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 김동명 / 시집『하늘』, 1948 -
밤은
푸른 안개에 싸인 호수
나는
잠의 쪽배를 타고 꿈을 낚는 어부다.
내 마음은
- 김동명 / 『조광』, 1937. 6 -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玉)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촉(燭)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落葉)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리다
심사정 [파초와 잠자리]
파초(芭蕉)
- 김동명 / <월광>(1936) -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南國)을 향한 불타는 향수(鄕愁),
너의 넋은 수녀(修女)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강릉 김동명 생가 앞 마당의 파초
* 김동명(金東鳴, 1910-1966)
1910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21년 함흥 영생학교 졸업, 일본 청산학원 신학과 졸업, 흥남 동진소학교, 평남 강서소학교 교원
1923년 『개벽』에서 시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 주시면」 등을 발표하여 등단
1945년 함흥 서호중학교 교장 역임
1947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역임
1960년 초대 참의원 의원
1966년 사망
내 마음은 / 소프라노 신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