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 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 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며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또 다른 고향
-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 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魂)이 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세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작품해설 : 이 시는 1941년 9월 연희전문학교 졸업반 때 쓴 작품이다. 인간은 누구나 현실에 바탕
을 둔 내면세계와 탈(脫)현실의 단면을 띤 또 다른 내면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고향마저도 실
재하는 현실적 고향과 스스로 그려서 이룩해 낸 탈현실의 고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시는 현실적
자아가 누워 있는 ‘고향’(만주 용정)과 이상적 자아가 도달하고자 하는 ‘또 다른 고향’(정신적
안식처)을 두 축으로 설정하여 그것들이 서로 엇갈리는 가운데 빚어지는 고뇌와 불안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는 ‘고향’과 ‘또 다른 고향’이 한 대응 체계를 이루고 있는 한편, ‘백골’
과 ‘나’와 ‘아름다운 혼’으로 빚어진 또 하나의 대응 체계가 있다. ‘나’는 개인적 자아 · 본
래적 자아요, ‘백골’은 사회적 자아 · 유한적 자아로 이 둘은 모두 현실적 자아를 의미하고, ‘아
름다운 혼’은 종교적 자아·영원한 자아로 이상적 자아를 뜻한다.
현실적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백골’이라는 피압박의 자의식이 ‘나’를 따라와 함께 눕는다.
‘어둔 방’으로 표현된 불안과 고독의 절망적 분위기 속에서, 본래적 자아인 ‘나’와 사회적 자아
인 ‘백골’과 이상적 자아인 ‘아름다운 혼’으로 분열된 자아가 하나로 통합되어, ‘백골을 들여다
보며 / 눈물짓는’ 자아 성찰의 몸부림을 한다. 그러나 ‘나’는 ‘고향’과 ‘백골’을 벗어나 ‘또
다른 고향’과 ‘아름다운 혼’의 차원으로 승화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고향’과 ‘또 다른 고
향’, 그리고 ‘백골’과 ‘아름다운 혼’은 화합을 이루지 못한 채 끝끝내 대립을 이루게 된다.
‘고향’의 어두운 방에 ‘백골’로 누워 괴로워하고 있는 그 때, ‘나’를 ‘또 다른 고향’인 ‘우주’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한다고 했음)로 승화시켜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바람’이 불어오고 ‘어둠
을 짖는 개’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아름다운 혼’을 지향하는 지조(민족정기) 높은 그 ‘개’는
‘백골’과 등가(等價)를 이루은 ‘어둠’을 떨쳐 버리기 위하여 밤을 새워 짖는다. (‘백골’은
‘소리처럼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풍화작용을 하여 소멸하는 것이고, ‘어둠’은 ‘밤을 새워 어
둠을 짖는 개’의 울음소리로 점차 사라지는 것이기에 이 두 사물은 등가를 이룬다.) 결국 이 작품은
현실적 공간을 뛰어넘어 밝고 넓은 초현실의 공간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영원한 삶에 대한 동경을 노
래하고 있는데, 이 몸부림을 더욱 자극시키고 채찍질하는 것이 바로 소리처럼 느껴지는 ‘바람’과
‘지조 높은 개’가 밤새워 우는 ‘울음’인 것이다.
참회록(懺悔錄)
- 1942년 1월 24일 /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滿) 이십 사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 왕조의 유물. 식민지 치하의 치욕스런 민족적 현실, (녹 : 민족(망국),
개인(적극적이고 의롭게 살지 못한 부끄러움) )
* 내 얼굴 → 욕된 망국인의 모습(무기력한 자아)
* 어느 왕조 → 일제에 망한 조선 왕조
* 이다지도 욕될까 → 감당할 수 없는 치욕감, 무능한 조상들에 대한 반감 및 젊은 나이로 헛되이 보
내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
* 한 줄에 줄이자 → 부끄럽고 무의미한 삶이었기에,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다.
