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금산
- 이성복 /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명시 100선 중 18 -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위기지학의 시”
- 이성복 / [극지의 시] 中 -
시는 한편 쓰나 천편을 쓰나 차이가 없어요. 한편 한편에 천편의 수준이
다 드러나는 것, 한편이 수준미달이면 아무 것도 안 쓴 거나 마찬가지예요
인간의 정신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분야가 시와 수학 음악이라고 하지요.
시 수학 음악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세 가지 모두 패턴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거예요.
시인이 하는 일도 일상생활 속에 숨겨진 패턴을 찾아내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떻든 모든 것의 궁극적 판단은 미추에 달려 있어요. 제일의 기준은
진이나 선이 아님 미예요. 어떨 때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하느냐 하면
막연하고 혼란스러운 것들 속에서 불현듯 패턴이 드러날 때예요
패턴은 다른 말로 주제, 테마, 혹은 모티브라고 할 수 있는 있어요.
패턴이 바로 세계의 본질을 이루는 거예요
서시
- 이성복 / <남해 금산> / 문학과지성사 / 1987 -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 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 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이성복(李晟馥, 1952-)
이성복은 섬세하고 평이한 언어로 우리 시대의 정신적 위기를 노래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출생 : 1952. 6. 4.
출생지 : 국내 경상북도 상주
데뷔 : 1977. 문학과지성에 「정든 유곽에서」로 등단
1952년 6월 4일 경북 상주 출생. 서울대 불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계명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1977년 『문학과지성』에 「정든 유곽에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82년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개인적 삶을 통해 확인한 고통스러운 삶을 보편적인 삶의 양상으로 확대하며 진실을 추구한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80), 일상의 기저에 자리한 슬픔의 근원을 서사적 구조로 드러낸
『남해금산』(1987), 연애시의 서정적 어법으로 세상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보여준 『그 여름의 끝』
(1990), 무의식적으로 지나치고 있는 삶의 일상과 세상과의 관계를 표현한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1993) 등의 시집을 간행한 바 있다. 이성복은 섬세하고 평이한 언어로 우리 시대의 정신적 위기를
노래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아, 입이 없는 것들』(2003),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2003), 『오름 오르다』(2004) 등의 시집이 있다.
남해 금산(이성복) / 시낭송 서수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