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길55(쇠라의 정경, 2023/07/03, 단공-불망비-남문-남옹성-시구문-종로, The Lyrical Piece)
이름없는풀뿌리2023. 7. 4. 07:15
요즈음 – 산성길55(쇠라의 정경) –
있는 것 하나하나 무엇도 버릴 수 없어
숨어있는 의미들 점점이 가득 담아
풀어낸 쇠라의 정경 산성길에 있었다.
배달9220/개천5921/단기4356/서기2023/07/03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 조르주 피에르 쇠라 : 19세기 신인상주의의 창시자로, 색채와 빛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점묘법이라는 회화 기법을 개발하고 발전시켰다. 그는 인상파의 색채 원리를 ‘과학자다운 태도로’
체계화했으며, 인상주의자들이 무시한 화면의 조형적 질서를 재구축했다고 평가받는다.
덧붙임)
산성길55(쇠라의 정경)(1)
미루어진 숙제 풀 듯
2일만에 다시 오른 찜통 속의 산성길.
하노이의 열기가 오르는 땅을 딛고 비오듯한 땀 흘리며
불망비를 지나 남문에 다다르니 시원.
몸에 배인 노폐물이 탈출하듯 달아난다.
(2)
산성에 올라보는 자연은
펼쳐진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다.
자연을 점묘로 정성들여 담아낸
조르쥬 피에르 쇠라의 심정을 알 것 같다.
그렇게 천천히, 자세히 쪽동백, 딱지꽃, 멍석딸기, 솔나물, 타래난초,
구슬붕이, 원추리, 고비, 녹두루미, 천남성, 풀솜대, 노루귀, 파리풀과 동무하며...
3시간여, 약8km, 천천히 거닌 하루.
배달9220/개천5921/단기4356/서기2023/07/03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1) 집 뒤(09:20)의 공원을 장식한 능소화 滿開
2) 경주 김씨 묘원(10:10)
3) 불망비(10:40)
4) 남문(11:00)
5) 남문 숲의 쪽동백, 딱지꽃
6) 비밀의 숲2의 멍석딸기
7) 비밀의 숲2의 솔나물과 타래난초(11:40, 촛점이 흐려 버리려다 아까워 올림)
8) 남옹성의 딱지꽃과 큰구슬붕이(12:00)
9) 남옹성
10) 산속을 울며 헤매는 계집애 같은 원추리
11) 다람쥐가 따라오는 웅장한 남성을 지나며...
12) 고비의 그늘을 지나서..
13) 비밀의 공원1에 내려오니 하늘말나리와 녹두루미, 천남성, 풀솜대 열매가 반겨주었다(12:40)
14) 파리풀이 도열한 길을 따라 종로로 왔다.
17) 오늘의 여정(단대공원-불망비-남문-남장대-시구문-종로, 약8km. 3시간)
■ 편도염, 목감기로 착각하면 위험… 新인상주의 창시자 목숨도 앗아가
[명작 속 의학] [63] 조르주 쇠라
조선일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입력 2023.06.01. 04:27
조르주 쇠라가 1884년 2년에 걸쳐 완성한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색깔 점을 균일하게 찍어서 그린 점묘화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1859~1891년)는 신(新)인상주의 창시자다.
이는 19세기 말 프랑스 회화 양식의 하나로,
인상주의를 계승하면서 색채론과 색 배합 광학 효과 등 과학적 기법을 그림에 부여한 예술 사조다.
음악에 화성 법칙이 있듯이 색채에서도 조화 원칙을 찾고자 했다. 쇠라의 가장 유명한 대작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사진)는 그런 신인상주의 회화 대표작으로 꼽힌다.
1884년 여름에 그리기 시작한 이 작품은 균일한 필촉으로 색점을 찍어 그린 점묘화다.
파리 근교 그랑드자트섬에서 맑은 여름날을 보내고 있는 다양한 계급의 시민들 모습을 담았다.
여러 색의 작은 점들은 보는 이의 눈에서 시각적으로 혼합되어 새로운 색으로 재구성된다.
