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산행(夜間山行)
(1)
집 근처에 월평 공원이 있다.
말이 공원이지 한밭의 남과 북을 가로질러
8km에 걸쳐 펑퍼짐하게 누워있는 어미 소와도 같은
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있는 승적골, 내원사, 도솔봉, 가새바위등에는
어김없이 전설이 녹아 있다.
제법 울창하게 자란 숲은 150만의 인구가 숨 쉬는 도시의 한복판에
쉴 새 없이 산소를 생산하여 뿜어대는 보배이기도 하다.
집에서 걸어서 20분이면 산자락에 달라붙을 수 있어서 좋다.
이번 주 덕유산 종주(향적봉-육십령)를 계획하고 있는데
다리에 힘도 기르고 야간산행(夜間山行)은 어떤 것인가 궁금하여
요즘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찾아 보았다.
(2)
야간산행에 있어서
울창한 숲 사이 오솔길은 간신히 형체를 드러내고 있으므로
손전등은 필수품이다.
오솔길에 간간히 드러낸 돌부리,
그리고 튀어나온 정맥 같은 나무등걸은
어둠 속에서 호시탐탐 올가미를 놓고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참은 하되 나는 손전등을 자주 쓰지는 않는다.
왜냐면 원시(原始)의 어둠을 느끼고 친구가 되기 위해서요,
어둠에 너무나 친숙하고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태초(太初)에 그랬듯이
어둠은 하늘과 땅을 하나로 묶어 놓고,
나도 그들과 더불어 하나로 용해되어버린다.
이 풍진 세상에 나오기 전인 내가
가장 편안하게 지내었던 어머니 뱃속시절과도 흡사하다.
어머니의 자궁 속과도 같이
칠흑의 어둠이 친근하고 포근하다.
(3)
하늘과 땅과 나를 벼루에 갈아
누군가 자루 붓을 들고 칠해 놓은 공간을 유영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 자루 붓을 들어 쓱쓱 칠하다가
획 사이에 먹물이 탁 튀겨 점 하나가 된 내가
그 공간에 있는 듯, 만 듯 먹통에 떨어진 먼지 한 알갱이이다.
다만 바람에 흔들리는 검은 숲의 흐느낌만이
그 경계선을 암시하고 있다.
그 속에 나의 생각과 거동은 철저히 무시당하고
어둠의 유희에 어떠한 일조(一助)도 하지 못한다.
숲의 나뭇가지 사이로 명멸(明滅)하는 도시의 화려한 불빛만이
겨우 이 거대한 어둠에 항변하고 있다.
보석처럼 뿌려진 도시의 불빛은 어둠에 저항해 보지만
여기서 내려다보면 거대한 어둠의 장막에 붙은 반딧불이에 불과하다.
길 가의 곳곳에는
사자(死者)들이 누워있는 묘지들이 산재(散在)해 있는데
그 옆을 지나가노라면 소복을 입은 여인이 잠시 쉬었다 가라고
손짓하고 있는 것 같아 머리가 쭈뼛거리기도 하지만
어둠과 하나가 된 나의 로고스는 곁눈질조차 주지 않는다.
그렇게 하늘과 땅, 내가 하나 되어 걷노라면
어느덧 도솔봉 정상이다.
(4)
도솔천은 세상을 구제할 미래의 미륵불이
수행하고 있다는 수미산에 있다는 산이고
외원과 내원은 그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경계인데
바로 그러한 우주관에 입각하여 여기에
도솔봉이 있고 내원사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푸근하다.
과연 미래의 메시아는 이곳에서 다음 세상을 위해
91겁에 걸쳐 수행을 하고 계신가?
그렇다면 온갖 잡물에 범벅이 된 나의 육신이
이곳에 접근한다는 자체가 불경스런 행위가 아닐까?
더구나 깊은 선정(禪定)에 빠져들어 있을 심야(深夜)의 시간대에
이곳을 찾는다는 자체가 죄를 짓는다는 생각이지만
살금살금 도솔봉의 정상에 올라 경건히 엎드려 기도하고
숨을 가다듬은 후 조용히 하산한다면
홀로 외로이 수행하시는 미륵님도 용서하시리라 믿으면서
나는 오늘도 심야(深夜)의 시간에 도솔봉을 자주 찾는다.
앞으로도 찾을 것이다.
그렇게 투자하는 3시간의 심야의 산행이 전혀 아깝지 않다.
시간만 나면 지근거리의 原始를 찾을 것이다.
배달9202/개천5903/단기4338/서기2005/10/13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 金錡泰 | | 야간산행기가 명품 글입니다. 뒤어난 재능을 지녔군요. 오랫만입니다. 개띠님. 야간 산행까지 다니니 아주 건강하리란 추측을 해 봅니다. 근데 야간산행 힘들지 않나요? 군 시절 100 야간 산 행군은 해 보았지만 사회에선 아직 무경험이고 인적드문 깊은 산속에서의 밤이란 감히 근접하기가 생각조차 힘든데... 2005/10/14 13:17:20 | | | |
| | 풀뿌리 | | 그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를 생각하면 됩니다. 2005/10/14 17:4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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