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여행과산행길

도봉의 眞髓 자운봉, 오봉, 여성봉 그리고 오호 통재라 숭례문이여!(08/02/09)

이름없는풀뿌리 2015. 7. 15. 15:28

 

 

 

 

 

도봉의 眞髓 자운봉, 오봉, 여성봉 그리고 오호 통재라 숭례문이여! 

 

이글을 쓰기 전에

前代未聞의 火災로 全燒된

대한민국 국보 1호인 崇禮門에

깊이 머리 숙여 哀悼를 表하는 바이다.

 

(1)

지난번의(08/2/2) 감격적인

[사패산-포대능선-자운봉]능선 탐방 후

설날 연휴를 맞이하여

2008/2/9(토)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다락능선을 경유하여

[포대능선-Y계곡-자운봉-신선대]를 다시 보고

[주봉-칼바위-오봉-여성봉]능선을 탐방키로 하다.

 

(2) 망월사역-망월사갈림길-다락능선)

(09:35-11:00, +85=85분, +3.2=3.2km)

망월사에서 내려

다락능선으로 바로 가는 길을 몰라

산객들의 행렬을 따라 오르다 보니 원도봉 계곡길이다.

가는 대로 가다가 분명 다락능선으로 가는 샛길이 있을 거라 짐작하고

그대로 계곡길로 가며 보니 널따란 집터가 출현하였는데

산악인 엄홍길이 17년간 거주하였다한다.

엄홍길씨는 여기서 산을 알게 되었고 꿈을 키웠다고 한다.

오르는 계곡길 내내

지난번의 평범한 회룡골 계곡길과는 판이하게도

奇巖絶壁과 秀麗한 소나무들이 즐비하여

이 또한 天下絶景이어서 이 길로 들어선 것이 전혀 후회되지 않다.

어느 안부에 이르니

망월사방향과 민초샘 방향의 갈림길이다.

애초 다락능선으로 향하려 했으므로

민초샘으로 향하여 급경사를 오르고

주름 같은 산굽이를 돌고 도니 다락능선자락인데

포대능선 쪽으로 수많은 산님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3) 다락능선-포대능선-자운봉-신선대

(11:00-12:05, +65=150분, +1.2=4.5km)

다락능선 안부의 이정목에는

자운봉이 1.2km, 도봉대피소 0.8km, 도봉탐방안내소 2.7km로 되어 있다.

생각과는 달리 이 다락능선길도 반잘 반질하다.

줄지은 산님들을 따라 오르니

얼마안가 선인봉의 姿態에 눈길을 빼앗기다.

수려한 도봉의 모습은

보문능선에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旋律을 그려내며

마치 거문고의 音律에 맞춰 토해내는 대금 연주 같은 분위기를 지녔다.

유유작작하게 그 수려한 몸매를 자랑하는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을 감상하노라니

까마귀 떼가 그 골골의 계곡에

까르륵 까르륵하며 울음을 메아리친다.

썩은 고기만을 먹는다는 까마귀가 서식함은

이 도봉 계곡이 살아 있다는 傍證일 것이다.

전망바위에서 도봉의 자태에

넋을 빼앗기다가 포대능선으로 달라붙으니

그 기울기가 지난번 기겁을 한 Y계곡 못지않다.

쇠줄을 붙잡으며 오른 포대능선에서 보는 자운봉은

일주일 전과 또 다른 모습을 연출하고 뒤돌아 본 사패산 또한 그러하다.

오늘따라 Y계곡에 사람이 만원이어서

우회길을 택할까 하다가 그대로 Y계곡으로 내려서니

타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지난번보다 훨씬 쉽다.

Y계곡을 탈출한 능선에 서서 신선대에서 바라보는 자운봉은

또한 지난번과 다른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4) 신선대-주봉-칼바위-오봉

(12:05-13:30, +85=235분, +1.7=6.2km)

신선대를 내려와 도봉주릉으로 향하니

많은 사람들이 오봉 쪽에서 열 지어 온다.

주봉, 칼바위봉은 統制柵으로 들어갈 수 없다.

칼바위를 지나니

우이암으로 가는 도봉주릉과 오봉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오봉으로 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 연속된다.

가는 도중, 암봉이 있어 그리로 향하니

암봉이 너무 가팔라서 오르기가 망설여진다.

나중에 알고 보니 牛峯이라 한다.

우봉을 돌아 나오니 五峯이 지척이다.

 

(5) 오봉-여성봉-오봉탐방안내소-송추입구

(13:30-15:10, +100=335분, +4.1=10.3km)

오봉에 오르니 발아래

네 개의 봉우리가

커다란 돌덩이들을 머리에 이고 열 지어 있는데

한 개의 봉우리는 마지막 봉우리 밑에 숨어 있단다.

지금 서 있는 이 봉우리를 포함하면 될 텐데

정상에서 보이지 않는 봉우리를 포함하여 오봉이라 한다고 하니

상봉인 이 오봉이 시샘이나 안할지?

오봉에서의 眺望은 지난번 사패산에서의 조망만큼이나 좋다.

남으로 거대한 병풍 같은 상장능선 너머의 삼각산의 連峰들.

동으로 휘달려가는 도봉주릉, 보문능선.

북으로 도봉의 자운봉을 비롯한 연봉들과 사패, 포대능선.

발아래 서으로 곤두박질치다 솟아오른 여성봉능선.

그리고 다섯 형제가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선 오봉능선.

여기에 서 있으면 근심이 사라질 것 같다.

오봉 정상을 오르신 산님들과

주위를 조망하다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여성봉으로 가는 능선으로 내려서니 급경사가 연속된다.