* 이십사년 일개월 → 지나온 삶의 전부
*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 지난 삶(기쁨없는 삶=죄악)에 대한 뼈저린 회한
*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현재의 참회에 상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
식한 데서 비롯된 것
* 부끄런 고백 → 역사적 시련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소극적 고백이나 하였던 자신에 대한 자책감
* 밤이면 밤마다 → 민족의 현실이 암울할수록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 온몸으로, 혼신의 노력
* 거울을 닦는 행위 → 투철한 자아성찰, 흐트러진 민족의 현실을 가다듬어, 민족적 자아를 되찾고
시대적 양심을 실현하려는 노력
* 운석 → 별의 잔해(별똥)로서, '죽음'을 연상케하는 시어, 파괴와 소멸과 절망의 세계(식민지의 암
울한 현실)
* 슬픈 사람의 뒷모양 → 암담한 현실 상황 속에서 욕된 역사에 대한 책임을 홀로 지고 참회하는 망
국인의 슬픈 뒷모습
* 윤동주와 창씨개명
윤동주의 시 '참회록'의 말미에는 이 시를 쓴 날짜가 1942년 1월 24일로 적혀 있다. 물론 이 날짜는
그 이전부터 숱한 생각을 되풀이하며 써 오던 작품을 마침내 완성해서 최종적으로 적어 놓은 것이겠
다. 윤동주는 '참회록'을 완성하기 한 달 전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1941년 12월 27일)하고 고향에
돌아와 있었다. 1941년 12월 8일, 일제는 진주만을 기습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는데, 이러한 급박
한 시국에 따른 학제 단축으로 졸업이 2~3개월 정도 앞당겨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윤동주는 서울 유
학을 마치고 고향인 북간도 용정으로 돌아와 겨울을 보내면서 '참회록'을 쓴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서울로 와서 모교인 연희전문학교에 '평소동주(平沼東柱)'로 창씨개명한 이름을 계출하였던 바, 연전
학적부에 그 계출한 날짜가 정확히 1942년 1월 29일로 기록되어 있다.
윤동주가 창씨개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가려면 도항 증명서를 발급받아야만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창씨 개명을
할 도리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윤동주가 동경에 있는 릿쿄(立敎) 대
학 영문과에 입학한 것은 1942년 4월 2일이었다. '참회록'은 이러한 행적과 관련된 시인의 고뇌가 가
득히 어려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창씨개명계를 제출하기 불과 닷새 전에 이 시를
완성해서 적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해 치욕스럽게도 창씨개명계를 내야
했던 그 즈음의 시인의 내면을 '참회록'에서 고백하고 있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즉, 일본
유학을 결정하고 그를 위해 자신의 손으로 창씨개명계를 제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각오했을 때,
그 뼈아픈 욕됨으로 인해 쓰인 시가 곧 '참회록'이라는 것이다.
-류양선, '윤동주의 '참회록' 분석', "한국 현대 문학 연구" 제25집, 한국현대문학회, 2008
십자가(十字架)
-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작품해설 : 연희전문 졸업반에 재학 중일 때(1941.5.31.)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시는 순절정
신(殉節精神)과 속죄양(贖罪羊) 의식을 바탕으로 한 자기희생의 이념을 표출하고 있어 휴머니티의 백
미(白眉)로 손꼽힌다. 여기에서 ‘십자가’는 기독교의 징표나 형벌의 도구를 의미하는 습관적 상징
만이 아니라, 종교적 또는 도덕적 생활의 목표를 의미하는 개인적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길
- 윤동주 / 1941.11.29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
잃어버렸습니다.
누얼 어디가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둘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사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작품해설 : 연희전문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1941년 9월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시는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결연한 자세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윤동주의 시는 대부분 자아 성찰
을 통한 자기 완성을 지향하는 특징을 갖는데, 그 자아 성찰의 공간으로 등장하는 것이 주로 ‘방’
· ‘우물’ · ‘길’ 등의 이미지이다. ‘길’은 출발과 도착, 그리고 탐색의 과정을 지닌 행위의
공간이므로 ‘길’의 공간성은 항상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지닌다. 그러나 그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
정으로의 ‘길’에는 반드시 겪어야 할 시련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길’은 시련의 극복이라는 정신
적인 세계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시에서의 ‘길’은 자기 성찰과 자시 수련을 통해 식민지 시대를
극복하고 본질적 자아를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1연에서는 상실의 상황과 그 상황에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을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또한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으며 길
을 나서고 있다. 여기서 주머니를 더듬는 행위는 길을 나서는 행위와 대비되는 것으로, 결국 두 손은
두 발로, 주머니는 길이라는 확장된 공간으로 점차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머니는 길에 비해
작고 내밀한 공간으로 화자의 내면과 상통한다. 그러므로 두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는 화자의 행위는
곧 잃어버린 대상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해 있던 것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2연에서는 화자가 걸어가는 길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 길은 돌이 끝없이 연달아 이어져 있는 돌
담을 끼고 가는 길이다. 여기에서 돌담이 길을 안쪽과 바깥쪽으로 갈라놓았기 때문에 그 길을 걷고
있는 화자로서는 결코 돌담 안쪽을 들여다볼 수 없다. 그 곳은 바로 화자가 회복해야 할 이상적 자아
의 세계이지만, 돌담이 그 길과 평행 상태로 끝없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화자는 그 곳에 도저히 도달
할 수 없다. 따라서 돌담은, 자아의 안과 밖, 현실과 이상을 갈라놓으며 끝없이 계속되는 우리네 삶
의 과정을 의미한다.
