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한 남덕유 雪景
(1) 프롤로그
계룡산과 더불어 내가 자주 찾는 넉넉한 人品을 지닌 덕유산! 가끔 그 가슴에 안겨보다 못해 두 번이나 종주[육십령-향적봉-백련사]를 감행하기도 했지만 영각사에서 오르는 능선은 아직 안아보지 못했다. 겨울에 [영각사-남덕유-서봉-교육원]을 감행해 보고자 하였는데 5시간 정도의 거리라고 하니 아내와 큰 애까지 따라나선다. 둘째는 싫다고 한다. 겨울철에다 아내는 3-4시간 정도의 산행을 좋아하고 修能을 이제 막 치룬 큰 애는 장거리 산행을 경험해보지 못한 까닭에 조금 망설여졌지만, 포근한 날씨를 위안삼아 천천히 가족들과 도전해 보기로 했다.
06/12/25(월) 크리스마스 날, 07:20 대전을 출발하여 대통고속국도 장수IC를 향하여 달려가노라니 왼편에 지난 가을 정효근 사장님과 종주했던 기다란 덕유의 허리가 흰 구름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한반도의 南部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地形의 특성상 유독 積雪量이 많은 덕유산 지역을 생각하니 흰 눈에 파묻혀 있는 上峰이 연상되며 가슴이 설렌다. 뱀 허리 같은 육십령 허리를 굽이굽이 돌고 돌아 함양 땅에 들어서서 가느다란 농로 같은 영각사 가는 길로 접어드니 왼편에 할미봉이 손에 잡힐 듯 보이고 산자락의 陰地에는 한결 흰 눈이 많아 보인다.
(2) 영각사-남덕유(1507.4m)
[09:00-12:00, +180=180분, +4.1=4.1km]
영각사 入口와 덕유교육원 합류지점에 駐車하고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 매표소를 통과하니 크리스마스 날 우리처럼 산행하는 산꾼들이 몇 보인다. 매표소 직원에게 上峰의 積雪상태를 물어보니 모르겠단다. 참 한심한 일이다. 이래가지고서야 새해부터 국립공원 입장 무료라는 정책이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 個人에게서 징수하는 지금도 이 정도의 무관심인데 國家 지원으로 국립공원이 유지되려면 예산이 자동으로 확보될 것이니 서비스는 더욱 나빠질 것이고 그러면 운영이 지금보다 더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들어서이다.
매표소에서 남덕유 정상까지 3.4km인데 1.5km지점까지는 그저 평탄한 길이다. 그러나 그 지점을 지나자 된 비알이 시작된다. 아내와 큰 애가 쳐지기 시작한다. 그들에 보조를 맞추며 오르니 쌓여진 눈도 점점 많아진다. 날씨가 포근하여 눈 구경을 못하겠다는 우려는 접어도 될 것 같다. 길은 이제 아예 큰 돌덩이들이 포개어진 급경사의 너덜겅길이다. 아내와 아이와 천천히 오르며 아이의 고민을 들어본다.
아이가 과학고등학교에 入校할 때 난 뛸 듯이 기뻤다. 알다시피 영재들의 産室인 科高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그런데 아이가 과고에 다니면서 보니 뛰어난 아이들이 많았고 결과적으로 내신이 안 좋아 自退하고 아이 혼자서 일 년여를 공부하여야 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너무 큰 시련을 안겨주지나 않았는지 항상 두렵기만 하다. 그런데 수능 성적이 아주 좋지도 않고, 아주 나쁘지도 않은 결과여서 대학 선택에 고민이 많은 요즘의 우리 집이다.