그러나 오봉에서 여성봉까지의 거리가 1.2km정도라니

조금만 조심하면 곧 여성봉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일어온다.

급경사를 내려오니 의외로 완만한 오솔길이 지속되다가는

갑자기 암벽이 앞을 가로막는데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한눈에 여성봉임을 알겠다.

미끄러운 암벽을 올라서니

정작 그 암벽 뒤 쪽의 젖무덤 같은 봉우리가 정상이었다.

이곳에서의 조망 또한 壓卷이다.

특히 동측의 오봉능선,

멀리 손에 잡힐 듯한 사패산의 벗겨진 이마가 아름답다.

여성봉에서 오봉 탐방안내소까지의 거리가

1.9km라 하였는데 완만하여서인지 지루하기가 그지없었지만

한적한 여성봉의 부드러운 능선을 여유작작하게 내려와

탐방안내소의 직원에게 서울 가는 길을 물으니

송추입구까지 1km만 가면 된다며 너무나 친절하게 응대해 준다.

홀로만의 여유작작한 산행이어서 좋았는데...

하루가 지난 08/2/10 국보1호인

숭례문이 불에 타 무너져 내릴 줄 이야.

그 현판을 쓴 양녕대군과

그 門을 드나들었던 수많은 先人들에게 어찌 고개를 들꺼나?

이후로 이 땅에 살아 갈 後孫들에게

當代의 우리들은 어떻게 謝罪하여야 할 것인가?

이 얼마나 애통한 일인가?

오호 통재라. 애재라.

배달9205/개천5906/단기4341/서기2008/2/9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숭례문에 哭하며... 그의 아름다움을 記憶하며... 

 

 

 

 

1. 오르는 원도봉 계곡 가득한 비경

 

 

 

 

 

 

2. 다락능선에서 본 도봉 상봉의 비경

 

 

 

 

 

 

3. 포대능선에서 본 도봉

 

 

 

 

 

4. Y계곡을 올라서

 

 

 

5. 자운봉 주변

 

 

6. 주봉

 

 

7. 오봉에서 본 상봉, 우봉

 

 

8. 오봉에서 본 삼각산, 우이령 

 

 

 

 

9. 오봉 능선

 

 

10. 오봉에서 내려다 본 여성봉

 

 

11. 여성봉 능선에서 본 사패산

 

 

 

 

12. 여성봉

 

 

 

13. 여성봉에서 본 오봉

 

 

14. 여성봉에서 본 사패산

 

 

15. 여성봉에서 본 삼각산 상장능선 방향

 

 

 

16. 하산길에 본 사패산

 

 

 

 

이름없는풀뿌리

[오봉에 얽힌 전설]

옛날 어느 금슬좋은 부부가 살았는데 지아비가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지어미는 좋다는 약이란 약은 다 구해다 서방님을 지성으로 돌봤는데도 전혀 차도가 없던 어느 날 지나가던 노승이 한 말씀 툭 던지고는 떠나버렸다. "거 참 안되었소. 이 병을 고칠 방법이 딱 하나 있는데, 다섯 봉우리가 나란히 있는 곳을 찾아 그 봉우리마다 촛불을 밝혀놓고 치성을 드리야만 낳을 것이고." 그날부터 지어미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다섯봉우리가 나란히 있는 곳을 찾아 나섰으나 딱 이 봉우리다 싶은 것을 길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지아비의 병환은 점점 더 깊어만 가고... 지어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만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져서 정신을 차리려고 가까스로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더니 바로 눈앞에 다섯봉우리가 나란히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자기 어깨를 머리위로 들고 앞으로 쓰러졌는데 고개를 들고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려하니 주먹진 자기손의 손가락 관절이 나란히 오봉으로 클로즈업된 것이었다. '아하! 바로 이것이었구나! 이것도 모르고 밖으로만 찾으러 다녔다니... 지어미는 그 길로 자기 손등에 다섯개의 촛불을 밝혔다. 초가 다 타서 살을 태울 때웠을 때는 지어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 후로 지아비의 병은 씻은 듯이 다 나았지만 지어미가 쓰러져 자기 손등에 촛불을 밝혔던 그 자리에는 다섯 봉우리가 나란히 선 오봉이 우뚝 솟아올랐다고 한다. 2008/02/12 17:23:57  

이름없는풀뿌리

[여성봉에 얽힌 전설]

475년경 한 소녀가 한강변에 앉아 맑고 구슬픈 피리를 불고 있다. 긴 머리에 피리 소리 마냥 바람에 휘날리며 춤추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운 소녀이다. 얼마 후 소리를 찾아 달려오는 한 청년의 모습이 씩씩하며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청년은 떠나간다. 고구려의 침범에 맞서 백제를 지키고자 싸움터로 나서는 청년의 얼굴엔 돌아오지 못할 슬픔이 어려있다. 그리고 청년은 개로왕이 전사하던 한성 싸움에서 함께 목숨을 잃고 만다. 그 후 백제는 왕을 잃은 치욕을 씻고자 재건을 꿈꾸면서 477년경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는데, 오랜 삶의 터전인 한강유역을 떠나기 아쉬운 처자는 부모와 함께 고구려의 손길을 피해 도봉산 깊숙히 숨어든다. 알아 줄 사람 없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애태우다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서른 중반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이를 불쌍히 여긴 천상의 옥황상제가 무수한 세월동안 남정네의 사랑을 받으라며 바위로 환생을 시키니 이것이 바로 여성봉이다. 처자의 죽은 시기를 기념하여 그 높이를 495m로 하였으니 천오백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산사나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8/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