 세워져 일본 사찰인 용광사 건물로 사용됐다. 1942년에는 중일전쟁에서 전사한 일본군의 유골을 이곳에 보관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 원불교에서 두 건물을 인수한 뒤 2006년 용산 재개발사업으로 또 다시 해체돼 전남 영광의 원불교 시설로 옮겨졌다. 청와대 자리에 있던 경복궁 건물을 철거한 뒤 일제가 세운 것은 조선총독 관저였다. 증산교 계통 종교인 보천교 본당의 화려한 청기와를 가져와 지붕을 만들었다고 한다. 총독 관저는 왜성대(중구 예장동)에 있었는데 1926년 경복궁 안으로 옮겼고, 다시 1939년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신축했다. 그러니까 청와대 자리에 있던 관저에 모든 총독이 다 들어왔던 것은 아니고, 7대 미나미 지로(南次郞·재임 1936~1942), 8대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재임 1942~1944), 9대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재임 1944~1945)까지 세 명이 6년 동안 이곳을 사용했다. 광복 이후엔 미 군정 사령관 존 리드 하지(Hodge) 중장의 관저로 쓰였다. 일본인 조선 총독의 집을 미 군정 사령관이 그대로 썼던 것은 지금 시각에서 보면 결코 현명한 처사라고 볼 수 없다. ◇황와대가 될 뻔했던 청와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관저를 이화장에서 구 총독 관저로 옮겼다. 그러면서 이 일대의 옛 이름 ‘경무대’를 건물 이름으로 되살렸다. 낡은 건물을 보수하자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1층을 집무실, 2층을 생활 공간으로 썼다고 한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의 독재가 심해지면서 ‘경무대’는 권력의 상징과도 같은 용어가 됐다. 1958년 김성환의 신문 만화 ‘고바우영감’은 ‘경무대서 똥을 치우는 사람’이 목에 힘을 주고 돌아다니는 장면으로 권력을 풍자해 필화를 겪었다. 1960년 4·19로 제2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부정적인 이름이었던 경무대를 바꾸자는 여론이 생겼다. 새 건물 이름의 후보로 청기왓집이라는 의미의 ‘청와대(靑瓦臺)’와 조선왕조 건국 당시 국명 후보였던 화령(함남 영흥의 옛 이름)에서 딴 ‘화령대(和寧臺)’가 후보로 올랐다. 윤보선 대통령은 ‘청와대’란 이름을 택했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 직후 청와대를 ‘황와대(黃瓦臺)’로 바꾸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청’보다는 ‘황’이 존귀한 색이고 옛날 황제의 색상이 아니냐는 의미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집 이름을 바꿔서야 되겠는가”라며 이를 일축해 ‘청와대’란 이름은 이후에도 지속됐다. 청와대의 영문 명칭은 화이트 하우스(White House·백악관)와 대조되는 ‘블루 하우스(blue House·BH)’인데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우리 고유명사까지 영어화해서야 되겠느냐”며 그렇게 쓰는 비서관들을 자주 꾸짖었다고 한다. ◇이승만부터 문재인까지 12명이 거주·집무 청와대에는 1·2·3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4대 윤보선, 5~9대 박정희, 10대 최규하, 11·12대 전두환, 13대 노태우, 14대 김영삼, 15대 김대중, 16대 노무현, 17대 이명박, 18대 박근혜, 19대 문재인까지 모두 12명의 대통령이 거주하며 집무했다.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이룬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한 장면들이 숱하게 이곳에서 이뤄졌다. 1960년 4·19 때 경찰이 경무대 앞에서 시위대에게 발포한 사건, 1968년 북한 게릴라가 청와대를 공격 목표로 삼아 500m까지 접근한 1·21 사태, 1979년 청와대 부지 안 궁정동 안가(현 무궁화동산)에서 일어난 10·26 사태 등 숱한 현대사의 사건·사고가 일어난 곳이기도 했다. 1991년 노태우 정부 때 대대적인 신축과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비로소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이 분리됐는데, 이때 조선시대에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 새긴 바위가 발견되기도 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 때 구 본관을 철거하고 청와대 앞길을 시민에게 개방했다. 김영환, '집무실 이전' 尹 극찬.. "조선총독부 이후 100년 이래 최대 사건 될지도" 권준영 입력 2022. 03. 20. 14:45 댓글 2099개 "새로운 리더십 탄생..광화문시대 넘어 용산시대 열리면서 제왕적 대통령의 무거운 갑옷 벗어" "철책 걷어내고 북악의 봄 오고 있어..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어렵다는 말, 격하게 공감" "미군이 평택으로 빠져 나가고, 그 자리에 대통령 집무실 생겨..100만평의 공원 생긴단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생각에 동의..오늘의 尹 대통령의 결단 높이 평가" "그는 국민과 정치인들보다 반발자국 앞서 있어.. 