쇠라는 3m 너비인 이 그림을 한 점 한 점 찍어 완성하는 데 2년이 걸렸다.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연 쇠라는 전람회를 준비하면서 얻은
편도염 합병증으로 32세라는 나이에 요절한다. 지용배 한양대구리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작품들을 전시하고 거는 일을 무리하게 하다가 감기에 걸렸고 이후 편도선염으로 악화됐다”며
“편도선 표면에는 크립트라는 주름 같은 많은 홈이 있고, 여기에 본래 여러 세균이 살고 있는데,
면역력이 떨어지면 세균이 안으로 침투해 편도염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편도염 시작이자 진행 요인인 셈이다. 지용배 교수는
“급성 편도염은 갑작스러운 고열과 오한, 인후통을 동반해 목감기로 착각하기 쉽다”며
“일반 감기약만 먹다 보면 염증이 주변으로 확산되어
목에 고름이 고이는 편도 주위 농양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편도염은 드물게 세균성 심내막염이나 급성 화농성 관절염, 패혈증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고열에 목 통증이 심하다면 편도염 여부를 확인하여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지 교수는 전했다. 세포와 살이 점점이 모여 이뤄진 우리 몸에 만만한 장기 하나가 없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편집국 사회정책부 의학전문기자 영상의학과 전문의, 논설위원 겸임.
■ 조르주 피에르 쇠라(Georges Pierre Seurat)
20세기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열다
출생 1859년 12월 02일
사망 1891년 03월 29일
국적 프랑스
대표작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 등
19세기 신인상주의의 창시자로 색채의 표현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하며 독자적인 양식을 확립했다.
조르주 피에르 쇠라는 19세기 신인상주의의 창시자로,
색채와 빛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점묘법이라는 회화 기법을 개발하고 발전시켰다.
그는 인상파의 색채 원리를 ‘과학자다운 태도로’ 체계화했으며,
인상주의자들이 무시한 화면의 조형적 질서를 재구축했다고 평가받는다.
쇠라는 1859년 12월 2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법원 집달관으로, 부유한 부르주아 계층이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 44세였던 아버지는 그가 4살 무렵 은퇴하여
파리 근교 랭시의 별장에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다 이따금 집으로 돌아왔으며,
쇠라는 파리의 아파트에서 어머니, 동생들과 살았다.
그는 8세 때부터 그림에 관심을 두었고,
9세 때 아마추어 화가였던 외삼촌에게 그림의 기초를 배웠다.
16세 때 조각가인 쥐스탱 르키앙에게 본격적으로 그림 수업을 받았으며,
19세 때 에콜 데 보자르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앵그르의 제자인 레만에게 사사했는데,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은 레만의 교육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본 한 권의 책이었다.
바로 제네바 출신의 화가 쉬페르빌이 쓴 이론서 《절대적인 미술 기호들에 관한 평론》이었다.
이 책을 읽고 쇠라는 미술에 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에 강한 흥미를 느꼈고,
이후 화학자 슈브뢸이 쓴 《색채의 동시 대비 법칙에 관하여》, 물리학자 루드가 쓴 《현대 색채론》 등을 공부했다.
쇠라는 1881년 들라크루아 작품의 색채 대비와 보색 관계를 이론적으로 분석한 글을 발표하기까지 한다.
1879년, 그는 제4회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드가, 모네, 피사로의 작품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으며,
인상주의 화풍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해 그는 군대에 지원하여
약 1년간 북부 지방의 항구 도시 브레스트에서 복무했다.
이듬해 군 복무를 마치고 파리로 돌아온 그는 작업실을 빌려 색채 연구에 열중하는 한편,
바르비종파의 그림에 영향을 받은 아망 장과 함께 시골 풍경을 다룬 유화 습작들을 그렸다.
1884년, 그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창작에 적용한 최초의 작품을 완성했다.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가 그 작품이다.
그랑 자트 섬과 아스니에르는 파리 시민이 여가를 즐기기 위해 즐겨 찾던 교외 지역으로,
쇠라가 친구인 아망 장과 종종 놀러가던 곳이었다.
아스니에르에서 여가를 즐기는 노동자들을 그린 이 작품은 인상주의 기법을 기반으로 하되,
색채와 시각에 관한 연구를 하나의 기법으로 발전시켜 적용한 것이다.
즉 색채를 팔레트에서 섞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색채들로
작은 점을 찍어 화면 위에서 색채가 혼합되어 보이게 한 기법이었다.
이로 인해 팔레트나 캔버스에서 색을 직접 혼합했을 때 색채가 탁해지는 것이 방지되고,
화면이 희미하게 반짝이는 효과가 나타났다.
쇠라는 이 기법을 색채를 섞지 않고 분할해 칠한다는 의미로 디비조니슴(Divisionnisme, 분할주의),
혹은 직접 물감을 혼합하는 것과 달리 광학적 색채 혼합이라는 의미에서
‘색채 광선주의(Chromo-luminarism)’라고 일컬었다.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런던 내셔널 갤러리
이 작품은 살롱전에서 낙선했으나, 그해 5월에 열린 앵데팡당전에 전시되면서 천재 화가의 출현을 알렸다.
