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역사의 뒤안길

신석정논문4) 신석정 초기시의 근대적 자연미와 공동체 의식   / 김옥성

이름없는풀뿌리 2023. 10. 22. 08:36
■ 저항적 목가시인 신석정(辛夕汀)에 관한 논문 5편 □ 신석정논문1) 신석정 초기 시편에서 본 참여의식과 저항의식 / 하재준 □ 신석정논문2) 어머니,산(山),대바람소리 ―신석정(辛夕汀)론 / 윤여탁 □ 신석정논문3) 신석정 시에서의 근대성과 노장적 자연인식 / 송기한 □ 신석정논문4) 신석정 초기시의 근대적 자연미와 공동체 의식 / 김옥성 -‘지구’ 이미지를 중심으로 □ 신석정논문5) 1930년대 시에 나타난 ‘지도’ 표상과 세계의 상상 ― 정지용, 임화, 김기림, 신석정의 시를 중심으로 / 강호정 □ 신석정논문4) 신석정 초기시의 근대적 자연미와 공동체 의식 -‘지구’ 이미지를 중심으로 김옥성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현대시 전공, hywriter@dankook.ac.kr Ⅰ. 머리말 Ⅱ. 근대적 자연미와 과학적 세계관 Ⅲ. 공동체 의식과 지배체제 비판 Ⅳ. ‘지구’의 복합적 의미 Ⅴ. 시사적 의의 Ⅰ. 머리말 신석정은 생애의 대부분을 향리 일대에서 보내며 작품활동을 했지만, ‘지역’ 문인 정도로 치부되지 않고 우리 시사에서 상당히 비중 있는 시인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도 1924년《조선일보》에 작품발 표를 시작한 이래 1974년 타계할 때까지 오랜 시간 동안 독창적이고 일관적인 작품활동으로 일가를 이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몸은 비록 향리에 머물렀지만, 주류 문단과 긴밀한 관계를 맺 으면서 시작활동을 전개한 이유도 있다. 그의 초기시의 경우도 전통과 근대를 아우르는 일제 강점기 문학장 속에서 생성되었다.1) 신석정은 다양한 문학사조의 자장에서 개성적인 사유와 상상의 영토를 일구어낸 시인이라 하겠다. 신석정 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논점은 ‘자연’과 ‘현실’의 두 가지이다. 신석정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자연시인’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한편으로는 신석정이 ‘자연’으로 도피한 시인이 아니 라 ‘현실’에도 관심을 두었던 시인이라는 평가가 이루어졌다. ‘현실’도 물론 큰 비중을 차지하지 만, 신석정 시의 본령은 단연 ‘자연’이다. 한국현대시사에서 신석정만큼 끈기 있게 ‘자연’을 천 착한 시인도 드물기 때문에, 그는 ‘자연시인’, ‘목가시인’, ‘전원시인’ 등으로 회자된다. 1) 서정주는 신석정을 중앙불전의 박한영 계열 문인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서정주, <내 뼈를 덥혀준 석전 스님>, 󰡔미당 자서전󰡕 2, 민음사, 1994, 26쪽). 실제로 신석정은 중앙불전 시기(1930‒1931)의 교우관계를 매우 중요시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였 다. 주지하다시피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중앙불전 계열의 문인들(김동리, 서정주, 조지훈, 김달진 등) 은 우리 시사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뿐만 아니라 시문학파의 일원(1931‒ )으로서 인맥이나 명 성도 그의 시작 활동에 큰 뒷받침이 되어주었다. 문단적 배경은 작품 경향과 직결되어 있다. 그의 시 에는 중앙불전 계열의 문인들이 추구하는 동양주의적 경향이나 시문학파가 추구하는 근대적 미의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전기적인 자료들을 살펴보면 신석정이 이병기·서정주 등의 전통주의 계열 시 인들은 물론, 김억·정지용·김기림 등 모더니즘 계열 시인들과도 정신적으로 긴밀한 유대를 형성하 였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부안으로 낙향하려고 하자 김기림이 만류하였다는 기록, 그리고 프로 문학 진영의 공격에 대하여 김억이 신석정에서 격려의 편지를 보냈다는 기록 등이 있다. 신석정은 비 록 변방에서 활동하였지만, 일류 시인들과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것이다. 신석정의 교우관계나 문단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자전적 기록으로는 다음이 있다. 신석정, <목가시인의 슬픈구도>, 󰡔신석정 전집󰡕 4(국학자료원, 2009); 신석정, <나의교우록>, 󰡔신석정 전집󰡕 4(국학자료원, 2009); 신석정, <나의 문학적 자서전>, 󰡔신석정 전집󰡕 5(국학자료원, 2009), 398쪽. 시인의 산문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도 위험하지만, 맹목적인 불신도 그에 못지않게 위험할 수 있다. 이 글은 사후 자기 미화나 합리화, 그리고 굴절의 가능성을 고려하면서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 산 문의 진술을 작품 분석에 활용한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는 그러한 명성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그의 대표작이다. 세간의 명성에 걸 맞게 신석정 시의 자연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그리고 집중적으로 이루어져왔다. ‘자연’의 관점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현실’의 관점에서도 상당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그 기원은 김 기림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기림은 정지용과 비교하여 신석정 시의 자연이 갖는 비판적 측면을 지적한다. 정지용이 “현대문 명, 그 속에서 그 주위와 자아의 내부에 향하여 특이하고 세련된 시안(詩眼)”을 돌린다면, 신석정은 현대문명 외부의 “목신이 조는 듯한 세계”에 눈을 돌려 “현대문명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2) 일제 강점기 시에 대하여 오택근은 ‘밤’이 갖는 상징성에 주목하여 저항적 성격을 밝혔으며3), 최 명표는 경어체에서 평서체로의 변화를 중심으로 신석정 시의 저항 의식을 조명하였다.4) 이처럼 초기 시의 현실 인식에 대한 논의도 꾸준히 이루어졌지만, 신석정의 역사의식과 현실 인식은 초기시보다는 주로 광복 이후 시를 대상으로 심층적으로 조명되었다. 일찍이 박두진은 광복 후 시집 󰡔산의 서곡󰡕에 나타난 참여적 성격을 언급하였으며5), 최근의 연구들은 광복 이후 시의 역사의식과 현실 인식을 다 각적으로 보여주었다.6) 2) 김기림, <1933년 시단의 회고>, 󰡔김기림 전집󰡕 2, 59쪽(《조선일보》, 1933년 12월7일–12월 13일자). 3) 신석정 초기시에서 밤은 평화와 안식의 시간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고, 시대적 어둠을 상징하는 경 우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신석정의 전반기 작품에 나타난 밤의 의미」, 󰡔시문학󰡕 통권 116·117(1981); 오택근, 「신석정의 저항의식」, 󰡔생수󰡕 5(대한신학교, 1987). 4) 최명표, 「신석정 시의 수사적 책략」, 󰡔국어문학󰡕 47(국어문학회, 2009). 5) 박두진, 「신석정의 시」, 󰡔현대문학󰡕(1968. 1). 6) 국효문, 「신석정 시에 나타난 현실 인식과 역사의식 연구 ‒ 시집 󰡔빙하󰡕를 중심으로」, 󰡔비평문학󰡕 25(한국비평문학회, 2007); 강희안, 「신석정 후기시의 시간 의식과 현실인식」, 󰡔비평문학󰡕 40(한국비평문학회, 2011). 이제 신석정 시에서 역사와 현실이 갖는 중요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굳어졌다. 우리 시 사에서 신석정 시의 자연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1920년대 김소월, 1940년대 청록파 사이에 놓인 문제적인 자연이다. 문학사적 연속성과 새로움의 측면에서 여전히 해명되어야 할 논점들 이 남아 있다. 또한 현실 인식의 관점에서 신석정 시는 아직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였다. ‘자연’의 중요성에 가려져 ‘현실’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광복 이후 시에 비 하여 초기시의 ‘현실’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는 많지 않다. 이 글은 다음 두 가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첫째, 신석정 초기시의‘자연’의 시사적 의의는 무엇 인가를 구명하고자 한다. 초기시의 ‘자연’이 갖는 새로움과 당대 문학장과의 연속성을 조명하고 그 시사적 의의를 고찰할 것이다. 둘째, 자연과 현실 인식은 어떠한 관계로 맞물려 있는가에 대해 살피 고자 한다. ‘자연’과 ‘현실’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논의되면서, 유기적인 논의의 진전이 이루어 지지 않은 면이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초기시의 자연 이미지가 어떠한 방식으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반영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개선 의지를 드러내는지 조명하고자 한다. 