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윤성의> 대숲에/백제의/개꿈/탐욕/몸무게/개이야기/이런생각/소금밭/다리

이름없는풀뿌리 2024. 2. 25. 03:02
대숲에 서면 - 2004.01.06 / 윤성의 - 객적은 뱃살이 시덥잖아 보이던가​ 무에 그다지 채울 게 많더냐 고​ 가볍게 되도록 가볍게 비워보라 귀띔하네. ​ ​ 백제의 눈빛 1 - 금동용봉봉래산향로- /2003.04.13 / 윤성의 천 몇 백년 그 긴 잠 함묵의 굴속에서 망국 한 곰 삭혀온 금동 용봉봉래산향로 역사를 뛰어 넘어서 어둠 씻고 눈뜬다. ​ 누가 백제를 죽었다 말하는가​ 몸 비록 흩었어도 혼 불은 이었거니 긴 세월 잊혔던 불빛 오늘 다시 비치나니. ​ 왕조는 묻혔건만 그 얼은 되살아서​ 뜸직한 얼굴로 역사 앞에 나앉으며​ 억지에 눈감긴 세월 벗으라 눈짓한다. ​ ​​ 개꿈 - 2003.01.12 / 윤성의 - 나른한 오후 달디단 낮잠에 들다 ​ 한적한 시골 마을, 초가 지붕 위에 박이 지붕 가득 탐스럽게 열렸는데, 저 많은 박 중에는 흥부의 박과 놀부의 박이 한 통씩 섞여 있다며 올라​ 가서 골라 따갖되 딱 한번 한통만 딸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데... 팔자​ 를 고칠 기회를 잡는 것이나 곤욕을 치를 확률은 반반, 복권 당첨률보​ 다 훨씬 가능성이 높은 이 좋은 기회를 어찌 놓칠 수 있으랴. 사다리를​ 타고 조심조심 올라가 고르는데, 두드려 봐도 고것이 고것 같아 감이​ 안잡히고, 귀를 대어봐도 아무소리 들리지 않으니 알 재간이 없고, 아​ 무리 들여다보아도 모르겠으니, 조급하고 답답하나 그렇다고 그만 둘​ 수는 없는 일... 저쪽의 박이 특별해 보여 가보면 다른 쪽의 것이 달라​ 보이고 그쪽에 가서 보면 또 다른 쪽에 있는 놈이 그래 보이고...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다가 박 덩굴에 발이 걸려 지붕 아래로 나뒹굴었다. ​ "아이쿠" 눈을 번쩍 뜨니 햇살이 쨍쨍하다. ​ ​​​ 탐욕 - 2003.01.12 / 윤성의 - 끙끙 짊어지고 땀을 뻘뻘 흘린다 그냥 내려놓으면 벗을 수 있는 짐인데​ 버거워 허든거리면서도 놓지 못하는 허정한 짐. ​ ​​​​ 몸무게를 달며 - 2003.01.12 / 윤성의 - 저울에 올라서서 무게를 달아본다​ 육십㎏ 남짓하니 쌀 한 가마에도 못 미친다​ 그것도 썩으면 없어질 살덩이가 전부라는데. 풀에게나 벌레에게 또는 돌에게라도 따뜻한 눈길을 주고받을 줄 아는​ 그러한 무게를 단다면 얼마쯤이나 될까. ​ 채울수록 허기지는 뱃살을 뺄 일이다 가슴을 키우며 넉넉하게 키우며 때로는 감고도 볼 수 있는 그런 눈을 틔울 일이다 ​ ​ ​​​​ 개 이야기 - 2003.01.12 / 윤성의 - 지난 날 조선 개는 도둑을 짖었는데​ 요즘의 우리네 개는 소태 맛으로 웃는단다 개 같은 세상이라고 개들이 웃는단다. ​ ​​​​​ 이런 생각 - 월간문학 2001년 4월호 / 윤성의 - 가끔은 물처럼 사는 법을 배워볼 일이다​ 바가지 건 항아리 건 그릇 따라 맞춰 가며​ 그 잘난 쇠똥 고집을 다스리며 사는 일. ​ 행여나 사람이 물처럼 살 수 있다면 낮은 곳 따라내려 가닥가닥 추스르는 어느 날 바다 같은 세상 만날는지도 몰라. ​ ​​​​​ 소금밭에서 - 윤성의 - 바닷물은 얼마나 공덕을 쌓은 걸까​ 활활 타는 불볕에 다비식을 치르니 사리가 수북이 쌓여 햇살 속에 반짝인다. ​​​​​ 다리 - 현대문예 2002. 봄호 / 윤성의 - 물살이 넘실대는 강물을 가로질러​ 네가 건너오고 내가 건너가고​ 누구나 넘나들 수 있는 다리를 놓을 일이다. ​ 팔 벌려 손내밀면 이웃과 이웃인데​ 가까워도 먼 거리 흘긋흘긋 머쓱한 눈​ 우리들 사이사이로 흙탕물이 넘실댄다. ​ 이쪽과 건너편은 지척의 맞 바래기 단절을 꿈꾸는 강물의 음모 깨고 단절을 단절키 위한 다리를 놓을 일이다. ​ * 윤성의(1938-) 시인은 1938년 당진 출생 1990년 <농민문학> 신인상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충남문인협회 이사 당진문인협회 지부장(1대), 심훈문학상 초대 운영위원장 [작품] <꽃은 지기 위해 피느니>, <강을 좀 보게나>, <조선의 숨결>, <영탑사 금동삼존불> 등 * 시인 윤성의(전 면천우체국장)씨가 문단생활 20여년만에 처음으로 시조집을 펴냈다.(1998)‘꽃은 지기위해 피느니’라는 제호를 달고 나온 윤시인의 첫 시조집에는 물 흐르듯 자연에 순응하려는 순박 한 의지와 개발에 사라져버린 옛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을 찾아내 노래한 87편의 시조가 첫째마당 ‘세월간 자리’에서 넷째마당 ‘새벽이 눈을 뜰 때’까지 가지런히 실려있다. 가식 과 겉치레, 인공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평소 그의 성품이 그대로 배어있다고 윤시인을 아끼는 주위 의 문인들은 말하고 있다. ‘칭찬 일변도’의 작품해설을 뒷편에 따로 붙이지 않은 것도 독자들에게 전적으로 모든 평가를 맡기고 싶다는 윤시인의 뜻에서다. 30여년간의 공직생활을 지난해 마감하고 출 판일에 뛰어들어 제2의 삶을 시작한 윤시인은 “알몸으로 길거리에 나간 것 같다”며 첫 시집 출간의 소감을 밝혔다. 그렇게 부끄러우면서도 평생 손에서 펜을 놓지 않은 문인으로서 한번쯤 평가받고 싶 다는 욕심과 자신의 작품에 100% 만족해 시집을 내는 이는 없다는 친구의 독려에 힘을 얻어 시집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윤시인은 이미 ‘길거리에 나온만큼’ 이를 계기로 앞으로는 더욱 신중하게 글 쓰기에 임하겠다고 한다. 어쩌면 회갑기념이 될 이 시집은 윤시인이 직접 운영하는 도서출판‘글방’ 의 두번째 산물이다. 고시조와 현대시조 / 음악(손방원대금연주) / 시낭송(봉경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