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 作 《금강사군첩(金剛四群帖)》중 [長安寺]
단원 김홍도 作 《금강사군첩(金剛四群帖)》 중 [白華庵浮圖]
1912년 무렵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전경 – 현재는 6.25 전쟁 중에 소실돼 터만 남은 사찰
(유점사 부속암자 백화암에 서산대사가 居하여 서산대사의 號가 白華道人이다.)
겸재 정선 作 한양도성전도(漢陽都城全圖) - 개미집 같은 도성
서산대사(西山大師) 禪詩
- 法名 : 휴정(休淨), 號 : 청허(淸虛), 백화도인(白華道人) -
(1)
萬國都城如蟻蜘(만국도성여의지)
千家豪傑若醯鷄(천가호걸약가계)
一窓明月淸虛枕(일창명월청허침)
無限松風韻不齊(무한송풍운부제)
구름아래 열국(列國)의 도성은 한갓 개미집같고
고금(古今)의 영웅호걸들도 하루살이에 불과하구나.
창가에 명월을 벼개삼아 고요히 누워 있으니
소올솔 불어오는 송풍(松風)은 끝없는 가락이로고.
(2)
千計萬思量(천계만사량)
紅爐一點雪(홍로일점설)
泥牛水上行(니우수상행)
大地虛空裂(대지허공렬)
억천만 가지 온갖 사념은 넘쳐나는데
벌건 화로에 눈 한송이 떨어지거나 말거나
진흙 묻은 황소가 물 위를 유유히 지나 가고
땅과 하늘이 함께 꺼져 내리네.
(3)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덮인 광야를 지날 때는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뒷사람들의 길이 되리니
* 위 詩는 조선시대 큰 스님으로서 승병장으로 유명한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시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은 통일된 대한민국을 수립하기 위해 회담을 하러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갈 때 당시의 심정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 시로써 답을 대신하였다.
뿐만 아니라 선생께서는 평소에도 이 구절을 즐겨 써서 경계로 삼았기 때문에
김구 선생의 필적 중에도 이 구절을 쓴 작품이 남아있어 김구 선생의 詩로 알려지고 있기도 한데
사실 위 詩는 조선후기 문인 임연당 이양연의 야설(夜雪)이란 詩라 한다.
이양연(또는 서산대사) - 야설(野雪 或 夜雪) / 觀風齋의 漢詩舍廊 / 2010. 2. 26.
- 서산대사의 작품으로 알려진 시 -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 이양연의 작품으로 알려진 시 -
穿雪野中去(천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今朝我行跡(금조아행적)
遂爲後人程(수위후인정)
'답(踏)'이 '천(穿)'으로
'일(日)'이 '조(朝)'로
'작(作)'이 '위(爲)'로 바뀐 것을 빼면 나머지는 같다.
'야설(野雪)’ 혹은 ‘야설(夜雪)'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유포된 위 한시는 꽤 오랫동안 서산대사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다.
백범 김구 선생이 즐겨 휘호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양대 정민 교수가
조선 후기의 문신 이양연의 작품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더 잘 알려진 시가 되었습니다.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은 조선 정조 때 태어나
순조, 헌종, 철종 등 세 임금의 시대를 산 성리학자였다.
임연당(臨淵堂)의 字는 진숙(晋叔)‚ 호는 임연(臨淵)으로서 이의존(李義存)의 아들이다.
1830년(순조30) 선공감 첨정‚ 1838년(헌종4)에 도사(都事)‚
1851년(철종 2) 호조참판에 임명된 인물로
어릴 때부터 시문(詩文)이 뛰어나, 후학들이 그의 작품을 다투어 암송하였다고 한다.
조일전쟁(朝日戰爭)에서 팔도총섭으로 승군을 지휘한 서산대사(1530~1604)에 비해
생몰연대에서는 한 세기 반이나 뒤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양연의 작품이라는 말이 힘을 얻는 이유는
이양연의 유고집에 이 작품이 실려 있는 반면에
서산대사의 《청허당집(淸虛堂集)》에는 위 작품이 실려 있지 않아서이다.
이양연과 관련해서는
1917년에 장지연이 편찬한 《대동시선(大東詩選)》과
1985년에 북한의 문예출판사가 발간한 《한시집》에서 이양연의 작품으로 싣고 있고
또 최근에는 안대회 교수와 정민 교수 등이 이양연의 문집 《임연당별집》에서
'야설(野雪)'이라는 제목의 위 시를 찾아내기도 했다.
누가 쓴 작품이든 그 안에 담긴 깊은 뜻이 달라질 일은 없겠지만,
서산대사가 이양연에 비해 한 세기 반을 앞서 산 인물이라는 것과
산중 수행자로서 분연히 일어나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낸 인물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작품의 또 다른 저자로서의 명성을 그에게서 빼앗기는 쉬운 일이 아닐 듯 싶다.
문헌에 명확한 증거를 남겨둔 이양연으로서야
앞으로도 한동안 혼동하기 쉬운 저자로 남게 될 것이 여전히 아쉬운 일일 것이다.
서산 대사의 친필이 담긴 유품이다. 자유롭고 호방한 필체가 눈에 띈다. [중앙포토]
김구 선생의 친필 유묵
석왕사 서산대사필 설봉산석왕사기. 함남 안변군 문산면 사기리(현 강원도 고산군 설봉리).