이 글은 논의를 예각화하기 위하여 ‘지구’ 이미지를 중심으로 신석정 초기시에 나타난 미학적 차원 의 자연미와 현실 인식 차원의 공동체 의식을 고찰하고자 한다. ‘지구’ 이미지는 신석정 초기시에 서 가장 중요한 이미지 중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였다.7) 본론에서 자세히 논 의하겠지만 ‘지구’ 이미지에는 ‘자연’과 ‘현실’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문학사적 차원에서 ‘지구’의 이미지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과학과 근대적 세계관에 뿌리내 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행성 중 하나로서 ‘지구’의 이미지는 과학 혁명과 근대적 세계관 의 탄생과 직결된다. 코페르니쿠스의 영향은 천문학에만 그친 것이 아니다. 중세의 우주관과 그것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은 밑둥부터 무너지게 되었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은 그 위에 사는 가 장 존엄한 존재였는데, 이제 인간은 여러 행성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작은 별에 거꾸로 매달려 돌아가 는 존재임이 드러났다. 인간은 우주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야 했으며, 부질없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이렇게 해서 중세체제는 차츰 깨어지고 근대로 넘어오게 되었으니, 코페르니쿠스야말 로 이 변화의 첫 신호를 올린 사람이었던 것이다.8) 7) 기존에 ‘몹쓸 지구’, ‘앓는 지구’ 등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구’의 심층 적이고 복합적인 의미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구’ 이미지와 관련된 언급은 다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하근, 「신석정론」, 󰡔전북현대문학·상󰡕(신아출판사, 2010); 박태건, 「신석정 문학의 탈식민성 연구」, 원광대학교 박사학위논문(2008). 8) 김영식 외, 󰡔과학사󰡕(전파과학사, 1995), 71쪽.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의 핵심은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 구의 발견은 신과 세계로부터 독립된 ‘인간’의 ‘발견’이며, 관찰과 행동의 주체로서 ‘인간’의 ‘발견’과 맞물려 있다. 그리고 미학적인 차원에서 ‘지구’와 ‘인간’의 ‘발견’은 코기토의 초 월적‒원근법적 시선의 탄생과 연결된다.9) 원근법적 시선에 의하여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고, 주체는 초월적인 시선의 권능을 확보한다. 우리 시사에서 모더니즘의 시대로 알려진 1930년대에는 원근법적 시선에 의한 이미지의 형상화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다. 가령, 정지용이나 이상의 모더니즘에서 주체 와 객체가 원근법적으로 분리되고, 주체는 초월적인 위상을 확보한다.10) 한편 1920‒1930년대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사회주의 운동, 경제대공황,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팽창 등을 겪으면서 지구‒세계 공동체의 운명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시기이다. 임화는 사회주의를 경 험하면서 이미 1920년대부터 지구 ‒세계 공동체 의식을 보여주었다.11) 5장에서 살펴보겠지만, 김기 림은 장시 󰡔기상도󰡕를 비롯하여 여러 시편에서 지구‒세계 공동체의 운명에 대한 예언자적 사유를 보 여준다. 이러한 일제 강점기 문학장의 맥락을 염두에 두고 이 글에서는 신석정‘초기시’12)의 ‘지 구’ 이미지에 투영된 근대적 자연미와 공동체 의식을 탐구하고 그 시사적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9) 원근법적 시선과 근대성(현대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현대성의 시각 체제는 원 근법이라는 합리화된 시각 양식이 지배하는 시각장이며, 이 시각 양식에 의해 규정되는 주체는 데카 르트의 코기토와 마찬가지로 시각의 장에서 자기 의지적이며 대상 세계와 거리를 둔 채 통제력을 행 사하는(또는 그렇다고 믿게 되는) 세계의 중심이고 초월적인 주체이다.” 주은우, 󰡔시각과 현대성󰡕(한나래, 2005), 25쪽. 10) 정지용 시의 원근법적 시선과 관련된 논문으로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남기혁, 「정지용 초기시의 ‘보는’ 주체와 시선의 문제」, 󰡔한국현대문학연구󰡕 26(한국현대문학회, 2008); 이광호, 「정지용 시에 나타난 시선 주체의 형성과 변이」, 󰡔어문논집󰡕 64(민족어문학회, 2011). 11) 지구‒세계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드러난 임화의 작품으로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지구와 ‘빡테리아’>, 󰡔조선지광󰡕(1927. 8); <탱크의 출발>, 󰡔프롤레타리아 예술󰡕(1927. 10); <담(曇)‒1927‒‘사코’·‘반제티’의 命日에>, 󰡔예술운동󰡕 1(1927. 11). 12) 이 글에서 ‘초기시’는 󰡔촛불󰡕(1939)과 󰡔슬픈 목가󰡕(1947)를 의미한다. 󰡔슬픈 목가󰡕는 비록 광 복 후에 출간되었지만, 수록된 작품 대부분이 일제 강점기에 씌어졌다는 점에서 󰡔촛불󰡕과 함께 초기 시로 묶을 수 있다. Ⅱ. 근대적 자연미와 과학적 세계관 신석정이 초기시에서 심혈을 기울인 분야는 근대적 자연미의 창출이었다. 그의 초기시에 나타난 자연 미는 전통 시가의 화조풍월(花鳥風月)과는 다른 근대적인 자연미이다. 신석정의 차별화 전략은 크게 서구적인 자연 이미지의 수용과 과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자연의 객관화(타자화)라는 두 가지로 정리 해볼 수 있다. 먼저, 서구적인 자연 이미지의 수용은 이미 몇 차례 논의되었다. 김기림은 신석정을 “목신이 조는 듯한 세계”를 노래한 시인으로 평가하면서도,“그가 꿈꾸는 시의 세계는 전연 개성적인 것”이며 “‘녹색침대’, ‘공상의 새 새끼’ 등 그가 쓰는 ‘이미지’(영상)는 전연 독창적인 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평한다. 김기림은 신석정이 자연 지향적인 시인이지만 전통 시가와는 ‘다른’ “전연 독 창적인” 자연미를 보여준 시인이라는 점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13) 이후 정태용은, 신석정 초기시의 자연은 “서구 낭만시가 이식된 것”으로 규정한다.14) 자연의 ‘새 로움’을 예리하게 포착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서구 낭만시의 이식’으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연 이미지의 ‘친숙함’과 ‘새로움’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호미 바바 의 논의에 비추어볼 수 있다. 바바는 피식민자의 문화를 모방과 혼성성으로 설명한다. 모방이란 “피 식민자가 식민자의 문명을 받아들여 흉내 내는 것”인데, “모방의 반복은 서구의 이식이 아니라 서 구문명과 ‘교섭’하는 ‘혼성성’의 과정으로”나타나며, “그 교섭과 혼성화의 과정이 피식민자의 문화의 위치”이다.15) 13) 김기림, <1933년 시단의 회고>, 앞의 책. 14) 이러한 규정은 이후 여러 연구자에 의해 답습된다. 정태용, 「신석정론」, 󰡔현대문학󰡕(1967. 3). 15) 그리고 바바는 “그런 역동성 속에 저항의 계기가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Homi K. Bhabha 저, 나병철 역, 󰡔문화의 위치󰡕, 소명출판, 2003, 17쪽). 신석정 시학과 호미 바바 사이에는 부인할 수 없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호미 바바의 탈식민주의가 신석정 시학의 감추어진 의미를 유추하는 데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초기시의 자연미는 피식민 주체의 혼종적 미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신석정은 스스 로 동서를 아우르는 다양한 독서 체험을 밝히고 있다. 문학적 자전에 따르면 그는 ‘한용운, 김억, 주요한, 타고르, 하이네, 카펜터, 소로, 괴테, 셰익스피어,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등을 열정적으로 탐독하였다.16) 초기시의 근대적 자연미는 독서 체험을 통해 조선적인 것과 이국적인 것이 뒤섞인 혼 종적인 이미지로 형상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신석정이 형상화한 근대적인 자연미는 어떠한 것인가.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야장미(野薔薇) 열매 붉어 ― 신석정,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신석정 전집󰡕 1, 47‒48쪽(󰡔삼천리󰡕4‒6, 1932. 5) “그 먼 나라”는 근대적인 파라다이스적 자연이다. 신화 속의 파라다이스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으로 에워싸여 있다. 특히 나무와 꽃은 “청청하고 풍성하며 화려한 빛을” 띠고 있으며, “인간은 동물과 조화를 이루어”살아간다.17) 16) 신석정의 독서 체험과 문학적 영향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산문을 참고할 수 있다. 