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여행과산행길

내원암 찾아 가는 길(060903)

이름없는풀뿌리 2015. 7. 13. 16:07

 

 

 

내원암 찾아 가는 길 (06/9/3)


(1)

계룡산 - 언제 보아도 정겨운 산,

그리 높지 않아도 높은 산이 가진 모든 것을 갖춘 산,

그리 넓지 않아도 넓은 산이 가진 모든 것을 갖춘 산,

그리하여 가볼 만큼 가 보았어도 또 가보고 싶은 산!


(2)

06/9/3(일) 

계룡산에 내원사가 있다하여 찾아 나섰더라.

인도의 內世觀에 의하면

천계를 내원과 외원으로 나눌 수 있다는데

세상을 구제한 미륵님은

내세에서도 끊임없이 수행을 행하고 계시는데

그 분이 내세에서 修行을 행하시는 곳이 바로 내원이라고 한다고 하더라.

그러한 내원의 세계가 궁금하여 내원사를 찾았더라.

지난 주 갔던 장군능선을 버리고 편안한 지석골로 갔더라.

초입 학림사에서 들머리로 접어들었더라.

 

(3)

사람들이 별로 아지 못하는 길이라서

천연을 간직한 수림들이 반겨주었더라.

이 중에 누린내풀꽃과 물봉선이 화원을 이루었더라.

특히 물봉선은 다른 곳에서 본 것보다도

유독 커다란 꽃받침을 피워 올리고 있었더라.

오른쪽 하늘금을 그은 장군능선도 아름다웠더라.

힘찬 근육같은 장군의 능선도 가을로 치닫는 초록에 우뚝 솟아 있더라.


(4)

작은 배재에 이르니 쉼터에서 산꾼들이

지친 다리를 늘어트리고 반겨주었더라.

배재란 명칭은

태고적에 커다란 홍수가 났었는데

사방천지가 물바다가 되어 일엽편주에 몸을 실은 어느 처사가 이곳에 이르러

배를 대고 잠시 쉬었대서 붙인 이름이며

큰배재란 명칭은

물이 점점 더 차올라 작은 배재를 삼키자

큰배재에 이르러 

역시 그 곳에 배를 대었대서 붙인 이름이란다.

 

(5)

작은 배재에서 갓바위 삼거리 마루금에 도달하니

역시 장군봉에서 온 지친 산꾼들이 쉬고 있었더라.

갓바위 아래에 이르르니

한번도 못오른 갓바위를 한번 오르고 싶은 충동이 일더라.

출입금지구역이라 아직 한번도  오르지 못하였더라.

미끄러운 바위에 달라붙어 갓바위를 오르니

천왕봉과 황적봉이 한눈에 들어오더라.

잠시 후 신선봉에 이르렀는데,

역시 같은 이유로 한번도  오르지 못하여

역시 다시 한번 오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오더라.

신선봉 정상에 이르니 키 큰 소나무가 울창하여

조망은 할 수 없었지만 궁금증은 가시었더라.

 

(6)

큰배재를 거쳐

남매탑고개에 오르니

그저 평탄한 남매탑으로 가기는 싫더라.

남매가 수도한 상원사 뒷산은 무슨 이름인지 몰라

남매봉이라 혼자 부르는데

그 남매봉에 오르니 시원한 가을 바람이 불어 오더라.

남매탑은 그저 한 점 점으로만 보이더라.

 

(7)

여기서 바로 금잔디 고개로 가지 않고

삼불봉으로 향하였더라.

지난 주 보았던 조망보다도 그 찬란한 아름다움은 더하였더라.

삼불봉에서 자연성릉으로 향하다 금잔디 고개로 꺽어 수정봉으로 향하였더라.

수정봉에서 본 금마타리꽃은 황룡포를 입고 금관을 쓴 황제 같았더라.


(8)

수정봉에서 귀재방향으로 향하니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묵은 솔잎만 층층히 쌓여 푹신한 길은

길로써의 형체를 잃고 들풀에 그의 흔적을 잠식당하고 있는데

안부에서 갑사방향으로 내려서니

길은 아예 끊어져 보이지 않더라.

 

(9)

바람소리 벗삼아 밀림을 헤집고 나아가니

커다란 바위 속 동굴이 나타나며

굴 속에 촛대와 잿밥이 놓여 있더라.

21세기 유비쿼터스 시대에

기원전 애니미즘이 살아 숨쉬고 있더라.

 

(10)

기도처를 지나니

오솔길이 나타났는데 수풀이 잘 깎여져 있어

눈들어 앞을 보니 암자 하나가 나타났더라.

뒤꼍에 약수가 있어 시원한 물을 들이켜고 세안을 하니

밀림 속에서 묻혀온 잔털들이 새처럼 가볍게 날아갔더라.

그러고나서 암자를 마주보니 이름하여 내원암이더라.

