哭子(곡자) 아들을 잃고 곡 하며 許蘭雪軒(허난설헌)
去年喪愛女(거년상애여) 지난해에 사랑하는 여식을 잃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슬프고, 슬프도다! 광릉땅이여!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두 무덤 서로 마주하고 있구나.
肅肅白楊風(숙숙백양풍) 백양목 사이로 부는 소슬한 바람소리,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 귀신불은 공동묘지를 밝힌다.
紙錢招汝魂(지전초여혼) 종이돈으로 너의 혼을 부르고,
玄酒奠汝丘(현주전여구) 맑은 정화수를 너의 무덤에 뿌린다.
應知兄弟魂(응지형제혼) 응당 형제 혼임을 서로 알아서,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밤이면 밤마다 서로 따라 놀 거라.
縱有腹中孩(종유복중해) 비록 배 속에는 아이가 들었거니,
安可冀長成(안가기장성) 어찌 잘 크기를 바라겠는가?
浪吟黃臺詞(낭음황대사) 구슬피 황대사 읊조리면서,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소리를 삼키며 피 눈물로 슬퍼하노라.
허난설헌(1563~1589):초명은 초희(楚姬),자는 경번(景樊), 호가 난설헌(蘭雪軒)이다. 강릉태생으로 명문 허씨 가문에서 성장하면서 어릴 때 오빠(봉)와 동생(균)의 틈바구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웠으며, 아름다운 용모와 천품이 뛰어나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 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짓는 등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허씨가문과 친교가 있었던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웠으며, 15세 무렵 안동김씨(安東金氏) 성립(誠立)과 혼인하였으나 원만한 부부가 되지 못하였다.
남편은 급제한 뒤 관직에 나갔으나, 가정의 즐거움보다 노류장화(路柳墻花)의 풍류를 즐겼다. 거기에다가 고부간에 불화하여 시어머니의 학대와 질시 속에 살았으며, 사랑하던 남매를 잃은 뒤 설상가상으로 뱃속의 아이까지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 시 곡자는 이즈음에 지은 시로 보인다. 또한, 친정집에서 옥사(獄事)가 있었고, 동생 균마저 귀양 가는 등 비극의 연속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책과 먹〔墨〕으로 고뇌를 달래다 27세의 아까운 나이로 생을 마쳤다. 유고집으로 (난설헌집)이 있다.
주1)광릉: 경기도 광주(난설헌의 媤家)의 공동묘지.
2)백양: 백양목을 말하며 흰색의 백양목은 죽음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3)송추: 공동묘지의 또 다른 별칭.
4)지전: 종이돈으로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원혼을 부를 때 사용한다.
5)현주: 정화수로 아이무덤에 술대신 사용한다.
6)종유: 부사로 비록이란 뜻이다.
7)안가: 부사로 어찌란 뜻이다.
8)황대사: 자식을 죽인 어미를 자책하는 노래
황대 아래 외 심으니,
주렁주렁 외가 익네.
첫 번째 외는 좋다고 따내고
두 번째는 아직 여리다 솎아내고
세 번째는 맛이 좋다 또 따내고
네 번째는 덩굴채 걷어 가네.
種瓜黃臺下 瓜熟子離離
一摘使瓜好 再摘令瓜稀
三摘尙云可 四摘抱蔓歸
당 고종(高宗)의 아들이 여덟인데, 위로 넷은 천후(天后)의 소생이다.
맏인 홍(弘)을 태자로 삼았으나, 계후(繼后: 두 번째 왕비)가 시기하여 독살하게 되자, 둘째인 현(賢)을 태자로 세웠다.
그러나 현은 수심에 가득 차 말이 없고, 이 노래를 지어 악공에 주어 부르게 하여, 상(임금)과 후(왕비)의 깨달음을 얻으려 했으나, 그도 결국 쫓겨나 죽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아무 생각이 없다.
연이어 잃은 어린 두 자식의 무덤 앞에서 소리도 제대로 내서 울지 못하고 꺼이꺼이 울음 삼키며 피눈물을 쏟아내는 저 젊은 어머니를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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