신석 정, <목가시인의 슬픈 구도>, 앞의 책; 신석정, <나의 문학적 자서전>, 앞의 책. 17) Richard Harris 저, 손덕수 역, 󰡔파라다이스󰡕(중명, 1999), 150‒151쪽. 그런데 신석정이 형상화하는 근대적인 자연 이미지는 “깊은 삼림대”, “고요한 호수” 등으로 구성된다. “아라사 원시림”(<밤이여 그것은 단조한 비극이 아니다>), “어 린 양”(<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녹색침대”(<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등과 같은 자 연 이미지는 독서 체험에서 생산된 이국적인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자연 이미지 대신 서구 문학작품 에서 흔히 등장하는 파라다이스적 자연 이미지를 활용하여 근대적인 자연미를 형상화한다. 가령, 무 릉도원에 등장하는 복숭아꽃 대신 “야장미”가, 그리고 복숭아 대신 “새빨간 능금”이 활용되고 있 다. 뿐만 아니라 까마귀, 까치 대신 기독교에서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의 이미지가 빈번하게 나 타난다. 신석정은 이처럼 전통 시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이국적인 자연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 는 한편, 전통적인 이미지도 충실하게 계승한다. 흰 모래 언덕에 속삭이던 물결도 소몰이 피리에 귀 기울여 고요한데 ― 신석정, <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 󰡔신석정 전집󰡕 1, 36‒37쪽(󰡔동광󰡕26, 1931. 10) 푸른 웃음 엷게 흐르는 나지익한 하늘을 학(鶴) 타고 멀리 멀리 갔었노라 ― 신석정, <아 그 꿈에서 살고 싶어라>, 󰡔신석정 전집󰡕 1, 41‒42쪽(󰡔신생󰡕, 1933. 2)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석정,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신석정 전집󰡕 1, 47‒48쪽(󰡔삼천리󰡕 4‒6, 1932. 5) “소몰이 피리”, “학”, “노루” 등은 동양 산수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미지이다. 이 외에 도 “초승달”, “은행잎”, “백로”, “산새”, “산가마귀”등 친숙한 산수화적 자연 이미지가 빈 번하게 나타난다. 신석정은 서구적 자연뿐만 아니라 동양적 산수의 이미지 또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석정은 전통적인 자연 이미지와 서구적인 이미지를 뒤섞어 혼종적인 파라다이스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한 혼종적인 파라다이스의 이미지는 전통적인 자연미와 변별되는 근대적 자연미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과학적 세계관과 관련된 근대적 자연미이다. 신석정 시에서 자연 은 종종 “지구”라는 천문학적 행성의 이미지로 출현한다. 주체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천문학적 시선 으로 자연을 “지구”라는 객관적 대상으로 형상화한다.18) 18) 실제로 신석정은 1930년대에 부안으로 낙향하여 전원생활을 즐기면서 천체망원경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곤 하였다. 신석정, <나의 교우록>, 앞의 책, 511쪽. 앞서 언급하였듯이 근대적 주체는 자연‒객체와 분리된 원근법적‒초월적 시선의 주체이다. 초기시의 주체는 과학적(천문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초월적 시선으로 ‘지구’라는 자연과 ‘우주’라는 더 넓 은 자연을 조망한다. 초기시의 천문학적 세계관은 낭만적 상상력과 결합되어 있다. 초월적 주체에게 ‘우주’와 ‘다른 행성들’은 “그 먼 나라”와 같은 낭만적 동경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어머니 만일 나에게 날개가 돋쳤다면 산새 새끼 포르르포르르 멀리 날아가듯 찬란히 피는 밤하늘의 별밭을 찾아가서 나는 원정(園丁)이 되오리다 별밭을 지키는…… […] 석양에 능금같이 붉은 하늘을 날아서 똥그란 지구를 멀리 바라보며 옥토끼 기르는 목동이 되오리다 달나라에 가서…… 그리하여 푸른 달밤 피리소리 들려오거든 석양에 토끼 몰고 돌아가며 달나라에서 부는 나의 옥퉁소인 줄 아시오 그런데 어머니 어찌하여 나에게는 날개가 없을까요? ― 신석정, <날개가 돋쳤다면> 부분, 󰡔신석정 전집󰡕 1, 49‒50쪽. 주체는 천문학적인 초월적 시선으로 “똥그란 지구”와 우주(“별밭”)를 투시한다. “그 먼 나라” 를 동경하듯이, 화자는 “찬란히 피는 밤하늘의 별밭을 찾아가서”, “별밭”을 지키는 원정이 되기 를 소망하고, “달나라”로 날아올라가 “옥토끼 기르는 목동이” 되고 싶어 한다. 이처럼 주체는 ‘지구’ 외부의 다른 아름다운 천체에서 거주하고자 하는 소망을 피력한다. 그러나 날개가 없으므로 현실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낭만적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주체가 합일 하고자 하는 ‘우주’(“별밭”, “달나라”)는 ‘그 먼 나라’와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이상적인 자연이다. 정경교융, 물아일체로 규정되는 전통적인 자연과 달리 초기시의 ‘우주’로 표상되는 근대 적 자연은 합일 불가능한 타자이다. 초월적 시선의 주체에게 “똥그란 지구”도 “별밭”이나 “달나라”와 마찬가지로 타자적인 자연이 다. <화려한 풍선을 타고>에서 “화려한 풍선”은 그러한 자연의 이미지이다. 이 풍선같이 동그란 지구를 타고 당신은 그 어디를 가신다 하십니까? 밤에는 별을 따러 가신다 하니 그 별은 또 얼마나 먼 하늘을 찾아가는 줄 아십니까? 푸른 오월이 오늘은 더 찬란히 빛납니다 우리가 탄 이 풍선은 얼마나 화려한 풍선입니까? 임이여! 오늘은 진주 깔린 밤하늘을 고요히 떠서 다시 한 번 하늘의 끝없음을 명상해봅시다 먼 별들의 아득한 이야기에 우리는 이끌리며 화려한 풍선에서 고요히 잠들기를 약속하지 않으렵니까? ― 신석정, <화려한 풍선을 타고>, 󰡔신석정 전집󰡕 1, 92쪽(󰡔중앙󰡕 2‒6, 1934. 6) 주체에게 ‘지구’라는 자연‒공동체는 수많은 별들 사이에 떠 있는 별중 하나이다. 그는 행성 사이를 순회하는 지구의 이미지를 “화려한 풍선”으로 규정한다. “화려한 풍선”은 “우리”가 함께 거주 하는 아름다운 자연이다. 하지만 “당신(임)”은 ‘지구’라는 자연에 만족하지 못하고 “먼 하늘”, “먼 별들”의 세계를 동경한다. “당신(임)”은 자연의 범주를 ‘지구’에 한정하지 않고 우주라는 더 넓은 자연을 동경하는 것이다. 화자 또한 “먼 별들의 아득한 이야기에” 이끌리지만, 그것은 불 가능한 꿈이며 “화려한 풍선”인 지구‒자연에 안주해야 함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우주를 떠도는 ‘지구’라는 “풍선”을 상상하는 초월적 시선의 주체는 지구‒자연에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다. 왜냐 하면 주체는 “화려한 풍선”이라는 타자와 원근법적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월적 시선’은 원근법적인 분리와 소외를 조건으로 성립되어 있다. 따라서 주체는 원근법적인 초 월적 시선으로 지구‒자연을 동경한다. 이렇게 본다면 주체는 우주라는 더 넓은 자연뿐만 아니라 지구 라는 자연으로부터도 분리되어 이중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초월적 시선에 포착된 “똥그란 지구”, “화려한 풍선”은 과학적 세계관과 낭만적 상상력이 결합된 새로운 자연의 이미지이다. 초기시의 ‘지구’ 이미지에 반영된 근대적 자연(미)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물아일체(物我一體), 정경교융(情景交融)으로 규정되는 전통적인 자연미에는 본질적으로 자연과 주체 사이에 거리가 없다. 그러나 신석정 초기시의 근대적 자연미에서 “그 먼 나라”나 “지구”가 표상 하는 자연은 주체와 분리된 타자적 대상이다. 따라서 초기시의 ‘지구’ 이미지는 자연의 타자화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둘째, 지구‒자연의 상대화이다. ‘지구’는 유일한 행성이 아니라 천체를 구 성하는 무수히 많은 행성 중의 하나로 상대화된다. 이러한 지구‒자연에 대한 천문학적 인식은 ‘우 주’라는 더 넓은 자연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된다. 근대적인 초월적 주체에게 ‘지구’는 타자적인 아름다운 자연이다. 그러나 주체는 ‘지구’를 상대 적인 행성‒자연으로 인식하고 더 넓은 자연‒우주를 꿈꾼다. 따라서 주체는 지구‒자연의 범주를 벗어 나 “똥그란 지구를 멀리” 바라볼 수 있는 ‘다른’ 천체에서의 삶을 동경한다. 그러한 동경은 곧 좌절되면서 낭만적 아이러니의 양상을 띤다. 아이러니는 주체와 자연의 분리와 소외를 암시한다. 살펴보았듯이 신석정 초기시는 근대적 자연미의 창출에 초점이 모아진다. 그것은 첫째, 혼종적인 자 연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둘째, 과학적 세계관과 낭만적 상상에 의하여 ‘지구’의 이미지로 나타난 다. “그 먼나라”, “똥그란 지구”, “화려한 풍선”에 반영된 근대적 자연미는 경험 세계 외부의 파라다이스이다. 자연과 원근법적으로 분리된 주체는 초월적 시선으로 파라다이스적 자연을 동경한다. Ⅲ. 공동체 의식과 지배체제 비판 앞 장에서는 ‘자연’에 초점을 맞추어 미학적 의미를 고찰하였다. 여기에서는 신석정 시의 ‘현실’ 인식을 살피고자 한다. 