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206

<김회직> 반구의고독 / 검은그림자 / 토끼풀 / 뿌리 / 길만들기 / 햇빛

​ 반구의 고독 [신작시조] 대한민국시조시인 김 회 직 (森木林=sammoglim) *이 글은 지적재산임으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음* 고독이 나를 안고 반은 깔리고 반은 떴다.​ 만상이 죽은듯이 숨소리도 찌렁 우는 밤 커다랑게 쪼개저 입 벌리고 있는 우주의 중심 너는 발 밑에서 꿈틀대다 작열하여 열망을 불태우는 손끝을 벗어나 머리위에 반짝이는 별이 되고 나는 사위가 절연된 중심에서 허덕이는 일점 혈육 팔다리 휘둘러 아 팔다리 휘둘러 혈관을 퉁겨 먹물을 찍어 원을 그린다 동그래미가 제멋대로 쪼개저 버린 원반 속에 사랑과 미움이 진공이 되어 아귀다툼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이 강물 너는 나의 부름에 하늘에서 무수한 별로 울고 너는 나의 부름에 무수한 비로 울어​ 너와 나 저 깊은 바다 속에서 소금으로 만나랴..

<백윤석> 백자속에뜬달/문장느루/문장느루2/마지막편지/스팸메일

​ 백자 속에 뜬 달 - 백윤석 - 오늘도 어김없이 백자 속에 달이 드네 어머니가 신주 모시듯 정성스레 닦아 놓은 누구도 가져가지 않을 저 백자 저수지. ​ 삼대가 모여사는 인적드문 초가집 새 달을 받기 위해 비워둔 그 속으로 뒤섞인 노오란 달은 경계없이 떠오르고. ​ 어머니는 달빛 뿌려 두엄을 만들어 호박이랑 채소랑을 맛나게 키우시네 빛나는 달빛을 받아 더 싱그런 저 빛깔. 문장부호, 느루 찍다* - 백윤석 * 2016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점 하나 못 챙긴 채 빈 공간에 갇히는 날 말없음표 끌어다가 어질머리 잠재우고 글 수렁 헤쳐 나온다, 바람 한 점 낚고 싶어 ​ 발길 잡는 행간마다 율격 잠시 내려놓고 어머니 말의 지문 따옴표로 모셔다가 들레는 몇 몇 구절을 초장으로 앉혀야지 ​ 까짓것, ..

<백윤석> 밤하늘 / 크레파스 / 도장집박씨 / 그림자 / 낙엽

​ 밤하늘 - 백윤석 - 어슬렁이는 추억을 미끼로 매어 달고 밤하늘에 낚시대를 길게 누워 드리우면 눈 멀은 작은 별 하나 깨작깨작 신호하네. ​ 길가에 나트륨등 드넓게 핀 빛 부러워 온 몸 살라 남늦은 별빛 달빛 흉낼 내다 기어이 제 빛 마져 잃고 달빛에 넘어가네. ​ 낚시 걸린 별을 따다 등불로 매어달고 어린 시절 별 헤던 추억에 잠기노라면 서러운 가슴 달래던 그 별 아직 깜빡이고. 크레파스 - 백윤석 - 색색의 병정들이 갑옷을 두르고 불려갈 날 기다리며 사열하고 서있네 어떤 건 불려 나갔다가 동강나 돌아오고 ​ 아마도 바깥세상은 치열한 전쟁터인듯 불려나간 것들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곳곳에 선혈을 묻히고 돌아오는 귀향길 ​ 개중에 온전한 것은 빈자리를 지키고 순국한 동료들을 애도하고 섰는데 그래도 한번..