지도자의 풍모가 돋보이는 결정을 한 것 치하하고 싶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특별고문인 김영환 전 국회의원이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새로운 리더십이 탄생하고 있다. 광화문 시대를 넘어 용산 시대가 열리면서 제왕적 대통령의 무거운 갑옷을 벗고 소통과 공감의 민주주의 시대로 나아가게 되었다"고 극찬을 쏟아냈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영환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조선총독부 이후 100년 이래 최대의 상징적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 전 의원은 "철책을 걷어내고 북악의 봄이 오고 있다.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돌아 나오기가 어렵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며 "미군이 평택으로 빠져 나가고 그 자리에 대통령 집무실이 생겨나고 100만평의 공원이 생긴단다"라고 말했다. 이어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리고 오늘의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며 "그는 국민과 정치인들보다 반발자국 앞서 있다. 그에게 지도자의 풍모가 돋보이는 결정을 한 것을 치하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실 청와대도 국방부 건물도 이전 비용도 보안시설도 구체적으로는 잘 모른다. 그래서 우려하고 걱정했다"면서 "그러나 당선인의 자상한 설명을 듣고 많은 부분 공감이 되었다. 무엇보다 국민과의 소통과 공감을 위한 의지가 돋보이는 회견이었다"고 윤 당선인의 기자회견을 높이 평가했다. 끝으로 김 전 의원은 "윤석열이 이 나라 역사 속에 국민 성공의 위대한 시대를 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며 "대통령 집무실 1층에 기자실이라니 누가 그런 담대한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거듭 칭찬했다. 앞서 윤 당선인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서 인수위 출범 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는 임기 시작인 5월 10일에 개방해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며 "국민께 불편을 드리는 측면, 청와대를 온전히 국민께 개방하여 돌려드리는 측면을 고려하면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결정을 신속히 내리고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어려운 일이지만, 국가와 미래를 위해 내린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제대로 일하기 위한 각오와 국민과의 약속을 실천하고자 하는 저의 의지를 헤아려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광화문 집무실 이전이 무산된 이유에 대해선 "당선 이후 광화문 정부 청사들을 대상으로 집무실 이전 방안을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쉽지 않은 문제임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또 "최소한의 경호 조치에 수반되는 광화문 인근 시민들의 불편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용산 집무실에 대해 "용산 국방부와 합참 구역은 국가 안보 지휘 시설 등이 구비돼 있어 청와대를 시민들께 완벽하게 돌려드릴 수 있고 경호 조치에 수반되는 시민들의 불편도 거의 없다"고 부연했다. 끝으로 윤 당선인은 "청와대는 임기 시작인 오는 5월 10일에 개방해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며 "본관, 영빈관을 비롯해 최고의 정원이라 불리는 녹지원과 상춘재를 모두 국민들의 품으로 돌려드리겠다"고 밝혔다. 권준영기자 kjykjy@dt.co.kr 74년만에 막내리는 靑시대.. 공원 만들고 등산로 국민에 개방 동아일보 박훈상 기자 입력 2022. 03. 21. 03:00 [용산 대통령 시대]尹 "청와대는 국민께 돌려드릴것" 尹 "靑, 국립공원화하는 게 맞아".. 본관-녹지원-상춘재 모두 공개 경복궁역~북악산 등반로 열려.. "軍 보호구역-개발제한 해제도 기대" 尹, 5월 10일부터 완전 개방 밝혀.. 집기 이전 등 필요해 시점 조정될수도 “청와대를 임기 시작일인 5월 10일 개방해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20일 “(청와대를) 국립공원화하는 것이 맞는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윤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청와대를 100% 개방해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공약했다. 