신석정 시에서 ‘자연’과‘현실’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신석정 시의 ‘자연’과 ‘현실’을 관류하는 사상은 ‘낭만적 이상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낭만적 이상주 의’에는 미학적인 ‘낭만주의’와 도덕적인 ‘이상주의’가 긴밀하게 엮여 있다. 본질적으로 합일할 수 없는 환영적 대상으로서 파라다이스적 자연에 대한 동경은 신석정 시의 저변을 관류하는 핵심적인 것 중 하나이다. 미학적인 차원에서 신석정 시의 파라다이스적 자연에 대한 동경은 ‘낭만성’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것은 상상 세계에 대한 동경, 현실 초월적인 열정, 이상적인 자연과의 합일 의지 등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신석정의 이상 세계에 대한 동경은 ‘낭만성’에 한정되지 않는다. 도덕적인 차원에서 신석정 시는 ‘이상주의’로 규정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이상주의’는 이데아를 목적으로 상정하고 인간과 세계의 완성을 지향한다.19) 신석정 시의 주체는 “그 먼 나라”를 이상으로 설정하고 인간과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그렇게 본다면 “그 먼 나라”에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의미가 잠재한다는 점에서 신석정 시의 ‘자연’과 ‘현실’은 서로 맞물린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김기림도 신석정 초기시의 “목신이 조는 듯한 세계”에서 “현대문명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을 간취하였다.20) 주지하듯이 아도르노는 자연미(Naturschöne)가 ‘관리되는 세계(verwaltete Welt)’에 대한 비판의 모델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21) 19) 이데아에 가치를 두는 플라톤 사상이 ‘이상주의’라면, 경험 세계에 가치를 두는 아리스토텔레 스 사상은 ‘현실주의’이다. 20) 김기림, <1933년 시단의 회고>, 앞의 책, 63쪽. 21) T. W. Adorno 저, 홍승용 역, 󰡔미학이론󰡕(문학과지성사, 1995), 106‒130쪽. 이러한 논의를 고려한다면 신석정이 모색한 근대적인 자연미는 원근법적으로 ‘저 멀리’ 존재하면 서, ‘관리되는 세계’로서 경험 세계에 대한 비판의 거울을 제공해준다고 볼 수 있다. 앞 장에서는 주로 미학적인 차원에서 근대적 자연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장에서는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도덕 적인 차원의 현실 인식을 살펴본다. 자전적 기록에 나타난 신석정의 현실 인식은 공동체 의식 차원에서 편의상 다음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 신석정은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확고한 민족 공동체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보통학교 6학년 때 교사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여 동맹휴학을 주도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정의심이 투철하 였다. 또한 독립운동가로서 한용운을 존경하였으며, 저항적인 내용의 시를 써서 검열과정에서 삭제되 거나 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일어 창작 권유를 거절하 고 초야에 묻혀 독서와 창작에 매진하였다.22) 둘째, 그는 세계 공동체 의식, 즉 사해동포주의적인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동서고 금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독서 체험 덕분이었다. 특히 카펜터와 투르게네프의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드워드 카펜터는 농경생활을 하면서 독서와 저술에 매진한 영국 시인으로서, 사회주의와 사 해동포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23) 투르게네프는 서구의 자유주의와 휴머니즘(특히 농노에 대 한 인간적인 사랑)적인 사상을 보여주었다.24) 신석정은 독서 체험을 통해 세계 공동체와 인류에 대 한 휴머니즘적인 사랑과 윤리를 갖추었다. 세계와 인류에 대한 사랑은 다분히 관념적인 것이었지만, 광복 후에는 사회주의에의 참여로 현실화 되기도 한다.25) 그러나 사회주의 참여도 현실 감각이 약한 낭만적 이상주의의 소산이었다. 22) 사후 자기합리화나 미화의 가능성 때문에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지만, 자전적 기록에 의하면 신석정은 일어 창작에 대한 설문에 대하여 “어찌 까마귀가 감히 꾀꼬리 흉내를 내겠느냐”는 조롱 섞인 답을 보내기도 했다. 신석정, <나의 교우록>, 앞의 책, 515쪽. 23) 신석정, <나의 교우록>, 앞의 책. “가난을 벗 삼아 카펜터나 도연명처럼 전원에 묻혀 망국민으로서의 막다른 골목을 견디어 문학의 길 에나 정진하기로 뜻을 세웠던 것이다.” 신석정, <나의 문학적 자서전>, 앞의 책. “영국 시인 카펜터를 본떠 농촌에 엎디어 꾸준히 공부할 것을 새로 다짐하고 막상 귀향은 했으나 그 당시 농촌의 현실은 나의 꿈을 살릴 수 있는 그런 평온한 지대는 아니었다.” 24) 투르게네프의 영향은 최명표의 논문을 참고할 수 있다. 최명표, 「신석정 시에 나타난 뚜르게네프의 영향」, 󰡔한국시학연구󰡕 25(한국시학회, 2009). 25) 신석정의 광복 후 사회주의 활동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최명표, 「해방기 신석정의 시와 행동」, 󰡔현대문학이론연구󰡕 17(현대문학이론학회, 2002). 셋째, 신석정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룬 생태학적 공동체를 지향하였다. 그는 자연에 대한 강한 애정을 지닌 처사적 성품의 시인이었다. 노장사상과 도연명에 관심을 기울이며 자연 친화적인 삶을 지향하였다. 실제로 ‘청구원(靑丘園)’과 ‘비사벌초사(比斯伐草舍)’ 등과 같은 거처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룬 삶을 향유하였으며, ‘산유회(山有會)’라는 등산 클럽을 만들어 철을 가리지 않고 산을 타면서 자연과 교감하였다. 신석정에게 가장 의미 있는 공동체는 민족과 인류를 넘어서는 자연과 인 간의 공동체였다. 자전적인 글들을 살펴보면 신석정은 정의감과 자존감이 강한 시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그 먼 나라’로 표상되는 이상 세계를 동경한 낭만적 이상주의자였다. 그가 끊임없 이 동경하는 세계는 고통과 분열이 없는 행복한 공동체이다. 그것은 역으로 주체가 ‘지금 여기’를 고통의 정황으로 파악했음을 의미한다. 낭만적 이상주의에 입각하여 신석정은 지속적으로 부당한 권 력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자세를 취하여왔다. 세 차원의 공동체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양상을 편의상 나눈 것일뿐 절대적인 구분이 될 수는 없다. 세 가지는 서로 겹쳐지며, 또 다른 다양한 의미의 차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공동체 의식 을 관류하는 핵심은 비판과 저항 정신이다. 초기시에서 주체는 고통의 원인을 지배체제에서 찾는다. 공동체는 지배체제에 의해 분열되어 있으며 고통 받고 있다. 따라서 주체는 민족 공동체의 차원에서 일제의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의식과 민족 해방 의지를, 세계 공동체의 차원에서는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인류 해방에 대한 소망을 나타낸다. 그리고 자연‒생태 공동체의 차원에서는 인간의 자연 지배 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낸다.26) 26) 신석정의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은 아도르노의 논의를 참고하여 살펴볼 수 있다. 주지하 듯이 아도르노는 고통(Leiden)의 발생학을 자연 지배에서 찾는다. 자연 지배는 해방의 논리가 아니라 파괴의 논리로서 고통의 다양한 형식을 생산한다. 자연 지배의 논리는 “인간과 자연 관계, 인간과 인간 관계, 남성과 여성 관계, 인간과 동물 관계등 사회 전체와 인간 삶의 전 영역에 보편적으로 작 동함으로써” 다양한 형식의 지배와 복종, 폭력과 고통의 관계를 만든다. 즉, 인간의 자연 지배는 인 간의 인간 지배, 남성의 여성 지배, 인간의 다른 종 지배로 이어지며, 다양한 고통을 초래한다. 이종하, 󰡔아도르노‒고통의 해석학󰡕(살림, 2012), 12‒40쪽. ‘지구’는 한편으로는 앞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근대적 자연미와 관련되어 있지만, 현실 인식의 차원 에서는‘공동체’의 의미를 갖는다. 이하에서는 세 차원에서‘지구’이미지에 투영된 공동체 의식과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 의식을 고찰한다. 첫째, 민족 공동체 차원에서 ‘지구’의 이미지와 민족 해방 의식을 살펴본다. 일제 강점기 신석정 시가 갖는 저항적 성격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27) 일제 강점기 시에서 흔히 나타나는 ‘밤’과 ‘새벽’의 저항적 상상력은 신석정 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28) 뿐만 아니라 <방>29)에서는 투르게네프의 소설, <그 전날 밤>의 주인공 인사로프를 등장시켜 전략적으로 저항의식 을 암시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 시에서 ‘밤’‒‘새벽’과 마찬가지로 ‘겨울’‒‘봄’도 저항적 상상력으로 빈번하게 나타난다. 