1929년 가을 조선박람회 출품 사진, 가로 30.3cm, 세로 25.2cm(국립중앙박물관)
승과에 급제해 선종과 교종의 지도자였고 85세로 1604년 입적하신 평북 영변 보현사 서산대사 진영.
통도사 서산대사 진영
공주 태화산 麻谷寺 祖師堂 서산대사 휴정 진영
西山大師眞影, 西山大師 肖像, 재질:섬유-견, 크기:127.2cm*78.5cm(국립중앙박물관)
서산대사 휴정(休淨, 1520~1604)은 서산(西山)이라는 법호(法號)로 알려져 있는 승려이다. 그는 1592
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3세의 나이에 승병 1150명을 모아 나라를 구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불교적 측면에서도 업적을 남겼는데, 선종에 교종을 포섭하고 조파(祖派) 체계를 수립하였다. 당시
많은 승려들이 그의 문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후대에도 존경을 받았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는 전국
의 여러 사찰에서 그의 초상화를 제작하여 모셨는데, 현재 전해지는 작품이 열 점이 넘는다. 이는 위
대한 대사의 초상을 통해 사찰의 위상을 높이고 그의 법통을 이어받았음을 알리려는 의도였다. 이 초
상화에서 서산대사는 의자에 앉아 왼쪽을 향해 바라보고 있으며, 회색 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치고,
왼손에는 용머리 장식이 있는 대나무 지팡이인 불자(佛子)를 들고 있다. 엷은 갈색조의 바탕 위에 가
늘고 고른 필치로 온화하고 강직한 성격을 보여주는 얼굴을 그려냈다. 즉 자상하고 덕망 높은 고승의
모습으로서 승병들을 진두지휘하면서 일본군을 법력으로 교화시킨 그의 생애를 짐작하게 해주고 있다.
■ 서산대사(1520~1604)
법명은 휴정(休靜). 서산은 호이다.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완산(完山).
서산대사 휴정(休淨, 1520~1604)은 서산(西山)이라는 법호(法號)로 알려져 있는 승려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서울 수복에 공을 세웠다.
유(儒)·불(佛)·도(道)는 궁극적으로 일치한다고 주장, 삼교통합론(三敎統合論)의 기원을 이루어 놓았다.
출가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안주목사 이사증(李思曾)을 따라 서울로 옮겨 성균관에서 3년 동안 글과 무예를 익혔다.
과거를 보았으나 낙방하여 친구들과 같이 지리산의 화엄동과 칠불동 등을 구경하면서
여러 사찰에 기거하던 중, 영관대사(靈觀大師)의 설법을 듣고 불법(佛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화엄경, 반야경, 법화경 등 깊은 교리를 탐구하던 중
깨달음이 있어 숭인장로(崇仁長老)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하였다.
승과 급제
1549년(명종 4) 승과(僧科)에 급제하였고, 대선(大選)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다.
1556년 선교양종판사직이 승려의 본분이 아니라 하고, 이 자리에서 물러나
금강산·두류산·태백산·오대산·묘향산 등을 두루 행각하며
스스로 보임(保任:깨달음을 더욱 갈고 닦음)하였고, 후학을 지도하였다.
역모 연루
1589년(선조 22) ≪정감록 鄭鑑錄≫의 미신에 의하여
정여립(鄭汝立)이 왕위에 오른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역모(逆謀)를 꾀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역모에 가담한 요승 무업(無業)이 휴정과 유정(惟政)이 자신과 함께 역모에 가담하였다고
주장하여 투옥되었다. 그러나 곧 무고함이 밝혀져 선조는 무죄석방하면서
손수 그린 묵죽(墨竹) 한 폭을 하사하였고 휴정은 그 자리에서 답시를 지어 선조에게 올렸다.
임진왜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평양으로 피난하였다가 다시 의주로 피난하였다.
이 때 선조는 묘향산으로 사신을 보내어 나라의 위급함을 알리고 휴정을 불렀다.
노구를 무릅쓰고 달려온 휴정에게 선조는 나라를 구할 방법을 물었고,
휴정은 “늙고 병들어 싸움에 나아가지 못할 승려는 절을 지키게 하면서 나라를 구할 수 있도록
부처에게 기원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통솔하여 전쟁터로 나아가 나라를 구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곧 전국에 격문을 돌려서 각처의 승려들이 구국에 앞장서도록 하였다.
이에 제자 처영(處英)은 지리산에서 궐기하여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유정은 금강산에서 1,000여 명의 승군을 모아 평양으로 왔다.
그는 문도 1,500명의 의승을 순안 법흥사(法興寺)에 집결시키고 스스로 의승군을 통솔하였으며,
명나라 군사와 함께 평양을 탈환하였다. 선조가 서울로 환도할 때
700여 명의 승군을 거느리고 개성으로 나아가 어가(御駕)를 호위하여 맞이하였다.
선조가 서울로 돌아오자 그는 승군장의 직을 물러나 묘향산으로 돌아와 열반(涅槃)을 준비하였다.
열반
이 때 선조는 정2품 당상관 직위를 하사하여 나라에 있어서의 공과 불교에 있어서의 덕을 치하하였다.
그 뒤에도 여러 곳을 순력하다가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설법을 마치고
자신의 영정(影幀)을 꺼내어 그 뒷면에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라는 시를 적어
유정과 처영에게 전하게 하고 가부좌하여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나이 85세, 법랍 67세였다.