3연에서는 돌담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이 긴 그림자를 드리운 채 쇠
문으로 굳게 닫혀 있다고 함으로써 절망적 상황임을 암시해 준다.
4연에서는 시간 속에서 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과정으로서의 길의 의미를 형상화하고 있다. 길의
진행은 곧 시간의 경과를 의미하는 것으로,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며, 또한
산다는 것은 화자처럼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탐색 과정인 것이다.
5연에서는 부끄러움을 통한 자아의 갈등과 각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상적 자아를 회복할 수 없음을
깨달은 화자가 쳐다본 하늘은 현실적 자아를 일깨워 주는 지고(至高)한 존재로 그에게 부끄러운 마음
을 갖게 한다. 이 부끄러움이야말로 윤동주 시 세계의 기본 바탕을 이루는 것으로, 준엄한 자기 성찰
을 통한 자기 완성을 지향하게 해 주는 원동력인 것이다.
6.7연에서는 삶에 대한 화자의 태도를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풀 한 포지 없는’불모의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존재해 있는 잃어버린 자아, 즉 본질적 자아를 찾기 위함이다. 화자는
‘긴 그림자가 드리운’ 돌담 같은 어둡고 절망적인 현실 상황 속에서도,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기 위함이라고 독백을 한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진정한 인간적 삶을 추구하기 위해
악랄한 식민지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아 회복의 길을 걷던 윤동즈의 결연한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간(肝)
- 윤동주 / 1941.11.29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우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려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龍宮)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프로메테우스.
* 둘러리 : ‘둘레’의 방언
* 프로메테우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타이탄족의 영웅. 제우스를 속여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어
인간의 영웅이 되었으나, 제우스의 노여움을 받아 코카서스 산의 큰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
아 먹히는 형벌을 받았다. 후에 헤라클레스에 의해 구출되었다.
* 동서양의 두 설화(동양의 구토지설과 서양의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접목시켜 인간의 양심과 존엄성
을 회복하고 지키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으로, 두 설화를 접목시킬 수 있는
매개체는 바로 '간'이다. 순간의 유혹에 빠져 자신의 간을 잃을 뻔했다가 기지를 발휘하여 간을 지켜
내는 토끼와,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주었다는 죄 아닌 죄를 짓고서 코카서스 산정의 바위에 매달려
독수리에게 끝없이 간을 먹히는 고통을 당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처지를 접목시켜, 시인 자신의 현실
대응자세를 형상화하고 있다. 구토지설은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의 항거 의식 및 위기를 기지로 모
면하는 지혜를 주제로 하는 설화이며,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자기희생적 인물을 통한 속죄양 의식을
다룬 설화이다. 1연과 2연을 보면, '습한 간'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이미 용궁을 갔다 온, 즉 위기로부
터 벗어난 상태가 제시된다. 그런데 여기서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라는 말이 언급됨으
로써 두 설화는 하나로 결합된다. 시적 자아는 유혹에 빠져서 젖은 간을 말리면서 또 다른 적을 대비
해 그것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3, 4연에 오면 시적 화자는 간을 자신이 기른 독수리에게 뜯어 먹게
한다. 여기서 독수리는 적대적인 대상이 아니라 시적 화자와 또 다른 표상으로서 정신적 자아를 의미
한다. 정신 세계의 피폐함을 '여윈 독수리'로 나타내어 육체적 희생을 통해서라도 정신을 살찌우고자
하는 의지가 나타나 있다. 5연에서는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것에서 자
신의 생명과도 같은 양심을 저버리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결의를 보여 준다. 6연에 이르면 프로메
테우스의 고통스러움에 대한 연민을 보인다. 고통을 숙명적으로 인내해야 하는 프로메테우스를 '끝없
이 침전한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희생적 고난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려는 정서가 반영
되어 있다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적 화자는 '토끼'와 '프로메테우스'를, 식민지 시대를 살면서 생명
과도 같은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다.