불변하는 자연은 가변적인 역사를 비추어주는 거울이다. 피식민 주체 들은 자연의 순환 원리를 통해 일제의 지배를 암시적으로 비판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이상화 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이 시에서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은 “빼앗긴 들”이라는 식민지 현실에 대한 비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비전을 암시해준다. “빼앗긴 들”은 신석정 시에서 “몹쓸 지구”로 변환되어 나타난다. …… 그중 어떤 젊은 친구는 말하기를 봄은 지구에서 아주 자최를 감추었으리라고 단념을 하기도 하였다 또 어떤 친구는 말하기를 봄은 어느 아득한 성좌로 멀리 떠나버렸다고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봄은 어느 성좌에서 다시 오지않나 하고 모조리 전설같은 이야기를 부즐없이 소근 대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옥같이 흰 白梅가 핀다기로서니 이미 계절이 떠나간 이 빈 지구에 봄 이 온다는 이야기를 믿을수야 있겠느냐고 제각기 만나는대로 심장을 앓었다 푸른 계절을 잃어버린 이 몹쓸 지구에 서서 도시 봄을 부르는 자는 누구냐? ― 신석정, <봄을 부르는 자는 누구냐>, 󰡔신석정 전집󰡕 1, 119‒120쪽(1939. 12) 이 시는 일제 강점기 저항시의 전형적인 내적 논리를 보여준다. “푸른계절을 잃어버린 이 몹쓸지 구”와 “계절이 떠나간 이 빈 지구” 등은 “빼앗긴 들”과 겹쳐진다. 그리고 “빈 지구”가 식민지 현실이라면, “봄”은 광복을 의미한다. 주 체의 광복에 대한 반응에는 체념과 희미한 기대가 뒤섞여 있다. “도시 봄을 부르는 자는 누구냐 ?” 라는 설의법에는 현실을 절망적으로 인식하면서도,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주체의 내적 번민이 함축되 어 있다. 그렇다면 주체는 왜 ‘빼앗긴 들’을 “빈 지구”, “몹쓸 지구”로 표현한 것일까. 그것은 국권 상실의 절대성과 관련되어 있다. 망국민이 갖는 절망감의 규모를 “지구”의 상실감과 연결시킨 것이다. 이러한 사유는 <슬픈 구도>에서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난다.30) 꽃 한 송이 피워낼 지구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줄 지구도 없고 노루 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 밀리고 흐르는 게 밤뿐이요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하늘 별이드뇨 (1937) ― 신석정, <슬픈 구도(構圖)>, 󰡔신석정 전집󰡕 1, 110쪽(󰡔조광󰡕 5‒10, 1939. 10) 이 작품에는 전형적인 “밤”의 시대에 대한 사유와 신석정 시의 독창적인 지구‒상실감이 포개어져서 나타난다. 주체는 “노루 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는 극단적인 상실감을 드러낸다. 그러 한 상실감은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라는 역사 인식과 겹쳐진다. 주체는 절망적 현실 속 에서 희망의 항로를 지남(指南)해줄 좌표를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 하늘 별이드뇨”). 이처럼 “지구”이미지에 투영된 역사와 민족 공동체에 대한 상상은 극단적인 상 실감과 어둠 속에서 희망의 좌표를 찾는 데에 초점이 모아져 있다. 27) 서론에서 살펴본 다음 글들은 일제 강점기 신석정 시의 저항의식에 착목하고 있다. 오택근, 앞의 논문, 1981; 오택근, 앞의 논문, 1987; 최명표, 앞의 논문, 2009. 28) 물론 신석정 시에서 밤은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지만, 다음 작품들은 시대적 어둠에 대한 알레고 리적 성격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새벽을 기다리는 마음>, <이 밤이 너무나 길지 않습니까> 등의 작 품에서 “밤”(식민지 현실)과 “새벽”(광복)이라는 당대의 전형적인 저항의 상징이 나타난다. 주체 는 올 것 같지만 오지 않는 광복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절망적인 심정을 암시한다. “그러나 나는 밤마다 네가 속삭이는/그‘새벽’을 한 번도 맞아본 일은 없다//(대체 네가 새벽이 온 다는 이야기를 한 것도 오래되건만……)” — 신석정,<새벽을 기다리는 마음>, 󰡔신석정 전집󰡕 1, 66쪽. “태양이 가고/ 빛나는 모든 것이 가소/어둠은 아름다운 전설과 신화까지도 먹칠하였습니다/어머니/ 옛이야기나 하나 들려주셔요/ 밤이 너무나 길지 않습니까?” — 신석정, <이 밤이 너무나 길지 않습니까>, 󰡔신석정 전집󰡕 1, 87쪽. 29) 신석정, <房>, 󰡔학우구락부󰡕(1939. 9). 30) 이 시의 저항적 성격에 대해서는 다음 자작시 해설을 참고할 수 있다. 신석정, <목가시인의 슬픈 구도>, 앞의 책; 신석정, <내가 지은 인생시‒슬픈 구도>, 󰡔신석정 전집󰡕 4. 둘째로 살펴볼 것은 세계 공동체의 차원이다. 신석정 초기시의 “지구”이미지에는 제국주의의 팽창 에 대한 비판과 인류 해방에 대한 소망이 반영되어 있다. 조선인으로서 신석정에게는 민족 해방이 급 선무였지만, 심층적으로 그는 세계 시민으로서 인류와 세계의 해방을 지향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 구” 이미지에는 세계 시민으로서 주체의 자각이 투영되어 있다고 하겠다. 신석정의 세계 시민 의식은 멀리는 한용운31), 가까이는 김기림32)의 영향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한 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세계 시민의식을 드러내었다. 한용운이 지향하는 세계는 민족 해방, 인 류 해방, 사물 해방으로 이어지는 “절대평등”의 세계였다. 한용운은 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문명의 정도가 점차 향상하여 그 극에 이르는 날이 오면 장차” 민족과 민족, 인류와 만물이 평등 한 세계가 펼쳐지리라 믿었다.33) 31) 신석정의 만해에 대한 언급은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신석정, <목가시인의 슬픈 구도>, 앞의 책, 502‒504쪽. 32) 김기림의 영향은 다음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시로는 김기림의 <날개만 도치면>(󰡔신동아󰡕, 1931. 11), <오후의 꿈은 날줄을 모른다>(󰡔신동아󰡕 3권 4호, 1933. 4)과 신석정의 <날개가 돋쳤다면>(󰡔촛불󰡕, 1939)이 상호 텍스트적인 영향관계를 잘 보여주며, 그 외에도 여러 시편의 소재나 주제가 매우 유사하다. 산문으로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신석정, <목가시인의 슬픈 구도>, 앞의 책, 501쪽; 신석정, <나의 교우록>, 󰡔신석정 전집󰡕 4, 514쪽. 33) 한용운 저, 이원섭 역주, <조선불교유신론>, 󰡔한용운전집󰡕 2(신구문화사, 1980) 44‒45쪽. 한용운에게 당면 과제는 민족 해방이지만, 그는 궁극적으로는 인류와 만물의 해방을 지향하는 코스모 폴리탄이었다.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각은 김기림의 영향을 보다 많이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주지하 듯이 김기림은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등에서 “지구”의 종말을 경계하였다. 김기림 의 “지구”는 세계 공동체의 운명에 대한 비판과 우려를 반영한 이미지이다. 세계 공동체 의식이 반 영된 신석정 초기시의 ‘지구’ 이미지는 김기림 시의 ‘지구’ 이미지와 많은 부분이 겹친다. 지도에서는 푸른 것을 바다라 하였고 얼룩덜룩한 것을 육지라 부르는 습관을 길러 왔단다 이제까지 국경이 있어본 일이 없다는 저 하늘을 닮아서 바다는 한결로 푸르고 육지가 석류껍질처럼 울긋불긋한 것은 오로지 색채를 즐긴다는 단조한 이유가 아니란다 오늘 펴보는 이 지도에는 조선과 인도가 왜 이리 많으냐? 시방 나는 똥그란 지구가 유성처럼 화려히 떨어져 갈 날을 생각하는 ‘외로움’이 있다 도시 지구는 푸른 석류였거니……(1936) ― 신석정, <지도(地圖)>, 󰡔신석정 전집󰡕 1, 103쪽(󰡔시건설󰡕 7, 1939. 10) 주체에게 이상적인 세계는 국경이 없는 ‘푸른 하늘’이다. 그것은 세계 해방의 이념을 표상한다. ‘푸른 하늘’은 “푸른 석류” 같은 지구의 이미지로 변주되는데, 그것은 조화롭고 평화로운 이상적 인 지구‒공동체를 표상한다. 반면, 제국주의에 의해 불평등이 심화된 세계상은 “울긋불긋한”석류 껍질 같은 지구의 이미지로 제시된다. “조선과 인도가 왜 이리 많으냐?”는 제국주의의 팽창에 대한 우려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러한 우려는 종말론적 위기감(“똥그란 지구가 유성처럼 화려히 떨어 져 갈 날”)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신석정 시에서 지구는 한편으로는 세계 공동체라는 공동 운명체의 표상이다. 주체는 당시의 국제 정세에 대하여 지구 공동체의 종말론적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세 번째로 살펴볼 것은 생태학적 공동체 의식이다. 