<백윤석> 강 / 거미 / 안나를보며 / 마흔의강가에서 / 발자국

​ 강 - 백윤석 / 2003/05/04 - 온 세상 곳곳으로 흐르던 강물이 높고 낮음 필요 없는 사람들 사이로 흘러 깊고 긴 장벽 쌓으며 서로를 가른다 ​ 낮은 데로 향한다는 가증스런 강의 위선 장벽 위에 우뚝 서 바라만 보는 그들 갈수록 더 깊어만 가는 사람 사이 깊은 골 ​ 우리는 어찌하여 다리를 놓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고 발만 동동 구르는가 하찮은 징검다리도 놓고 나면 편한 것을. ​ 거미 - 백윤석 / 2003/04/30 - 휘어진 여름의 허리를 감아 감아 열린 하늘 틈새로 새어 나는 물레 소리 조상의 슬픈 전설을 이우며 실을 짠다 ​ 흉측한 신의 형벌도 재주는 어쩌지 못해 곱디 고운 은실로 짠 끈적한 삶의 요람 지나는 날벌레들의 영혼을 뒤흔든다 ​ 은빛 그네 넋 잃은 너희가 잘못이다 아아! ..

<백윤석> 나눔에대하여 / 두물머리에서 / 낙엽 / 담쟁이 / 모란장

​ 나눔에 대하여 - 백윤석 / 2004/02/10 - 벌이 꽃에서 꿀을 따나, 꿀을 따 가나 영롱한 그 빛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처럼 나눔은 늘 베풀어도 채워지는 요술 주머니 두물머리에서 - 백윤석 / 2003/12/08 - 산도 피곤하면 몸을 뉠 줄도 알아 푸른 물 한가운데 이부자릴 펴놓고 물안개, 상념으로 피는 호숫가를 넘나든다 땅거미 뉘엿뉘엿 어둠을 불러내어 노을빛 물가에 담금질로 몸 불리면 술 취해 뒹굴던 하늘도 까무르룩 잠이 든다 씨나락 같은 말들이 치렁치렁 늘어진 버들가지 잔소리에 바람이 휘휘 저여 달 낚는 나그네 삿대, 먼 발길 휘어잡고 하늘이며 산이며 나무며 들꽃이며 드넓은 가슴으로 모두 안아 재우는 밤이어도 아! 나는 두물머리에 찍힌, 잠 못드는 점 하나 낙 엽 - 백윤석 / 2003/1..

<이구학> 꽃은/쓴맛을보여주마/대/시조공부/봄의웃음/겨울햇살

꽃은… - 이구학 / 2001/12/17 / 2001년 샘터상 시조부문 장원작 - 꽃은… 피는 게 아냐 그리움이 터진 거지… 내 온몸의 피가 피가 열꽃되어 터진 게야… 꽃비로 당신 적시려 혼(魂)을 활활 태운 게야… ​ 쓴맛을 보여주마 - 이구학 / 2001/12/17 / 열린시조 2001년 겨울호 - 쓴맛을 보여주마 쌉쌀한 맛 보여주마​ 쓴맛은 진정제야, 심장을 안정시키고 피로 회복에 좋으며 입맛이 없을 때 그 맛을 당겨주나니, 열을 내려 염증을 낫게 하고 통변을 돕느니, 발끈 신경질을 잘 내거나 제 뜻대로 안 된다고, 팽그르르 돌아않는 그대여 먹어 보라. 오대 점봉 방태 가리왕 박지 용문 회문 지리산의, 진부 정선 인제 원통 순창 남원 화계 장터에 쓴맛 나는 파 쑥새 씀바귀며 구기자, 상추에 쇠귀나물..

<이구학> 할미꽃 / 예언 / 목욕탕에서 / 맨드라미 /열쇠

할미꽃 - 이구학 / 2002/08/16 - 하고픈 말 하 많아도 내 꾹 눌러 참았다. 머리론 하늘이고 발론 땅 옴키고도... 팽팽한 세월이 조인, 울 할머니 허리여! 예언(豫言) - 이구학 / 2002/07/13 / 열린시조 2002년 여름호 - 휘날리던 태극기가 몸살을 앓고 있네.​ 한 예언자 있었다네, 동방 땅 한 켠에다 상을 하나 차렸다네, 가운데 큰 사발놓 고 수라상을 차렸다네. 사발에 S자 눕혀 굽이굽이강 그린 후에 강북에는 진달래 꽃 강남에는 푸른 하늘 四方의 귀에다는 손님접대 잘하라고 젓가락도 가지런히, 가지런히 놓았다네. 젓가락 들고서 둘러앉은 손님들 어쩌면, 어쩌면 잘도 잘도 차렸구나 한 점이라도 더 먹겠다고 아옹다옹 치고받아 다 먹은 뼈다귀를 슬그머 니 귀에 놓았다네. 서북방엔 긴뼈 ..

