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影池)는 경덕왕 10년(751) 재상 김대성(金大城)이 불굴사를 지을때,
옛 백제지역 출신의 석공 아사달(阿斯達)과 그의 아내 아사녀(阿斯女)의
애달픈 전설이 서린 곳이다.
▲영지(影池)
황룡사 9층탑을 만든 백제 아비지의 후예로써, 불후의 걸작인 다보탑과 석가탑을
완성하기에 여념이 없던 남편 아사달을 밤낮 그리워 하다, 여인의 몸으로 멀고 험한
이곳 서라벌까지 찾아온 아사녀는, 남편 아사달을 금방 찾아 뵈질 못하고 탑이 완성
될 때 까지 기다려야 했다.
한편, 아사달은 사랑하는 아내 아사녀가 이곳 서라벌 까지 남편을 찾아 왔다는
사실을 모른체 열심히 돌을 빚고 다듬었다.
그리워 눈물 짓는 아사녀에게, 불국사 스님께서 어디메쯤에 있는 영지(影池)란
연못에 가면 토함산이 비치고, 탑을 만들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비칠것이란 소리를
해주어 이 연못을 찾았다.
연못은 남편의 모습이 비치기는 커녕, 애잔한 물결만 일었는데, 어느날 바람이
자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물속에 탑의 환영(幻影)이 비치었다.
얼마나 그리웠던가~
오매불망 그리워 하던 남편의 모습이 물결에 비치자, 자신도 모르게 그만 물 속으로
뛰어 들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드디어 탑을 완성했는데, 서라벌에 왔다는 아사녀의 소식을 그때서야
듣게된 아사달은 황급히 영지를 찾았으나 이미 아내는 죽고 없었다.
그리움은 아사녀에게만 있었던게 아니었다.
남편 역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내 아사녀가 너무도 그리웠었다.
어느날, 아사달이 아내의 죽음을 애썩해 하다 아사녀를 부르며 통곡하다 연못속에
뛰어 들었는데 그때 못에 그림자가 비친탑을 유영탑(有影塔), 비치지 않는 석가탑을
무영탑(無影塔)이라고 하였다.
지금도 못가에는 옛날 두 사람을 위해 지은 영사(影寺)의 돌부처가 남아 있으며,
늦가을 맑은날 오후에는 불국사가 있는 토함산의 그림자가 못에 비치기도 한다.
▲ 둑에서 본 영지의 전경
"애인 뒤따라 목숨 끊은 순애보" (부산=연합)
교통사고로 숨진 애인을 그리워 하던 20대 여성이 애인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4일 오후 1시 10분께 부산 남구 대연동 모 모텔에서 A(26.여)씨가 빨랫줄로 천장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모텔 주인 최모(45)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 했다.
최씨는 경찰에서 "A씨가 23일 오후 3시께 투숙한 뒤 24일 점심때 까지 나오지 않아
열쇠로 방문을 열어 보니 목을 매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A씨는 "남자 친구가 죽고난 뒤 살아갈 이유를 잃었다. 짧은 26년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모텔에 남겼다.
A씨의 일기장에는 '지금까지 많은 남자의 유혹이 있었지만 이 남자만 사랑했다',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남자 친구가 바빠 점심 때 잠시 만나 너무 섭섭하다'는등
죽은 애인에 대한 애절한 감정이 담긴 글들이 적혀 있었다.
어머니 B(64)씨는 "1개월 동안 사귀어 오던 딸의 남자 친구가 이틀전 교통사고로
죽자 딸이 이틀 동안 자기방에 틀어 박혀 나오지 않고 힘들어 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애인이 사고로 죽은 날 이후로 A씨가 일기를 적지 않았지만 남자
친구와 사귄 1개월간 쌓인 깊은 사랑의 감정이 일기장 곳곳에 배어 있었다"며 A씨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
죽은 두 남.녀의 사랑이 얼마나 신성하고 훈훈한 것인지 참으로 아름다운 오전이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어 저 세상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우길 기도 해본다.
'영혼결혼식'이라도 치뤄 줄 수 있길...
-여울-
[음악은 휘리아님 사이트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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