이 항목은 신석정 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앞 장에서 살펴본 “그 먼 나라”는 본질적으로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생태학적 공 동체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먼 나라”는 인간에 의하여 착취당하고 훼손된 자연에 대한 비판의 거울이라 하겠다. 신석정은 “그 먼 나라”와 같은 파라다이스적인 자연만 형상 화하지 않았다. 그는 자연과 인간의 깨어진 관계를 직시하고 있었다. 어머니! 그 염소가 어찌하여 나를 떠받았을까요? 그렇게 유순하던 그 염소가 어여쁜 뿔로 나를 떠받은 그 까 닭을 나는 도모지 알 수가 없습니다. […] 어머니! 그런데 그 염소의 목을 얽어 매인 것은 그 무엇이며 그를 매여 땅에 말뚝을 박은 것은 그 무슨 까닭일까요? 목대 밑에 달린 쇠고다리, 고다리에 꿰어서 말뚝에 이어 땅에 늘인 굵은 줄! 어머니! 이 모든 것을 저는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생각을 하였습니다마는 아무리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어찌하여 이것이 저로 하여금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어머니! 저는 또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옛날 고향의 나직한 언덕 늘어진 수양버들 저편 시내건 너 푸른 들을…… 그리고 거기서 풀 뜯던 염소의 조으는 눈자위에 말없이 깊어가는 봄과 함께 한없이 깊은 그들의 포근한 꿈을!(1929. 4. 11. 밤) ― 신석정, <어머니! 그 염소가 왜……>, 󰡔신석정 전집󰡕 2, 223‒225쪽(《동아일보》, 1929년 11월 3일자) 화자는 “그렇게 유순하던 그 염소가” 갑자기 자신을 떠받은 데에 대하여 놀라움을 드러낸다. 2장에 서 살펴본 파라다이스적 자연이 자연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상적인 세계의 이미지라면, 이 시는 자연과 인간의 균열을 보여주고 있다. 자아를 공격하는 염소는 인류에게 적대적인 자연을 상징 한다. 그렇다면 자연은 왜 인류에게 적의를 드러내는가. 주체는 인간의 자연 지배를 지적한다. 인간 은 염소의 목에 “쇠고다리”를 채우고, 그 쇠고다리에 줄을 꿰어 염소를 말뚝에 묶어두었다. 구속된 염소의 이미지는 인간에 의해 지배되고 착취당하는 자연을 상징한다. 주체는 염소가 자아를 공격하는 ‘지금 여기’의 상황과 “그때”를 대조하면서 당위적인 자연의 이 미지를 보여준다. “그때”는 햇살이 따듯한 봄날이다. 어머니는 한가로이 나물을 캐고, 나와 염소는 푸른 벌에서 함께 뒹굴며 논다. 주체는 “그때”라는 유년의 이미지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제시한다. 신석정은 “그 먼 나라”와 “그때”라는 이상적 세계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자연 지배를 비판하면 서 자연 해방의 가상을 제시해준다.‘관리되는 세계’외부의 자연 해방의 가상은 신석정 시를 추동하 는 핵심적 요소이다. 그것은 비단 자연 지배뿐만 아니라 인간의 인간 지배, 제국의 약소국 지배에 대 한 비판까지 포괄하는 상징이다. 따라서 이상적 자연의 이미지는 민족 해방과 인류 해방 의식까지도 포괄하는 신석정 시의 가장 핵심적이고 심층적인 부분이다. 살펴본 것처럼 현실 인식 차원에서 ‘지구’는 공동체의 의미를 갖는다. 주체의 낭만적 이상주의는 공동체의 고통과 위기를 날카롭게 파악한다. 신석정 시의 근대적인 파라다이스적 자연미는 역사와 현 실의 고통을 비추어주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주체의 낭만적 이상주의는 더 나은 공동체를 향하여 역사와 현실을 추동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처럼 신석정 시에서 자연과 역사는 긴밀하게 맞 물려 있다. Ⅳ. ‘지구’의 복합적 의미 앞 두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신석정 시에서 “지구”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2장에서 살펴보 았듯이 ‘지구’는 근대적인 자연미와 관련된다. 파라다이스적인 자연은 주체와 원근법적으로 분리되 어 있는 타자로서 도달할 수 없는 환영적 대상이다. 한편 3장에서 살펴본‘지구’는 지배체제에 의하 여 착취당하거나 고통 받는 공동체이다. 파라다이스적 자연의 이미지는 고통 받는 공동체가 도달하여 야 할 이상으로 제시되면서 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의지를 함축한다. ‘자연’과 ‘현실’이 맞물린 신석정의 낭만적 이상주의는 초기시의 저변을 관류하지만, 시기에 따 라 정도의 차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1930년대 전반기 이전의 작품에는 파라다이스적 자 연에 대한 낭만적 동경이 강하게 나타나는 반면, 1930년대 후반기 이후의 작품에는 이상주의에 입각 한 현실 비판과 저항 의지가 보다 강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주체가 정신적으로 성숙해감에 따라 점차 적으로 낭만주의적인 동경보다 이상주의적 현실 인식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가 있 을 뿐, 낭만주의적 동경과 이상주의적 현실 인식이 초기시 전체에 걸쳐 길항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34) 파라다이스적 자연을 환영적 가상으로 인식하는 사유는 ‘꿈’의 이미지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꿈’과 관련된 시편들에는 주체의 이상이 잘 그려진다. 주체는 자연과 자아가 합일된 세계를 동경하고 있다. <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에서 자아는 “산새가 되어 보금자리에” 잠이 들고, <아 그 꿈에서 살고 싶어라>에서는 “학을 타고 멀리 멀리” 날아간다. 주체는 이러한 물아일체의 세 계는 “꿈이 아니면 찾을 수 없는”‘불가능한 세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주체는 ‘꿈’의 세 계를 ‘현실’의 타자로 인식한다. ① 바람 잔 밤하늘의 고요한 은하수를 저어서 저어서 별나라를 속속들이 구경시켜 주실 수가 있습니까? 어머니가 만일 초승달이 된다면…… ― 신석정, <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 󰡔신석정 전집󰡕 1, 40쪽(󰡔문예월간󰡕 3, 1932. 1) ② 꿈이 아니면 찾을 수 없는 아 그 꿈에서 살고 싶어라 ― 신석정, <아 그 꿈에서 살고 싶어라>, 󰡔신석정 전집󰡕 1, 41‒42쪽(󰡔신생󰡕, 1933. 2) ③ 내가 어머니 무릎에 잠이 들 때 저 바람이 숲을 찾아가서 작은 산새의 한없이 깊은 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 ― 신석정, <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 󰡔신석정 전집󰡕 1, 37쪽(󰡔동광󰡕 26, 1931. 10) 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꿈의 세계는 “고요한 은하수를 저어서” “별나라를 속속들이 구경”할 수 있는 비현실적인 환영이다. ②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꿈의 세계는 현실의 고통과 제약으로부터 자유 로운 영역이기 때문에 주체는 꿈속에 거주하기를 소망한다. ③에서 “산새”와 동일화된 화자는 바람 이 산새의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하나 조바심을 낸다. 이처럼 꿈의 세계로 이상화된 자연은 경험 세계 외부의 다른‘행성’이다. 주체는 고통과 제약이 없는 타자적인 ‘지구’에서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 을 향유하기를 꿈꾸고 있다. 아도르노는 ‘관리되는 세계’ 내에서 ‘세계고(世界苦)’가 증가할수록 외부의 ‘자연미’에 대한 동경도 함께 증가한다고 말한다.35)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초기시의 환영적 자연에 대한 동경 은 경험 세계 내의 고통에 대한 인식과 맞물려 있다. <산수도>는 환영적 자연의 이미지와 역사 인식 이 결합된 대표적인 작품이다. 숲길 짙어 이끼 푸르고 나무 사이사이 강물이 희어…… 햇볕 어린 가지 끝에 산새 쉬고 흰구름 한가히 하늘을 거닌다. 산가마귀 소리 골짝에 잦은데 등 너머 바람이 넘어 닥쳐와…… 굽어든 숲길을 돌아서 돌아서 시냇물 여음이 옥인 듯 맑아라 푸른 산 푸른 산이 천 년만 가리 강물이 흘러흘러 만 년만 가리 산수(山水)는 오롯이 한 폭의 그림이냐 ― 신석정, <산수도(山水圖)>, 󰡔신석정 전집󰡕 1, 99쪽(󰡔조광타임즈󰡕, 1938. 1) 표면적으로 이 시에서 “산수(山水)”는 그림(“산수도”) 속의 이상적인 자연이다. 주체는 물리적 자연이 아니라 꿈의 세계와 다름없는 환영으로서 “산수도”를 제시하고 있다. 부제(副題)에 의하여 “산수도”는 역사적 현실과 괴리된 환영이 아니라 미래적 비전으로서 역사적 차원으로 편입된다. 부 제의 “산수(山水)는 오롯이 한 폭의 그림이냐”라는 의문은 설의법이다. 주체는 이상적인 자연의 이 미지는 단지 도달 불가능한 “한 폭의“산수도”는 영원불변하는 자연의 섭리(“푸른 산 푸른 산이 천 년만 가리 / 강물이 흘러흘러 만 년만 가리”)를 반영하는 유토피아의 이미지이다. 영원불변의 이 상적 자연 이미지는 상상적으로나마 역사적 지배 권력을 덧없는 것으로 간주해버린다. 이처럼 일제 강점기 신석정 시의 핵심적인 기획은 근대적 자연미의 창출과 더 나은 공동체에 대한 비전 제시라고 할 수 있다. 34) 그러한 길항은 광복 후에도 이어진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광복 후 신석정의 중기시는 현실 인식 이 강화되고, 후기시는 자연에 대한 지향성이 강화된다. 35) T. W. Adorno, 앞의 책, 108‒109쪽. 