아이에게 “修能에 최선을 다했으니 기다려보자. 좋은 대학 간다고 반드시 인생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란다.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고 무엇보다도 건전한 가치관을 갖고 있을 때 험난한 인생사를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단다. 인생은 길단다. 조그마한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굳은 의지와 신념으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인생을 꾸미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해도 알아듣는지 마는지 고개만 끄덕이고 만다. 그러나 이내 “어떡해야지?”하며 한숨을 폭폭 쉬는 모습을 보면 이미 아들도 나의 곁에서 떠날 날이 머지 않은 獨立體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자녀들이 수능을 치룬 학부형들은 다들 알겠지만 요즘 入試制度라는 게 잘만하면 성적이 썩 좋지 않아도 썩 좋은 대학에 갈 수도 있고, 썩 좋은 성적에도 썩 안 좋은 대학조차 갈 수 없는 백분율과 표준점수를 배합한 제도이다 보니 가, 나, 다군의 기회를 잘 엿보아야 하기에 오늘이라도 덕유의 품에 안겨 그러한 에우리에서 해방되고자 하였는데 아내와 아이의 대화내용을 들어보니 오름과 비탈에 어우러진 雪景은 뒷전이고 오로지 大入戰略이다.
그러다 보니 너덜길이 덜 힘든지 아무런 불만 없이 오르다보니 어느덧 암릉의 철계단이 시작되는 안부이다. 안부에 올라서니 북쪽 능선에 하얀 눈이 깊게 쌓여있다. 암릉은 짙은 안개에 그 형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지만 안개가 몰려 지나자마자 이따금 흘끗 드러내는 기골 장대한 骨格은 숨을 막히게 한다. 그리고 얼어붙은 암릉길은 쉽게 전진하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젊은 청춘남녀 두 쌍이 지나는데 우리아이도 곧 저러한 모습으로 자라나기를 기대해 본다. 수직의 철계단과 암릉과 얼음길과 싸우며 짙은 안개 속의 절경에 한눈팔다 보니 어느 덧 남덕유(동봉) 정상이다.
(3) 남덕유(1507.4m)-서봉(1492m)
[12:00-13:40, +100=280분, +1.5=5.6km]
지난 가을 종주시 오르지 못한 남덕유 정상은 시설물 보수 작업이 완료되어 정갈한 모습을 자랑한다. 북사면은 온통 눈밭이다. 더구나 푸근한 날씨로 인하여 녹는 눈으로 빙판이다. 할 수 없이 아이젠을 착용하고 월성재 방향으로 내려가니 푸른 구상나무 가지사이로 삿갓봉과 무룡산의 마루금이 보인다. 갈림길로 300여m 내려와 다시 서봉방향으로 접어드니 눈 덮인 대간길이 산꾼들에 의하여 훤히 열려있다. 이정표는 서봉까지 1.2km 밖에 되지 않는다며 걱정 말라는 듯 꿋꿋하게 서 있다.
눈 덮인 서봉 가는 길에 오후의 나무 그림자들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그 길을 가는 우리 세 식구의 그림자도 하얀 눈밭에 길게 드리워져 있는데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의 햇빛에 서봉의 그림자가 이내 우리들 그림자를 삼켜버린다. 드디어 서봉에 오르는 철계가 어서 오라한다. 철계에서 뒤돌아보니 남덕유가 그 넓은 가슴을 자랑하고 장쾌한 대간의 허리가 龍이 꿈틀거리듯 북으로 북으로 달려가고 있다.
서봉에는 먼저 도착한 분들이 계셨는데 수인사를 나누니 대전에서 오신 분들이란다. 그 분들의 사진을 찍어 드리고 우리 가족사진을 부탁한다. 저 멀리 북쪽으로 구름에 가려진 향적봉과 중봉, 그리고 살짝 이마를 내민 무룡산에서 삿갓봉에 이르는 산줄기를 배경으로 우리 가족은 추억을 남긴다. 그리고 서봉의 바위 정수리에 올라 동쪽 남덕유의 우람함과 남쪽 육십령 방향 대간의 산허리와 서측 장수방향의 유장한 산줄기를 조망하니 답답한 가슴이 툭 트여지는 느낌이다.
그 사이 사이 村落들은 조그맣게 열린 열매 같고, 대통고속국도와 도로들은 그 촌락들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실핏줄 같고 저 아래 덕유교육원은 여기서 행글라이더를 타면 곧바로 안착할 것 같은 지점에 있지만 거리상으로 3.7km란다. 우리는 육십령 방향의 대간길을 밟아가다 안부에서 교육원으로 내려서야 할 것이다.
