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결 속의 충북 알프스 종주 (4)
마. 제 3 구간 [서원리-구병산-장고개-갈령]
(1)
2006/11/25(토), 2구간 종주 후 한 달여 만에 충북 알프스 마지막 3구간 종주에 나서게 되었다. 오병관 사장님이나 박상채차장님, 그리고 나의 일정을 맞추기가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박차장님이나 나도 그동안 감기 기운이 있어 가장 長距離로 豫想되는 오늘 일정이 다소 무리라 생각 했지만, 어쨌든 더 미룰 수 없다하여 감행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44km라는 이 충북 알프스 종주도 그렇게 쉽지 않은데, 여기서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이들의 熱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백두산에서 남해 노량까지 1,712㎞, 지리산 향로봉까지라면 1,658.6㎞인 白頭大幹, 북쪽의 거리는 약 970㎞요, 남쪽은 688km라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남쪽구간을 부지런히 시도한다면 1년 8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러자면 2-3주에 20km씩은 前進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열정이 아니면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한 달여 만에 충북 알프스에 나서는 우리들의 所懷이다.
(2)
백두대간이 속리산 천왕봉을 거쳐 형제봉에 이른 후 곁가지를 치며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면서 南下하다가 보은과 상주를 잇는 25번 국도변에 이르게 되는데 구병산은 이 국도변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좁은 국도도 이젠 옛말이고 고속도로처럼 확장되어 이을 뿐더러 그 신국도 옆으로 대전-상주간 고속국도공사가 한창이다.
그 인근 적암리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주능선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고 길게 이어지며 마치 병풍을 두른 듯 수많은 연봉이 굽이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아홉 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다 하여 구병산(九屛山), 혹은 구봉산(九峰山)이라고 불려진다. 속리산의 위세를 이어받아 시종일관 병풍을 두른 듯한 정상 부분의 바위암릉이 시선을 압도한다. 주능선을 잇는 아기자기한 암릉코스며 암봉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맛과 굽이치는 連綾을 고사목 사이로 바라보는 경관이 일품이다.
예로부터 보은 지방에서는 속리산의 천왕봉(1058m)은 지아비산(夫山), 구병산(876m)은 지어미산(婦山), 금적산(652m)은 아들산(子山)이라 하여 이들을 '삼산'이라 일컫고 있으며 천왕봉과 남쪽에 위치한 구병산 사이의 포물선형 산줄기의 중심부에 금적산이 있다. 그러나 아들 산인 금적산은 충북 알프스 구간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3)
보은군청에서는 속리산과 구병산을 잇는 43.9km 구간을 1999년 5월 17일 '충북 알프스'로 업무표장 등록을 하여 관광상품으로 널리 弘報하고 있다. 구병산을 등정하려는 이들은 대부분 청주나 보은에서 상주행 직행버스를 이용, 적암리에서 내려 마을 한복판의 넓은 도로를 따라 구병산 정상까지의 산행을 시작하며 약 7km에 이른다. 정상은 평평하며 넓은 보은평야가 내려다보인다.
구병산 남쪽 국도변에 있는 적암리(赤岩里)는 일명 사기막(士氣幕)이라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의병장 조헌(趙憲)의 문인(門人)인 가평 출신의 포제 이명백(圃霽 李命百)이 의병을 일으켜 사기를 크게 진작시킨데 서 유래된 이름이라 한다. 실제 적암마을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시루봉(시루를 엎어 놓은 모양과 흡사하다)의 암릉이며 구룡산 일대의 암릉들은 붉은 기운을 띠고 있다.
(4)
충북알프스의 들머리가 되는 외속리면 서원리 고시촌. 우리나라에서 소수서원 다음으로 세워진 상현서원(象賢書院)이 자리한 연유로 서원리(書院里)라 칭해졌고, 서원이 있던 자리라 공부하기에 제격이라 생각했는지 고시생들이 하나둘 모여 한때 이 마을에 1,000명에 육박하는 고시생이 공부를 했다고 한다. 또한 선부잣집 넓은 99칸 집이 있어 많은 서생들이 모여 과거 공부를 하기도 했던 곳이라고도 한다.