그림”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적 비전으로서 역사적 현실을 추동하는 원동력을 제공해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신석정 시에서 환영적 대상으로서 이상적인 자연과 물리적 자연을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의 시에는 “산수도”로 표상되는 영원불멸의 자연과 경험 세계의 물리적 자연이 혼재한다. 주체는 물리적 자연을 고통 받는 생태 공동체로 이해하면서도, 물리적 자연과 교감하는 기쁨을 표현하기도 한다. 푸른 산이 흰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삼림처럼 두 팔을 들어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不絶)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거니……(1936) — 신석정, <들길에 서서>, 󰡔신석정 전집󰡕 1, 106쪽(󰡔문장󰡕 5, 1939. 6) <들길에 서서>에서 주체는 “부절히” 움직이는 “둥근 지구”에 발을 딛고 사는 일 자체가 “기쁜 일”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둥근 지구”는 물리적 자연이다. 물리적 자연은 현실의 고통을 위로 해주면서(“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삶의 활력과 생명력(“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을 제공해준다. 따라서 푸른 산과 더불어 물리적 자연에 발을 딛는 행위는 “기쁜 일”이다. 이러한 사유에는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생태학적 공동체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물리적 자연이 인류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주체는 물 리적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는 두 발로 물리적인 자연을 딛고서 “푸른 하 늘”과 “푸른 별”이라는 이상을 동경한다. 자아를 에워싸고 있는 물리적 자연을 경험하는 것도 “기쁜 일”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이상을 동경하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왜냐하 면 ‘이상’을 동경하는 것은 지배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고찰하였듯이 신석정 시에서 물리적 자연과 변별되는 이상적인 자연은 도달할 수 없는 ‘환영적 대 상’이다. ‘그 먼 나라’로 표상되는 현실에 대한 타자로서 파라다이스적 자연은 분열된 공동체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의미를 지니면서, 현실을 추동하는 역사적 미래의 비전을 제공해준다. 주체는 물 리적 자연에서도 일정한 기쁨을 느끼지만, 거기에 잠재하는 고통을 간파하고 더 나은 공동체를 지향 한다. 그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는 민족 해방, 인류 해방, 자연 해방 등과 같이 지배와 고통에 서 해방된 공동체이다. 물론 이상적인 공동체에 대한 지향성은 낭만적 이상주의에 착근한 관념적인 면이 강하다. Ⅴ. 시사적 의의 모두에서 언급하였듯이 신석정 시의 ‘지구’ 이미지는 1930년대 문학장에서 탄생한 것이다. ‘지 구’의 이미지는 특히 정지용, 김기림 등과 같은 모더니즘 시인들의 작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지용의 ‘지구’ 이미지가 주로 원근법적 시선과 근대적 자연미와 관련되어 있다면, 김기림의 ‘지 구’ 이미지는 세계 공동체의 의미가 강하다. 정지용 시에서 “바다”는 전통시가의 ‘산수(山水)’나 ‘화조풍월(花鳥風月)’과 변별되는 근대적 자연미의 표상이다. 전통적인 자연과 달리 ‘바다’는 합일의 대상이 아니라 감각적 관찰이나 관광의 대상이다. (......) 이 애쓴 海圖에 손을 싯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굴르도록 회동그란히 바쳐 들었다! 地球는 蓮닢인양 오므라들고…… 펴고…… — 정지용, <바다 2>, 󰡔정지용 시집󰡕, 6쪽.『시원』 5호, 1935. 12 (......) 海峽이 물거울 쓰러지듯 휘뚝 하였다. 海峽은 업지러지지 않었다. 地球우로 기여가는 것이 이다지도 호수(湖水)운 것이냐! (......) — 정지용, <다시 海峽>, 󰡔정지용 시집󰡕, 24‒25쪽. 정지용의 “바다”에 대한 상상은 자주 “해도(海圖)”나 “지구”의 이미지와 결합한다. 원근법적 시선의 주체는 “해도”나 “지구”를 바라보듯이 초월적 시점에서 “바다”에 대한 상상력을 전개하 기 때문이다. <바다 2>에서 “바다”는 주체와 분리된 객체화된 자연이다. 주체는 “바다”를 매개로 더 넓은 자연인 “지구”를 연상한다. 주체는 밀려들어오고 빠져나가는 “바다”의 이미지에서 연잎 에 담긴 물을 상상한다. 즉, “바다”는 “지구”라는 거대한 “연잎”에 담긴 물로 상상되고 있는 것이다. 주체는 초월적 관점에서 “지구”와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다시 海峽>에서 화자는 정오 가까운 시간에 배를 타고 해협을 건너며 바다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파도가 출렁거리고 배가 심하게 흔들리자 (“海峽이 물거울 쓰러지듯 휘뚝 하였다.”) 화자는 짜릿한 즐거움을 느낀다 (“이다지도 호수운 것이냐!”). 주체는 이처럼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모습을 “地球우로 기여가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주체는 초월적 위치에서 지구와 바다 위의 배를 원근법 적으로 조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지용 시에서 “바다”는 주체와 원근법적으로 분리된 근대적 자연미의 표상이다. “바다” 의 상상력과 결합된 “지구”의 이미지는 주체의 초월적 관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저널리스트로서 김기림은 국제 정세에 밝았다. 그는 해박한 국제 정세를 기사화하는 데에 그치지 않 고 시로 변용하곤 했다. 문인 기자로서 김기림의 기사와 시는 상호 텍스트적인 것이 많다.36) 36) 이와 관련된 논의로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조영복, 「김기림의 언론활동과 초기글들의 성격」, 󰡔한국시학연구󰡕 11(한국시학회, 2004); 전봉관, 「1930년대 한국시의 아방가르드와 데카당스 ‒ 김기림 「기상도」의 현재적 의미를 중심으로」, 󰡔한국시학연구󰡕 20(한국시학회, 2007). 그는 1930년대 국제 정세에서 종말론적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김기림은 여러 시편에서 ‘지구’의 이미지를 통해 세계 공동체가 당면한 종말론적 위기를 반영한다. S O S 午後 여섯시 三十分. 突然 어둠의 바다의 暗礁에 걸려 地球는 破船했다. ‘살려라’ 나는 그만 그를 건지려는 誘惑을 斷念한다. — 김기림, <海上>, 󰡔김기림 전집󰡕 1, 22쪽( 조선일보》, 1931년 6월 2일자) 집 이층집 江 웃는 얼굴 交通巡査의 모자 그대와의 約束…… 무엇이고 差別할 줄 모르는 無知한 검은 液體의 汎濫속에 녹여버리려는 이 目的이 없는 實驗室 속에서 나의 작은 探險船인 地球가 갑자기 그 航海를 잊어버린다면 나는 대체 어느 구석에서 나의 海圖를 편단 말이냐? — 김기림, <海圖에 대하야> 3연, 󰡔김기림 전집󰡕 1, 24쪽 (<나의 探險船>이라는 제목으로 󰡔신동아󰡕 1933년 9월에 발표되었던 작품임) <해상>에서 주체는 초월적 위치에서 난파되는 “지구”를 지켜보고 있다. 그렇다면 김기림 시에서 지 구는 왜 “파선”의 위기에 봉착한 것인가. 김기림은 당대를 문명사적 쇠퇴기로 파악하였다. “오 후”는 그러한 쇠퇴의 상징이다. 가령 <해상>의 “午後 여섯시 三十分.”, <오후의 꿈은 날줄을 모른다>의 “아름답지 못한 오후” 등에서 “오후”는 지구 종말에 다가가는 시간이다. 주체는 “오후”에 이어 서 황혼이 몰려오고 칠흑 같은 밤의 어둠이 닥칠 것을 예견한다. “오후”가 문명사의 쇠퇴기라면, “밤”은 종말을 의미한다. <海圖에 대하야>에서 밤은 무차별적으로 모든 것을 “검은 액체의 범람” 속에 녹여버린다. 주체는 곧 “밤”이라는 종말을 맞이하여 운행을 멈추게 될 “지구”의 운명을 두 려워하고 있다. 김기림은 제국주의의 팽창과 자본주의의 위기(대공황)로 대변되는 당대를 종말을 앞둔 문명사의 쇠퇴 기로 파악하였다. 그에게 문명사의 종말은 특정 민족이나 국가의 문제가 아닌 세계 공동체의 문제로 다가왔다. 김기림은 ‘지구’ 이미지를 통해 세계 공동체의 종말을 경고하면서 현대 문명에 대한 비 판적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1930년대 문학장에서 ‘지구’는 원근법적 시선에서 탄생한 근대적인 자연미를 반영한 이미지이며, 한편으로는 세계 공동체의 이미지를 반영한 것이다. 원근법적 시선으로 바라본 자연은 도학(道學)적 인 합일의 대상이 아니라 미학적인 감각적 대상이다. 초월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이미지는 주체와 분리된 미학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상징한다. 신석정 시에서 ‘그 먼 나라’, ‘똥그란 지구’ 등의 이미지는 도달할 수 없는 환영적 대상이다. 신 석정은 정지용처럼 ‘화조풍월’과 변별되는 근대적인 자연미를 지향하였던 것이다. 김기림은 공동 운명체로서 세계 공동체의 종말론적 위기를 ‘지구’이미지로 형상화하였다. 