대선 11일 만에 이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건국 이후 74년 동안 지켜온 권력의 중심이라는 정치적 지위를 내려놓고, 국민이 함께 누리는 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윤 당선인은 이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융연수원 별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 본관, 영빈관을 비롯해 최고의 정원이라 불리는 녹지원(綠芝園)과 상춘재(常春齋)를 모두 국민들 품으로 돌려드리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집무실, 비서동, 기자실 등 그간 청와대를 점했던 모든 공간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옮기면서 청와대를 국민에게 전면 개방한다는 얘기다. 윤 당선인은 이어 “이렇게 되면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경복궁, 청와대를 거쳐 북악산으로의 등반로 역시 개방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의 청와대 자리(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는 조선 태조 4년(1395년) 경복궁이 창건되며 궁궐의 후원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는 경복궁을 청사로 사용하면서 지금의 청와대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했다.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이승만 전 대통령이 ‘경무대’라는 이름을 짓고 관저 및 대통령 집무실로 이 건물을 사용했다. ‘푸른 기와집’을 뜻하는 청와대(靑瓦臺)의 명칭을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은 윤보선 전 대통령이다. 청와대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노태우 정부 때다. 노 전 대통령은 1989년 청와대를 신축하면서 본관과 관저를 분리했다. 관저와 집무실 간 출퇴근 개념이 자리 잡은 것도 이때부터다. 녹지원은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와 120여 종의 나무가 있다. 녹지원 주변엔 높이 16m, 수령이 150여 년 된 한국산 반송이 있다. 이곳에서 청와대는 매년 어린이날 행사를 열었다. 외빈 접견 장소인 상춘재는 전통적인 한식 가옥으로 1983년 4월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해 지어졌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청와대를 개방할 경우 서울 성북구 정릉부터 종로구 경복궁 인근까지 청와대 일대의 군사시설 보호구역이 해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저(청와대) 뒤에 옛날에 김신조가 넘어왔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제한들이 많은 걸로 안다”며 “경복궁 등 고궁 때문에 이뤄지는 경관 제한은 존속하겠으나, (청와대로 인한 개발) 제한은 많이 풀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청와대 부지뿐만 아니라 통행이 금지된 일대 지역도 함께 개방될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에 ‘역대 대통령 박물관’을 조성하면 명물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주변에 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당선인은 이날 임기 시작과 함께 청와대를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5월 9일 밤 12시 청와대를 비우고, 청와대의 각종 집기를 용산으로 이전하는 등 정비를 거쳐야 하는 만큼 개방 시점은 조정될 수 있다. 아울러 윤 당선인이 취임한 뒤에도 한동안 청와대 영빈관을 이용할 여지도 남겼다. 윤 당선인은 “(현재 영빈관이) 1년에 몇 번 안 쓴다고 하던데 꼭 써야 하면 (청와대를) 공원으로 개방하더라도 이 건물은 저녁에 국빈 만찬 같은 행사를 할 때 쓸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 이전이 실현되면 건립 이후 처음으로 청와대 벙커를 포함해 공간 전체를 일반인이 둘러볼 수 있게 된다. 그동안 경내에 들어가려면 철저한 신원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해 구중궁궐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역대 대통령마다 이를 의식해 청와대 개방을 시도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청와대 앞길을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통행할 수 있게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와 접해 있는 북악산을 개방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청와대 앞길을 24시간 개방했고, 2020년 북악산 북측면 둘레길도 부분 개방했다. 1) 미국 백악관 배치도 2) 용산 대통령집무실 예정지와 현 청와대 3) 2019.10.03. 조국사퇴 광화문 집회 4) 2020.10.03. 광화문 집회 대비 재인산성 [김대중 칼럼] ‘어쩌다’ 대통령 된 윤석열, 잃을 게 없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 입력 2022.03.22 03:20 尹 정권의 시대적 사명은 지난 5년 잘못 바로잡고 대한민국 정체성 확립하는 일 文 정권의 내로남불·권력남용 통합 이유로 눈감지 말고 법 절차에 따라 문책해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는 윤석열 당선인 뒤에 ‘겸손하게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윤 당선인은 당선 이후 거의 모든 언급에서 ‘국민’과 ‘통합’을 빼놓지 않고 있다. 