이 외에도 서원리에는 정이품송을 닮은 큰 소나무가 있다. 정이품송의 부인으로 “암소나무”라고 불리며 수령 250년의 충청북도 지정 보호수라 한다. 아름다운 자연과 시설물이 조화를 이룬 서당골관광농원과 서원, 만수, 대목 계곡, 삼가호수등이 있으며 계곡 위주로 자리 잡고 있는 99칸의 선병국 고가를 비롯하여 역사의 산교육장인 삼년산성이 있다. (보은군청 문화관광과에서 참조)
(5)
11/25(토) 새벽 3시. 주방에서 달그락 소리가 난다. 그 바람에 잠을 깼다. 지난 밤 아내에게 내일은 가게에서 김밥을 사 가지고 조용히 갈 것이니 신경 쓰지 말고 잠자라 했었건만 남들 앞에서 창피하면 안 된다며 김밥, 고구마, 과일, 쵸콜렛, 식수 등을 챙겨 준다. 너무나 고맙고 미안하다. 아내는 3-4시간 산행은 가능하지만 장거리에는 약하다. 지난 해 계룡산 8시간 종주 시에도 동행했다가 혼난 적이 있다. 그러나 십여 년 전에 비하면 많은 발전이다.
새벽 4시. 약속 장소에 모두 모였다. 오늘의 산행은 23km정도로 늦으면 15시간은 예상되었기에 일찍 나서기로 한 것이다. 사실 1박 2일도 고려해 봤으나 번거로울 것 같아 조금만 부지런하고 의지력만 있다면 가능할 것 같아 지난 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것이다.
(1) 서원교-백지미재
[05:10-07:30, +140=140분]
移動하면서 대화해 보니 박차장님은 여전히 몸 상태가 안 좋은듯하다. 혹시 나 때문에 공연히 무리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나도 현재 감기 기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은 있다. 우리를 실은 최주임님이 운행하는 쇠달구지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의하여 정확히 1시간 만에 서원교에 배달하여 준다. 깨끗한 화장실 앞에 “충북알프스 시발점, 속리산-구병산 43.9km”라는 표지판의 배웅을 받으며 충북알프스 마지막 구간 대장정을 시작한다.
初入부터 된비알에 침목으로 된 계단이 끝이 없다. 나무계단을 한발씩 딛고 올라갈 때마다 새벽 찬 공기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점점 땀으로 젖어든다. 30여분 만에 헤드랜턴에 비친 작은 돌탑 하나와 묘 1기를 지나 전망이 확 트인 첫 번째 봉우리(270봉)에 올라선다. 안부에 오르니 구병산7.1km, 서원리1.1km(1.4의오기?), 하개리의 표지판이 반겨준다.
거기서 내려다보니 마을은 온통 먹물에 잠겨 가로등만 껌뻑거리고 考試村의 고시생들은 새벽 공부를 안 하는지 불 켠 집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주변 마을을 내려다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대신 밤하늘에 명멸하는 별들이 보석을 흩뿌린듯하여 그 아름다움이 고시촌을 내려다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이어서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연속된다. 산행기에서 보았던 370, 430, 450, 480, 510봉등인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까만 밤의 장막이 헤드랜턴에 겨우 그의 장막을 열어주고 있을 뿐이어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고 삼가 저수지 방향은 마을의 불빛마저 사위어가 深山으로 진입하여 들어감을 실감하겠다.
이어서 표지판이 보이는데 봉비리1.7km, 구병산6.4km, 서원리1.8km(2.1의오기?)라 쓰여 있다. 길은 낙엽이 풍성하게 쌓인 육산길이만 때론 봉비리 방향으로 깎아지른 절벽길이 나타나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암릉에 걸린 로프를 잡고 전진하니 소봉들이 나오는데 산행기에서 본 570, 665봉들인 것 같다.
이어서 구병산5.1km, 서원리3.0km(3.4의 오기?)표지판이 나타나며 칼날 같은 절벽 지대를 지나니 소봉이 나타났는데 산행기에서 본 670봉임에 틀림없다. 조금 지나니 지도상의 멧돼지샘터 즈음으로 짐작되는 즈음에 이르러서야(07:20) 하늘 가장자리에 여명의 조짐이 보인다. 구병 능선의 까만 실루엣을 더욱 선명하게 그려놓는다.
또 팻말이 나타나는데 구병산4.0km, 서원리4.5km라 되어 있고 이곳에서 가파른 능선을 30분정도 올라가니 735봉에 다다르게 된다. 일출을 小峰에서라도 맞이하자고 하였지만 백지미재에 이르르니 아침 해가 이미 한 뼘쯤 떠 있다. 그래도 아쉬워 그 해를 배경으로 逆光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진을 남긴다.