(4) 서봉(1492m) 아래에서 중식
[13:40-14:30, +50=330분]
서봉을 내려와 평탄한 마당바위에 배낭을 내리고 점심을 준비한다. 모처럼의 산행에 허기져서인지, 아니면 산 아래 절경인 眺望이 좋아서인지, 심산의 공기가 맑아서인지 차디찬 점심밥이 꿀맛이다. 꾸려온 먹거리를 깨끗이 치우고 아이와 고민을 이야기하고, 아내와 세상사를 이야기하다보니 집에 있는 둘째 애 생각이 나서 후닥닥 일어서보지만 시간은 벌써 50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5) 서봉(1492m)-교육원3거리
[14:30-15:30, +60=390분, +2.1=7.7km]
여기서 할미봉 까지는 한 번의 오르막이 있지만 그저 푹신한 육산길이 계속되는 능선상의 내리막이다. 교육원은 점점 다가오고 할미봉의 독립문 같은 바위도 한결 가까이 다가오고 남쪽 하늘에 걸린 지리산 하늘금도 점점 또렷해지는데 남덕유와 서봉은 점점 멀어지지만 그의 장대한 골격이 한눈에 차 들어온다. 어느덧 대간 길에서 벗어나 덕유교육원으로 내려가는 안부가 나타난다. 거기 삼거리의 나뭇가지에 형형색색의 종주 리본이 주저리주저리 걸려있어 성황당을 연상케 한다.
(6) 교육원3거리-교육원-입구
[15:30-16:30, +60=450분, +2.3=10km]
산자락 아래로 내려갈수록 깊은 산그늘에 숨어있는 地面에 흰 눈이 한결 많이 쌓여있다. 흰 눈과 부드러운 마사토와 낙엽을 밟으며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내려가다 보니 잘 가꾸어진 덕유교육원이다. 풍수지리에 門外漢인 내가보아도 남덕유와 서봉, 그리고 백두대간에 둘러쌓인 교육원이 천하명당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슴을 알겠다.
(7) 에필로그
남덕유, 서봉의 설경을 가족과 감상하며 예정 시간 5시간을 훌쩍 넘긴 7시간 반이나 걸린 이번 산행은 그 어떤 산행보다도 보람 있었다. 한번 가보았어도 두 번, 세 번, 열 번도 더 가보고 싶은 산이 있다. 그렇게 가더라도 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산이 있는데 바로 덕유산이 그렇다. 특히 남덕유, 서봉 능선이 그렇다. 아찔한 암릉을 가진 동봉과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어 온갖 야생화가 만발한 서봉 언저리, 그리고 산죽과 나지막한 졸참나무가 우거진 육십령으로 내려가는 대간길... 이러한 풍광을 가진 남덕유(동봉), 장수덕유(서봉)는 그래서 자주 찾아보고 싶은 곳이다. 이제 꽃피는 춘삼월에 다시 한 번 너를 만나리라. 그러면 너는 어떠한 모습으로 또 나에게 다가올까?
배달9203개천5904/단기4339/서기2006/12/25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1. 눈덮힌 오름
2. 급한 너덜겅길
3. 안부의 남강 발원지
4. 안개에 쌓인 암봉
5. 아찔한 암봉과 철계
6. 또 이어지는 안개 속의 암봉
7. 상봉에서
8. 북사면의 설경
9. 서봉 가는 길
10. 서봉에서 본 남덕유
11. 서봉에서 본 북덕유 방향
12. 서봉에 오르며
13. 서봉에서 장수방향 조망
14. 서봉을 내려오며
15. 서봉을 내려오며 남덕유 조망
16. 서봉을 내려오며 육십령 방향 대간길 조망
17. 덕유교육원3거리를 지나며
18. 천하명당 덕유교육원
대전 청솔 산악회 / 대평마루(07/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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