* 서산대사(1520~1604) 생애 요약
1520년 1세 평안남도 안주에서 완산 최씨에게서 태어남
1534년(중종29년) 15세 과거(진사시)에 낙방하자 지리산(智異山)에 입산. 출가시기 미정
1540년(중종35년) 21세 수계사(授戒師)에서 계를 받음
1549년(명종4년) 30세 승과(僧科)에 급제. 대선(大選)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됨
1556년 37세 보직을 물러나 보임정진하며 후학 지도
1589년(선조 22) 70세 정여립 역모 무고 사건 발생, 무죄
1592년 73세 임진왜란 발발 및 승군 규합, 유정과 평양성 전투 참전, 정2품 당상관 하사
1604년 85세 묘향산 원적암 입적
[묘향산의 초가을 김광은 그림]
■ 西山大師 白華道人(休靜) 시모음1. 淸虛歌 청허가
君抱琴兮倚長松 군포금혜의장송 그대 거문고 안고 큰 소나무에 기대어도
長松兮不改心 장송혜불개심 큰 소나무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我長歌兮坐綠水 아장가혜좌녹수 긴 노래 부르며 푸른 물가에 앉으니
綠水兮淸虛心 녹수혜청허심 푸른 물 맑아 마음이 텅 비었네
心兮心兮 심혜심혜 마음이여 마음이여
我與君兮 아여군혜 나와 그대
2. 賽西山老人求懷 새서산노인구회
通經兼達道 통경겸달도 경전을 통하고 도를 알았으니
寫字又吟詩 사자우음시 글씨를 쓰고, 또 시를 읊네
寫字調眞性 사자조진성 글씨를 쓰는 것은 참 성품을 고르게 하고
吟詩記所思 음시기소사 시를 읊은 것은 생각하는 바를 적는 것이네
3. 草堂詠柏 초당영백 草堂에서 잣나무을 바라보며
月圓不逾望 월원부유망 달은 둥글어도 보름을 넘지 못하고
日中爲之傾 일중위지경 해는 정오가 되면 기울기 시작하네
庭前柏樹子 정전백수자 뜰 앞에 잣나무는
獨也四時靑 독야사시청 홀로 사시사철 푸르네
4. 過法光寺 과법광사 법광사를 지나며
風雨天間屋 풍우천간옥 하늘 사이 천간 집에 비바람이요
苔塵萬佛金 태진만불금 부처 금색 몸은 먼지와 이끼와 먼지로 덮였구나
定知禪客淚 정지선객루 참말로 알겠구나! 선객이 여기와서
到此不應禁 도차불응금 눈물을 금치 못하는 까닭을
5. 賈島 가도
黑白投身處 흑백투신처 출가는 사문이 몸둘 곳이요
推敲着字時 추고착자시 推와 敲를 분명히 할 때라
一生功與業 일생공여업 일생의 공과 업이
可笑苦吟詩 가소고음시 괴로이 시만 읊나니 가소롭구나
6. 頭流山 內隱寂庵 두류산 내은적암
有僧五六輩 유승오육배 도반 대여섯이
築室吾庵前 축실오암전 내은암에 집을 지었네
晨鐘卽同起 신종즉동기 새벽 종소리와 함께 일어나
暮鼓卽同眠 모고즉동면 저녁 북소리 울리면 함께 자네
共汲一澗月 공급일간월 시냇물 속의 달을 함께 퍼다가
煮茶分靑烟 자다분청연 차를 달여 마시니 푸른 연기가 퍼지네
日日論何事 일일론하사 날마다 무슨 일 골똘히 하는가
念佛及參禪 염불급참선 참선과 염불일세
7. 贈別慧機長老 증별혜기장로 길 떠나는 제자에게
老鶴飛天去 노학비천거 늙은 학은 저 하늘 밖으로 날아갔으니
雲山幾萬重 운산기만중 구름산은 첩첩하기 몇만 겹인가
贈君無別物 증군무별물 그대에게 줄 것은 별다른 것 없고
唯有一枝공 유유일지공 여기 오직 지팡이 한 자루 남아 있을 뿐
8. 贈消遙太能 증소요태능 소요태능에게
斫來無影樹 작래무영수 그림자 없는 나무로 장작을 만들어
憔盡水中 초진수중 물거품을 태우나니
可笑騎牛者 가소기우자 어허 우습 도다 소를 탄 사람아
騎牛更覓牛 기우갱멱우 소를 타고 소를 찾는 구나
9. 題一禪庵壁 제일선암벽
山自無心碧 산자무심벽 산은 스스로 무심히 푸르고
雲自無心白 운자무심백 구름은 스스로 무심히 희구나
其中一上人 기중일상인 그 가운데 앉아있는 한 사람
亦是無心客 역시무심객 또한 무심한 나그네 일세
10. 內隱寂 내은적
頭流有一庵 두류유일암 두류산에 암자가 하나 있으니
庵名內隱寂 암명내은적 암자의 이름은 내은적이라
山深水亦深 산심수역심 산 깊고 물 또한 깊어
遊客難尋迹 유객난심적 노니는 선객은 찾아오기 어렵다네
東西各有臺 동서객유대 동서에 누대가 있으니
物窄心不窄 물착심불착 만물은 좁아도 마음은 좁지 않다네
淸虛一主人 청허일주인 淸虛라는 한 주인은
天地爲幕席 천지위막석 천지를 이불 삼아 누웠다네
夏日愛松風 하일수송풍 여름 날 솔바람을 즐기노니
