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과 인왕의 능선에서 가을을 떠나 보내며...
(1) 보내려
낙산(125m), 북악산(백악산, 342m),
인왕산(338m), 남산(목멱산, 262m)의 내사산을
一別하기 좋은 북악과 인왕의 마루에서
단기 4346년 가을의 마지막 단풍을 놓아 보내려 나서보다.
또 마주치며 보내줄 기회가 올지 모르지만
지금 가려하는 그는 다시 볼 수 없기에 아쉬움이 남는가 보다.
그와 닮은 계절과 바람과 맑음과 색깔은 다시 오겠지만
매 순간이 다시 올 수 없는 순간이기에 절실한지도 모르겠다.
(2) 수많은
그 수많은 순간들에
환희하고 절망했던 기억과 모습과 상상이
숙정문에도 곡장에도 청운대에도
북악의 꼭두인 백악에도 넘쳤다.
그저 참으면 될 일인데
참아선 안 되는 것처럼 절규하는 낙엽의 소리.
참으나 참지 않으나 유장하게 흐르는데
그 흐름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도도하게 흐르는데 낙엽 한 잎 끝까지 버티어도
곧 대지에 떨어질 운명인 것을...
(3) 그래도
그래도 마지막을 버티어주는 그들을 보면
더욱 고귀하고 귀기울여주고 싶고
눈 마주쳐 마음 머물러 주고 싶다.
창의문에 다달아 樓에 올라
인조반정 공신 현판을 들여다보고자 하니
지킴이가 CCTV로 감시하다 제지하려 올라온다.
그래도 金自點이란 이름 석 자를 확인해 보려 하는데
첫 번째 새겨진 그의 이름 가운데 自자가 지워져 있다.
역사는 역사일 따름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창의문을 내려서니
배풍등과 쑥부쟁이가 마지막을 버티고 있다.
빠알간 배풍등 열매가 그래서 더욱 고귀하고
바람에 풍경소리가 들려오는가 하여 귀기울여보고
눈 마주쳐 마음주다 윤동주가 있는 시인의 언덕으로 오른다.
(4) 발아래
가파른 인왕 성벽을 오르며
뒤돌아보니 지나온 북악과 그 아래
천하 제1의 명당에 자리한 청와대가 발아래 놓여 있는데
항상 지나치던 기차바위가 더욱 멋있게 보여
성벽을 내려서서 기차바위를 알현.
기차바위에서 바라보는 북악이 더욱 장엄.
다시 돌아와 복구한 하얀 인왕성벽을 오르니
발아래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걸려있다.
정상엔 벽안의 소년 둘이 걸터앉아
발아래 도성을 내려다보고 있다.
(5) 걷는 길
겸재의 가파른 붓끝을 따라 내리니
문득 그가 붓을 들어 다시 휘내려
따라가느라 가파른 내리막이 더욱 힘들다.
범바위에 다달아서야 겸재는 붓끝의 힘을 빼며
뒤돌아 볼 여유를 주려는 듯 붓끝을 천천히 들어
곡장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직단을 에워싸는 완만한 성벽과
마지막 단풍 풍성히 떨어져 내린 길.
걷는 길.
그 길을 따라 단기 4346년 가을의
마지막 단풍을 놓아 보내주다.
또 마주치며 보내줄 기회가 올지 모르지만
지금 가려하는 그는 다시 볼 수 없기에 아쉬움만 남는가?
그와 닮은 계절과
바람과 맑음과
색깔은 다시 오겠지만
매 순간이 다시 올 수 없는 순간이기에
더욱 절실한지도 모르겠다.
약 8km, 4시간여, 천천히, 나 홀로 이 해의 마지막 단풍을 보내며...
와룡공원(10:20) -> 말바위안내소(10:40) -> 숙정문(10:45) ->
곡장(11:00) -> 청운대(11:05) -> 백악산(11:15) -> 창의문(11:45) ->
시인의언덕(11:50) -> 기차바위(12:40) -> 인왕산(12:50) ->
범바위(13:00) ->점심(13:20) -> 사직공원(13:30) -> 경복궁역(14:00)
배달9210/개천5911/단기4346/서기2013/11/16(토)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1. 陰氣가 세어 항상 닫아 놓았다던 숙정문
2. 다시 마주칠지 모를 그들이지만 이 순간만은...
3. 인조반정 일등공신 김자점은 어디로?(역사에서도 지워져야 하는게 역사?
4. 제일 반가운 쑥부쟁이와 배풍등
5. 윤동주 기념관
6. 가는 길과 마지막 잎새마져 떨어질 것이지만 강한 바람에도 버티는 얘들
7. 기차바위가 보고싶어서
8. 기대에 부응하는 기차바위 조망과 오르기
9. 기차바위에서 본 인왕 정상
10. 정상직전 뒤돌아보며...(저 바위 틈에 살던 인왕산 호랑이)
11. 서양 얘들에게 점령당한 인왕 정상
12. 인왕제색도에 들어간 풍경
13. 단기4346의 자락을 부여잡은 고귀한 얘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