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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韓國에서 발견된 甲骨文字에 관한 연구

이름없는풀뿌리 2006. 1. 13. 22:15

우리나라에서 은문[갑골문]이 고려말 충신 농은 선생 유품에서 발견되었다.

 

1899년 중국대륙 하남성 은허에서 갑골문이 발견된 이래 100여 년이 지난 현재, 은허갑골문과 완전 동일한 형태의 문자 및 중국대륙에서는 아직껏 발견되지 않은 갑골문자들이 우리나라에서 문서상의 기록을 통해 다수 발견되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1961년 두만강 유역의 함북 무산읍 호곡동을 시초로 하여 경남 김해시 부원동 및 김해시 봉황동, 삼천포시 륵도, 전남 해남군 군곡리 등에서 중국의 것과 재료, 방법, 행위 및 목적이 동일한 복골이 속속 발굴되어 왔지만 안타깝게도 문자가 새겨진 복골은 아직껏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고려말 충신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자,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도은 이숭인, 야은 길재, 수은 김충한과 함께 6은으로 불리웠던 農隱 閔安富 선생의 유집에서 발견된 天符經文에서 중국대륙에서 발견된 것들과 동일한 글자, 즉 학계에서 갑골문자라 부르는 것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본론 부분에서 상술하겠지만 비교대조 결과, 천부경에 기록된 문자들은 대부분 명백한 갑골문자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갑골문은 1899년에 중국대륙에서 최초로 발견된 것이고, 『說文解字』를 지은 후한의 문자학자 許愼조차도 갑골문을 몰랐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지금으로부터 약 650년 전의 인물인 농은 선생이 중국대륙 은허에서 발견된 갑골문을 보고 천부경을 작성했을 수는 없는 일이니, 이러한 사실은 갑골학 역사에 있어 일대 사건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농은유집 천부경이 갑골문이라 불리우는 殷文으로 작성되었음을 기존 갑골문 및 金文과의 비교를 통해 문자학적으로 고증을 하고 또 그러한 사실을 학계에 알리기 위한 것이다.

 

중국대륙에서는 아직껏 발견되지 않았거나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미해독된 갑골문자들이 농은유집 천부경문에 다수 발견·확인됨으로써 기존 갑골학계에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농은유집 천부경 문자들을 분석한 결과, 약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기존 갑골학의 일부 문제점들이 드러나 갑골학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는 성과가 있었고, 그동안 단군 시대의 石本 『三一神誥』 箕子 시대의 檀本 『三一神誥』와 함께 한 쌍으로 당연히 존재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석본 및 단본 천부경문의 분실로 인해 고구려 이후 번역되고 한문으로 해석되어 전해 내려온 기존 천부경본들에 보이는 일부 오류 ― 예를 들어 ‘新三極’을 ‘析三極’이라 한 점 ― 및 그에 따른 오해들이 해소되어 상고사를 비롯한 제반 연구가 보다 활기를 띠게 될 것으로 예상되며, 금번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천부경문은 향후 갑골학계를 비롯한 세계어문학계에 지각변동을 가져오게 할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서문 중에서―

 


◆기존 태백일사본과 다른 글자는 총 네 개로 다음과 같았다.

 

농은유집본
태백일사본
三極(삼극)ddd
三極(삼극)ddd
合(대합)ddd
合(대합)ddd
無궤三(무궤삼)
無궤三(무궤삼)
七八九(칠팔구)
七八九(칠팔구)

 

◆농은유집 천부경 고문을 해독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一始無始一 일시무시일
新三極無盡本 신삼극무진본
天一一地一二人一三 천일일지일이인일삼
一積十鉅無?從三 일적십거무궤종삼
天二三地二三人二三 천이삼지이삼인이삼
大氣合六生七八九衷 대기합육생칠팔구충
三四成環五七一妙衍 삼사성환오칠일묘연
萬往萬來用變不動本 만왕만래용변부동본
本心本太陽 본심본태양
昻明人中天地一 앙명인중천지일
一終無終一 일종무종일

 

 

Ⅳ. 結 論

 

세상의 풍파, 즉 전란과 국가지도자의 편향된 통치철학 및 이념으로 인한 기존 문물의 배척 등과 같은 이유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잊혀졌던 은허갑골문이 100여 년 전에 은나라의 도읍지 안양에서 발견된 데 이어, 금번 한국에서 갑골상이 아닌 지면상에서 은문으로 쓰인 천부경 81자 全文이 발견되었으니 이는 갑골학을 다시 쓰게 하기에 충분한 역사적 대사건이다.