臥看雲靑白 와간운청백 구름은 靑白으로 조화를 부리누나
11. 詠懷 영회 마음의 詩
病在肉團心 병재육단심 모든 병은 마음에 있나니
何勞多集字 하노다집자 어찌 힘들게 글자만 모을 것이냐
五言絶句詩 오언절구시 오언절구 한 수이면
可寫平生志 가사평생지 평생의 마음을 담을 수 있네
12. 登香爐峯 등향로봉 향로봉에 올라
萬國都城如蟻질 만국도성여의질 만국의 도성들은 개미집 같고
千家豪傑若醯鷄 천가호걸약혜계 천하의 호걸들도 파리와 같다
一窓明月淸虛枕 일창명월청허침 맑고 그윽한 달빛 베고 누우니
無限松風韻不齊 무한송풍운부제 끊없는 솔바람 소리 고르지 않구나
13. 上玉溪 상옥계 옥계자에게
逆族駒陰裏 역족구음리 빠른 세월 속에 나그네 되어
何人歸去來 하인귀거래 누군들 돌아가지 않을 이 있나
閑窓一睡覺 한창일수각 조용한 창가, 한가로운 잠을 깨니
可散萬封侯 가산만봉후 만호를 거느리는 왕후가 부럽지 않네
14. 四也亭 사야정
水也僧眼碧 수야승안벽 물은 스님의 푸른 눈과 같고
山也佛頭靑 산야불두청 산은 부처님의 푸른 머리일세
月也一心印 월야일심인 달은 변치 않는 한 마음이고
雲也萬卷經 운야만권경 구름은 만 권의 대장경일세
15. 還鄕 환향 고향에 돌아와서
三十年來返故鄕 삼십년래반고향 삼십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人亡宅廢又村荒 인망댁폐우촌황 아는 사람은 다죽고 마을은 황폐하여라
靑山不語春天暮 청산불어춘천모 청산은 말이 없고 봄날은 저물어
杜宇一聲來杳茫 두우일성래묘망 두견새 울음소리 아득하게 들려오네
一行兒女窺窓紙 일행아녀규창지 일단의 아녀자들 창호지를 뚫어보고
鶴髮隣翁問姓名 학발인옹문성명 백발의 이웃 노인 나의 성명을 묻네
乳號方通相泣下 유호방통상읍하 어릴 때 이름으로 서로 알아보고, 눈물짓는데
碧天如海月三庚 벽천여해월삼경 하늘은 바다같이 푸르고 삼경의 하늘엔 달도 밝구나
16. 望高臺 망고대 높은 봉우리에서
獨立高峰頂 독립고봉정 높은 산봉우리에 홀로 서서보니
長天鳥去來 장천조거래 높고 넓은 하늘을 새들만 오가네
望中秋色遠 망중추색원 바라보니 가을색은 아득히 먼데
滄海小於杯 창해소어배 바다는 술잔보다 작게 보이네
17. 讀罷楞嚴 독파릉엄
風靜花猶落 풍정화유락 바람 자도 꽃은 오히려 지고
鳥鳴山更幽 조명산갱유 새 울어도 산은 더욱 그윽하네
天共白雲曉 천공백운효 하늘과 더불어 흰구름 밝아오고
水和明月流 수화명월류 물은 밝은 달과 함께 흘려가네
18. 草屋 초옥 풀집
草屋無三壁 초옥무삼벽 풀집은 세 군데 벽이 없고
老僧眠竹床 노승면죽상 늙은 중은 대나무 침상에서 조네
靑山一半濕 청산일반습 푸른 산은 반쯤 젖어 있는데
疎雨過殘陽 소우과잔양 성근 빗발이 석양을 지나가네
19. 人境俱奪 인경구탈
梨花千萬片 이화천만편 배꽃 천,만 조각
飛入淸虛院 비입청허원 빈집에 날아든다
牧笛過前山 목적과전산 목동의 피리소리 앞산을 지나가건만
人牛俱不見 인우구부견 사람도 소도 보이지 않는다
20. 夜雪 야설 밤 눈
踏雪夜中去 답설야중거 눈을 밟으며 들길을 갈 때에는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마라
今日我行蹟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후세들에게 이정표가 될 것이니
21. 悟道頌 오도송
髮白非心白 발백비심백 머리는 세어도 마음은 안 센다고
古人曾漏洩 고인증루설 옛사람 일찍이 말했던가
今聞一聲鷄 금문일성계 이제 닭 우는 소리 듣고
丈夫能事畢 장부능사필 장부의 큰 일 능히 마쳤네
忽得自家處 홀득자가처 홀연히 본 고향을 깨달아 얻으니
頭頭只此爾 두두지차이 모든 것이 다만 이렇고 이렇도다
萬千金寶藏 만천금보장 수많은 보배와 같은 대장경도
元是一空紙 원시일공지 원래 하나의 빈 종이로다
22. 禪詩 선시
深院花紅雨 심원화홍우 깊은 산속 암자, 붉은 꽃 비처럼 흩날리는데
長林竹翠烟 장림죽취연 긴 대나무 숲속, 푸른 안개 흩어지네
白雲凝嶺宿 백운응령숙 흰 구름은 산 고개에 엉기어 잠을 자고
靑鶴伴僧眠 청학반승면 푸른 학은 스님 벗삼아 졸고 있네
23. 讚佛 찬불
觀他也不妄 관타야불망 남이 보는 것도 허망함이 아니요
覺自亦無生 각자역무생 나를 깨닫는 것도 역시 無生이로다
出世訶何事 출세가하사 출세하여 무엇을 노래하랴
人人本太平 인인본태평 사람마다 본래가 태평한 것을