* 윤동주(尹東柱, 1917-1945)
1917년 북간도 명동촌(明東村) 출생
1925년 명동소학교 입학
1929년 송몽규(宋夢奎) 등과 문예지 『새 명동』발간
1932년 용정(龍井)의 은진중학교 입학
1935년 평양 숭실중학교로 전학
1936년 숭실중학 폐교 후 용정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전입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
1939년 산문 「달을 쏘다」를 『조선일보』에 동요 「산울림」을 『소년』지에 각각 발표
1942년 일본 릿쿄(立敎)대학 영문과 입학, 가을에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로 전학
1943년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
1945년 2월 16일 큐슈(九州)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옥사
시집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유고시집, 1948), 『별을 헤는 밤』(1977), 『윤동주 시집』
(1984), 『윤동주자필시고전집』(1999)
<요약>
일제강점기에 짧게 살다간 젊은 시인으로,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고민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이러한 사상
은 그의 얼마되지 않는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으며, 기독교인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본관은 파평
(坡平)이며, 아버지는 윤영석(尹永錫), 어머니는 김룡(金龍)이다. 1931년(14세)에 명동(明東)소학교
를 졸업하고, 한 때 중국인 관립학교인 대랍자(大拉子) 학교를 다니다 가족이 용정으로 이사하자 용
정에 있는 은진(恩眞)중학교에 입학하였다(1933).
1935년에 평양의 숭실(崇實)중학교로 전학하였으나, 학교에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폐쇄당하고 말
았다. 다시 용정에 있는 광명(光明)학원의 중학부로 편입하여 거기서 졸업하였다. 1941년에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릿쿄[立敎]대학 영문과
에 입학하였다가(1942), 다시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로 옮겼다(1942). 학업 도중 귀향하려던
시점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1943. 7),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그러나 복역중 건강이 악화되어 1945년 2월에 생을 마치고 말았다. 유해는
그의 고향 용정(龍井)에 묻혔다. 한편,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옥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정
기적으로 맞은 결과이며, 이는 일제의 생체실험의 일환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고 말았으나, 그의 생은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심오한 시인이었
다. 그의 동생 윤일주(尹一柱)와 당숙인 윤영춘(尹永春)도 시인이었다. 그의 시집은 본인이 직접 발
간하지 못하고, 그의 사후 동료나 후배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그의 초간 시집은 하숙집 친구로 함께
지냈던 정병욱(鄭炳昱)이 자필본을 보관하고 있다가 발간하였고, 초간 시집에는 그의 친구 시인인 유
령(柳玲)이 추모시를 선사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첫 작품으로 <삶과 죽음> , <초한대>를 썼다. 발표 작품으로는 만주
의 연길(延吉)에서 발간된 《가톨릭 소년(少年)》지에 실린 동시 <병아리>(1936. 11), <빗자루>(1936. 12),
<오줌싸개 지도>(1937. 1), <무얼 먹구사나>(1937. 3), <거짓부리>(1937. 10) 등이 있다. 연희전문학
교에 다닐 때에는 《조선일보》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교지 《문우(文友)》지에 게재된
<자화상>, <새로운 길>이 있다. 그리고 그의 유작(遺作)인 <쉽게 씌어진 시>가 사후에 《경향신문》
에 게재되기도 하였다(1946).
그의 절정기에 쓰여진 작품들이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
는 제목으로 발간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의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아 친
구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에 의해 사후에 그의 뜻대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정음
사(正音社)에서 출간되었다(1948).
그의 짧은 생애에 쓰인 시는 어린 청소년기의 시와 성년이 된 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청
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현실 분위기의
시가 많다. <겨울> <버선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이 이에 속한다. 후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시는 성인으로서 자아성찰의 철학적 감각이 강하고, 한편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종을 이룬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등이 대표적인 그의 후기 작품이다. 그의 시비가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졌다(1968).
참회록(윤동주) / 노래 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