 

본론 부분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금번 새로이 발견된 농은유집 천부경본에 수록된 각각의 문자들을 중국대륙에서 기발견된 갑골문과 금문과의 비교분석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천부경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는 소위 殷文임을 확인하였다. 농은유집 천부경본은 한걸음 더 나아가 기존 갑골학계의 성과를 뛰어넘어 오류가 있는 것(예: 地)은 교정케 해주고, 不明인 것(예: 太, 環, 動)은 명확히 밝혀주며 미발견된 것(예: 衷, 妙, 極, 本, 鉅, ? 등)은 새롭게 발견됨으로써 그 스스로 진본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는 실로 귀중한 문자학 자료였다.

 

이처럼 경전 전문이 현존 최고 동방문자로 알려진 은문으로 쓰여진 완벽한 형태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최소 600년 이상 전에 갑골 표면이 아닌 종이 위에 붓으로 기록된 예 또한 최초의 사건이다. 은허갑골문에서 발견된 문장들의 내용은 주로 점을 치는 것에 관계된 것들이지만, 이처럼 경전이 다양한 이체자와 함께, 그것도 한문으로 번역되어 오랫동안 전해내려 온 기존 해석본들이 있는 상태에서 발견된 점 또한 갑골학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따라서 농은유집 천부경문은 문자학계뿐 아니라 천부경을 연구하는 국내외 많은 인사들에게도 새롭고 보다 구체적인 자료 및 천부경 부흥에 있어 촉매제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속칭 한자라고 불리우는 동방문자의 시원은 중국 25사에서 東夷로 표현되는 우리 민족에게 있다. 현금 각종 유물의 발견 등으로 인해 중국의 사학자 王玉哲, 張文 및 대만의 문자학자 李敬齋 등은 여러 가지 유물을 객관적으로 고증하여, 한자는 東夷族의 문화인 앙소문화, 대문구문화, 용산문화 등을 거쳐 약 3,400년 전의 은대 ‘갑골문’으로 발전된 문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존하는 桓檀古記, 三一神誥奉藏記, 금번 발견된 농은유집 천부경 등과 같은 우리측 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동방문자[漢字]는 殷文[甲金文]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은문은 다시 단군의 篆文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檀篆은 또다시 신시의 녹도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시 말해, 은문 천부경본 이전에 단군의 전문 천부경 석본 및 환웅의 녹도문 천부경본이 있었다고 했으니, 아직 구체적인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은문 이전에 그 원형이고 그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판단되는 檀篆과 또 그 이전의 신시 녹도문이 있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농은유집본은 다른 본들과는 달리 최치원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太白逸史 소도경전본훈에는 “천부경은...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온 후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녹도문으로 그것을 기록케 했다. 崔孤雲 致遠은 역시 일찍이 (단군 때의) 신지가 篆文으로 쓴 것을 옛 비석에서 보고 다시 이를 첩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하게 된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전술한 바와 같이 농은유집본은 기자조선 당시에 王受兢이 은문으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최치원이 본 檀篆 천부경본과는 다르다.

 

글로 된 문화유물의 발견은 전설을 실제화할 수 있다. 불과 10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설의 왕조에 지나지 않던 동철족의 殷왕조가 안양에서의 갑골문 발견으로 인해 사실로 입증되어 이제는 그 누구도 “은나라는 전설상의 나라에 불과하다”는 허언을 하는 이가 없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번 발견된 은문 천부경본으로 인해 발해 文王이 증언한 『삼일신고봉장기』에 실려 있는 箕子와 王受兢에 얽힌 이야기는 사실로 입증되었다. 따라서 『삼일신고봉장기』에 나오는 그 이외의 기록, 즉 환웅과 단군 시대에 관련된 내용도 은문 천부경본에 포함되어 있는 신시 숫자[산목]가 그 증거이니 한낱 전설적인 이야기 식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며, 부분적인 오류에 대한 비평이 아닌 『桓檀古記』 전체를 위서로 매도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시 말해, 농은유집 천부경은 기자시대를 입증할 뿐 아니라, 기자가 단군의 천부경을 은문으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단군시대까지 실증하는 것이며, 또 단군은 환웅의 천부경을 이어받은 것이기 때문에 환웅까지도 역사의 실존인물로 증거하는 국보급 문화유물이자 세계유산이다.

 

마지막으로, 중국대륙에서는 소어깨뼈나 거북등껍질 등에서만 발견된 속칭 갑골문자가 우리나라에서는 지면 위에 필묵으로 쓰여진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기록재료를 바탕으로 한 ‘갑골문’이라는 명칭은 재고되어야 하고 앞으로는 殷文으로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결론을 맺는다.

 

                                                                                                                   2002년 9월

                                                                                                                眞鋼  朴大鍾

 

출처: http://www.hanja.co.kr/

 


 
출처 : 블로그 >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 글쓴이 : 치우천왕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