이 작품을 보고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은
“캔버스 위에 따로 분리되어 있는 색점들이 망막 속에서 재구성된다.”라고 말하면서,
본능적이고 직관적으로 그림을 그린 인상주의자와 이론을 바탕으로 한 쇠라의 체계적인 색채 실험을 구분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쇠라의 작품에 대해 ‘신인상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한 페네옹은 쇠라의 기법을 점묘법이라고 했는데,
이 용어는 쇠라가 선호한 분할주의보다 훨씬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폴 시냐크, 카미유 피사로 등의 화가와 상징주의 시인 에밀 베르하렌 등도 쇠라에게 엄청난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점묘법을 전면적으로 사용한 본격적인 작품은
1886년경 완성한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이다.
쇠라는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를 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약 2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수많은 예비 습작을 했고, 유화로 완성한 이후에도 여러 번 손질을 가했다.
일요일 오후 여가를 즐기러 나온 파리 시민들의 모습을 정밀하게 표현된 이 작품에서
쇠라는 보색 관계에 있는 작은 점들을 수없이 찍어 점묘 기법을 완성시켰다.
이 작품은 순수색의 분할과 그로 인한 색채 대비가 확립된 작품으로 ‘신인상주의의 선언문’이라고 불린다.
이 작품은 저명한 화상 뒤랑 뤼엘의 주도로 뉴욕에서 열린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되었고,
이후 파리에서 열린 마지막 인상파 전시회를 비롯해
브뤼셀에서 열린 20인 그룹전 등에 전시되면서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1886년 여름, 쇠라는 옹플뢰르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옹플뢰르 항구〉, 〈옹플뢰르의 저녁〉, 〈옹플뢰르의 등대〉 등을 그렸는데,
이때까지도 자신의 색채 분할주의를 엄격히 적용했다. 그해 가을에는 새로 작업실을 얻어
〈포즈를 취한 여인들〉에 들어갈 다양한 포즈를 취한 여인들의 누드를 습작했다.
〈포즈를 취한 여인들〉필라델피아 반즈 재단 미술관
이 무렵 쇠라의 작품에 찬사를 마지않은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은
〈라 보그〉 지에 쇠라의 색채 실험을 소개하면서 미술 이론가인 샤를 앙리와 쇠라의 만남을 주선했다.
샤를 앙리는 선과 색의 표현 관계를 분석한 《과학적 미학 입문》이라는 저술을 발표한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서로의 이론을 나누었고,
쇠라는 앙리의 이론을 바탕으로 선의 특성과 역할에 대해 숙고했다.
그리고 1888년 앙리의 이론을 적용한 〈서커스 사이드 쇼〉를 그렸다.
그리고 그해 연작으로 〈서커스 사이드 쇼〉,
〈포즈를 취한 여인들〉(이 작품들은 이전 습작인 〈서 있는 포즈의 여인〉, 〈앉아 있는 모습의 포즈〉,
〈옆모습의 포즈〉 등과 연작으로 묶인다) 등을 앵데팡당전에 출품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서커스 사이드 쇼〉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서커스 사이드 쇼〉 이후 그는 〈서커스〉, 〈샤위 춤〉 등을 발표하며 대중적인 오락을 소재로 다루었다.
이 작품들에서 그는 공중에 매달린 가스등의 불빛이 공간 안에 은은히 퍼지는 효과를 표현하는 실험을 했는데,
이 시기 그린 베생 항구와 그라블린 운하를 다룬 연작 회화들에서도
빛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바다의 대기를 압축된 이미지로 표현했다.
쇠라는 회화적 이론과 기법에 대한 연구를 점차 발전시켰으나
1891년 3월 29일 새벽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3월 26일 그는 미완성인 〈서커스〉를 비롯해 5점의 작품을 앵데팡당전에 전시하기로 하고,
그림 배치를 감독하다 독감과 후두염 증세를 보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3일 만에 증세가 악화되어 33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그는 짧은 시간 활동했으며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지만, 미술사에 끼친 영향은 막대했다.
후대에 인상주의에 통합되어 다루어지며 폄하되기도 했으나,
인상파의 양식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하면서 홀로 독자적인 양식을 확립했다.
그의 과학적 이론과 기법은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물론, 입체파, 미래파 등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탄생에 영향을 미치면서 세잔과 함께 20세기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The Lyrical Piece / Eldar Mansur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