24. 過古寺 과고사 옛 절을 지나며
花落僧長閉 화락승장폐 꽃 지는 옛 절문 오래 닫혔고
春尋客不歸 춘심객부귀 봄 따라온 나그네 돌아갈 줄 모른다
風搖巢鶴影 풍요소학영 바람은 둥우리의 학 그림자 흔들고
雲濕坐禪依 운습좌선의 구름은 앉은 중의 옷깃 적신다
25. 古意 고의 옛뜻
風定花猶落 풍정화유락 바람은 자건만 꽃은 오히려 떨어지고
鳥鳴山更幽 조명산갱유 새가 우니 산은 더욱 그윽하네
天共白雲曉 천공백운효 하늘은 흰 구름과 함께 밝아 오는데
水和明月流 수화명월류 물은 밝은 달과 어울려 흘러만 가네\
26. 偈頌詩 게송시
生也一片浮雲起 생야일편부운기 태어남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생겨나는 것과 같고
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멸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소멸되는 것과 같도다
浮雲自體本無實 부운자체본무실 뜬구름은 그 자체가 본래부터 실체가 없는 것이니
生死去來亦如然 생사거래역여연 나고 죽고 가고 오고 하는 것 또한 이와 같도다
27. 春日詠懷 춘일영회 봄날에
東風昨夜至 동풍작야지 東風 불어오는 어제 밤에
病客來山中 병객래산중 병든 나그네 산사를 찾았네
林鳥已新語 임조이신어 숲에는 새들이 재잘거리고
野花?欲紅 야생장욕홍 야생화는 이제 막 붉은 꽃 봉우리를 터뜨리네
人間郭郞巧 인간곽랑교 인간은 郭郞의 꼭두각시 노름이요
世事浮雲空 세사부운공 세상사는 뜬구름 같은 것이네
臨濟一聲喝 임제일성갈 임제 선사의 외치는 한 소리
直開千日聾 직개천일성 천 일 동안 먹었던 귀가 번쩍 열리네
28. 過邸舍聞琴 과저사문금 거문고 소리 들리는 주막집 지나며
白雪亂織手 백설난직수 눈인 듯 고운 손 어즈러이 움직이니
曲終情未終 곡종정미종 가락은 끝났으나 情은 남았네
秋江開鏡色 추강개경색 가을江 거울빛 열어서
畵出數靑峯 화출수청봉 푸른 봉우리 두엇 그려낸다
29. 積石寺 柱聯 적석사 주련
見聞覺知無障礙 견문각지무장애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데 장애가 없고
聲香味觸常三昧 성향미촉상삼매 소리, 향, 맛, 촉각이 언제나 그대로 삼매로다
如鳥飛空只마飛 여조비공지마비 마치 하늘을 나는 새가 그냥 날아갈 뿐
無取無捨無憎愛 무취무사무증애 취함도 버림도 없고 미움과 사랑도 없어라
若會應處本無心 약회응처본무심 만약 대하는곳마다 본래 무심임을 안다면
方得名爲觀自在 방득명위관자재 비로소 이름하여 관자재라 하리라
30. 覺行大師 각행대사
雲房高臥遠塵紛 운방고와원진분 선방에 높이 누워 세상 티끌을 멀리떠나
只愛松風不閉門 지애송풍불폐문 단지 솔바람 좋아서 禪房門을 열어 놓았네
一柄寒霜三尺劍 일병한상삼척검 서릿발 같은 三尺劍으로
爲人提起斬精魂 위인제기참정혼 마음 속의 精靈 모두 잘랐네
僧兼山水三知己 승겸산수삼지기 스님과 산 그리고 물은 진정한 세 친구
鶴與雲松一世間 학여운송일세간 학과 더불어 구름?소나무와 지내는 세계
虛寂本心如不識 허적본심여부식 텅 비고 고요한 본래 마음을 얻지 못하면
此生安得此身閑 차생안득차신한 이 생에 어찌 이 몸이 한가함 얻으랴
31. 金剛山彌勒峯偶吟 금강산미륵봉우음 금강산 미륵봉에서
坐斷諸人不斷頂 좌단제인불단정 만인이 못 끊는 분별심을 앉아서 끊으니
許多生滅竟安歸 허다생멸경안귀 하고 많은 생멸이 마침내 어디로 갔는가
飛塵鎖隙安禪久 비진쇄극안선구 참선이 익으니 나는 티끌이 틈을 막았고
碧草連階出院稀 벽초연계출원희 외출이 드무니 푸른 풀이 층계까지 이어졌네
天地豈能籠大用 천지기능롱대용 천지가 어찌 대용을 가두겠는가
鬼神無處覓玄機 귀신무처멱현기 귀신도 현기를 찾을 곳이 없네
誰知一衲千瘡裏 수지일납천창리 뉘라서 알 거요, 헤진 누더기 속에
三足金烏半夜飛 삼족금오반야비 세 발의 금까마귀가 밤중에 나는 줄을
32. 示碧泉禪子 시벽천선자 벽천선자에게
閃電光中坐 섬전광중좌 번쩍이는 번갯빛 속에 앉아
對人能殺活 대인능살활 사람을 대하면 능히 죽이고 살리네
無頭無尾棒 무두무미봉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는 몸둥이로
打破虛空骨 타파허공골 허공의 뼈를 쳐서 깨뜨린다.