또 팻말이 나타나는데 삼가저수지3.0km, 구병산2.6km, 서원리5.3km(5.9의 오기?)라 되어 있다. 이곳에서 구병산 방향으로 바위 능선을 따라 오르면 묘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 바위 밑으로 가면 잘록이(안부)에 다다르게 되는데 구병산2.0km, 서원리5.9km, 갈평리2.5km라 되어있다. 거기서 바라보니 주변 풍경이 눈에 확 들어온다. 알프스의 마루금을 닮은 속리의 연봉들이 하늘 가장자리에 아름답게 물결친다.
우리가 한 달 전 지나온 미남봉, 상학봉, 묘봉, 관음봉, 문장대, 천왕봉, 형제봉의 봉우리들과 가야할 장고개 방향의 무명봉까지 한눈에 뚜렷하게 들어온다. 능선 좌우를 가르는 길의 폭이 좁고 특히 조망이 너무 좋아 능선 산행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또한 속리산 천황봉의 안정된 구도가 좌우에 거느린 능선과 함께 시야에 꽉 찬다.
(2) 백지미재-구병산 정상(876.5m)
[07:30-09:20, +110=250분, +8.5=8.5km]
묘지 옆 파란리본을 따라가다 작은 봉우리 몇 개를 지나니 칼바위 능선이다. 바위가 칼날처럼 생겼는데 그 길이가 꽤 길다. 아울러 건너에 솟구친 753m봉을 바라보며 탁 트인 시야를 만끽함은 상쾌함이 최고이다. 오르내림이 매우 심하지만 지난 번 지나온 상학봉, 묘봉 구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구병산 정상으로 짐작 되는 봉우리가 빤히 보이는 전망터에서 지나온 능선을 돌아보며 땀을 식힌다. 가파른 능선을 오르니 730봉인데 이어 안부에 도착하니 30분정도 전진하니 830봉이다.
이어서 삼가저수지3.4km, 서원리6.9km(7.9의 오기?), 구병산0.6km라 표시된 팻말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10여분 오르면 845m봉에 오르게 되고 조금 지나면 祈禱處가 나타난다. 기도처의 암릉에는 촛불의 흔적과 지나는 이들의 소원을 담은 조그만 돌탑이 아기자기하게 진열되어 있다. 그 돌탑 앞이 풍혈(風穴)이다. 지난 번 일본 북알프스 등정 시에도 풍혈을 보았는데 거기는 천연 바위를 그대로 두어 그 바위틈에서 서늘한 바람이 솔솔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기는 인위적으로 시멘트를 사용하여 동그랗게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거기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 인위적인 모습이 아니라면 풍혈인지 모르겠다.
풍혈 안내판에는 “구병산 풍혈은 여름에는 냉풍이, 겨울에는 훈풍이 솔솔 불어 나오는 신비스러운 대자연의 결정체로 구병산 정상에서 서원계곡방향으로 약3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직경 1m 풍혈 1개와 30cm 풍혈 3개 등 4개가 2005년 1월 10일 발견되었습니다. 구병산 풍혈은 전북 진안군 대두산 풍혈과 울릉도 도동 풍혈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풍혈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로 되어 있슴을 보니 발견된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풍혈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直壁이다. 누군가 매달아 놓은 로프를 잡고 오르니 전망이 훌륭하다. 그러나 정상이 얼마 안 남았는데 여기서 조망하기보다는 정상으로 오르자고 다리님이 멈추질 않는다. 정상에는 삼각점과 표지석이 있다. 서원리8.5km 형제봉13.2km표지판과 표지석 뒷면에는 “보은군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자연의 보고 구병산을 ”충북 알프스“란 이름으로 특허청에 업무표장등록하였으며 1999년 10월 17일 개장 축제와 함께 표지석을 세워 등산애호가들의 길잡이가 되고 영원토록 잘 보존하여 길이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한다. 구병산-속리산 43.9km라 기록되어 있다.