<윤성의> 대숲에/백제의/개꿈/탐욕/몸무게/개이야기/이런생각/소금밭/다리

대숲에 서면 - 2004.01.06 / 윤성의 - 객적은 뱃살이 시덥잖아 보이던가​ 무에 그다지 채울 게 많더냐 고​ 가볍게 되도록 가볍게 비워보라 귀띔하네. ​ ​ 백제의 눈빛 1 - 금동용봉봉래산향로- /2003.04.13 / 윤성의 천 몇 백년 그 긴 잠 함묵의 굴속에서 망국 한 곰 삭혀온 금동 용봉봉래산향로 역사를 뛰어 넘어서 어둠 씻고 눈뜬다. ​ 누가 백제를 죽었다 말하는가​ 몸 비록 흩었어도 혼 불은 이었거니 긴 세월 잊혔던 불빛 오늘 다시 비치나니. ​ 왕조는 묻혔건만 그 얼은 되살아서​ 뜸직한 얼굴로 역사 앞에 나앉으며​ 억지에 눈감긴 세월 벗으라 눈짓한다. ​ ​​ 개꿈 - 2003.01.12 / 윤성의 - 나른한 오후 달디단 낮잠에 들다 ​ 한적한 시골 마을, 초가 지붕 위에 박이 지..

<심성보> 어항 / 서시 / 파도지나간자리 / 당신이있어 / 시조한수

어항 - 심성보 / 하늘빛 고운 당신 / 그림공장 / 2004년 10월 - 부릅뜬 퉁망울눈 못생긴 흑붕어 한 놈 뽐내는 금붕어 열 놈 한방에서 해작해작 언제나 기죽지 않고 흑붕어는 씩씩해 * 작품해설 : 아름다운 빛깔과 몸매로 한껏 뽐내는 금붕어들 속에 외양도 빛깔도 섞일 수 없는 흑붕 어, 그러나 주변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삶을 구가해가는 줏대 있는 삶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단순히 아이들 눈에 뵈는 것만 그린 것 같은 동시조이지만 깊은 뜻을 담고 있어 어른 독자들을 불러 모으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어항은 공존과 조화의 장이다. 황금일색의 금붕어만으로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어항에 흑붕어 한 마리가 섞여 있어 보기에도 좋다. 열 마리 속에 놓인 흑붕어의 심사는 움 츠리고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

<이태극> 서해상의낙조/삼월은/산딸기/짝은떠나고/자화상/시조송

서해상의 낙조 - 부제 : 탐라시조기행초 / 월하 이태극, 1957 / (1957) - 어허 저거, 물이 끓는다. 구름이 마구 탄다. 둥둥 원구(圓球)가 검붉은 불덩이다. 수평선 한 지점 위로 머문 듯이 접어든다. ​ 큰 바퀴 피로 물들며 반 남아 잠기었다. 먼 뒷섬들이 다시 환히 얼리더니 아차차, 채운(彩雲)만 남고 정녕 없어졌구나. ​ 구름빛도 가라앉고 섬들도 그림진다. 끓던 물도 검푸르게 잔잔히 숨더니만 어디서 살진 반달이 함(艦)을 따라 웃는고 삼월은 - 1984 중학교 교과서 수록 / 월하 이태극 - 진달래 망울 부퍼 발돋움 서성이고 쌓은 눈도 슬어 토끼도 잠든 산 속 삼월은 어머님 품으로 다사로움 더 겨워. ​ 멀리 흰 산이마 문득 다금 언젤런고 구렁에 물 소리가 몸에 감겨 스며드는 삼월은 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