十年呑栗棘 십년탄률극 십 년을 밤송이를 삼키며 수행했건만
猶是野狐精 유시야호정 아직도 참선이 그릇된 야호정 일세
若欲敵生死 약욕적생사 만약 생사의 이치를 깨달으려면
寒灰爆一聲 한재폭일성 불꺼져 차디찬 잿 속에서 임제의 할을 들어라.
莫要會佛法 막요회불법 불법을 깨닫으려 하지 말고
大臥三條椽 대와삼조연 세 서까래 위에 크게 누우라
道人宜痴鈍 도인의치둔 도 닦는 수행자는 마땅히 어리석고 둔해야 하나니
令我憶南泉 령아억남천 나는 南泉선사를 생각한다
栗= 밤나무. 野狐精= 들 여우의 넋. 會= 깨닫다. 宜= 마땅이.
33. 三夢詞 삼몽사 삼몽사
主人夢說客 주인몽설객 주인은 나그네에게 꿈 이야기하고
客夢說主人 객몽설주인 나그네도 주인에게 꿈 이야기하네
今說二夢客 금설이몽객 지금 꿈 이야기하는 두 나그네
亦是夢中人 역시몽중인 역시 또한 꿈 속의 사람이라네
34. 贈牧庵 증목암 목암에게
吹笛騎牛子 취적기우자 송아지 등에 타고 피리 불면서
東西任意歸 동서임의귀 동서를 마음대로 다니는구나
靑原烟雨裏 청원연우리 푸른 들, 안개 낀 비 오는 속에서
費盡幾蓑衣 비진기사의 도롱이는 몇 벌이나 헤어졌던가
35. 臨終偈 임종게 (입적하며 깨달음을 후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글)
千計萬思量 천계만사량 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일랑
紅爐一點雪 홍로일점설 붉은 화로 위에 한 점 눈송이로다
泥牛水上行 니우수상행 진흙 소가 물 위로 걸어가는데
大地虛空裂 대지허공렬 대지와 허공이 찢어지더라
36. 花雨 화우 꽃비
白雲前後嶺 백운전후령 앞뒤 산봉우리엔 흰 구름 떠 있고
明月東西溪 명월동서계 동서로 흐르는 시내엔 밝은 달 떠있네
僧坐落花雨 승좌낙화우 스님 앉은 곳에, 꽃 비 떨어지고
客眠山鳥啼 객면산조제 客이 잠드니, 산새가 운다
■ 선가귀감(禪家龜鑑) - 청허당 백화도인 서(序)
고지학불자(古之學佛者)는 비불지언(非佛之言)이면, 불언(不言)하고,
비불지행(非佛之行)이면 불행야(不行也)라.
예전에 불교(佛敎)를 배우는 이들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아니하였고,
부처님의 행실(行實)이 아니면 행(行)하지 아니 하였도다.
고(故)로 소보자(所寶者)가 유패엽령문이이(惟貝葉靈文而已)러니
그러므로 보배로 여기는 것은 오직 불경(佛經)의 거룩한 글 뿐이었도다.
패엽경(貝葉經): 나무 잎사귀에 바늘이나 송곳 따위로 새긴 불경
금지(今之) 학불자(學佛者)는 전이송칙(傳而誦則) 사대부지구(士大夫之句)요,
걸이지즉(乞而持則) 사대부지시(士大夫之詩)라.
그러나 오늘날 부처님의 가르침(佛敎)를 배우는 이들은 전해가며 외우는 것은
사대부(士大夫)의 글이요, 빌어 지니는 것은 사대부(士大夫)의 시(詩)뿐이로다.
지어홍록(至於紅綠)으로 색기지(色其紙)하고 미금(美錦)으로 장기(粧其)하여,
다다부족(多多不足)으로 이위지보(以爲至寶)하니라.
그것을 울긋불긋한 종이에 쓰고, 고운 비단(緋緞)으로 치장하여,
아무리 많을 지라도 족한 줄을 모르고, 지극(至極)한 보배로 삼는 도다.
하고(何故) 금학불자지부동보야(今學佛者之不同寶也)여
어떤 까닭으로 오늘날 부처님의 가르침(佛敎)을 배우는 이들이
보배로 삼는 것이 이다지도 같지 않은 것인가.
여수불초(余雖不肖)나 유지어고지학(有志於古之學)하야
이패엽령문(以貝葉靈文)으로 위보야(爲寶也)라
내가 비록 불초(不肖)하지만, 옛 글에 뜻을 두고 배웠나니,
불경(佛經)의 거룩하고 신령한 글로 보배를 삼으려 하는 도다.