서원리에서 4시간 10분 만에 상봉에 올랐으니 아주 빨리 온 편인 것 같다. 산행기를 보니 여름에는 7시간, 봄가을에도 5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인데 새벽에 시작하여선지 바람처럼 날아 온 것 같다. 오늘은 바람은 아주 세지만 조망은 훌륭하다. 서로는 우리가 지나온 연봉이 굽이치고 남으론 이름을 알 수 없는 희미한 연봉들과의 사이에 적암리의 통신지구국이 보이고 그 사이로 고속국도 현장이 일직선을 그리고 상주 방면으로 달려가고 있다. 동으로는 우리가 가야 할 장고개며 대궐터산이 잡힐 듯이 보이고 그리고 형제봉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알프스의 허리가 살아있는 龍처럼 굽이친다. 북으로는 천왕봉에서 연이어 문장대 관음봉, 묘봉, 상학봉, 미남봉으로 이어진 암릉이 하늘금을 그리고 용트림을 하고 있다. 그 아스라한 연봉들을 우리들이 빠짐없이 밟아 왔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대견하기조차 하다.
(3) 구병산(876.5m)-853봉(참샘골정상)-신선대
[09:20-10:30, +70=320분, +2.2=10.7km]
구병상 정상에서 신선대까지 이어진 능선에는 크고 작은 암릉이 연이어 나타난다. 그 유명한 구병 암릉 구간인 것이다. 암릉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를 내려가니 나무에 매달렸던 로프가 잘려 나간 채 길이 끊겨있다. 암릉 옆으로 조심조심 건너 능선을 따라 785m봉을 지나 안부에 도착하니 오늘의 산행 중 최초로 적암리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다. 김천에서 온 젊은이 들이다. 그들이 커피 한 잔을 권한다. 따스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다. 구병산0.9km, 853봉0.3km, 절터1.3km란 팻말 앞에서 그들에게 부탁하여 오늘 산행 처음으로 셋이 함께 기념 촬영을 하다.
이어 안부에서 길라잡이 박차장이 우회길로 접어든다. 853봉이 보고 싶어 박차장의 인도를 버리고 가파른 벼랑에 달라붙으니 오사장님이 말린다. 그래도 고집을 피우니 오사장님도 뒤따라오신다. 힘겹게 오른 만큼 853봉의 경치가 압권이다. 853봉을 넘으니 거기도 가파른 암릉길인데 암릉을 타고 올라오는 부부를 만났다. 그들도 상당한 등반실력의 소유자들인 듯 손놀림, 발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그 벼랑길을 내려오니 안부인데 거기에도 팻말이 있다. 853봉0.3km, 절터1.3km, 구병산 1.8km로 되어있다.
853m봉은 구병산 정상에서 보면 그리 크게 보이지 않지만 막상 봉을 오르려면 험한 암릉과 절벽을 기어야하는 난코스였다. 하지만 묘봉, 상학봉에 비할 바는 아니다. 능선 마루를 따라 가니 신선대이다. 오래된 소나무가 둘러싸인 신선대는 옛날에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음직한 넓적한 바위로 이루어져 쉼터로 적소이다. 신선대라 쓴 標石이 깔끔하다. 우리는 여기서 10여분 쉬면서 주변을 조망한다. 동쪽을 바라보니 형제봉과 대궐터산이 꿈틀거리며 천왕봉을 향하여 흘러가고 있다.
(계속됩니다.)
배달9203개천5904/단기4339/서기2006/11/25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1. 초입에서
2. 안내판
3. 동행인
4. 첫 표지판
5. 어둠 속에 동네의 불빛만 빛나고
6. 어둠 속의 산사나이들
7. 여명 속의 칼날같은 마루금
8. 동녘은 밝아 오고
9. 갈림길
10. 정상이 점점
11. 저기가?
12. 능선상의 북측에 보이는 여명 속의 천왕봉
13. 그리고 10/14일 가 본 묘봉, 상학봉능선
14. 금적산 너머로 미남봉
15. 절벽이를 지나고...
16. 지나온 봉
17. 아직도 600m?
18. 이번엔 진짜?