비구는 간데 없고 흰고무신만 놓인 댓돌에

지나가는 시간만이 멈추어 있더라.

 

(11)

내원암의 상사화를 뒤로 하고

갑사의 마당에 내려서니

수도의 도량인 갑사는 간 데없고

기업갑사만 인파로 넘쳐나고

개인의 안녕 행복만을 빌고 있는 넓은 절간 마당위 하늘을

때 아닌 오색연등이 덮고 있더라.

09:30-15:00, 총 5시간 30분소요.

 

 


배달9203/개천5904/단기4339/서기2006/9/6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1. 장군봉

 

 

 

2. 지석골에서 올려다 본 장군봉

 

 

 

3. 수크령과 이질풀꽃

 

 

 

 

 

 

4. 누린내풀꽃

 

 

 

5. 건강한 지석골 숲 

 

 

 

 

6. 물봉선

  

 

 

 

 

7. 장군능선의 바위에 박은 소나무 다리

 

 

 

8. 머나 먼 삼불봉

 

 

 

 

 

9. 남매봉에서 내려다 본 남매탑

 

 

 

 

10. 남매봉에서 본 삼불봉의 아름다움

 

 

 

 

 

11. 단풍취꽃

 

 

 

12. 금잔디고개에서 본 수정봉

 

 

 

13. 수정봉의 금마타리꽃

 

 

 

 

 

 

 

14. 귀재능선의 건강한 소나무 숲

 

 

 

15. 살아있는 애니미즘

 

 

 

 

 

 

16. 내원암의 상사화

 

 

 

17. 미륵님이 수도중인 내원암

 

 

 

 

 

18. 세속에 순화한 기업갑사 

 

 

 

 

박원 이질풀 누린내풀 단풍취 마타리 노랑상사화가 피었습니다.
좋은 곳 다녀오셨군요.  2006/09/06 16:38:31  
풀뿌리 들꽃과의 얘기. 계룡산 은선폭포에 새를 부르는 할머니가 계신데 화백님은 들꽃과 대화를 나누시는군요. 아직 이름부터 서투른 저이니 대화의 경지까지는 요원하지만 노력해보렵니다. 배달9203/개천5904/단기4339/서기2006/9/7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2006/09/07 08:42:12  
풀뿌리 [이덕일 사랑] 달마도
불교사의 수수께끼 인물이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達磨大師)이다. 서기 520년 인도에서 배편으로 중국에 와서 서기 528년 150세로 입적(入寂)했는데, ‘오등회원(五燈會元)’에는 남천축국(南天竺國·남인도) 향지왕(香至王)의 셋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140세 넘어 중국에 왔다는 사실 때문에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달마와 양(梁) 무제(武帝)의 대화가 유명하다. 무제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을 강의하고, 많은 불사(佛事)를 일으켰던 군주였다. 무제가 자신의 불교 외호(外護) 경력을 거론하며 어느 정도의 공덕이 있겠느냐고 묻자, 달마는 “아무 공덕이 없습니다[無功德]”라고 답해 충격을 주었다. 무제가 “짐을 대하고 있는 자는 누구냐?”라고 묻자 “모릅니다[不識]”라고 선문답하고는 자리를 떠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가서 9년 동안 면벽좌선했다고 전한다. 선종은 의발(衣鉢)을 전해 계승자를 삼는데, 달마가 소림사에 있을 때 낙양인(洛陽人) 혜가(慧可)가 왼팔을 자르며 도(道)를 청하자 받아들여 이조(二祖)가 된다. 일자무식이었으나 ‘돈오(頓悟)’로 유명한 혜능(慧能)이 바로 육조(六祖)이다. 선종은 선문답으로 유명한데, ‘오등회원’조주(趙州)편에는 한 승려가 조주선사에게 “달마대사가 왜 중국에 왔습니까?”라고 묻자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柏樹]”라고 대답한 것이 유명하다. 달마는 벽안호승(碧眼胡僧)이라는 특이한 용모 때문에 그림으로 많이 그려졌는데, 조선중기 김명국(金明國)의 달마도가 특히 유명하다. 송(宋)나라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개경의 정국안화사(靖國安和寺)에 달마상이 있었다”고 전한다. 고려의 이규보(李奎報)는 ‘달마대사 상(像)에 대한 찬(贊)’에서 “전할 것은 마음이요/몸은 쓸모없다/몸이 이미 떠났거늘/왜 반드시 그림을 그려야 하나[可傳者心兮/無用者身/身已去矣/何必寫眞]”라고 읊었다. 달마도가 복을 가져오고 수맥을 차단한다는 등의 소문이 돌면서 일부 구매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소식이다. 이규보의 시에 보이는 것처럼 달마가 전한 것이 마음뿐이지 어찌 비현실적인 구복(求福)이겠는가? 이덕일·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입력 : 2006.11.23 22:43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