연(然)이나 기문(其文)이 상번(尙繁)하고, 장해왕양(藏海汪洋)하야
후지동지자(後之同志者)가 파부면적(頗不免摘) 엽지로고(葉之勞故)로
그렇지만, 그 문장이 항상 번다(煩多)하고, 대장경(大藏經)의 바다가 넓어서
뒷날 뜻 있는 도반(道伴)들이 가지를 헤쳐가며 잎을 따는 수고로움을 면치 못할까 하는 까닭으로,
문중(文中)에 촬기요차절자(撮其要且切者)
수백어(數百語)하야 서우일지(書于一紙)하니
가위문간이의주야(可謂文簡而義周也)라
문장(文章) 가운데 가장 요긴(要緊)하고 절실(切實)한 것 중에서
수백(數百)의 말씀을 가리고 간추려서 한 장에 쓰나니,
글은 비록 간략(簡略)하지만, 뜻은 주밀(綢密)하다 할 만하다 하리라.
여이차어(如以此語)로 이위엄사(以爲嚴師)하야
이연궁득묘칙구구(而硏窮得妙則句句)에
활석가존언(活釋迦存焉)이시니 면호재(勉乎哉)인저
이러한 말씀으로 엄정한 스승을 삼아
연찬(硏鑽)하고 궁구(窮究)하여, 묘리(妙理)를 얻는 다면 구절(句節) 구절마다
살아 계시는 석가여래(釋迦如來) 부처님께서 나타나실 것이나니, 부디 힘쓸지로다.
수연(雖然)이나 이문자일구(離文字一句)와 격외기보(格外奇寶)는
비불용야(非不用也)나 차장이대별기야(且將以待別機也)하노라.
그렇지만, 글자를 떠난 한 글귀와 격(格)에 벗어난 기묘(奇妙)한 보배를
쓰지 않으려 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장차 특별한 기틀을 기다리고자 하는 도다.
갑자(甲子) 하(夏) 청허당(淸虛堂) 백화도인(白華道人) 서(序)
갑자년(1564) 여름 청허당 백화도인 서
■ 己丑橫罹逆獄 (기축횡리역옥) 外
-수헌- 2023. 2. 9. 15:16
己丑年(기축년;1589년, 선조22)에 정여립(鄭汝立)이 왕위에 오른다는 역모(逆謀)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역모에 가담한 무업(無業)이라는 요승이
서산대사(西山大師)와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자신과 함께 역모에 가담하였다고 주장하여
강릉부에 투옥되었다가 강릉부 선비들의 상소로 풀려난 사건이 있었다.
이때 사명대사가 강릉부에서 석방되고 지은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己丑橫罹逆獄 기축횡리역옥 - 四溟大師 -
기축년 뜻밖의 재앙으로 옥에 갇히다
娥媚山頂鹿(아연산정록) 아미산 위에 살던 사슴이
擒下就轅門(금하취원문) 사로 잡혀 원문에 내려왔네
解綱放還去(해강방환거) 그물이 풀려 놓여 돌아오니
千山萬樹雲(천산만수운) 천산만수에 구름이 끼었네
※橫罹(횡리) : 뜻밖의 재앙을 당하다.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역모에 연루된 것은 향로봉에 올라가 지은 다음의 시 때문이었다.
登香爐峯 등향로봉 - 西山大師 -
향로봉에 올라
萬國都城如蟻蛭(만국도성여의질) 온 나라의 도성은 개미의 둑과 같고
千家豪傑等醯鷄(천가호걸등혜계) 천가의 호걸들은 초파리와 같구나
一窓明月清虛枕(일창명월청허침) 창밖의 밝은 달이 청허의 베개에 비치고
無限松風韻不齊(무한송풍운불제) 끝없이 부는 솔바람은 운이 고르지 않네
그런데 사명대사(四溟大師)의 강릉부에 잡혀서 내려가며 [檎下江陵]라는 시를 보면,
서산대사(西山大師)가 향로봉에서 지은 위의 시를 사명대사도 가지고 있었는데,
요승 무업(無業)이 사명대사를 찾아와서 사명대사를 속이고 이 시를 베껴 가서
서산대사를 정여립(鄭汝立)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었다고 무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檎下江陵 금하강릉 - 四溟大師 -
강릉부에 잡혀서 내려가며
一入煙霞多歲月(일입연하다세월) 안개와 노을 속에 많은 세월 살았지만
不知今歲是何年(부지금세시하년) 올해는 어찌 된 해인지 알 수가 없구나
僧來請寫勸文去(승래청사권문거) 중이 와서 권선문 베껴 가기를 원하니
誰料人間有異緣(수료인간유이연) 누가 인연이 다른 인간인 줄 알았으랴
■ 서산대사 임진왜란 격문
아, 하늘의 길이 막히도다.
조국의 운명이 위태롭도다.
극악무도한 도적의 무리가 하늘의 이치를 거슬러 함선 수 천 척으로 바다를 건너오니
그 독기가 조선 천지에 가득한지라. 삼경(三京)이 함락되고
우리 선조들이 누천 년 이룬 바가 산산이 무너지도다.
저 바다의 악귀들이 우리 조국을 무참히 짓밟고 무고한 백성들을 학살하는 광란을 벌이나니
이 어찌 사람의 할 짓이랴? 살기가 서린 저 악귀들은 독사 금수와 다를 바 없도다.
조선의 승병들이여! 깃발을 치켜들고 일어서시오!
그대들 어느 누가 이 땅에서 삶을 이어받지 아니 하였소?
그대들 어느 누가 선조들의 피를 이어받지 아니하였소?