19. 기도처
20. 정상
20. 정상 아래 풍혈
21. 정상 오름
22. 다시 묘봉 방향
23. 서측 지나온 능선들
24. 남측 통신기지국
25. 정상
26. 남측 갈평지, 만평지
27. 동측 나아갈 신선대 방향의 암릉구간
28. 나아가야 할 형제봉/대궐터산
29. 정상에서
30. 정상에서 신선대 방향 암릉 사면
31. 암릉에서 본 구병 정상
32. 김천에서 온 청년들이 찍어줌
33. 신선대 방향으로 가다가 내려다 본 마을들
34. 신선대로 가는 암릉길
35. 853봉 안부에서
35. 신선대와 신선대에서 본 전망
풀뿌리
금적산 [金積山]
높이는 652m이다. 속리산과 구병산 사이에 솟아오른 이 산은 예로부터 전 국민이 3일간 먹을 수 있는 보배가 묻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며 보은군의 최고봉인 천황봉(1,058m)을 지아비산, 구병산을 지어미산,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이 산을 일컬어 아들산이라 한다. 그 때문인지 속리산과 병풍처럼 둘러쳐진 봉우리로 유명한 구병산을 닮아 수려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또한 이름과 관련하여 금으로 된 동물이야기를 전설로 전하고 있다. 옛날 이 산에는 금송아지와 금비둘기가 살고 있었다. 금송아지는 금비둘기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산기슭에 밭을 일구어 금비둘기가 좋아하는 여러 곡식을 가꾸었다. 양지 바른 곳에 집을 짓고 바위 아래 옹달샘을 파서 보금자리도 마련했다. 그런 다음 금비둘기에게 청혼하여 둘은 결혼하게 되었고 금슬 좋은 부부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금송아지는 밭을 갈다가 넘어져 두 눈을 잃고 말았다. 금비둘기는 눈이 먼 남편을 위하여 열심히 봉양하였으나 금비둘기의 벌이로 금송아지를 먹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금비둘기는 해가 거듭될수록 지쳐갔고 짜증이 깊어져 둘은 자주 다투게 되었다. 마침내 금비둘기는 날아가 버리고 금송아지는 산기슭을 헤매며 아내를 부르다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 후 금송아지가 죽은 산을 금적산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금송아지가 죽을 때 머리는 북쪽으로 두고 꼬리는 남쪽으로 향하였다 한다. 때문에 지금도 꼬리 쪽인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에는 사금이 많이 나오고 머리가 있는 북쪽인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에는 부자가 많다고 전해진다. 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는데 옥천군 청산의 박달라산에서 연락을 받아 북쪽의 용산점 봉수대로 전하는 봉수였는데 조선시대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동쪽으로는 속리산의 주봉인 천황봉과 구병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웅장한 대청호반과 장계국민관광지, 북쪽으로는 보은군의 넓은 평야지대가 발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하산은 북쪽 능선을 따라 서원1리 마을 쪽으로 내려오게 된다. 대체로 등산로는 좁으나 험한 길은 없다. 약 3시간이면 산행을 마칠 수 있다. 2006/12/11 14:23:42
풀뿌리
상현서원 [象賢書院]
1977년 12월 6일 충청북도기념물 제43호로 지정되었다. 1555년(명종 10) 동주 성제원이 삼년성 안에 충암(沖庵) 김정(金淨)을 향사하는 독향원(獨享院)을 세우고 ‘삼년성서원’이라 하였는데, 1610년(광해군 2)에 ‘상현’이란 이름의 사액을 받았다. 한국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 다음으로 세워졌으며, 충청북도에서는 첫 번째로 설립되고 사액받은 서원으로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제사지낸다. 1672년(현종 13) 삼년성 안에서 외속리면 서원리로 옮겨 세웠으며, 대곡(大谷) 성운(成運)을 을사명현으로 배향하고 보은현감을 지낸 동주 성제원과 중봉(重峯) 조헌(趙憲)을 1681년(숙종 7)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1695년(숙종 21)에 추가 배향하였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거되고, 그때 서원의 강당은 보은향교(報恩鄕敎:충북유형문화재 95)로 옮겨 명륜당을 세웠다. 1892년(고종 29) 찰방 김세희(金世熙)가 제단을 만들어 제향을 올렸으며, 1896년(고종 33) 장례원집례인 김문희(金文熙)와 송근수(宋近洙)가 서원을 재건하고, 1919년에 중수하였다. 1986년에는 정부예산으로 사당과 정문을 새로 세우고 바깥담을 쌓았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우진각지붕 단층목조건물로 앞면 반 칸에는 마루를 놓고 어칸에는 쌍각문을, 오른쪽과 왼쪽 협칸에는 편문을 달았으며, 주위에 토석담장을 쌓고 중앙에 편문을 달았다. 서원 입구에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우진각지붕집 형태의 묘정비각이 있고, 안에는 1778년(정조 2)에 세운 상현서원 묘정비가 있다. 비문은 예조참의 김양행(金亮行)이 짓고, 사헌부수령 김종후(金鍾厚)가 썼다. 2006/12/11 14:26:11