신석정도 김기림과 같이 분열된 세계 공동체가 당면한 위기를 ‘지구’에 반영하였으며, 나아가 민족 공동체와 생태 공동체에 대한 상상력도 보여주었다. 특히 신석정의 생태 공동체에 대한 지향성은 다른 어떤 시인보다도 강렬 한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920년대 김소월의 자연을 김동리는 “신”으로 파악한다.37) 김소월의 자연‒신은 근본적으로는 ‘전 통’에 연결되어 있다.38) <산유화>에 나타난 계절의 순환에 반영된 영원불멸의 섭리는 동양적인 자 연관에 호흡을 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김소월 시의 자연이 전적으로 ‘전통’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김소월 시의 영원불멸의 자연은 근대에 의하여 억압되고 소외된 자아와 결합되어 있다. 따라 서 자아 인식은 새롭지만, 자연은 전통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하겠다. 김소월의 자연은 ‘전통’에 무게가 실린 반면, 신석정의 자연은‘전통’과‘근대’에 무게가 분산된 혼종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보인다. 신석정은 혼종적인 근대적인 자연미의 창출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것은 고통 받는 공동체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결부되어 있다. 고통 받는 공동체는 민족, 세계, 자연 등 다층적인 것이다. 일제 강점기 말기 청록파의 자연은 암흑 기의 현실과 괴리된 이상적인 공간이다.39) 박목월과 조지훈의 이상적인 자연이 전통 쪽으로 기울어 진 반면, 박두진의 이상적인 자연은 기독교와 결합되어 독창적인 시적 세계를 생성하였다. 널리 알려 졌듯이 청록파의 이상적인 자연도 암흑기의 현실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일정 부분 신 석정의 ‘그 먼 나라’에 상응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신석정이 고통 받는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한 것과 달리 청록파는 타자적인 이상적 자연에 관 심을 기울이면서 묵시적으로 체제에 저항하였다. 또한 청록파는 ‘민족’의 어둠은 직시하였지만, 자 연과 세계 공동체의 고통이나 위기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본다면, 신석정 시의 ‘지구’이미지에 집약된 자연은 혼종적인 근대적 자연미의 창출, 그리고 다차원적인 현 실 인식과 공동체 의식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37) 김동리, 「청산과의 거리‒김소월론」, 󰡔문학과 인간󰡕(민음사, 1997), 39‒45쪽. 38) 이와 관련하여 이남호의 논의를 참고할 수 있다. 이남호는 김소월 시의 자연은 “전근대적 자연 과 연결되어” 있지만, “시인은 자연과의 심한 단절 또는 좌절 또는 불화를 체험한다”는 점에서 전 통적인 자연과 변별된다고 본다. 이남호, 「한국 현대문학에 나타난 자연의 모습」, 󰡔현대 한국문학 100년󰡕(민음사, 1999), 354쪽. 39) 이남호는 청록파의 자연을 “사실적 세계가 아니라 정신적 공간”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청 록파 시인들은 일제에 의해 현실을 잃어버림으로써 현실의 자연도 잃어버렸”으며,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상상 속의 자연을 추구했다”고 평가한다. 이남호, 위의 논문, 375쪽. 참 고 문 헌 김기림, 󰡔김기림 전집󰡕. 심설당, 1988. 신석정, 󰡔촛불󰡕. 인문사, 1939., 󰡔슬픈 목가󰡕. 낭주문화사, 1947. 신석정전집 간행위원회, 󰡔신석정전집󰡕. 국학자료원, 2009. 정지용, 󰡔정지용 시집󰡕. 시문학사, 1935. 강희안, 「신석정 후기시의 시간 의식과 현실 인식」. 󰡔비평문학󰡕 40, 한국비평문학회, 2011. 김동리, 「청산과의 거리‒김소월론」. 󰡔문학과 인간󰡕, 민음사, 1997. 김영식 외, 󰡔과학사󰡕. 전파과학사, 1995. 김옥성, 󰡔한국 현대시와 종교 생태학󰡕. 박문사, 2012. , 「모윤숙 시의 종말론적 사유와 자연 지향성」. 󰡔어문학󰡕 120, 한국어문학회, 2013. 김유동, 󰡔아도르노 사상 ‒고통의 인식과 화해󰡕. 문예출판사, 1993. 박두진, 「신석정의 시」. 󰡔현대문학󰡕, 1968. 1. 박태건, 「신석정 문학의 탈식민성 연구」. 원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오택근, 「신석정의 전반기 작품에 나타난 밤의 의미」. 󰡔시문학󰡕 통권 116·117, 1981. , 「신석정의 저항의식」. 󰡔생수󰡕 5, 대한신학교, 1987. 오하근, 「신석정론」, 󰡔전북현대문학·상󰡕. 신아출판사, 2010. 이남호, 「한국 현대문학에 나타난 자연의 모습」. 󰡔현대 한국문학 100년󰡕, 민음사, 1999. 이종하, 󰡔아도르노 ‒고통의 해석학󰡕. 살림, 2012. 전봉관, 「1930년대 한국시의 아방가르드와 데카당스 ‒김기림 「기상도」의 현재적 의미를 중심으로」. 󰡔한국시학연구󰡕 20, 한국시학회, 2007. 정태용, 「신석정론」. 󰡔현대문학󰡕, 1967. 3. 조영복, 「김기림의 언론활동과 초기 글들의 성격」. 󰡔한국시학연구󰡕 11, 한국시학회, 2004. 주은우, 󰡔시각과 현대성󰡕. 한나래, 2005. 최명표, 「신석정 시의 수사적 책략」. 󰡔국어문학󰡕 47, 국어문학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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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Richard, 손덕수 역, 󰡔파라다이스󰡕. 중명, 1999. 국 문 요 약 이 글은 신석정 시의 ‘자연’이 갖는 근대적 의미, 그리고 ‘자연’과 ‘현실’의 맞물림, 공동체 의식 등을 조명한다. 그리고 초기시에 나타난‘지구’이미지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지구’이 미지에 착목한 것은, 초기시에서 ‘지구’는 근대적 자연미와 현실 인식이 집약되어 있는 핵심적인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초기시는 전대와 변별되는 근대적 자연미의 창출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근대적 자연미 는 혼종적인 자연 이미지로 형상화되고, 과학적 세계관과 낭만적 상상에 의하여 ‘지구’의 이미지로 구현된다. 근대적 자연미는 경험 세계 외부의 파라다이스적 자연의 형상을 띤다. 그러한 자연은 주체 와 원근법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현실 인식 차원에서 ‘지구’는 크게, 민족, 인류‒세계, 자연이라는 세 가지 공동체의 의미를 갖는 다. 시적 주체는 공동체의 고통과 위기를 날카롭게 파악한다. 신석정 시의 근대적인 파라다이스적 자 연미는 역사와 현실의 고통을 비추어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주체는 이상적인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더 나은 공동체를 향하여 역사와 현실을 추동하고 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신석정 시에서 파라다이스적 자연은 도달할 수 없는 환영적 대상이지만, 고통 받는 현실에 대한 비판 의 모델을 제공해준다. 신석정 시에서‘자연’과‘현실’은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것이다. 자연’과 ‘현실’의 저변을 관류하는 신석정의 문학 사상은 낭만적 이상주의로 규정할 수 있다. 주체는 환영적인 세계에 대한 낭만적 동경을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이상’에 비추어 역사와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신석정은 비록 변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 냈지만, 1930년대 문학장의 연속선상에서‘지구’이미지를 형상화하였다.‘지구’이미지에 집약된 신 석정 시의 자연은 혼종적인 근대적 자연미의 창출, 다차원적인 현실 인식과 공동체 의식의 반영이라 는 점 등에서, 1920년대의 김소월이나 일제 강점기 말기 청록파와 변별되는 독창성과 시사적 의의를 지닌다. 신석정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대표적인‘자연’지향적 시인 중의 한 명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살 펴본 바와 같이 신석정의‘자연’은‘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사후 자기합리화의 가능성 때문에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지만, 자전적 기록을 포함한 여러 자료를 살펴보면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현실’을 심각하게 고민하였음이 드러난다. 다양한 차원의‘현실’에 대한 고민과 맞물려 신석정 시의‘자연’은 깊이 있고 풍요로운 의미를 확보하게 된다. 투고일 2013. 9. 20. 심사일 2013. 10. 25. 게재 확정일 2013. 11. 15. 주제어(keyword) 신석정(Shin, Seok‒jeong), 자연(nature), 현실(reality), 지구(earth), 원근법(perspective), 혼종(hybridity), 파라다이스(paradise), 환영(fantasy) 낭만적 이상주의(romantic idealism), 이상(ideal), 공동체(commu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