일생을 공무원으로 살아왔기에 이번 대선을 통해 ‘국민’의 의미와 ‘통합’의 무게를 새삼 깊이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레토릭이 아닌 현실에서 ‘국민’과 ‘통합’은 진부하게 들리기도 한다. ‘국민’은 많은 정치인이 입만 열면 습관처럼 거론한 단어이고 때로는 독재자들이 더 많이 애용한 용어이기에 식상한 것도 사실이다. 사실 ‘국민’은 매사에 일일이 심판자가 될 수 없고 매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는다. 현실 정치에서 ‘국민’은 하나가 아니다. 국민은 여럿일 수 있다. 심각한 문제는 국민이 대립적이고 충돌적이라는 데 있다. 지도자는 그중 어느 ‘국민’을 선택할지 결정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대립하는 국민 쪽을 배척할 수도 없다. ‘국민’은 하나가 아닐 뿐 아니라 언제나 당신의 우군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꾸 국민을 들먹이고 물어보면 궁극적으로 자신감이 없음을 드러낸다는 것을 유념하기 바란다. 국민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당신을 뽑아줬으니 이제는 당신이 알아서 하라. 성적표는 5년 후에 받아라.’ 민주주의 지도자의 또 다른 숙명은 그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터득하는 것이다. 2020년대 대한민국이 당면한 국내적·국제적 환경은 어떤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 나라를 이끌어갈 지침은 어떤 것인지를 찾아내는 일이다. ‘정치’가 넘쳐나고 ‘정치인’이 천지사방에 깔린 나라에서 왜 무엇이 ‘검사’를 대통령으로 밀어 올렸는지를 숙고하는 일이다. 윤석열에 대한 시대적 요청은 앞선 5년의 잘못된 리더십에 오염된 나라가 더 망가지기 전에 바로잡으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좋은 대통령’ ‘훌륭한 대통령’ 모두 좋다. 그러나 그에 우선하는 것은 좌파 5년을 바로잡고 헌법에 따른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나라의 에너지 정책, 부동산 정책, 기업의 자율, 대북·대중 정책과 동맹 정책을 총괄하는 외교·안보 노선 등을 바로잡아 재설정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자유·민주적 신념을 저해해온 각종 사회 권력을 정리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민노총·전교조·참여연대 등 이른바 사회 권력 이동이 수반하지 않은, 정치권력만의 독자적 장악으로는 명실상부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고 할 수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번 대선에서 국민은 윤석열을 뽑은 것이라기보다 정권 교체를 명(命)한 것이다. 그리고 정권 교체는 좌파 정권의 근간이 돼 온 사회 권력을 되돌려놓을 때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변화가 결단력 있게 수반되지 않는 한, 좌파 단체들은 앞으로 5년간 윤 정부를 사사건건 괴롭힐 것이고 5년 후에 정권을 다시 내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윤석열 정권이 받은 시대적 사명은 문재인 5년을 ‘청소’하라는 것이다. 정치 보복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적폐 청산을 하라는 것이다. 지난 정권의 내로남불, 인사 불공정, 권력 남용 등을 징벌해서 다시는 그런 적폐가 용인되지 않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 절실하다. 국민 통합이라는 미명하에 ‘불법’을 그냥 넘기는 것은 안 된다. 다만 철저한 사실 검증과 법 절차에 따라 권력 개입 없이 문책이 이뤄지지 않으면 문 정권과 다를 것이 없다. 윤 당선인은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바로잡고 싶은 열정에 불타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아니 세계의 모든 대통령이 당선 초기에는 다 그랬다. 하지만 약속을 남발하면 자칫 국민에게 헛된 희망(false hope)만 주고 일은 엉망이 되기 쉽다.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집중도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0.73%p 차 대통령’이라는 딱지가 번번이 그의 길을 가로막을 것이다. 170석 넘는 민주당 의석도 사사건건 윤 정부를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윤 당선인에게도 ‘무기’는 있다. 엄밀히 말해 윤석열은 정치인이 아니다. 정당인도 아니다. 체질이 다르다. 그야말로 ‘어쩌다’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잃을 것이 없다. 제도와 법이 허용하는 한, 소신대로 대통령 노릇 하고 물러가면 된다. 부담 없이 ‘윤석열다운 정치’를 한번 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