풀뿌리
<보은> 서원계곡 농촌마을 관광지 조성
보은 외속리면…환경개선·체험장 마련 김기훈 기자 hoon@jbnews.com 보은군 외속리면 서원계곡을 중심으로한 농촌마을에 63억원을 투입, 속리산을 대표하는 농촌관광, 문화체험터로 조성된다. 한국농촌공사는 2006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서원권역 주민공청회를 통해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서원권 개발 기본 계획안은 외속리면 장내1, 2리와 서원리, 봉비리, 하개리를 대상으로 지역농업육성 및 역사문화체험, 농촌관광, 경관, 생활환경 정비를 통해 농촌관광, 체험마을로 육성한다는 것. 세부적인 추진계획으로는 생태환경 및 경관조성 사업으로 내집앞가꾸기, 담장정비, 경관도로 정비, 친환경 용수로 정비, 삼가천 생태경관 조성등을 추진하게된다. 지역농업 활성화를 위해서 쌀 대체작목 육성 및 친환경과수재배, 공동저온저장고, 친환경 공동축사, 친환경농업 전문인력 육성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생활환경 개선사업으로 쉼터 조성과 게이트볼 코트정비, 마을회관 정비, 다목적 주차장정비 등을 추진하고 방문객 센터를 건립해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도입할 계획이다. 농촌공사는 이번 사업의 성공을 위해 권역별발전협의회를 구성하고 권역사무장 제도를 추진 권역사업추진반, 체험사업운영반, 영농강화추진반등을 운영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한편 서원계곡 중심의 마을 주민들은 사업자체가 분산배치되어 사업의 실효성에 문제가 제기되는 만큼 실질적인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 고 말했다. 2006/12/11 14:52:09
풀뿌리
삼년산성 [三年山城]
충북 보은군 보은읍 북쪽 2km 지점의 오항산(烏項山)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사적 제235호. 면적 22만 6000m2.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이 산성은 470년(자비왕 13)에 축성하였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하며, 신라는 이곳을 백제 공격을 위한 최전방기지로 삼았다. 성문(城門)은 보은읍을 내려다볼 수 있는 서쪽 수구(水口) 부근에 있다. 성벽은 주위의 능선을 따라 견고하고 웅대하게 구축하였는데,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이 13m에 달하고, 너비는 5∼8m이며, 전장(全長) 1,680m에 이른다. 성벽의 구축 방법은 내외면 모두 석축으로 수직에 가까운 벽면을 이루게 하였고, 전형적인 협축공법(夾築工法)을 채용하였는데, 특히 이 협축성벽은 토사(土砂)를 전혀 섞지 않고 내부까지 전체를 석축으로 견고하게 구축하였다. 2006/12/11 17: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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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표법 [商標法]
상표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전문개정 1990. 1. 13, 법률 제4210호). 상표를 보호함으로써 상표사용자의 업무상의 신용유지를 도모하여 산업발전에 이바지함과 아울러 수요자의 이익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상표를 사용하는 자 또는 사용하고자 하는 자는 상표를 등록받을 수 있고, 동일 또는 유사한 상품에 사용할 상표에 관하여 다른 날에 2건 이상의 상표등록출원이 있는 때에는 먼저 출원한 자만이 그 상표에 관하여 상표등록을 받을 수 있으며, 같은 날에 2건 이상의 상표등록출원이 있는 때에는 출원인의 협의에 의하여 정해진 하나의 출원인만이 그 상표에 관하여 상표등록을 받을 수 있다. 협의가 성립되지 않거나 협의를 할 수 없는 때에는 특허청장이 행하는 추첨에 의하여 결정된 하나의 출원인만이 상표등록을 받을 수 있다. 제1장 총칙 제1조 (목적) 이 법은 상표를 보호함으로써 상표사용자의 업무상의 신용유지를 도모하여 산업발전에 이바지함과 아울러 수요자의 이익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정의) ①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개정 95·12·29, 97·8·22] 1. "상표"라 함은 상품을 생산·가공·증명 또는 판매하는 것을 업으로 영위하는 자가 자기의 업무에 관련된 상품을 타인의 상품과 식별되도록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다음 각목의 1에 해당하는 것(이하 "표장"이라 한다)을 말한다. 4. "업무표장"이라 함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는 업무를 영위하는 자가 그 업무를 표상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장을 말한다. 2006/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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