의(義)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바,
또 무릇 중생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는 바가 곧 보살이 할 바요 나아갈 길이라.
일찍이 원광법사(圓光法師)께서 임전무퇴(臨戰無退)라 이르시니,
무릇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구함은 불법을 따른 우리 조상들이 대대손손 받들어 온 전통이오.
조선의 승병들이여!
우리 백성이 살아남을지 아니할지,
우리 조국이 남아있을지 아니할지,
그 모두가 이 싸움에 달려 있소.
목숨을 걸고 우리 조국과 백성을 지키는 일은
단군의 피가 핏줄에 흐르는 한 누구나 마땅히 해야 할 바라.
이 땅의 나무와 풀마저 일어나 싸워야 할 터,
하물며 붉은 피를 지닌 이 땅의 백성이야 새삼 무슨 말을 하리오?
또한 세상을 구하는 것이 바로 불법(佛法)이 아니리까?
백성들이 도적 무리의 창칼에 죽임을 당하고 그 피가 붉게 조국을 적시오.
조국이 사라지고 백성이 괴로워할진대,
그대들이 살아남은 바가 곧 조국과 백성에 대한 배신이 아니리까?
조선팔도의 승병들이여!
나이가 들고 쇠약한 승려는 사찰을 지키며 구국제민(救國濟民)을 기원하게 하시오!
몸이 성한 그대들은 무기를 들어 도적의 무리를 물리치고 조국을 구하시오.
모든 보살의 가피력으로 무장하시오!
도적의 무리를 쓰러뜨릴 보검(寶劍)을 손아귀에 움켜쥐시오!
팔부신장(八部神將)의 번뜩이는 천둥번개를 후려치며 나아가시오!
참변에 울부짖는 백성들이 분하고 원통하오. 촌각도 머뭇거릴 수 없소.
지체 없이 일어나 불구대천의 원수를 토벌 격멸하시오!
조선의 승병들이여!
조정 대신들은 당쟁 속에 헤매고 군 지휘관들은 전선에서 도주하니 이 아니 슬프오?
또한 다른 나라 세력을 불러들여 살아날 길을 꾀한다 하니, 우리 민족의 치욕이 아니리까?
이제 우리 승병만이 조국을 구하고 백성을 살릴 수 있소.
그대들이 밤낮없이 수행 정진하는 바가 생사(生死)를 초월하자 함이오.
또한 그대들에겐 거둬야 할 식솔(食率)이 없으니 돌아볼 바 무엇이오?
모든 불보살이 그대들의 나아갈 길을 보살피고 거들지니, 분연히 일어서시오!
용맹의연하게 전장(戰場)으로 나아가 도적의 무리를 궤멸하시오!
도적 무리의 창검포화가 두려울 바 무엇이오?
전투가 없이는 승리도 없소. 죽음이 없이는 삶도 없소.
조선팔도의 승병들이여!
일어서시오!
순안(順安)의 법흥사(法興寺)로 집결하시오!
나 휴정은 거기서 그대들을 기다릴 터이오.
우리 일치단결하여 결전의 싸움터로 용약 진군합시다!
■ 서산대사의 입적하기 전에 쓴 해탈의 詩
근심 걱정 없는 사람 누군고.
출세 하기 싫은 사람 누군고.
시기 질투 없는 사람 누군고.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를 가졌다 기죽지 말고
못 배웠다 주눅 들지 마소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외다.
가진 것 많다 유세 떨지 말고,
건강하다 큰소리 치지말고
명예 얻었다 목에 힘주지 마소.
잠시 잠간 다니러 온 이 세상,
있고 없음을 편 가르지 말고,
잘나고 못남을 평가 하지 말고,
얼기설기 어우러져 살다나 가세.
다 바람같은 거라오 뭘 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 순간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 바람이고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오.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돈다오.
버릴 것은 버려야지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하리요.
줄게 있으면 줘야지. 가지고 있으면 뭐 하노.
삶도 내 것이라고 하지마소.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 뿐인데
묶어 둔다고 그냥 있겠오.
흐르는 세월 붙잡는다고 아니 가겠소.
그저 부질없는 욕심 일 뿐,
삶에 억눌려 허리 한번 못 피고
인생 계급장 이마에 붙이고 뭐 그리 잘났다고
남의 것 탐 내시요.
훤한 대낮이 있으면 까만 밤하늘도 있지 않소.
낮과 밤이 바뀐다고 뭐 다른게 있소.
살다보면 기쁜일도 슬픈일도 있다만은,
잠시 대역 연기 하는 것일 뿐,
슬픈표정 짓는다 하여 뭐 달라지는게 있소.
기쁜표정 짓는다 하여 모든게 기쁜 것만은 아니요.
내 인생 네 인생 뭐 별거랍니까.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고 불다 보면
멈추기도 하지 않소.
그렇게 사는겁니다.
삶이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남이오
죽음이란 한 조각구름이 스러짐이다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단원 김홍도 금강사군첩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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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作 《금강사군첩(金剛四群帖)》 중 [武陵溪]
단원 김홍도 作 《금강사군첩(金剛四群帖)》 중 [淸心臺]
겸재 정선 作 장안연우(長安煙雨)
겸재 정선 作 한양도성전도(漢陽都城全圖)
[묘향산의 초가을 김광은 그림]
명상 음악 / 티베트 플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